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현이 가볍게 웃으며 말했다.“소희 일거예요. 소희에게 전화해서 괜찮은지 물어보려던 참이었어요!”그러자 이정남이 피식 웃더니 무심한 말투로 대답했다.“그럴 리가, 소희의 실력으로 다른 사람을 때리면 몰라도 맞고 다니진 않을 거야.”잠시 고민하던 이정남이 제안했다.“잘됐어. 우리 세 사람 언제 한번 모이자고. 영화가 끝나고 약속 잡자. 서로 오랫동안 못 만났잖아!”“그래요!”이현이 쿨하게 대답했다.“정남 씨가 쏘는 건가요?”“쳇!”이정남이 비아냥거리며 대답했다.“설마 너 같은 구두쇠가 털을 뽑기를 바라겠어? 그런 생각은 해본 적도 없어. 당연히 내가 쏘는 거지. 어디서 모일지는 네가 골라!”“좋아요!”이현이 웃으며 대답했다.이정남은 곧바로 소희에게 전화를 걸었다. 세 사람은 모두 샤브샤브를 먹고 싶어 했다.그러나 서인의 가게는 영화 촬영장 쪽에 있었다. 너무 멀어서 거기까지 가지 못하고 세 사람은 거리가 가장 가까운 해운 샤부샤부에 가기로 했다.세 사람이 한자리에 모이자, 이현은 먼저 소희를 크게 안았다.“소희! 보고 싶어 죽는 줄 알았잖아!”그러자 소희가 가볍게 웃으며 대답했다.“이제 다 강성에 살고 있으니 보고 싶을 때 오늘처럼 만나서 같이 밥 먹으면 되지!”“그러게, 말이야!”이정남은 이현을 끌어 자리에 앉혔다.“억지 부리지 말고 먼저 주문해, 얘기는 먹으면서 하면 되지!”그이 말에 이현은 메뉴를 들어 가장 먼저 소희가 좋아하는 고기와 디저트를 주문하고 다시 고개를 들어 두 사람을 바라보았다.“술도 마실까요? 갈 때 대리 부르면 되잖아요!”“그러든지. 너희 둘이 마실 수 있으면 술도 시켜!”이정남이 쿨하게 대답했다. 이현은 추가로 청주도 한 병 주문했다.샤부샤부와 디저트가 하나둘씩 나오고 세 사람은 먹으면서 이야기를 나누었다.이정남은 먼저 소희에게 동영상에 관해 물었고 소희는 대충 경과를 그들에게 알려주었다,“다치진 않았어?”이현이 걱정스러운 듯 소희를 바라보며 물었다.“아니!”그러자 소희가 고개를
“둘 다 그만해!”소희가 미소를 지으며 두 사람을 제지했다.“둘 다 그만 싸워. 나와 그 사람 사이의 일은 한두 마디로 설명할 수 없어. 너희들이 생각하는 그런 게 아니야. 이 얘기는 그만하고 다른 얘기 하자!”이현은 소희의 눈치를 살폈다. 그러다 웃으며 대답했다.“그래, 다른 얘기 하자! 소희야, 올해 대학 졸업하는 거지? 졸업하고 뭘 할지 생각해 봤어?”이정남도 바고 화제를 돌렸다.“차 감독이 아직도 널 배우로 캐스팅하겠다고 벼르고 있어. 졸업하고 다른 일 하고 싶지 않으면 차 감독한테 가봐.”이정남의 말에 이현이 비꼬듯 물었다.“믿을만한 사람인 거예요?”“믿을 만해. 나와 몇 번 같이 일한 적 있었거든!”“나는 소희가 북극 디자인 작업실에 남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해.”세 사람은 미래에 대한 계획을 말하며 더 이상 임구택에 관한 얘기를 꺼내지 않았다.*저녁에 집에 돌아온 소희는 샤워한 후 서재에 가서 웨딩드레스 디자인 원고를 계속 그렸다.술을 조금 마시고 저녁 바람이 솔솔 불어 들어오자, 그녀는 나른하게 책상 위에 엎드려 있었다. 조용해진 서재를 보며 갑자기 주변의 모든 것이 무미건조하게 변한 것 같았다.그녀는 카카오톡을 열어 이리저리 보다 그 남자의 프로필 사진이 눈에 들어왔다.뭔가에 홀린 듯 소희는 그 남자의 프로필 사진을 클릭했다.그의 스토리에는 달랑 사진 한 장 뿐이었다.이건 설날에 그녀가 기분이 좋아서 찍었던 사진인데 그가 “훔쳐” 간 것이다.소희는 예쁘게 피어난 붉은 색의 매화를 보며 가슴이 아팠다. 두 사람이 서로 좋아하고 지금 헤어지기까지 고작 몇 개월이 지났을 뿐이다.소희는 가슴이 답답하고 아팠다. 지금 그 사진을 보니 더 풍자적이었다.그러다 자기의 스토리에 가서 망설임 없이 그 사진을 삭제해 버렸다.한편, 베란다에 앉아있던 임구택도 그 사진을 보고 있었다. 그는 사진을 응시하며 뚫어지게 흐려진 배경을 바라보았다.순간, 매화 뒤에 자단의 책상과 책꽂이가 있는 것 같았다.‘소희가 이 사진을 어디
주시후의 말을 듣고 장명원은 순간 안색이 변했다.그는 경계하듯 주시후를 바라보며 말했다.“당신이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겠군요.”“긴장할 거 없어요. 이 말을 꺼낸 건 악의가 있어서가 아니에요. 우리는 적이 아니에요. 은서가 있는 한 우리는 친구일 수밖에 없어요.”주시후는 두 팔을 벌리며 미소를 지었다.“걱정하지 말아요. 당신이 매골의 사람이라 해도 아무한테도 말하지 않을 테니. 다만 부탁하고 싶은 일이 한 가지 있어요.”그의 말에 장명원은 경계를 거두고 그를 뚫어지게 바라보았다.“무슨 부탁인가요?”“불곰을 찾아주셨으면 해요.”주시후는 웃음을 거두며 말했다. 그의 표정에는 독함이 조금 묻어있었다.“최근, 불곰의 사람들이 쿠르하 산 근처에서 활동하고 있다는 소문을 들었어요. 불곰은 물건을 남스의 거머리라는 사람에게 팔고 있다고 했어요. 물론, 불법 거래를 하는 거죠.”장명원은 눈을 가늘게 뜨며 물었다,“당신은 그들의 거래를 파괴하는 임무를 받은 건가요?”“아니요!”주시후가 차가운 말투로 대답했다.“나에게는 아무런 임무도 없어요. 그저 불곰을 없애고 싶은 거죠!”장명원은 그의 말이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았다.그러자 주시후가 계속 말했다.“불곰을 죽이고 싶은 건 내가 그와 개인적인 원한이 있어서예요. 전에 임무를 수행할 때 불곰이 내가 가장 소중히 여기는 전우를 죽였어요. 난 내 전우의 복수를 하려고 해요. 하지만 당신도 알다시피 내 신분으로는 함부로 움직일 수가 없어요. 그래서 당신의 도움을 요청하고 싶은 거예요.”“어떤 도움을 말하는 건가요?”“불곰은 경계심이 매우 높아요. 지금 그는 쿠하르 산에 있지 않아요. 매골의 사람들이 쿠하르 산에 가서 불곰이 나타나길 기다리기만 하면 돼요.”주시후가 이어서 말했다.“우리가 친구이긴 하지만 그쪽의 룰대로 의뢰할 거예요. 커미션이 얼마든 준비할게요. 만약 불곰을 죽일 수 있다면 두 배로 드리죠!”쿠르하 산은 C 국과 남스의 접경으로 지형이 복잡하고 어느 나라에도 속
그녀의 말에 하얀 독수리는 다시 문자를 보내왔다.[[당신과 함께 임무를 수행할 것을 신청합니다. 불곰은 위험한 사람이에요. 보스 혼자 갈 수 없어요!][불곰과 정면으로 마주치지 않을 거야. 숨어서 감시만 할 생각이야. 사람이 많으면 폭로될 위험이 높아.][전에 쿠르하 산에 가본 적 있어요. 보스보다 더 경험이 많다고요!][이건 명령이야.]말이 끝나고 소희는 바로 매골에서 로그아웃했다.장명원은 멍하니 핸드폰을 한참 보고서야 주시후에게 메시지를 보냈다.[의뢰받았어요. 나중에 다시 연락해요.]그의 소식을 기다리고 있던 주시후도 빠르게 답장했다.[함께 잘해봐요.]메시지를 보내고 주시후는 서재에 가 서랍에서 다른 핸드폰을 꺼내 칩을 삽입하고 핸드폰의 전원을 켰다.그는 집안의 모든 인터넷을 끄고 전화를 한 통 걸었다. 오랫동안 연결음이 들리다 전화기 너머에서 차가고 낮은 목소리가 들려왔다.“누구?”주시후가 대답했다.“불곰을 찾습니다. 중요한 일이에요.”“알았어요!”그쪽에서 대답하고 전화를 끊었다.약 30분 후, 주시후는 책상 위에 놓은 핸드폰이 진동하자, 한 번 쓱 보고 즉시 받았다."여보세요!"상대방이 말했다.“불곰입니다.”주시우는 소리 없이 웃으며 유창한 영어로 답장했다.“불곰 씨, 제가 큰 선물을 준비했어요. 마음에 드셨으면 좋겠네요. 물론, 저도 조건이 있어요. 당신이 피아에서 다이아몬드 광산을 발견했다는 것을 알고 있어요. 저는 10톤의 원석을 원해요!""내가 준비한 큰 선물을 보면 내가 원하는 것이 조금도 많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에요!"원래 불곰은 쿠르하 산에서 거래할 생각이 없었지만 주시 후의 말을 듣고 즉시 거래를 준비하게 했다.…………한편, 의뢰받은 소희는 즉시 밀수로 떠날 준비를 시작했다.밀수 성은 쿠르하 산 아래에 있는 C 국의 국경도시로서 현지에는 남스에서 밀입국해 온 사람들이 자주 있어 치안이 좋지 않아 평소에 혼란스러웠다.소희는 밤새 성연희에게 둘 웨딩드레스 디자인 원고를 다 끝내고 다음 날
소희는 말했다.“이틀만!”성연희는 눈물 글썽이며 말했다.“서인은 알아?”“아직 몰라, 그에게 말할 생각이 없었어!”성연희는 좀 급해했다.“왜? 만약 그가 안다면 반드시 너와 함께 갔을 것이야. 이것은 원래 너희 두 사람의 일이잖아!”“나 자신의 일이야!”소희는 강인한 눈빛으로 천천히 고개를 가로저었다.“그당시 서인도 하마터면 죽을 뻔했어. 나는 더이상 그한테 위험을 무릅쓰게 하고 싶지 않아. 나는 그들 모두에게 빚을 졌어!”“너 혼자야?”성연희는 눈살을 찌푸리며 말했다.“내가 어떻게 안심을 하겠어?”“누군가 날 도와줄 거야!”성연희는 소희를 말릴 수 없다는 것을 알기에 소리를 내지 않고 끊임없이 눈물만 흘렸다. 이 순간 그녀의 마음은 마치 이미 무엇을 예견한 것 같이 매우 아팠다.“나는 반드시 돌아올 것이야. 만약에 일이 있다면, 할아버지한테는 비밀로 해줘!”마지막으로 소희는 당부했다.두 사람은 해질녘까지 앉아 있다가 성연희와 헤어진 후 소희는 또 진석을 만나러 갔다.그녀는 단지 먼길을 떠날 뿐이고 짧은 시간 내에 돌아오지 않을 수도 있으니 스승님한테 갈때 얘기 좀 해달라 부탁하면서 따로 스승님께 가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진석은 눈살을 찌푸리고 그녀를 바라보며 말했다.“위험해요?”소희는 싱긋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조금 위험해요!”“안 가면 안 될까요?”진석의 눈빛이 깊어졌다.“예전의 일이 이렇게 오래 지났는데 아직도 내려놓을 수 없는 건가요?”“이번에 가면 내려놓을 수 있을 것이에요!”소희는 홀가분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그렇게 오랫동안 생각한 일은 결국 끝이 있어야만 다시 시작할 수 있어요!”진석은 손을 들어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었다.“반드시 돌아와야 해요. 저는 당신이 오기를 기다릴 거예요!”“네!”......소희는 밀수로 떠나는 짐을 준비해 놓고 떠나기 전날 따로 임유민을 만났다.바로 예전에 임유민이 그에게 그의 둘째 숙모를 사칭하여 학교에 가서 밥을 사달라고 한 그 식당이다.소희는 식
강씨 할아버지는 갑자기 그녀에게 물었다.“언제 돌아와?”소희는 멍해졌다. 하마터면 할아버지가 알고 있는 줄 알고 곧 반응했다. 할아버지는 그녀에게 언제 집에 돌아갈지 묻는 것이였다.“아마 5월1일 방학 때 돌아갈 거예요.”소희가 웃으며 말했다.“임구택도 데려와!”할아버지는 당부했다.“너가 말하기 어려우면 내가 말할께.”소희는 가슴이 철령 내려앉았고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좋아요!”다음날 아침, 소희는 비행기를 타고 강성을 떠났다.비행기가 밀수에 도착하지 않아 그녀는 진명에서 내린 후에 다시 기차를 타고 밀수로 가려고 했다.진명에 이르렀을 때 오전 11시 반이 되었고 하늘에서는 비가 내리고 있었다.소희는 오후 2시의 티켓을 구매했기 때문에 시간이 아직 일러서 먼저 식당을 찾아 밥을 먹었다.진명은 강우대에 속하기에 1년 365일중 300일 동안 비가 내리고 있어서 이곳은 나무가 높고 울창하며 공기도 유난히 습했다.소희가 식당에서 밥을 먹고 나오자 100미터 떨어진 곳에서 한 남자가 빠르게 사람들을 뚫고 달려오는 것을 보았다. 동시에 그의 뒤엔 멜빵 롱치마를 입은 여자가 소리 질렀다.“도둑이야! 내 가방을 빼앗아 갔어!”남자는 뒤를 돌아보지 않고 아주 빨리 뛰쳐나가 길가의 오토바이에 올라타더니 쏜살같이 달려 나갔다.소희는 식당 밖의 벽에 걸린 나무줄기 장식을 들고 차가운 눈빛으로 달려오는 오토바이를 바라보더니 손에 든 밧줄을 두 바퀴 돌리자 나무 줄기가 세차게 날아가 오토바이에 탄 사람의 얼굴을 직접 때렸다.‘탁’ 하는 큰 소리와 함께 남자는 머리가 비뚤어지고 입 안의 두 이빨이 핏물과 함께 튀어나갔다.오토바이도 와르르 쓰러져 옆 행인들은 비명을 질렀다.소희는 경찰에 신고하고 식당에 장식품 비용도 주고 나서야 쓰러진 도둑을 향해 걸어갔다.이미 행인들이 도둑을 저지른 두 사람을 통제했다. 훔친 가방은 PDA 한정판으로 빗물에 떨어졌고 안의 물건도 온 바닥에 흩어졌다.지갑 하나와 화장품들이 들어 있었다.소희는 가방을 주워
소희는 빠른 걸음으로 정거장에 멈춰 정거장으로 가는 버스를 기다렸다.숨을 헐떡이며 심명이 쫓아왔다.“심명씨, 어디가는 거예요.왜 혼자 진명에 있어요?”“심명씨와는 상관없는 일입니다!”어깨에 가방을 메고, 얼굴에 마스크를 쓴 소희가 차가운 눈빛으로 심명을 보았다.“따라오지 마세요!”버스는 곧 도착하였다.심명은 원래 소희와 함께 버스에 오르려고 했지만 그녀에게 밀려 내려갔다.따라 오지 마세요.아지면 정말 가만두지 않을 거예요!”심명은 그녀의 말을 마음에 두지 않았다.“소희씨, 도대체 진명에는 왜 온 거예요?”소희가 차에 올랐다.차문은 닫기고 심명을 차 밖에 막았다.심명은 재빨리 택시 한대를 막았다. 그는 원래 그녀가 무엇을 하려는지 따라가 보려고 했지만 생각을 바꾸었다.그는 운전기사에게 앞에 있는 버스를 따라가게 하면서 핸드폰을 꺼내 전화를 걸었다.“차를 가지고 여경로에 오세요.305버스, 한 여자애입니다.네, 계속 따라가면 됩니다!”심명이 지시를 내렸다.“경각성이 높은 애이니 발견되지 않도록 조심하세요!”심명은 택시더러 계속 앞의 뻐스를 따라가게 하였다. 두 정류장을 따라가다자 자기 차가 오는것을 보고 택시에게 일부러 길목에서 차를 돌리게 하였다.심명이가 자기를 따라 오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던 소희는 뒤의 택시를 계속 지켜보고 있다. 그리고 택시가 방향을 돌리자 비로소 가볍게 숨을 내쉬었다.그녀는 방금 자신의 무모한 행동에 후회하고 있었다. 심명이가 이렇게 귀찮게 붙을 줄이야!......한 시간 후 소희는 밀수로 가는 기차에 올랐다.동시에 소희를 미행하던 사람도 심명에게 전화를 걸었다.“심 대표님, 놓쳐버렸습니다!”“…….”“경각성이 높아 정거장에서 우리가 뛰를 따르는 것을 알아챈 모양입니다. 그리고 사람을 놓쳐버렸습니다!”심명은 크게 화가 났다.“도대체 뭐하는 겁니까!”그는 이를 악물고 생각에 잠겼다.아무리 생각해도 이상한 것이다.‘소희는 도체에 진명에 무슨 일로 온 것이지?’‘아니야, 진명에 온 것이
소희는 한 하숙집을 찾아 머물었다.거기 주인은 그녀가 외지인것을 보고 여행 온 줄 알고 가이드가 필요하냐고 계속 물었다.소희는 완곡하게 거절하고 국수 한 그릇을 먹은 후 방에 돌아가 쉬었다.외진 곳이라 밀수 여행을 오는 사람이 많지 않고 객실이 절반은 비어 있어 들어가니 곰팡내가 풍겼다.주인아주머니는 즉시 창문을 열고 익숙하지 않은 표준어로 말했다.“오랫동안 비어있어 그래요. 창문을 열어주면 될 거예요. 봐 보세요, 여기서는 쿠르하 산의 경치를 바로 볼 수 있어요. 이 방이 여기 제일 좋은 방이예요.” 밀수 지방언어를 알고 있는 소희는 주인 아주머지가 가리키는 방향을 향해 눈길을 옮겼다. 거기에는 끊없는 산맥과 고무원이 였다. 큰 비가 내린지 얼마 안되어 검은 산에는 몽롱한 연기가 가득 차 있었다.“뜨거운 물 가져다 주세요!”소희가 머리를 끄덕이며 말했다. “아,네!” 검은 피부, 머리를 위에 감은 주인 아주머니는 소박하고 열정적인 분이다.그녀는 소희를 도와 이부자리를 깔고 뜨거운 물을 가지러 나갔다. 가방을 창문 아래의 나무 책상에 올려 놓고 소희는 먼 곳의 산봉우리를 바라보며 마음이 설렜다.‘내가 그 동안 그렇게 바라오던 것이 마침내 여기서 끝나려는 건가?’곧 주인 아주머니는 뜨거운 물을 들고 올라왔다. 그녀는 소희의 잔에 물을 부어주며 물었다.“아가씨,어디에서 왔어요?”“강성이요!”“좋은 곳이죠!” 아주머니가 감탄하였다.“어쩐지 이쁘다고 생각했는데, 도시 사람이네요!”그녀는 상냥하게 웃으며 당부했다.“여기는 도시가 아니라서 밤거리가 그다지 안전한 것은 아니예요. 그러니 낮에만 움직이시고 밤에는 나가지 마세요.”소희가 말없이 머리만 끄덕였다.“감사합니다!”“여기 경치가 좋은 곳이 많아요!”아주머니가 열정적으로 소개하였다.“등산도 좋아요. 산 경치가 아름답거든요. 마을 안에서 여기저기 둘러봐도 좋아요. 여긴 200여년의 역사를 가진 오랜 마을이예요! 그리고…….”아주머니는 창밖의 고무원을 가리키며 말했다.
임유진은 옆에서 신기한 듯 물었다.“장난은 어떻게 해요? 나도 같이 하면 안 돼요?”하지만 유진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유진의 삼촌 임구택의 날카로운 눈빛이 날아들었다. 유진은 즉시 웃음기를 거둔 채 수그러들며 서인의 옆으로 바짝 다가갔다.구택이 입을 열었다.“큰형님과 형수님은 이미 돌아가셨으니, 서인 네가 임유진을 잘 봐줘. 오늘은 일찍 자게 해.”신랑의 직접적인 부탁을 거절할 수 없는 서인은 고개를 끄덕이며 담담하게 대답했다.“걱정하지 마.”구택의 한마디에 임유진은 기쁨에 겨워 얼굴을 빛냈다. 신방 장난의 생각은 당연히 금세 잊혀졌다.노명성은 이미 성연희의 곁으로 다가가 그녀를 반쯤 안아 올리며 말했다.“네가 준비한 장난은 신랑 신부에게 아무런 효과도 없을 거야. 괜히 머쓱해지지 말고 얼른 가서 자자.”연희는 잠시 생각하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연희는 명성의 품에서 벗어나 소희를 꼭 껴안으며 말했다.“이번에야말로 널 완전히 구택에게 맡겼어. 너도, 나도 모두 마음의 짐을 덜었어.”우청아가 옆에 있는 유정을 향해 웃으며 말했다.“연희는 분명 술에 취했어.”유정도 웃음을 터뜨렸다.“말하는 걸 들어보니 딱 알겠네.”연희는 두 사람을 돌아보며 소리쳤다.“뭘 웃어? 너희가 시집갈 때 보자. 소희랑 내가 어떻게 웃어줄지!”두 사람은 더욱 크게 웃음을 터뜨렸다. 소희는 연희의 머리를 가볍게 두드리며 말했다.“네가 무슨 말을 하고 싶은지 알아.”“소희!”연희는 다시 한번 소희를 힘껏 껴안았다. 그녀는 금방 감상적인 분위기를 걷어내고 한층 발랄하게 말했다.“밤은 짧고 기회는 소중하니 난 이제 갈게!”다른 사람들도 하나둘씩 일어섰다. 시원이 청아에게 다가가 그녀의 손을 잡고 부드럽게 말했다.“우리도 가자. 우리 결혼식이 다음이니 미리 조심하는 게 좋겠어.”조백림과 진석은 눈빛을 교환하며, 아무 말없이 각자 동행한 사람들과 함께 자리를 떴다. 남아 있던 사람들도 서로 인사하며 점차 흩어졌다.소희는 한 명 한 명에게 손을 흔들며
소희는 놀란 얼굴로 성연희에게 물었다.“심명이 남궁민까지 데려갔다고?”성연희는 살짝 눈썹을 올리며 말했다.“남궁민이 취해서 계속 임구택이랑 술로 승부를 보자고 떠들더라. 심명이 사람을 시켜 끌고 나가더니 강성으로 데려간 것 같아. 네가 귀찮아질까 봐 처리한 거지.”소희는 고개를 끄덕였다. 남궁민을 심명에게 맡긴다면 걱정할 필요가 없었다.구택이 그 모습을 지켜보다가 물었다.“심명이 준 선물은 뭐야?”소희는 솔직히 답했다.“별장 한 채.”구택은 심명이 남긴 쪽지를 집어 들어 읽어 보곤, 차가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인심 쓰는 데는 도가 텄네.”소희는 눈썹을 치켜올리며 물었다.“뭐야, 임구택, 심씨 집안 사정을 안다는 말투인데?”“임구택?”구택은 눈을 들어 소희를 바라보며 낮고 묵직한 목소리로 말했다. 이에 소희는 곧바로 상황을 파악하고 단번에 말을 바꿨다.“자기야!”그제야 구택은 부드러운 미소를 띠며 그녀에게 설명을 덧붙였다.“예전에 했던 약속을 번복하는 바람에 한소율네 집안이 가만히 있겠어? 2% 지분이라는 게 적은 금액이 아닌데.”소희는 눈을 반짝이며 금세 알아차렸다.“그럼 당신이 그 집안을 도와준 거야?”“정확히 말하자면, 심문석을 도와준 거지. 물론 공짜는 아니고, 우리 사이에 협의가 있었지.”구택은 소희의 어깨를 끌어안고 그녀의 옆얼굴에 이마를 살며시 기댔다. 술기운에 물든 그의 입술이 가볍게 소희의 뺨을 스치며 낮게 속삭였다.“이 사람들, 너무 시끄럽지 않아?”소희의 입술은 붉게 물들었고, 눈동자는 반짝였다. 그녀는 작은 목소리로 그와 속닥거렸다.“듣자 하니, 오늘 밤에 장난치려고 한다는데?”구택은 눈썹을 살짝 들어 올리며 말했다.“그럼 어떡하지? 우리의 밤을 망가뜨릴 순 없잖아.”소희는 사슴 같은 눈망울로 구택을 바라보며 대답했다.“당신한테 맡길게.”그 순간, 장시원이 갑자기 끼어들었다.“뭐라고 둘이 속닥거리나? 오늘은 규칙이 있어. 신랑 신부는 속닥거리는 거 금지야. 무슨 말이든 다 같이 들어야
강재석은 양재아가 소희와 그녀의 친구들 사이에 끼어드는 것을 원치 않았다.“재아는 다른 사람들과 친하지도 않은데, 그 자리에 있어 봤자 어색할 거야. 차라리 돌아가서 쉬는 게 낫지 않겠나?”양재아는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할아버지 말씀이 맞아요. 저도 좀 피곤하네요. 들어가서 쉬고 싶어요.”“그럼 함께 가자.”도경수는 더 이상 말을 덧붙이지 않고, 재아와 함께 일어섰다. 옆에서 대기하던 명우는 강재석과 도경수 일행이 일어나는 것을 보고 즉시 차량을 준비했다.그들이 쉬러 돌아갈 수 있도록 배웅 준비를 마쳤다. 그 사이 임구택도 다가와 소희와 함께 강재석과 도경수를 배웅했다.강재석은 구택을 차 앞으로 따로 불러 몇 마디를 더 덧붙였고, 구택은 진지한 표정으로 경청했다.차가 출발하자 소희는 구택을 바라보며 물었다.“할아버지가 무슨 말씀하셨어?”구택은 소희의 손을 잡고 다시 연회장으로 발걸음을 옮기며 부드러운 미소로 답했다.“할아버지가 나를 칭찬하셨지.소희는 의심스럽다는 표정으로 구택을 한 번 쓱 훑고는 고개를 젓는 듯 미소 지었다. 머리 위의 간단한 디자인의 티아라가 그녀의 눈부신 미소와 어우러져 더욱 빛났다.구택은 소희의 허리를 감싸 안고 발걸음을 멈춘 채 고개를 숙여 입을 맞추었다. 이에 소희는 눈을 굴리며 그를 바라보았다.“장시원 오빠랑 다른 사람들이 보면 또 술 마시라고 놀릴 텐데요.”구택은 그녀의 입술을 살짝 깨물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그냥 그들을 따돌리고 먼저 돌아가자.”소희는 눈을 한 번 깜박이며 고개를 저었다.“안 돼요.”이에 구택은 가벼운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왜 파티 같은 걸 준비했을까? 점심 식사 끝나고 바로 다들 돌아가게 했으면, 밤에는 온전히 우리 둘만의 것이었을 텐데.”소희는 웃으며 말했다.“이번엔 경험이 되었으니 다음번에는 알겠지.”“다음번?”구택은 눈을 가늘게 뜨며 미소를 지었지만, 목소리는 묘하게 위협적이었다.“다음번은 누구의 결혼식이지?”“다른 사람들 결혼식!” 소
도경수는 오늘 기분이 좋아 보였다. 평소 같았으면 간단한 말에도 꼬투리를 잡았겠지만, 오늘만큼은 아무 말 없이 넘어갔다.양재아는 소희 앞으로 다가가 부드럽게 입을 열었다.“소희, 나도 너랑 얘기하고 싶었는데, 계속 기회를 못 잡았어.”소희는 자세를 바로잡고, 맑은 눈빛으로 말했다.“그래, 무슨 얘긴데?”재아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먼저, 오늘 정말 예뻐 보여. 그리고 신랑도 정말 멋지고!”소희는 살짝 미소를 띠며 고개를 끄덕였다.“고마워.”재아는 진지한 눈빛으로 말을 이어갔다.“사실 내 마음속에서 외할아버지 다음으로 가장 소중한 사람은 바로 너야. 네가 아니었으면 난 지금쯤 이 세상에 없었을지도 몰라.”“강성에 올 수도 없었고, 할아버지와 다시 만나는 건 더더욱 불가능했겠지. 오늘 엄마까지 만나게 돼서 정말 행복해.”강재석은 옆에서 가볍게 나무라듯 말했다.“기쁜 날에 죽고 사는 얘기는 하지 마라. 다들 기쁜 얘기만 하자.”재아는 깜짝 놀라며 고개를 끄덕였다.“제가 조금 흥분해서 그랬어요.”“가족끼리 흥분할 거 뭐 있어?”도경수는 티슈를 건네며 부드럽게 말했다. 재아는 눈가를 닦고는 눈물이 맺힌 얼굴로 가방에서 작은 상자를 꺼냈다.“소희, 이건 내가 여러 가게를 돌며 오래 고민해서 고른 결혼 선물이야. 마음에 들었으면 좋겠어.”소희는 상자를 받아 들고 고개를 끄덕였다.“고마워.”상자를 열자 안에는 화려한 디자인의 팔찌가 들어 있었다. 진주처럼 빛나는 북해의 둥근 진주와 두 개의 작은 향수병 모양 펜던트가 달려 있었다.펜던트에는 각각 다른 색깔의 보석이 세팅되어 있었고, 그 정교함과 세련된 분위기가 인상적이었다. 소희는 잠시 멈칫했다.팔찌의 외형만 봐도 자신의 브랜드 상품이라는 것을 알아차렸기 때문이다. 며칠 전 유정과 함께 매장을 방문했을 때 매장장이 농담처럼 언급했던 바로 그 팔찌였다.그 팔찌를 구매한 사람이 바로 권수영이라는 말을 듣고, 소희는 그때의 대화를 떠올렸다.권수영은 딸이 없으니 직접 착용하기엔 어울리지
소희는 강재석과 함께 잠시 시간을 보냈다. 조용한 회랑에 앉아, 두 사람은 멀리 만찬장에서 웃음꽃을 피우며 술잔을 주고받는 사람들을 바라보고 있었다.강재석은 미소를 지으며 물었다.“즐거워?”소희는 고개를 돌려 진지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네, 정말 즐거워요.”소희의 이 기쁨은 임구택이 선사한 것이었다. 그리고 할아버지와 오빠가 그녀에게 준 선물이기도 했다.오늘의 결혼식에서 소희는 감동했고, 무엇보다도 감사함이 컸다. 모든 사람이 자기를 위해, 자신이 행복할 수 있도록 각고의 노력을 기울였기 때문이다.강재석은 흐뭇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너만 행복하다면 그걸로 충분해.”소희는 잠시 망설이다가 물었다.“오늘 도도희 이모를 만났어요. 오랜만에 대화를 나눴는데, 양재아를 만난 이야기를 아주 자세히 물어보시더라고요.”강재석은 가만히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그래, 도도희도 마음속으로는 재아가 정말 자기 딸인지 궁금한 거겠지.”도도희는 마음속 깊이 갈등하고 있을 것이다. 잃어버린 딸을 찾고 싶다는 간절한 바람과 함께, 막상 기대했다가 실망할까 두려워 차분하려는 마음이 공존하고 있을 테니까.“그럼 도도희 이모는 재아를 만났나요?”“만났지.”강재석은 약간의 주름이 진 이마를 살짝 찡그리며 말했다.“그런데 그 아이는 머릿속 계산이 많은 것 같더구나. 도도희가 별로 좋아하지 않는 눈치였어.”소희는 고개를 갸웃하며 물었다.“그게 무슨 뜻이에요?”강재석은 그녀의 손을 가볍게 두드리며 부드럽게 말했다.“그건 네가 신경 쓸 일이 아니다. 오늘은 네 결혼식이다. 너는 그저 행복하게 웃으며 지내면 돼.”“도도희와 재아의 문제는 지금 결론을 내릴 수 있는 일이 아니야.”“유전자 검사가 끝나고 모든 게 명확해진 다음, 그때 나타나는 문제가 진짜 문제야. 그때 가서 우리가 해결책을 찾으면 돼.”소희는 잠시 생각에 잠긴 뒤,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네, 알겠어요.”소희는 강재석의 어깨에 기대어 밤하늘에 펼쳐진 불꽃놀이를 올려다보며 낮은
강시언은 약간의 불쾌함을 담아 미간을 찡그리며 손을 들어 강아심의 머리를 자기 어깨에 다시 기대게 했다.“자.”아심은 순순히 대답했다.“네.”아심은 눈을 감았지만, 몇 분 지나지 않아 가만히 있지 못하고 다시 눈을 떴다. 아심의 눈은 별빛을 가득 담은 듯 반짝였고, 시선은 시언의 목젖에 고정되었다.곧 손가락이 천천히 그의 목으로 올라갔다.시언의 목은 곧고 강인한 근육선으로 이루어져 있었고, 그녀의 손은 투명한 매니큐어가 발린 매끄럽고 깨끗한 손이었다.아심의 손톱 끝이 그의 목젖 위를 살짝 스치자, 강아심은 반쯤 감긴 눈으로 속삭이듯 물었다.“여기, 제가 입 맞춰도 돼요?”시언은 그녀를 흘낏 쳐다보며 낮은 목소리로 대답했다.“안 돼.”아심은 조금 찡그리며 물었다.“왜 안 되는데요?”시언은 한숨을 내쉬며 물었다.“아심, 너 지금 취한 척하는 거 아니야? 안 취했으면 내려서 걸어가.”아심은 손을 시언의 목에서 내려 긴장한 듯 그의 목을 더욱 단단히 껴안았다. 숙소로 가는 길은 두 가지뿐이었다.배를 타거나 차로 돌아가는 것. 시언은 차를 가져오지 않았기 때문에 아심을 품에 안은 채 다리를 건너 우회로를 걸어가기로 했다.술기운이 깃든 목소리로 강아심이 물었다.“우리는 왜 배를 타지 않아요?”시언은 담담하게 대답했다.“배가 흔들리면 너 토할까 봐.”“그럼 왜 차는 안 타요?”“널 안고 어떻게 운전하냐?”“그럼 제가 조수석에 타면 되잖아요.”“네가 조수석에 앉으면 내가 어떻게 널 안고 있을 수 있겠어?”아심은 그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이해한 듯 말했다.“그런가 보네요.”아심은 더욱 안심한 듯 시언의 어깨에 몸을 기대었다.숙소에 도착한 후, 시언은 2층 방까지 그녀를 품에 안고 갔다. 방에 들어가 아심을 침대에 내려놓고 신발을 벗기고 이불을 덮어주었다. 그러고는 몸을 굽혀 물었다.“어디 불편한 데는 없어?”침실의 벽등에서 따스한 노란빛이 흘러나왔다.아심은 시언을 바라보며 부드럽게 말했다.“목이 좀 말라요.”“물을
강시언은 도도희와 느긋하게 대화를 나누면서도, 눈은 강아심과 시야 일행을 주시하고 있었다. 그는 아심이 잔을 한 잔, 또 한 잔 마시는 모습을 보고 점점 얼굴을 찌푸렸다.잠시 후,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아심이 취한 것 같네요. 가서 봐야겠어요.”도도희는 손목시계를 확인하며 고개를 끄덕였다.“이미 많이 늦었네요. 저도 이제 가서 쉬어야겠어. 아심이 잘 부탁해.”시언은 고개를 살짝 숙이며 대답했다.“그렇게 할게요.”시언은 긴 다리로 빠르게 시야 일행 쪽으로 걸어갔다.아심은 손에 술잔을 들고 시야가 백협에서 겪은 우스꽝스러운 일들을 생동감 있게 이야기하는 것을 듣고 있었다.그녀는 이야기에 푹 빠져 있다가 누군가 자기 손에서 술잔을 빼앗아 테이블에 내려놓는 것을 느끼고 뒤돌아보았다.“강시언 씨, 함께 한잔하시겠어요?”아심은 눈을 가늘게 뜨고 미소를 지으며 말하자, 시언은 그녀의 눈을 한 번 보고 바로 알아챘다.‘취했군.’술이 들어가면 아심의 눈빛은 유난히 순진해 보였다.시언은 고개를 들어 시야와 시경을 비롯한 일행을 쭉 훑어보며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너희가 술을 억지로 권했나?”시야는 시언의 목소리에 약간의 화가 담긴 것을 눈치채고, 능청스럽게 미소를 지었다.“억지로 마신 게 아니에요. 다들 기분이 좋아서요. 기분 좋으면 한두 잔 더 하게 되잖아요?”그는 고의로 비틀거리며 자신도 취한 척했다.“아무도 저에게 술을 강요하지 않았어요. 화내지 마세요.”아심은 시언의 옷깃을 가볍게 잡아당기며 말했다.“앉아서 같이 술 마셔요!”시언은 아심의 손을 잠시 바라보다 다시 시경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시경은 긴장한 듯 자세를 바로잡고 말했다.“이제 우리 모두 취했으니 물러날게요. 둘이 이야기를 나누시죠.”시경은 시야와 다른 일행에게 눈짓을 보내자, 모두 알아차리고 한 사람씩 자리를 떠났다.시야가 제일 먼저 나갔고, 순식간에 강시언과 강아심만 남게 되었다.“왜 당신만 오면 모두 가버리는 걸까요?”아심이 의아한 표정으로 묻자
‘지금 이 상황이 정말 마음에 들지 않네.’강시언은 속으로 생각하며 잔을 천천히 기울였다.“보아하니, 지승현은 여전히 강아심을 많이 좋아하는 것 같아. 아심과 다시 잘해보려는 건 아닐까 다시?”그리고 도도희가 제안했다.“내가 아심을 이쪽으로 불러올까?”시언은 고개를 저으며 단호히 말했다.“그럴 필요 없어요.”시언은 다시 술잔을 들며 아심 쪽을 더 이상 바라보지 않았다.몇 분 후, 도도희가 다시 고개를 들었을 때, 아심의 주위에는 다섯에서 여섯 명의 남자가 둘러싸여 있었다. 그들은 웃고 떠들며 무언가를 말하고 있었지만, 너무 멀어 내용을 들을 수 없었다.도도희는 다급한 표정으로 말했다.“술에 취해서 시비를 거는 사람들 아닐까?”하지만 시언은 상황을 보고 오히려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아니요. 신경 쓰지 마세요.”아심을 둘러싸고 있는 사람들은 시야와 시경을 포함한 시언의 부하들이었다. 그들은 단숨에 지승현을 옆으로 밀어냈다.승현은 화를 내려고 했지만, 시야가 시경의 어깨를 가볍게 감싸며 태연히 말했다.“우리는 아심 씨의 친구예요. 오랜만에 만난 사이니, 자리를 양보해 주시겠어요? 우리가 옛날이야기를 좀 나누려고요.”겉으로는 예의 바른 말투였지만, 표정은 분명 이렇게 말하고 있었다.‘양보해도 좋고, 양보하지 않아도 상관없어. 어차피 자리는 우리가 차지할 거니까.’시야는 그야말로 무례하고 뻔뻔하기 짝이 없었다. 이에 승현은 의아한 표정으로 아심을 바라보자, 아심은 약간 미안한 얼굴로 말했다.“정말 내 친구들이야. 미안해.”승현은 아심의 말을 듣고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괜찮아.”그렇지만 시야와 시경을 포함한 그들의 모습은 단정한 옷차림과는 달리, 일반인에게는 느껴지지 않는 살벌한 기운을 풍기고 있었다.승현은 그런 분위기에 약간 불안해졌고, 떠나기 전 강아심에게 말했다.“멀리 가지 않을게. 무슨 일이 있으면 바로 불러.”그 말에 시야는 피식 웃으며 말했다.“아니면, 함께 한잔하시겠습니까?”아심은 시야가 의미하는 한 잔
강시언은 도도희와 함께 앉아 있었다. 몇몇 사람들이 와서 건배를 청하려 했지만, 두 사람이 대화하는 모습을 보고는 감히 방해하지 못하고 지나갔다.시언은 의자에 느긋하게 기대어 앉으며 물었다.“왜 도경수 할아버지랑 같이 안 계세요?”도도희는 고개를 천천히 저으며 답했다.“오랜만에 만나면 결국 싸우게 되더라고. 우리 부녀는 전생에 원수였나 봐. 그 업보를 이번 생까지 끌고 온 거지.”도도희는 아침에 아버지를 봤을 때 한동안 감회가 새로웠다. 아버지는 이제 늙어서 젊은 시절처럼 강인하고 고집스러운 모습은 아니었다.어쩌면 이제는 과거를 내려놓고, 그의 곁에서 시간을 보내야 할 때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 생각은 오래가지 못했다.그는 나이는 먹었지만 여전히 강압적이고 독선적이었다. 게다가 이제는 양재아의 말에 휘둘리는 모습까지 보였다.만약 재아가 그녀의 딸이 아니라면, 이 어처구니없는 상황을 어떻게 마무리해야 할지 도도희 자신도 알 수 없었다.“싸우셨나요?”시언이 길고 날카로운 눈썹을 살짝 치켜세우며 물었다.“강아심과 양재아 때문인가요?”도도희는 시언의 예리함에 전혀 놀라지 않은 채, 잔에 술을 따르며 조소 섞인 미소를 지었을 뿐, 아무 대꾸도 하지 않았다.그러자 시언은 말을 이었다.“아심은 제가 지켜요. 양재아의 작은 계략으로 아심이 다칠 일은 없을 거예요. 그러니 그 일로 할아버지와 다투지 마요.”“할아버지는 이미 선입견에 사로잡혀 양재아를 손녀로 받아들이고 있어요.”“그렇게 감싸고 아끼는 모습은 오히려 이재희에 대한 깊은 죄책감 때문일 거예요.”도도희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며 그의 말을 되새겼다. 생각해 보면, 그 말에도 일리가 있었다.“하지만.”도도희는 잠시 멈췄다가 말했다.“난 양재아에게 아무 감정도 느껴지지 않아. 만약 걔가 내 딸이라면, 우리가 20년 넘게 떨어져 있었더라도 무언가 영혼이 통하는 느낌이 있어야 하지 않을까?”“하지만 양재아를 볼 때, 난 이재희와 연결될 만한 어떠한 감정도 느껴지지 않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