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해민은 정말 우해영의 말을 이해하지 못했다. 도대체 무슨 뜻인지 모르겠다는 표정을 지으며 되물었다.“우리에... 관한 얘기?”그녀는 두 눈을 깜빡이며 어리둥절했다.“모르는 척하는 거야? 응?”우해영은 손가락으로 그녀의 입술을 가볍게 어루만지며 입가에 조롱하는 웃음을 머금고 있었다.“해민아, 이번에 섬에서 나오고 나서부터 네 생각이 정말 많아졌네.”"언니, 난 그런 적 없어!"그녀와 비슷한 두 눈은 놀라움으로 가득 찼다. 우해민은 얼른 말했다.“언니가 무슨 말을 하는 건지 이제 알겠어. 하지만 난 그런 적 없어, 정말이야!”"언니, 내가 그 사람을 좋아하는 건 인정하지만, 그 사람과 함께 있을 때, 나는 하지 말아야 할 말을 한 적 없어. 이렇게 큰일은 말할 것도 없고. 언니와 나의 일은, 엄마 아빠, 그리고 집에 있는 몇 사람을 제외하고 다른 사람은 다 모르잖아, 그걸 다 알면서 내가 어떻게 말하겠어!"우해민은 조급한 마음에 말이 점점 더 빨라졌다. 그녀는 우해영이 자기의 말을 믿지 못할까 봐 걱정했다.그녀는 감히 움직이지 못했다. 우해영이 그녀의 턱을 쥐고 있는 걸 반항하지도 그녀의 눈을 피하지도 않았다. 그저 자기가 거짓말을 한 게 아니라고 증명했다."언니, 나는 바보가 아니야, 이 일을 말하면 내가 살 길이 있겠어? 그리고 나에게 무슨 좋은 점이 있어! 설마 내가 그에게 이 사실을 말하면 그가 나와 결혼할 거도 아니잖아? 그와 결혼할 사람은 언제나 언니였고, 그 사람이 원하는 것도 우리 우씨 가문의 재산이라는 거 나도 잘 알고 있어, 내가 그와 함께 있을 때, 그의 눈에 보이는 것은 언니야, 내가 아니라는 거 잘 알아!"말하다 보니 그녀의 눈에서 눈물이 걷잡을 수 없이 뚝뚝 떨어졌다.우해민의 눈물이 우해영의 손가락에 떨어졌는데, 뜻밖에도 너무 뜨거워서, 그녀는 깜짝 놀라 무의식적으로 손을 움츠렸다.그러자 우해민이 눈물을 훔치며 말했다."언니, 잘 생각해 봐. 난 거짓말 안 했어. 내 말 한마디 한마디가 다 사실이야!"이 말
"예전에는 몰랐는데, 너도 이런 솜씨가 있구나."배즙을 절반 정도 마시고 나니 우해영은 기침이 멈추었고 많이 편해졌다."예전에는 내 생각이 짧았어, 그날 언니에게 욕을 먹은 후 정신 차렸어. 앞으로 나는 언니를 잘 돌보고, 언니를 도울 거야. 왜냐하면 언니를 도와주는 게 나 자신을 도와주는 거니까!"우해영은 만족스러운 듯 고개를 끄덕였다."나는 방으로 돌아가 쉬어야겠어. 기사 보고 회사로 데려다 달라고 말해.""응! 언니, 푹 쉬고 몸조리 잘해!"그녀는 뒤에 서서 우해영이 방을 나가는 걸 확인하고 나서야 비로소 얼굴의 웃음을 거두었다.손에 든 그릇을 내려놓고 그녀는 가볍게 손뼉을 치며 옷방으로 향했다. 간만에 하는 외출이니 예쁜 옷을 입어야겠다.————노부인이 집으로 다시 방문할 거라는 건 한소은의 예상 밖이었다.그녀는 지난번 소동 이후 노부인이 다시 올 줄은 생각하지 못했다.지난번에는 준비가 되어 있었고, 그녀가 무엇을 위해 왔는지 알았지만, 이번에는…. 전혀 알 수가 없었다.‘설마 김승엽이 그 비적이 가짜라는걸 알아차리고 다시 훔치려 하는 건가? 하지만 그 비적을 가짜라는 걸 알았다면 분명 우리가 파놓은 함정이었다는 것도 알 텐데, 또 같은 계획으로 불러내려는 속셈인가?’일하는 아주머니가 와서 노부인이 방문했다고 보고했을 때 그녀는 자신이 잘못 들은 줄 알았다. 그러다 베란다 옆에 서서 김씨 가문의 차를 보았다.“노부인 혼자 온 거예요? 아니면 다른 사람도 있나요?”‘설마 김승엽이 이번에는 대놓고 들어오려는 건가?’"아니요, 노부인 혼자 오셨어요."“경비원보고 문 열어주라고 해요.”한소은이 말했다.“노부인이 들어오시면 먼저 거실로 안내해요. 난 가서 옷 좀 갈아입어야겠어요.”그녀는 잠시 고민하다 김서진에게 전화를 걸었다. 지난번 습격을 당한 후부터 그는 유난히 긴장했다. 그의 할머니가 오신 일은 역시 그에게 말해야 했다.“혼자 오신 거예요?”역시 김서진도 같은 물음을 물었다.“혼자 오셨대요. 혹시 저번처럼 날 불러내
옷을 갈아입고 아래층으로 내려가자, 할머니는 이미 소파에 앉아 차를 마시고 계셨다.한소은은 내려오면서 노부인의 눈치를 살폈다. 그녀의 표정을 보니 다소 피곤한 기색이 있는 것 같았다. 기세등등한 느낌은 없었고, 트집을 잡으러 온 것은 아닐 것이다."할머니."그녀는 예의 바르게 노부인을 부르며 빠르게 걸어갔다.“천천히 오렴.”노부인은 한소은의 배를 바라보며 급히 말했다.“넌 지금 임신한 상태이니 조급해하지 말고 모든 일을 조심해야 해. 전처럼 깡충깡충 뛰어서는 절대 안 된다.”"알아요."한소은이 고개를 끄덕이며 미소를 지었다."오늘은 어쩐 일이세요?"“그게...”노부인은 찻잔을 내려놓고 사방을 둘러보았다.“서진이는 집에 없어?”한소은이 작게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이 시간에는 회사에 있어요. 할머니가 더 잘 아시면서.”김서진이 집에 없는 걸 알면서도 노부인이 찾아온 것은 분명 무슨 일이 있으리라 생각했다.오른 찾아온 게 목적이 있다는 게 걸리자, 노부인은 멋쩍은 웃음을 지으며 다시 찻잔을 들어 차를 한 모금 마셨다."그래, 이 시간에 회사에 있어야지. 서진이는 할아버지와 많이 닮았단다. 그 당시 서진이 할아버지도 이렇게 부지런히 일했고, 항상 바빴지."옛날 생각이 났는지 노부인의 눈빛은 슬펐다. 아마 김서진의 할아버지가 생각났을 것이다.한동안 한소은은 그녀가 이 말을 한 게 무슨 뜻인지 몰라서 대답하지 않았다.“아이고, 내가 괜히 이런 말을 꺼내서!”잠시 침묵하다 노부인이 정신을 차리고 웃으며 말했다. 그녀는 한소은이 자신의 맞은편에 앉아 있는 것을 보고 이리 오라고 손짓했다."소은아, 할미 옆에 와 앉아!"말하면서 자기의 옆자리를 탁탁 두드렸다.갑자기 이렇게 다정한 호칭에 그녀는 정말 익숙하지 않았다.하지만 적어도 노부인이 선의를 가지고 온 것으로 생각해 거절하지 않고 일어서 노부인의 옆에 가서 앉았다. 그러자 노부인이 난데없이 손을 뻗어 그녀의 손을 맞잡으며 말했다.“아가, 미안하구나.”노부인의 갑작스러운
일이 이렇게 된 이상 마음속에 묻혀든 말을 안 할 수가 없었다.“내 체면을 세워주려 이런 말 하지 않아도 돼. 그건 우연이 아니야. 오늘 내가 여기로 다시 온 것은 그 무술 비적이란 게 아직도 너희들 손에 있는지 물어보려고 온 거야.”김승엽의 말대로라면 김서진이 가짜 비적으로 함정을 만들어 그가 걸려들게 했다. 정말 함정이라면 그때 김승엽을 잡지 않고 왜 그가 가짜 비적을 가져가게 했을까? 혹시 다른 계획이 있는 걸까? 노부인은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가 가지 않았다.“할머니, 비적에 관해서는 저도 잘 몰라요. 서진 씨가 돌아오면 직접 물어보세요.”노부인이 직설적으로 물었지만, 한소은은 쉽게 대답할 수 없었다. 그녀가 사실을 알려주는 건 둘째 치고 노부인이 그녀의 말을 믿는다는 보장도 없었다.‘김승엽을 대신해 찔러보려고 온 건가? 도대체 무슨 꿍꿍이지?’노부인에 대해 한소은은 경계를 쉽게 풀 수 없었다. 노인에게 무례하게 굴지는 않겠지만 완전히 믿을 수도 없었다. 이렇게 오랜 시간 동안 노부인이 자기의 아들을 편애하고 손자에 대해서는 각별히 가혹하게 대한 사실을 한소은은 모두 알고 있다."그래, 네가 말하고 싶지 않으면 이 할미도 묻지 않을게! 이전의 일들은 모두 할미 잘못이야. 너희들의 결혼에 대해선 내가 간섭할 수 없다는 걸 잘 알고 있고 간섭하고 싶지도 않아. 너희들이 좋으면 됐어. 나는 이제 늙어서 여기저기 간섭할 힘도 없어!"순간 노인이 많이 늙어 보였다. 그녀의 손등을 가볍게 두드리며 담담히 말했다.저번에 보았을 때 노부인은 나이가 많았지만, 자기관리에 철저한 사람이라 활기가 가득하고 그 연령대 노인들과 비교해도 훨씬 젊어 보였는데, 이번에는 왠지 모르게 아주 피곤해 보였다. 정신으로든 몸으로든 다 피곤해 보였다."할머니, 왜 그러세요?"한소은은 머뭇거리며 물었다. 노부인은 마치 할 말이 있는데 쉽게 말을 꺼내지 못하는 거 같아 보였다."괜찮아!"노부인은 애써 웃으며 대답했다. 그러고는 벽에 걸린 시계를 보더니 자리에서 일어나려
한소은의 말에 김서진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가 집으로 돌아왔을 때 그의 할머니가 이미 돌아간 후여서 그도 할머니가 왜 갑자기 찾아온 것인지 잘 몰랐다.“할머니가 돌아가면서 토요일에 당신도 참석하라고 했다고요?”김서진이 잠시 고민하다 물었다.그러자 한소은이 고개를 끄덕였다.“그렇게 말씀하셨지만 강요하지는 않았어요. 그저 만약 내가 당신과 함께 간다면 기뻐할 거라고 했어요. 왜요? 토요일 가족회의가 이상한가요?”“당신도 이상함을 느꼈어요?”김서진이 긴 손가락으로 그녀의 콧등을 스치고는 웃으며 말했다.“걱정하지 마요! 이렇게 오랜 시간이 지났는데 그 사람들도 더 이상 꾸밀 수 있는 일이 없을 거예요.”“당신의 말대로라면 당신 작은아버지가 비적이 가짜라는 걸 눈치챘을 텐데 왜 아직 찾아오지 않는 거죠?”“자기가 훔쳐 간 물건인데 가짜였다는 걸 발견하고 따지러 온다면 도둑이 제 발 저린 거잖아요. 우리보다 작은아버지는 우해영에게 더 화가 났을 거예요.”결국은 그의 입장에서 생각해 보면 우해영이 그를 이용해 눈속임했고, 그 사이 우해영이 ‘진짜’ 비적을 가져간 것이다. 그러고 나서 그를 가차 없이 내다 버렸다. 우해영 그 여자는 확실히 매우 개략적인 사람이다.“그럼, 토요일에 나도 가는 거예요?잠시 고민하던 한소은이 김서진에게 물었다.“당신 생각은요? 가고 싶으면 못 갈 것도 없어요.”만약 한소은이 가겠다고 하면 김서진은 그녀를 잘 보호할 자신이 있다. 지금까지 그녀가 그런 자리에 참석하지 못하게 하는 것은 돈과 권력을 두고 서로 다투는 추악한 몰골을 한 사람을 보게 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기분 봐서요!”한소은은 대수롭지 않다는 듯 어깨를 으쓱이며 웃어 보였다.그녀의 달콤한 미소를 보자 김서진은 하루 동안 쌓인 피로가 다 풀리는 듯했다. 김서진은 그녀에게 가까이 다가가 작은 소리로 속삭였다.“그럼, 우리 예쁜 부인님, 오늘 기분이 어때요? 나와 함께 저녁 식사나 할래요?”“나는...”그녀가 말을 다 하기도 전에 김서진이
“알았어.”우해민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고는 비서더러 나가라고 손짓했다.“그만 나가봐. 좀 쉬고 싶어.”비서가 눈치 있게 물러서자 우해민은 손을 사무실 내의 전화기에 갖다 댔다. 숫자 버튼을 살짝 눌렀지만, 수화기를 들지 않았다.그녀는 지금 핸드폰이 없다. 유일하게 그녀에게 허락된 핸드폰은 우해영이 수시로 그녀와 연락하고 지령을 내리는 데 사용했었고 집으로 돌아가면 그것마저도 언니가 뺏어가 버린다.우해민은 핸드폰에 어떤 앱도 깔 권리가 없다. 누군가의 전화번호를 저장하는 건 더더욱 허락되지 않았다. 그녀는 그저 우해영의 그림자일 뿐이다. 언니의 그림자로써 친구를 만들어서도 자기만의 사교가 있어서도 안 되었다.그래서 우해민은 지금까지 주동적으로 김승엽에게 연락하지 못했다. 다만, 그의 전화번호는 진작에 머릿속 깊이 기억해 두고 있었다.핸드폰으로 그에게 몰래 전화한다는 건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다. 그녀의 핸드폰에는 우해영이 설치한 도청 장치가 설치되어 있고, 그녀에게 있어서 그 핸드폰은 감시카메라와 다름이 없었다. 회사의 전화에도 녹음이 항시 되고 있었다.우해민은 잠시 고민하다 결국 전화기를 들었다. 그러고는 빠르게 자기가 기억했던 번호로 전화했다.한편, 전화가 울리자, 김승엽은 빠르게 전화를 받았다. 바쁘게 어디론가 향하던 참이라 그의 숨소리는 생각보다 거칠었다.“여보세요?”“김승엽 씨.”한 글자 한 글자 또박또박 그의 이름을 부르고 우해민은 입술을 꾹 닫았다.그녀의 목소리가 들리자, 김승엽은 흠칫 놀라더니 이윽고 하하거리며 웃기 시작했다.“허, 우씨 가문 아가씨께서 내게 먼저 전화를 걸다니! 혹시 드디어 생각을 바꾼 건가? 역시 내가 그렇게 말한 것이 당신을 위해서라는 게 느껴 지지? 이제야 나와 손을 잡을 생각이 든 거야?”“무슨 일 때문에 회사에까지 전화한 거야?“우해민은 전화기를 꼭 쥐고 그의 말에 대답하는 대신 되물었다.그러자 전화기 너머의 김승엽이 어리둥절했다. 핸드폰에 찍힌 전화번호를 확인하니 그녀가 회사에서 전화를
“당신과 그럴 시간 없어!”두 손으로 전화기를 꼭 쥐고 있던 우해민의 가슴이 떨렸다. ‘나도 당신을 만나고 싶지만…’우해민은 벌써 꽤 오랜 시간 그를 만나지 못했다. 매번 꿈에서 그와 행복하게 데이트하고, 그가 들려주는 달콤한 말과 그의 뜨거운 입술, 촉촉했던 키스들이 나오곤 했다. 꿈에서만 느끼다 잠에서 깨어나면 씁쓸함이 배가되어 다가왔다.김승엽이 목적으로 접근했다는 거, 그가 했던 말에 진심은 거의 없다는 거, 그런 말들은 자기가 아닌 언니에게 했다는 거 모두 다 알지만 그래도 그에게 속고 싶었다. 그의 마음속에 조금이라도 자기가 있다고 믿고 싶었다.어려서부터 지금까지, 20년 넘게 우해민이 아닌 언니 우해영의 그림자로만 살아왔다. 하지만 김승엽은 그녀를 해민이라는 이름으로 불러주었다. 그렇게 많은 사람 앞에서 로맨틱하게 프러포즈하고 평생 행복하게 해주겠다고 약속했다.그날부터, 우해민은 욕심이 생겼고 기대가 생겼다. 처음으로 자기의 인생을 살고 싶었고 언젠가는 평범한 여자들처럼 자기가 사랑하는 사람과 결혼하고 아이를 낳고 가정을 꾸리고 싶었다.하지만 언니 우해영이 모든 걸 망쳐버렸다!우해영은 가장 잔인한 말로 그녀에게 미래는 없다고 일깨워 주었다. 그녀가 바라는 행복은 영원히 없을 거라고, 그런 생각조차 가질 자격이 없다고 말했었다.심지어 김승엽이 그녀에게 준 프러포즈 반지마저도 망가뜨렸다.이걸 생각하니 우해민은 가슴이 무거워지며 숨결마저 굳어졌다.“시간이 없다고?”김승엽은 미간을 찌푸렸다. 그는 그녀가 발뺌하는 것으로 생각했다.이 정도까지 말했고, 그녀도 조금 마음이 바뀐 거 같으니, 쇠뿔도 단김에 빼라는 말이 있듯이 김승엽은 전화로 약속 시간을 정확하게 잡고 싶었다. 그렇지 않으면 이 변덕스러운 여자가 또 생각을 바꿀까 봐, 그는 이 일을 더 이상 미루고 싶지 않았다.“괜찮아, 당신 지금 회사에 있지? 내가 바로 당신 회사로 찾아갈게. 당신은 시간이 없지만 난 시간이 많거든. 우리 만나서 얘기 제대로 하자고.”“잠깐...”
김승엽이 망설이고 있는 사이 차 한 대가 들어오는 것을 발견했다. 이는 분명 그의어머니를 태운 차였다.차가 완전히 멈춰 섰을 때, 김승엽은 빠른 걸음으로 차 옆으로 걸어가 차 문을 잡아당겼다.“어머니, 돌아오셨어요?”노부인은 고개를 들어 그를 한번 쳐다보았다.“너 설마 여기서 내가 돌아오길 기다린 거야?”“그럴 리가요. 마침 나가려던 길에 어머니가 돌아오시는 걸 봤을 뿐이에요.”김승엽은 어색하게 웃어 보였다. 최근 며칠간, 집에서 한발짝도 나가지 않고 노부인을 지키고 있었던 건 사실이다. 하지만 노부인의 일거수일투족을 지켜보며 집에 ‘감금’한 건 아니다.“그래, 정말 우연이구나!”노부인이 고개를 끄덕이며 차에서 내려오려 하자 김승엽은 황급히 손을 뻗어 그녀를 부축했다.“어머니, 어디 다녀오시던 길이예요?”그냥 나가서 좀 돌아보았지. 왜, 밖에 나가는 것도 네게 보고해야 하는 거야?”김승엽의 말에 노부인은 언짢다는 듯 그를 한번 쏘아보았다.“그런 뜻으로 한 말이 아니에요! 그냥 어디 다녀오시는지 궁금해서 그래요. 나가고 싶으면 말씀하시지, 그랬어요. 제가 같이 가주었을 텐데!”그가 이렇게 말했지만, 듣는 노부인의 입장에서는 그가 비꼬아서 말한다고 생각했다.“네가?”노부인은 차에서 내리며 허리가 아픈지 한 손으로 허리를 두드렸다. 그러고는 웃으며 말했다.“네가 언제 나하고 쇼핑을 한 적 있다고. 몇 년이란 시간 동안, 이 엄마랑 쇼핑 한 번 안 해주고 인제 와서?”노부인의 말에 김승엽은 어색한 듯 웃어 보였다.김승엽은 나가서 놀기 좋아하는 사람이다. 항상 어머니에게 감언이설로 달래기만 했지 단 한 번도 어머니에게 정말 효도한 적은 없었다. 기껏해야 가끔 선물을 보내는 걸 효도라고 생각했다. 어차피 자기가 무슨 말을 하건, 어머니는 다 잘 들어 주었고, 어떤 선물을 사주어도 다 좋아했다. 가장 중요한 건 김승엽은 여자와 함께 쇼핑하는 걸 싫어했다.“어머니, 왜 그런 섭섭한 말씀 하세요. 저한테 서운한 거 있으신 거죠?”김승엽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