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솔은 화가 나서 손을 뻗어 진석을 때리려 했지만, 진석이 힘을 줘 허리를 더 눌렀다.“움직이지 마!”“응.” 강솔은 아프면서도 시원해서 무심코 가벼운 신음을 내뱉었다. 진석의 몸이 순간적으로 굳어지며 눈빛이 더 깊어졌다. 강솔의 허리를 누르고 있는 진석의 손은 그녀의 부드럽고 연약한 몸을 느꼈고, 심장이 쿵쾅거리며 뛰기 시작했다. 강솔은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전혀 모르고, 한동안 조용히 있다가 물었다.“근데 왜 강성으로 돌아가지 않았어?”자신은 감정의 상처를 치유하려고 집에 있는 것이지만, 진석은 왜 떠나지 않았을까? 진석은 숨을 내쉬며, 약간 허스키한 목소리로 말했다.“처리해야 할 일이 좀 남았어.”“무슨 일이야?” 강솔은 호기심 가득한 목소리로 물었다. 진석은 강솔의 질문에 답하면서도, 자신도 모르게 미간을 찌푸리며 짜증난 목소리로 말했다.“뭘 그렇게 많이 묻는 거야? 너랑 상관없는 일이야!”이에 강솔은 놀라며 말했다.“난 그냥 물어본 거야. 왜 화를 내?”진석은 점점 더 답답함을 느끼며, 짜증이 나 얼굴을 굳히고 말을 잇지 않았다. 강솔은 갑자기 화를 내는 이유를 알 수 없었고, 마음이 착잡해졌다. 그래서 일어나려고 팔을 짚었다.“그만해. 이제 내가 할 수 있어. 집에 갈게!”“움직이지 마!” 진석은 강솔의 허리를 단단히 누르며 힘을 주었다.“아야!”강솔은 가볍게 소리쳤고, 몸이 소파로 푹 파묻히며 장난스럽게 말했다.“살살해!”진석의 손이 더 단단히 쥐어졌고, 하마터면 욕설이 터질 뻔했다. 진석은 깊게 숨을 들이마시고 다시 허리를 주물렀다. 둘 다 더 이상 말을 하지 않았다. 진석이 힘을 줄 때마다 강솔은 무의식적으로 소리를 냈다.이 상황은 진석에게는 고문 같았고, 손을 놓고 싶지 않은 고통스러운 고문이었다.방 안의 공기는 점점 무겁고 아슬아슬한 긴장감이 감돌았다. 심지어 둔감한 강솔도 뭔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느꼈다. 그래서 다시 소리를 내지 않았지만, 진석이 만지는 곳이 점점 뜨거워지는 것을 느꼈다.진석의
진석은 휴대폰을 들어 메시지를 확인한 후, 담담하게 말했다.“저녁에 몇몇 동창들과 모임이 있어.”그 말에 강솔은 웃으며 말했다.“잘 됐다! 그럼 나도 저녁에 너랑 같이 가자.”진석은 속으로 순간적으로 움직임을 느끼며, 목소리가 부드러워졌다.“너도 나랑 같이 가겠다고?”강솔은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응, 오늘 밤에 우리도 동창 모임이 있어. 장소도 같은 스타라이트니까, 네 차 타고 갈래. 내가 차를 안 가져가도 되잖아!”진석의 마음속에 잠깐 피어올랐던 부드러운 감정이 사라졌고, 이내 물었다.“몇 층인데?”“3층이야.”진석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알았어. 갈 때 데리고 갈게.”“고마워, 진석!” 강솔은 눈을 살짝 감고, 컴퓨터를 안고 일어섰다.“나 집에 갈게, 잘 있어!”그러자 진석은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몇 시인데 벌써 집에 가? 퇴근했어?”“아?” 강솔은 잠시 멍하니 있자, 진석은 몇 개의 디자인 문서를 그녀에게 던지며 말했다.“이 디자인 작업들을 해 질 때까지 마쳐, 그렇지 않으면 동창 모임에 갈 생각도 하지 마.”강솔은 길게 한숨을 내쉬며 다시 자리에 주저앉았다. 문서를 집어 들고는 혼잣말로 투덜거렸다.“정말 못된 자본가야!”진석은 강솔의 작은 불평을 들으며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숙여 서류를 다시 검토했다. 강솔은 점심을 진석의 집에서 먹고, 오후 내내 두 사람은 계속 일했다.하나의 책상에서 서로 마주 앉아, 한쪽은 서류를 검토하고, 한쪽은 디자인 작업을 했다. 각자 할 일을 하면서 가끔은 말다툼하기도 했고, 가끔은 일에 대해 논의하기도 했다. 전반적으로 분위기는 평화로웠다.해가 질 무렵, 강솔은 물 한 모금을 마시고 일어서서 길게 기지개를 켰다.“보람찬 하루를 보내니 정말 기분이 좋아!”진석은 의자에 기대어 강솔을 바라보며 조용히 웃었다. “허리는 이제 괜찮아?”강솔은 몸을 돌리며 놀라며 말했다.“아주 좋아졌어! 역시 진석 사장님은 대단해!”진석은 강솔의 칭찬에 반응하지 않고 말했다.
강솔은 손을 들어 귤을 받으며 웃음을 참지 못하고, 귤을 까먹으며 집 안으로 들어갔다. 강솔은 원래 치마를 입는 것에 익숙하지 않아서 옷을 갈아입고 나갈 생각을 했다. 그런데 갑자기 지금도 충분히 예쁘다는 진석의 말이 떠올랐다.강솔은 거울 앞에 서서 치마를 입은 자신을 보며, 정말로 꽤 예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행복한 미소를 지으며 치마 앞에서 한 바퀴를 돌았다. 기분이 갑자기 아주 좋아졌다.진석이 전화를 걸어왔을 때, 강솔은 외투를 챙겨 집을 나섰다. 이번에는 패딩 대신 무릎까지 오는 코트를 입었다.윤미래가 설날에 사준 코트로, 밝고 쨍한 옷이라 약속에 갈 때 입기에 좋다고 했다. 원래는 별로 좋아하지 않았는데, 집을 나서기 전에 옷장 속에서 이 옷이 눈에 딱 들어왔다.쨍한 색감의 코트에 검은색 치마, 시각적으로 한눈에 확 들어오게 잘 어울렸다. 진석이 아름다운 강솔의 모습을 보자 검은 눈동자가 미세하게 수축했다. 강솔의 원래 귀여운 단발머리도 약간의 섹시함과 멋스러움이 더해졌다.“가자!” 강솔은 밝게 웃었다.진석은 운전대를 잡고 있는 손을 살짝 더 움켜쥐었다. 그의 선글라스 뒤로 숨겨진 깊고 어두운 눈동자에 살짝 당황한 기색이 스쳤다. 또한 마음속에는 약간의 긴장과 함께 더 큰 부드러움이 넘쳐났다.강솔의 휴대폰에 메시지가 왔는데 이윤주가 도착했는지 물어보는 메시지였다. 강솔은 두 손으로 휴대폰을 들고 메시지를 입력했다.[곧 도착해. 지금 가고 있어.]진석은 눈꼬리로 강솔을 슬쩍 보며 담담한 목소리로 물었다.“모임에 누가 오는데?”“이윤주, 소울연 같은 애들이야. 너도 아는 애들이지.”“남자도 있어?” 진석은 마치 무심한 듯 물었다.“아마 없을걸.”진석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술 적게 마시고, 과한 게임은 하지 마. 모임 끝나면 내가 널 데리러 올게.”강솔은 매번 모임 때마다 진석이 해주는 당부에 익숙해져서 고개를 끄덕였다.“알았어, 걱정하지 마. 다들 내 친구야!”“친구라고 해서 방심하면 안 돼. 이런 자리에서
강솔은 잠시 멈칫하며, 주예형을 떠올리자 마음속 깊은 곳에서 바늘로 찌르는 듯한 아픔이 느껴졌다. 그러나 그와 함께했던 날들을 되새겨보면, 그것이 마치 전생의 일처럼 멀게만 느껴졌다.솔직히 말해서, 이별 후에 진석이 곁에 있어 주어 다행이었다. 매일 강솔과 함께 달리기하거나 여기저기 놀러 다니며, 항상 무언가 할 일을 찾아주었다. 덕분에 강솔은 방에 틀어박혀 자신을 연민하지 않을 수 있었다.강솔은 고개를 들고 과일 주스를 한 모금 마시며 말했다.“앞을 봐야지. 이미 헤어졌으니까, 울고불고 해봐야 소용없잖아.”“그런데 왜 헤어진 거야?” 이윤주가 호기심 가득한 목소리로 물었다.“그냥, 성격이 안 맞아서.”강솔이 대수롭지 않게 말하자, 윤주는 약간 아쉬운 듯 말했다.“다시 만날 생각은 없는 거야? 그렇게 오랫동안 좋아했는데, 그냥 포기해?”강솔은 단호하게 말했다.“다시는 만나지 않을 거야. 완전히 끝났어.”생각해 보면, 주예형을 짝사랑했던 그 시절은 사실 그와는 큰 관계가 없었다. 그때 강솔은 예형의 앞에 자주 나타날 용기도 없었다. 그저 본보기로 삼아 자신을 독려하며, 그와 같은 사람이 되려고 노력했을 뿐이다.그래서 그 시절이 전혀 아깝지 않았다. 그동안 강솔은 많은 것을 배웠고, 얻었다. 그것이야말로 짝사랑했던 결과였다. 비록 그 후에 이런 비참한 이별을 겪었지만, 짝사랑했던 시절을 돌이켜보면 후회되지는 않았다.“야, 너희 둘이서 무슨 비밀 이야기하는 거야!” 소울연이 다가와 웃으며 말했다.“다 같이 모였는데, 너희만 따로 얘기하면 안 되지!”강솔은 바로 웃으며 말했다.“울연아, 나 들었어. 약혼했다며? 그런데 왜 초대장도 안 보내고, 서운하게!”그러자 울연은 쑥스러운 듯 말했다.“그냥 약혼이니까, 두 집안끼리 간단히 식사만 했어. 결혼할 때는 꼭 초대장 줄게. 그리고 너희들 다 내 들러리 해줄 거지?”“당연하지. 근데 약속해, 들러리는 축의금 안 내는 거야!” 윤주가 농담하자, 모두 함께 웃으며 이야기하고 있을 때, 문이
오연서는 술 한 잔을 마시고, 짙은 화장이 조명 아래서 마치 팔레트처럼 보였다.“아 말한다는 걸 깜빡했네. 내 남자친구가 스타라이트의 매니저야. 오늘 마음껏 놀고 마셔. 내가 남자친구에게 40% 할인을 부탁했거든!”이윤주는 혀를 차며 낮은 목소리로 강솔에게 말했다.“왜 굳이 모임에 참석하고 싶어 했는지 알겠네. 자랑하려고 온 거였어. 클럽 매니저가 뭐가 대단하다고 그렇게 자랑하는 거지?”소울연은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다.“돈이 있나 보지!”그녀는 계속해서 설명했다.“오연서는 졸업 후 몇 년 동안 일도 안 하고 남자에게 의지해서 살았어. 지금 이 남자친구는 매달 1000만 원씩 용돈을 준다고 하더라고.”“그래서 맨날 채팅방에서 자랑해 대는 거야. 너희가 채팅방에 없어서 몰랐지.”강솔은 점점 어이없어졌다.‘지금 무슨 시대인데, 남자에게 의지해서 사는 게 자랑거리가 될 수 있다니?'“강솔!” 기연이 갑자기 물었다.“지금 뭐 하고 있어?”“디자이너로 일하고 있어.”“좋네. 남자친구는 있어?”강솔은 잠시 멈칫하고 대답했다.“없어.”“설마 아직도 예형 선배를 기다리고 있는 건 아니지? 들은 바로는 그 사람, 지금 회사도 차리고 상장까지 했다고 하더라.” 기연이 웃으며 말했고, 그녀의 말에는 강솔에게 이제 그만 포기하라는 뉘앙스가 담겨 있었다. 이에 강솔은 담담하게 말했다.“보아하니 너도 그 사람을 꽤 주의 깊게 지켜보고 있었네.”기연의 얼굴이 잠깐 굳어졌다.“같은 반 동창이니까 당연히 관심이 가지. 맞다, 우리 오수재 오빠도 여자친구가 없는데, 같은 학교 동문끼리 잘해보는 것도 나쁘지 않지 않겠어?”수재는 슬쩍 강솔을 보며, 담배를 손에 쥐고 비웃듯 말했다.“한기연, 무슨 농담이야?”연서는 말을 보탰다.“왜? 강솔이 너랑 안 어울린다고 생각해? 네가 잘생겼고, 집도 잘 살고, 지금 직장도 좋은 건 맞지만, 강솔이도 만만치 않잖아. 적어도 예쁘잖아, 안 그래?”연서의 말은 분명 강솔을 깎아내리려는 의도가 담겨 있었다.강솔의
오연서는 카드 한 장을 입술에 붙인 채 고개를 돌려 한기연에게로 향했지만, 갑자기 김명상이 끼어들어 그녀의 입술에 있는 카드를 입으로 받으려 했다. 예상치 못하게 카드는 떨어졌고, 둘의 입술이 맞닿았다.연서는 놀란 척 입을 벌렸고, 김명상은 그 틈을 타 더 깊이 키스했다. 주변에서는 환호성이 터졌다. 연서는 그제야 명상을 밀어내며, 약간 부끄러워하며 말했다.“김명상, 정말 못됐어!”이에 명상은 태연하게 말했다.“너와 잘 맞춘 거지 뭐!”연서는 다른 사람들을 향해 말했다.“이 게임 어때? 카드가 떨어지면, 두 사람이 함께 벌칙을 받아야 해!”“어떤 벌칙을 받는데?” 오수재가 묻자 김명상은 테이블 아래에서 작은 책자를 꺼내며 말했다.“여기 있잖아. 주사위를 던져서 선택된 벌칙을 받는 거야.”모두 이견 없이 동의하며 둥글게 둘러앉아 게임을 시작했다. 이 게임은 자극적이면서도 은근히 야릇한 분위기를 자아냈다. 강솔은 진석이 자신에게 과도한 게임은 하지 말라고 당부한 것이 떠올라 자리에서 일어섰다.“너희들끼리 해. 난 안 할래.”“왜 그래?” 수재가 물었다.“다들 성인인데, 왜 이리 새침 떠는 거야?” 연서가 비꼬듯 웃으며 말하자 한기연도 동조하며 말했다.“강솔은 그럴 수 있지. 아직 연애도 안 해봤을지도 모르니까!”두 사람은 합세해 강솔을 놀리자, 윤주는 손에 들고 있던 카드를 테이블에 내려치며 말했다.“아직도 시비를 걸고 싶은 거야?”연서와 기연은 그제야 입을 다물었고, 수재는 웃으며 말했다.“괜찮아. 강솔은 안 해도 돼. 우리가 할 테니, 강솔은 옆에서 보기만 해.”다들 게임을 시작했고, 강솔은 소파에 앉아 혼자 모바일 게임을 하기로 했다. 그때 진석에게서 메시지가 왔다.[뭐 하고 있어?]강솔이 답장했다.[모바일 게임 중이야.][모임이 재미없어?][아니야. 그들이 게임하는데 나는 참여하지 않았어.]몇 초 후, 진석이 다시 메시지를 보냈다.[내 쪽으로 올래?]강솔은 웃으며 답장했다.[아니야. 네 친구들 나랑 안
“응?” 강솔은 호기심이 발동했다.“무슨 오해?”오수재는 두 사람 앞에 놓인 술잔을 가리키며 말했다.“이 술 마시면, 다 말해줄게.”강솔은 이 술이 방금 따서 연 것임을 알고 있었기에 별로 신경 쓰지 않고 잔을 들어 단숨에 마셨다. 수재는 다시 그녀의 잔을 채워주며 말했다.“솔직히 말해서, 주예형은 네가 생각하는 것처럼 그렇게 훌륭하고 고결한 사람이 아니야. 너는 걔의 가식적인 외모에 속아 넘어간 거야.”강솔은 더 큰 호기심을 느끼며 물었다.“무슨 뜻이야?”“그때 우리가 왜 주예형을 겨냥했는지 알아? 그때 산간 지역에서 자원봉사를 할 때 말이야.” 수재가 묻자, 강솔은 솔직하게 말했다.“그 사람이 너무 뛰어나서 질투했기 때문 아니야?”수재는 웃으며 말했다.“너 참 순진하구나!”그러고는 술을 한 모금 마시며 천천히 말했다.“내가 걔를 왜 질투하겠어? 성적이 아무리 좋아도 졸업 후 내 출발점이 그보다 더 앞에 있는데, 뭐가 아쉬워서 질투하겠어?”“우리가 그를 겨냥한 건 걔가 허영심에 가득 차고 목적을 위해 수단을 가리지 않았기 때문이야.”“그 자원봉사 활동도 사실 김명상과 함께 기획한 건데, 대부분의 아이디어는 명상이 낸 거였어.”“하지만 나중에 지도 교수에게 보고할 때, 주예형은 자기 이름만 적어 제출했어. 공을 가로채서 자기 이름을 빛내고, 추천 자리를 차지하려고 했던 거지!”“우리가 주예형을 겨냥한 건, 사실 명상을 위해서였어.”그 말에 강솔은 충격을 받으며 말했다.“너, 거짓말하는 거지!”“거짓말 아니야. 믿기지 않으면, 직접 반 단체 채팅방에서 명상에게 물어봐. 그때 명상은 너무 화가 나서 활동에서 아예 손을 뗐잖아.” 수재는 확신에 찬 목소리로 말하자, 강솔은 갑자기 그 자원봉사 활동을 떠올렸다. 처음에는 명상이 활동 주최자 중 하나였지만, 나중에는 참여하지 않았다.강솔의 마음이 무거워졌지만, 여전히 예형이 그런 사람일 리 없다고 믿고 싶었다.“그게 다가 아니야. 주예형이 나중에 가난한 학교에 책을 기부했었잖
지금 와서 보니, 모든 것이 환상이었다니! 게다가 그 이면의 진실이 이렇게나 처참하다니!강솔은 마치 머리를 망치로 얻어맞은 듯, 자신의 도덕관념이 완전히 무너져 내리는 것 같았다.오수재는 계속해서 말했다.“주예형이 똑똑한 건 인정해. 유학 가서는 실리콘밸리에서도 꽤 잘나가고 있으니까.”“하지만 난 여전히 그를 못마땅하게 생각해. 그는 너무 조급하고, 위선적인 인간이야. 너처럼 순진한 여자들을 속이기 딱이지.”강솔은 더 이상 들을 수 없어 일어나며 말했다.“미안해, 나 화장실 좀 다녀올게.”“그래, 다녀와서 다시 이야기하자!” 수재는 웃으며 말했다. ...강솔은 화장실로 가서 차가운 물로 얼굴을 적셨다. 모든 것이 우스꽝스럽게 느껴졌다. 오랫동안 이어졌던 짝사랑과 경외심이 전부 거짓이었다니.강솔은 예형을 전혀 몰랐다. 자신이 좋아했던 것은 단지 환상 속의 그림자일 뿐이었다. 지난 10년 동안 자신이 얼마나 속아왔는지 생각하니, 증오와 아픔은 사라지고 분노만이 남았다.다행히도 이미 헤어졌기에, 더 이상 그 거짓된 사람을 마주할 필요가 없었다. 그리고 이제는 예형이 진짜 어떤 사람인지 따질 필요도 없었다.강솔은 한참을 진정한 후 화장실을 나서려고 했다. 그때 쿵! 하는 소리가 벽 너머에서 들려왔다. 화장실 벽 너머는 벌칙을 받는 사람들이 들어가는 작은 방이었다. 자세히 들어보니, 외설스러운 소리가 들려왔다. 이에 강솔은 얼굴이 붉어지며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오연서에게 남자친구가 있다는 건 알고 있었다. 조금 전에도 자랑스러워하며 그 남자친구가 이 클럽의 매니저라고 말했었다. 하지만 이건 너무 지나친 것 아닌가?강솔은 재빨리 화장실을 나와 소파로 돌아왔다. 얼굴이 아직도 붉어져 있었지만, 다행히도 방 안이 어두워 아무도 알아차리지 못했다.이때 누군가가 소리쳤다.“벌써 10분이 지났잖아?”이어 누군가가 농담처럼 웃음을 터뜨렸다. 또 5분에서 6분 정도 지나자, 연서와 김명상이 방에서 나왔다. 연서는 눈에 촉촉한 빛을 머금고 얼굴이
소희는 갑작스레 다른 질문으로 분위기를 전환하며 물었다.“몇 시야?”표정만큼은 진지했지만, 의도가 다분히 명확했다. 이에 임구택은 피식 웃으며 답했다.“여덟 시.”소희는 그의 어깨를 밀며 서둘렀다.“일어나야 해. 아침에 부모님께 인사드려야 하잖아.”구택의 눈동자가 반짝였다.“기억하고 있는 거 보니 대단한데?”소희가 재차 물었다.“지금 늦진 않았겠지?”“아직 괜찮아. 방금 부모님께 전화드렸어. 아홉 시에 가기로 했고, 인사 올리고 나서 다 같이 아침 먹으려고.”구택은 시계를 확인하며 덧붙였다.“그러니 네가 30분은 더 잘 수 있어.”소희는 기대에 찬 눈으로 그를 쳐다보며 말했다.“진짜? 더 자도 돼?”구택은 그녀를 몇 초 동안 바라보다가 이불을 들춰내며 말했다.“같이 자자.”그 말을 듣자마자 소희는 벌떡 일어나 침대를 벗어났다. 그리고 와인색 실크 잠옷 차림으로 욕실로 뛰어 들어가며 말했다.“같이 자긴! 잘 수 있을 리가 없잖아!”뒤로 울려 퍼지는 은은한 방울 소리와 구택의 낮고 깊은 웃음소리가 아침 햇살 속에서 흩어졌다.차에 올라탄 후, 구택은 소희의 손을 잡으며 말했다.“오늘 일정은 간단해. 오전엔 부모님 댁에서 인사 올리고, 손님들을 배웅할 거야.”그는 부드럽게 말을 이었다.“오후엔 우리 가족이 강씨 별장으로 돌아가고, 우리는 남아서 내일 아침에 네 본가로 돌아가자.”소희는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했다.“알겠어. 다 당신 계획대로 할게.”...강아심은 눈을 뜨자 햇빛이 방 안을 가득 채웠다. 머리가 약간 멍하고 어지러웠지만, 곁에 있는 팔이 아심의 허리를 감싸고 있었다. 그녀는 고개를 돌려 팔의 주인을 확인했다.곁에 누운 남자는 탄탄한 가슴을 아심의 등 뒤로 밀착시켜 끌어안고 있었고, 그의 손은 뻔뻔하게 그녀의 심장 가까이에 올려져 있었다.아심은 잠시 숨을 죽이며 상황을 정리했다.‘강제로였나, 아니면 자발적이었나?’곰곰이 생각해 보니 자발적이었다.‘그렇다면 수동적이었나, 아니면 적극적이었나?’이 방 분
강아심은 강시언을 똑바로 바라보며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뭔가 잊은 것 같아요.”시언은 고개를 살짝 기울이며 물었다.“뭘?”“목욕이요. 저를 씻겨준다더니 까먹으셨잖아요.”아심은 살짝 눈살을 찌푸리며 덧붙였다.“씻지 않으면 잠이 안 와요.”시언은 방금 샤워를 마친 상태였다. 짙은 파란색 가운을 걸친 그는 젖은 머리카락에서 떨어지는 물방울과 함께 물기가 도는 차가운 눈빛을 띠고 있었다. 그는 아심을 조용히 응시하며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그런 시언 앞에서 아심의 눈동자는 더욱 흐릿해지고, 붉게 물든 눈꼬리는 그녀를 한층 더 요염하면서도 연약해 보이게 했다.아심은 천천히 그에게 다가갔다. 그리고 시언의 허리를 가볍게 안은 후, 머리를 그의 가슴에 묻으며 요염하게 몸을 비볐다.시언은 결국 아심을 안아 들고 방 안으로 들어가며 문을 닫았다. 그리고 그대로 그녀를 욕실로 데려갔다.아심은 그의 목을 가볍게 감싸 안고, 바로 시언의 목덜미에 입을 맞췄다. 시언은 목에 힘이 들어가는 걸 느끼며 짧게 숨을 삼켰다. 그러고는 눈을 가늘게 뜨며 조용히 말했다.“내일 사람들 만날 일이 있어.”이에 아심은 고개를 들어 시언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아심의 검은 눈동자는 물기를 머금은 듯했고, 붉게 물든 눈가가 은근히 불만스러움을 드러내고 있었다.아심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그 눈빛만으로도 얼마나 억울하고 불만스러운지 알 수 있었다. 이에 시언은 작게 숨을 내쉬며 손을 뻗어 아심의 머리를 가볍게 쓰다듬었다.어차피 내일 하루종일 목덜미가 붉다고 해도, 그 누구도 감히 시언에게 물어보진 않을 것이었다.욕실 안, 뜨거운 물줄기가 샤워기에서 쏟아지며 두 사람의 실루엣을 휘감았다. 시언은 아심을 벽에 밀착시키며 키스했다. 시언의 몸에서 내뿜는 열기는 마치 불꽃처럼 그녀를 점점 뜨겁게 만들었다.검은 드레스는 물줄기를 따라 아래로 미끄러졌고, 그녀의 흰 피부가 드러났다. 아심은 손을 뻗어 시언이 입은 가운의 허리띠를 풀려 했으나, 시언이 그녀의 손을 붙잡았다.시
소희가 천천히 임구택 쪽으로 걸어갔다. 그녀의 시선은 창밖을 향했다. 이제는 불꽃놀이도 끝나고, 화려했던 정원 연회 자리도 정리되어 텅 비어 있었다.소희는 임구택 앞에 무릎을 굽혀 앉으며 물었다.“여기서 뭐 하고 있어?”구택은 긴 손가락으로 소희의 뺨을 쓰다듬으며 부드럽게 웃었다.“불꽃놀이를 보고 있었어.”소희가 고개를 갸웃하며 말했다.“불꽃놀이? 불꽃놀이는 이미 끝났잖아요.”구택이 몸을 앞으로 살짝 기울이며 그녀의 코끝에 입을 맞췄다.“한 번 일어나서 확인해 봐. 정말 끝났는지.”소희는 구택의 말을 따라 일어나서 난간에 몸을 기대고 멀리 바라보았다. 그러나 소희의 눈에 들어오는 건 꺼져버린 불빛과 어슴푸레한 별빛뿐이었다.“아무것도 없는데?”소희는 다시 물음을 던지려는 순간, 몸이 순간적으로 굳었다. 구택의 손길이 그녀의 다리를 스치고, 그 뒤에 느껴지는 구택의 차가운 입술.소희는 구택이 무엇을 하려는지 바로 깨달았다. 그녀는 본능적으로 몸을 피하려 했지만, 구택의 손이 부드럽게 소희의 발목을 감싸며 움직임을 막았다.구택의 손길은 이내 그녀를 자기 허리 옆으로 당겼다. 난간에 둘러싸인 발코니는 마치 외부와 이어진 듯 개방적이었다.소희는 익숙하지 않은 장소에서 느껴지는 묘한 긴장감에 온몸의 감각이 더욱 예민해지는 것을 느꼈다.멀리 펼쳐진 고요한 산맥과 어두운 밤하늘 아래에서, 소희는 자신을 휘감는 모든 감각을 느끼며 숨을 죽였다.그 순간, 정원에서는 갑자기 찬란한 불꽃놀이가 터졌다. 소희는 하늘을 올려다보며 숨을 삼켰다.“이게 아까 말한 불꽃놀이였네.”그녀는 속삭이듯 말하며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구택은 소희의 귓가에 부드럽게 입을 맞추며 낮고 묵직한 목소리로 물었다.“불꽃놀이, 마음에 들어?”소희는 축축해진 눈을 반짝이며 대답할 수 없었다. 구택의 입술은 그녀의 이마, 눈가, 뺨을 지나 입술에 멈췄다....소희는 구택이 어떻게 이런 모든 것을 완벽히 통제하는지 몰랐다. 구택은 그녀의 몸과 감정을 파악했고, 불꽃놀이의 정확
소희는 고개를 들어 생각하며 말했다.“벌써 10년이네.”10년이라는 시간은 길어 보이지만, 돌아보면 눈 깜짝할 사이였다. 구택은 그녀를 향해 손을 내밀며 미소 지었다.“가자, 내 와이프. 이제 우리 둘만의 축제가 시작됐으니까. 그리고 앞으로는 우리 두 사람만의 인생이야.”소희는 구택의 손을 잡았다. 검은 눈동자에 진심 어린 맑은 빛이 담겨 있었다.“네가 나를 버리지 않는다면, 앞으로 몇 번의 10년이 더 와도 나는 네 곁에 있을 거야.”그 말에 구택은 소희의 손을 꼭 잡으며 소희를 품에 안았다.“검은머리 파뿌리 될때까지, 영원히 함께할 거야. 그러니 걱정하지 마. 이 생에서는 우리 둘이 절대 떨어질 일 없을 테니까.”소희는 구택의 어깨에 몸을 기대며 밤하늘에 피어오르는 불꽃놀이를 올려다보았다.“고마워, 임구택.”이 한마디에는 수많은 감사와 감정이 담겨 있었다.‘고마워요. 나를 어둠 속에서 끌어내어 새로운 인생을 살게 해주어서.’구택은 소희를 안고 안으로 걸음을 옮겼다.그날 밤, 화려한 조명이 켜진 별장은 마침내 주인을 맞이했다.3층의 신혼 방으로 들어가니, 그곳은 웅장하면서도 아늑한 분위기로 꾸며져 있었다.약 30평의 넓은 공간, 둥근 천장을 중심으로 여덟 개의 아치형 창문이 있었다. 천장 중앙에는 투명한 크리스털 샹들리에가 반짝이고 있었다.방의 내부는 화려하면서도 절제된 우아함을 풍겼다. 바닥에는 붉은 카펫이 깔려 있었고, 반투명한 붉은 유리로 장식된 천장이 조화를 이루고 있었다.방의 중심에는 특별히 크고 웅장한 결혼 침대가 자리 잡고 있었다.침대는 옅은 금빛의 얇은 천으로 둘러싸여 있었고, 그 위에는 정교한 자수가 놓여 있었다. 천에는 빨간색 방울이 줄줄이 매달려 있었는데, 그녀는 손끝으로 방울 하나를 살짝 건드려보았다.맑고도 청아한 소리가 울리자, 소희는 고개를 돌려 임구택을 바라보며 물었다.“이건 뭐야?”구택의 깊고도 어두운 눈빛이 웃음기를 띠며 대답했다.“직접 시험해 보면 알겠지.”구택은 손을 들어 소희의 얼굴
임유진은 옆에서 신기한 듯 물었다.“장난은 어떻게 해요? 나도 같이 하면 안 돼요?”하지만 유진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유진의 삼촌 임구택의 날카로운 눈빛이 날아들었다. 유진은 즉시 웃음기를 거둔 채 수그러들며 서인의 옆으로 바짝 다가갔다.구택이 입을 열었다.“큰형님과 형수님은 이미 돌아가셨으니, 서인 네가 임유진을 잘 봐줘. 오늘은 일찍 자게 해.”신랑의 직접적인 부탁을 거절할 수 없는 서인은 고개를 끄덕이며 담담하게 대답했다.“걱정하지 마.”구택의 한마디에 임유진은 기쁨에 겨워 얼굴을 빛냈다. 신방 장난의 생각은 당연히 금세 잊혀졌다.노명성은 이미 성연희의 곁으로 다가가 그녀를 반쯤 안아 올리며 말했다.“네가 준비한 장난은 신랑 신부에게 아무런 효과도 없을 거야. 괜히 머쓱해지지 말고 얼른 가서 자자.”연희는 잠시 생각하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연희는 명성의 품에서 벗어나 소희를 꼭 껴안으며 말했다.“이번에야말로 널 완전히 구택에게 맡겼어. 너도, 나도 모두 마음의 짐을 덜었어.”우청아가 옆에 있는 유정을 향해 웃으며 말했다.“연희는 분명 술에 취했어.”유정도 웃음을 터뜨렸다.“말하는 걸 들어보니 딱 알겠네.”연희는 두 사람을 돌아보며 소리쳤다.“뭘 웃어? 너희가 시집갈 때 보자. 소희랑 내가 어떻게 웃어줄지!”두 사람은 더욱 크게 웃음을 터뜨렸다. 소희는 연희의 머리를 가볍게 두드리며 말했다.“네가 무슨 말을 하고 싶은지 알아.”“소희!”연희는 다시 한번 소희를 힘껏 껴안았다. 그녀는 금방 감상적인 분위기를 걷어내고 한층 발랄하게 말했다.“밤은 짧고 기회는 소중하니 난 이제 갈게!”다른 사람들도 하나둘씩 일어섰다. 시원이 청아에게 다가가 그녀의 손을 잡고 부드럽게 말했다.“우리도 가자. 우리 결혼식이 다음이니 미리 조심하는 게 좋겠어.”조백림과 진석은 눈빛을 교환하며, 아무 말없이 각자 동행한 사람들과 함께 자리를 떴다. 남아 있던 사람들도 서로 인사하며 점차 흩어졌다.소희는 한 명 한 명에게 손을 흔들며
소희는 놀란 얼굴로 성연희에게 물었다.“심명이 남궁민까지 데려갔다고?”성연희는 살짝 눈썹을 올리며 말했다.“남궁민이 취해서 계속 임구택이랑 술로 승부를 보자고 떠들더라. 심명이 사람을 시켜 끌고 나가더니 강성으로 데려간 것 같아. 네가 귀찮아질까 봐 처리한 거지.”소희는 고개를 끄덕였다. 남궁민을 심명에게 맡긴다면 걱정할 필요가 없었다.구택이 그 모습을 지켜보다가 물었다.“심명이 준 선물은 뭐야?”소희는 솔직히 답했다.“별장 한 채.”구택은 심명이 남긴 쪽지를 집어 들어 읽어 보곤, 차가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인심 쓰는 데는 도가 텄네.”소희는 눈썹을 치켜올리며 물었다.“뭐야, 임구택, 심씨 집안 사정을 안다는 말투인데?”“임구택?”구택은 눈을 들어 소희를 바라보며 낮고 묵직한 목소리로 말했다. 이에 소희는 곧바로 상황을 파악하고 단번에 말을 바꿨다.“자기야!”그제야 구택은 부드러운 미소를 띠며 그녀에게 설명을 덧붙였다.“예전에 했던 약속을 번복하는 바람에 한소율네 집안이 가만히 있겠어? 2% 지분이라는 게 적은 금액이 아닌데.”소희는 눈을 반짝이며 금세 알아차렸다.“그럼 당신이 그 집안을 도와준 거야?”“정확히 말하자면, 심문석을 도와준 거지. 물론 공짜는 아니고, 우리 사이에 협의가 있었지.”구택은 소희의 어깨를 끌어안고 그녀의 옆얼굴에 이마를 살며시 기댔다. 술기운에 물든 그의 입술이 가볍게 소희의 뺨을 스치며 낮게 속삭였다.“이 사람들, 너무 시끄럽지 않아?”소희의 입술은 붉게 물들었고, 눈동자는 반짝였다. 그녀는 작은 목소리로 그와 속닥거렸다.“듣자 하니, 오늘 밤에 장난치려고 한다는데?”구택은 눈썹을 살짝 들어 올리며 말했다.“그럼 어떡하지? 우리의 밤을 망가뜨릴 순 없잖아.”소희는 사슴 같은 눈망울로 구택을 바라보며 대답했다.“당신한테 맡길게.”그 순간, 장시원이 갑자기 끼어들었다.“뭐라고 둘이 속닥거리나? 오늘은 규칙이 있어. 신랑 신부는 속닥거리는 거 금지야. 무슨 말이든 다 같이 들어야
강재석은 양재아가 소희와 그녀의 친구들 사이에 끼어드는 것을 원치 않았다.“재아는 다른 사람들과 친하지도 않은데, 그 자리에 있어 봤자 어색할 거야. 차라리 돌아가서 쉬는 게 낫지 않겠나?”양재아는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할아버지 말씀이 맞아요. 저도 좀 피곤하네요. 들어가서 쉬고 싶어요.”“그럼 함께 가자.”도경수는 더 이상 말을 덧붙이지 않고, 재아와 함께 일어섰다. 옆에서 대기하던 명우는 강재석과 도경수 일행이 일어나는 것을 보고 즉시 차량을 준비했다.그들이 쉬러 돌아갈 수 있도록 배웅 준비를 마쳤다. 그 사이 임구택도 다가와 소희와 함께 강재석과 도경수를 배웅했다.강재석은 구택을 차 앞으로 따로 불러 몇 마디를 더 덧붙였고, 구택은 진지한 표정으로 경청했다.차가 출발하자 소희는 구택을 바라보며 물었다.“할아버지가 무슨 말씀하셨어?”구택은 소희의 손을 잡고 다시 연회장으로 발걸음을 옮기며 부드러운 미소로 답했다.“할아버지가 나를 칭찬하셨지.소희는 의심스럽다는 표정으로 구택을 한 번 쓱 훑고는 고개를 젓는 듯 미소 지었다. 머리 위의 간단한 디자인의 티아라가 그녀의 눈부신 미소와 어우러져 더욱 빛났다.구택은 소희의 허리를 감싸 안고 발걸음을 멈춘 채 고개를 숙여 입을 맞추었다. 이에 소희는 눈을 굴리며 그를 바라보았다.“장시원 오빠랑 다른 사람들이 보면 또 술 마시라고 놀릴 텐데요.”구택은 그녀의 입술을 살짝 깨물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그냥 그들을 따돌리고 먼저 돌아가자.”소희는 눈을 한 번 깜박이며 고개를 저었다.“안 돼요.”이에 구택은 가벼운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왜 파티 같은 걸 준비했을까? 점심 식사 끝나고 바로 다들 돌아가게 했으면, 밤에는 온전히 우리 둘만의 것이었을 텐데.”소희는 웃으며 말했다.“이번엔 경험이 되었으니 다음번에는 알겠지.”“다음번?”구택은 눈을 가늘게 뜨며 미소를 지었지만, 목소리는 묘하게 위협적이었다.“다음번은 누구의 결혼식이지?”“다른 사람들 결혼식!” 소
도경수는 오늘 기분이 좋아 보였다. 평소 같았으면 간단한 말에도 꼬투리를 잡았겠지만, 오늘만큼은 아무 말 없이 넘어갔다.양재아는 소희 앞으로 다가가 부드럽게 입을 열었다.“소희, 나도 너랑 얘기하고 싶었는데, 계속 기회를 못 잡았어.”소희는 자세를 바로잡고, 맑은 눈빛으로 말했다.“그래, 무슨 얘긴데?”재아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먼저, 오늘 정말 예뻐 보여. 그리고 신랑도 정말 멋지고!”소희는 살짝 미소를 띠며 고개를 끄덕였다.“고마워.”재아는 진지한 눈빛으로 말을 이어갔다.“사실 내 마음속에서 외할아버지 다음으로 가장 소중한 사람은 바로 너야. 네가 아니었으면 난 지금쯤 이 세상에 없었을지도 몰라.”“강성에 올 수도 없었고, 할아버지와 다시 만나는 건 더더욱 불가능했겠지. 오늘 엄마까지 만나게 돼서 정말 행복해.”강재석은 옆에서 가볍게 나무라듯 말했다.“기쁜 날에 죽고 사는 얘기는 하지 마라. 다들 기쁜 얘기만 하자.”재아는 깜짝 놀라며 고개를 끄덕였다.“제가 조금 흥분해서 그랬어요.”“가족끼리 흥분할 거 뭐 있어?”도경수는 티슈를 건네며 부드럽게 말했다. 재아는 눈가를 닦고는 눈물이 맺힌 얼굴로 가방에서 작은 상자를 꺼냈다.“소희, 이건 내가 여러 가게를 돌며 오래 고민해서 고른 결혼 선물이야. 마음에 들었으면 좋겠어.”소희는 상자를 받아 들고 고개를 끄덕였다.“고마워.”상자를 열자 안에는 화려한 디자인의 팔찌가 들어 있었다. 진주처럼 빛나는 북해의 둥근 진주와 두 개의 작은 향수병 모양 펜던트가 달려 있었다.펜던트에는 각각 다른 색깔의 보석이 세팅되어 있었고, 그 정교함과 세련된 분위기가 인상적이었다. 소희는 잠시 멈칫했다.팔찌의 외형만 봐도 자신의 브랜드 상품이라는 것을 알아차렸기 때문이다. 며칠 전 유정과 함께 매장을 방문했을 때 매장장이 농담처럼 언급했던 바로 그 팔찌였다.그 팔찌를 구매한 사람이 바로 권수영이라는 말을 듣고, 소희는 그때의 대화를 떠올렸다.권수영은 딸이 없으니 직접 착용하기엔 어울리지
소희는 강재석과 함께 잠시 시간을 보냈다. 조용한 회랑에 앉아, 두 사람은 멀리 만찬장에서 웃음꽃을 피우며 술잔을 주고받는 사람들을 바라보고 있었다.강재석은 미소를 지으며 물었다.“즐거워?”소희는 고개를 돌려 진지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네, 정말 즐거워요.”소희의 이 기쁨은 임구택이 선사한 것이었다. 그리고 할아버지와 오빠가 그녀에게 준 선물이기도 했다.오늘의 결혼식에서 소희는 감동했고, 무엇보다도 감사함이 컸다. 모든 사람이 자기를 위해, 자신이 행복할 수 있도록 각고의 노력을 기울였기 때문이다.강재석은 흐뭇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너만 행복하다면 그걸로 충분해.”소희는 잠시 망설이다가 물었다.“오늘 도도희 이모를 만났어요. 오랜만에 대화를 나눴는데, 양재아를 만난 이야기를 아주 자세히 물어보시더라고요.”강재석은 가만히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그래, 도도희도 마음속으로는 재아가 정말 자기 딸인지 궁금한 거겠지.”도도희는 마음속 깊이 갈등하고 있을 것이다. 잃어버린 딸을 찾고 싶다는 간절한 바람과 함께, 막상 기대했다가 실망할까 두려워 차분하려는 마음이 공존하고 있을 테니까.“그럼 도도희 이모는 재아를 만났나요?”“만났지.”강재석은 약간의 주름이 진 이마를 살짝 찡그리며 말했다.“그런데 그 아이는 머릿속 계산이 많은 것 같더구나. 도도희가 별로 좋아하지 않는 눈치였어.”소희는 고개를 갸웃하며 물었다.“그게 무슨 뜻이에요?”강재석은 그녀의 손을 가볍게 두드리며 부드럽게 말했다.“그건 네가 신경 쓸 일이 아니다. 오늘은 네 결혼식이다. 너는 그저 행복하게 웃으며 지내면 돼.”“도도희와 재아의 문제는 지금 결론을 내릴 수 있는 일이 아니야.”“유전자 검사가 끝나고 모든 게 명확해진 다음, 그때 나타나는 문제가 진짜 문제야. 그때 가서 우리가 해결책을 찾으면 돼.”소희는 잠시 생각에 잠긴 뒤,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네, 알겠어요.”소희는 강재석의 어깨에 기대어 밤하늘에 펼쳐진 불꽃놀이를 올려다보며 낮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