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에 김서진도 이해하지 못하다가 나중에야 그 뜻을 알아차렸다. 원래는 오이연이 질투를 한 것이지만 결국에는 두 사람이 알콩달콩 사랑싸움한 것이었다.서한의 얼굴에 손톱자국이 갈기갈기 났지만, 그는 은근히 즐기는 듯한 표정이었다.입으로는 그가 괜한 짓을 해 고생하는 거라 했지만, 김서진도 은근히 생각했다.그와 한소은이 이렇게 오랜 시간 남냐면서 한소은은 거의 질투를 한 적이 없었던 것 같았다.대부분이 아니라 한 번도 질투하지 않은 것 같다.서한이 자기 얼굴에 난 상처를 어루만지면서 자랑하는 듯한 표정으로 만족하고 있는 걸 보면 괜히 부러웠다,“이연씨의 마음에 내가 있다는 증거예요!”김서진은 그의 말을 듣고 생각했다.‘이렇게 말하면 은이 마음에 내가 없다는 건가? 그럴 리가!’두 사람이 이렇게 많은 비바람과 시련을 함께 겪었다. 그런데 한소은이 자기를 마음에 두지 않는다는 건 절대 믿을 수 없다.그럼에도 불구하고 뭔가 조금 모자란 듯한 느낌은 .방금, 김서진은 진짜 모기에 물린 자국으로 한소은에게 장난을 칠 생각이었다. 얼핏 봐서는 서한이 말했던 키스 마크와 비슷한 자국으로 한소은이 민감하게 반응해 주었으면 했다. 하지만 한소은은 단번에 모기에 물린 자국인 것을 알아보고 그가 다른 말을 할 수 없게 했다.‘하루 종일 오이연과 있으면서 왜 비슷한 생각은 못 하는 거지? 키스 마크일 거란 생각은 1도 하지 않았나 보군.’————보물을 얻은 한소은은 기쁨을 숨길 수 없었다. 그녀는 정원에서 한참이나 백목향을 가꾸다 아쉬운 마음으로 집에 들어갔다.아이의 방을 지날 때 그녀는 아들과 함께 놀고 있던 김서진을 발견하고 먼저 씻겠다며 방으로 돌아갔다.온몸에 흙을 묻히고 있으니, 아들을 안을 수가 없어 먼저 씻은 후 아들을 안기로 했다.그녀는 욕조에 따뜻한 물을 가득 받아 피로가 쌓인 몸을 물에 잠갔다. 그러고는 자기가 제작한 오일을 바르며 살살 뭉친 근육을 문질렀다. 어느새 오일의 향기가 욕실 가득 퍼져 한소은은 긴장했던 몸을 풀었다.그러다 백
“응? 있어, 아, 아니 없어! 그 사람은 왜 찾는데?”“……”“……”이런 상황에서 두 사람이 지금 뭘 하고 있는지 눈치채지 못한다면 정말 바보다.“흐흐…….”한소은은 헛기침을 두 번 하고는 급히 대답했다.“정말 미안해, 두 사람 오붓한 시간 보내고 있었을 텐데 내가 눈치 없게 전화 걸었네? 그럼 두 사람 하던 거 마저 해, 다음에 작업실에서 봐!”한소은은 말을 마치고는 재빨리 전화를 끊고 숨을 내쉬었다.직접 본 것도 아니고 그저 나지막한 숨소리와 오이연의 애매모호한 말을 듣고 상상했을 뿐인데 그것만으로도 얼굴이 빨개지는 것 같았다.두 손을 얼굴에 갖다 대니 얼굴이 화끈거렸다. 그제야 욕조의 물이 차가워진 거 같아 이제 그만 일어나야겠다고 생각했다.한소은은 급히 욕조에서 일어나 몸을 헹구고 목욕 타올을 두르고 욕실에서 나왔다.“어?!”방으로 들어가서 김서진이 침대에 누워 있는 모습을 보고 깜짝 놀라 소리를 질렀다. 그녀는 김서진이 벌써 방으로 돌아올 줄 생각지 못했다.“침실에서 남편을 본 게 그렇게 놀랄 일이에요?”그녀의 반응을 보고 김서진은 손에 들고 있던 물건을 내려놓고 그녀에게 말했다.“네, 아직인 준이와 놀고 있는 줄 알았어요. 벌써 지친 거예요?”한소은은 장난치듯 김서진에게 말했다. 그러고는 수건 한 장을 잡아당겨 머리카락의 물을 닦아 내기 시작했다.김서진도 손에 있던 물건을 내팽개치고 한소은에게 덮쳤다. 그는 작은 아내를 자기의 두 팔에 가두며 물었다.“누가 지쳤다는 거예요?!”“당신이 준이의 활력을 견디지 못해 지쳤다고요! 흐흐, 장난치지 마요, 간지러워!”김서진은 자기의 머리를 한소은의 어깨에 파묻으며 따뜻한 콧바람으로 그녀를 간지럽혔다.한소은 특유의 향기를 맡으며 김서진은 자기의 몸이 점점 달아오르고 있음을 느꼈다.하지만 이틀 전에 한번 했는데 지금 또 하면 한소은이 힘들까 봐 겨우 솟구치는 느낌을 억눌렀다. 그 대신 그녀를 조금 더 세게 끌어안으며 말했다.“다음 달 조금 덜 바빠지면, 그때 당신 옆에
“당신 모기에 물린 자국이 왜 이렇게 부었어요?”한소은은 말하면서 그의 목에 손을 갖다 대 자국을 꾹 눌러보았다.“모기가 문 자국이라고 왜 그렇게 확신해요? 혹시라도 …….”김서진은 쓴 하는 숨을 들이마시는 소리와 함께 말을 멈추었다.“혹시라도 뭐요?”한소은은 김서진의 자국에 대었던 손을 떼며 되물었다.“뭐 이상한 자국 같지 않아요? 혹은 이상한 데로 생각하지 않았어요?”그의 물음에 한소은은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그저 오늘 자기의 남편이 이상하다고 생각했다.‘무슨 말이 하고 싶어서 이렇게 뜸을 들이는 거지?’“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거예요?”그녀는 조금의 인내심도 없는지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그러자 김서진도 더 둘러 말하지 않고 그녀에게 바로 말했다.“자국이…… 키스 마크 같다는 생각이 들지 않아요?”“키스 마크?”한소은은 두 눈을 깜빡이며 그를 바라보았다. 그녀는 정말 그쪽으로 조금도 생각하지 않은 눈치였다.“그게 뭔데요?”김서진이 어이없어하는 표정을 짓자, 한소은은 그의 말의 뜻을 조금 알아차린 거 같기도 했다.“아, 키스 마크가 뭔지 알겠어요!”“그래요.”이 순간 김서진은 자기가 한 짓이 정말 바보 같다고 생각했다.방금 집으로 돌아왔을 때 그렇게 말했는데도 한소은은 알아차리지 못했고 지금도 그쪽으로 생각하지도 않았다.‘이런 아내를 두고 내가 지금 뭘 하는 거지? 서한처럼 그렇게 할퀴어야 만족할 건가?’한소은은 그를 매섭게 노려보았다. 그녀는 자기의 남편이 이런 장난을 하려던 것에 대해 웃기기도 했고 화가 나기도 했다.“됐어요, 그냥 해본 말이에요. 당신이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면 된 거죠.”김서진은 손을 저으며 어색한 기류를 날려 보내려 했다. 그러고는 침대로 가 누우려 했는데 한소은이 그를 잡아당겼다.그녀는 옆에 있던 거울을 가져와 그에게 건네며 말했다.“봐요!”“뭘요?”“자국을 보란 말이에요!”한소은은 거울을 그에게 더욱 가져다 대며 그가 자국을 볼 수 있게 해주었다.“이게 키스 마크로 보여요?
한소은은 겨우 웃음을 참으며 눈가의 눈물을 닦고 말했다.“당신도 참, 생각해 봐요. 나와 이연이 모두 향료와 약초를 연구하는 사람이에요. 평소에 약초를 많이 접촉하다 보면 모기에게 물리는 건 당연한 일이고요. 그런데 모기에게 물린 자국 하나 못 알아보겠어요? 키스 마크라니!”“그럼 오이연은 왜…….”“일부러 그랬단 말이에요?”김서진의 말에 한소은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지난달 즘이었나? 이연이가 내게 서한 씨 옆에 어떤 여자가 자꾸 들러붙는다는 말을 한 적이 있어요. 이연이가 예민해서 그런 건지 아니면 그 여자가 정말 선 넘는 짓을 했는지 모르겠지만 이연이가 화가 많이 났었어요! 아마 그 모기 자국은 이연이가 일부러 서한 씨 놀라게 하려고 그렇게 말한 거 일 거예요!”그제야 김서진은 모든 게 다 납득이 갔다.결국은 두 남자가 아무것도 모르고 자기들끼리 오해하고 비교하며 모기 자국으로 여자의 질투심을 유발할 수 있다고 생각했던 것이었다.‘하지만, 그렇다 해도…….’김서진은 바로 다른 문제는 발견했다.그는 화장대 앞에 앉아 마스크팩을 열심히 얼굴에 붙이는 한소은의 뒷모습을 보며 물었다.“그럼, 당신은 왜 질투하지 않는 거예요?”“내가 왜 질투해야 해요?”한소은은 고개를 들어 마스크팩을 더욱 밀착시키며 담담하게 되물었다.그녀의 말에 김서진은 자세히 생각해 보았다.자기의 주변에는 자기를 좋아하는 여자가 적지 않았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허우연은 정말 그를 가지고 싶은 생각에 어떤 미친 짓도 서슴지 않은 여자였다. 하지만 한소은은 이런 일로 질투한 적이 한 번도 없었던 것 같다.“그럼 내가 다른 여자에게…….”김서진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한소은이 그의 말을 끊으며 말했다.“두렵지 않아요!”그녀는 몸을 돌려 김서진을 바라보며 여전히 바쁘게 마스크팩을 붙이고 있었다. 두 눈과 입을 내놓은 얼굴이었지만 그녀의 눈빛만은 확고했다.“우리가 진짜로 서로에게 마음이 생긴 시간은 그렇게 길지 않아요. 다른 사람들처럼 오랜 시간을 만난 건 아니지
꾸짖음을 들은 이 교수도 둘러 말하지 않고 대놓고 그 사람에게 무안을 주었다.“임 선생님은 전문가가 아니니 모르는 게 당연해요! 이 실험은 사실 그렇게 어려운 게 아니에요. 다만, 실제 조작에서 난이도가 높아할 뿐이에요.”“게다가 보통 상품이라 해도 수천 번 수만 번의 실험을 거쳐야 성공할 수 있어요. 물론, 임 선생님처럼 투자만 할 줄 아는 사람은 실험실의 어려움을 이해하지 못할 거예요.”이 교수와 말하던 사람은 다름 아닌 바로 임상언이었다.그는 양복을 차려입고 편한 자세로 소파에 앉아 있었다. 손에는 불을 분이 시가를 집고 있었다.이 교수의 말을 듣던 임상언은 눈을 가늘게 뜨더니 시가의 재를 털어버리면서 말했다.“내가 잘못 기억한 게 아니라면, 방금 이 교수님께서 김씨 그룹이 투자를 철회했다고 한 거 같은데.”“우리 같은 투자사가 없다면 당신들이 아무리 대단한 실험을 한다 해도 이루어지지 못할 겁니다!”임상언은 조금도 에둘러 말하지 않고 이 교수 면박에 팩트를 날렸다. 지금 김씨 그룹이 투자를 철회했으니, 연구소의 자금이 끈긴 상태다. 만약 새로운 투자자가 나타나지 않는다면 실험을 계속 진행할 수 없다. 하지만 그들은 이 실험을 이대로 포기할 생각이 없었다.“당신…….”대놓고 면박을 당하니 이 교수는 체면이 서지 않아 화를 참지 못하고 그대로 표현하였다.“그만.”두 사람과 등을 마주하고 앉았던 보스 의자에 앉은 사람이 입을 열었다. 그의 목소리는 엄청 낮았고 심지어는 갈라져 있었다.“다들 살자고 함께 손을 잡은 게 아닙니까? 이런 무의미한 말다툼은 그만 하세요!”“임상언씨, 지금 연구소에는 당신의 투자가 필요해요. 당신이 제 발로 우리를 찾아왔다는 걸 잊지 말아요. 협력하겠다 했으면 성의를 보여야지. 물론, 연구소에 기부하라는 건 아니에요. 당신은 당신이 필요한 것을 얻고 우리는 우리가 하고자 하는 걸 실현하는 거죠. 이제, 모두 한배에 탄 거예요!”임상언은 미간을 살짝 찌푸렸지만, 그 사람의 말에 반박하지는 않았다.반면, 이
이 교수는 입술을 꽉 다물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그의 얼굴빛은 정말 보기 좋게 일그러져 있었다.“내가 알기론 한소은은 확실히 한의약 방면의 지식을 배운 적이 없어요. 다만, 내가 이 여자에 대한 이해를 놓고 보면 이 여자는 정말 똑똑한 사람이에요. 조향업을 종사하다 보니 향료와 식물 방면의 지식이 있을 거예요. 어쩌면 연구소에 있는 기간 동안 배운 것일지도 모르죠.”“당신이 뭘 안다고 그래요? 한의약은 의학 중에서도 넓고 심오한 부분이에요. 나도 수십 년을 배웠지만 아직 능통하다 할 수 없는데…….”“그만! 수십 년을 배우고도 그것밖에 못 하는 게 자랑할 만한 일인가요? 당신들의 실력이 너무 부족한 게 아니었다면 전혀 상관없는 사람을 불러서 이 연구를 계속하지도 않았을 거예요!”“보스, 한소은을 대신할 사람을 찾는 중이에요. 모두 국내에서 알아주는 일류 조향사들이고 해외에서도 물색하는 중이에요. 이참에…….”한소은이 프로젝트에서 손을 떼겠다고 마음을 먹었을 때 이 교수는 벌써 그녀를 대신할 수 있는 사람을 찾기 바빴다.그녀가 확정을 짓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이 교수는 국내외 유명한 조향사를 미리 연락해 두었다. 만약 그녀가 정말 그만둔다고 할 때 바로 그녀를 대체할 사람이 연구소로 올 수 있게 손도 써둔 상태다.하지만……“사람을 더 이상 바꾸는 건 안 돼요!”역시나 이 교수의 생각은 그 남자의 꾸지람을 들었다.“이 일을 알고 있는 사람이 많으면 많을수록 우리에겐 큰 리스크가 될 거예요.”이 프로젝트는 극비로 진행되고 있었다. 한소은은 물론이고 연구에 참여한 연구원들조차도 정확한 연구 목적을 알지 못했다.그들이 분담하는 일은 명확했다. 모두 각자에 맡겨진 일만 했기 때문에 이 연구 결과로 도대체 무엇을 만들려는지 아는 사람은 몇몇밖에 없었다. 물론, 그중에는 한소은이 포함되지 않았다.하지만, 지금 이런 상황에서 한소은을 대신할 사람을 들여온다는 건 비밀이 유출될 확률이 한층 더 높아진 것과 같다. 그 보스라는 사람이 한 말에도 일리
임상언은 그 자리에 앉아 고개를 빳빳이 들었다. 깨끗이 닦은 안경알에 빛이 반사되어 무섭도록 시퍼런 빛을 띠고 있었다.“이 교수님처럼 똑똑하신 분이 그것도 생각하지 못하시는 거예요? 그마저도 내가 가르쳐야 하나?”그는 잠시 멈칫하다 말을 이어갔다.“아니면 이 교수님은 이런 간단한 일도 홀로 해결하지 못하시는 건가요?”“당신…….”임상언이 두 번 세 번 그의 신경을 긁자, 이 교수는 더 이상 참지 못하고 화를 내려 했다.이때, 보스 의자에 앉은 사람이 입을 열었다. 그의 갈라진 목소리는 낮고도 듣기 거북했다. 하지만 왠지 모를 위압감이 맴돌았다.“그만, 두 사람 그만 싸워요!”“이 교수님, 임상언 씨가 한 말에 일리가 없지는 않아요. 조향사 하나도 남기지 못하는데 그 여자가 실험실의 일을 모두 까발려야 만족할 겁니까?”“그건 아니지만, 그래도…….”“더 이상 변명을 듣지 않겠습니다. 당신이 하지 못하겠다면 다른 사람에게 자리를 넘겨주세요!”그 남자의 말이 끝나자, 사무실에는 순간 조용해졌다.이 교수의 등줄기는 이미 식은땀으로 푹 젖은 지가 오래다.사실 그도 다른 사람에게 자리를 넘기라는 말이 무슨 뜻을 의미하는지 잘 알고 있다.그 남자는 실험실의 비밀이 절대 새어 나가선 안 된다고 명확하게 말했다. 자기가 알고 있는 게 한소은보다 많으니, 만약 정말 이 자리를 다른 사람에게 넘겨야 한다면 그때는 목숨을 잃는 날일 것이다.게다가 이 교수는 이 프로젝트에 집착이 남달랐기에 반드시 이 실험이 성공되길 바랐다.“아니요, 보스. 나보다 이 실험에 대해 더 잘 아는 사람은 없을 거예요, 반드시 잘 해낼 거고, 성공할게요!”이 교수는 실험에서 나가고 싶지 않다고 재삼 강조했다.“그럼, 다행이고요.”그 남자가 대답했다.“그 조향사에 관해서는 이 교수가 방법을 생각해 해결하세요. 자금 문제는…… 실험일이 바쁠 테니 이 교수는 먼저 가봐요.”그의 말은 이제 임상언과 할 말들은 이 교수가 들을 필요가 없다는 뜻이다.“네!”이 교수는 비처럼
그러나 백목향은 정말 매우 진귀했다. 자료만으로는 안심할 수 없다. 한소은은 종이와 필을 준비해 매일 백목향의 변화를 기록하기로 했다. 그녀는 자칫 조심하지 않아 어렵게 얻은 백목향이 이대로 죽어버릴까 노심초사했다.심지어 마음이 놓이지 않아 진가연에게 어디서 이 백목향을 구했는지 이것을 가꾸는 데에 어떤 경험이 있는지 물어볼까도 생각했었다.다만, 그녀가 진가연을 찾아가 물어보기도 전에 그녀의 집에 손님이 찾아왔다.오이연은 물건을 한 아름 안아 들고 왔다. 모두 준이에게 주는 장난감과 간식들이었다. 어린 녀석은 오이연을 보자마자 배시시 웃으며 그녀를 반겨 주었다.하지만, 그녀가 오늘 찾아온 건 준이와 놀아주려 온것이 아니다. 오이연은 급한 마음에 안았던 준이를 다시 내려놓고 얼굴에 묻은 아기의 침을 대충 닦으며 곧장 정원으로 달려가 진귀한 백목향을 보려고 했다.“정말 백목향이잖아!”한소은이 잘못 봤을 리가 없겠지만 직접 두 눈으로 보니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백목향은 오이연이 이런 반응을 보일 만큼 구하기 어려운 식물이다. 아직 작은 새싹이었지만 상태로 봤을 때 분명 최상품이었다.“이렇게 좋은 물건도 김서진 씨가 얻어준 거야?”오이연은 눈썹을 치켜올리며 옆에 있던 사과를 들어 한입 베어 물었다.그녀의 물음에 한소은은 고개를 저었다.“그 사람이 이런 걸 알 리가 없잖아!”“쳇! 싫은 척하기는! 전에 우리 작업실에서 사용했던 귀한 향료들, 어는 거 하나 서진 씨가 구해준 게 아닌 게 없었잖아. 그 사람이 세계 각지에서 언니를 위해 얻어 준 건데 어떤 게 귀한 것인지는 몰라도 언니에 대한 마음은 알아줘야지!”예전에 오이연은 한소은과 김서진 사이에서 한소은의 편을 들어줬다면 지금은 그녀를 “배신”하고 김서진의 편으로 돌아섰다.그녀가 그럴 만도 했다. 작업실에서 쓰는 설비와 여러 가지 재료들은 모두 김서진이 하나도 빠짐없이 준비해 준 것들이다. 세심한 정도를 따지면 오이연이 연신 칭찬할 정도였다. 물론, 그녀의 남편인 서한은 비교 대상이 되어 언
소은은 고개를 들어 눈물을 참으며 말했다. “한 가지 이상한 게 있어요.”“무슨 일이에요?” 임남을 달래던 임상언이 무심히 되물었다.“로사 왕자는 감금된 것이 아니라 그날 Y국으로 송환되었다고 들었는데, 그렇다면 왜 그동안 로사 왕자와 연락이 닿지 않았던 걸까요?” 소은의 말에 임상언은 잠시 생각하더니 말했다. “두 가지 가능성이 있겠죠. 신호가 나쁘거나 핸드폰을 확인하지 못했을 수도 있고, 로사 왕자가 저희 연락을 거부하고 있을 수도...”두 사람은 잠시 눈을 마주쳤다. 말은 없었지만, 둘 다 이미 답을 얻은 듯했다. 로사 왕자가 그토록 연락을 피하려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도 나름의 계획을 세우고 있는 건가?...3일 후. 소은은 마지막 침을 놓고 손을 거두었다. 그녀는 자리에서 일어나지 않고 여왕을 쳐다보며 말했다. “오늘 시술로 폐하의 다리에 감각이 돌아오실 겁니다. 하지만 일어서는 건 천천히 시도하셔야 합니다. 너무 서두르시면 안 돼요.”소은은 말을 마치고 갑자기 미소를 지었다.“무엇 때문에 웃는 거지?” 여왕은 여전히 자신의 다리를 어루만지며 물었다. 이미 이틀 전부터 약간의 감각이 돌아왔음을 느낀 터라, 소은의 말이 사실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소은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제가 쓸데없는 일을 하고 있는 게 아닌가 싶어서요. 사실 R10 실험을 고집하신다면 결국 폐하께서는 이 몸을 떠나게 되실 텐데, 제가 이 몸에 애쓰는 일이 무슨 의미가 있겠어요?”여왕은 눈을 가늘게 뜨며 물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계속한 거지?”“어쩌면, 폐하께서 마음을 바꾸실 지도 모르니까요.” 소은은 부드럽게 대답했다. “어쩌면 자신의 몸이 무엇보다 소중한 것이라는 걸 깨닫게 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거든요.”“우리 모두 이 세상에 올 때 두 손은 비어있지만, 이 몸만은 오로지 우리 자신의 것이죠. 몸마저 버리신다면, 그 영혼은 여전히 진짜 자신일 수 있을까요?”“그렇구나.” 여왕은 잠시 생각에 잠기더
소은은 조용히 몸을 일으키며 여왕을 쳐다보았다. “물론이죠.” 소은은 담담하게 답했다. 그 대답에는 원망이나 비난의 기색은 전혀 없었다.“그렇다면... 조금 아쉽네.” 여왕은 생각에 잠긴 듯 낮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얻는 것이 있으면, 잃는 것도 있기 마련입니다. 세상 모든 일은 균형을 맞추려 하죠. R10이 폐하께서 이루고자 하는 꿈이라면, 저는 그것을 막을 수 없어요. 다만, 그때가 되어 성공하든 실패하든, 저는 그 모습을 보지 못할 테니 부디 후회하지 않으시길 바랍니다.” 소은은 살짝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이고는 문 밖으로 나갔다.릭은 여전히 문 앞에서 대기 중이었다. 그녀와 여왕의 대화가 거의 다 들렸던 듯, 둘의 시선이 잠시 교차했다. 소은이 그를 지나쳐 나가자, 릭은 곧장 방으로 들어갔다.“여왕 폐하.” 릭은 여왕을 쳐다보며 입을 열었다. 그녀의 다리에 꽂힌 은침을 보자 릭의 눈빛이 굳어졌다. “이건...”“괜찮아. 곧 소은이가 와서 침을 빼줄 거야.” 여왕은 무심하게 손을 흔들며 말했다.릭은 여전히 불안한 눈빛으로 말했다. “폐하께서 너무 방심하시는 것 아닙니까? 만약 한소은이 폐하께...”“그럴 리 없다.” 여왕은 단호히 그의 말을 잘랐다.릭은 당황한 얼굴로 물었다. “설마 그 여자를 믿으시는 겁니까?”여왕은 대답 대신 잠시 침묵을 지켰다. 그녀도 릭의 질문이 아니었다면 자신이 소은을 믿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했을 것이다. 오랜 세월 누구도 쉽게 믿지 않겠다고 다짐했지만, 그녀는 소은을 의심하지 않았다. 심지어 은침에 독이 묻어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제가 가서 잡아오도록 하죠.”여왕이 생각에 잠기자 릭은 바로 뒤돌아섰다.“거기 서!”여왕은 결연히 말했다. “난 믿어.”릭은 한참을 침묵하며 여왕의 결정을 받아들였다....임상언은 아들을 다시 만날 수 있을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 비록 아들을 구하려는 결심을 굳혔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희망이 사라지는 듯했다.
소은은 허리춤에서 허리띠처럼 생긴 물건을 꺼내더니 조심스럽게 풀어내며, 그 안에 숨겨진 가느다란 은침을 꺼냈다.“이건...” 여왕은 깜짝 놀라며 소은을 쳐다봤다. 소은이가 은침을 항상 가지고 다닐 줄은 상상도 못 했던 것이다.“말해봐, 네 요구가 뭐지?” 여왕은 깊게 숨을 들이마시며 마음을 가다듬으려 애썼다. 너무 무리한 요구라면 거절하면 그만이다. 여왕은 절대 소은에게 휘둘리지 않겠다고 다짐했다.소은은 차분하게 말했다. “제가 여기서 나올 수 있었던 건 로사 왕자님 덕분입니다. 그러니, 왕자님을 책망하지 않으셨으면 합니다.”“그게 다야?” 여왕은 의아해하며 물었다. 소은이 여기까지 와서 자신과 조건을 따지는데, 결국 요구한 게 단지 로사를 처벌하지 말라는 거라니. 자신이 잘못 들은 건가 싶었다.“로사는 내 아들이다. 내가 정말 내 아들에게 손을 댈 리는 없지. 괜히 기회를 헛되게 쓴 건 아닌가?” 여왕은 고개를 저으며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전 폐하께서 정말 로사 왕자님께 처벌을 내리시지 않을지 장담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왕자 폐하께서 저를 구해준 건 사실이기에 저도 왕자 폐하를 위해 무언가를 해야 할 것 같았습니다.” 소은은 조용히 말했다. “게다가 지금 왕자 폐하를 감금하시고 자유를 제한하고 계시지 않나요?”여왕은 의아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아니야. 난 단지 로사를 Y국으로 돌려보냈을 뿐이야.”“로사가 여기서 내 일을 여러모로 방해하긴 했지만, 우리 모자 사이가 더 악화되기를 바라지 않았다. 국내에서도 로사가 필요하니 Y국으로 돌려보낸 것뿐이다.” 여왕은 담담하게 말했다.“그런데 왜 왕자 폐하의 전화가 연결되지 않죠?” 소은은 잠시 멈칫했다. 단지 귀국했다면 국제전화를 받을 수 있을 텐데, 연락이 닿지 않았기에 여왕이 로사를 가둬놓았다고 오해할 수밖에 없었다.여왕은 깊은 숨을 내쉬며 말했다. “그 부분에 대해서는 나도 잘 모르겠군. 그날 내가 화가 났던 건 사실이지만, 곧바로 Y국으로 돌아가도록
“삼일이면 됩니다.” 소은은 여왕을 쳐다보며 작은 소리로 말했다.“삼일? 고작 삼일?” 여왕의 눈에는 믿기지 않는 놀라움이 서렸다. 그녀는 적어도 몇 달, 아니 최소한 몇 년은 걸릴 줄 알았다. 그러나 고작 삼일이라니, 그녀로서는 상상도 못 한 시간이었다.삼일쯤이야. 십 수년을 이렇게 버텨왔는데, 삼일쯤 더 기다린다고 달라질 게 뭐 있겠는가?“삼일 안에 정말 나아질 수 있는 건가? 내가 정말 다시 일어서서 걸을 수 있는 건가?” 여왕은 두 손으로 자신의 다리를 힘껏 눌렀지만 여전히 아무런 감각이 없었다. 그녀는 소은의 말을 쉽게 믿을 수가 없었다. 이 다리가 감각을 잃은지 너무 오래되어 치료할 수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동안 여왕은 여러 나라의 명의를 찾아 다녔지만, 그들은 단지 병의 악화를 늦출 수 있을 뿐 다리를 완전히 회복시키는 건 불가능하다고 했었다. 그러나 지금 소은은 그녀 앞에 서서 확신에 찬 얼굴로 가능하다고 말하고 있었다. 그녀는 속으로 자신도 모르게 그 말을 믿고 싶어졌다.“이전처럼 완벽하게 걸을 수 있을 거라고 장담할 순 없어요. 너무 오랫동안 움직이지 않아서 근육이 많이 위축됐거든요. 하지만 서서히 일어나서 조금씩 회복하는 것은 가능합니다.” 소은은 진지한 어조로 답했다.여왕은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정도라도 충분히 만족스러웠다. 젊었을 때처럼 완전히 회복되는 것을 기대하지 않았다. 그러나 만약 휠체어와 지팡이 없이 다시 일어설 수 있다면, 그 자체로도 그녀에겐 더할 나위 없는 희망이었다.“좋아. 삼일, 기다리겠네. 필요한 게 있나?” 여왕은 기분이 좋아져 말을 한층 부드럽게 했다.“임남...” 소은이 말을 꺼내자마자 여왕의 얼굴이 굳어졌다. 그녀는 곧바로 고개를 저으며 거절했다. “그건 안 돼. 그런 요구는 하지 마라.”“제가 말한 건 임남을 바로 풀어달라는 게 아닙니다. 그냥... 그 아이가 괜찮은지 알고 싶고, 가능하다면 아버지와 한 번 만날 기회를 주시면 좋겠습니다.”
“이 실험을 결정할 수 있는 사람은 저와 프레드 뿐이기 때문입니다.” 소은은 잠시 생각하다가 덧붙였다. “아니면 주효정을 믿으실 건가요?”“나는... 아무도 믿지 않아.” 여왕은 얼굴을 차갑게 굳히며 휠체어를 돌렸다.“여왕 폐하께서 이 실험에 집착하고 계시는 건 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이 전부인가요? 세상을 둘러보고 싶다거나, 짐을 내려놓고 잠시 쉬고 싶은 마음은 전혀 없으신가요? 수십 년간 왕좌에 오르셨지만, 정말로 아직도 그 삶이 좋으신가요? 언제나 긴장하며 위태로운 자리를 견디는 고단한 나날, 정말 아직도 벗어나고 싶지 않으신가요?” 소은은 여왕의 등을 쳐다보며 부드럽게 물었다.여왕은 아무 말 없이 자신의 무릎을 쓰다듬으며 고개를 살짝 떨구었다. 그녀는 시선을 다리로 내리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세상을 둘러본다? 나는... 걷는 게 어떤 느낌인지도 잊어버렸어.”여왕은 오랜 세월 동안 다리를 쓰지 않았고, 처음에는 억지로라도 일어설 수 있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상태는 악화되었고 이제는 아예 휠체어 없이는 움직일 수 없게 되었다. 그녀는 휠체어에 익숙해졌다고 생각했지만, 소은이 ‘세상을 둘러보라’는 말을 꺼내자 가슴이 아팠다.“만약... 폐하께서 다시 일어설 수 있다면요? 제가 다시 걷게 해드린다면요?” 소은은 조용히 여왕의 뒤에 서서 말했다.여왕은 잠시 멈칫하더니, 눈빛이 날카롭게 변하며 휠체어를 돌려 소은을 똑바로 쳐다보았다. “정말이냐?” 여왕의 눈에는 억누를 수 없는 희망과 깊은 의심이 뒤섞여 있었다.소은은 대답 대신 그녀의 시선을 천천히 여왕의 다리로 내리고, 천천히 다가가서 무릎을 꿇었다. 그리고 손을 뻗어 여왕의 무릎 위에 가볍게 손을 올렸다.여왕은 살짝 몸을 떨었다. 사실, 그녀의 다리는 거의 완전히 감각을 잃은 상태라서 소은의 손길도 느껴지지 않았지만, 그녀는 자신도 모르게 움츠러들었다. 아마도 너무나 간절히 다시 일어서고 싶기 때문이었을 것이다.소은은 아무 말 없이 여왕의
“맞아요, 임남 때문이기도 하지만, 폐하 때문이기도 합니다.” 소은은 주저하지 않고 대답했다. “제가 정말로 떠나버렸다면, 가장 초조해지는 사람은 사실 여왕 폐하 아닐까요?”여왕은 코웃음을 치며 차갑게 말했다. “내가 초조해질 이유가 뭐지? 어차피 내 손엔 네 약점이 있잖아. 너를 다시 잡아오는 것도 전혀 어려운 일이 아니고.”“약점이요? 임남 말씀이신가요?” 소은은 부드럽게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잊지 마세요, 임남이는 제 아들이 아닙니다. 저에게는 제 친자식이 셋이나 있어요. 만약 제가 마음을 단단히 먹고 임남을 포기해 제 아이들을 지키려 한다면, 그 약점이 과연 제게 약점이 맞을까요?”여왕이 입을 열기도 전에 소은은 다시 말을 이었다. “게다가, 그 아이에겐 목숨을 걸고서라도 구하려는 아버지가 있습니다. 만약 임상언이 폐하께 끝까지 맞서기로 결심한다면...” “폐하께서야 높은 자리에 있으니 이런 평범한 상인을 하찮게 여기실 수 있지만, 임상언 씨가 단순한 상인이 아니라는 걸 잊으시면 안 됩니다. 임상언 씨의 사업은 세계 곳곳에 뻗어 있어요. 임상언 씨가 목숨을 걸 각오가 되어 있다면 그 어떤 일도 할 수 있겠죠. 혹시라도 바깥에 소문이 퍼져 폐하와 Y국의 명망이 손상된다면, 곤란하지 않겠습니까?”“너...” 여왕은 화가 치밀어 올랐지만 반박할 말이 당장 떠오르지 않았다.여왕이 화가 난 것을 보고, 소은은 한결 차분하게 말을 이어갔다. “화내지 마세요. 제가 돌아온 건 폐하를 자극하려는 게 아닙니다. 함께 최선의 방향을 찾고자 돌아온 거예요. 사실 폐하께서 H국에 오신 일이 밝혀진 건 아니지만, 꽤 오랜 시간 H국에 머물고 계셨습니다. 정말로 H국이 이 사실을 모르고 있을 거라고 생각하세요?”여왕은 말없이 그녀를 쳐다보았다. “지금까지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건 폐하의 체면을 살려드린 겁니다. 그러나 폐하께서 이곳에서 계속 머무르시며 혹여 무리수를 두신다면, 얼마나 더 체류하실 수 있을까요? Y국도 계속해서
릭은 잠시 침묵을 지켰다. 여왕은 모니터에서 시선을 돌리며 담담히 말했다. “소은을 데려와. 어디 한번 무슨 변명을 할지 들어보자. 또 어떤 이야기를 꾸며낼지 궁금하네.” 여왕은 휠체어를 살짝 돌려 더 이상 모니터를 보지 않았다.“여왕 폐하?” 릭은 망설이다가 말했다. “한소은이 거짓말을 할 걸 아시면서도 굳이 왜...” 그러나 여왕은 그 말을 끝까지 듣지 않고 단호히 말했다. “듣고 싶어!” 이 한마디에 릭은 더 이상 말을 잇지 않았다. 그는 곧장 소은이 있는 방으로 발걸음을 옮겼다.소은이 정말로 잠이 들려고 하던 순간, 문 밖에서 인기척이 들렸다. 그녀는 곧바로 정신을 차리고 눈을 떴다. 눈을 뜨는 순간, 문이 열리면서 릭이 문 앞에 서 있었다. 그의 얼굴은 굳어 있었고,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여왕께서 한소은 씨를 만나고 싶어 하십니다.” 소은은 차분한 표정으로 릭을 쳐다보았다. 마치 모든 상황을 예견한 듯 고요하게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와 동시에 임상언은 소은보다 먼저 일어나 문으로 향했다. 그러나 그가 문에 도착하자마자 릭이 손을 들어 그의 앞을 막았다. “그쪽은 남아 계시죠.” “뭐? 우리 둘은 같이 온 거야!” 임상언은 소은을 돌아보며 그녀에게 눈짓으로 도움을 요청했다. 릭은 차가운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여왕 폐하께서 그쪽을 부르지 않았으니 여기 남으시죠.” 릭은 더 이상 임상언에게 말을 할 기회조차 주지 않았다.소은은 임상언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리며 부드럽게 말했다. “절 기다리고 있어요.” 임상언은 마음이 편치 않았지만, 억지로 마음을 다스리며 그녀가 릭과 함께 방을 나서는 것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조심해요.” 임상언은 소은을 향해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말했다.소은은 미소를 지어 그에게 답했고, 릭을 따라 여왕의 방으로 향했다. 익숙한 길을 따라 걷는 그녀는 곧 여왕의 방에 도착했다. 릭이 문을 두드리며 말했다. “여왕 폐하, 데려왔습니다
소은이 임상언을 데리고 대사관에 도착하자, 그곳에 있는 사람들은 눈에 띄게 당황했다.한 사람이 서둘러 소식을 알리러 가더니, 이내 주변 구석구석에서 누군가가 몰래 그들을 엿보는 기척이 느껴졌다. 곧이어, 소은이 잘 알고 있는 여왕의 측근 몇 명이 경계 어린 눈빛으로 다가와 그들을 안으로 안내했다. 안으로 들어가자마자 그들은 소은과 임상언의 몸을 샅샅이 검사하며 위험 물품을 소지하지 않았는지 확인했다. 철저한 검사가 끝난 후에야 비로소 경계가 풀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두 사람은 여왕을 만나지 못했고, 한적하고 깊숙한 방에 대기하도록 배정받았다. 오랜만에 돌아온 이곳은 소은에게 익숙하면서도 낯설게 느껴졌다. 익숙한 것은 이 장소였지만, 낯선 것은 지금의 마음가짐이었다. 예전에는 이곳이 싫고 불쾌하기만 했으며, 하루빨리 벗어나고 싶은 장소였다. 그러나 이번에는 임무와 사명을 가지고 돌아왔고, 그녀의 목표는 단순히 여기를 떠나는 것이 아닌, 중요한 일을 완수하고 무사히 돌아가는 것이었다.반면, 임상언은 눈에 띄게 불안해 보였다. 그는 두 손을 맞잡고 무릎 위에 놓은 채,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다리를 가볍게 떨고 있었다. 소은은 그의 초조함을 이해할 수 있었다. 임남을 생각하면 마음이 몹시 불안하고 조급해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여기까지 왔으니 임남을 반드시 볼 수 있을 거예요. 그러니 긴장 좀 풀어요.” 소은이 작은 소리로 말했다. 임상언은 그녀를 보며 고개를 끄덕이고, 발을 땅에 꾹 눌러 다리를 멈췄다. 겉으로는 조금 안정된 듯 보였지만, 그의 얼굴은 여전히 긴장감이 가득했고 미세하게 떨리는 얼굴 근육이 그의 불안한 마음을 보여주었다. 마음을 진정시키는 게 말처럼 쉽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소은은 더 이상 말을 꺼내지 않았다.두 사람은 한참을 기다렸지만, 여왕을 만나러 오라는 사람은커녕 상황을 확인하러 오는 사람조차 없었다. 긴장했던 임상언은 결국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대체 무슨 의도인 거죠? 왜 아직
“제발 부탁이에요. 안에서는 소은 씨 말만 따를게요. 소은 씨가 시키는 대로 다 할 테니까, 제발 절 데려가 주시면 안 돼요?” 임상언은 진심 어린 목소리로 소은에게 간청했다. 자존심은 이미 버린 지 오래였다. 아들을 만나고 싶은 간절한 마음이 그를 이 지경까지 이르게 했다. 소은이 반드시 돌아가겠다고 결심한 순간, 임상언은 이미 마음을 굳혔다. 자신이 함께 가는 것이 가장 안전한 방법이었다. “다른 사람들이 같이 가면 의심을 받거나 제지를 당할 수도 있어요. 하지만 전 아니에요.” 임상언은 계속 설득을 이어갔다. “임남이 그 안에 있다는 걸 모두 알고 있잖아요. 제가 아들을 만나고 구하려고 하는 건 당연한 일이에요. 그리고 아들을 위해서 제 목숨을 바치는 것도 이해될 수 있는 일이죠. 그러니 제가 가는 게 가장 올바른 선택이에요.” 긴 침묵 끝에, 소은이 입을 열었다. “임상언 씨 말이 맞아요. 전 동의합니다.” 소은은 말을 마치고 서진에게 시선을 돌렸다. 서진은 잠시 생각하더니 천천히 손을 들어 올리며 말했다. “저도 동의합니다.” 원청현은 테이블을 손가락으로 가볍게 두드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면, 나도 동의하지.” 잠시 침묵하던 진정기 역시 마침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동의합니다.” 마지막으로 원철수는 주변을 둘러보며 한숨을 내쉬고 손을 펼쳤다. “모두 동의했는데 내가 뭐라고 반대하겠어. 나도 찬성이야.” 사실 원철수의 의견은 크게 중요하지 않았지만, 그럼에도 임상언에게 지지를 표현하는 의미였다. 임상언은 눈시울이 붉어지며 고개를 끄덕였다. “정말 감사합니다. 모두들 고마워요.” “이게 뭔 감사할 일이라고. 어쨌든 안에 들어가면 절대 신중해야 해. 무슨 일이 있어도 감정에 휘둘리지 말고. 네 입으로 한 말 반드시 지켜!” 원철수는 그의 결심을 칭찬하면서도 걱정스러운 마음을 감추지 못했다. 원철수는 속으로 임상언의 결단에 감탄했다. 한 아이의 아버지로서 그는 분명 최선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