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있으면 진부장 딸의 생일이라고 초청하던 김서진의 말이 생각났다.그때 한소은은 잘 알지도 못하는 소녀의 생일에 임신부인 자기가 가서 뭘 하겠냐고 웃으며 말했었다.웃으면서 한 말이기에 한 순간에 떠올리지 못하는것이 당연했다. 확실히 큰 인물이네!하지만 보잘것 없는 판매원이 이름을 빌려 남을 위협할 정도까지는 안된다.“아 그래? 근데 그게 나와 무슨 상관이 있지?”“사모님.......”“난 단지 이 치마는 너희들이 나에게 추천해서 입어 봤고 마음에 들고 그래서 사려는 찰나에 너희들이 안 팔겠다고 한것만 알아. 그렇지?”그녀는 핸드폰을 꺼내며 계속하여 말했다.“틀린게 없다면 우선 너네 지배인에게 물어야 겠어, 그래도 안 되면 더 위의 사람을 찾을수 밖에 없겠지. 이게 너네들의 독특한 규칙인거지?”판매원의 얼굴은 파랗게 질렸다.이 눈앞에 임신부는 대체 어떤 사람이기에 진부장의 이름을 듣고도 놀라지 않는거지? 진부장을 노엽힌 후과가 두렵지 않은가?옆의 판매원은 한번 냉대를 받은 적이 있었던지라 더 끼어 들지 않고 눈빛으로 말했다.“어떡해 이 일이 위에 알려 지면 우린 끝장이야.”한소은도 이렇게 사람을 난처하게 만들고 싶지는 않았다. 하지만 생각해 볼수록 열 받았다. 처음에는 자기를 대하는 태도가 맘에 안들었고 후에는 다른 사람의 이름을 빌려 자기를 위협했으니 이런 애들은 좀 혼내줄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한소은이 막 전화를 하려는 순간 판매원이 말했다.“사모님, 이 치마를 확실히 구매하시겠다는거죠?”옆에 있던 판매원이 놀란 눈으로 그녀를 바라 보았다.“내 말을 계속 못 알아 들은거야?”“그럼 이쪽으로 와서 결제하시죠.”판매원이 공손하게 허리 굽혀 말한다.옆에 있던 동료가 작은 소리로 말했다.“너 미쳤니? 진아가씨가 내일 와서 가져가겠다고 했느데 그에게는 어떻게 말하려고? ”그 말에 개의치 않고 판매원은 한소은의 블랙 골드 카드를 받아 쥐고 결제 하면서 물었다.“다시 한번 입어보시겠습니까?”“아니!”치마는 보기에 퍽 넓어
6시 반이 아직 안 됬지만 연회장엔 벌써 시끌벅적했다.모두들이 업계교류를 절실히 원하기 때문이 아니라 오늘 원 어르신의 제자가 왔기 때문이다.원 어르신은 한의약 방면에 태산북두라 할 수 있으며 평생 받은 제자 수는 5명을 넘지 않을 정도로 엄격했다. 하지만 몇 년 전 갑자기 제자 한 명을 더 받았으며 대외에는 마지막 제자로 알렸다.그 이후 더이상 제자를 받지 않을 것이여 원 어르신의 마지막 제자가 될 수 있었던 그 어린 제자는 당연히 사람들의 관심을 끌었다.사람들은 어떤 사람이 이런 영광을 누릴 수 있는지 궁금하였고, 무엇보다 그 어린 제자의 나이가 그리 많지 않지만, 원 어르신의 인정을 받을 수 있고 또한 외부에 알려지지 않는 것은 신비감이 충분했다.다만 이곳에 온 사람들은 모두 지인들이고, 서로 너무 잘 알고 있는 사이이니, 이 중에 당연히 원 어르신의 제자는 없을 것이다. 그렇지 않았다면 진작에 알려졌을 것이지 어디에 추측이 필요하겠는가.한소은은 벌써 연회장에 도착했다.그녀는 떠들썩한 것을 좋아하지 않아 조용한 곳을 찾아 과자와 음료수를 즐기면서 매우 여유로웠다.어르신께서 굳이 참석하라 하지 않았으면, 또 연구소 사람들도 오늘 참석할 것이고, 겸사겸사 다른 견해를 듣고 싶었으며, 요즘 '리딩쇼'라는 프로젝트에 어떤 영감을 얻기 위해서가 아니였다면 그녀는 아예 오지 않았을 것이다.차라리 집에서 아들과 노는게 더 재밌을 것이라고 생각하며 한소은은 하품했다.어쩌면 그녀가 너무 조용했을 수도 있고, 앉아 있는 곳이 너무 구석진 곳일 수도 있어서 그런지 아무도 그녀를 알아차리지 못하였고 오히려 발자국 소리가 그녀 쪽으로 다가왔다.한소은이 일어나 자리를 옮겨야 할지, 아니면 여기 계속 앉아 있어야 할지 망설이고 있을 때 그 발자국 소리가 멈추고 한 여자가 입을 열었다.“어르신, 원 어르신의 마지막 제가가 과연 원철수가 맞는지 사실대로 말씀해 주세요!”그 여자는 목소리를 애써 낮췄지만 초조해 하는 것이 분명했다.한소은은 눈썹 끝을 고르고 다시
하지만 상관없다. 한소은은 10분만 더 기다려 보고 만약 그때까지 오지 않으면 그냥 나갈 생각이었다.“주 사모님의 말씀에 일리가 있지만 제가 보기에는 그래도 너무 집착하지 않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어르신은 그녀의 어깨를 두드리며 담담하게 말했다.“어르신은 제 마음을 잘 모르실 겁니다, 진가연이 저한테는 조카라지만, 저는 정말로 친딸처럼 아꼈습니다. 원 어르신이 은퇴하셔서 그 젊은이를 꼭 찾아야 합니다. 에휴…….”서고플게 긴 한숨을 쉬었다.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진 아씨는 착한 아이라서 잘될 겁니다.”이 말을 하자 발소리가 점점 멀어져 갔다. 아마 여기에 떠날 것이다.한소은은 다시 한번 시간을 확인하고 떠날 준비를 하였다.“너 엿듣고 있었어?”이때, 톤은 높지는 않지만 날카로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주 불친절한 말투였다.“......”한소은은 고개를 돌려 목과 손목에 황금으로 만든 액세서리를 찬 귀부인을 보았다.하지만 이 얼굴은 방금 전 들린 초조한 목소리와 어울리지 않았다. “제가 먼저 왔는데요.”한소은은 탁자위의 케익과 음료수를 가리키며 말했다. 그들이 자기옆자리를 찾아서 앉아 귓속말했다는 의미이다.솔직히 그들의 대화 내용에는 뭐 별거가 없었다. 그냥 원 어르신의 제자와 관한 이야기였다."그쪽은 어느 가문 사람이야?”그 여인은 눈을 반짝이며 한소은을 한 번 훑어본 후 거만한 어투로 물었다. 오늘 연회의 초대장을 받은 사람은 모두 한의학계의 사람들이며 비록 요구하는 조건이 높지 않지만 거의 다 유명한 가문의 출신이었다.“……한 씨 가문인데요.”한소은은 대답했다.솔직히 한소은의 초대장은 연구소 쪽에서 준 것이다, 비록 유명한 가문 출신은 아니지만 성이 한 씨면 한 씨 가문이라고 해도 틀린 것은 아니었다.“한 씨 가문?”여자는 눈살을 찌푸리며 생각에 잠겼다.“들은 적 없는데!”한의학계에서 유명한 사람은 몇명 밖에 없었고 원 어르신 빼고는 다 잘 알고 있다.근데 그중에서 성이 한 씨인 사람을 들어본
걸어들어온 사람은 초승달 마냥 희색의 중식 긴 셔츠를 입고 있었다. 나이는 그리 많아 보이진 않았지만, 문학적인 향기가 물씬 풍기며 고급스러운 기를 내뿜고 있었다.그가 방 안으로 들어서자, 방 안의 사람들의 시선이 그에게로 집중되었다. 그를 알아본 사람들은 버선발로 마중 나가며 친근하게 그의 그를 불렀다.“원 선생님, 오셨어요?”“정말 오래 기다렸습니다!”“원 선생님, 이번에 새로 연구에 돌입한 프로젝트가 매우 전망성이 있다거나 들었습니다! 오늘 저희와 함께 토론해 보실 생각입니까?”“원 선생님, 오늘 혼자 오셨습니까? 사부님은…… 안 오셨습니까?”모두 전에 주 부인이 너무 소심했다고 생각했다. 사실 이 바닥에서 디른 사람은 알고 나만 모르는 그런 소문은 존재하지 않는다. 원 선생님에 관한 소식은 이미 널리 퍼진지가 오래다.암암리에서는 원철수가 바로 원 어르신이 보물처럼 아끼는 마지막 제자라는 걸 확신했다.두 사람 모두 원씨 성을 가진 걸 보면 분명 친척 관계거나 무슨 관계가 있을 게 뻔했다. 그렇지 않고선 이렇게 젊은 사람을 마지막 제자로 들일 이유가 없다. 게다가 원 어르신이 원철수를 얼마나 아끼는지 그가 자기의 제자라는 사실을 아무에게도 알리지 않았다. 심지어는 가장 친근한 친구들도 모를 정도였다.젊은이는 그 자리에 멈춰서서 자기에게 말을 거는 사람들을 바라보며 부드럽게 미소를 지었다.“선생님은 학교에서 연구하고 계세요. 이런 자리는 잘 참석하지 않으세요. 그래서 제가 대신 온 거고요.”그가 말하는 ‘선생님’은 사람들이 생각하는 그 분이 아니라 학교에서 연구를 도와주는 사람이라는 걸 알지만 그 사람들의 귀에는 일부러 그분의 이름을 입에 담기 꺼려 둘러 말하는 것으로 생각했다.그들은 원 철수가 이토록 그분의 이름을 본인입에 담기 꺼리는 이유가 정말 원 어르신의 마지막 제자라는 걸 설명한다!이 바닥은 원 어르신에 대한 일종의 알 수 없는 숭배가 존재한다. 단지 그의 경력과 신분뿐만 아니라 원 어르신이 젊었을 적에 이름을 날린 것과 뛰어
그러나 방금 그를 유심히 살펴본 결과, 절대 연구에 집중하면 두 귀를 닫고 어떤 일에도 신경 쓰지 않는 사람은 아닌 것 같아 보였다.그렇다는 건 봤으면서도 외면했다는 뜻이다. 분명 일부러 그녀를 추가하지 않은 것이다.추가하든 하지 않던 모두 개인의 자유지만, 소통하겠다고 하고선 가장 효율이 있는 소통 방법을 거절하다니, 한소은은 원철수가 정말 모순적인 사람이라고 생각했다.자기가 일부러 한소은의 연락을 추가하지 않았다는 게 들통나자 원철수는 2초 동안 멈칫하더니 곧바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난 얼굴 보면서 얘기하는 걸 더 좋아해요. 핸드폰으로 연락하는 것도 편리하지만, 상대방의 표정을 볼 수 없으니, 오해가 생기기 쉽거든요.”그가 내놓은 이유는 의외로 참신했다.“그건 중요하지 않아요. 한소은 씨는 정말 이 프로젝트를 중단할 생각인가요?”원 철수는 이글거리는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보며 엄숙하게 말했다.“아직 고민하는 중이에요. 원 선생님, 지금 날 타이르려 하는 건가요?”한소은은 고개를 들어 자기 앞에 서 있는 남자를 바라보았다. 원철수의 키는 정말 컸다. 자기의 키가 작은 편이 아니지만 그의 앞에 서니 정말 앙증맞아 보였다.평소에 김서진을 바라보는 게 습관 되어서인지 익숙하지 않은 높이의 사람을 바라보려니 목이 시큰거렸다.그녀는 연구 프로젝트에 대해 딱 한 번만 얘기했었다. 만약 프로젝트의 구체적인 내부 상황과 연구 목적을 알려주지 않는다면 더 이상 연구를 할 수 없다고 말했었다. 그러자 연구소 측에서는 그녀가 연구를 멈출까 봐 몇 번이나 그녀를 타일렀다.그래도 한소은이 마음을 바꾸지 않자, 이번에는 원철수보고 그녀를 타이르라고 했나 보다.하지만 그의 대답은 한소은의 예상을 벗어났다.“아니요! 더 고민하지 말고 프로젝트 중단하세요!”“…….”이건 연구소에서 처음으로 그녀에게 프로젝트를 중단하라고 한 사람이다. 방금까지만 해도 재미가 없어 잠이 쏟아졌는데 원철수의 말을 듣고 나니 그녀의 흥미를 불러일으켰다.“개인적으로 이 프로젝트를
방금 그가 이 말을 하기 전까지 한소은은 화가 나지 않았는데, 마지막 한마디는 한소은을 조금 화나게 했다.‘여자가 해야 할 일? 이 사람 눈에는 여자는 집에서 아이를 낳고 남편의 내조를 하는 게 여자가 하는 일이지, 연구나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하는 건 안 된다는 건가?’처음 그가 조롱하는 말투로 말했을 때 그저 자기에 대한 편견으로 인한 것으로 생각했지만, 지금은 그렇게 간단한 일이 아니라 성차별하는 것이다!한소은은 원철수를 한번 쓱 쳐다보았다. 옷을 잘 차려입고 점잖은 얼굴을 한 이 사람을 보면서 정말 얼굴이 아깝다고 생각했다.그녀는 이렇게 화가 난 적이 거의 없었다. 그녀는 헛웃음을 두 번 삼키고는 그에게 말했다.“원 선생님 눈에는 여자가 해야 할 일이 어떤 거로 생각하세요? 여자가 하지 말아야 하는 건 뭔가요 다르게 말하면, 남자가 해야 하는 일은 또 뭔가요?”“솔직히 말해서 원 선생님이 연구소에 들어간 시간이 길지 않은 거로 알고 있어요. 당신이 이 바닥에서 이루어 낸 게 아직 없죠? 남자가 해야 할 일에 대해서 아무런 성과도 없고 여자가 할 수 있는 일은 당신이 할 수도 없어요.”한소은은 손으로 자기의 배를 어루만지며 담담한 목소리로 말했다.“만약 연구소의 이름으로 내게 하는 말이 아니라면 당신은 무슨 자격으로 내게 이래라저래라 하는 거죠?”한소은은 대놓고 원철수에게 무안을 주었다. 그녀의 말을 해석하면 당신이 지금 이 자리에서 연구소를 대표하는 입장으로 나와 말을 할 수 있는 거지 그렇지 않으면 나와 말을 할 자격조차 없다는 뜻이다.원철수는 한소은이 이렇게 말주변이 좋은지 몰랐다. 그의 말을 듣기는커녕, 자기의 말을 반박해 무안을 주다니.“이…….”한소은의 말에 원철수는 화가나 얼굴이 붉게 상기되었다. 안경 뒤에 기다란 눈에는 분노가 서려 있었다.“난 좋은 마음으로 당신을 타이르는 건데 당신이 이렇게 사리를 구분할 줄 모를 거로 생각하지 못했네요! 임신했으면 집에서 조용히 있을 것이지 남산만 한 배를 내밀면서 여기저기 돌아
“초대할 사람을 선별하는 단계에서 문제가 있었나 봐요! 아무 사람에게나 다 보내다니!”“내가 보기엔 초대장도 없이 몰래 숨어든 거 같아요!”여기저기서 말이 나왔지만 원철수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그들의 말을 반박하지도 말을 덧붙이지도 않고 입구의 방향을 넋을 놓고 바라보기만 했다.‘보아하니 그 여자는 생각을 바꾸어 한의약 연구를 중단하지 않을 생각인가 보군. 하지만 한의약에 대해 조금도 모르는 사람이 연구소와 협력한다니, 너무 터무니없는 소리잖아!’‘자본의 힘이 이제는 이 심오하고도 깨끗한 업계에 손을 내민건가?’————한소은이 집에 도착했을 때, 김서진이 이미 퇴근하고 집에서 아들과 놀고 있었다.큰 거실에는 탁자와 찬장을 다 치워버리고 두껍고 부드러운 카펫을 깔아 아이가 땅에서 마구 기어다닐 수 있게 해두었다. 김서진이 아이를 아끼는 정도를 보면서 한소은은 딸을 낳기 조금 두려워졌다.아들도 이렇게 사랑하며 아끼는데 딸이 태어난다면 딸바보가 되어 얼마나 딸을 아낄지 상상할 수조차 없다.“이렇게 일찍 왔어요?”손에 작은 블록을 가지고 놀면서 한소은을 바라보는 눈빛에는 사랑이 가득했다.“네.”한소은은 담담하게 말하며 외투를 벗어 아주머니에게 전해주며 신발을 갈아신고 손을 깨끗이 씻은 후에야 아들 준이에게로 다가갔다.어린 녀석은 엄마를 진작에 발견하고 옹알거리며 그녀에게 다가갔다.아직 잘 걷지 못하는 아이는 휘청거리며 한소은의 품에 안겼다.아이를 안아 든 한소은은 고개를 숙여 아이를 바라보며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오랜 시간 한소은과 함께한 사람으로서 김서진은 그녀의 미세한 표정 하나하나를 단번에 알아차릴 수 있었다.“오늘 세미나에서 기분 나쁜 일이 있었나요?”김서진은 항상 자기의 아내가 워커홀릭이라고 생각했다. 그녀가 흥미를 느끼는 일을 한번 시작하면 밥을 먹고 잠을 자는 것도 잊으면서 일에만 몰두할 때가 많다. 전에 여러 번 그가 억지로 한소은을 작업실에서 끌고나 왔었다.만약 임신한 게 아니었다면 지금쯤 아마 전국 곳곳을
“나이가 어리다고요?”그녀의 말에 김서진이 조금 의아해했다.말문이 열렸으니, 한소은은 더 이상 참지 않고 오늘 있었던 일을 모두 김서진에게 털어놓았다.“오늘 연구소 쪽에서 보낸 사람은 생각보다 젊었어요. 겉으로 보기엔 점잖고 예의 있어 보였는데 그런 x 소리를 할 줄은 몰랐어요.”“그 사람이 내가 이 프로젝트를 중단하는 것에 대해 지지한다고 했어요. 여자는 집으로 돌아가서 아이를 낳으면서 여자가 해야 할 일을 하라고 하더군요. 그러면서 내가 연구소와 협력을 할 수 있었던 건 모두 당신의 재력과 백을 이용해서 얻어낸 거라고 했어요.”‘정말이지 그 자식은 내가 본 사람 중에서 최고로 재수가 없는 자식이야!’“하지만 당신은 원래부터 이 프로젝트를 중단하려 했었잖아요?”“그때와 상황이 달라요!”한소은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내가 프로젝트를 중단하려고 한 건 처음에 말했던 연구 방향과 많이 달랐기 때문이에요. 게다가 내게 많은 걸 숨기고 있었어요. 그들에게 다른 목적이 있다고 생각되어서 중단하려 했던 거예요.”“하지만 그 사람이 내가 프로젝트를 중단하는 걸 지지하는 이유는…… 내가 여자이기 때문이라고요! 말이 안 되지 않나요?”‘지금이 어떤 시대인데 아직도 성별을 차별하는 사람이 있다니!’오래전에 노형원 그 망할 자식이 그녀를 부정하고 모진말로 그녀에게 상처를 준다 해도 모두 그녀의 성과를 훔치기 위한 것이었다. 대신 그는 다나 한 번도 여자의 가치를 부정한 적이 없었다.하지만 오늘 만난 이 남자는 연구소에서 일을 하며 좋은 대학에 좋은 교육을 받은 사람으로서 이렇게 큰 편견이 있다는 게 어이가 없었다.“정말 어이가 없네요. 그럼, 당신은 어떻게 할 생각인가요?”김서진이 이어서 물었다.“그 프로젝트를 중단할 건가요?”“아니요.”한소은이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이 남자 때문에? 이 남자에게 증명하려고 그러는 거예요?”김서진이 질투하는 듯한 말을 내뱉자, 한소은이 시큰둥한 표정으로 말했다.“당연히 아니죠! 그 사람이 뭐라고 내가 그
소은은 고개를 들어 눈물을 참으며 말했다. “한 가지 이상한 게 있어요.”“무슨 일이에요?” 임남을 달래던 임상언이 무심히 되물었다.“로사 왕자는 감금된 것이 아니라 그날 Y국으로 송환되었다고 들었는데, 그렇다면 왜 그동안 로사 왕자와 연락이 닿지 않았던 걸까요?” 소은의 말에 임상언은 잠시 생각하더니 말했다. “두 가지 가능성이 있겠죠. 신호가 나쁘거나 핸드폰을 확인하지 못했을 수도 있고, 로사 왕자가 저희 연락을 거부하고 있을 수도...”두 사람은 잠시 눈을 마주쳤다. 말은 없었지만, 둘 다 이미 답을 얻은 듯했다. 로사 왕자가 그토록 연락을 피하려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도 나름의 계획을 세우고 있는 건가?...3일 후. 소은은 마지막 침을 놓고 손을 거두었다. 그녀는 자리에서 일어나지 않고 여왕을 쳐다보며 말했다. “오늘 시술로 폐하의 다리에 감각이 돌아오실 겁니다. 하지만 일어서는 건 천천히 시도하셔야 합니다. 너무 서두르시면 안 돼요.”소은은 말을 마치고 갑자기 미소를 지었다.“무엇 때문에 웃는 거지?” 여왕은 여전히 자신의 다리를 어루만지며 물었다. 이미 이틀 전부터 약간의 감각이 돌아왔음을 느낀 터라, 소은의 말이 사실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소은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제가 쓸데없는 일을 하고 있는 게 아닌가 싶어서요. 사실 R10 실험을 고집하신다면 결국 폐하께서는 이 몸을 떠나게 되실 텐데, 제가 이 몸에 애쓰는 일이 무슨 의미가 있겠어요?”여왕은 눈을 가늘게 뜨며 물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계속한 거지?”“어쩌면, 폐하께서 마음을 바꾸실 지도 모르니까요.” 소은은 부드럽게 대답했다. “어쩌면 자신의 몸이 무엇보다 소중한 것이라는 걸 깨닫게 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거든요.”“우리 모두 이 세상에 올 때 두 손은 비어있지만, 이 몸만은 오로지 우리 자신의 것이죠. 몸마저 버리신다면, 그 영혼은 여전히 진짜 자신일 수 있을까요?”“그렇구나.” 여왕은 잠시 생각에 잠기더
소은은 조용히 몸을 일으키며 여왕을 쳐다보았다. “물론이죠.” 소은은 담담하게 답했다. 그 대답에는 원망이나 비난의 기색은 전혀 없었다.“그렇다면... 조금 아쉽네.” 여왕은 생각에 잠긴 듯 낮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얻는 것이 있으면, 잃는 것도 있기 마련입니다. 세상 모든 일은 균형을 맞추려 하죠. R10이 폐하께서 이루고자 하는 꿈이라면, 저는 그것을 막을 수 없어요. 다만, 그때가 되어 성공하든 실패하든, 저는 그 모습을 보지 못할 테니 부디 후회하지 않으시길 바랍니다.” 소은은 살짝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이고는 문 밖으로 나갔다.릭은 여전히 문 앞에서 대기 중이었다. 그녀와 여왕의 대화가 거의 다 들렸던 듯, 둘의 시선이 잠시 교차했다. 소은이 그를 지나쳐 나가자, 릭은 곧장 방으로 들어갔다.“여왕 폐하.” 릭은 여왕을 쳐다보며 입을 열었다. 그녀의 다리에 꽂힌 은침을 보자 릭의 눈빛이 굳어졌다. “이건...”“괜찮아. 곧 소은이가 와서 침을 빼줄 거야.” 여왕은 무심하게 손을 흔들며 말했다.릭은 여전히 불안한 눈빛으로 말했다. “폐하께서 너무 방심하시는 것 아닙니까? 만약 한소은이 폐하께...”“그럴 리 없다.” 여왕은 단호히 그의 말을 잘랐다.릭은 당황한 얼굴로 물었다. “설마 그 여자를 믿으시는 겁니까?”여왕은 대답 대신 잠시 침묵을 지켰다. 그녀도 릭의 질문이 아니었다면 자신이 소은을 믿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했을 것이다. 오랜 세월 누구도 쉽게 믿지 않겠다고 다짐했지만, 그녀는 소은을 의심하지 않았다. 심지어 은침에 독이 묻어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제가 가서 잡아오도록 하죠.”여왕이 생각에 잠기자 릭은 바로 뒤돌아섰다.“거기 서!”여왕은 결연히 말했다. “난 믿어.”릭은 한참을 침묵하며 여왕의 결정을 받아들였다....임상언은 아들을 다시 만날 수 있을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 비록 아들을 구하려는 결심을 굳혔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희망이 사라지는 듯했다.
소은은 허리춤에서 허리띠처럼 생긴 물건을 꺼내더니 조심스럽게 풀어내며, 그 안에 숨겨진 가느다란 은침을 꺼냈다.“이건...” 여왕은 깜짝 놀라며 소은을 쳐다봤다. 소은이가 은침을 항상 가지고 다닐 줄은 상상도 못 했던 것이다.“말해봐, 네 요구가 뭐지?” 여왕은 깊게 숨을 들이마시며 마음을 가다듬으려 애썼다. 너무 무리한 요구라면 거절하면 그만이다. 여왕은 절대 소은에게 휘둘리지 않겠다고 다짐했다.소은은 차분하게 말했다. “제가 여기서 나올 수 있었던 건 로사 왕자님 덕분입니다. 그러니, 왕자님을 책망하지 않으셨으면 합니다.”“그게 다야?” 여왕은 의아해하며 물었다. 소은이 여기까지 와서 자신과 조건을 따지는데, 결국 요구한 게 단지 로사를 처벌하지 말라는 거라니. 자신이 잘못 들은 건가 싶었다.“로사는 내 아들이다. 내가 정말 내 아들에게 손을 댈 리는 없지. 괜히 기회를 헛되게 쓴 건 아닌가?” 여왕은 고개를 저으며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전 폐하께서 정말 로사 왕자님께 처벌을 내리시지 않을지 장담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왕자 폐하께서 저를 구해준 건 사실이기에 저도 왕자 폐하를 위해 무언가를 해야 할 것 같았습니다.” 소은은 조용히 말했다. “게다가 지금 왕자 폐하를 감금하시고 자유를 제한하고 계시지 않나요?”여왕은 의아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아니야. 난 단지 로사를 Y국으로 돌려보냈을 뿐이야.”“로사가 여기서 내 일을 여러모로 방해하긴 했지만, 우리 모자 사이가 더 악화되기를 바라지 않았다. 국내에서도 로사가 필요하니 Y국으로 돌려보낸 것뿐이다.” 여왕은 담담하게 말했다.“그런데 왜 왕자 폐하의 전화가 연결되지 않죠?” 소은은 잠시 멈칫했다. 단지 귀국했다면 국제전화를 받을 수 있을 텐데, 연락이 닿지 않았기에 여왕이 로사를 가둬놓았다고 오해할 수밖에 없었다.여왕은 깊은 숨을 내쉬며 말했다. “그 부분에 대해서는 나도 잘 모르겠군. 그날 내가 화가 났던 건 사실이지만, 곧바로 Y국으로 돌아가도록
“삼일이면 됩니다.” 소은은 여왕을 쳐다보며 작은 소리로 말했다.“삼일? 고작 삼일?” 여왕의 눈에는 믿기지 않는 놀라움이 서렸다. 그녀는 적어도 몇 달, 아니 최소한 몇 년은 걸릴 줄 알았다. 그러나 고작 삼일이라니, 그녀로서는 상상도 못 한 시간이었다.삼일쯤이야. 십 수년을 이렇게 버텨왔는데, 삼일쯤 더 기다린다고 달라질 게 뭐 있겠는가?“삼일 안에 정말 나아질 수 있는 건가? 내가 정말 다시 일어서서 걸을 수 있는 건가?” 여왕은 두 손으로 자신의 다리를 힘껏 눌렀지만 여전히 아무런 감각이 없었다. 그녀는 소은의 말을 쉽게 믿을 수가 없었다. 이 다리가 감각을 잃은지 너무 오래되어 치료할 수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동안 여왕은 여러 나라의 명의를 찾아 다녔지만, 그들은 단지 병의 악화를 늦출 수 있을 뿐 다리를 완전히 회복시키는 건 불가능하다고 했었다. 그러나 지금 소은은 그녀 앞에 서서 확신에 찬 얼굴로 가능하다고 말하고 있었다. 그녀는 속으로 자신도 모르게 그 말을 믿고 싶어졌다.“이전처럼 완벽하게 걸을 수 있을 거라고 장담할 순 없어요. 너무 오랫동안 움직이지 않아서 근육이 많이 위축됐거든요. 하지만 서서히 일어나서 조금씩 회복하는 것은 가능합니다.” 소은은 진지한 어조로 답했다.여왕은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정도라도 충분히 만족스러웠다. 젊었을 때처럼 완전히 회복되는 것을 기대하지 않았다. 그러나 만약 휠체어와 지팡이 없이 다시 일어설 수 있다면, 그 자체로도 그녀에겐 더할 나위 없는 희망이었다.“좋아. 삼일, 기다리겠네. 필요한 게 있나?” 여왕은 기분이 좋아져 말을 한층 부드럽게 했다.“임남...” 소은이 말을 꺼내자마자 여왕의 얼굴이 굳어졌다. 그녀는 곧바로 고개를 저으며 거절했다. “그건 안 돼. 그런 요구는 하지 마라.”“제가 말한 건 임남을 바로 풀어달라는 게 아닙니다. 그냥... 그 아이가 괜찮은지 알고 싶고, 가능하다면 아버지와 한 번 만날 기회를 주시면 좋겠습니다.”
“이 실험을 결정할 수 있는 사람은 저와 프레드 뿐이기 때문입니다.” 소은은 잠시 생각하다가 덧붙였다. “아니면 주효정을 믿으실 건가요?”“나는... 아무도 믿지 않아.” 여왕은 얼굴을 차갑게 굳히며 휠체어를 돌렸다.“여왕 폐하께서 이 실험에 집착하고 계시는 건 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이 전부인가요? 세상을 둘러보고 싶다거나, 짐을 내려놓고 잠시 쉬고 싶은 마음은 전혀 없으신가요? 수십 년간 왕좌에 오르셨지만, 정말로 아직도 그 삶이 좋으신가요? 언제나 긴장하며 위태로운 자리를 견디는 고단한 나날, 정말 아직도 벗어나고 싶지 않으신가요?” 소은은 여왕의 등을 쳐다보며 부드럽게 물었다.여왕은 아무 말 없이 자신의 무릎을 쓰다듬으며 고개를 살짝 떨구었다. 그녀는 시선을 다리로 내리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세상을 둘러본다? 나는... 걷는 게 어떤 느낌인지도 잊어버렸어.”여왕은 오랜 세월 동안 다리를 쓰지 않았고, 처음에는 억지로라도 일어설 수 있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상태는 악화되었고 이제는 아예 휠체어 없이는 움직일 수 없게 되었다. 그녀는 휠체어에 익숙해졌다고 생각했지만, 소은이 ‘세상을 둘러보라’는 말을 꺼내자 가슴이 아팠다.“만약... 폐하께서 다시 일어설 수 있다면요? 제가 다시 걷게 해드린다면요?” 소은은 조용히 여왕의 뒤에 서서 말했다.여왕은 잠시 멈칫하더니, 눈빛이 날카롭게 변하며 휠체어를 돌려 소은을 똑바로 쳐다보았다. “정말이냐?” 여왕의 눈에는 억누를 수 없는 희망과 깊은 의심이 뒤섞여 있었다.소은은 대답 대신 그녀의 시선을 천천히 여왕의 다리로 내리고, 천천히 다가가서 무릎을 꿇었다. 그리고 손을 뻗어 여왕의 무릎 위에 가볍게 손을 올렸다.여왕은 살짝 몸을 떨었다. 사실, 그녀의 다리는 거의 완전히 감각을 잃은 상태라서 소은의 손길도 느껴지지 않았지만, 그녀는 자신도 모르게 움츠러들었다. 아마도 너무나 간절히 다시 일어서고 싶기 때문이었을 것이다.소은은 아무 말 없이 여왕의
“맞아요, 임남 때문이기도 하지만, 폐하 때문이기도 합니다.” 소은은 주저하지 않고 대답했다. “제가 정말로 떠나버렸다면, 가장 초조해지는 사람은 사실 여왕 폐하 아닐까요?”여왕은 코웃음을 치며 차갑게 말했다. “내가 초조해질 이유가 뭐지? 어차피 내 손엔 네 약점이 있잖아. 너를 다시 잡아오는 것도 전혀 어려운 일이 아니고.”“약점이요? 임남 말씀이신가요?” 소은은 부드럽게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잊지 마세요, 임남이는 제 아들이 아닙니다. 저에게는 제 친자식이 셋이나 있어요. 만약 제가 마음을 단단히 먹고 임남을 포기해 제 아이들을 지키려 한다면, 그 약점이 과연 제게 약점이 맞을까요?”여왕이 입을 열기도 전에 소은은 다시 말을 이었다. “게다가, 그 아이에겐 목숨을 걸고서라도 구하려는 아버지가 있습니다. 만약 임상언이 폐하께 끝까지 맞서기로 결심한다면...” “폐하께서야 높은 자리에 있으니 이런 평범한 상인을 하찮게 여기실 수 있지만, 임상언 씨가 단순한 상인이 아니라는 걸 잊으시면 안 됩니다. 임상언 씨의 사업은 세계 곳곳에 뻗어 있어요. 임상언 씨가 목숨을 걸 각오가 되어 있다면 그 어떤 일도 할 수 있겠죠. 혹시라도 바깥에 소문이 퍼져 폐하와 Y국의 명망이 손상된다면, 곤란하지 않겠습니까?”“너...” 여왕은 화가 치밀어 올랐지만 반박할 말이 당장 떠오르지 않았다.여왕이 화가 난 것을 보고, 소은은 한결 차분하게 말을 이어갔다. “화내지 마세요. 제가 돌아온 건 폐하를 자극하려는 게 아닙니다. 함께 최선의 방향을 찾고자 돌아온 거예요. 사실 폐하께서 H국에 오신 일이 밝혀진 건 아니지만, 꽤 오랜 시간 H국에 머물고 계셨습니다. 정말로 H국이 이 사실을 모르고 있을 거라고 생각하세요?”여왕은 말없이 그녀를 쳐다보았다. “지금까지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건 폐하의 체면을 살려드린 겁니다. 그러나 폐하께서 이곳에서 계속 머무르시며 혹여 무리수를 두신다면, 얼마나 더 체류하실 수 있을까요? Y국도 계속해서
릭은 잠시 침묵을 지켰다. 여왕은 모니터에서 시선을 돌리며 담담히 말했다. “소은을 데려와. 어디 한번 무슨 변명을 할지 들어보자. 또 어떤 이야기를 꾸며낼지 궁금하네.” 여왕은 휠체어를 살짝 돌려 더 이상 모니터를 보지 않았다.“여왕 폐하?” 릭은 망설이다가 말했다. “한소은이 거짓말을 할 걸 아시면서도 굳이 왜...” 그러나 여왕은 그 말을 끝까지 듣지 않고 단호히 말했다. “듣고 싶어!” 이 한마디에 릭은 더 이상 말을 잇지 않았다. 그는 곧장 소은이 있는 방으로 발걸음을 옮겼다.소은이 정말로 잠이 들려고 하던 순간, 문 밖에서 인기척이 들렸다. 그녀는 곧바로 정신을 차리고 눈을 떴다. 눈을 뜨는 순간, 문이 열리면서 릭이 문 앞에 서 있었다. 그의 얼굴은 굳어 있었고,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여왕께서 한소은 씨를 만나고 싶어 하십니다.” 소은은 차분한 표정으로 릭을 쳐다보았다. 마치 모든 상황을 예견한 듯 고요하게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와 동시에 임상언은 소은보다 먼저 일어나 문으로 향했다. 그러나 그가 문에 도착하자마자 릭이 손을 들어 그의 앞을 막았다. “그쪽은 남아 계시죠.” “뭐? 우리 둘은 같이 온 거야!” 임상언은 소은을 돌아보며 그녀에게 눈짓으로 도움을 요청했다. 릭은 차가운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여왕 폐하께서 그쪽을 부르지 않았으니 여기 남으시죠.” 릭은 더 이상 임상언에게 말을 할 기회조차 주지 않았다.소은은 임상언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리며 부드럽게 말했다. “절 기다리고 있어요.” 임상언은 마음이 편치 않았지만, 억지로 마음을 다스리며 그녀가 릭과 함께 방을 나서는 것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조심해요.” 임상언은 소은을 향해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말했다.소은은 미소를 지어 그에게 답했고, 릭을 따라 여왕의 방으로 향했다. 익숙한 길을 따라 걷는 그녀는 곧 여왕의 방에 도착했다. 릭이 문을 두드리며 말했다. “여왕 폐하, 데려왔습니다
소은이 임상언을 데리고 대사관에 도착하자, 그곳에 있는 사람들은 눈에 띄게 당황했다.한 사람이 서둘러 소식을 알리러 가더니, 이내 주변 구석구석에서 누군가가 몰래 그들을 엿보는 기척이 느껴졌다. 곧이어, 소은이 잘 알고 있는 여왕의 측근 몇 명이 경계 어린 눈빛으로 다가와 그들을 안으로 안내했다. 안으로 들어가자마자 그들은 소은과 임상언의 몸을 샅샅이 검사하며 위험 물품을 소지하지 않았는지 확인했다. 철저한 검사가 끝난 후에야 비로소 경계가 풀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두 사람은 여왕을 만나지 못했고, 한적하고 깊숙한 방에 대기하도록 배정받았다. 오랜만에 돌아온 이곳은 소은에게 익숙하면서도 낯설게 느껴졌다. 익숙한 것은 이 장소였지만, 낯선 것은 지금의 마음가짐이었다. 예전에는 이곳이 싫고 불쾌하기만 했으며, 하루빨리 벗어나고 싶은 장소였다. 그러나 이번에는 임무와 사명을 가지고 돌아왔고, 그녀의 목표는 단순히 여기를 떠나는 것이 아닌, 중요한 일을 완수하고 무사히 돌아가는 것이었다.반면, 임상언은 눈에 띄게 불안해 보였다. 그는 두 손을 맞잡고 무릎 위에 놓은 채,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다리를 가볍게 떨고 있었다. 소은은 그의 초조함을 이해할 수 있었다. 임남을 생각하면 마음이 몹시 불안하고 조급해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여기까지 왔으니 임남을 반드시 볼 수 있을 거예요. 그러니 긴장 좀 풀어요.” 소은이 작은 소리로 말했다. 임상언은 그녀를 보며 고개를 끄덕이고, 발을 땅에 꾹 눌러 다리를 멈췄다. 겉으로는 조금 안정된 듯 보였지만, 그의 얼굴은 여전히 긴장감이 가득했고 미세하게 떨리는 얼굴 근육이 그의 불안한 마음을 보여주었다. 마음을 진정시키는 게 말처럼 쉽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소은은 더 이상 말을 꺼내지 않았다.두 사람은 한참을 기다렸지만, 여왕을 만나러 오라는 사람은커녕 상황을 확인하러 오는 사람조차 없었다. 긴장했던 임상언은 결국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대체 무슨 의도인 거죠? 왜 아직
“제발 부탁이에요. 안에서는 소은 씨 말만 따를게요. 소은 씨가 시키는 대로 다 할 테니까, 제발 절 데려가 주시면 안 돼요?” 임상언은 진심 어린 목소리로 소은에게 간청했다. 자존심은 이미 버린 지 오래였다. 아들을 만나고 싶은 간절한 마음이 그를 이 지경까지 이르게 했다. 소은이 반드시 돌아가겠다고 결심한 순간, 임상언은 이미 마음을 굳혔다. 자신이 함께 가는 것이 가장 안전한 방법이었다. “다른 사람들이 같이 가면 의심을 받거나 제지를 당할 수도 있어요. 하지만 전 아니에요.” 임상언은 계속 설득을 이어갔다. “임남이 그 안에 있다는 걸 모두 알고 있잖아요. 제가 아들을 만나고 구하려고 하는 건 당연한 일이에요. 그리고 아들을 위해서 제 목숨을 바치는 것도 이해될 수 있는 일이죠. 그러니 제가 가는 게 가장 올바른 선택이에요.” 긴 침묵 끝에, 소은이 입을 열었다. “임상언 씨 말이 맞아요. 전 동의합니다.” 소은은 말을 마치고 서진에게 시선을 돌렸다. 서진은 잠시 생각하더니 천천히 손을 들어 올리며 말했다. “저도 동의합니다.” 원청현은 테이블을 손가락으로 가볍게 두드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면, 나도 동의하지.” 잠시 침묵하던 진정기 역시 마침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동의합니다.” 마지막으로 원철수는 주변을 둘러보며 한숨을 내쉬고 손을 펼쳤다. “모두 동의했는데 내가 뭐라고 반대하겠어. 나도 찬성이야.” 사실 원철수의 의견은 크게 중요하지 않았지만, 그럼에도 임상언에게 지지를 표현하는 의미였다. 임상언은 눈시울이 붉어지며 고개를 끄덕였다. “정말 감사합니다. 모두들 고마워요.” “이게 뭔 감사할 일이라고. 어쨌든 안에 들어가면 절대 신중해야 해. 무슨 일이 있어도 감정에 휘둘리지 말고. 네 입으로 한 말 반드시 지켜!” 원철수는 그의 결심을 칭찬하면서도 걱정스러운 마음을 감추지 못했다. 원철수는 속으로 임상언의 결단에 감탄했다. 한 아이의 아버지로서 그는 분명 최선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