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야 진석이가 엄마보다 더 잘해준다는 생각이 드니? 그만큼 소중히 여겨야 해!” 윤미래가 가볍게 코웃음을 치자 강솔은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내가 언제 소중히 안 여겼다고? 어제 오해현 이모가 만든 연근으로 만든 동그랑땡을 내가 제일 먼저 생각해서 진석이한테 가져다줬잖아?”윤미래는 의미심장하게 말했다.“무슨 뜻인지 잘 알잖아.”강솔은 눈을 내리깔며 말했다.“그만 좀 말해, 잘 지내던 친한 사이를 이상하게 만들지 마.”“알았어, 그만할게! 그런데 한 가지 물어보자, 오늘 벌써 초여드레야. 왜 아직 출근 안 했어?” 윤미래가 묻자 강솔은 눈을 굴리며 말했다.“이제 알겠네, 엄마는 내가 눈에 거슬려서 쫓아내려고 하는 거지? 첫 번째는 빨리 시집보내려는 거고, 그게 안 되니까 이번엔 출근시키려는 거잖아!”윤미래는 화가 나면서도 웃음을 참지 못했다.“나는 네가 집에 있으면 병이 생길까 봐 걱정돼서 그런 거야!”“병이라니, 무슨 소리야?”“게으름 병 말이야!”강솔은 웃으며 뒤돌아 계단 위로 올라갔다.“나 샤워하고 옷 갈아입을게. 내일은 강성으로 돌아갈 거니까, 앞으로 내가 보고 싶다는 말 하지 마. 말해도 안 돌아올 거야!”윤미래는 웃으며 말했다.“네 맘대로 해. 네가 안 돌아오면, 난 진석이를 아들로 삼을 거야!”강솔은 뒤돌아보며 입을 삐죽거렸다.“그게 진심이었구나! 어릴 때부터 알고 있었어. 엄마는 진석이를 더 좋아했잖아!”그때 오해현이 음식을 들고 와서는 웃음을 참지 못하고 말했다.“다른 사람의 아이가 더 좋다고 해도, 말만 그럴 뿐이지, 어느 엄마가 자기 자식을 안 좋아하겠어? 게다가 우리 강솔이는 이렇게 귀엽잖아.”강솔은 웃으며 말했다.“엄마 눈에는 내 귀여움이 아무 소용이 없어요. 엄마는 진석처럼 능력 있고 잘생긴 사람을 좋아하니까!”윤미래는 손을 휘저으며 말했다.“말장난 그만하고, 얼른 샤워하고 내려와서 밥 먹어. 식으면 안 기다릴 거야!”강솔은 윤미래를 향해 메롱 하고 쿠당탕! 소리를 내며 계단을 뛰어올라
강솔이 진석의 집에 도착했을 때, 허수희는 전화를 걸고 있었다. 허수희는 강솔이 들어오는 것을 보고 전화 저편에 말했다.“그래, 일단 그렇게 하자. 나중에 다시 얘기해, 끊어.”전화를 끊고 허수희는 강솔을 맞이하며 말했다.“네 옷 몇 벌 만들어 놨는데, 와서 입어봐.”강솔은 패딩을 벗고, 짧은 머리를 귀엽게 넘기며 활기찬 웃음을 지었다.“저 옷이 이미 많아서 안 만들어도 돼요!”허수희는 웃으며 말했다.“여자아이는 옷이 많아야지.”그러고는 상자에서 옷을 꺼내며 말했다.“이 옷 먼저 입어봐.”강솔은 옷을 받아 들고 펼쳐보며 놀라서 말했다.“드레스잖아요?”허수희는 따뜻하게 웃으며 말했다.“드레스가 왜 안 돼? 너는 디자이너인데, 매일 너무 평범하게 입는 것 같아!”강솔은 쑥스러운 듯 웃으며 말했다.“입어볼게요.”“그래, 어서 가서 입어봐!”허수희는 사랑스럽게 손을 흔들었다. 강솔은 드레스를 들고 1층 게스트룸으로 가서 옷을 갈아입고 나왔다. 갈아입고 나온 강솔을 본 허수희는 눈이 반짝였다.“정말 예쁘네!”검은색 벨벳 드레스는 몸에 꼭 맞고, 강솔의 짧은 머리와 어우러져 고급스럽고도 귀엽게 보였다. 기분이 좋은 강솔은 한 바퀴 돌며 말했다.“어때요, 예쁘죠?”“예뻐! 우리 강솔이는 원래 멋을 부리지 않아서 그렇지, 꾸미기만 하면 정말 아름다워!” 허수희는 그녀에 대한 애정을 아낌없이 표현했고, 강솔은 허수희의 어깨를 안으며 말했다.“이모, 이모 안목이 높아서 드레스도 이렇게 예쁘네요!”허수희는 더욱 기뻐하며 말했다.“다른 옷들도 입어봐.”“잠시 후에 입어볼게요. 진석이가 회의하자고 해서, 회의 끝나고 다시 하나씩 입어볼게요.” 강솔이 웃으며 말하자 허수희는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휴가 중에 무슨 회의야?”강솔은 장난스럽게 말했다.“어쩔 수 없어요. 보스니까, 말하는 대로 해야 해요!”“내가 가서 그만두라고 할까? 너를 너무 혹사하지 못하게!”“제발 그러지 마세요!” 강솔은 과장되게 말했다. “이모도 아시잖
강솔은 휴대폰을 찾으려다가 자신의 휴대폰이 패딩 주머니에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가져오지 않았던 것이다.“아, 정말 쪽팔려!” 강솔은 분노와 부끄러움에 얼굴이 빨개졌다. 평소에 진석에게 장난을 치긴 했다, 하지만, 작업실에서는 총괄 디렉터로서 언제나 우아하고 단정한 이미지를 유지했다. 진석과도 적절한 거리를 유지했었다.하지만 조금 전, 강솔은 거의 진석에게 달려들 듯 뒤에서 그를 껴안았다. 그뿐만 아니라 숟가락으로 생강을 먹여주려고 하면서 애교가 넘치게 진석의 부르기까지 했다.강솔은 생각할수록 화가 치밀어 올랐다. 그래서 소파에 주저앉아 얼굴을 묻었다.“이제 못 살아!”진석은 그릇을 들어 천천히 대추를 다 먹고는, 강솔에게 무언가를 말하려 했지만, 고개를 들자마자 멍하니 그녀를 바라봤다. 강솔은 소파에 엎드려 있었는데, 자신이 치마를 입고 있다는 것을 잊어버린 채 치마가 말려 올라가 두 개의 하얗고 가느다란 다리가 드러나 있었다. 균형 잡힌 다리가 검은색 벨벳 드레스와 대조를 이루며 눈부시게 빛났다.진석은 목이 말라 침을 삼키며 시선을 돌렸다. 표정 변화 없이 말했다.“창문이 열려 있어. 정말 못 살겠으면 그냥 뛰어내려.”강솔은 화난 목소리로 말했다.“2층이라 죽지도 않아!”“죽지는 않겠지만, 장애인이 되면 내가 널 돌봐줄게. 지금도 거의 비슷하잖아.” 진석은 담담하게 말하자, 강솔은 쿠션을 안고 일어나며 물었다.“거의 비슷하다니, 무슨 말이야?”“잘 생각해 봐.” 진석은 눈을 들어 그녀를 보며 차갑지도 뜨겁지도 않은 어조로 말했다.“네가 아플 때는 내가 널 돌봐주고, 네가 좋아하는 음식은 내가 사다 주고, 심지어 네가 매달 쓰는 돈도 내게서 나간다고.”강솔은 점점 더 눈이 커지며 말을 잃었다. 곰곰이 생각해 보면, 정말 그런 것 같았다. 이에 강솔은 턱을 치켜들며 말했다.“이미 네가 나를 챙겨주고 있으니까, 굳이 나를 장애인으로 만들 필요는 없잖아. 괜히 힘들게.”진석은 강솔을 무표정하게 바라보며 말했다.“지금은 네가 일
강솔은 화가 나서 손을 뻗어 진석을 때리려 했지만, 진석이 힘을 줘 허리를 더 눌렀다.“움직이지 마!”“응.” 강솔은 아프면서도 시원해서 무심코 가벼운 신음을 내뱉었다. 진석의 몸이 순간적으로 굳어지며 눈빛이 더 깊어졌다. 강솔의 허리를 누르고 있는 진석의 손은 그녀의 부드럽고 연약한 몸을 느꼈고, 심장이 쿵쾅거리며 뛰기 시작했다. 강솔은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전혀 모르고, 한동안 조용히 있다가 물었다.“근데 왜 강성으로 돌아가지 않았어?”자신은 감정의 상처를 치유하려고 집에 있는 것이지만, 진석은 왜 떠나지 않았을까? 진석은 숨을 내쉬며, 약간 허스키한 목소리로 말했다.“처리해야 할 일이 좀 남았어.”“무슨 일이야?” 강솔은 호기심 가득한 목소리로 물었다. 진석은 강솔의 질문에 답하면서도, 자신도 모르게 미간을 찌푸리며 짜증난 목소리로 말했다.“뭘 그렇게 많이 묻는 거야? 너랑 상관없는 일이야!”이에 강솔은 놀라며 말했다.“난 그냥 물어본 거야. 왜 화를 내?”진석은 점점 더 답답함을 느끼며, 짜증이 나 얼굴을 굳히고 말을 잇지 않았다. 강솔은 갑자기 화를 내는 이유를 알 수 없었고, 마음이 착잡해졌다. 그래서 일어나려고 팔을 짚었다.“그만해. 이제 내가 할 수 있어. 집에 갈게!”“움직이지 마!” 진석은 강솔의 허리를 단단히 누르며 힘을 주었다.“아야!”강솔은 가볍게 소리쳤고, 몸이 소파로 푹 파묻히며 장난스럽게 말했다.“살살해!”진석의 손이 더 단단히 쥐어졌고, 하마터면 욕설이 터질 뻔했다. 진석은 깊게 숨을 들이마시고 다시 허리를 주물렀다. 둘 다 더 이상 말을 하지 않았다. 진석이 힘을 줄 때마다 강솔은 무의식적으로 소리를 냈다.이 상황은 진석에게는 고문 같았고, 손을 놓고 싶지 않은 고통스러운 고문이었다.방 안의 공기는 점점 무겁고 아슬아슬한 긴장감이 감돌았다. 심지어 둔감한 강솔도 뭔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느꼈다. 그래서 다시 소리를 내지 않았지만, 진석이 만지는 곳이 점점 뜨거워지는 것을 느꼈다.진석의
진석은 휴대폰을 들어 메시지를 확인한 후, 담담하게 말했다.“저녁에 몇몇 동창들과 모임이 있어.”그 말에 강솔은 웃으며 말했다.“잘 됐다! 그럼 나도 저녁에 너랑 같이 가자.”진석은 속으로 순간적으로 움직임을 느끼며, 목소리가 부드러워졌다.“너도 나랑 같이 가겠다고?”강솔은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응, 오늘 밤에 우리도 동창 모임이 있어. 장소도 같은 스타라이트니까, 네 차 타고 갈래. 내가 차를 안 가져가도 되잖아!”진석의 마음속에 잠깐 피어올랐던 부드러운 감정이 사라졌고, 이내 물었다.“몇 층인데?”“3층이야.”진석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알았어. 갈 때 데리고 갈게.”“고마워, 진석!” 강솔은 눈을 살짝 감고, 컴퓨터를 안고 일어섰다.“나 집에 갈게, 잘 있어!”그러자 진석은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몇 시인데 벌써 집에 가? 퇴근했어?”“아?” 강솔은 잠시 멍하니 있자, 진석은 몇 개의 디자인 문서를 그녀에게 던지며 말했다.“이 디자인 작업들을 해 질 때까지 마쳐, 그렇지 않으면 동창 모임에 갈 생각도 하지 마.”강솔은 길게 한숨을 내쉬며 다시 자리에 주저앉았다. 문서를 집어 들고는 혼잣말로 투덜거렸다.“정말 못된 자본가야!”진석은 강솔의 작은 불평을 들으며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숙여 서류를 다시 검토했다. 강솔은 점심을 진석의 집에서 먹고, 오후 내내 두 사람은 계속 일했다.하나의 책상에서 서로 마주 앉아, 한쪽은 서류를 검토하고, 한쪽은 디자인 작업을 했다. 각자 할 일을 하면서 가끔은 말다툼하기도 했고, 가끔은 일에 대해 논의하기도 했다. 전반적으로 분위기는 평화로웠다.해가 질 무렵, 강솔은 물 한 모금을 마시고 일어서서 길게 기지개를 켰다.“보람찬 하루를 보내니 정말 기분이 좋아!”진석은 의자에 기대어 강솔을 바라보며 조용히 웃었다. “허리는 이제 괜찮아?”강솔은 몸을 돌리며 놀라며 말했다.“아주 좋아졌어! 역시 진석 사장님은 대단해!”진석은 강솔의 칭찬에 반응하지 않고 말했다.
강솔은 손을 들어 귤을 받으며 웃음을 참지 못하고, 귤을 까먹으며 집 안으로 들어갔다. 강솔은 원래 치마를 입는 것에 익숙하지 않아서 옷을 갈아입고 나갈 생각을 했다. 그런데 갑자기 지금도 충분히 예쁘다는 진석의 말이 떠올랐다.강솔은 거울 앞에 서서 치마를 입은 자신을 보며, 정말로 꽤 예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행복한 미소를 지으며 치마 앞에서 한 바퀴를 돌았다. 기분이 갑자기 아주 좋아졌다.진석이 전화를 걸어왔을 때, 강솔은 외투를 챙겨 집을 나섰다. 이번에는 패딩 대신 무릎까지 오는 코트를 입었다.윤미래가 설날에 사준 코트로, 밝고 쨍한 옷이라 약속에 갈 때 입기에 좋다고 했다. 원래는 별로 좋아하지 않았는데, 집을 나서기 전에 옷장 속에서 이 옷이 눈에 딱 들어왔다.쨍한 색감의 코트에 검은색 치마, 시각적으로 한눈에 확 들어오게 잘 어울렸다. 진석이 아름다운 강솔의 모습을 보자 검은 눈동자가 미세하게 수축했다. 강솔의 원래 귀여운 단발머리도 약간의 섹시함과 멋스러움이 더해졌다.“가자!” 강솔은 밝게 웃었다.진석은 운전대를 잡고 있는 손을 살짝 더 움켜쥐었다. 그의 선글라스 뒤로 숨겨진 깊고 어두운 눈동자에 살짝 당황한 기색이 스쳤다. 또한 마음속에는 약간의 긴장과 함께 더 큰 부드러움이 넘쳐났다.강솔의 휴대폰에 메시지가 왔는데 이윤주가 도착했는지 물어보는 메시지였다. 강솔은 두 손으로 휴대폰을 들고 메시지를 입력했다.[곧 도착해. 지금 가고 있어.]진석은 눈꼬리로 강솔을 슬쩍 보며 담담한 목소리로 물었다.“모임에 누가 오는데?”“이윤주, 소울연 같은 애들이야. 너도 아는 애들이지.”“남자도 있어?” 진석은 마치 무심한 듯 물었다.“아마 없을걸.”진석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술 적게 마시고, 과한 게임은 하지 마. 모임 끝나면 내가 널 데리러 올게.”강솔은 매번 모임 때마다 진석이 해주는 당부에 익숙해져서 고개를 끄덕였다.“알았어, 걱정하지 마. 다들 내 친구야!”“친구라고 해서 방심하면 안 돼. 이런 자리에서
강솔은 잠시 멈칫하며, 주예형을 떠올리자 마음속 깊은 곳에서 바늘로 찌르는 듯한 아픔이 느껴졌다. 그러나 그와 함께했던 날들을 되새겨보면, 그것이 마치 전생의 일처럼 멀게만 느껴졌다.솔직히 말해서, 이별 후에 진석이 곁에 있어 주어 다행이었다. 매일 강솔과 함께 달리기하거나 여기저기 놀러 다니며, 항상 무언가 할 일을 찾아주었다. 덕분에 강솔은 방에 틀어박혀 자신을 연민하지 않을 수 있었다.강솔은 고개를 들고 과일 주스를 한 모금 마시며 말했다.“앞을 봐야지. 이미 헤어졌으니까, 울고불고 해봐야 소용없잖아.”“그런데 왜 헤어진 거야?” 이윤주가 호기심 가득한 목소리로 물었다.“그냥, 성격이 안 맞아서.”강솔이 대수롭지 않게 말하자, 윤주는 약간 아쉬운 듯 말했다.“다시 만날 생각은 없는 거야? 그렇게 오랫동안 좋아했는데, 그냥 포기해?”강솔은 단호하게 말했다.“다시는 만나지 않을 거야. 완전히 끝났어.”생각해 보면, 주예형을 짝사랑했던 그 시절은 사실 그와는 큰 관계가 없었다. 그때 강솔은 예형의 앞에 자주 나타날 용기도 없었다. 그저 본보기로 삼아 자신을 독려하며, 그와 같은 사람이 되려고 노력했을 뿐이다.그래서 그 시절이 전혀 아깝지 않았다. 그동안 강솔은 많은 것을 배웠고, 얻었다. 그것이야말로 짝사랑했던 결과였다. 비록 그 후에 이런 비참한 이별을 겪었지만, 짝사랑했던 시절을 돌이켜보면 후회되지는 않았다.“야, 너희 둘이서 무슨 비밀 이야기하는 거야!” 소울연이 다가와 웃으며 말했다.“다 같이 모였는데, 너희만 따로 얘기하면 안 되지!”강솔은 바로 웃으며 말했다.“울연아, 나 들었어. 약혼했다며? 그런데 왜 초대장도 안 보내고, 서운하게!”그러자 울연은 쑥스러운 듯 말했다.“그냥 약혼이니까, 두 집안끼리 간단히 식사만 했어. 결혼할 때는 꼭 초대장 줄게. 그리고 너희들 다 내 들러리 해줄 거지?”“당연하지. 근데 약속해, 들러리는 축의금 안 내는 거야!” 윤주가 농담하자, 모두 함께 웃으며 이야기하고 있을 때, 문이
오연서는 술 한 잔을 마시고, 짙은 화장이 조명 아래서 마치 팔레트처럼 보였다.“아 말한다는 걸 깜빡했네. 내 남자친구가 스타라이트의 매니저야. 오늘 마음껏 놀고 마셔. 내가 남자친구에게 40% 할인을 부탁했거든!”이윤주는 혀를 차며 낮은 목소리로 강솔에게 말했다.“왜 굳이 모임에 참석하고 싶어 했는지 알겠네. 자랑하려고 온 거였어. 클럽 매니저가 뭐가 대단하다고 그렇게 자랑하는 거지?”소울연은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다.“돈이 있나 보지!”그녀는 계속해서 설명했다.“오연서는 졸업 후 몇 년 동안 일도 안 하고 남자에게 의지해서 살았어. 지금 이 남자친구는 매달 1000만 원씩 용돈을 준다고 하더라고.”“그래서 맨날 채팅방에서 자랑해 대는 거야. 너희가 채팅방에 없어서 몰랐지.”강솔은 점점 어이없어졌다.‘지금 무슨 시대인데, 남자에게 의지해서 사는 게 자랑거리가 될 수 있다니?'“강솔!” 기연이 갑자기 물었다.“지금 뭐 하고 있어?”“디자이너로 일하고 있어.”“좋네. 남자친구는 있어?”강솔은 잠시 멈칫하고 대답했다.“없어.”“설마 아직도 예형 선배를 기다리고 있는 건 아니지? 들은 바로는 그 사람, 지금 회사도 차리고 상장까지 했다고 하더라.” 기연이 웃으며 말했고, 그녀의 말에는 강솔에게 이제 그만 포기하라는 뉘앙스가 담겨 있었다. 이에 강솔은 담담하게 말했다.“보아하니 너도 그 사람을 꽤 주의 깊게 지켜보고 있었네.”기연의 얼굴이 잠깐 굳어졌다.“같은 반 동창이니까 당연히 관심이 가지. 맞다, 우리 오수재 오빠도 여자친구가 없는데, 같은 학교 동문끼리 잘해보는 것도 나쁘지 않지 않겠어?”수재는 슬쩍 강솔을 보며, 담배를 손에 쥐고 비웃듯 말했다.“한기연, 무슨 농담이야?”연서는 말을 보탰다.“왜? 강솔이 너랑 안 어울린다고 생각해? 네가 잘생겼고, 집도 잘 살고, 지금 직장도 좋은 건 맞지만, 강솔이도 만만치 않잖아. 적어도 예쁘잖아, 안 그래?”연서의 말은 분명 강솔을 깎아내리려는 의도가 담겨 있었다.강솔의
곽시양은 임유진의 사무실에서 30분 넘게 있다가 나왔다. 복도로 나서자 동료들의 시선이 어딘가 이상하게 느껴졌다.시양은 다들 자신이 승진한 걸로 수군대는 줄 알고 웃으며 지나치려 했지만, 평소 친하게 지내던 동료 한 명이 다급하게 말했다.“시양 씨, 얼른 회사 이메일 확인해 봐요.”시양은 곧장 사내 메일함을 열어봤고, 그 내용을 확인한 뒤 3분 넘게 멍하니 서 있었다.그러고는 갑자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눈에 잡히는 물건을 움켜쥐고 그대로 진소혜를 향해 달려들며 집어던졌다.소혜도 가만히 있지 않았고, 두 사람은 한순간에 몸싸움으로 번졌다. 동료들이 달려와 가까스로 둘을 떼어놓자, 시양은 눈에 광기를 담고 소리쳤다.“진소혜, 이 악랄한 년! 팀장님도 모함하고, 나도 똑같은 수법으로 뒤통수 쳐? 너 같은 건 세상에서 그냥 사라져버려야 해!”소혜도 물러서지 않았다.“미쳤어? 그게 왜 내 탓인데? 그딴 더러운 짓을 해놓고 몰래 찍혔다고 나한테 화를 내?”“너야! 너밖에 없잖아!”시양은 미친 사람처럼 소혜에게 다시 달려들려 했다. 이때, 현준이 달려 나와 그녀를 막으며 말했다.“진정 좀 해!”“꺼져!”시양은 손을 뻗어 정현준의 뺨을 그대로 후려쳤고, 그녀의 눈에선 눈물이 그렁그렁했다.“당신이 날 찍었지! 그리고 진소혜한테 넘겼지! 둘 다 정말 비열해!”현준도 결국 폭발했다.“유혹한 건 당신이 먼저였잖아!”시양은 그대로 와락 울음을 터뜨렸다.“아악!”유진은 사무실 문 앞에 서서 이 난장판을 조용히 지켜봤다. 몇 마디 오가는 대화를 듣는 것만으로도 상황이 어찌 돌아간 건지 충분히 파악할 수 있었다.시양은 입사 이후 내내 소혜에게 눌려 지냈다. 겉으론 아첨하며 따라다녔지만, 소혜가 자신을 무시하고 조롱하듯 대하던 걸 속으로는 원망하고 있었다.시양은 현준이 소혜를 좋아한다는 걸 알고 있었다. 회사에서도 소혜에게 특혜를 줬던 그를 시양은 일부러 유혹했다. 현준을 차지해 소혜를 공격하려는 의도였다. 하지만 현준은 시양의 유혹을 뿌리치지 못
이날, 임유진은 티타임에 진소혜와 마주쳤다. 소혜는 입술을 다물고 웃으며 말했다.“팀장님, 구씨그룹의 총애를 받으니 우리 부서 실적도 쭉쭉 오르겠죠? 부서 직원들 대신 감사드려요, 팀장님.”유진은 커피를 받아 들고 나가려다, 소혜의 옆을 지나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이 일, 소혜 씨가 한 거라는 거 알아요. 이미 누가 나한테 말해줬거든요. 그래서 소혜 씨 그냥 두지 않을 거예요.”소혜의 얼굴빛이 살짝 굳어졌고, 고개를 돌려봤을 땐, 유진은 이미 자리를 떠나 있었다.오후 회의에서 유진은 이렇게 발표했다.“이번 평가 기간 동안 곽시양 씨가 업무에 성실히 임했고, 탁월한 성과를 보여주었어요. 따라서 정현준 씨의 직책을 승계하여 부서 부팀장으로 승진해요.”“인사팀에서 곧 공식 공지드릴 예정이에요.”유진의 말이 끝나자 회의실엔 놀라움이 번졌고, 시양 본인조차 믿기 힘들다는 표정이었다. 부서 내에서도 존재감이 적었고, 입사한 지 오래되지도 않았으며, 능력이나 실적 모두 소혜에 비해 부족했기에, 시양이 발탁된 건 모두에게 의외였다.소혜는 얼굴을 일그러뜨리며 노골적으로 불만을 드러냈다.“팀장님, 부팀장 선발 기준이 뭔가요? 기준을 명확히 해주시죠.”유진은 싸늘한 눈빛으로 소혜를 응시하며 말했다.“기준? 내 마음대로 정하는 게 기준이라면 기준이겠죠”소혜는 눈을 크게 떴고, 유진은 고개를 돌려 멍하니 있는 시양을 바라보며 부드럽게 말했다.“시양 씨, 제 사무실로 잠깐 와요.”“네?”시양은 얼떨떨한 목소리로 대답하며, 소혜의 얼굴을 보지 않으려는 듯 고개를 숙인 채 서둘러 유진을 따라갔다.유진이 회의실을 나서자, 안에서는 수군거림이 폭발했다. 최근 있었던 일로 인해 유진은 여전히 비난의 대상이었고, 그런 유진이 능력도 부족한 신입을 뛰어넘어 부팀장으로 발탁했다는 점에서 불만과 의문은 더 커졌다.현준도 아무 말 없이 앉아 있었다. 이 인사 결정은 사전 상의 없이 유진이 발표한 것이었고, 그 역시 놀라고 있었기 때문이다.소혜는 맞은편에 앉은 베
유진은 구은정의 표정을 보고, 가슴 어딘가가 서늘해졌다. 그는 평소와는 어딘가 다르게 느껴졌고, 유진은 참지 못하고 입을 열었다.“어제 술 마셨다던데, 괜찮아요?”은정은 유진을 뚫어지게 바라보다가, 한참이 지나서야 낮은 목소리로 대답했다.“괜찮아.”“안 좋아 보이던데, 이제 술은 좀 줄이는 게 좋을 것 같아요.”유진이 조용히 은정에게 당부했다.“응.”그 말에 은정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시간 됐어요. 나 출근해야 해요.”유진은 그렇게 말하며 엘리베이터 쪽으로 걸어갔고, 그렇게 둘은 스쳐 지나갔다. 엘리베이터가 도착하자 유진은 안으로 들어갔다.그런데 조금 전 은정이 자신을 바라보던 눈빛이 자꾸 마음에 걸렸고, 가슴이 쿵 내려앉는 것 같았다. 순간 망설임도 없이 엘리베이터 문을 다시 열고, 급히 뛰쳐나왔다.그러나 복도엔 이미 그의 모습이 없었다. 유진은 그 자리에 멈춰 서서 스스로가 어이없었다.‘내가 지금, 도대체 뭐 하는 거지? 도대체 무슨 말을 하려고 했던 걸까? 아니, 지금은 내 문제부터 정리해야 해. 괜히 그 사람한테 짐이 되어선 안 돼.’그날 오후, 은정은 늦게서야 회사에 출근했다. 회사에 도착하자마자 법무팀에 최이석 관련 고소를 철회하라고 지시했다.마심호는 납득하지 못한 얼굴이었다.“그 사람 같은 놈은 봐줄 이유가 없죠. 이번 기회에 서성 라인 애들도 좀 눌러놓는 게 나아요.”그러나 은정은 별다른 설명 없이 단호하게 말했다.“저도 제 나름대로 생각이 있어요.”그날 저녁, 은정은 늘 그랬듯 이경 아파트로 돌아왔다. 조용히 복도를 지나, 곧장 유진의 집 앞으로 갔다.문 비밀번호는 여전히 바뀌지 않았고, 은정은 문을 열고 들어갔다. 집 안은 예전 그대로였고, 유진은 아무것도 챙겨가지 않았다.그런데도 방 안은 왠지 썰렁했는데, 무언가 본질적으로 달라져 있었다. 은정은 그녀가 드라마를 자주 보던 소파에 앉았다. 그 자리에 오래도록 앉아 있었다. 해가 지고, 어둠이 드리울 때까지 그렇게 있다가 조용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은정은 책상 위의 휴대폰을 들어 보이며 말했다.“녹음 안 했어요.”서선영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은정아, 이 일은 내가 밖에 알리지 않을게. 대신 조건이 있어. 최이석 일, 바로 고소 취하하고 다시는 들추지 마.”“그리고 스스로 구씨그룹 사장 자리에서 물러나. 회사도, 강성도 떠나서, 다시는 돌아오지 마.”“네 아버지에겐 그냥 말하면 돼. 죄책감 때문에 이 집에 더는 못 있겠다고. 이번엔 분명히 놔줄 거야.”“네가 떠날 땐, 내가 사람을 시켜서 돈도 챙겨줄게. 아버지한텐 그걸로도 충분히 체면 세워준 셈이 될 거야.”은정은 서선영을 냉랭하게 바라보며 의미심장하게 말했다.“당신 딸을 희생해서까지 날 함정에 빠뜨린 이유가 최이석 때문이었네요.”서선영의 얼굴이 순간 굳더니 곧바로 해명했다.“그 사람은 내 동생 밑에서 오래 일했어. 난 내 동생을 위해서 한 거야. 은정아, 지금 네가 분위기 바꿔서 빠져나갈 생각은 아예 하지 마.”“내가 당신 말대로 안 하면요?”은정은 담배를 내뿜으며 한껏 무심한 얼굴로 말했다.“어차피 난 이미 악명 높은 놈이 됐어. 하나쯤 더 얹혀도 그만이죠. 오히려 구은서는 이제 절대 부잣집 자제와의 결혼은 꿈도 못 꾸겠죠.”서선영의 얼굴은 날카롭고 차가웠다.“끝장을 보겠다는 거야? 그렇게 되면 은서는 동정받는 쪽이 될 거야.”서선영은 은정을 똑바로 노려봤다.“임유진하고 너, 꽤 가까운 사이잖아. 그 애는 나랑 너 때문에 몇 번이나 맞붙었지. 근데 만약 그 애가 네가 술에 취해 여동생을 건드린 놈이라는 걸 알게 되면?”“그 아이 눈엔 네가 어떻게 보일까? 널 어떻게 생각할까? 넌 그걸 감당할 수 있어?”그 말에 은정의 얼굴빛이 순식간에 어두워졌다. 서선영은 그 반응에 확신을 얻은 듯 미소를 지었다.“내 말대로 해. 열흘 안에 강성 떠나서 다시는 돌아오지 마. 안 그러면 임유진이든, 임씨 집안이든, 강성 전체가 너란 인간이 얼마나 추잡한 놈인지 알게 될 거야.”“널 사회적으로 매장 시킬거고, 임유진도 널 경멸하
은정은 격노한 아버지를 똑바로 바라보며 또렷하게 말했다.“저는 그런 짓 하지 않았어요. 이건 서선영 저 사람이 꾸민 함정이에요.”서선영은 엉엉 울면서 외쳤다.“내가 내 딸을 희생시켜서 너한테 함정을 판다고? 구은정, 네가 나를 미워하는 건 알아.”“예전부터 나한테 편견이 있었지. 그래, 미우면 나한테 손찌검을 해. 왜 애먼 은서를 괴롭혀?!”“은서는 아직 시집도 안 갔어. 이제 어떻게 살라고 해? 이 소문이 밖에 나가면, 우리 집안은 완전히 끝장이야!”은정은 오직 구은태만 바라보며 물었다.“저를 믿으세요?”구은태는 아들의 눈을 바라보다가, 문득 다른 기억 하나가 떠오르며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그때 갑자기 은서가 벽을 향해 몸을 던지듯 달려갔다. 죽을 각오로 내달리는 눈빛이었다.“은서야! 안 돼, 은서야!”서선영이 급히 은서를 껴안고 붙잡았고, 울음이 멎지 않았다.“은서야, 제발 그런 짓 하지 마. 이건 네 잘못이 아니야!”“거기 누구 없어요! 얘 좀 붙잡아줘요!”서선영은 울먹이며 도우미들을 향해 소리쳤다. 몇 명의 도우미가 급히 달려와 은서를 붙들고 감싸 안았다.그중 평소 은서를 따르던 도우미가 조심스럽게 구은태 앞에 다가와 입을 열었다.“회장님, 사실은 전에도 도련님께서 밤에 아가씨 방문을 두드리는 걸 몇 번 본 적이 있었어요.”“하지만 도련님이 너무 무서워서, 보복당할까 봐 말씀 못 드렸어요. 제가 잘못했어요.”그 도우미는 흐느끼며 말을 잇지 못했다.“제가 좀 더 일찍 말씀드렸더라면, 이런 일은 없었을 텐데요!”은정은 도우미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기억이 떠올랐다. 예전에 애옹이가 은서에게 보내졌던 그날 밤, 은정은 술에 취해 돌아와 애옹이가 사라진 걸 알고 은서를 찾아갔다. 그때 이 도우미가 어두운 구석에서 숨어 지켜보고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구은태는 거기까지는 떠올리지 못했다.죽을힘을 다해 몸을 던지려던 은서, 그리고 도우미의 일방적인 증언이 더해지자, 구은태는 은정을 더 이상 믿지 않았다.다시 근처에 있던 물
[말 좀 해봐요.][삼촌?]서선영이 천천히 2층에서 걸어 내려오더니, 바닥에 떨어져 있던 휴대폰을 집어 장말숙 아주머니에게 건네며 눈짓을 보냈다. 이에 장말숙 아주머니는 눈치를 채고 전화를 받아 들고 말했다.“유진 씨죠? 저희 도련님이 술에 취하셨어요.”유진은 잠시 침묵하더니 말했다.[네, 신세 좀 질게요. 잘 부탁드려요.]“네!”장말숙 아주머니는 괜히 말을 더했다가 실수라도 할까 봐 다급하게 전화를 끊었다. 은정의 까만 눈동자가 서선영을 향해 있었지만, 그 시선은 이미 흐릿했다.서선영은 은정을 부축하듯 손을 내밀며, 자애로운 얼굴로 말했다.“은정아, 술 너무 많이 마셨잖아. 방으로 데려다줄게.”“으악!”날카로운 비명에 은정은 정신이 번쩍 들며 눈을 떴고, 날은 훤하게 밝아 있었다.옆에서는 구은서가 실크 잠옷 차림으로, 옷가지로 몸을 허둥지둥 가리고 있었고, 얼굴은 절망감에 젖은 눈물로 가득했다. 그녀는 분노로 떨리는 눈으로 은정을 노려보고 있었다.구서의 비명은 곧 서선영과 집 안 도우미들을 방으로 불러 모았다. 문이 열리고 방 안 풍경을 본 순간, 모두가 굳어버렸다.은정은 조금씩 의식을 되찾았고, 은서를 훑어보며 눈빛이 짙게 가라앉았다. 이불을 들추고 자신을 확인해 보니, 바지는 제대로 입고 있었지만 상의는 전혀 없었다.은정은 몸을 일으켜 세우려다 이마를 짚으며 침대 머리에 기대앉았다. 머리가 묵직하게 지끈거렸다.“엄마!”은서는 멘탈이 완전히 무너져 울부짖었다.“은서야!”서선영이 달려와 은서를 안고, 옷을 덮어주며 얼굴이 창백하게 질렸다.“도대체 이게 어떻게 된 일이니?”“몰라요!”구은서는 서선영 품에 얼굴을 묻은 채 오열했다.“밤에 오빠가 갑자기 방에 들어왔어요. 술에 취해서 저를 한 대 치더니 그다음은...”은서의 머리는 흐트러져 있었고, 드러난 어깨엔 붉은 자국이 가득했다. 누가 봐도 무슨 일이 있었는지 짐작할 수 있었다.“짐승 같은 놈!”서선영은 벼락을 맞은 듯 충격에 빠져 온몸을 떨며 은정을 향해 소리
우정숙은 이 모든 상황이 이해되지 않아 눈썹을 살짝 찌푸렸다. 예전에 은정은 분명히 임유진은 내 스타일 아니라며 선을 그은 적이 있는데, 왜 지금 와서 이렇게 적극적으로 쫓고 있는 걸까?“넌 어떻게 생각해?”우정숙이 묻자, 유진은 여전히 고개를 숙인 채 조용히 말했다.“조금 냉정해질 필요가 있을 것 같아서요. 그래서 돌아왔어요.”그 말투가 생각보다 무거워, 우정숙은 분위기를 일부러 누그러뜨리며 웃었다.“이미 거절했는데도 냉정해져야 해?”유진의 귀가 붉게 물들었다.“어쨌든, 엄마는 이 일. 할아버지, 할머니한테는 말하지 말아줘요. 그리고 삼촌한테도 되도록 비밀로 해주세요.”그 말에 우정숙은 딸의 속내를 단번에 알아차렸다.“갑자기 이렇게 서둘러 집에 돌아온 이유 혹시 일이 더 커질까 봐? 너희 할아버지가 구은정한테 가서 따질까 봐 걱정돼서 그런 거 아니야?”유진은 재빨리 대답했다.“누가 그 사람 걱정했대요? 밖에서 사는 게 질려서 온 거지, 그 사람이랑은 아무 상관 없어요.”하지만 우정숙의 따뜻하고 조용한 눈빛은 유진의 진심을 꿰뚫고 있었다. 우정숙은 다만 조용히 숨을 내쉬며, 더는 묻지 않았다.그날 밤, 구은정은 외부 일정으로 접대를 나갔고, 유진에게 메시지를 보냈다.[오늘 좀 늦을 것 같아. 집에 들어가면 애옹이 좀 봐줘.]유진은 곧바로 답장을 보냈다.[저도 집에 왔어요. 아주머님께 부탁하세요.]은정은 유진이 하루 정도 집에서 자려는 줄로만 알고, 별 의심 없이 답했다.[알겠어.]밤 10시.은정은 아직 접대 자리에서 술자리를 이어가고 있었다. 그때, 휴대폰에 구은태가 보낸 메시지가 하나 들어왔다.[은정아, 나 몸이 좀 안 좋다. 한번 집에 들러줄래?]은정은 미간을 찌푸렸다.[몸 안 좋으면 병원 가시죠.]그렇게 답장을 보냈지만, 더 이상의 응답은 없었다.술자리가 끝나고 나니 이미 자정 무렵이었다. 은정은 그래도 아버지를 확인하고자 구씨 저택으로 향했다. 집에 들어서자, 애옹이를 돌봐주던 장말숙 아주머니가 거실에서 그
정현준은 인상을 찌푸리며 말했다. “내가 지난번에 뭐라고 했죠? 임유진 건드리지 말랬잖아요. 왜 말을 안 들어요?”진소혜는 웃었다.“들었어요. 적이 내 사람이 될 수 없다면, 없애버리라는 그 말, 정말 감명 깊었거든요. 곧 임유진은 이 회사에서 쫓겨날 거예요.”현준은 진지하게 말했다.“그럼 단도직입적으로 말할게요. 임유진은 쫓겨나지 않아요. 사장님이 반드시 지킬 거니까요.”현준은 걱정 가득한 얼굴로 덧붙였다.“유진 씨, 그 정체가 간단하지 않아요. 사장님이 곤란한 일에 휘말릴 때마다 뒤에서 도와준 사람이 바로 그 애였다고요.”“이렇게 성급하게 나가면 결국 당하는 건 소헤 씨라고요.”소혜는 비웃으며 말했다.“그런 것도 그 얼굴 덕 아니었을까요? 임유진이 무슨 대단한 집안 출신이라도 돼요?”현준은 의미심장하게 말했다.“그 애, 성이 임이야.”소혜는 비웃었다.“강성에 임 씨 많은데요? 임씨라고 다 임씨 집안이예요?”“임유진이 정말 그 임씨 집안 사람이었으면, 이런 작은 곳에서 평사원으로 일할 일이 없죠.”강성에서도 가장 윗자리에 있는 집안, 그 임씨 집안 사람이라면 당연히 격이 달랐을 것이다.현준은 소혜를 바라보며, 무력한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소혜 씨, 소혜 씨는 너무 자만해요. 이제 막 졸업한 사람이잖아요. 세상이 어떤지 아직 몰라요.”“내가 경력은 부족하지만, 머리는 좋아요.”소혜는 코웃음을 치며 말했다.“내가 원하는 건, 어떻게든 손에 넣을 수 있어요.”현준은 더는 어떻게 설득해야 할지 막막했고, 소혜는 입꼬리를 올리며 말했다.“이번 달 말이면, 임유진은 이 회사에서 존재 자체가 사라질 거예요.”이메일은 해외 IP에서 발송된 것으로 확인되어, 추적이 쉽지 않았다. 하지만 루머는 벌써 영업팀까지 퍼진 상황이었다.한때 유진이 구씨 프로젝트를 따낸 걸 보고 감탄했던 동료들조차, 그녀가 정말 실력만으로 이룬 건지 의심하기 시작했다.너무 젊은 나이에, 임씨 그룹 같은 대형 고객을 설득하고, 이미 다른 부서에서 거의 성
서선영은 유혹적인 눈빛으로 남자를 바라보며, 거절하려는 듯하면서도 몸은 피하지 않았다.“안 돼. 나, 한 시간밖에 못 나와 있어.”“당신 보고 싶어서 미치는 줄 알았다니까.”최이석은 그렇게 말하면서 서선영의 치마 지퍼를 내렸다.“밖에 사람 세워놨어. 아무도 안 들어와.”...오전, 임유진은 구씨그룹과의 계약을 마무리했다. 오후에는 회사 고위층 회의에 참석했고, 회의가 끝나고 마케팅부로 돌아왔을 때쯤, 팀 동료들의 시선이 평소와 달랐다.유진이 고개를 돌려 쳐다보자, 모두는 급히 예의를 갖춘 표정으로 바뀌었다. 그리고 유진은 손에 든 자료를 들고 여진구를 찾아갔다.문을 열고 들어가니, 진구는 휴대폰을 들여다보고 있었고, 유진이 들어오자, 그는 무의식적으로 휴대폰을 내려놓았다.“무슨 일 있었어요?”유진이 맑은 목소리로 묻자, 진구는 곧바로 말을 돌렸다.“아니야. 너 손에 든 거, 청원안 자료야? 나 좀 볼게.”하지만 유진은 단호한 표정으로 말했다.“휴대폰, 보여줘요.”진구는 어쩔 수 없다는 듯 휴대폰 화면을 다시 켰다. 방금 보고 있던 건, 유진과 은정이 함께 있는 사진들이었다.둘이 식당에서 식사하는 모습, 그리고 둘이 함께 아파트 단지에 들어가는 장면. 얼마 전 중식당에서 있었던 그날이었다.진구는 얼굴을 굳히고 말했다.“누군가 이 사진들을 너희 팀 메일에 전체 전송했어. 내용은, 네가 구씨 프로젝트를 따낸 게 구은정과 부적절한 관계가 있어서라고.”유진은 이미 그 메일을 확인했었다. 메일에는 프로젝트 성공을 위해 구씨 그룹 사장을 유혹했다는 식의 악의적이고 천박한 문장들이 적혀 있었다.업계 풍기를 망친다는 말까지, 표현이 거칠고 추했다. 유진은 이를 꽉 물었지만, 곧 침착하게 물었다.“발신 IP 추적할 수 있어요?”진구가 답했다.“지금 IT팀에서 추적 중이야. 내부 직원일 수도 있고, 유지그룹 쪽의 보복일 가능성도 있어. 하지만 반드시 밝혀낼 거야.”“일단 외부로 확산은 안 됐고, 회사 내부 루머 수준이야. 이미 전체 공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