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 안에서소희는 강재석과 바둑을 두고 있었는데 소희는 잘 두지 못해 계속해서 강재석의 지도를 받아야 했다. 소희는 인내심 있게 할아버지의 지도를 들으며, 비록 바둑이었지만 마치 나라를 다스리는 비법을 듣는 것처럼 느꼈다.소희의 핸드폰이 빛나서 잠깐 보니, 성연희가 보낸 메시지였다.[소희야, 다 해결했어. 내일의 깜짝선물 기대해!]소희는 엄지척 이모티콘을 연희에게 보내자 강재석이 고개를 들어 물었다. “무슨 좋은 일이 있는 거냐? 그렇게 기뻐 보이는 걸 보니.”소희는 핸드폰을 내려놓고 바둑돌을 잡으며 눈웃음을 치며 말했다. “내일 연희가 와요!”“연희가 온다고?” 강재석은 놀라며 말했다. “방금 결혼한 거 아니야? 설날에는 노씨 집안에서 보내야 하는 거 아니야?”소희는 바둑판을 보며 대답했다. “그렇죠, 연희는 그냥 선물을 전하러 오는 거예요. 전달하고 바로 떠날 거예요.”“선물만 전할 거라면 굳이 오지 않아도 되는데.”“할아버지는 신경 쓰지 마세요!” 소희는 일부러 비밀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연희가 가져오는 선물은 직접 와야만 드릴 수 있어요.”이에 강재석은 고개를 저으며 웃었다.“괜히 호들갑 떠는구나!”방 안은 난방이 잘 되어 있었고, 소희는 얇은 옷을 입고 있어서 이마에 땀이 살짝 맺혔다. 그러고는 바둑돌을 두며 생각하다가 창문을 열었다. 찬바람이 들어오자 정신이 맑아졌다.이때 밖에서 임구택이 돌아보며 창문을 닫자 소희는 다시 창문을 열고 창밖을 내다보며 눈부신 얼굴로 말했다. “닫지 마, 더워!”“더워도 열면 안 돼. 찬바람 맞으면 감기 걸리기 쉬워.” 구택이 말하며 다시 창문을 닫았다. 다행히 이번에는 소희가 말을 들었고, 창문을 더 이상 열지 않았다. 이 모습을 본 강시언은 고개를 돌려 웃으며 말했다. “소희는 세상에서 할아버지 말만 듣는다고 하더니, 네 말도 잘 듣는구나.”“더위를 타면서 추위를 두려워하는데, 누가 챙겨주지 않으면 어떻게 될지 모르겠어요.” 구택은 가벼운 조롱의 말투로 말했지만,
강씨 저택의 문 앞에 다다르자 성연희가 웃으며 말했다. “다 왔어. 내려.”강아심은 차창 밖의 화려한 고전식 정원을 잠시 바라보다가 문을 열고 내렸다. 문 앞에서 오석이 미소를 띠며 기다리고 있었다. “연희 아가씨가 오셨군요!”연희는 다가가며 말했다. “어머! 할아버지, 왜 직접 나와서 기다리고 계세요? 이렇게 추운 날씨에 빨리 들어가세요.”그러자 오석은 웃으며 말했다. “가족이 오면 맞이하는 게 우리의 규칙이죠.”연희는 따뜻한 미소를 지으며 아심에게 말했다. “들어가자, 지금 딱 점심시간이야!”아심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고개를 끄덕이며 발걸음을 옮겼다. 강씨 집안의 정원은 운성에서 누구나 아는 곳이었다. 아심과 연희는 회랑을 지나 전실로 향했다. 고풍스러운 정원을 바라보며 아심의 손가락이 살짝 떨렸고 문에 들어서기도 전에 성연희는 큰 소리로 외쳤다. “할아버지, 저 왔어요!”거실에서는 강재석이 글을 쓰고 있었고, 소희는 책장 정리를 도와주고 있었다. 두 사람은 소리를 듣고 멈췄고 강재석은 웃으며 말했다. “사람은 안 보이는데 목소리가 먼저 들리네. 점심시간에 맞춰서 왔구나.”그 말이 끝나자마자 연희가 거실로 들어왔다.“할아버지!” 연희는 화사한 옷을 입고 환한 미소를 지으며 방을 밝게 했고 소희는 연희 뒤에 있는 아심을 보고 살짝 미소를 지었다. 아심은 소희를 보고도 놀라지 않았다. 연희가 고객 정보를 끝까지 밝히지 않았고, 운성에 와서 곧바로 이곳으로 온 것을 보니, 이 정원은 운성에서 두 번째로 찾기 힘든 곳이었다.“좋아, 좋아!” 강재석은 자애로운 미소를 지으며, 연희 뒤에 있는 아심을 보자 미묘한 감정을 느꼈다. 마치 어디선가 본 듯한 얼굴이 떠올랐다.“할아버지, 친구를 데려왔어요.” 연희는 아심의 손을 잡고 말했다. “자기소개는 직접 하라고 할게요.”아심은 앞에 서 있는 강재석을 바라보며, 눈가가 살짝 촉촉해지며 경외심을 담아 말했다. “할아버지 안녕하세요, 저는 강아심입니다.”“강아심.” 강재석은
아심은 평온한 표정으로 말했다. “오래전에 돌아가셨어요.”강재석은 순간 이해하고, 마음속에 연민이 더해지며 더욱 따뜻한 눈빛으로 말했다. “아가씨는 정말 용감하네요.”아심은 자신의 신분에 대해 민감하지 않았고, 자존심도 상하지 않았다. 다른 사람들이 물어보면 마음이 평온했다. 그러나 강재석이 아심을 용감하다고 말할 때, 목이 갑자기 멨다.“감사합니다, 할아버지.”“연희야!” 측문에서 키 큰 사람이 들어왔다. 그 사람은 햇빛을 등지고 있었으며, 그 주위에 빛이 감돌고 있었다. 그러고는 차분한 미소를 지으며 들어왔다.아심은 소리를 듣고 고개를 돌렸다. 아심의 눈이 촉촉해지며, 눈에 부드러운 빛이 비쳤다. 남자가 무심코 아심을 바라보았을 때, 두 사람은 순간 당황했다. 한쪽은 놀라서, 다른 한쪽은 강시언이 갑자기 나타났기 때문이다.시언의 눈빛이 깊어지며 차분하게 말했다. “집에 손님이 오셨네요.”“그래, 연희가 아가씨를 데려왔어. 이름이 강아심이야. 내가 너한테 소개해 줄까?”시언은 잠시 멈칫했고 아심은 웃음을 참으며 고개를 숙였다. 그러자 성연희도 장난스럽게 말했다. “시언 오빠, 벌써 아심을 잊은 거예요? 할아버지 말씀이 맞아. 내가 다시 소개해 줄까요?”아심은 연희의 농담에 신경 쓰지 않고, 웃으며 인사했다. “시언 씨!”그 한마디가 시언을 구해주었고 이내 시언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아심 씨!”아심은 또 웃음이 터졌는데 시언이 처음으로 자신을 아심 씨라고 불렀다. 시언의 목소리는 약간 거리를 두고 있었지만, 아심은 웃음을 참을 수 없었다. 운성에 온 이후로, 이 집에 들어온 이후로, 아심의 기쁨이 점점 커져서 더 이상 억제할 수 없어 눈과 입가에서 넘쳐 흘러나왔다.연희는 옆에서 소희에게 눈을 깜박이며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이게 무슨 일이야? 왜 두 사람이 한 대본을 맞추고 있는 것 같지? 마치 우리가 대중인 것처럼.”소희는 연희를 흘겨보며 말했다. “걱정하지 마, 너처럼 예쁜 대중은 없어.”이에 연희는 만족스
두 사람이 웃으며 앞으로 걸어가고 있을 때, 강재석은 옆에 있는 강시언이 따라오자 멈춰 서서 말했다. “너는 왜 나를 따라오니, 손님을 챙겨야지!”강재석의 말에 시언은 무의식적으로 강아심을 바라보았고 아심은 고개를 들어 맑은 눈동자로 바라보았다. 소희는 원래 아심과 함께 걷고 있었지만, 두어 걸음 앞으로 나가 임구택을 찾아갔다. “자기야, 나 뒷마당에서 감말랭이 좀 가져올 건데 같이 갈래?”“좋아!” 구택은 소희와 함께 청석길을 따라 뒷마당으로 향했고 시언은 한발 늦게 걸음을 옮겨 아심과 나란히 걸었다.며칠 전 운성에 내린 눈은 아직 녹지 않아 붉게 핀 매화 위에 얇게 덮여 있었다. 매화 향기가 더욱 맑고 달콤하게 퍼졌다. 바람이 불어오자 눈이 흩날리고 매화 꽃잎이 바람에 날렸다. 시언은 아심을 위해 살짝 몸을 돌려 바람을 막아주었는데 시언의 검은 눈동자가 더욱 빛났다.“어떻게 운성에 오게 된 거야?”시언이 나지막하게 묻자 아심은 처음에는 자신이 오기 전에 몰랐다는 것을 설명하려 했으나, 입술을 살짝 비틀며 약간의 매력을 더한 웃음으로 말했다. “환영하지 않는 건가요?”“아니.” 시언은 아심을 바라보며 말했다. “다만 좀 놀랐어.”“저도 놀랐어요. 다시 뵙게 볼 줄은 몰랐거든요.”“휴가 중인가?”아심은 미소 지으며 말했다. “일이 거의 끝나서 특별히 할 일이 없어요.”이에 서인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운성에서 며칠 더 머물러도 되겠네.”그러자 아심은 웃음을 잃지 않고 말했다. “좋아요. 원래 설을 맞아 여행을 갈 계획이었는데 운성을 첫 번째 목적지로 할게요.”“두 번째 목적지는 어디야?” 아심은 잠시 멈칫하며 대답할 말을 찾지 못했다. 사실 아심은 이 질문에 대해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또한 시언의 앞에서는 거짓말을 잘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거짓말을 해도 금방 들킬 것이었다....황선국 셰프는 연희의 취향을 잘 알고 있어서 연희가 좋아하는 요리들을 빠짐없이 준비했다. 그러자 연희는 강재석에게 웃으며 말했다. “
강시언은 아심이 잔을 비우는 모습을 보며 살짝 눈살을 찌푸리며 말했다. “할아버지께서 곤란하게 하지 않으실 텐데, 왜 그렇게 서두르죠?”아심은 술잔을 들고 시언을 바라보았다. 아심의 입술에는 술 자국이 남아있었고, 얼굴은 살짝 붉어져 더욱 매혹적으로 보였다. 그러자 강재석은 약간 꾸짖으며 말했다. “나한테 술을 권하는데 말이 많네. 이 잔은 네가 대신 마셔라!”시언은 아심을 슬쩍 바라보며 말하지 않고 잔을 들어 한 번에 비우자 연희는 장난스럽게 말했다. “나는 시언 오빠가 아심에게 술을 천천히 마시라고 말하는 줄 알았는데, 오히려 술을 더 많이 마셔야 한다고 생각했나 봐요. 한 번에 다 마셔야 한다니.”모두가 웃으며 분위기는 한결 편안해졌다. 식사 중 강재석은 아심을 특별히 챙기지 않아서 아심은 더욱 편하게 느껴졌다. 마치 자신도 이들 속에 녹아들어 특별한 대우를 받는 외부인이 아닌 것처럼 느껴졌다.매실주는 진한 맛이 있어 아심은 연달아 두 잔을 마셨고, 시언은 아심의 잔을 조용히 과일차로 바꿨다. 아심은 술을 마셔서 손끝부터 발끝까지 따뜻해지는 느낌이었다. 이윽고 소희는 강아심에게 물었다. “운성에 처음 와?”아심은 부드러운 미소로 대답했다. “전에 한 번 왔었는데, 출장이라서 급히 왔다 갔다 했어.”“급하게 돌아가지 않으면 여기서 며칠 쉬어도 돼. 마침 나도 일이 없으니까, 운성의 경치를 보여줄게.” 소희는 진심 어린 눈빛으로 말하자 강재석도 따뜻하게 웃으며 말했다. “이미 왔으니 여기 머물러요. 집에는 방이 많으니까.”아심은 거절할 수 없어 동의했다. “좋아요!”연희는 너무 순조롭게 일이 진행되어서 놀라운 나머지, 탁자 밑에서 소희의 손을 살짝 쥐며, 겉으로는 태연한 척했지만,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곧 연희는 웃으며 말했다. “아심아, 여기서 설 보내자. 설이 지나면 나도 올게. 우리 모두 함께 즐겁게 보내자.”아심이 대답하려는데, 시언과 강재석이 벌써 결정을 내렸다.“그렇게 정해졌어. 연희도 말한 대로 연희는 설 지나
“그래, 돌아가렴. 길 조심하고, 강성에 도착하면 잊지 말고 알려줘.” 강재석이 당부했다.“걱정하지 마세요!” 연희는 밝게 웃으며, 떠나기 전 소희와 잠시 껴안고 차에 올라 떠났다. 연희가 떠나고 나서야 강아심은 뭔가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연희가 이번에 운성에 온 것은 아심을 데려오기 위해서였다. 또한 아심은 무심코 설을 강씨 집안에서 보내기로 동의했다. 자신이 외부인인데 왜 강씨 집안에서 설을 보내야 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강시언은 아심이 멍하니 서 있는 것을 보고 돌아서서 말했다. “무슨 생각 해요? 돌아가죠.”“아, 네!” 아심은 당황하며 고개를 들자 강재석이 아심을 불렀다. “아가씨, 이리 와요!”이에 아심은 곧바로 걸어갔다. “할아버지!”“소희는 나와 임구택을 챙겨야 하고, 어쩌면 제대로 신경 써주지 못할 수도 있어요.”“그러니까 이 집에 있는 동안은 강시언이 챙길 테니까 무슨 일이든 시언에게 말해요.”시언이 눈썹을 살짝 올리자 강재석은 즉시 말했다. “무슨 표정이야?”시언은 아심을 한 번 보고, 침착하게 말했다. “찬성하는 표정이죠.”강재석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좋아!” 그러고는 아심에게 물었다. “괜찮겠어요?”“물론이죠. 다만 시언 씨에게 폐를 끼치게 되네요.”시언은 진지하게 대답했다. “폐가 아니에요.”소희는 구택의 옆에 섰는데 둘이 눈을 마주치자 소희는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좋은 징조야!”구택은 웃으며 그저 소희의 손을 잡았다....강재석은 술을 마시고 낮잠을 자러 갔고, 회사 사람들이 찾아와 시언은 서재로 가서 그들과 이야기를 나누었다. 소희는 아심을 뒷마당으로 데려가 아심이 머물 방을 정리해 주었는데 바로 시언의 옆방이었다.이런 배치에 대해 두 사람은 아주 자연스럽게, 한 사람은 묻지 않았고, 한 사람은 설명하지 않았다. 소희는 아심에게 집안 환경을 소개해 주며 말했다. “나와 오빠는 집에 잘 없어.”“집에는 할아버지와 항상 곁을 지키는 오석 집사님, 요리하는
소희는 잠시 멈칫하다가 웃음을 터뜨렸고 하양이는 날개를 퍼덕이며 말했다. “누구야? 어서 할아버지한테 가!”소희는 하양이의 머리를 톡톡 치며 말했다. “이상한 소리 하지 마. 이분은 강아심이니까 이름 기억해.”하양이는 머리를 갸우뚱하며 작고 둥근 눈으로 아심을 바라보다가 갑자기 날개를 퍼덕이며 외쳤다. “강아심! 강아심!”소희는 하양이를 다시 톡톡 치며 말했다. “기억하면 됐어. 괜히 떠들지 마!”그러고는 아심을 바라보며 말했다. “이 아이는 말이 많아서, 익숙해지면 얼마나 시끄러운지 알게 될 거야.”아심은 부드럽게 웃으며 말했다. “괜찮아. 정말 귀엽네! 불에 구워서 고춧가루 좀 뿌리면 맛있겠어.”하양이는 새 눈을 크게 뜨며 아심을 바라보다가 몸이 굳어지고, 갑자기 난간에서 떨어졌다. 그러자 소희와 아심은 웃음을 참을 수 없었다.저녁 식사는 성연희가 없었지만, 분위기는 여전히 편안하고 즐거웠다. 식사가 끝나고, 강재석은 아심에게 일찍 쉬라고 했다. 낯선 곳에 익숙해지면 잠을 잘못 잘 수 있기 때문이었다.방은 따뜻했고 아심은 샤워하고 나서 잠옷으로 갈아입은 후 침대에 누워 있었을 때, 밖에서 발소리가 들렸다. 나무 창문이 반쯤 열려 있어서 소리가 똑똑히 들렸다. 발소리는 옆방에서 멈추고, 문이 살짝 열리고, 다시 밖은 조용해졌다.하루를 돌아보며 아심은 여전히 믿기지 않았다. 아침에 출발할 때는 고객과의 일정을 생각하고 있었는데, 밤에는 강씨 집안에서 강시언의 옆방에 자게 되었다.도시의 소음과 달리 여기는 아주 조용했다. 불을 끄면 회랑의 불빛이 나무 창문을 통해 들어와 새겨진 꽃과 새의 그림자를 바닥에 희미하게 비추었다. 그것은 마음을 편안하게 해주었다. 주변의 모든 것이 아심을 안락하게 만들었지만, 침대에 누웠을 때 잠을 이루지 못했다.시간을 보니 이미 밤 10시를 넘었다. 잠이 오지 않아, 아심은 머리를 묶고 발판에 놓인 외투를 걸치고 밖으로 나갔다. 문밖 회랑에는 이미 키 큰 남자가 서 있었다. 붉은 등불 아래, 시언은 고개
문을 닫은 후, 강심은 등을 문에 기대고 서 있었다. 밖에서 시언이 방으로 들어가는 소리를 듣고 나서야 미소를 지으며 침대로 향했다. 방 안에는 향이 피어 있어, 은은한 향기가 잠을 부르며 아심은 몇 번 뒤척이다가 어느새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그리고 옆방의 불은 새벽 3시가 되어서야 꺼졌다.다음 날 아침강재석은 아침 산책을 하며 시언이 밖에서 달리기를 마치고 돌아오는 것을 보았다.“할아버지, 안녕하세요!” 서인은 걸음을 재게 하며 다가왔는데 이마에는 땀이 맺혀 있었고, 머리카락은 아침 이슬에 젖어 있었다. 이에 강재석은 웃으며 말했다. “이렇게 일찍 달리기하다니. 잠을 잘 자지 못한 거야, 아니면 밤새 못 잔 거야?”시언은 평소와 다름없는 표정으로 말했다. “할아버지의 안신향 덕분에 잘 잤죠!”강재석은 두 번 웃고 말했다. “그럼, 가서 아심이 일어났는지 봐라. 아직 자고 있으면 좀 더 자게 두고, 일어났으면 같이 아침 먹자.”“네.” 시언은 고개를 끄덕이며 뒷마당으로 향했다. 아심의 방 앞에 도착했을 때, 마침 문을 열고 나오고 있었다. 아심은 여유로운 옅은 브라운 색의 니트 가디건을 입고, 머리를 느슨하게 묶고 있었다. 몇 가닥의 머리카락이 자연스럽게 귀 옆으로 흘러내리자 깨끗하고 따뜻해 보였다.“안녕하세요!” 아침 햇살을 받으며 아심은 웃으며 인사했다. “운동하러 가셨나요?”“응, 할아버지가 아침 먹자고 하셨어. 나 씻고 올 테니 잠깐만 기다려줘.”“네, 좋아요!” 아심이 미소 짓자 시언은 걸음을 옮겨 자신의 방으로 향했다. 아심은 회랑에 잠시 서 있었다. 아침의 정원은 밤과는 또 다른 모습이었다. 붉은 나무 회랑 아래에 몇 그루의 소나무가 푸르게 우거져 있었고, 몇 마리의 새들이 소나무 열매를 쪼며 지저귀고 있었다. 고풍스러운 정원에 생기를 불어넣었다.아심은 옆을 바라보았는데 시언의 방은 문이 완전히 닫혀 있지 않고 살짝 열려 있었다. 시언은 아심에게 기다리라고만 했지, 방에 들어오지 말라고 하지는 않았다.‘그러면 방
곽시양은 임유진의 사무실에서 30분 넘게 있다가 나왔다. 복도로 나서자 동료들의 시선이 어딘가 이상하게 느껴졌다.시양은 다들 자신이 승진한 걸로 수군대는 줄 알고 웃으며 지나치려 했지만, 평소 친하게 지내던 동료 한 명이 다급하게 말했다.“시양 씨, 얼른 회사 이메일 확인해 봐요.”시양은 곧장 사내 메일함을 열어봤고, 그 내용을 확인한 뒤 3분 넘게 멍하니 서 있었다.그러고는 갑자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눈에 잡히는 물건을 움켜쥐고 그대로 진소혜를 향해 달려들며 집어던졌다.소혜도 가만히 있지 않았고, 두 사람은 한순간에 몸싸움으로 번졌다. 동료들이 달려와 가까스로 둘을 떼어놓자, 시양은 눈에 광기를 담고 소리쳤다.“진소혜, 이 악랄한 년! 팀장님도 모함하고, 나도 똑같은 수법으로 뒤통수 쳐? 너 같은 건 세상에서 그냥 사라져버려야 해!”소혜도 물러서지 않았다.“미쳤어? 그게 왜 내 탓인데? 그딴 더러운 짓을 해놓고 몰래 찍혔다고 나한테 화를 내?”“너야! 너밖에 없잖아!”시양은 미친 사람처럼 소혜에게 다시 달려들려 했다. 이때, 현준이 달려 나와 그녀를 막으며 말했다.“진정 좀 해!”“꺼져!”시양은 손을 뻗어 정현준의 뺨을 그대로 후려쳤고, 그녀의 눈에선 눈물이 그렁그렁했다.“당신이 날 찍었지! 그리고 진소혜한테 넘겼지! 둘 다 정말 비열해!”현준도 결국 폭발했다.“유혹한 건 당신이 먼저였잖아!”시양은 그대로 와락 울음을 터뜨렸다.“아악!”유진은 사무실 문 앞에 서서 이 난장판을 조용히 지켜봤다. 몇 마디 오가는 대화를 듣는 것만으로도 상황이 어찌 돌아간 건지 충분히 파악할 수 있었다.시양은 입사 이후 내내 소혜에게 눌려 지냈다. 겉으론 아첨하며 따라다녔지만, 소혜가 자신을 무시하고 조롱하듯 대하던 걸 속으로는 원망하고 있었다.시양은 현준이 소혜를 좋아한다는 걸 알고 있었다. 회사에서도 소혜에게 특혜를 줬던 그를 시양은 일부러 유혹했다. 현준을 차지해 소혜를 공격하려는 의도였다. 하지만 현준은 시양의 유혹을 뿌리치지 못
이날, 임유진은 티타임에 진소혜와 마주쳤다. 소혜는 입술을 다물고 웃으며 말했다.“팀장님, 구씨그룹의 총애를 받으니 우리 부서 실적도 쭉쭉 오르겠죠? 부서 직원들 대신 감사드려요, 팀장님.”유진은 커피를 받아 들고 나가려다, 소혜의 옆을 지나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이 일, 소혜 씨가 한 거라는 거 알아요. 이미 누가 나한테 말해줬거든요. 그래서 소혜 씨 그냥 두지 않을 거예요.”소혜의 얼굴빛이 살짝 굳어졌고, 고개를 돌려봤을 땐, 유진은 이미 자리를 떠나 있었다.오후 회의에서 유진은 이렇게 발표했다.“이번 평가 기간 동안 곽시양 씨가 업무에 성실히 임했고, 탁월한 성과를 보여주었어요. 따라서 정현준 씨의 직책을 승계하여 부서 부팀장으로 승진해요.”“인사팀에서 곧 공식 공지드릴 예정이에요.”유진의 말이 끝나자 회의실엔 놀라움이 번졌고, 시양 본인조차 믿기 힘들다는 표정이었다. 부서 내에서도 존재감이 적었고, 입사한 지 오래되지도 않았으며, 능력이나 실적 모두 소혜에 비해 부족했기에, 시양이 발탁된 건 모두에게 의외였다.소혜는 얼굴을 일그러뜨리며 노골적으로 불만을 드러냈다.“팀장님, 부팀장 선발 기준이 뭔가요? 기준을 명확히 해주시죠.”유진은 싸늘한 눈빛으로 소혜를 응시하며 말했다.“기준? 내 마음대로 정하는 게 기준이라면 기준이겠죠”소혜는 눈을 크게 떴고, 유진은 고개를 돌려 멍하니 있는 시양을 바라보며 부드럽게 말했다.“시양 씨, 제 사무실로 잠깐 와요.”“네?”시양은 얼떨떨한 목소리로 대답하며, 소혜의 얼굴을 보지 않으려는 듯 고개를 숙인 채 서둘러 유진을 따라갔다.유진이 회의실을 나서자, 안에서는 수군거림이 폭발했다. 최근 있었던 일로 인해 유진은 여전히 비난의 대상이었고, 그런 유진이 능력도 부족한 신입을 뛰어넘어 부팀장으로 발탁했다는 점에서 불만과 의문은 더 커졌다.현준도 아무 말 없이 앉아 있었다. 이 인사 결정은 사전 상의 없이 유진이 발표한 것이었고, 그 역시 놀라고 있었기 때문이다.소혜는 맞은편에 앉은 베
유진은 구은정의 표정을 보고, 가슴 어딘가가 서늘해졌다. 그는 평소와는 어딘가 다르게 느껴졌고, 유진은 참지 못하고 입을 열었다.“어제 술 마셨다던데, 괜찮아요?”은정은 유진을 뚫어지게 바라보다가, 한참이 지나서야 낮은 목소리로 대답했다.“괜찮아.”“안 좋아 보이던데, 이제 술은 좀 줄이는 게 좋을 것 같아요.”유진이 조용히 은정에게 당부했다.“응.”그 말에 은정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시간 됐어요. 나 출근해야 해요.”유진은 그렇게 말하며 엘리베이터 쪽으로 걸어갔고, 그렇게 둘은 스쳐 지나갔다. 엘리베이터가 도착하자 유진은 안으로 들어갔다.그런데 조금 전 은정이 자신을 바라보던 눈빛이 자꾸 마음에 걸렸고, 가슴이 쿵 내려앉는 것 같았다. 순간 망설임도 없이 엘리베이터 문을 다시 열고, 급히 뛰쳐나왔다.그러나 복도엔 이미 그의 모습이 없었다. 유진은 그 자리에 멈춰 서서 스스로가 어이없었다.‘내가 지금, 도대체 뭐 하는 거지? 도대체 무슨 말을 하려고 했던 걸까? 아니, 지금은 내 문제부터 정리해야 해. 괜히 그 사람한테 짐이 되어선 안 돼.’그날 오후, 은정은 늦게서야 회사에 출근했다. 회사에 도착하자마자 법무팀에 최이석 관련 고소를 철회하라고 지시했다.마심호는 납득하지 못한 얼굴이었다.“그 사람 같은 놈은 봐줄 이유가 없죠. 이번 기회에 서성 라인 애들도 좀 눌러놓는 게 나아요.”그러나 은정은 별다른 설명 없이 단호하게 말했다.“저도 제 나름대로 생각이 있어요.”그날 저녁, 은정은 늘 그랬듯 이경 아파트로 돌아왔다. 조용히 복도를 지나, 곧장 유진의 집 앞으로 갔다.문 비밀번호는 여전히 바뀌지 않았고, 은정은 문을 열고 들어갔다. 집 안은 예전 그대로였고, 유진은 아무것도 챙겨가지 않았다.그런데도 방 안은 왠지 썰렁했는데, 무언가 본질적으로 달라져 있었다. 은정은 그녀가 드라마를 자주 보던 소파에 앉았다. 그 자리에 오래도록 앉아 있었다. 해가 지고, 어둠이 드리울 때까지 그렇게 있다가 조용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은정은 책상 위의 휴대폰을 들어 보이며 말했다.“녹음 안 했어요.”서선영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은정아, 이 일은 내가 밖에 알리지 않을게. 대신 조건이 있어. 최이석 일, 바로 고소 취하하고 다시는 들추지 마.”“그리고 스스로 구씨그룹 사장 자리에서 물러나. 회사도, 강성도 떠나서, 다시는 돌아오지 마.”“네 아버지에겐 그냥 말하면 돼. 죄책감 때문에 이 집에 더는 못 있겠다고. 이번엔 분명히 놔줄 거야.”“네가 떠날 땐, 내가 사람을 시켜서 돈도 챙겨줄게. 아버지한텐 그걸로도 충분히 체면 세워준 셈이 될 거야.”은정은 서선영을 냉랭하게 바라보며 의미심장하게 말했다.“당신 딸을 희생해서까지 날 함정에 빠뜨린 이유가 최이석 때문이었네요.”서선영의 얼굴이 순간 굳더니 곧바로 해명했다.“그 사람은 내 동생 밑에서 오래 일했어. 난 내 동생을 위해서 한 거야. 은정아, 지금 네가 분위기 바꿔서 빠져나갈 생각은 아예 하지 마.”“내가 당신 말대로 안 하면요?”은정은 담배를 내뿜으며 한껏 무심한 얼굴로 말했다.“어차피 난 이미 악명 높은 놈이 됐어. 하나쯤 더 얹혀도 그만이죠. 오히려 구은서는 이제 절대 부잣집 자제와의 결혼은 꿈도 못 꾸겠죠.”서선영의 얼굴은 날카롭고 차가웠다.“끝장을 보겠다는 거야? 그렇게 되면 은서는 동정받는 쪽이 될 거야.”서선영은 은정을 똑바로 노려봤다.“임유진하고 너, 꽤 가까운 사이잖아. 그 애는 나랑 너 때문에 몇 번이나 맞붙었지. 근데 만약 그 애가 네가 술에 취해 여동생을 건드린 놈이라는 걸 알게 되면?”“그 아이 눈엔 네가 어떻게 보일까? 널 어떻게 생각할까? 넌 그걸 감당할 수 있어?”그 말에 은정의 얼굴빛이 순식간에 어두워졌다. 서선영은 그 반응에 확신을 얻은 듯 미소를 지었다.“내 말대로 해. 열흘 안에 강성 떠나서 다시는 돌아오지 마. 안 그러면 임유진이든, 임씨 집안이든, 강성 전체가 너란 인간이 얼마나 추잡한 놈인지 알게 될 거야.”“널 사회적으로 매장 시킬거고, 임유진도 널 경멸하
은정은 격노한 아버지를 똑바로 바라보며 또렷하게 말했다.“저는 그런 짓 하지 않았어요. 이건 서선영 저 사람이 꾸민 함정이에요.”서선영은 엉엉 울면서 외쳤다.“내가 내 딸을 희생시켜서 너한테 함정을 판다고? 구은정, 네가 나를 미워하는 건 알아.”“예전부터 나한테 편견이 있었지. 그래, 미우면 나한테 손찌검을 해. 왜 애먼 은서를 괴롭혀?!”“은서는 아직 시집도 안 갔어. 이제 어떻게 살라고 해? 이 소문이 밖에 나가면, 우리 집안은 완전히 끝장이야!”은정은 오직 구은태만 바라보며 물었다.“저를 믿으세요?”구은태는 아들의 눈을 바라보다가, 문득 다른 기억 하나가 떠오르며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그때 갑자기 은서가 벽을 향해 몸을 던지듯 달려갔다. 죽을 각오로 내달리는 눈빛이었다.“은서야! 안 돼, 은서야!”서선영이 급히 은서를 껴안고 붙잡았고, 울음이 멎지 않았다.“은서야, 제발 그런 짓 하지 마. 이건 네 잘못이 아니야!”“거기 누구 없어요! 얘 좀 붙잡아줘요!”서선영은 울먹이며 도우미들을 향해 소리쳤다. 몇 명의 도우미가 급히 달려와 은서를 붙들고 감싸 안았다.그중 평소 은서를 따르던 도우미가 조심스럽게 구은태 앞에 다가와 입을 열었다.“회장님, 사실은 전에도 도련님께서 밤에 아가씨 방문을 두드리는 걸 몇 번 본 적이 있었어요.”“하지만 도련님이 너무 무서워서, 보복당할까 봐 말씀 못 드렸어요. 제가 잘못했어요.”그 도우미는 흐느끼며 말을 잇지 못했다.“제가 좀 더 일찍 말씀드렸더라면, 이런 일은 없었을 텐데요!”은정은 도우미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기억이 떠올랐다. 예전에 애옹이가 은서에게 보내졌던 그날 밤, 은정은 술에 취해 돌아와 애옹이가 사라진 걸 알고 은서를 찾아갔다. 그때 이 도우미가 어두운 구석에서 숨어 지켜보고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구은태는 거기까지는 떠올리지 못했다.죽을힘을 다해 몸을 던지려던 은서, 그리고 도우미의 일방적인 증언이 더해지자, 구은태는 은정을 더 이상 믿지 않았다.다시 근처에 있던 물
[말 좀 해봐요.][삼촌?]서선영이 천천히 2층에서 걸어 내려오더니, 바닥에 떨어져 있던 휴대폰을 집어 장말숙 아주머니에게 건네며 눈짓을 보냈다. 이에 장말숙 아주머니는 눈치를 채고 전화를 받아 들고 말했다.“유진 씨죠? 저희 도련님이 술에 취하셨어요.”유진은 잠시 침묵하더니 말했다.[네, 신세 좀 질게요. 잘 부탁드려요.]“네!”장말숙 아주머니는 괜히 말을 더했다가 실수라도 할까 봐 다급하게 전화를 끊었다. 은정의 까만 눈동자가 서선영을 향해 있었지만, 그 시선은 이미 흐릿했다.서선영은 은정을 부축하듯 손을 내밀며, 자애로운 얼굴로 말했다.“은정아, 술 너무 많이 마셨잖아. 방으로 데려다줄게.”“으악!”날카로운 비명에 은정은 정신이 번쩍 들며 눈을 떴고, 날은 훤하게 밝아 있었다.옆에서는 구은서가 실크 잠옷 차림으로, 옷가지로 몸을 허둥지둥 가리고 있었고, 얼굴은 절망감에 젖은 눈물로 가득했다. 그녀는 분노로 떨리는 눈으로 은정을 노려보고 있었다.구서의 비명은 곧 서선영과 집 안 도우미들을 방으로 불러 모았다. 문이 열리고 방 안 풍경을 본 순간, 모두가 굳어버렸다.은정은 조금씩 의식을 되찾았고, 은서를 훑어보며 눈빛이 짙게 가라앉았다. 이불을 들추고 자신을 확인해 보니, 바지는 제대로 입고 있었지만 상의는 전혀 없었다.은정은 몸을 일으켜 세우려다 이마를 짚으며 침대 머리에 기대앉았다. 머리가 묵직하게 지끈거렸다.“엄마!”은서는 멘탈이 완전히 무너져 울부짖었다.“은서야!”서선영이 달려와 은서를 안고, 옷을 덮어주며 얼굴이 창백하게 질렸다.“도대체 이게 어떻게 된 일이니?”“몰라요!”구은서는 서선영 품에 얼굴을 묻은 채 오열했다.“밤에 오빠가 갑자기 방에 들어왔어요. 술에 취해서 저를 한 대 치더니 그다음은...”은서의 머리는 흐트러져 있었고, 드러난 어깨엔 붉은 자국이 가득했다. 누가 봐도 무슨 일이 있었는지 짐작할 수 있었다.“짐승 같은 놈!”서선영은 벼락을 맞은 듯 충격에 빠져 온몸을 떨며 은정을 향해 소리
우정숙은 이 모든 상황이 이해되지 않아 눈썹을 살짝 찌푸렸다. 예전에 은정은 분명히 임유진은 내 스타일 아니라며 선을 그은 적이 있는데, 왜 지금 와서 이렇게 적극적으로 쫓고 있는 걸까?“넌 어떻게 생각해?”우정숙이 묻자, 유진은 여전히 고개를 숙인 채 조용히 말했다.“조금 냉정해질 필요가 있을 것 같아서요. 그래서 돌아왔어요.”그 말투가 생각보다 무거워, 우정숙은 분위기를 일부러 누그러뜨리며 웃었다.“이미 거절했는데도 냉정해져야 해?”유진의 귀가 붉게 물들었다.“어쨌든, 엄마는 이 일. 할아버지, 할머니한테는 말하지 말아줘요. 그리고 삼촌한테도 되도록 비밀로 해주세요.”그 말에 우정숙은 딸의 속내를 단번에 알아차렸다.“갑자기 이렇게 서둘러 집에 돌아온 이유 혹시 일이 더 커질까 봐? 너희 할아버지가 구은정한테 가서 따질까 봐 걱정돼서 그런 거 아니야?”유진은 재빨리 대답했다.“누가 그 사람 걱정했대요? 밖에서 사는 게 질려서 온 거지, 그 사람이랑은 아무 상관 없어요.”하지만 우정숙의 따뜻하고 조용한 눈빛은 유진의 진심을 꿰뚫고 있었다. 우정숙은 다만 조용히 숨을 내쉬며, 더는 묻지 않았다.그날 밤, 구은정은 외부 일정으로 접대를 나갔고, 유진에게 메시지를 보냈다.[오늘 좀 늦을 것 같아. 집에 들어가면 애옹이 좀 봐줘.]유진은 곧바로 답장을 보냈다.[저도 집에 왔어요. 아주머님께 부탁하세요.]은정은 유진이 하루 정도 집에서 자려는 줄로만 알고, 별 의심 없이 답했다.[알겠어.]밤 10시.은정은 아직 접대 자리에서 술자리를 이어가고 있었다. 그때, 휴대폰에 구은태가 보낸 메시지가 하나 들어왔다.[은정아, 나 몸이 좀 안 좋다. 한번 집에 들러줄래?]은정은 미간을 찌푸렸다.[몸 안 좋으면 병원 가시죠.]그렇게 답장을 보냈지만, 더 이상의 응답은 없었다.술자리가 끝나고 나니 이미 자정 무렵이었다. 은정은 그래도 아버지를 확인하고자 구씨 저택으로 향했다. 집에 들어서자, 애옹이를 돌봐주던 장말숙 아주머니가 거실에서 그
정현준은 인상을 찌푸리며 말했다. “내가 지난번에 뭐라고 했죠? 임유진 건드리지 말랬잖아요. 왜 말을 안 들어요?”진소혜는 웃었다.“들었어요. 적이 내 사람이 될 수 없다면, 없애버리라는 그 말, 정말 감명 깊었거든요. 곧 임유진은 이 회사에서 쫓겨날 거예요.”현준은 진지하게 말했다.“그럼 단도직입적으로 말할게요. 임유진은 쫓겨나지 않아요. 사장님이 반드시 지킬 거니까요.”현준은 걱정 가득한 얼굴로 덧붙였다.“유진 씨, 그 정체가 간단하지 않아요. 사장님이 곤란한 일에 휘말릴 때마다 뒤에서 도와준 사람이 바로 그 애였다고요.”“이렇게 성급하게 나가면 결국 당하는 건 소헤 씨라고요.”소혜는 비웃으며 말했다.“그런 것도 그 얼굴 덕 아니었을까요? 임유진이 무슨 대단한 집안 출신이라도 돼요?”현준은 의미심장하게 말했다.“그 애, 성이 임이야.”소혜는 비웃었다.“강성에 임 씨 많은데요? 임씨라고 다 임씨 집안이예요?”“임유진이 정말 그 임씨 집안 사람이었으면, 이런 작은 곳에서 평사원으로 일할 일이 없죠.”강성에서도 가장 윗자리에 있는 집안, 그 임씨 집안 사람이라면 당연히 격이 달랐을 것이다.현준은 소혜를 바라보며, 무력한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소혜 씨, 소혜 씨는 너무 자만해요. 이제 막 졸업한 사람이잖아요. 세상이 어떤지 아직 몰라요.”“내가 경력은 부족하지만, 머리는 좋아요.”소혜는 코웃음을 치며 말했다.“내가 원하는 건, 어떻게든 손에 넣을 수 있어요.”현준은 더는 어떻게 설득해야 할지 막막했고, 소혜는 입꼬리를 올리며 말했다.“이번 달 말이면, 임유진은 이 회사에서 존재 자체가 사라질 거예요.”이메일은 해외 IP에서 발송된 것으로 확인되어, 추적이 쉽지 않았다. 하지만 루머는 벌써 영업팀까지 퍼진 상황이었다.한때 유진이 구씨 프로젝트를 따낸 걸 보고 감탄했던 동료들조차, 그녀가 정말 실력만으로 이룬 건지 의심하기 시작했다.너무 젊은 나이에, 임씨 그룹 같은 대형 고객을 설득하고, 이미 다른 부서에서 거의 성
서선영은 유혹적인 눈빛으로 남자를 바라보며, 거절하려는 듯하면서도 몸은 피하지 않았다.“안 돼. 나, 한 시간밖에 못 나와 있어.”“당신 보고 싶어서 미치는 줄 알았다니까.”최이석은 그렇게 말하면서 서선영의 치마 지퍼를 내렸다.“밖에 사람 세워놨어. 아무도 안 들어와.”...오전, 임유진은 구씨그룹과의 계약을 마무리했다. 오후에는 회사 고위층 회의에 참석했고, 회의가 끝나고 마케팅부로 돌아왔을 때쯤, 팀 동료들의 시선이 평소와 달랐다.유진이 고개를 돌려 쳐다보자, 모두는 급히 예의를 갖춘 표정으로 바뀌었다. 그리고 유진은 손에 든 자료를 들고 여진구를 찾아갔다.문을 열고 들어가니, 진구는 휴대폰을 들여다보고 있었고, 유진이 들어오자, 그는 무의식적으로 휴대폰을 내려놓았다.“무슨 일 있었어요?”유진이 맑은 목소리로 묻자, 진구는 곧바로 말을 돌렸다.“아니야. 너 손에 든 거, 청원안 자료야? 나 좀 볼게.”하지만 유진은 단호한 표정으로 말했다.“휴대폰, 보여줘요.”진구는 어쩔 수 없다는 듯 휴대폰 화면을 다시 켰다. 방금 보고 있던 건, 유진과 은정이 함께 있는 사진들이었다.둘이 식당에서 식사하는 모습, 그리고 둘이 함께 아파트 단지에 들어가는 장면. 얼마 전 중식당에서 있었던 그날이었다.진구는 얼굴을 굳히고 말했다.“누군가 이 사진들을 너희 팀 메일에 전체 전송했어. 내용은, 네가 구씨 프로젝트를 따낸 게 구은정과 부적절한 관계가 있어서라고.”유진은 이미 그 메일을 확인했었다. 메일에는 프로젝트 성공을 위해 구씨 그룹 사장을 유혹했다는 식의 악의적이고 천박한 문장들이 적혀 있었다.업계 풍기를 망친다는 말까지, 표현이 거칠고 추했다. 유진은 이를 꽉 물었지만, 곧 침착하게 물었다.“발신 IP 추적할 수 있어요?”진구가 답했다.“지금 IT팀에서 추적 중이야. 내부 직원일 수도 있고, 유지그룹 쪽의 보복일 가능성도 있어. 하지만 반드시 밝혀낼 거야.”“일단 외부로 확산은 안 됐고, 회사 내부 루머 수준이야. 이미 전체 공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