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문을 닫고 커튼을 친 뒤, 귀마개를 꺼내 귀에 꽂고 다시 자리에 누웠다.천둥소리는 이중으로 차단되어 이제 아심의 수면을 방해하지 않았고, 바깥에서 들려오는 희미한 비바람 소리에 오히려 마음이 편안해졌다. 그렇게 곧 잠이 들었다....다음 날 아침, 강아심이 깨어났을 때는 이미 오전 여덟 시였다. 커튼을 열자 여전히 비가 내리고 있었고, 빗줄기는 줄어들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아래층 발코니엔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시언이 아직 잠들어 있는지, 아니면 아침 식사를 하러 내려갔는지 알 수 없었다.비 오는 날 산속의 공기는 더 촉촉하고 신선했으며, 흙과 풀 냄새가 은은하게 풍겨왔다. 멀리 보이는 산봉우리는 안개에 휩싸여 희미한 윤곽만 보였다.아심은 난간에 기대어 잠시 비 내리는 풍경을 바라보았다. 그러다 아래에서 무언가 움직이는 게 보여 내려다보니, 시언이 나타나 말했다.“아래로 내려와서 밥 먹어.”아심은 반사적으로 대답했다.“세수하고 갈게요.”아심은 서둘러 방으로 돌아가 준비를 마쳤다. 옷을 갈아입으며 옷장 앞에 놓인 여행 가방을 보자 잠시 멈칫했다. 이렇게 비가 많이 오는데, 아마 오늘은 떠나지 못할 것이다. 준비를 마치고 내려가자 시형은 평소처럼 식탁에서 기다리고 있었다.아심은 가볍게 인사했다.“안녕하세요, 좋은 아침이에요.”시언은 아심을 힐끗 쳐다보곤 휴대폰을 내려놓고 말없이 식사를 시작했다. 그가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자 아심도 조용히 앉아 아침 식사를 함께했다.오랫동안 고용된 군인이었지만, 시안은 식사할 때 급하게 먹는 법이 없었다. 시언의 타고난 예절과 품위는 오랜 세월에도 변하지 않는 듯했다.한참 후, 도우미가 수프를 들고 왔을 때, 식탁에 앉아 아침을 먹는 두 사람을 보며 잠시 멈칫했다.아심은 프랑스식 긴소매 드레스를 입고, 풍성한 웨이브 머리를 어깨에 흩날리며, 식사 중에도 곧은 자세와 단정한 매무새를 유지하고 있었다. 살짝 숙인 고개와 우아한 목선이 마치 그림 속 주인공처럼 고혹적이었다.반면 아심의 맞은편에 앉은
‘영원할까?’강아심은 미소를 지으며 조용히 수프를 마셨다....별장 사람들은 비가 많이 오는 탓에 단체 채팅방을 만들었고, 도도희는 아침 일찍 학생들에게 하루 휴교한다고 알렸다. 그러고는 모두에게 각자의 별장에 머물면서 돌아다니지 말라고 당부했다.밖에는 폭우가 쏟아지고 있어 별장 밖의 강이 불어나거나 산사태가 발생할 수 있어 별장 안에 머무는 것이 가장 안전했다.아침 식사를 마치고 올라가기 전에 아심은 약상자를 들고 가서 시언의 약을 다시 발라주었다. 약을 바르는 내내 두 사람은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아심은 일을 마친 후 자신의 방으로 돌아가 오늘 하루 쉬는 틈을 타서 컴퓨터를 켜고 회사 업무를 처리했다. 그러면서 지승현에게 메시지를 보내 김후연의 상태가 어떤지 물었다.승현은 메시지를 받자마자 곧바로 전화를 걸어왔다.[여기도 비가 오고 있어. 할머니께서는 계속 졸리신 것 같지만 병원에는 끝까지 가지 않으셔. 이제는 뭘 해도 소용이 없어. 그저 그 순간을 기다릴 뿐이지.]아심은 몇 마디로 승현을 위로했다. 승현은 더 이야기하고 싶어 했지만, 그의 비서가 사무실로 들어와 임시 이사회를 열어야 한다고 알려주었다. 이에 승현은 어쩔 수 없이 전화를 끊었다.아심은 전화를 내려놓고 다시 업무에 집중했다. 가끔 휴대폰을 확인하며 별장 단체 채팅방을 보았고, 사람들은 계속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주한결과 친구들은 포커를 치고 있었는데, 한결과 에블리가 한 팀이 되어 계속 이겼고, 기주현과 조규성은 계속 져서 이마에 거북이를 그려야 했다.이번에도 한결이 이겼고, 그는 주현의 얼굴에 거북이를 그리는 장면을 에블리가 찍어두었다. 한결은 전혀 봐 주지 않고 거북이를 주현의 눈 위에 그렸다.눈을 감으면 작은 거북이가 되었다가, 눈을 뜨면 거북이 등껍질이 사라지고 거북이 다리가 길게 속눈썹처럼 서 있어 웃음이 절로 나왔다.한결은 웃느라 소파에 몸을 기댔다. 주현은 단체 채팅방에 셀카를 올렸고, 강아심은 눈물을 흘릴 정도로 크게 웃었다.에블리가 말했다.[다음엔
아심은 숨을 깊이 들이마셨다. 시언이 오해하고 있다는 걸 알았지만, 굳이 해명할 생각은 없었다. 그냥 오해하게 두는 게 편했다. 그랬기에 아심은 느긋하게 말했다.“하지만 난 빨간 장미도 하얀 장미도 좋아해요. 손에 빨간 장미를 들고 있다고 해서 하얀 장미를 좀 더 보는 게 뭐 어때요?”남자의 기운이 순식간에 싸늘해지며 아심을 죽일 듯이 쳐다봤다. 그러고는 벌떡 일어나 방으로 들어갔다.아심은 두 손으로 난간을 붙잡고 몸을 앞으로 기울였다. 그 순간 쾅! 하는 소리와 함께 발코니 문이 세차게 닫혔다. 시언의 화가 온 건물을 흔드는 것 같았다.아심의 얼굴에 비가 튀어 차갑게 스며들었고, 스스로가 한심하고 우스웠다. 마침 도도희가 단체 채팅방에 메시지를 보냈다.[아심아, 뭐 하고 있어? 왜 계속 말이 없어?]이에 아심이 답장했다.[하얀 장미를 보고 있었어요.]갑작스러운 말에 도도희가 되물었다.[너희 별장 앞에 하얀 장미가 있어?][지금은 안 보여요. 아까 착각했나 봐요.][그럼 분명 착각이야. 너희 앞 정원에는 몇 그루의 치자나무만 있을 텐데.]아심이 쓴웃음을 지으며 답했다.[그럼 내가 치자꽃을 하얀 장미로 착각했나 봐요.]다른 사람들도 도도희와 아심에게 인사를 건네며 포커 게임에서 일어난 웃긴 이야기를 전했다. 한결이 음성 메시지를 보냈다.[선생님, 에블리는 제가 맡았어요. 안심하세요. 절대 손해 보지 않게 잘 챙길게요.]그리고는 아심에게 말했다.[아심아, 나중에 치자꽃을 따서 방에 놓아줄게. 그러면 착각하지 않을 거야.]아심은 웃으며 답했다.[고마워. 하지만 괜찮아. 꽃은 나무에 있는 게 더 오래가잖아.]한결이 말했다.[내가 촌스러웠네. 그럼 내가 그림으로 그려줄게!]에블리가 덧붙였다.[좋은 생각이야!]한결이 말을 덧붙였다.[그럼 내가 하나 더 그려줄게.]사람들이 채팅방에서 농담을 주고받았지만, 아심은 주현이 여전히 말이 없는 걸 눈치챘다.아심은 머리를 들어 멀리 떨어진 별장을 바라보았다. 정원 너머 희뿌연 빗속에서
수요일 저녁 7시 정각 소희는 전위 호텔 앞에 나타났다.핸드폰 알림 소리가 울리자 소희는 카카오톡을 확인했다. 아빠 소정인이었다. [소희야, 아빠 부탁 들어줘서 고마워, 차가 좀 막히네. 먼저 들어가있어.]소희는 발걸음을 늦추며 이따 임구택을 만나면 어떻게 인사할까 생각하고 있었다.결혼 3년 동안 그들은 한 번도 만난 적이 없었다. 임구택이 이 결혼을 동의하지 않을뿐만 아니라 심지어 거부한다는 것은 안 봐도 뻔했다.그렇다고 임구택을 탓할 일도 아니었다. 과거 소씨 가문의 회사가 위기를 맞자 뻔뻔하게 임씨 가문을 찾아가 혼인 약속을 이행하라고 요구하였고, 당시 임씨 가문의 장남은 이미 결혼을 한 터라 자연스레 그 약속은 차남 임구택이 이행하게 되었다. 그가 내키지 않아 하는 것도 당연한 일이었다.임씨 가문은 당연히 소씨 가문에 좌지우지 당하지만은 않았다. 예물로 50억 원을 건네어 소씨 가문이 난관을 이겨내게 도우면서도 조건을 제시했다. 3년 뒤에 이 혼사가 자동 해지되는 것으로.3년 전, 그녀는 아직 법정 결혼 연령이 되지 않아, 두 사람은 라스베가스에 가서 혼인신고를 했다. 정확히 말하자면 이 두 사람이 아니라 각자의 대리인이 가서 혼인신고를 마쳤다. 결혼하자마자 임구택은 미국으로 건너가서 결혼 해지를 석 달 앞두고 돌아왔다. 결혼을 거부한다는 태도가 너무나도 뚜렷했다.하필이면 오늘, 그녀의 아버지가 회사 때문에 그녀를 앞세워 다시 한번 그를 찾아가 부탁해야 하는 상황인 것이다.소희는 스스로를 비웃으며 자신을 어떻게 소개할지 생각하였다. “임 선생님 안녕하세요, 저는 당신 아내에요!”그가 그녀를 거들떠보기나 할까?듣건대 임구택은 미국으로 떠나기 전 강성의 유명한 악질이었다고 한다. 강성의 흑과 백을 모두 통솔하며 일을 처리함에 있어서 매섭고 결단력 있는 사람이라고 했다.하지만 며칠 전 TV의 경제 채널에서 임구택을 본 적이 있는데 그녀가 생각했던 이미지와는 많이 달랐다. 명품 양복을 입고, 거만하면서도 우아하고 듬직해 보였다.그녀는
그의 손에는 만 원짜리 지폐 한 장이 쥐어져 있었다.일을 마친 후 돈을 지불하다니. 그녀는 그를 무엇으로 생각하는 걸까?남자가 냉담한 얼굴을 하고 발코니로 성큼성큼 걸어가니 과연 창문이 열려 있었다.여기는 층고가 높아서 3층이 4층 높이일 텐데 그녀는 어떻게 뛰어내렸을까?그가 그렇게 무서웠나? 죽음을 무릅쓰고 도망칠 만큼?창문으로 바람이 불어 들어왔다. 물을 끼얹은 듯 청량한 바람이지만 남자의 마음속에서 타오르는 화는 식히지 못하였다. 이 여인은 만 원으로 그를 모욕했을 뿐만 아니라, 일이 끝난 후에 창문으로 뛰어내려 도망쳤다... 잡히기만 해봐! ......택시에 앉은 소희가 재채기를 하자 운전기사가 백미러를 보며 물었다. “아가씨, 괜찮아요?”이렇게 예쁘게 생겨서 홀딱 젖어있다니, 딱 봐도 무슨 일이 있었던 것 같았다.소희는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 “괜찮아요.”기사는 웃으며 말했다. “아직 학생이죠? 밖에 혼자 다닐 때 각별히 조심해야 되요.”“네, 감사합니다. 기사님.”소희는 대답하고 휴대폰을 꺼내 재빨리 문자를 보냈다. “천위 호텔의 7시와 9시경에 내가 찍힌 CCTV 기록은 모두 없애!”“ok!” 상대방은 아무것도 묻지 않고 지시에 따랐다.남자의 귀에 거슬리는 말이 다시 귓가에 울려 퍼졌다. 소희는 오늘 임구택과 만나야 할지 말아야 할지 그따위 고민은 더 이상 하지 않았다. 다만 임구택이 그녀가 왔었다는 사실을 모르게만 하고 싶었다.운해로에서 내리면서 소희는 뒷좌석을 적신 대가로 택시비를 두 배로 지불했다.별장으로 돌아오자 하인은 소희의 젖은 옷을 보고 깜짝 놀라 물었다.“작은 아가씨, 무슨 일이에요?”“일이 좀 있었어요, 일단 올라가서 샤워부터 할게요.”소희는 위층으로 걸음을 옮겼다.“목욕물 준비해 드릴게요.”하녀는 더 묻지 못한 채 위층으로 올라가 준비했다.몇 분 후 소희는 따뜻한 욕조에 몸을 담그고 있었다. 긴장했던 몸이 점차 풀리기 시작했다.머릿속이 복잡해서 머리까지 물속에 파묻고 오늘 밤에 있
소희는 멍해졌다.남자는 차갑게 입을 열었다. “왜 절 따라오시는 거예요? 강성대 학생이신가요?”그는 오는 길에서부터 이 여자가 자신의 뒤를 따라오는 것을 발견했다. 그가 멈추면 그녀도 무슨 일이 있는 척 멈추더니 엘리베이터까지 따라왔다.소희는 얼굴이 빨개졌지만 이내 다시 냉정을 되찾고 반문했다. “여기가 당신 집으로 가는 길인가요? 모든 사람이 갈 수 있는 길을 왜 제가 따라다닌다고 하는 거죠?”남자의 눈동자의 싸늘한 빛이 스치더니 뒤로 한 발짝 물러서며 소희에게 올라오라고 눈짓했다.소희는 입술을 실룩거리며 비꼬듯 말했다. “됐어요, 오해받을 만한 행동 안할게요.”말을 마치고 그녀는 돌아서서 계단으로 걸어갔다.그녀 뒤로 엘리베이터 문이 천천히 닫히며 남자의 가늘게 뜬 눈을 가렸다.소희는 임구택과 다시 마주칠까 봐 아예 계단으로 9층까지 올라갔다.회의실에 도착하니 조교가 학과장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조교는 그녀를 보자 잠시 기다리라고 눈짓했다.그 옆에는 몇몇 학생들도 자료를 제출하러 왔는데, 그중 한 명은 따가운 눈빛으로 소희를 노려보았다. 소희는 못 본 척 휴대폰을 꺼내 스도쿠를 했다.5분도 안 돼 한 판을 풀고 나니 밖에서 점점 가까워지는 발자국 소리가 들려왔다.“돌아온 지 얼마 안 됐죠? 출국한지 오래됐으니 돌아올 때 됐구나 싶었는데”교장선생님의 목소리와 함께 두 사람이 회의실로 들어왔다. 한 사람은 교장선생님이고, 다른 한 사람은...소희는 자기도 모르게 눈살을 찌푸렸다. 이렇게 공교로운 일이...?임구택도 소희를 보았다. 그의 눈빛은 그녀에게 머물지 않고 바로 지나갔다.학과장은 급히 마중 나가 교장선생님과 인사를 나누었다.방 교장은 그에게 소개하였다. “이 분은 LS그룹의 대표이사님이십니다. 예전에 우리 학교 학생이었지요. 참, 우리 학교 여러 항목의 장학금도 임 회장님이 후원한 것입니다.”그러자 학과장은 냉큼 공손한 표정을 지으며 임구택과 악수를 나누었다. “오늘 마침 학생들에게 장학금 신청 서류를 제출
임구택은 그날 창문에서 뛰어내린 여자를 조사하라고 지시했고, 명우는 제일 먼저 천위 호텔의 CCTV를 조사했다.이상하게도 7시와 9시 두 시간대 모두 공백 상태였고 천위 호텔의 보안요원조차 이게 어떻게 된 일인지 설명하지 못하고 당시 인터넷이 끊겼을 것이라고 추측만 하고 있었다.그래도 명우는 한 사람을 찾았다. 서이연.서이연은 B급 배우로 청순하고 러블리한 이미지의 노선을 걷고 있으나 줄곧 뜨지 못했다. 어제 저녁 6시 50분쯤 그녀가 천위 호텔에 들어가 연풍관 쪽으로 걸어가는 것을 CCTV에서 볼 수 있었다. 이후 CCTV 기록에는 공백이 있어 그녀가 어느 방으로 갔는지 구체적으로 알 수 없었다.9시 5분경 서이연의 매니저가 그녀를 부축하고 연풍관 밖에 나타났는데, 그녀는 한쪽 다리를 구부린 채 괴로운 표정을 짓고 있는 것으로 보아 부상을 입은 것이 분명했다.그 뒤로 기록이 사라졌기 때문에 명우는 서이연이 어떤 차를 타고 떠났는지 몰라 어느 병원에 입원해 있는지 알아내는 데 시간이 좀 걸렸다. 어젯밤 그녀는 왼쪽 다리를 수술했다.명우는 이미 차트를 확인했는데 낙상이었다.그날 밤, 강성의대 부속병원.VIP706호. 병상에 누워있는 여인은 두 손을 맞잡고 불안한 표정으로 맞은 켠 소파에 앉은 임구택을 바라보았다. “임 대표님 무슨 일이에요?”“다리 어떻게 다쳤어요?” 임구택은 그녀를 바라보며 담담하게 입을 열었다.서이연은 한쪽 다리에 깁스를 하고 반쯤 늘어뜨린 눈꺼풀 아래 눈물을 반짝이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임 대표님과 관련이 있나요?”“숨길 필요 없어요, 사람을 시켜 이미 CCTV를 확인했으니까. 어젯밤 9시쯤 매니저가 당신을 부축해서 차를 타고 떠날 때 다리는 이미 부러져 있었죠. 그날 밤 제 방에서 뛰어내린 사람은 바로 당신이었습니다, 맞나요?” 임구택의 어조는 여느 때와 다름없이 담담했다.손님의 사생활 보호 차원에서 천위 호텔은 카메라가 객실 창문을 향하고 있지 않기 때문에 서이연이 어디서 뛰어내렸는지는 볼 수 없지만,
여인이 달려들며 손에 들고 있던 꽃들은 소희의 몸에 던져졌다. 힘껏 소희를 뒤로 밀치고는 소연을 품에 끌어안았다.진원은 긴장한 채 소연의 몸을 살펴보며 물었다. “다친 거야? 혹시 피났어? 어디 아프니?”이슬을 머금은 꽃잎이 온 바닥에 흩어지고 꽃의 가시가 소희의 목덜미를 찔러 따끔거렸다. 그녀는 여인의 긴장된 모습을 멍하니 바라보았다.소정인은 이내 다가와 소희에게 물었다.“안 다쳤니?”진원은 갑자기 고개를 돌려 무서운 눈빛으로 소희를 노려보았다. “뭐 하는 거야, 소연이를 죽이려는 거니?”소희는 여인의 눈에 비친 혐오와 원한을 보고 가슴이 쿵하고 내려앉았다.소연은 소희를 한 번 쳐다보고는 급히 진원의 손목을 잡아당겼다. “엄마, 오해예요. 제가 언니한테 머리 좀 잘라달라고 했어요. 언니는 절 다치게 하지 않았어요.”“그렇구나!”소정인은 ‘하하’하고 웃으며 진원을 원망했다. “당신은 항상 너무 급해서 문제야. 무슨 일인지 알아보지도 않고 화부터 낸단 말이야. 당신 때문에 소희 옷이 다 더러워졌잖아.”진원은 자신이 소희를 오해했다는 것을 깨닫고 무안해하며 변명했다. “들어오자마자 소희가 가위를 소연이의 목에 대고 있길래... 머리를 자르는 건줄도 모르고...”“그만 해!”소정인은 진원에게 눈짓을 하고는 소연에게 말했다. “언니 데려고 가서 옷 좀 갈아입혀. 옷이 다 더러워졌네.”“언니, 이리 와!”소연은 그녀의 손을 잡았다. 소희는 어깨의 꽃잎을 손가락으로 쓸어내리자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2층 침실로 들어가자 소연이 사과했다. “언니, 정말 미안해, 엄마가 이 시간에 돌아올 줄 몰랐어. 나 때문에 언니가 다쳤네.”“너 때문이 아니야!”소희의 순수한 얼굴에는 한 줄기 미소를 띠고 있었다.소연은 옷방에 가서 흰색 티셔츠를 가져와 소파에 놓았다. “언니, 이건 새거야, 한 번도 안 입었어. 옷 갈아입어, 난 내려가서 기다릴게.”“응.”소연이 문을 닫자 소희는 소파 위의 옷을 보며 안색이 흐려졌다. 한쪽에서는 머리를 잘라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