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은 빠르게 흘러 토요일이 다가왔다. 이날, 김승엽은 일찍 일어났다. 그는 잘 다린 양복을 차려입고 거울을 보며 헤어스타일도 잘 정리했다. 중요한 날인 만큼, 정성스럽게 향수도 뿌렸다. 오늘은 그에게 있어서 가장 중요한 날이 될 것이다. 오늘부터 그의 인생은 하나의 전환점을 맞이하게 될 것이다.가문 장로들은 그렇게 일찍 도착하지 않는다. 그가 가장 걱정하는 것은 역시 어머니이다. 비록 어머니가 그를 돕기로 승낙했다고 하지만, 모든 것이 다 끝나기 전에는 여전히 안심할 수 없다.김승엽은 아침 일찍, 일부러 부엌에 가서 아침을 챙겨 어머니의 방문 앞에 직접 갖다 드리고 문을 두드렸다."무슨 일이야?"방안에서 어머니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금방 잠에서 깨어난 목소리가 아닌 걸 보니, 이른 시간임에도 노부인은 이미 깨어있었던 것 같다."어머니, 저예요. 아침을 드시라고요."노부인의 목소리가 들리자, 김승엽은 굽실거리며 말했다."아래층에 두어라, 이따 내가 내려가서 먹을게."그러자 노부인은 들어오라는 말 대신 이따 내려가겠다고 대답했다.“계단 올라갔다 내려갔다 하기 힘드시잖아요. 게다가 제가 이미 아침을 방 앞까지 가져왔는걸요. 문 좀 열어주세요.”잠시 멈칫하다 어머니가 대답하지 않자 또 한마디 덧붙였다.“어머니에게 할 말도 있고요.”노부인의 방에서는 침묵이 흘렀다. 한참이 지나서야 노부인이 일어나 방문을 열었다. 문 앞에서 차분한 눈빛으로 그를 바라보았다.“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건데?”“어머니, 일단 들어갈까요?”김승엽은 허리를 살짝 굽히더니 쟁반을 들어 노부인의 방으로 들어가 테이블 위에 올려놓았다. 그러고는 아무렇지 않게 방안을 둘러보았다.노부인의 침실은 매우 컸다. 하지만 방안에는 물건을 많이 놓지 않았기에 텅 비어 보였다.문 앞에 서 있던 노부인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더니 방 안으로 들어와 화장대 앞에 앉아 얼굴에 스킨케어 제품을 발랐다.“난데없이 아침을 방까지 배달해 주다니, 내게 바라는 게 있는 거지?”김승엽은 하하 웃으며
“그래, 난 서진이의 친할머니야....”노부인은 머리카락을 빗던 손을 멈추고 깊은 생각에 잠긴 듯 막연한 눈빛으로 멍하니 거울 속의 자신을 바라보았다.“나는 그 아이의 친할머니야...”“어머니, 너무 복잡하게 생각하지 말아요! 난 어머니의 친아들이잖아요! 서진이의 작은아버지이기도 하고. 그런데도 그는 내의 사정을 조금도 봐주지 않았어요!”뭔가 이상한 낌새를 느낀 김승엽이 바로 불쌍한 척 호소했다.“어머니, 난 지금 서진을 죽음으로 모는 게 아니에요. 서진이가 순순히 가주의 자리를 내놓으라고 하려는 거예요. 어머니는 항상 내가 김씨 가문 가주의 자리에 오르고, 김 씨 그룹을 손에 넣길 바라셨잖아요? 지금 우리는 혼란을 수습하는 거예요. 모든 걸 정상으로 되돌리는 거라고요!”“혼란을 수습한다라...”그의 말에 노부인은 깊게 고개를 끄덕였다.“그래, 혼란을 수습해야지.”드디어 마음을 정한 듯한 노부인의 모습에 김승엽은 그제야 한숨을 돌리고 가져온 아침을 노부인 앞으로 내밀었다.“어머니, 먼저 드세요. 시간이 아직 일러요. 조급해하지 마시고 천천히 드세요."“그래.”젓가락을 들고 그가 아직 옆에 앉아 있는 것을 보자 노부인이 그에게 말했다.“다른 할 말이 있는 거니?”“어머니, 이번일, 혹시 누나에게 말했나요?”어머니의 말씀만으로도 충분한 증거가 될 수 있지만 김지영도 증언할 수 있다면 당연히 더욱 좋다.“지영이는 아직 몰라.”노부인은 고개를 숙이고 죽을 후후 불며 담담하게 말했다.“그럼... 누나 불러올게요. 어머니가 상황설명 좀 해줘요. 괜히 회의에서 말이 헛나오면 어떻게요.”그러고는 일어서서 김지영을 부르러 가다가 다시 돌아서서 물었다."아참, 전에 누나가 그 감정보고서를 봤나요?"노부인은 눈도 들지 않고 느릿하게 죽을 한 모금을 마시며 대답했다.“그 유전자 검사 결과는 지영이가 가져온 거야. 그런데 그 애가 안 봤을 리가.”“그럼...”이 말에 김승엽은 흠칫 놀랐다. 어머니만 신경 쓰느라 자기의 누나가 이미 진짜 유전
이렇게 이른 시간에 김지영은 아직 잠에서 깨지도 않았다. 김승엽이 계속 방문을 두드리자, 김지영은 짜증이 가득한 얼굴로 방문을 열었다. 잠에서 깨자마자 문을 여느라 헝클어진 머리카락에 두 눈에는 충혈되어 빨갛게 보였다. 김지영은 화가 나서 김승엽에게 버럭 소리를 질렀다.“무슨 일인데!”“누나, 아침 먹으라고!”김승엽은 미소를 한껏 지으며 그녀에게 1층에 가져온 아침이 담긴 쟁반을 내밀었다.“허, 해가 서쪽에서 떴나 보다!”김지영은 그를 한번 흘겨보더니 입을 가리고 하품을 하고 몸을 돌려 씻으러 갔다.그녀가 씻는 소리가 들려오자, 김승엽은 따라 들어가지 못하고 그녀의 방에 들어가 여기저기 둘러보기 시작했다. 김지영이 보는 책들은 거의 다 소설들이었다. 그려 보고 나니 김승엽은 하찮다는 듯 비웃음을 지었다.‘나이가 몇인데 아직도 이런 걸 보다니. 하지만 그래도 나쁜 건 아니야. 누나는 나와 경쟁할 능력이 안 돼. 오히려 내게 위협보다 도움이 될 수 있는 사람이야.’잠시 후, 김지영은 여유롭게 세수를 마치고 나와서 소파에 기대어 닥치는 대로 빵 한 조각을 들고 씹었다."말해봐, 무슨 일이야!"“누나, 오늘 회의에 장로들 모두 오는 거 알지?”김승엽이 그녀의 반응을 살피며 작은 목소리로 물었다.“엄마한테 들은 거 같아. 그게 뭐?”“그 검사 결과, 내 말은 유전자 검사 결과 말이야. 누나는 이미 봤겠지?”그는 두 손을 비비며 어디서부터 어떻게 말을 해야 할지 고민했다.그의 말에 오히려 김지영이 어리둥절했다. 그녀는 몸을 바르게 앉고는 그에게 대답했다.“그래. 봤어. 왜 그러는데?”“아니야. 그냥 검사 결과가...”“너도 안 거야?”김지영은 눈썹을 치켜올리며 흠칫 놀란 표정을 지었다.그녀의 반응에 김승엽은 가볍게 웃으며 대답했다.“난 안 봤어. 결과가 어떤지 예상하긴 했지. 하지만 그건 중요한 게 아니야, 오늘 장로들이 다 올 거야. 그 사람들 앞에서 김서진이 김씨 가문의 핏줄을 이은 사람이 아니라고 말할 예정이야.”“뭐라고?!”
“엄마가 뭐랬어?”두유를 한 모금 마시던 김지영이 다시 물었다.“뭐라고 하시겠어? 누나도 알잖아. 어려서부터 엄마는 날 제일 예뻐했어. 난 엄마의 친아들이잖아! 당연히 엄마는 내 편이지.”이에 대해서 김승엽은 자신이 있다.바로 노부인의 편애가 있었기 때문에 김승엽은 항상 김씨 가문의 재산을 모두 가지진 못해도 절반 정도는 가져야 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전에 그에게 절반을 물려주기는커녕 거의 다 김서진 그 자식에게 물려줄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 결국 그에게 주어진 재산은 고작 회사 지분 조금이었다. 김씨 가문의 기타 산업에 대해서는 결코 눈에 차지 않았다. 김씨 가문의 방대한 재산에 비해, 그것은 빙산의 일각일 뿐이었다.아버지의 얘기를 꺼내면 김승엽은 그리움보다 원망이 더 컸다.“그래.”김지영은 두유를 다 마시고 입을 닦으며 담담하게 대답했다.“아침 고마워.”“누나, 그럼, 이 일은 이렇게 정한 거로 알게! 나중에 날 도와줘야 해. 잊지만, 우리 모두 한배에 탄 사람들이야. 우리는 누이동생이잖아!”이렇게 말하고 잠시 생각하더니 김승엽이 그녀에게 약속했다.“내가 김씨 가문 가주의 자리를 가지게 되면 누나에게 잘할게! 걱정하지 마, 김서진이 준 것보다 몇 배는 많이 챙겨줄 테니까!”그의 말에 김지영이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그래, 김씨 가문의 재산은 김씨 가문의 자식이 이어받는 게 마땅하지. 틀린 말이 아니야! 나도 엄마와 같은 입장이니까, 엄마가 어떻게 말하면 나도 어떻게 말할게.”이 말은 김승엽에게 있어서 보증했다는 것과도 같았다. 김지영의 말에 김승엽은 매우 만족했다.“누나 말이 맞아! 김씨 가문의 재산은 김씨 가문의 자식이 이어받아야 해! 누나, 오늘만 지나면 내 시대가 열리는 거야!”김지영은 의미심장하게 웃으며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노부인과 김지영에게 거듭 당부하고 나서야 김승엽은 마음이 놓이는지 담배 한 대를 입에 물고 베란다로 갔다.김씨 가문의 고택은 오래된 고택이라고 하지만 이미 여러 번 개
우해영이 그에게 전화를 건 것은 사실 그를 떠보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그의 자신만만한 목소리를 듣고, 조금 흥미가 생기긴 했다.“당신이 어떻게 하루 사이에 김서진을 가주의 자리에서 내쫓을 수 있는지 귀띔이라도 해줘. 조금 흥미가 생기긴 하네!”우해영은 김승엽이 헛된 꿈만 꾸고 있다고 생각했다. 만약 김서진이 이렇게 쉽게 무너뜨릴 수 있는 사람이라면 몇 년 동안 회사를 지키며 최고의 자리를 차지하지 못했을 것이다.김서진은 젊은 나이에 김 씨 그룹 회장 자리를 이어받았다. 처음에 나이도 어린 그가 회사를 장악하니 그를 승복하지 않는 사람들이 많았지만, 후에는 그의 살벌한 수법에 모두 무릎을 꿇었다. 나중에는 점차 그의 사업 수단을 인정하게 되었다.그는 확실히 능력이 출중했다. 그가 이끄는 김 씨 그룹은 날이 갈수록 발전해 갔다.지금 김승엽은 오늘 회의가 끝나기만 하면 김서진을 가주의 자리에서 쫓아 버리고 자기가 가주가 되는 것도 모자라 회사까지 손에 넣을 수 있다고 한다. 우씨 가문에도 장로들이 존재하기 때문에 우해영은 그들이 실제로는 크게 권력이 없다는 걸 누구보다도 잘 알았다. 장로들이 김승엽의 손을 들어줘도 회사 주주들이 김승엽을 인정하지 않을게 뻔했다.그렇기 때문에 우해영은 그의 자신만만함이 어디서 나오는지 궁금했다. 하지만 그저 궁금할 뿐, 그가 정말 김서진을 무너뜨릴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그녀가 김씨 가문의 회의에 나가겠다는 의향을 밝힌 것은 단순히 김승엽이 비웃음거리가 되는 걸 보러 가기 위해서였다.“그건... 미리 말해주면 경악이 아니지! 그렇게 궁금하면 직접 와서 보던가. VVIP 자리를 준비해 줄 테니까!”그녀가 머뭇거릴까 봐 김승엽은 바로 이어서 말했다.“오늘 우리 김씨 가문의 가족회의지만, 당신과 나 사이에 아직 정식으로 파혼한 게 아니니, 내 피앙세 신분으로 참석해. 그러면 당신이 참석하는 걸 장로들이 이상하게 보지 않을 거야.”우해영은 잠시 고민하다 대답했다.“그래. 그럼, 이따 보자고!”그녀는 전화를 끊고 오늘
‘혹시 무술을 한 단계 뛰어넘는 데에 꼭 필요한 과정인가?’아직 무슨 이유인지는 모르겠지만 지금 우해영은 더 이상 걷기 힘들었다.데 일이 그녀의 팔을 붙잡고 그녀를 소파에 앉게 하고서야 입을 열었다.“아가씨, 제가 의사 불러올게요!”“필요 없어, 이건 의사가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야.”우해영은 이런 상황이 너무 익숙했다. 무술을 배우는 사라들은 경맥과 혈기를 중점으로 한다. 이건 보통 의사가 진단해 낼 수 없는 것들이다. 지금 그녀가 할 수 있는 것은 혼자서 기를 잘 다스리는 것이다.“기를 좀 다스려야 하니까 밖에서 지키고 있어.”그녀는 다소 엄숙한 표정으로 다리를 꼬고 앉으며 말했다.데일은 고개를 끄덕이며 밖으로 한 발짝 나가던 순간 무언가가 떠올라 다시 그녀에게 물었다.“그러면 대기 시켜두었던 차는 돌아가라고 할까요?”방금 머리가 어지러워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것을 데일이 한 말을 듣고 생각이 났다.“아니, 그대로 대기하라고 해!”“하지만 아가씨께서…”“가서 해민이 데려와. 예전에 그랬던 거 처럼, 나 대신 해민이가 갈 거야.”말은 이렇게 했지만, 사실 우해영은 직접 가보고 싶었다. 재밌는 구경거리를 보는 건 둘째 치고, 김서진과 한 번 더 붙어 두 사람 사이의 차이를 확인해 보고 싶었다. 하지만 몸이 이렇게 허약한 상황에서 김씨 가문 가족회의에 참석해 보았자 김서진과 붙을 수 없기 때문에 차라리 가지 않기로 했다.김승엽 쪽에는 방금 간다고 말해 두었지만 인제 와서 못 간다고 하는 것도 안 될 거 없었지만, 동생 우해민이 자기를 대신해 가게 되면 불필요한 번거로움을 덜 수 있다. 그러고 이번 기회를 통해 우해민이 정말로 김승엽을 잊고 자기에게 충성을 바치는 건지도 확인해 볼 수 있다.“네!”데일은 단번에 그녀의 뜻을 알아차리지 못했지만, 그녀의 명령이니 따를 수밖에 없었다.곧이어 우해민이 데일을 따라 들어왔다.언니의 방에 들어서니 언니가 소파에 앉아 지그시 눈을 감고 호흡을 가다듬으며 운동하는 모습을 발견했다.“언니
우해민은 입술을 꽉 깨물고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로 대답했다.“알았어 , 언니.”“이제 가봐.”우해영은 힘겹게 손을 저었다. 지금 그녀의 모습은 유난히 창백하고 허약해 보였다.“그럼, 언니 몸은…”그런 그녀의 모습을 보고 우해영이 걱정 가득한 목소리로 물었다.“내 몸은 걱정하지 말고 내가 한 말이나 똑똑히 잘 기억해.”말을 마치고 힘에 겨웠는지 우해영은 다시 두 눈을 꼭 감았다. 더 이상 말할 힘도 없어 보였다.우해민은 더 묻지 않고 조용히 나갔다.그녀가 나가는 소리가 들리자, 눈을 꼭 감았던 우해영 스르르 눈을 다시 뜨며 아무도 없는 방문 앞을 대고 말했다.“데일!”“네, 아가씨!”우해영의 부름에 데일이 순식간에 나타났다.“쓸만한 사람 둘 찾아서 해민이 옆에 붙여놔. 절대로 무슨 일이 생겨서는 안 돼!”“네!”데일은 단번에 그녀의 뜻을 알아차리고 바로 준비하러 갔다.우해영이 무술을 연습할 때는 믿을 만한 사람이 그녀의 옆을 지켜주어야 한다. 그녀는 데일을 제외한 다른 사람을 믿지 못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우해민을 그냥 보낼 수가 없으니 다른 사람을 붙여줄 수밖에 없었다. 최근 들어 우해민의 생각이 많아지고 마음이 흔들리는 것 같아, 더욱 엄하게 감시해야한다.————정오가 가까워지자 김씨 가문의 장로들을 태운 차가 줄을 지어 도착했다. 대부분 정원에 앉아 차와 다과를 먹으며 담소를 나누고 있었다. 그들은 오늘 도대체 어떤 이유로 회의를 연 것인지 몰랐다. 그저 김씨 가문에 큰일이 일어났고, 어르신인 김 씨 노부인이 마련한 자리이니 안 올 수밖에 없었다.다들 마당에 모여 앉으니 금세 김 씨 고택이 시끌벅적해졌다. 하지만, 오늘의 주인공은 아직 도착하지 않았다.김승엽은 집에서 일하는 아주머니들에게 차와 물을 계속 준비하라 말하며 주위를 돌아보았다. 김서진은 아직 도착하지 않았다. 우해영이 오늘 이 자리에 참석할지는 그도 확신이 서지 않았다. 그러나 그녀가 오든 오지 않든 이제는 중요하지 않았다. 지금 가장 중요한 것은 오늘의
김서진은 고개를 가볍게 끄덕이고는 주위를 둘러보며 말했다.“할머니는요?”“금방 나오실 거야. 우리 먼저 시작해도 돼.”그의 말에 김서진도 할머니가 오지 않아도 크게 영향이 가지 않겠다고 생각했다. 정원 가장자리에 서 있던 김서진은 고개를 돌려 한소은을 한번 보았다. 그녀는 자연스럽게 그의 팔을 놓아주고 옆으로 두 발짝 물러섰다.“가문의 어르신들, 장로들, 오늘 이 자리를 마련한 것은...”김서진은 잠시 멈칫하다 고개를 돌려 김승엽을 바라보며 물었다.“작은아버지, 오늘은 작은아버지가 할 말이 있어서 회의를 마련한 거죠?”그가 주동적으로 자기에게 묻자, 김승엽은 득의양양하게 웃으며 대답했다.“당연하지, 아주 중요한 일이야. 우리 김씨 가문 핏줄에 관한 이야기지!”김승엽의 말을 듣고 모든 사람은 흠칫 놀라며 시선을 그에게 집중했다.“김씨 가문 핏줄에 관한 얘기라니! 혹시... 네가 결혼도 하기 전에 사고 쳐서 아이가 생긴 거냐?”그의 말을 듣던 한 장로가 우스갯소리로 말을 하자 모두 하하거리며 웃기 시작했다.이에 김승엽은 화를 내지 않았다. 그저 그 장로를 보면서 말했다.“둘째 큰아버지, 제 아이는 언젠가는 태어날 겁니다. 하지만 오늘 할 얘기는 이 일이 아니에요. 우리 김씨 가문 핏줄의 정통성에 관해서 할 말이 있어서 여러분을 이곳에 모셨습니다!”그는 목소리를 조금 더 높여 모든 사람이 그의 말을 들을 수 있게 했다. 그의 엄숙한 목소리와 진지한 표정을 보자 웃던 사람들도 웃음기를 거두고 분위기에 따라 엄숙해졌다.그중 한 어르신이 궁금함을 참지 못하고 그에게 물었다.“승엽아. 도대체 무슨 일이길래 이렇게 심각하게 말하는 거야?”김승엽은 아무런 말도 대답하지 않고 몸을 돌려 옆에 서 있는 김서진을 바라보았다.원래, 이런 가족회의는 항상 김서진이 발언하는 사람이었고 자기는 그저 앉아서 듣기만 했었다. 하지만 앞으로는 달라질 것이다.김서진은 김승엽의 눈빛을 피하지 않고 담담하고 그를 쳐다보았다.‘아직 아무것도 모르나 보군.’그런 김
소은은 고개를 들어 눈물을 참으며 말했다. “한 가지 이상한 게 있어요.”“무슨 일이에요?” 임남을 달래던 임상언이 무심히 되물었다.“로사 왕자는 감금된 것이 아니라 그날 Y국으로 송환되었다고 들었는데, 그렇다면 왜 그동안 로사 왕자와 연락이 닿지 않았던 걸까요?” 소은의 말에 임상언은 잠시 생각하더니 말했다. “두 가지 가능성이 있겠죠. 신호가 나쁘거나 핸드폰을 확인하지 못했을 수도 있고, 로사 왕자가 저희 연락을 거부하고 있을 수도...”두 사람은 잠시 눈을 마주쳤다. 말은 없었지만, 둘 다 이미 답을 얻은 듯했다. 로사 왕자가 그토록 연락을 피하려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도 나름의 계획을 세우고 있는 건가?...3일 후. 소은은 마지막 침을 놓고 손을 거두었다. 그녀는 자리에서 일어나지 않고 여왕을 쳐다보며 말했다. “오늘 시술로 폐하의 다리에 감각이 돌아오실 겁니다. 하지만 일어서는 건 천천히 시도하셔야 합니다. 너무 서두르시면 안 돼요.”소은은 말을 마치고 갑자기 미소를 지었다.“무엇 때문에 웃는 거지?” 여왕은 여전히 자신의 다리를 어루만지며 물었다. 이미 이틀 전부터 약간의 감각이 돌아왔음을 느낀 터라, 소은의 말이 사실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소은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제가 쓸데없는 일을 하고 있는 게 아닌가 싶어서요. 사실 R10 실험을 고집하신다면 결국 폐하께서는 이 몸을 떠나게 되실 텐데, 제가 이 몸에 애쓰는 일이 무슨 의미가 있겠어요?”여왕은 눈을 가늘게 뜨며 물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계속한 거지?”“어쩌면, 폐하께서 마음을 바꾸실 지도 모르니까요.” 소은은 부드럽게 대답했다. “어쩌면 자신의 몸이 무엇보다 소중한 것이라는 걸 깨닫게 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거든요.”“우리 모두 이 세상에 올 때 두 손은 비어있지만, 이 몸만은 오로지 우리 자신의 것이죠. 몸마저 버리신다면, 그 영혼은 여전히 진짜 자신일 수 있을까요?”“그렇구나.” 여왕은 잠시 생각에 잠기더
소은은 조용히 몸을 일으키며 여왕을 쳐다보았다. “물론이죠.” 소은은 담담하게 답했다. 그 대답에는 원망이나 비난의 기색은 전혀 없었다.“그렇다면... 조금 아쉽네.” 여왕은 생각에 잠긴 듯 낮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얻는 것이 있으면, 잃는 것도 있기 마련입니다. 세상 모든 일은 균형을 맞추려 하죠. R10이 폐하께서 이루고자 하는 꿈이라면, 저는 그것을 막을 수 없어요. 다만, 그때가 되어 성공하든 실패하든, 저는 그 모습을 보지 못할 테니 부디 후회하지 않으시길 바랍니다.” 소은은 살짝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이고는 문 밖으로 나갔다.릭은 여전히 문 앞에서 대기 중이었다. 그녀와 여왕의 대화가 거의 다 들렸던 듯, 둘의 시선이 잠시 교차했다. 소은이 그를 지나쳐 나가자, 릭은 곧장 방으로 들어갔다.“여왕 폐하.” 릭은 여왕을 쳐다보며 입을 열었다. 그녀의 다리에 꽂힌 은침을 보자 릭의 눈빛이 굳어졌다. “이건...”“괜찮아. 곧 소은이가 와서 침을 빼줄 거야.” 여왕은 무심하게 손을 흔들며 말했다.릭은 여전히 불안한 눈빛으로 말했다. “폐하께서 너무 방심하시는 것 아닙니까? 만약 한소은이 폐하께...”“그럴 리 없다.” 여왕은 단호히 그의 말을 잘랐다.릭은 당황한 얼굴로 물었다. “설마 그 여자를 믿으시는 겁니까?”여왕은 대답 대신 잠시 침묵을 지켰다. 그녀도 릭의 질문이 아니었다면 자신이 소은을 믿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했을 것이다. 오랜 세월 누구도 쉽게 믿지 않겠다고 다짐했지만, 그녀는 소은을 의심하지 않았다. 심지어 은침에 독이 묻어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제가 가서 잡아오도록 하죠.”여왕이 생각에 잠기자 릭은 바로 뒤돌아섰다.“거기 서!”여왕은 결연히 말했다. “난 믿어.”릭은 한참을 침묵하며 여왕의 결정을 받아들였다....임상언은 아들을 다시 만날 수 있을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 비록 아들을 구하려는 결심을 굳혔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희망이 사라지는 듯했다.
소은은 허리춤에서 허리띠처럼 생긴 물건을 꺼내더니 조심스럽게 풀어내며, 그 안에 숨겨진 가느다란 은침을 꺼냈다.“이건...” 여왕은 깜짝 놀라며 소은을 쳐다봤다. 소은이가 은침을 항상 가지고 다닐 줄은 상상도 못 했던 것이다.“말해봐, 네 요구가 뭐지?” 여왕은 깊게 숨을 들이마시며 마음을 가다듬으려 애썼다. 너무 무리한 요구라면 거절하면 그만이다. 여왕은 절대 소은에게 휘둘리지 않겠다고 다짐했다.소은은 차분하게 말했다. “제가 여기서 나올 수 있었던 건 로사 왕자님 덕분입니다. 그러니, 왕자님을 책망하지 않으셨으면 합니다.”“그게 다야?” 여왕은 의아해하며 물었다. 소은이 여기까지 와서 자신과 조건을 따지는데, 결국 요구한 게 단지 로사를 처벌하지 말라는 거라니. 자신이 잘못 들은 건가 싶었다.“로사는 내 아들이다. 내가 정말 내 아들에게 손을 댈 리는 없지. 괜히 기회를 헛되게 쓴 건 아닌가?” 여왕은 고개를 저으며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전 폐하께서 정말 로사 왕자님께 처벌을 내리시지 않을지 장담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왕자 폐하께서 저를 구해준 건 사실이기에 저도 왕자 폐하를 위해 무언가를 해야 할 것 같았습니다.” 소은은 조용히 말했다. “게다가 지금 왕자 폐하를 감금하시고 자유를 제한하고 계시지 않나요?”여왕은 의아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아니야. 난 단지 로사를 Y국으로 돌려보냈을 뿐이야.”“로사가 여기서 내 일을 여러모로 방해하긴 했지만, 우리 모자 사이가 더 악화되기를 바라지 않았다. 국내에서도 로사가 필요하니 Y국으로 돌려보낸 것뿐이다.” 여왕은 담담하게 말했다.“그런데 왜 왕자 폐하의 전화가 연결되지 않죠?” 소은은 잠시 멈칫했다. 단지 귀국했다면 국제전화를 받을 수 있을 텐데, 연락이 닿지 않았기에 여왕이 로사를 가둬놓았다고 오해할 수밖에 없었다.여왕은 깊은 숨을 내쉬며 말했다. “그 부분에 대해서는 나도 잘 모르겠군. 그날 내가 화가 났던 건 사실이지만, 곧바로 Y국으로 돌아가도록
“삼일이면 됩니다.” 소은은 여왕을 쳐다보며 작은 소리로 말했다.“삼일? 고작 삼일?” 여왕의 눈에는 믿기지 않는 놀라움이 서렸다. 그녀는 적어도 몇 달, 아니 최소한 몇 년은 걸릴 줄 알았다. 그러나 고작 삼일이라니, 그녀로서는 상상도 못 한 시간이었다.삼일쯤이야. 십 수년을 이렇게 버텨왔는데, 삼일쯤 더 기다린다고 달라질 게 뭐 있겠는가?“삼일 안에 정말 나아질 수 있는 건가? 내가 정말 다시 일어서서 걸을 수 있는 건가?” 여왕은 두 손으로 자신의 다리를 힘껏 눌렀지만 여전히 아무런 감각이 없었다. 그녀는 소은의 말을 쉽게 믿을 수가 없었다. 이 다리가 감각을 잃은지 너무 오래되어 치료할 수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동안 여왕은 여러 나라의 명의를 찾아 다녔지만, 그들은 단지 병의 악화를 늦출 수 있을 뿐 다리를 완전히 회복시키는 건 불가능하다고 했었다. 그러나 지금 소은은 그녀 앞에 서서 확신에 찬 얼굴로 가능하다고 말하고 있었다. 그녀는 속으로 자신도 모르게 그 말을 믿고 싶어졌다.“이전처럼 완벽하게 걸을 수 있을 거라고 장담할 순 없어요. 너무 오랫동안 움직이지 않아서 근육이 많이 위축됐거든요. 하지만 서서히 일어나서 조금씩 회복하는 것은 가능합니다.” 소은은 진지한 어조로 답했다.여왕은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정도라도 충분히 만족스러웠다. 젊었을 때처럼 완전히 회복되는 것을 기대하지 않았다. 그러나 만약 휠체어와 지팡이 없이 다시 일어설 수 있다면, 그 자체로도 그녀에겐 더할 나위 없는 희망이었다.“좋아. 삼일, 기다리겠네. 필요한 게 있나?” 여왕은 기분이 좋아져 말을 한층 부드럽게 했다.“임남...” 소은이 말을 꺼내자마자 여왕의 얼굴이 굳어졌다. 그녀는 곧바로 고개를 저으며 거절했다. “그건 안 돼. 그런 요구는 하지 마라.”“제가 말한 건 임남을 바로 풀어달라는 게 아닙니다. 그냥... 그 아이가 괜찮은지 알고 싶고, 가능하다면 아버지와 한 번 만날 기회를 주시면 좋겠습니다.”
“이 실험을 결정할 수 있는 사람은 저와 프레드 뿐이기 때문입니다.” 소은은 잠시 생각하다가 덧붙였다. “아니면 주효정을 믿으실 건가요?”“나는... 아무도 믿지 않아.” 여왕은 얼굴을 차갑게 굳히며 휠체어를 돌렸다.“여왕 폐하께서 이 실험에 집착하고 계시는 건 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이 전부인가요? 세상을 둘러보고 싶다거나, 짐을 내려놓고 잠시 쉬고 싶은 마음은 전혀 없으신가요? 수십 년간 왕좌에 오르셨지만, 정말로 아직도 그 삶이 좋으신가요? 언제나 긴장하며 위태로운 자리를 견디는 고단한 나날, 정말 아직도 벗어나고 싶지 않으신가요?” 소은은 여왕의 등을 쳐다보며 부드럽게 물었다.여왕은 아무 말 없이 자신의 무릎을 쓰다듬으며 고개를 살짝 떨구었다. 그녀는 시선을 다리로 내리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세상을 둘러본다? 나는... 걷는 게 어떤 느낌인지도 잊어버렸어.”여왕은 오랜 세월 동안 다리를 쓰지 않았고, 처음에는 억지로라도 일어설 수 있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상태는 악화되었고 이제는 아예 휠체어 없이는 움직일 수 없게 되었다. 그녀는 휠체어에 익숙해졌다고 생각했지만, 소은이 ‘세상을 둘러보라’는 말을 꺼내자 가슴이 아팠다.“만약... 폐하께서 다시 일어설 수 있다면요? 제가 다시 걷게 해드린다면요?” 소은은 조용히 여왕의 뒤에 서서 말했다.여왕은 잠시 멈칫하더니, 눈빛이 날카롭게 변하며 휠체어를 돌려 소은을 똑바로 쳐다보았다. “정말이냐?” 여왕의 눈에는 억누를 수 없는 희망과 깊은 의심이 뒤섞여 있었다.소은은 대답 대신 그녀의 시선을 천천히 여왕의 다리로 내리고, 천천히 다가가서 무릎을 꿇었다. 그리고 손을 뻗어 여왕의 무릎 위에 가볍게 손을 올렸다.여왕은 살짝 몸을 떨었다. 사실, 그녀의 다리는 거의 완전히 감각을 잃은 상태라서 소은의 손길도 느껴지지 않았지만, 그녀는 자신도 모르게 움츠러들었다. 아마도 너무나 간절히 다시 일어서고 싶기 때문이었을 것이다.소은은 아무 말 없이 여왕의
“맞아요, 임남 때문이기도 하지만, 폐하 때문이기도 합니다.” 소은은 주저하지 않고 대답했다. “제가 정말로 떠나버렸다면, 가장 초조해지는 사람은 사실 여왕 폐하 아닐까요?”여왕은 코웃음을 치며 차갑게 말했다. “내가 초조해질 이유가 뭐지? 어차피 내 손엔 네 약점이 있잖아. 너를 다시 잡아오는 것도 전혀 어려운 일이 아니고.”“약점이요? 임남 말씀이신가요?” 소은은 부드럽게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잊지 마세요, 임남이는 제 아들이 아닙니다. 저에게는 제 친자식이 셋이나 있어요. 만약 제가 마음을 단단히 먹고 임남을 포기해 제 아이들을 지키려 한다면, 그 약점이 과연 제게 약점이 맞을까요?”여왕이 입을 열기도 전에 소은은 다시 말을 이었다. “게다가, 그 아이에겐 목숨을 걸고서라도 구하려는 아버지가 있습니다. 만약 임상언이 폐하께 끝까지 맞서기로 결심한다면...” “폐하께서야 높은 자리에 있으니 이런 평범한 상인을 하찮게 여기실 수 있지만, 임상언 씨가 단순한 상인이 아니라는 걸 잊으시면 안 됩니다. 임상언 씨의 사업은 세계 곳곳에 뻗어 있어요. 임상언 씨가 목숨을 걸 각오가 되어 있다면 그 어떤 일도 할 수 있겠죠. 혹시라도 바깥에 소문이 퍼져 폐하와 Y국의 명망이 손상된다면, 곤란하지 않겠습니까?”“너...” 여왕은 화가 치밀어 올랐지만 반박할 말이 당장 떠오르지 않았다.여왕이 화가 난 것을 보고, 소은은 한결 차분하게 말을 이어갔다. “화내지 마세요. 제가 돌아온 건 폐하를 자극하려는 게 아닙니다. 함께 최선의 방향을 찾고자 돌아온 거예요. 사실 폐하께서 H국에 오신 일이 밝혀진 건 아니지만, 꽤 오랜 시간 H국에 머물고 계셨습니다. 정말로 H국이 이 사실을 모르고 있을 거라고 생각하세요?”여왕은 말없이 그녀를 쳐다보았다. “지금까지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건 폐하의 체면을 살려드린 겁니다. 그러나 폐하께서 이곳에서 계속 머무르시며 혹여 무리수를 두신다면, 얼마나 더 체류하실 수 있을까요? Y국도 계속해서
릭은 잠시 침묵을 지켰다. 여왕은 모니터에서 시선을 돌리며 담담히 말했다. “소은을 데려와. 어디 한번 무슨 변명을 할지 들어보자. 또 어떤 이야기를 꾸며낼지 궁금하네.” 여왕은 휠체어를 살짝 돌려 더 이상 모니터를 보지 않았다.“여왕 폐하?” 릭은 망설이다가 말했다. “한소은이 거짓말을 할 걸 아시면서도 굳이 왜...” 그러나 여왕은 그 말을 끝까지 듣지 않고 단호히 말했다. “듣고 싶어!” 이 한마디에 릭은 더 이상 말을 잇지 않았다. 그는 곧장 소은이 있는 방으로 발걸음을 옮겼다.소은이 정말로 잠이 들려고 하던 순간, 문 밖에서 인기척이 들렸다. 그녀는 곧바로 정신을 차리고 눈을 떴다. 눈을 뜨는 순간, 문이 열리면서 릭이 문 앞에 서 있었다. 그의 얼굴은 굳어 있었고,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여왕께서 한소은 씨를 만나고 싶어 하십니다.” 소은은 차분한 표정으로 릭을 쳐다보았다. 마치 모든 상황을 예견한 듯 고요하게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와 동시에 임상언은 소은보다 먼저 일어나 문으로 향했다. 그러나 그가 문에 도착하자마자 릭이 손을 들어 그의 앞을 막았다. “그쪽은 남아 계시죠.” “뭐? 우리 둘은 같이 온 거야!” 임상언은 소은을 돌아보며 그녀에게 눈짓으로 도움을 요청했다. 릭은 차가운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여왕 폐하께서 그쪽을 부르지 않았으니 여기 남으시죠.” 릭은 더 이상 임상언에게 말을 할 기회조차 주지 않았다.소은은 임상언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리며 부드럽게 말했다. “절 기다리고 있어요.” 임상언은 마음이 편치 않았지만, 억지로 마음을 다스리며 그녀가 릭과 함께 방을 나서는 것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조심해요.” 임상언은 소은을 향해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말했다.소은은 미소를 지어 그에게 답했고, 릭을 따라 여왕의 방으로 향했다. 익숙한 길을 따라 걷는 그녀는 곧 여왕의 방에 도착했다. 릭이 문을 두드리며 말했다. “여왕 폐하, 데려왔습니다
소은이 임상언을 데리고 대사관에 도착하자, 그곳에 있는 사람들은 눈에 띄게 당황했다.한 사람이 서둘러 소식을 알리러 가더니, 이내 주변 구석구석에서 누군가가 몰래 그들을 엿보는 기척이 느껴졌다. 곧이어, 소은이 잘 알고 있는 여왕의 측근 몇 명이 경계 어린 눈빛으로 다가와 그들을 안으로 안내했다. 안으로 들어가자마자 그들은 소은과 임상언의 몸을 샅샅이 검사하며 위험 물품을 소지하지 않았는지 확인했다. 철저한 검사가 끝난 후에야 비로소 경계가 풀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두 사람은 여왕을 만나지 못했고, 한적하고 깊숙한 방에 대기하도록 배정받았다. 오랜만에 돌아온 이곳은 소은에게 익숙하면서도 낯설게 느껴졌다. 익숙한 것은 이 장소였지만, 낯선 것은 지금의 마음가짐이었다. 예전에는 이곳이 싫고 불쾌하기만 했으며, 하루빨리 벗어나고 싶은 장소였다. 그러나 이번에는 임무와 사명을 가지고 돌아왔고, 그녀의 목표는 단순히 여기를 떠나는 것이 아닌, 중요한 일을 완수하고 무사히 돌아가는 것이었다.반면, 임상언은 눈에 띄게 불안해 보였다. 그는 두 손을 맞잡고 무릎 위에 놓은 채,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다리를 가볍게 떨고 있었다. 소은은 그의 초조함을 이해할 수 있었다. 임남을 생각하면 마음이 몹시 불안하고 조급해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여기까지 왔으니 임남을 반드시 볼 수 있을 거예요. 그러니 긴장 좀 풀어요.” 소은이 작은 소리로 말했다. 임상언은 그녀를 보며 고개를 끄덕이고, 발을 땅에 꾹 눌러 다리를 멈췄다. 겉으로는 조금 안정된 듯 보였지만, 그의 얼굴은 여전히 긴장감이 가득했고 미세하게 떨리는 얼굴 근육이 그의 불안한 마음을 보여주었다. 마음을 진정시키는 게 말처럼 쉽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소은은 더 이상 말을 꺼내지 않았다.두 사람은 한참을 기다렸지만, 여왕을 만나러 오라는 사람은커녕 상황을 확인하러 오는 사람조차 없었다. 긴장했던 임상언은 결국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대체 무슨 의도인 거죠? 왜 아직
“제발 부탁이에요. 안에서는 소은 씨 말만 따를게요. 소은 씨가 시키는 대로 다 할 테니까, 제발 절 데려가 주시면 안 돼요?” 임상언은 진심 어린 목소리로 소은에게 간청했다. 자존심은 이미 버린 지 오래였다. 아들을 만나고 싶은 간절한 마음이 그를 이 지경까지 이르게 했다. 소은이 반드시 돌아가겠다고 결심한 순간, 임상언은 이미 마음을 굳혔다. 자신이 함께 가는 것이 가장 안전한 방법이었다. “다른 사람들이 같이 가면 의심을 받거나 제지를 당할 수도 있어요. 하지만 전 아니에요.” 임상언은 계속 설득을 이어갔다. “임남이 그 안에 있다는 걸 모두 알고 있잖아요. 제가 아들을 만나고 구하려고 하는 건 당연한 일이에요. 그리고 아들을 위해서 제 목숨을 바치는 것도 이해될 수 있는 일이죠. 그러니 제가 가는 게 가장 올바른 선택이에요.” 긴 침묵 끝에, 소은이 입을 열었다. “임상언 씨 말이 맞아요. 전 동의합니다.” 소은은 말을 마치고 서진에게 시선을 돌렸다. 서진은 잠시 생각하더니 천천히 손을 들어 올리며 말했다. “저도 동의합니다.” 원청현은 테이블을 손가락으로 가볍게 두드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면, 나도 동의하지.” 잠시 침묵하던 진정기 역시 마침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동의합니다.” 마지막으로 원철수는 주변을 둘러보며 한숨을 내쉬고 손을 펼쳤다. “모두 동의했는데 내가 뭐라고 반대하겠어. 나도 찬성이야.” 사실 원철수의 의견은 크게 중요하지 않았지만, 그럼에도 임상언에게 지지를 표현하는 의미였다. 임상언은 눈시울이 붉어지며 고개를 끄덕였다. “정말 감사합니다. 모두들 고마워요.” “이게 뭔 감사할 일이라고. 어쨌든 안에 들어가면 절대 신중해야 해. 무슨 일이 있어도 감정에 휘둘리지 말고. 네 입으로 한 말 반드시 지켜!” 원철수는 그의 결심을 칭찬하면서도 걱정스러운 마음을 감추지 못했다. 원철수는 속으로 임상언의 결단에 감탄했다. 한 아이의 아버지로서 그는 분명 최선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