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에서 목욕하고 있던 청아는 누군가가 문을 미는 소리를 듣고 잔뜩 긴장해지더니 얼른 옷을 입고 차가운 목소리로 물었다."누구지?"바깥의 사람은 말을 하지 않고 힘껏 문을 밀었고, 문이 밀리지 않자 세게 부딪치기 시작했다.문 뒤에 받쳐져 있던 의자는 조금씩 밀려났고 위의 물도 쏟아졌다.청아는 즉시 달려가 문을 밀며 물었다."누구냐고?"밖에 있던 사람은 멈추더니 일부러 놀라는 척했다."안에 청아 씨 있었어? 나는 또 문이 고장 난 줄 알았네! 내 팬티가 옷걸이에 걸려 있는데, 혹시 못 봤어? 좀 가져다줘!"청아는 분노하면서도 두려워하며 차갑게 말했다."먼저 가봐, 나 바로 나갈 거야!""나 지금 입을 건데, 먼저 들어가게 해줘!"성강은 히죽거리며 계속 문을 힘껏 밀었다.청아는 힘껏 버티며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더 이상 가지 않으면 경찰에 신고할 거야!"성강은 청아가 목욕할 때마저 휴대전화를 가지고 들어간다고 믿지 않아 힘껏 문만 밀었다.문은 "쾅쾅" 소리가 났고 청아는 자신을 애써 진정시키려고 노력했다. 그녀는 뒤돌아서서 욕실을 들여다보더니 어떤 물건으로 방비할 수 있는지 찾아보았다!고장미는 분명 나갔기 때문에 성강이 감히 이렇게 대놓고 행동할 수 있었으니 그녀는 자신에게 의지할 수밖에 없었다!그녀의 핸드폰은 세면대에 놓여 있었고 그녀가 가져가려면 문에서 떠나야 했기에 성강은 틀림없이 문을 밀치고 들어올 것이다. 그녀는 급해지더니 온몸에 식은땀을 흘렸고, 방금 큰 소리로 외치려고 할 때, 세면대에 놓여 있던 핸드폰이 갑자기 울렸다.누군가가 그녀에게 전화했다!적막한 화장실 안에서 전화벨 소리는 매우 뚜렷했다.성강은 청아가 정말로 핸드폰을 가지고 있을 줄은 생각지도 못한 듯 즉시 멈추고 몸을 돌려 떠났다.청아는 깊은 숨을 들이마시고 한동안 움직이지 않았다. 성강이 멀어진 것을 듣고서야 그녀는 의자를 다시 문 뒤로 민 후, 재빨리 세면대 앞으로 달려가 휴대전화를 들었다.그녀에게 전화한 사람은 백림이었다.그녀는 한없이 감격스러
백림은 낡은 건물을 한 번 보더니 부드럽게 말했다."왜 여기에서 지내는 거죠? 만약 시원이네 집에서 살고 싶지 않다면, 내 빈 집에서 지내도 되는데!"청아는 인차 말했다."아니에요, 고마워요!"백림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저 온화하게 웃기만 했다."올라가서 얘기해도 돼요?"청아는 잠시 생각하다 고개를 저었다."나와 함께 살고 있는 여자가 있어서요, 미안해요!”"그럼 됐어요!" 백림은 웃음을 머금고 몸을 돌려 차로 돌아와 트렁크에서 커다란 쇼핑백 두 개를 꺼냈고 안에는 물건으로 가득 찼다.그는 청아에게 건네주었다."불편하면 나도 올라가지 않을 테니까, 이거 들고 올라가요!"청아는 쇼핑백에 여자가 마시는 제비집, 콜라겐, 그리고 진귀한 화장품이 있는 것을 보고 즉시 고개를 저었다."난 필요 없어요. 백림 오빠, 그냥 가져가요!”백림은 웃었다."단지 먹는 것들일 뿐, 얼마 안 해요. 화장품은 다른 사람이 나에게 준 건데, 내가 남자로서 쓸 데도 없고요."청아는 여전히 고개를 가로저었다."정말 받을 수 없어요. 그냥 여자 친구에게 가져다줘요!"백림이 말했다."시원이가 한 말 듣지 마요. 내가 여자친구가 어디 있다고!"멀지 않은 곳에 롤스로이스 한 대가 나무 아래에 세워져 있었고 시원은 운전석에 앉아 건물 앞에서 마주 보고 서 있는 두 사람을 보고 있었다. 그의 얼굴에는 아무런 표정도 없고 눈을 가늘게 뜨며 청아를 주시하고 있었다.백림이 청아를 좋아한다는 말에 그는 전혀 마음에 두지 않았다. 백림은 그와 마찬가지로 여자친구를 우표 수집하는 것처럼 사귀었다.그런데 백림이 여기까지 찾아오다니, 이건 다소 의외였다.절친으로서 그는 눈치 있게 빠져야 했고 너무 많이 참견할 수 없었다.‘청아 그 멍청한 계집애는 백림의 공세를 막아낼 수 있을지 모르겠네!’그는 좀 초조해지며 차 창을 반쯤 내리고 담배에 불을 붙였다.이쪽의 청아는 계속 받으려 하지 않았고 백림은 다소 조급해했다."청아 씨, 다른 생각하지 마요. 나는 단지 당신과 친
백림과 청아는 모든 것을 털어놓았으니, 두 사람 사이도 한결 가벼워진 것 같았다. 백림은 웃으며 말했다."앞으로 더 이상 청아 씨에게 전화하지 않을 게요. 그러나 나중에 만나면 계속 날 오빠라고 불러줘요!""그럼요!" 청아는 유쾌하게 웃었다."그럼 빨리 돌아가요, 머리카락도 아직 마르지 않았으니, 밖에서 바람 쐬지 말고. 나도 가볼게요!""잘 가요, 백림 오빠!""안녕!"백림은 물건을 차에 다시 올려놓은 다음 차에 올라타서 손을 흔들며 작별 인사를 했다.청아도 그를 향해 손을 흔들며 거기에 서서 그의 차가 떠나는 것을 지켜보았다.시원은 차에 앉아 청아가 "섭섭해" 하는 모습을 보면서 안색이 더욱 무거워졌다.백림의 차가 멀어지자 청아는 금방 몸을 돌려 돌아가려 했는데 갑자기 경적 소리를 듣고 바로 고개를 돌려 보았다.날이 이미 어두워져서 그녀는 차 안의 사람을 똑똑히 보지 못했지만, 익숙한 차를 보고 가슴이 쿵 뛰었다.차가 다시 한번 울리자 청아는 차 안의 사람이 시원이라는 것을 거의 확신하고 입술을 오므리고 걸어갔다.갑자기 핸드폰이 또 울리기 시작하자, 그녀는 멈춰서 한 번 보았는데, 소희가 그녀에게 전화한 것이었다."청아야, 시원 오빠가 그쪽을 지나갔다 해서 너 데리러 갔어. 이따 그의 차 타고 와!"소희가 말했다.청아는 잠시 멈칫하다 웃으며 말했다."응, 나 시원 오빠 차 본 것 같아!""응, 이따 보자!"소희는 곧 전화를 끊었다.청아는 휴대전화를 들고 나무 아래에 세워진 롤스로이스를 향해 걸어가 차 앞 유리를 사이에 두고 남자와 눈을 마주쳤다.그녀는 두 사람이 오랫동안 만나지 못했다고 느꼈는데, 사실 고작 일주일밖에 되지 않았다.시원은 차에서 내리며 잘생긴 얼굴에는 가벼운 미소가 묻어났다."소희 씨가 데리러 오라고 해서요, 지금 갈래요?"청아는 남자의 눈을 바라보았다. 그는 여전히 준수하고 존귀했지만 전의 익숙한 느낌은 보이지 않았고 오히려 그런 소외감은 그녀로 하여금 병원에서 그를 처음 만났을 때를 생각하게 했
"난 남자친구 사귀지 않을 거야! 그리고 내가 남자친구를 사귄다고 해도 그는 절대로 다른 여자가 샤워할 때 들어가지 않을 거라고!" 청아의 눈빛은 싸늘했다."뭐라고?" 고장미는 눈을 가늘게 뜨며 물었다. "그게 무슨 뜻이지?""난 이미 분명하게 말한 거 같아!" 청아는 이 한 마디만 하고는 고장미의 흉한 안색을 보지 않고 위층으로 올라갔다.그녀는 방에 들어가 반쯤 마른 머리를 빗고 또 외투를 입었다. 외출할 때 청아는 안방에서 고장미와 그녀의 남자친구가 다투고 있는 것을 들었다.그녀는 아랑곳하지 않고 바로 아래층으로 내려갔다.시원의 차에 오르자 시원은 바로 차에 시동 걸어 청아를 데리고 샹젤 웨스트 레스토랑으로 갔고, 가는 길 내내 두 사람은 모두 말을 하지 않았다.시원이 말을 하지 않자 청아도 일부러 그와 거리를 두었다.룸에 들어서자 방안에는 불이 꺼져 있었고 청아는 바로 뒤돌아서 시원에게 소희가 어딨는지 물어보려 했지만 갑자기 중간 테이블의 촛불이 켜지더니 방안에는 "생일 축하합니다"의 피아노곡이 울렸다.청아는 그곳에 멍하니 있다가 문득 오늘이 자신의 생일이라는 것을 떠올렸다!방안의 불빛이 켜지자, 정교한 식탁에는 케이크와 장미꽃이 놓여 있었고, 방안은 온통 리본과 풍선으로 장식되어 있었다. 소희는 꽃다발을 안고 걸어와서 부드럽게 웃었다."청아야, 생일 축하해!"청아는 감동을 받으며 눈시울을 붉혔다."고마워, 소희야!"소희는 웃으며 말했다."아이디어와 방안의 장식은 모두 시원 오빠가 생각한 거야. 그에게 감사하다고 말해!"시원은 확실히 청아에게 생일을 잘 쉬어주려 했지만, 그녀와 백림을 보고 마음에 씁쓸함을 느끼며 지금도 그저 담담하게 웃기만 했다."방은 레스토랑 직원이 배치한 거라서 나도 별로 신경 쓰지 않았어요. 고마워할 필요 없어요!"구택은 준비한 선물을 꺼내 청아에게 건네주었다."생일 축하해요!"청아는 그 상자를 보자 가격이 만만치 않다는 것을 알고 바삐 고개를 저었다."나에게 생일을 쉬어주는 것만으로 충분
청아는 연속 술을 몇 잔이나 마셔서 얼굴이 빨갰고 눈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웃었다."당연히 여러분들이 나의 생일을 축하해 줬기 때문이죠!”시원의 잘생긴 얼굴은 담담해졌다."기뻐해도 오늘 다른 사람도 없는데, 딱 우리가 너에게 술 먹인 것 같잖아요!"분위기가 점점 편해지자 그들은 마치 전에 어정에서 함께 모이는 것처럼 웃고 떠들었다.식사를 반쯤 먹을 때, 청아는 취해서 일어나 화장실에 갔고 소희도 뒤따라갔다.*복도에서 명원은 미연과 함께 걸어왔는데, 두 사람은 모두 무덤덤한 표정을 짓고 있어서 모르는 사람이 보면 그들이 서로 모르는 사람인 줄 알았다.지난번 맞선을 본 후, 두 사람은 정식으로 "사귀"었다고 할 수 있었고 주말이 되자마자 장 부인은 명원더러 미연과 데이트하러 가라고 재촉했다. 명원은 이리저리 미루다 결국 오늘 오후까지 미뤘고, 더 이상 두를 핑계가 없어서 그제야 장 부인의 "감시"하에 미연에게 전화를 걸어 밥 먹자고 약속했다.미연도 나름 그와 호흡이 잘 맞아서 전화로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바로 승낙했다.두 사람은 샹젤 웨스트 밖에서 만나 한 마디도 하지 않고 이 데이트를 철저히 얼버무렸다.이때 명원은 앞에 있는 소희를 보고 눈빛에 음울함을 스치며 담담하게 말했다."먼저 들어가요, 난 볼 일이 좀 있어서요!"말을 끝내자마자 그는 미연을 상관하지 않고 바로 앞에 있는 소희를 따라갔다.청아는 화장실에 갔고, 소희는 청아에게 해장해 주려고 요구르트를 가지러 갔다.그녀가 막 들어가자마자 뒤에서 차가운 소리가 들려왔다."당신이 왜 여기에 있죠?"소희는 고개를 돌려 명원인 것을 보고 계속 요구르트를 받으며 그를 상대하지 않았다.명원은 무시당해서 화가 나서 일부러 소희를 화나게 하려고 했다."당신 같은 가난한 학생이 어떻게 이곳에 와서 밥 먹을 돈이 있는 거죠? 택이 형 돈 쓴 거예요, 아니면 택이 형 따라온 거예요?"소희는 손에 든 요구르트를 흔들며 물었다."좀 마실래요?"명원은 눈살을 찌푸렸다."무슨 뜻이죠?""술
어쩐지!미연은 명원을 흘겨보더니 소희에게 말했다."소개해 줄게, 내 남자친구, 장명원이야!"명원은 싸늘하게 웃었다."좀 더 분명하게 소개해야죠. 사귀는 척하는 남자친구라고!"미연은 무표정한 얼굴로 말했다."내숭 떨긴!""내가 내숭을 떤다고요? 이건 분명히 사실이라고요!"명원은 눈을 크게 떴다."그럼 얼굴에다 적어요, 이마에 '가짜 남자친구'라고!"명원,"…..."소희는 두 사람이 말다툼하는 것을 보고 너무 익숙하다고 느끼며 약간 웃고 싶었지만 꾹 참았다!미연은 소희를 쳐다보았다."그럼 우리 먼저 갈게!"말을 마치자 그녀는 바로 명원을 끌고 밖으로 나갔다.그러나 명원은 가려고 하지 않았다."나 아직 그녀에게 할 말 있다고요!""무슨 말?" 미연은 다짜고짜 그를 끌고 갔다. "가지 않으면 당신 엄마한테 전화할 거야!""우리 엄마한테 이른다고요? 무슨 어린애도 아니고?""나는 어린애가 아니라 선생님이에요. 학생이 말을 듣지 않으면 당연히 학부모를 불러야 하죠!""간미연 씨, 이렇게 나올 거예요?"......두 사람은 티격태격하다가 점점 멀어져 갔다.소희는 눈썹을 들더니 요구르트를 들고나갔고, 기분이 좋아 보였다.룸으로 돌아왔을 때, 청아는 이미 돌아왔고 소희는 요구르트를 그녀에게 주며 천천히 마시면 해장에 아주 좋다고 말했다.청아의 얼굴은 점점 빨개졌고 마치 화장한 것 같기도 또 나무에서 곧 익을 사과 같기도 촉촉하면서도 부드러웠다.시원은 잠시 나갔다가 바로 국수 한 그릇을 들고 돌아왔다. 그것은 장수면이었는데, 위에는 계란 프라이와 채소 있었고, 간단하지만 사람의 마음을 따뜻하게 했다.청아는 두 손으로 국수를 받아오며 눈가가 촉촉해졌고, 그녀는 이미 취했지만 헤헤 웃으며 시원과 말했다."전에 생일 쇠면 우리 아빠도 이렇게 국수를 끓여 줬거든요. 이것과 똑같아요.”시원은 그녀의 집안 상황을 알고 있었기에 이때 그녀의 촉촉한 눈시울을 보고 가슴이 찡해지더니 담담하게 웃었다."앞으로 우리가 국수 끓여 줄게요."
청아는 화가 나서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어떻게 이럴 수 있어요? 그녀가 왜 나를 대신해서 결정하냐고요!"소희 몇 사람들은 모두 그녀를 바라보았다.허홍연은 제 발 저린 듯 말했다."이 일은 네 새언니가 잘못했어. 네 오빠도 이 일 때문에 그녀와 한바탕 싸우며 돈을 이 씨네 집안에 돌려주라고 했거든. 그러나 그녀는 돈을 다 썼다며 돌려줄 돈이 없다는 거야! 그리고 또 네가 소송을 취하하지 않는다면, 네 오빠와 헤어질 거라고 말했어! 엄마도 어쩔 수없이 너에게 전화하는 거야!"허홍연은 목이 메었다."청아야, 이 일은 그만두면 안 되겠니? 엄마가 이렇게 빌게! 내가 네 새언니보고 4백만 원 내놓으라고 할게, 널 보상하는 셈으로 말이야. 그러니까 장시원 도련님더러 변호사 철수하라고 해, 우리 더 이상 추궁하지 말자!"청아는 멍해지며 머리가 윙윙거렸고 마음도 무척 아팠다. 그녀는 이미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오늘은 그녀의 생일이지만 그녀의 엄마와 오빠는 모두 잊어버린데다 그녀에게 전화를 한 이유는 단지 그녀로 하여금 그 5천만 원을 위해, 장설을 위해, 그녀를 다치게 한 사람을 용서하는 것이었다!언제부터일까? 낡은 집을 팔 때부터 그녀는 더 이상 집이 없었고 그녀의 엄마와 오빠도 모두 변했다."청아야, 엄마도 네가 억울한 거 다 안다. 엄마한테 2백만 원 있으니까 네가 만약 장시원 도련님더러 변호사 철수하게 한다면, 이 돈도 너에게 줄게."허홍연은 아직도 전화로 계속 청아를 설득하고 있었다.청아는 눈시울이 붉어지며 목이 멘 채로 말했다."엄마, 시원 오빠는 나를 위해서 그런 거예요, 알아요?""나도 알아, 그래서 나도 너무 고맙게 생각하고 있어. 그런데 엄마도 들었는데, 이 일도 사실 다 장시원 도련님 때문에 일어났다며? 그는 너를 위해서일뿐만 아니라 자신을 위해서야." 허홍연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어차피 우리도 보상을 받았으니 이 일은 그냥 그만두자!"청아는 싸늘하게 말했다.“보상이요? 피해는 내가 입었는데, 보상한 장설이 받
청아는 그제야 받았다."고마워요!"구택은 그녀를 도와 상자를 자신의 차에 놓은 뒤 그녀를 데리고 소희와 함께 떠났다.청아가 사는 곳은 너무 외딴곳이라 또 길이 막혀서 그들은 한 시간이 넘어서야 도착했다.너무 늦은 시간이라 청아는 소희더러 위층으로 올라오라고 하지 않았다."일찍 돌아가라!"소희는 그녀가 괴롭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어떻게 그녀를 위로해야 할지 몰라 그냥 부드럽게 말했다."오늘부터 모든 일이 잘될 거야!"청아는 울먹이며 고개를 끄덕였다."응!"그녀는 시원이 준 선물을 안고 소희와 구택에게 작별 인사를 한 뒤 몸을 돌려 들어갔다.구택은 소희의 어깨를 안았다."우리도 이만 돌아가요!"이곳은 엄청 낡은 주택단지라 사람들은 차를 마구 세웠고, 이때 아래층에는 스쿠터와 자전거가 세워져 있었는데 소희는 아래층의 차들을 힐끗 쳐다보더니 발걸음을 멈추고 구택에게 작은 소리로 말했다."잠깐만요!"......청아는 위층으로 올라가서 문에 들어서자, 집안은 평소와 마찬가지로 각양각색의 옷을 입은 한 무리의 사람들이 거실에서 파티를 열고 있었다.어떤 남자와 여자는 베란다에서 키스를 하고 있었고, 어떤 사람은 카드놀이를 하고 있었으며, 탁자 위에는 먹다 남은 도시락, 바비큐, 술병이 놓여 있었고, 온 집안에는 담배 냄새와 술 냄새가 가득했다.청아는 상자를 안고 곧장 자기 방으로 들어갔다.장미와 성강은 소파에 틀어박혀 게임을 하고 있었고 장미는 눈을 들어 청아를 바라보더니 일부러 큰 소리로 말했다."어떤 사람은 정말 부끄러운 줄도 모르나 봐. 남자를 꼬신 다음 또 다른 사람에게 덮어 씌우다니. 그것도 대학생이 말이야. 참 어이가 없어서!”청아는 발걸음을 멈추더니 장미를 바라보았다!옆에 탱크톱을 입은 한 여자가 웃으며 물었다."장미야, 그게 누군데?"장미는 차가운 눈으로 청아를 쳐다보았다."그건 그 사람이 더 잘 알겠지, 미친년!"성강은 고개를 들어 경망스럽게 청아를 향해 윙크를 했고 무척 득의양양했다!청아의 안색은 하얗게 질
은정은 격노한 아버지를 똑바로 바라보며 또렷하게 말했다.“저는 그런 짓 하지 않았어요. 이건 서선영 저 사람이 꾸민 함정이에요.”서선영은 엉엉 울면서 외쳤다.“내가 내 딸을 희생시켜서 너한테 함정을 판다고? 구은정, 네가 나를 미워하는 건 알아.”“예전부터 나한테 편견이 있었지. 그래, 미우면 나한테 손찌검을 해. 왜 애먼 은서를 괴롭혀?!”“은서는 아직 시집도 안 갔어. 이제 어떻게 살라고 해? 이 소문이 밖에 나가면, 우리 집안은 완전히 끝장이야!”은정은 오직 구은태만 바라보며 물었다.“저를 믿으세요?”구은태는 아들의 눈을 바라보다가, 문득 다른 기억 하나가 떠오르며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그때 갑자기 은서가 벽을 향해 몸을 던지듯 달려갔다. 죽을 각오로 내달리는 눈빛이었다.“은서야! 안 돼, 은서야!”서선영이 급히 은서를 껴안고 붙잡았고, 울음이 멎지 않았다.“은서야, 제발 그런 짓 하지 마. 이건 네 잘못이 아니야!”“거기 누구 없어요! 얘 좀 붙잡아줘요!”서선영은 울먹이며 도우미들을 향해 소리쳤다. 몇 명의 도우미가 급히 달려와 은서를 붙들고 감싸 안았다.그중 평소 은서를 따르던 도우미가 조심스럽게 구은태 앞에 다가와 입을 열었다.“회장님, 사실은 전에도 도련님께서 밤에 아가씨 방문을 두드리는 걸 몇 번 본 적이 있었어요.”“하지만 도련님이 너무 무서워서, 보복당할까 봐 말씀 못 드렸어요. 제가 잘못했어요.”그 도우미는 흐느끼며 말을 잇지 못했다.“제가 좀 더 일찍 말씀드렸더라면, 이런 일은 없었을 텐데요!”은정은 도우미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기억이 떠올랐다. 예전에 애옹이가 은서에게 보내졌던 그날 밤, 은정은 술에 취해 돌아와 애옹이가 사라진 걸 알고 은서를 찾아갔다. 그때 이 도우미가 어두운 구석에서 숨어 지켜보고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구은태는 거기까지는 떠올리지 못했다.죽을힘을 다해 몸을 던지려던 은서, 그리고 도우미의 일방적인 증언이 더해지자, 구은태는 은정을 더 이상 믿지 않았다.다시 근처에 있던 물
[말 좀 해봐요.][삼촌?]서선영이 천천히 2층에서 걸어 내려오더니, 바닥에 떨어져 있던 휴대폰을 집어 장말숙 아주머니에게 건네며 눈짓을 보냈다. 이에 장말숙 아주머니는 눈치를 채고 전화를 받아 들고 말했다.“유진 씨죠? 저희 도련님이 술에 취하셨어요.”유진은 잠시 침묵하더니 말했다.[네, 신세 좀 질게요. 잘 부탁드려요.]“네!”장말숙 아주머니는 괜히 말을 더했다가 실수라도 할까 봐 다급하게 전화를 끊었다. 은정의 까만 눈동자가 서선영을 향해 있었지만, 그 시선은 이미 흐릿했다.서선영은 은정을 부축하듯 손을 내밀며, 자애로운 얼굴로 말했다.“은정아, 술 너무 많이 마셨잖아. 방으로 데려다줄게.”“으악!”날카로운 비명에 은정은 정신이 번쩍 들며 눈을 떴고, 날은 훤하게 밝아 있었다.옆에서는 구은서가 실크 잠옷 차림으로, 옷가지로 몸을 허둥지둥 가리고 있었고, 얼굴은 절망감에 젖은 눈물로 가득했다. 그녀는 분노로 떨리는 눈으로 은정을 노려보고 있었다.구서의 비명은 곧 서선영과 집 안 도우미들을 방으로 불러 모았다. 문이 열리고 방 안 풍경을 본 순간, 모두가 굳어버렸다.은정은 조금씩 의식을 되찾았고, 은서를 훑어보며 눈빛이 짙게 가라앉았다. 이불을 들추고 자신을 확인해 보니, 바지는 제대로 입고 있었지만 상의는 전혀 없었다.은정은 몸을 일으켜 세우려다 이마를 짚으며 침대 머리에 기대앉았다. 머리가 묵직하게 지끈거렸다.“엄마!”은서는 멘탈이 완전히 무너져 울부짖었다.“은서야!”서선영이 달려와 은서를 안고, 옷을 덮어주며 얼굴이 창백하게 질렸다.“도대체 이게 어떻게 된 일이니?”“몰라요!”구은서는 서선영 품에 얼굴을 묻은 채 오열했다.“밤에 오빠가 갑자기 방에 들어왔어요. 술에 취해서 저를 한 대 치더니 그다음은...”은서의 머리는 흐트러져 있었고, 드러난 어깨엔 붉은 자국이 가득했다. 누가 봐도 무슨 일이 있었는지 짐작할 수 있었다.“짐승 같은 놈!”서선영은 벼락을 맞은 듯 충격에 빠져 온몸을 떨며 은정을 향해 소리
우정숙은 이 모든 상황이 이해되지 않아 눈썹을 살짝 찌푸렸다. 예전에 은정은 분명히 임유진은 내 스타일 아니라며 선을 그은 적이 있는데, 왜 지금 와서 이렇게 적극적으로 쫓고 있는 걸까?“넌 어떻게 생각해?”우정숙이 묻자, 유진은 여전히 고개를 숙인 채 조용히 말했다.“조금 냉정해질 필요가 있을 것 같아서요. 그래서 돌아왔어요.”그 말투가 생각보다 무거워, 우정숙은 분위기를 일부러 누그러뜨리며 웃었다.“이미 거절했는데도 냉정해져야 해?”유진의 귀가 붉게 물들었다.“어쨌든, 엄마는 이 일. 할아버지, 할머니한테는 말하지 말아줘요. 그리고 삼촌한테도 되도록 비밀로 해주세요.”그 말에 우정숙은 딸의 속내를 단번에 알아차렸다.“갑자기 이렇게 서둘러 집에 돌아온 이유 혹시 일이 더 커질까 봐? 너희 할아버지가 구은정한테 가서 따질까 봐 걱정돼서 그런 거 아니야?”유진은 재빨리 대답했다.“누가 그 사람 걱정했대요? 밖에서 사는 게 질려서 온 거지, 그 사람이랑은 아무 상관 없어요.”하지만 우정숙의 따뜻하고 조용한 눈빛은 유진의 진심을 꿰뚫고 있었다. 우정숙은 다만 조용히 숨을 내쉬며, 더는 묻지 않았다.그날 밤, 구은정은 외부 일정으로 접대를 나갔고, 유진에게 메시지를 보냈다.[오늘 좀 늦을 것 같아. 집에 들어가면 애옹이 좀 봐줘.]유진은 곧바로 답장을 보냈다.[저도 집에 왔어요. 아주머님께 부탁하세요.]은정은 유진이 하루 정도 집에서 자려는 줄로만 알고, 별 의심 없이 답했다.[알겠어.]밤 10시.은정은 아직 접대 자리에서 술자리를 이어가고 있었다. 그때, 휴대폰에 구은태가 보낸 메시지가 하나 들어왔다.[은정아, 나 몸이 좀 안 좋다. 한번 집에 들러줄래?]은정은 미간을 찌푸렸다.[몸 안 좋으면 병원 가시죠.]그렇게 답장을 보냈지만, 더 이상의 응답은 없었다.술자리가 끝나고 나니 이미 자정 무렵이었다. 은정은 그래도 아버지를 확인하고자 구씨 저택으로 향했다. 집에 들어서자, 애옹이를 돌봐주던 장말숙 아주머니가 거실에서 그
정현준은 인상을 찌푸리며 말했다. “내가 지난번에 뭐라고 했죠? 임유진 건드리지 말랬잖아요. 왜 말을 안 들어요?”진소혜는 웃었다.“들었어요. 적이 내 사람이 될 수 없다면, 없애버리라는 그 말, 정말 감명 깊었거든요. 곧 임유진은 이 회사에서 쫓겨날 거예요.”현준은 진지하게 말했다.“그럼 단도직입적으로 말할게요. 임유진은 쫓겨나지 않아요. 사장님이 반드시 지킬 거니까요.”현준은 걱정 가득한 얼굴로 덧붙였다.“유진 씨, 그 정체가 간단하지 않아요. 사장님이 곤란한 일에 휘말릴 때마다 뒤에서 도와준 사람이 바로 그 애였다고요.”“이렇게 성급하게 나가면 결국 당하는 건 소헤 씨라고요.”소혜는 비웃으며 말했다.“그런 것도 그 얼굴 덕 아니었을까요? 임유진이 무슨 대단한 집안 출신이라도 돼요?”현준은 의미심장하게 말했다.“그 애, 성이 임이야.”소혜는 비웃었다.“강성에 임 씨 많은데요? 임씨라고 다 임씨 집안이예요?”“임유진이 정말 그 임씨 집안 사람이었으면, 이런 작은 곳에서 평사원으로 일할 일이 없죠.”강성에서도 가장 윗자리에 있는 집안, 그 임씨 집안 사람이라면 당연히 격이 달랐을 것이다.현준은 소혜를 바라보며, 무력한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소혜 씨, 소혜 씨는 너무 자만해요. 이제 막 졸업한 사람이잖아요. 세상이 어떤지 아직 몰라요.”“내가 경력은 부족하지만, 머리는 좋아요.”소혜는 코웃음을 치며 말했다.“내가 원하는 건, 어떻게든 손에 넣을 수 있어요.”현준은 더는 어떻게 설득해야 할지 막막했고, 소혜는 입꼬리를 올리며 말했다.“이번 달 말이면, 임유진은 이 회사에서 존재 자체가 사라질 거예요.”이메일은 해외 IP에서 발송된 것으로 확인되어, 추적이 쉽지 않았다. 하지만 루머는 벌써 영업팀까지 퍼진 상황이었다.한때 유진이 구씨 프로젝트를 따낸 걸 보고 감탄했던 동료들조차, 그녀가 정말 실력만으로 이룬 건지 의심하기 시작했다.너무 젊은 나이에, 임씨 그룹 같은 대형 고객을 설득하고, 이미 다른 부서에서 거의 성
서선영은 유혹적인 눈빛으로 남자를 바라보며, 거절하려는 듯하면서도 몸은 피하지 않았다.“안 돼. 나, 한 시간밖에 못 나와 있어.”“당신 보고 싶어서 미치는 줄 알았다니까.”최이석은 그렇게 말하면서 서선영의 치마 지퍼를 내렸다.“밖에 사람 세워놨어. 아무도 안 들어와.”...오전, 임유진은 구씨그룹과의 계약을 마무리했다. 오후에는 회사 고위층 회의에 참석했고, 회의가 끝나고 마케팅부로 돌아왔을 때쯤, 팀 동료들의 시선이 평소와 달랐다.유진이 고개를 돌려 쳐다보자, 모두는 급히 예의를 갖춘 표정으로 바뀌었다. 그리고 유진은 손에 든 자료를 들고 여진구를 찾아갔다.문을 열고 들어가니, 진구는 휴대폰을 들여다보고 있었고, 유진이 들어오자, 그는 무의식적으로 휴대폰을 내려놓았다.“무슨 일 있었어요?”유진이 맑은 목소리로 묻자, 진구는 곧바로 말을 돌렸다.“아니야. 너 손에 든 거, 청원안 자료야? 나 좀 볼게.”하지만 유진은 단호한 표정으로 말했다.“휴대폰, 보여줘요.”진구는 어쩔 수 없다는 듯 휴대폰 화면을 다시 켰다. 방금 보고 있던 건, 유진과 은정이 함께 있는 사진들이었다.둘이 식당에서 식사하는 모습, 그리고 둘이 함께 아파트 단지에 들어가는 장면. 얼마 전 중식당에서 있었던 그날이었다.진구는 얼굴을 굳히고 말했다.“누군가 이 사진들을 너희 팀 메일에 전체 전송했어. 내용은, 네가 구씨 프로젝트를 따낸 게 구은정과 부적절한 관계가 있어서라고.”유진은 이미 그 메일을 확인했었다. 메일에는 프로젝트 성공을 위해 구씨 그룹 사장을 유혹했다는 식의 악의적이고 천박한 문장들이 적혀 있었다.업계 풍기를 망친다는 말까지, 표현이 거칠고 추했다. 유진은 이를 꽉 물었지만, 곧 침착하게 물었다.“발신 IP 추적할 수 있어요?”진구가 답했다.“지금 IT팀에서 추적 중이야. 내부 직원일 수도 있고, 유지그룹 쪽의 보복일 가능성도 있어. 하지만 반드시 밝혀낼 거야.”“일단 외부로 확산은 안 됐고, 회사 내부 루머 수준이야. 이미 전체 공지
유진은 눈을 가늘게 뜨고 웃으며 말했다.“맞아요. 내가 간호까지 해줬어요. 감사 인사는 필요 없고요.”구은정은 잠시 말이 막혔다. 그러다가 그는 천천히 다가오기 시작했다. 은정의 큰 키와 묵직한 분위기만으로도 압도적인 기운이 느껴졌다.이에 유진은 본능적으로 한 걸음씩 물러섰다.“유진아, 대체 언제까지 나 피할 거야?”은정이 묻자, 유진은 당황해서 반문했다.“내가 뭘요?”“너 어젯밤 내가 아픈 틈을 타서, 키스도 하고, 만지기도 하고, 맘껏 했잖아. 다 잊은 거야?”유진은 말문이 막혔다. 은정은 다시 한 걸음 다가서며 말했다.“날 좋아하면서 왜 인정 안 해?”유진은 등을 문에 기대고 은정을 올려다보았고, 눈빛에는 불쾌한 기색이 스며 있었다.“그렇게 나오실 줄 알았으면, 어젯밤 동정 따윈 하지 말 걸 그랬네요.”“동정?”은정은 눈썹을 치켜올렸다.“그럼 뭐겠어요, 삼촌?”유진은 코웃음을 치며 은정의 가슴을 밀치고는 고개도 돌리지 않은 채 걸어 나갔다. 복도에는 유진의 비아냥 섞인 목소리만 가볍게 울렸다.“아플 땐 약 꼭 챙겨 드세요. 헛소리는 고열 때문일 수도 있으니까요.”엘리베이터에 탄 유진은 곧장 떠났고, 은정은 그 자리에 서서 한동안 움직이지 않았다. 이마를 찌푸리며, 눈매는 점점 더 어두워졌다.오전 10시.강성의 어느 프라이빗 클럽.서선영은 넓은 챙이 달린 프렌치 스타일 모자를 쓰고, 스카프로 얼굴을 반쯤 가린 채 조용히 안으로 들어섰다.서선영은 한 룸의 문을 열고 안에 앉아 있는 사람을 확인하자, 모자를 벗으며 차가운 표정을 드러냈다.“요즘 회사 안에 당신을 지켜보는 눈 많아. 그런데 이 타이밍에 날 만나면 어쩌자는 거지?”최이석은 자리에서 일어나 다가왔다.며칠간 이어진 불안과 압박 속에서 예전의 자신감은 사라졌고, 초췌한 인상만 남아 있었다.“내 문제 어떻게 해결할 건데?”서선영은 침착하게 말했다.“변호사 제일 좋은 사람으로 붙여줬잖아.”최이석은 비웃었다.“증거가 빼박인데? 최선이란 게 결국 내가 돈 다
“안 가요, 이불 가지러 가는 거예요.”유진은 목소리를 낮추어 조심스럽게 말했는데, 달래듯 한 말투였다. 그제야 은정은 그녀를 놓아주었다.유진은 방 안에 있던 에어컨을 끄고, 은정의 침실로 향해 이불을 가지러 갔다. 유진은 처음으로 은정의 침실에 들어섰다.외부와 같은 인테리어 분위기, 차분하고 단정하지만 지나치게 냉정한 느낌이었다. 그 방처럼, 그 역시 쉽게 다가가기 어려운 사람이었다. 따뜻함이라고는 느껴지지 않았다.유진은 이불을 안고 잠시 방 안을 둘러본 뒤 거실로 돌아왔다. 그녀는 이불을 은정에게 덮어주고, 소파 앞에 쭈그려 앉아 한참을 바라보다가, 스탠드 조명을 끄고 조용히 돌아서려 했다.그 순간, 은정의 낮고 흐릿한 목소리가 등 뒤에서 울렸다.“유진아, 안 간다고 했잖아.”유진은 뒤돌아봤다. 어두운 거실 속에서 은정의 눈빛은 보이지 않았지만, 왠지 모르게 그녀를 지켜보는 시선이 느껴졌다.그 눈빛엔 서운함과 외로움이 함께 담겨 있는 듯했다. 몇 초간 정적이 흐른 뒤, 유진은 조용히 돌아와 은정에게 말했다.“조금만 안쪽으로 가요.”은정은 곧바로 소파 안쪽으로 몸을 옮겼다. 유진이 옆에 눕자마자, 은정은 유진을 품에 끌어안았고, 이내 그의 뜨거운 입맞춤이 쏟아지는 듯했다.유진은 눈을 감고, 몇 초 뒤엔 어색하지만 조심스레 반응을 보였다. 그 작은 반응 하나에도 은정은 순간 멈칫했다가, 곧 환한 기색을 감추지 못하고 더 뜨겁고 격렬하게 키스했다. 제어 불가능한 감정이 담긴 입맞춤이었다.유진은 마치 물속에 잠긴 듯 숨이 막힐 것 같았다. 무의식적으로 몸을 피하려 하자, 은정의 손이 유진의 허리를 강하게 끌어안았다.어둠 속, 낮고 거칠게 갈라진 은정의 목소리가 귀에 와닿았다.“우리 침실로 갈까?”유진은 얼굴이 새빨개져 그의 품에 파묻혔다.“적당히 해요.”은정은 알았다. 지금 조금만 더 약하게 굴면, 유진은 진짜 넘어올 수도 있다는걸. 하지만 동시에 은정은 너무도 잘 알고 있었다. 만약 침대까지 가면, 진짜 더는 참지 못할 거
유진은 은정이 갑자기 태도를 바꾼 데 놀라 잠시 멍해졌다. 그러고는 작게 중얼거리듯 말했다.“잘못한 거 알면 고치면 되죠. 전 일단, 예전 일은 용서할게요.”유진은 해열제를 찾아내고는 가볍게 숨을 내쉬었다.“다행이다. 할머니가 미리 약들을 챙겨두셨거든요.”노정순이 각 약의 효능과 복용량을 따로 포스트잇에 적어 붙여놓았고, 유진은 방금 몇 번이고 확인했다. 이 정도면 문제없을 것이었다.유진이 자리에서 일어나 주방으로 가 따뜻한 물을 받아왔고, 해열제를 구은정에게 건네며 말했다.“아까 의사 선생님한테 전화했어요. 감기몸살일 가능성이 크대요. 우선 이거 먹어요. 열이 안 내리면 병원 갈 거예요.”은정은 눈앞에 놓인 약을 보며 눈썹을 살짝 찌푸렸다.“체온 안 재봐도 돼?”“체온? 만져보면 알죠!”유진은 다시 은정의 이마를 만지고, 곧바로 자기 이마와 비교해 봤다, 그러고는 확신에 찬 목소리로 말했다.“괜찮아요. 안 재도 돼요. 확실히 열나요.”하지만 은정은 여전히 고개를 저었다.“약 안 먹어도 돼. 뜨거운 물 좀 마시면 곧 나을 거야.”“안 돼요. 꼭 먹어야 해요.”유진은 단호하게 약을 내밀었으나, 은정은 여전히 미동도 하지 않았다. 유진은 고개를 갸웃하며 물었다.“혹시 약 먹는 거 무서워요?”은정은 유진을 물끄러미 쳐다보다가, 피식 웃었다. 그러고는 약을 받아 입에 털어 넣더니, 물을 크게 한 모금 마시고 꿀꺽 삼켰다.그 급한 모습이 너무 긴장돼 보여서, 유진은 웃음을 참느라 애를 먹었다.‘진짜 약 먹는 거 무서운 거였네.’아프기도 하니까, 그냥 웃지 않기로 했다.유진은 다시 몸을 돌려 거실 테이블 위의 약상자를 정리하려고 했다. 약을 넣으려다 상자 뒷면에 적힌 문구가 눈에 띄었다.유진은 고개를 돌려 물었다.“관장약? 관장이 무슨 뜻이에요?”은정은 그 말을 듣고 잠시 멍하더니, 갑자기 얼굴이 확 굳어졌다. 그러고는 몸을 숙여 목 안에 손가락을 집어넣으려 했다.유진은 그 모습을 보자마자 배를 쥐고 웃기 시작했다. 소파에
유진은 몇 걸음 더 다가가 남자를 내려다보며 물었다.“술 마신 거예요?”은정은 눈을 천천히 떴다. 목소리는 낮고 거칠게 갈라져 있었다.“유진아.”유진은 얼굴을 굳히며 반쯤 무릎을 꿇고 앉았다.“대체 왜 이렇게 술을 많이 마셨어요?”은정의 짙고 어두운 눈동자가 곧장 유진을 바라보았고, 그 시선에 유진의 마음이 한없이 흔들렸다.유진은 입꼬리를 비틀어 올리며, 여전히 거칠고 무심한 얼굴로 말했다.“너 볼 수 있다면, 죽어도 괜찮아.”그 말에 유진의 눈가에 눈물이 갑자기 맺혔으나, 눈이 붉게 물든 채로 말했다.“그럼 안심해요. 죽어도 나는 쳐다도 안 볼 거니까요.”그러고는 벌떡 일어나 돌아서려 했지만 유진의 손목이 갑자기 꽉 붙잡혔다. 힘이 세서 도무지 빠져나갈 수 없었다.유진은 차갑게 고개를 돌려 그를 노려보며 말했다.“놓으세요.”그러자 은정은 갑자기 목소리를 낮췄다.“나 열 나는 거 같지 않아? 만져봐.”유진은 순간 당황했다. 은정은 머리를 쿠션에 기댄 채, 유진의 손을 잡아 자기 이마 위에 올렸다.뜨겁게 달아오른 열기에 유진의 얼굴빛이 달라졌다. 그녀는 손바닥 전체를 이마에 붙이며 다시 확인했다. 정말 점점 더 뜨거웠다.“아픈 거예요?”유진이 놀란 목소리로 묻자, 은정은 유진의 얼굴을 바라보며 대답했다.“그런 것 같아.”“어디가 더 아파요?”유진이 걱정스레 물었다.“머리가 아파. 그리고...”은정은 유진의 손을 내려 가슴팍 위에 얹었다.“여기도 많이 아파.”셔츠 너머로 느껴지는 단단한 근육과 거친 심장 박동. 쿵, 쿵, 쿵, 그 격한 두근거림이 고스란히 유진의 손바닥에 전해졌다.유진은 놀라 손을 황급히 빼며, 입술을 꾹 다물었다.“구은정.”은정은 깊게 눈을 바라보며 말했다.“내 이름 그렇게 불러주는 거, 제일 좋아.”속으로는 바랐다. 언젠가 유진이 다시 자신을 사장님이라 부르는 날이 오기를.유진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그저 일어서서 단호하게 몸을 돌렸다. 그러고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그대로 문을 나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