순간 주현철은 지금, 이 상황을 파악했다.‘다른 곳에서 난 화를 집으로 돌아와서 내게 화풀이하는 것이었구나.’주현철은 일하는 아주머니를 불러 테이블에 잔뜩 쏟아진 술을 닦게 하고 새 잔에 술을 다시 따라 술안주를 집어 먹으면서 아무렇지도 않게 물었다."또 왜 그래? 당신이 모르는 것도 아니고, 그 부잣집 아가씨의 더러운 성격을 몇 번 참아주는 것도 못 해”"몇 번 참아주라고요? 그럼, 당신이 가서 참아줘요! 당신의 조카가 지금 얼마나 대단한지 알아요? 이전에는 떼를 써서 간식을 먹으려고만 했지! 지금은 테이블 위로 컵을 탁 놓으며 따박따박 말대꾸까지 한다는 말이에요! 나보고 자기의 자존심은 생각해 주지도 않는다면서!”그녀는 말할수록 더 화가 났다.게다가 그 자리에는 진가연 집에서 일하는 아주머니까지 보고 있었다. 그런데 그런 상황에서 그녀를 외숙모 취급하지 않고 대들다니!"뭐? 가연이가 그렇게 말했다고?"주현철은 눈썹을 치켜올리고 술을 한 모금 마시고는 놀란 표정을 지었다."가연이가 그렇게 말한 게 아니라면 내가 했다는 거예요? 그리고 자존심은 무슨! 가연이 아버지의 체면을 생각해 준 게 아니었다면 밖에서 누가 그 애의 자존심을 지쳐주겠어요?”말하다 목이 말랐는지 주 부인은 남편의 술을 한 입 마셨다.그녀가 이 말을 하자 주현철은 기분이 썩 좋지 않았다.그는 자신의 잔을 다시 빼앗아 오며 말했다."이런 말 하지 마, 그 애 아버지의 체면을 봐주는 게 아니었다면 나서서 이런 꾸짖음을 들을 필요도 없지. 게다가, 몸매라면 몰라도 가연이의 얼굴은 못나지 않았어. 내 누이를 닮아서 살만 빠지면 이쁠 아이란 말이야.”주현철의 말을 듣고 주 부인은 생각이 났다. 그의 누이는 이름난 미인이었다. 진가연이 태어났을 때 엄마를 쏙 빼닮아 예뻤는데 커가면서 점점 살이 찌더니 그녀의 모습을 찾을 수 없었다. 얼굴에 살이 찌고 이목구비가 살에 묻히면서 더 이상 예뻐 보이지도 않았다."당신 누나가 이쁘면 뭐 해요. 얼굴이 하얗다면 못생김 정도는 가려주고
"당신 말하는 것 좀 봐요, 당신이 형부처럼 정치인이라면 좋겠다는 거지 내가 형부와 결혼하겠다는 말이 아니잖아요! 왜 화를 내고 그래요!"주 부인은 한 손으로 그를 툭툭 밀면서 계속 말했다."게다가 당신 형부는 너무 구식이고 고리타분해서 당신 동생이니까 참을 수 있는 거지 난 그런 성격 참을 수 없어요!"그녀는 자기 남편의 기분을 상하게 할 수 없었다. 아무리 마음에 들지 않는다 해도 앞으로도 계속 부족하면 없는 삶을 살고 싶다면 그를 달랠 수밖에 .이 말을 듣고 주현철의 얼굴빛이 조금 나아졌다."그렇긴 하지. 그의 성격은 너무 곧아. 조금 직설적으로 말하면 융통성이라곤 눈곱만큼도 없는 사람이야, 이런 성격으로 어떻게 지금이 위치에 올라갔는지 정말 의심스러울 정도라고!"주현철은 몇 마디 중얼거리며 다시 술을 마시다 문득 무언가가 떠올랐는지 아내에게 물었다."그나저나, 그 신의 설득했어?""말도 마요, 오늘도 그 일 때문이에요! 당신의 그 귀한 조카가 신의에게 진료받으려 하지도 않아요. 내가 보기엔 한소은이 세뇌한 게 틀림없어요."주 부인은 입술을 삐죽였다. 그녀는 지금 한소은을 극도로 싫어하는 상태다.‘그 여자가 가연이에게 무슨 약을 먹였는지 그 여자 말만 고분고분하게 잘 듣는 것 같단 말이지. 내가 그렇게 오랜 시간 키워줬는데 내 말은 듣지도 않고, 배은망덕한 계집애.’"한소은이라……."주현철은 그 말을 반복하다 무언가 떠올린 듯 자신도 모르게 미소를 지었다.그가 조금 이상하게 웃는 것을 발견한 주 부인은 이상해서 물었다."갑자기 왜 그렇게 웃고 웃어요……?"그녀는 남편이 왜 바보처럼 웃냐고 물으려다 그가 화날까 봐 두려워서 마음을 바꿨다."흐흐흐……"주현철은 한참이나 웃다 목청을 가다듬고 대답했다."지금 내가 입찰하려는 이 프로젝트의 가장 강력한 경쟁자가 누구였을 거라 생각해?"“누군데요?”주 부인은 어리둥절해서 눈을 깜빡였다. 그녀는 비즈니스에 대해 잘 몰랐다."김씨 가문! 지난 몇 년 동안 약과 칩을 개발해 왔는데,
또한, 입찰과 같은 일에 상사가 직접 참여할 필요가 없고 회사 측에서 계획을 잘만 세웠다면 그가 없이 입찰하는 게 불가능한 것도 아니다.주현철은 고개를 저으며 그녀의 물음에 대답했다.''그래서 당신 같은 여자는 아무것도 모른다는 거야! 김서진이 왜 출국했는지 알아? 믿을만한 사람에게 듣기로 남아시아에 있는 그의 공장에서 사고가 났대. 무슨 집단 중독 사건이라는데 이 일이 우리에게 좋은지 아닌지, 사건이 큰지 작은지를 떠나 남아시아 그곳이 얼마나 혼란스러운지 알아? 그곳에 간 김서진이 멀쩡히 돌아올 수 있을지가 문제라는 말이야!”주현철은 차라리 그가 그곳에 발이 묶여 영영 돌아오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혹은 그곳에서 목숨을 잃거나!만약 김서진이 죽으면 김씨 가문은 큰 혼란에 빠질 것이다. 김씨 가문이 더 이상 지탱하지 못한다면 시장은 얼마나 큰 몫을 나올지 상상할 수조차 없다. 그때가 되면 자기도 얻는 게 있을 것이고 어쩌면 이 기회를 통해 높은 자리에 오를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그 가능성을 생각만 해도 주현철은 웃음이 났다."남아시아는 지금 이러한 이유로 혼란스러운 상태인데 김서진이 왜 갔는지 몰라요. 그냥 사람을 보내는 게 낫지."주 부인은 주현철과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녀도 김서진이 정말 무슨 일이 생기면 좋겠다고 생각했지만, 김서진의 행동을 이해하지 못했다."젊으니까, 모든 일을 스스로 해결하고 사람들의 마음을 사려는 거지! 왜 귀찮게 그런 짓을 할까? 그쪽의 가난한 임금 노동자들이 나를 위해 일을 하는 것은 내가 그들에게 그만큼의 보상을 해줬기 때문이야! 그 사람들이 고마워해야 하는 게 당연한 거 아닌가!"주현철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김서진 친히 그곳까지 간 것에 대해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모두 사업을 하는 사람으로서 김서진의 일부 행보는 전례가 없던 것이다. 쇼하는 게 아니라면 그가 바보라고 생각했다.비즈니스를 하는 사람으로서 이익이 있어야 움직이는 게 상책이다. 주현철은 아무런 이익을 받을 수 없는
"효영아, 지금이 몇 시인데 아직도 실험을 하는 거야? 귀국하고부터 집에 잘 들어오지도 않고 밖으로만 쏘다니고, 하루에 네 얼굴 한번 보기가 너무 힘든 거 아니야?"주 부인은 살짝 투정 섞인 말투로 말했다."내가 집에 있어도 엄마가 자주 집을 비우니 내 얼굴을 볼 수 없잖아!"전화기 너머에서 주효영이 담담한 목소리로 말했다."엄만……."주 부인은 잠시 딸의 말에 당황했다.주효영의 말이 틀리지는 않았다. 주 부인은 하루도 집에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 매일 나가서 모임에 참가하는 게 아니면 쇼핑하거나 미용실에 갔었다. 최근에는 신의를 찾아 진가에 자주 드나들다 보니 거의 집에 머물지 않아서 하루에 몇 번 보지 못하는 것도 사실이다."그러면 와서 엄마와 함께 미용하러 가거나 쇼핑하러 가면 되잖아! 하루 종일 연구소에 있지만 말고, 그게 뭐가 그렇게 좋다고 집에 올 생각도 안 하는 거야? 이제 너도 나이가 들었으니 남자친구 만날 생각 해야 하지 않겠어? 네가 남자친구 만날 생각이 없다 해도 엄마는 네 인생의 큰일에 신경 써야 하잖아! 너 좋다는 남자 없어?"결국 대화는 이 주제로 돌아왔다.전화기 너머에서의 목소리가 멈칫하더니 아무런 소리도 전해지지 않았다. 주 부인은 아직 통화 중인지 확인하기 위해 핸드폰을 확인하고 막 입을 열려고 할 때 주효영의 목소리가 전해져 왔다."더 할 말 없지? 그럼, 전화 끊을게.""효영아, 끊지 마!"딸이 전화를 끊으려 하자 주 부인은 서둘러 외쳤다."얘 좀 봐, 넌 남자친구 찾으라는 얘기할 때마다 꼭 이런 식이야. 넌 젊고 예쁘고 유학까지 다녀왔어. 적어도 부잣집에 시집가야 하는 거 아니야? 절대로 가정형편이 안 좋은 그런 사람에게 현혹되지 말고! 엄마가 좋은 남자를 찾아봐 줄!""끊을게!""알았어, 말 안 할게!"딸의 성격을 잘 아는 그녀는 재빨리 말을 바꾸었다,"그러면 요즘 뭐 하느라 바빴어?"어렴풋이 웃는 소리와 함께 주효영의 목소리가 들려왔다."엄마…….""그래!""내가 말한다고 해서 알아
하지만 주효영의 대답은 주 부인의 예상을 뛰어넘었다."알아! 그 사람이 원 어르신의 마지막 제자라는 증거되었어? 내가 들은 바로는 원 어르신의 마지막 제자는 정확히 누구인지 외부에 공개된 적이 없어. 그 사람이 사기를 치는 거 아닐까?""그럴 리가!" 주 부인은 재빨리 부인했다."이 정보도 내가 어렵게 알아 온 내부 정보야. 절대적으로 신뢰할 수 있어! 원 선생님은 자신이 원 어르신의 마지막 제자라고 말한 적도 없고, 또한 매우 겸손하고 사람들을 쉽게 대하지 않아. 정말 어렵게 그를 모셔 올 수 있었단 말이야. 그는 절대로 사기꾼이 아니야! 그는 전에 내가 아는 사람의 삼촌 처제 가족의 어린 손자를 치료한 적이 있었어!"주 부인의 주효영은 어이가 없어 말을 잇지 못했다."어우, 이 얘기는 그만하자. 생각만 해도 화가 나! 그 계집애는 고마운 줄모 모르고!" 말하면 할수록 화가 난 주 부인은 손을 흔들며 더 이상 언급하려 하지 않았다."진가연이 치료받으려 하지 않는다고? 살을 빼고 싶지 않다는 거야?"정신을 차린 주효영이 다시 물었다."그 계집애가 무슨 생각인지 누가 알아, 김 부인 그 여자에게 세뇌당한 것 같아!""김 부인?"원래 전화를 끊으려던 주효영이 자신도 모르게 점점 더 대화에 관심을 두게 되었다.‘그동안 무슨 일이 있었던 거지? 어머니의 입에서 이렇게 흥미로운 말들을 듣게 된다니!’약간 지루했던 생활이 드디어 활기를 띠기 시작했고, 그녀는 조금씩 흥미를 느끼기 시작했다."아, 넌 아마 모를 거야. 어쨌든 내가 모셔 온 신의와 조금 사이가 좋지 않은 아주 못된 여자인데, 그 여자가 가연이에게 무슨 말을 했는지 가연이가 그 여자의 말만 듣고 신의에게 진료를 받지 않겠다고 거부하고 있어.""진가연이 그 여자가 시키는 대로 다 한다고?"진가연은 원래부터 사람과 상대하는 걸 싫어했다. 그런데 지금 갑자기 누구의 말을 고분고분하게 듣다니! 그것도 안 지 얼마 되지 않은 사람의 말을!‘김 부인이라는 여자. 재밌는 여자네.’“그래, 오
연구소의 불은 밤새 켜져 있었다.새벽이 되자 원철수는 하품을 한번 하고는 마스크를 벗고 손을 깨끗이 씻었다. 그러고는 연구소에서 나와 시큰거리는 눈을 비볐다.그는 연구소에서 이틀 밤을 꼬박 새웠다. 하지만 전혀 진전이 없는 것은 아니다. 적어도 마지막 단계에 이르렀기 때문에 큰 문제가 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다.지난 이틀 동안 그는 다시 신중하게 생각했다. 한소은이 그것을 만들 수 있다면 자신도 할 수 있어야 한다. 그녀가 자신보다 정확히 어디가 더 나았을까?그저 자신보다 일찍 실험실에 들어갔고 자신보다 경험이 더 많다는 것뿐이었다.시행착오가 많으면 자연스럽게 성공에 가까워진다, 요즘은 마음이 급해져 이런 단순한 진리조차 잊어버린 것 같다.이런 생각에 그는 더 많은 시간을 투자해 한소은과의 격차를 좁히고 성과를 내야 한다는 마음에 야근을 마다하지 않고 연구실에서 연구에만 몰두했다.만약 정말로 한소은 그 여자와 비교할 자격조차 없게 된다면 그는 정말 쪽팔려서 땅속으로 숨어들고 말 것이다.그날 둘째 할아버지가 자신을 바라보던 눈빛과 자신을 꾸짖던 말을 생각하자마자 그는 가슴에서 울분이 치밀어 올랐다. 반드시 이 프로젝트를 성공해야만 한다. 아니, 한소은보다 더 성공해야만 이 치욕을 되갚아 줄 수 있다.원철수는 허리를 쭉 펴고 아픈 어깨를 움직였다. 그는 향료에 대해 잘 몰랐지만, 한소은이 한의약에 대해 잘 모른다고 생각하면 두 사람은 사실 차이가 크게 나지 않았다. 그런데 한소은이 성공할 수 있으면 자기도 꼭 성공할 수 있을 것이다.원철수는 한소은이 너무 소심하다고 생각했다. 그녀가 연구소에서 얻어낸 실험 결과를 조금도 공유해 주지 않았기 때문에 그는 어쩔 수 없이 연구소에 있던 실패 데이터를 샅샅이 뒤져 결론을 요약해 냈다.그러고 나서 사람들이 가장 많이 사용하는 단향과 약초를 융합하여 받아들이기 쉬운 것을 만들기로 했다. 사실 독특한 향일 필요가 없다. 그는 향수를 만드는 게 아니다.그래서, 그냥 비슷하게만 만들어 내면 성공이다.그렇게
설령 밤을 새우지 않았고 방금 들어온 것이라 해도 충분히 이른 시간이다."이 교수님, 잠시만요. 물어보고 싶은 게 있어요."그렇게 말한 후 원철수는 재빨리 돌아서서 아래층으로 내려갔다.그러나 그가 1층으로 달려갔을 때 이 교수만 그 자리에 남아 있었고 여자의 뒷모습이 서서히 멀어지는 것을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철수야, 무슨 일이야?"이 교수는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웃으며 물었다."실험에 작은 문제가 생겨서요……."원철수는 이 교수의 뒤를 돌아보며 직설적으로 물었다."이 교수님, 방금 저 사람은 누구죠? 우리 연구소 소속인가요? 이렇게 일찍 오셨어요?""아, 그녀도 우리 연구소 소속이야. 다만 그녀는 너희들과 같은 실험을 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프로젝트팀에 속해 있어."이 교수가 담담하게 대답했다."그래서 넌 잘 모를 거야. 그나저나 뭘 물어보고 싶은 거야?"원철수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그렇군요. 우리 연구소에 또 다른 프로젝트가 있나요? 그런 말 못 들었는데 그 프로젝트는 무엇을 연구하는 건가요?""철수야, 너도 연구실에 들어온 지 꽤 됐으니까 묻지 말아야 할 질문은 하지 않는 게 좋아. 솔직히 나도 잘 모르는 프로젝트가 몇 가지 있어. 지금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건 눈앞의 일을 먼저 완수하는 거잖아?"이 교수는 심각한 말투로 말했다. 그는 더 이상 대답해 줄 생각이 없다는 눈치였다.그러자 원철수의 마음에는 의혹이 더 커졌고 궁금함만 더 늘었다.이 교수가 더 이상 말을 하지 않을 것 같아지자 원철수는 마음을 바꾸고 대답했다."맞아요, 어젯밤 실험을 할 때……."이 교수에게 몇 마디 질문을 했을 때 갑자기 이상한 느낌이 들어 위층을 둘러보았지만,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이 교수는 설명이 끝내고 고개를 들어 보니 원철수의 시선이 먼 곳을 응시하고 있는 것을 발견했다."철수야!"버럭 소리를 지르듯 그의 이름을 부른 이 교수의 말투에는 약간 불쾌감이 묻어 있었다."네, 이 교수님!""방금 내가 한 말 다 이해했
이 교수는 아무렇지 않다는 듯 미소를 지었다. 이건 그가 예상했던 대답이었다.그러나 그의 미소는 원철수가 거짓말이 들킨 그런 수치심을 느끼게 했다. 자신이 원 어르신의 마지막 제자라고 대놓고 말한 적은 없지만 다른 사람들이 이렇게 소문을 퍼뜨렸고 자기 자신도 일부러 부인하지 않았다. 지금 이 교수의 눈빛은 마치 그가 거짓말을 했다는 걸 꿰뚫어 보는 것 같았다."몇 년 전부터 어르신의 건강이 좋지 않아서 외부 손님을 만나지 않으려 하십니다. 하지만 이 교수께서 물어보고 싶은 질문이 있다면 제가 대신 물어볼 봐 드릴게요."원철수가 목을 가다듬으며 말했다.이 말의 의미는 그와 원 어르신의 친밀한 관계가 이례적이며, 그를 만나게 해줄 수는 없지만 한두 가지 문제를 해결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정말?"예상대로 이 교수는 이 말을 듣고 조금 놀란 눈치였다."그렇다면 정말 다행이야. 마침 해결하지 못한 두 가지 문제가 있었거든, 철수야, 시간 있으면 원 어르신에게 조언을 구해줘.""당연하죠."원철수는 허리를 곧게 펴고 미소를 지으며 이제야 체면을 되찾은 것 같다고 느꼈다.가볍게 몇 마디 더 나누고 이 교수는 건물 안으로 들어갔고, 원철수는 밤을 새운 뒤라 휴식을 취하러 가려고 했다.옷을 갈아입고 주 부인의 조카?를 만나러 갈 생각이었다.원래 이런 종류의 문제에 대해 그는 상대하고 싶지도 않았다. 대충 상황을 전해 들었고, 그 사람의 얼굴도 보았다. 그냥 단순한 비만 문제라고 확신했다. 이런 상황까지 이른 것은 본인이 식탐이 많거나 게으르게 주요 원인이다. 기껏해야 내분비 장애가 있을 뿐이다.그런 사소한 문제에 대해 그는 한마디라도 더 하는 것이 시간을 낭비하는 것처럼 느껴졌다.하지만 이번에는 한소은이 개입했다는 점이 달랐다.그 뚱뚱한 소녀는 한소은의 말을 곧잘 들었다. 반면 자신을 완전히 불신하고, 그가 사기꾼 같다고 생각하고 있다. 어쩌면 한소은이 그녀 앞에서 무언가를 말했을 수도 있다. 이럴수록 그는 자신을 증명하기 위해
소은은 고개를 들어 눈물을 참으며 말했다. “한 가지 이상한 게 있어요.”“무슨 일이에요?” 임남을 달래던 임상언이 무심히 되물었다.“로사 왕자는 감금된 것이 아니라 그날 Y국으로 송환되었다고 들었는데, 그렇다면 왜 그동안 로사 왕자와 연락이 닿지 않았던 걸까요?” 소은의 말에 임상언은 잠시 생각하더니 말했다. “두 가지 가능성이 있겠죠. 신호가 나쁘거나 핸드폰을 확인하지 못했을 수도 있고, 로사 왕자가 저희 연락을 거부하고 있을 수도...”두 사람은 잠시 눈을 마주쳤다. 말은 없었지만, 둘 다 이미 답을 얻은 듯했다. 로사 왕자가 그토록 연락을 피하려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도 나름의 계획을 세우고 있는 건가?...3일 후. 소은은 마지막 침을 놓고 손을 거두었다. 그녀는 자리에서 일어나지 않고 여왕을 쳐다보며 말했다. “오늘 시술로 폐하의 다리에 감각이 돌아오실 겁니다. 하지만 일어서는 건 천천히 시도하셔야 합니다. 너무 서두르시면 안 돼요.”소은은 말을 마치고 갑자기 미소를 지었다.“무엇 때문에 웃는 거지?” 여왕은 여전히 자신의 다리를 어루만지며 물었다. 이미 이틀 전부터 약간의 감각이 돌아왔음을 느낀 터라, 소은의 말이 사실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소은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제가 쓸데없는 일을 하고 있는 게 아닌가 싶어서요. 사실 R10 실험을 고집하신다면 결국 폐하께서는 이 몸을 떠나게 되실 텐데, 제가 이 몸에 애쓰는 일이 무슨 의미가 있겠어요?”여왕은 눈을 가늘게 뜨며 물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계속한 거지?”“어쩌면, 폐하께서 마음을 바꾸실 지도 모르니까요.” 소은은 부드럽게 대답했다. “어쩌면 자신의 몸이 무엇보다 소중한 것이라는 걸 깨닫게 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거든요.”“우리 모두 이 세상에 올 때 두 손은 비어있지만, 이 몸만은 오로지 우리 자신의 것이죠. 몸마저 버리신다면, 그 영혼은 여전히 진짜 자신일 수 있을까요?”“그렇구나.” 여왕은 잠시 생각에 잠기더
소은은 조용히 몸을 일으키며 여왕을 쳐다보았다. “물론이죠.” 소은은 담담하게 답했다. 그 대답에는 원망이나 비난의 기색은 전혀 없었다.“그렇다면... 조금 아쉽네.” 여왕은 생각에 잠긴 듯 낮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얻는 것이 있으면, 잃는 것도 있기 마련입니다. 세상 모든 일은 균형을 맞추려 하죠. R10이 폐하께서 이루고자 하는 꿈이라면, 저는 그것을 막을 수 없어요. 다만, 그때가 되어 성공하든 실패하든, 저는 그 모습을 보지 못할 테니 부디 후회하지 않으시길 바랍니다.” 소은은 살짝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이고는 문 밖으로 나갔다.릭은 여전히 문 앞에서 대기 중이었다. 그녀와 여왕의 대화가 거의 다 들렸던 듯, 둘의 시선이 잠시 교차했다. 소은이 그를 지나쳐 나가자, 릭은 곧장 방으로 들어갔다.“여왕 폐하.” 릭은 여왕을 쳐다보며 입을 열었다. 그녀의 다리에 꽂힌 은침을 보자 릭의 눈빛이 굳어졌다. “이건...”“괜찮아. 곧 소은이가 와서 침을 빼줄 거야.” 여왕은 무심하게 손을 흔들며 말했다.릭은 여전히 불안한 눈빛으로 말했다. “폐하께서 너무 방심하시는 것 아닙니까? 만약 한소은이 폐하께...”“그럴 리 없다.” 여왕은 단호히 그의 말을 잘랐다.릭은 당황한 얼굴로 물었다. “설마 그 여자를 믿으시는 겁니까?”여왕은 대답 대신 잠시 침묵을 지켰다. 그녀도 릭의 질문이 아니었다면 자신이 소은을 믿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했을 것이다. 오랜 세월 누구도 쉽게 믿지 않겠다고 다짐했지만, 그녀는 소은을 의심하지 않았다. 심지어 은침에 독이 묻어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제가 가서 잡아오도록 하죠.”여왕이 생각에 잠기자 릭은 바로 뒤돌아섰다.“거기 서!”여왕은 결연히 말했다. “난 믿어.”릭은 한참을 침묵하며 여왕의 결정을 받아들였다....임상언은 아들을 다시 만날 수 있을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 비록 아들을 구하려는 결심을 굳혔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희망이 사라지는 듯했다.
소은은 허리춤에서 허리띠처럼 생긴 물건을 꺼내더니 조심스럽게 풀어내며, 그 안에 숨겨진 가느다란 은침을 꺼냈다.“이건...” 여왕은 깜짝 놀라며 소은을 쳐다봤다. 소은이가 은침을 항상 가지고 다닐 줄은 상상도 못 했던 것이다.“말해봐, 네 요구가 뭐지?” 여왕은 깊게 숨을 들이마시며 마음을 가다듬으려 애썼다. 너무 무리한 요구라면 거절하면 그만이다. 여왕은 절대 소은에게 휘둘리지 않겠다고 다짐했다.소은은 차분하게 말했다. “제가 여기서 나올 수 있었던 건 로사 왕자님 덕분입니다. 그러니, 왕자님을 책망하지 않으셨으면 합니다.”“그게 다야?” 여왕은 의아해하며 물었다. 소은이 여기까지 와서 자신과 조건을 따지는데, 결국 요구한 게 단지 로사를 처벌하지 말라는 거라니. 자신이 잘못 들은 건가 싶었다.“로사는 내 아들이다. 내가 정말 내 아들에게 손을 댈 리는 없지. 괜히 기회를 헛되게 쓴 건 아닌가?” 여왕은 고개를 저으며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전 폐하께서 정말 로사 왕자님께 처벌을 내리시지 않을지 장담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왕자 폐하께서 저를 구해준 건 사실이기에 저도 왕자 폐하를 위해 무언가를 해야 할 것 같았습니다.” 소은은 조용히 말했다. “게다가 지금 왕자 폐하를 감금하시고 자유를 제한하고 계시지 않나요?”여왕은 의아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아니야. 난 단지 로사를 Y국으로 돌려보냈을 뿐이야.”“로사가 여기서 내 일을 여러모로 방해하긴 했지만, 우리 모자 사이가 더 악화되기를 바라지 않았다. 국내에서도 로사가 필요하니 Y국으로 돌려보낸 것뿐이다.” 여왕은 담담하게 말했다.“그런데 왜 왕자 폐하의 전화가 연결되지 않죠?” 소은은 잠시 멈칫했다. 단지 귀국했다면 국제전화를 받을 수 있을 텐데, 연락이 닿지 않았기에 여왕이 로사를 가둬놓았다고 오해할 수밖에 없었다.여왕은 깊은 숨을 내쉬며 말했다. “그 부분에 대해서는 나도 잘 모르겠군. 그날 내가 화가 났던 건 사실이지만, 곧바로 Y국으로 돌아가도록
“삼일이면 됩니다.” 소은은 여왕을 쳐다보며 작은 소리로 말했다.“삼일? 고작 삼일?” 여왕의 눈에는 믿기지 않는 놀라움이 서렸다. 그녀는 적어도 몇 달, 아니 최소한 몇 년은 걸릴 줄 알았다. 그러나 고작 삼일이라니, 그녀로서는 상상도 못 한 시간이었다.삼일쯤이야. 십 수년을 이렇게 버텨왔는데, 삼일쯤 더 기다린다고 달라질 게 뭐 있겠는가?“삼일 안에 정말 나아질 수 있는 건가? 내가 정말 다시 일어서서 걸을 수 있는 건가?” 여왕은 두 손으로 자신의 다리를 힘껏 눌렀지만 여전히 아무런 감각이 없었다. 그녀는 소은의 말을 쉽게 믿을 수가 없었다. 이 다리가 감각을 잃은지 너무 오래되어 치료할 수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동안 여왕은 여러 나라의 명의를 찾아 다녔지만, 그들은 단지 병의 악화를 늦출 수 있을 뿐 다리를 완전히 회복시키는 건 불가능하다고 했었다. 그러나 지금 소은은 그녀 앞에 서서 확신에 찬 얼굴로 가능하다고 말하고 있었다. 그녀는 속으로 자신도 모르게 그 말을 믿고 싶어졌다.“이전처럼 완벽하게 걸을 수 있을 거라고 장담할 순 없어요. 너무 오랫동안 움직이지 않아서 근육이 많이 위축됐거든요. 하지만 서서히 일어나서 조금씩 회복하는 것은 가능합니다.” 소은은 진지한 어조로 답했다.여왕은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정도라도 충분히 만족스러웠다. 젊었을 때처럼 완전히 회복되는 것을 기대하지 않았다. 그러나 만약 휠체어와 지팡이 없이 다시 일어설 수 있다면, 그 자체로도 그녀에겐 더할 나위 없는 희망이었다.“좋아. 삼일, 기다리겠네. 필요한 게 있나?” 여왕은 기분이 좋아져 말을 한층 부드럽게 했다.“임남...” 소은이 말을 꺼내자마자 여왕의 얼굴이 굳어졌다. 그녀는 곧바로 고개를 저으며 거절했다. “그건 안 돼. 그런 요구는 하지 마라.”“제가 말한 건 임남을 바로 풀어달라는 게 아닙니다. 그냥... 그 아이가 괜찮은지 알고 싶고, 가능하다면 아버지와 한 번 만날 기회를 주시면 좋겠습니다.”
“이 실험을 결정할 수 있는 사람은 저와 프레드 뿐이기 때문입니다.” 소은은 잠시 생각하다가 덧붙였다. “아니면 주효정을 믿으실 건가요?”“나는... 아무도 믿지 않아.” 여왕은 얼굴을 차갑게 굳히며 휠체어를 돌렸다.“여왕 폐하께서 이 실험에 집착하고 계시는 건 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이 전부인가요? 세상을 둘러보고 싶다거나, 짐을 내려놓고 잠시 쉬고 싶은 마음은 전혀 없으신가요? 수십 년간 왕좌에 오르셨지만, 정말로 아직도 그 삶이 좋으신가요? 언제나 긴장하며 위태로운 자리를 견디는 고단한 나날, 정말 아직도 벗어나고 싶지 않으신가요?” 소은은 여왕의 등을 쳐다보며 부드럽게 물었다.여왕은 아무 말 없이 자신의 무릎을 쓰다듬으며 고개를 살짝 떨구었다. 그녀는 시선을 다리로 내리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세상을 둘러본다? 나는... 걷는 게 어떤 느낌인지도 잊어버렸어.”여왕은 오랜 세월 동안 다리를 쓰지 않았고, 처음에는 억지로라도 일어설 수 있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상태는 악화되었고 이제는 아예 휠체어 없이는 움직일 수 없게 되었다. 그녀는 휠체어에 익숙해졌다고 생각했지만, 소은이 ‘세상을 둘러보라’는 말을 꺼내자 가슴이 아팠다.“만약... 폐하께서 다시 일어설 수 있다면요? 제가 다시 걷게 해드린다면요?” 소은은 조용히 여왕의 뒤에 서서 말했다.여왕은 잠시 멈칫하더니, 눈빛이 날카롭게 변하며 휠체어를 돌려 소은을 똑바로 쳐다보았다. “정말이냐?” 여왕의 눈에는 억누를 수 없는 희망과 깊은 의심이 뒤섞여 있었다.소은은 대답 대신 그녀의 시선을 천천히 여왕의 다리로 내리고, 천천히 다가가서 무릎을 꿇었다. 그리고 손을 뻗어 여왕의 무릎 위에 가볍게 손을 올렸다.여왕은 살짝 몸을 떨었다. 사실, 그녀의 다리는 거의 완전히 감각을 잃은 상태라서 소은의 손길도 느껴지지 않았지만, 그녀는 자신도 모르게 움츠러들었다. 아마도 너무나 간절히 다시 일어서고 싶기 때문이었을 것이다.소은은 아무 말 없이 여왕의
“맞아요, 임남 때문이기도 하지만, 폐하 때문이기도 합니다.” 소은은 주저하지 않고 대답했다. “제가 정말로 떠나버렸다면, 가장 초조해지는 사람은 사실 여왕 폐하 아닐까요?”여왕은 코웃음을 치며 차갑게 말했다. “내가 초조해질 이유가 뭐지? 어차피 내 손엔 네 약점이 있잖아. 너를 다시 잡아오는 것도 전혀 어려운 일이 아니고.”“약점이요? 임남 말씀이신가요?” 소은은 부드럽게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잊지 마세요, 임남이는 제 아들이 아닙니다. 저에게는 제 친자식이 셋이나 있어요. 만약 제가 마음을 단단히 먹고 임남을 포기해 제 아이들을 지키려 한다면, 그 약점이 과연 제게 약점이 맞을까요?”여왕이 입을 열기도 전에 소은은 다시 말을 이었다. “게다가, 그 아이에겐 목숨을 걸고서라도 구하려는 아버지가 있습니다. 만약 임상언이 폐하께 끝까지 맞서기로 결심한다면...” “폐하께서야 높은 자리에 있으니 이런 평범한 상인을 하찮게 여기실 수 있지만, 임상언 씨가 단순한 상인이 아니라는 걸 잊으시면 안 됩니다. 임상언 씨의 사업은 세계 곳곳에 뻗어 있어요. 임상언 씨가 목숨을 걸 각오가 되어 있다면 그 어떤 일도 할 수 있겠죠. 혹시라도 바깥에 소문이 퍼져 폐하와 Y국의 명망이 손상된다면, 곤란하지 않겠습니까?”“너...” 여왕은 화가 치밀어 올랐지만 반박할 말이 당장 떠오르지 않았다.여왕이 화가 난 것을 보고, 소은은 한결 차분하게 말을 이어갔다. “화내지 마세요. 제가 돌아온 건 폐하를 자극하려는 게 아닙니다. 함께 최선의 방향을 찾고자 돌아온 거예요. 사실 폐하께서 H국에 오신 일이 밝혀진 건 아니지만, 꽤 오랜 시간 H국에 머물고 계셨습니다. 정말로 H국이 이 사실을 모르고 있을 거라고 생각하세요?”여왕은 말없이 그녀를 쳐다보았다. “지금까지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건 폐하의 체면을 살려드린 겁니다. 그러나 폐하께서 이곳에서 계속 머무르시며 혹여 무리수를 두신다면, 얼마나 더 체류하실 수 있을까요? Y국도 계속해서
릭은 잠시 침묵을 지켰다. 여왕은 모니터에서 시선을 돌리며 담담히 말했다. “소은을 데려와. 어디 한번 무슨 변명을 할지 들어보자. 또 어떤 이야기를 꾸며낼지 궁금하네.” 여왕은 휠체어를 살짝 돌려 더 이상 모니터를 보지 않았다.“여왕 폐하?” 릭은 망설이다가 말했다. “한소은이 거짓말을 할 걸 아시면서도 굳이 왜...” 그러나 여왕은 그 말을 끝까지 듣지 않고 단호히 말했다. “듣고 싶어!” 이 한마디에 릭은 더 이상 말을 잇지 않았다. 그는 곧장 소은이 있는 방으로 발걸음을 옮겼다.소은이 정말로 잠이 들려고 하던 순간, 문 밖에서 인기척이 들렸다. 그녀는 곧바로 정신을 차리고 눈을 떴다. 눈을 뜨는 순간, 문이 열리면서 릭이 문 앞에 서 있었다. 그의 얼굴은 굳어 있었고,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여왕께서 한소은 씨를 만나고 싶어 하십니다.” 소은은 차분한 표정으로 릭을 쳐다보았다. 마치 모든 상황을 예견한 듯 고요하게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와 동시에 임상언은 소은보다 먼저 일어나 문으로 향했다. 그러나 그가 문에 도착하자마자 릭이 손을 들어 그의 앞을 막았다. “그쪽은 남아 계시죠.” “뭐? 우리 둘은 같이 온 거야!” 임상언은 소은을 돌아보며 그녀에게 눈짓으로 도움을 요청했다. 릭은 차가운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여왕 폐하께서 그쪽을 부르지 않았으니 여기 남으시죠.” 릭은 더 이상 임상언에게 말을 할 기회조차 주지 않았다.소은은 임상언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리며 부드럽게 말했다. “절 기다리고 있어요.” 임상언은 마음이 편치 않았지만, 억지로 마음을 다스리며 그녀가 릭과 함께 방을 나서는 것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조심해요.” 임상언은 소은을 향해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말했다.소은은 미소를 지어 그에게 답했고, 릭을 따라 여왕의 방으로 향했다. 익숙한 길을 따라 걷는 그녀는 곧 여왕의 방에 도착했다. 릭이 문을 두드리며 말했다. “여왕 폐하, 데려왔습니다
소은이 임상언을 데리고 대사관에 도착하자, 그곳에 있는 사람들은 눈에 띄게 당황했다.한 사람이 서둘러 소식을 알리러 가더니, 이내 주변 구석구석에서 누군가가 몰래 그들을 엿보는 기척이 느껴졌다. 곧이어, 소은이 잘 알고 있는 여왕의 측근 몇 명이 경계 어린 눈빛으로 다가와 그들을 안으로 안내했다. 안으로 들어가자마자 그들은 소은과 임상언의 몸을 샅샅이 검사하며 위험 물품을 소지하지 않았는지 확인했다. 철저한 검사가 끝난 후에야 비로소 경계가 풀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두 사람은 여왕을 만나지 못했고, 한적하고 깊숙한 방에 대기하도록 배정받았다. 오랜만에 돌아온 이곳은 소은에게 익숙하면서도 낯설게 느껴졌다. 익숙한 것은 이 장소였지만, 낯선 것은 지금의 마음가짐이었다. 예전에는 이곳이 싫고 불쾌하기만 했으며, 하루빨리 벗어나고 싶은 장소였다. 그러나 이번에는 임무와 사명을 가지고 돌아왔고, 그녀의 목표는 단순히 여기를 떠나는 것이 아닌, 중요한 일을 완수하고 무사히 돌아가는 것이었다.반면, 임상언은 눈에 띄게 불안해 보였다. 그는 두 손을 맞잡고 무릎 위에 놓은 채,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다리를 가볍게 떨고 있었다. 소은은 그의 초조함을 이해할 수 있었다. 임남을 생각하면 마음이 몹시 불안하고 조급해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여기까지 왔으니 임남을 반드시 볼 수 있을 거예요. 그러니 긴장 좀 풀어요.” 소은이 작은 소리로 말했다. 임상언은 그녀를 보며 고개를 끄덕이고, 발을 땅에 꾹 눌러 다리를 멈췄다. 겉으로는 조금 안정된 듯 보였지만, 그의 얼굴은 여전히 긴장감이 가득했고 미세하게 떨리는 얼굴 근육이 그의 불안한 마음을 보여주었다. 마음을 진정시키는 게 말처럼 쉽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소은은 더 이상 말을 꺼내지 않았다.두 사람은 한참을 기다렸지만, 여왕을 만나러 오라는 사람은커녕 상황을 확인하러 오는 사람조차 없었다. 긴장했던 임상언은 결국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대체 무슨 의도인 거죠? 왜 아직
“제발 부탁이에요. 안에서는 소은 씨 말만 따를게요. 소은 씨가 시키는 대로 다 할 테니까, 제발 절 데려가 주시면 안 돼요?” 임상언은 진심 어린 목소리로 소은에게 간청했다. 자존심은 이미 버린 지 오래였다. 아들을 만나고 싶은 간절한 마음이 그를 이 지경까지 이르게 했다. 소은이 반드시 돌아가겠다고 결심한 순간, 임상언은 이미 마음을 굳혔다. 자신이 함께 가는 것이 가장 안전한 방법이었다. “다른 사람들이 같이 가면 의심을 받거나 제지를 당할 수도 있어요. 하지만 전 아니에요.” 임상언은 계속 설득을 이어갔다. “임남이 그 안에 있다는 걸 모두 알고 있잖아요. 제가 아들을 만나고 구하려고 하는 건 당연한 일이에요. 그리고 아들을 위해서 제 목숨을 바치는 것도 이해될 수 있는 일이죠. 그러니 제가 가는 게 가장 올바른 선택이에요.” 긴 침묵 끝에, 소은이 입을 열었다. “임상언 씨 말이 맞아요. 전 동의합니다.” 소은은 말을 마치고 서진에게 시선을 돌렸다. 서진은 잠시 생각하더니 천천히 손을 들어 올리며 말했다. “저도 동의합니다.” 원청현은 테이블을 손가락으로 가볍게 두드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면, 나도 동의하지.” 잠시 침묵하던 진정기 역시 마침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동의합니다.” 마지막으로 원철수는 주변을 둘러보며 한숨을 내쉬고 손을 펼쳤다. “모두 동의했는데 내가 뭐라고 반대하겠어. 나도 찬성이야.” 사실 원철수의 의견은 크게 중요하지 않았지만, 그럼에도 임상언에게 지지를 표현하는 의미였다. 임상언은 눈시울이 붉어지며 고개를 끄덕였다. “정말 감사합니다. 모두들 고마워요.” “이게 뭔 감사할 일이라고. 어쨌든 안에 들어가면 절대 신중해야 해. 무슨 일이 있어도 감정에 휘둘리지 말고. 네 입으로 한 말 반드시 지켜!” 원철수는 그의 결심을 칭찬하면서도 걱정스러운 마음을 감추지 못했다. 원철수는 속으로 임상언의 결단에 감탄했다. 한 아이의 아버지로서 그는 분명 최선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