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이 마주치자, 한 사람은 앙큼하고 부드러워 보이고, 다른 한 사람은 놀라움과 충격으로 가득 차 있었다. 두 사람은 한동안 말없이 서로를 바라보았다. 서인이 임유진의 손을 아직 잡고 있음을 깨닫고, 곧장 손을 놓으며 물었다. “여긴 왜 왔어?”유진이 눈을 반짝이며 서인의 맞은편에 앉으며 말했다. “달을 보러 왔는데 우연히 여기서 만난 거죠. 이는 분명 우리를 이어주려는 하늘의 계시가 아닐까요?”하지만 서인은 유진을 진지하게 바라보며 말했다. “가족들과 함께 온 거면 얼른 돌아가.”“왜 자꾸 나를 쫓아내려고 하세요?” 유진이 살짝 투덜거리며 왼손 손목을 잡고 말했다. “왜 그렇게 세게 잡으셨어요? 봐요, 다 멍들었잖아요.”“한번 봐봐.”서인이 미간을 찌푸리며 말하자 유진은 서인의 곁에 자리를 잡고 손을 내밀며 말했다. “직접 봐요.”유진의 피부는 본래 하얗고 부드러웠는데, 서인의 힘으로 손목에 파란 멍이 선명하게 드러났다. 서인은 자신이 총에 맞아 어깨가 뚫린 적이 있어도 눈 하나 까딱하지 않았지만, 유진의 손목에 있는 멍에 심각하게 반응했다. “여기서 기다려.”바에 가서 멍을 없애주는 진통제가 있는지 물었다. 바 직원은 친절히 대응하여 고객 서비스 부문에 전화를 걸었고, 몇 분 안에 약이 도착했다. 그리고 서인은 감사의 말을 전한 뒤 약을 가지고 돌아왔다.유진은 서인을 계속 바라보았는데, 착한 아이처럼 얌전히 있었다. 그리고 서인이 앉자마자 곧바로 손목을 내밀며 약을 발라달라고 했다. 서인은 약병을 열고 면봉에 약을 묻혀 유진의 손목에 발랐는데 약 냄새가 코를 찔렀다.“이 약 냄새가 좋지 않지만 효과는 좋아. 잠깐만 참아.” 서인이 고개를 숙이고 조금 거칠면서도 진지하게 약을 발라주자 유진은 키득거리며 말했다.“괜찮아요, 그렇게 나쁘지 않아요!”서인이 눈을 들어 올리며 유진을 슬쩍 보며 말했다. “다음에는 내 뒤에서 이런 장난치지 마. 내가 힘이 세서 다칠 수 있어.”이에 유진이 장난스럽게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나를
“하지만 네가 나를 걱정할 필요가 없어, 우리가 낯선 사이라면, 난 너한테 짜증이 나고, 친한 사이라면 네 배려가 오히려 부담돼.”“더군다나 넌 소희의 대학교 동기이자 조카인데, 내가 함부로 너한테 못되게 굴 수도 없잖아. 이런 상황에 넌 내가 어떻게 하길 바라는데?”서인의 눈빛은 차가웠고, 말투는 가을의 바람처럼 쌀쌀했다.“그것도 아니면, 내 말의 뜻을 아직 이해하지 못한 건가? 우리는 서로 다른 세계의 사람들이야. 억지로 한데 어울려 봤자 의미 없어.”임유진의 눈에서 빛이 사라지며 서서히 눈물이 고였다. 속눈썹에 맺힌 눈물이 곧 떨어질 듯 맺혔다.“그럼 사장님은 평생 여자친구도 없이 결혼도 안 할 거예요? 나에게 한 번의 기회조차도 줄 수 없는 거예요?”“결혼은 생각해 본 적도 없어. 여자친구를 만나거나 결혼을 한다 해도, 그건 네가 아닐 거야, 알겠어?” 서인의 목소리는 무심하고 거칠어서 더욱 가혹했다.“정말 나에 대한 마음이 조금도 없는 거예요?”유진은 눈물을 참으며 서인을 똑바로 바라보려고 애썼다. 그러다 유진의 속눈썹이 미세하게 떨리더니 눈물이 뚝뚝 흘러내렸다. 곧이어 유진은 천천히 뒷걸음질 치며 믿을 수 없다는 듯, 슬픔으로 휩싸인 채 등을 돌렸다.유진의 뒷모습은 나무들과 화분의 그림자에 가려졌지만, 어렴풋이 유진의 어깨가 떨리는 것을 볼 수 있었다.서인은 가슴 한쪽이 불편해지는 것을 느꼈고, 담배를 찾으려 손을 뻗었다가 곁에 금연 표시를 보고 다시 담배를 집어넣었다. 그리고 이내 외투를 들고 밖으로 걸음을 옮겼다. 그리고는 방으로 돌아가지 않고 구은태에게 전화를 걸고는 그대로 차를 몰고 떠났다. 명절 밤이라 거리는 활기가 넘치고 불빛이 환했다. 검은색 지프차는 고독한 여행자처럼 사람들 사이를 빠르게 지나치며 사라졌다. 마치 세상의 번잡함은 서인과 아무런 상관도 없는 듯했다.돌아와 보니 이문이랑 다른 사람들이 바비큐 파티를 하고 있었는데 술을 마시며 활기차게 보내고 있었다.“형님, 돌아오셨어요? 고기가 딱 먹기 좋게 구워졌
“우리가 사귀기 시작한 지 거의 반년이 됐을 때, 나는 아껴 쓰고 심지어 담배도 끊으면서 돈을 모으고 있었어요.”“강성에서 집을 사서 그 사람이랑 결혼하며 살기 위해서였죠.”“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우리 공장 사장님의 아들이 외국에서 돌아와 제 전 여자친구에게 눈독을 들이기 시작했어요.”“그리고 결국엔 함정을 파서 절 공장에서 철재를 훔쳤다고 고소했고요.”“그날 밤 저는 전 여자친구와 함께 있었어요. 그 사람이 법정에 나와서 증언해 준다면 제 무죄를 증명할 수 있었을 텐데, 그러지 않았죠.”“그냥 자리에 앉아서 내가 누명을 쓴 걸 보면서도 가만히 아무 말도 하지 않은 거죠.”“결국 저는 3년 형을 선고받았고, 나온 후 가장 먼저 전 여자친구를 찾아갔는데 공장에서 나오는 모습을 봤어요.”“명품 옷을 입고 벤츠 차에 타는 걸 목격했죠.”“나중에 알게 된 건, 전 여자친구가 사장님 아들과 결혼해서 이미 회사의 영업 매니저가 됐다는 거였어요.”“그때 정말 미워서 복수할 기회를 찾고 싶었죠. 이 세상에는 인과응보란 게 없는 것 같았거든요.”“착하고 정직하게 살아도 나만 피해를 보고 감옥에 가고 전과자가 되어 집에도 못 가고 일자리도 찾을 수 없게 되죠.”“근데 그런 악행을 저지른 그들은 여전히 즐겁게 살고 있으니 말이니 인과응보라는 게 있을 리가 없죠.”이에 서인이 물었다.“그래서 결국 그 사람한테 복수했나?”오현빈은 맥주를 들이켜며 얼굴에 차가운 표정을 지으며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아니요, 그날 제 전 여자친구에게 갔을 때 칼을 들고 목에 겨눴어요. 그 사람은 눈물 콧물 흘리면서 애원했고요.”“그때에는 본인 어머니가 병들어 돈이 필요했고, 사장님 아들이 나를 위해 증언하지 않으면 병원비를 준다고 했다고 했으니까.”“그 후 나는 감옥에 가고, 전 여자친구는 사장님 아들의 구애를 뿌리치지 못하고 결국 그 사람이랑 결혼까지 하게 된 거고요.”“제 여자친구는 울면서 저에게 말했어요. 본인이 사랑한 사람은 나였지만, 우리는 너무 가난했고,
오현빈이 말했다. 진심으로 좋아하는 사람을 만나는 건 하늘의 선물이라고. 하지만 떄로는 인연을 잘못 이어주는 실수도 있다고, 예를 들면 자신과 임유진 사이처럼.유진은 젊고 집안의 보호를 잘 받으면서 세상 물정을 몰랐다. 그렇기에 잠시의 새로움을 사랑으로 착각하기 쉬웠고, 한눈에 반해 마음을 빼앗길 수 있었다.하지만 자신은 달랐고 유진에게 이런 식으로 접근해서는 안 되었다. 그렇지 얂으면 나중에 소희에게 뭐라고 설명할 길이 없으니까!서인은 휴대폰을 내려놓고 담배를 하나 피웠다. 담배 연기가 폐 속으로 들어가면서 서인의 불안한 감정을 진정시켰다....운성.도시의 화려한 불빛이 없는 산속에서 보는 달은 더욱 밝게 보인다. 산과 나무 사이에 매달린 둥근 달빛이 부드럽게 내리쬐며, 온 정원을 은빛으로 가득 채웠다. 어제 오석이 미리 정원에 장식용 조명을 걸어 놓았는데 밤이 되어 불이 켜지자, 명절의 분위기가 물씬 풍겼다. 테이블 위에는 각종 과일과 간식이 가득 차려져 있었다. 임구택은 강재석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으며, 소희와 우청아는 복도에서 수다를 떨고 있었다. 그리고 요요는 정원을 뛰어다니며 상큼한 웃음소리로 모두의 마음을 훈훈하게 만들었다.오석이 주방에서 전통주와 함께 다양한 맛의 전을 준비했는데 전통주와 전의 조화는 이루 말할 것 없이 완벽했다.강재석과 구택은 수다를 떨고, 요요는 땅에서 메뚜기를 잡아 강재석에게 보여주며, 검고 살찐 나비를 찾았다고 했다.이때 구택의 휴대폰이 진동했는데 조백림이 건 영상 통화였다.통화를 하자, 백림은 케이슬의 독방에서 술기운이 올라온 얼굴로 입을 열었다.“구택이형, 오늘 밤 같이 술 마실래요?”그러자 구택이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안 돼, 나 지금 운성에 있어.”“운성이라고요?” 백림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맞다, 몇 년 동안 추석은 항상 운성에서 보냈죠 형은.”아이의 웃음소리가 들리자 백림은 웃으며 물었다.“이게 요요 소리 같은데?”백림의 말이 끝나자 바로 뒤에 앉아 휴대폰을 보던 장시
장시원은 피식 웃으며 말했다.“그러면 잘 놀아. 저녁에 함부로 돌아다니지 말고, 넘어지지 않게 조심해!”“알았어요!” 요요가 환하게 웃으며 반짝이는 하얀 이를 드러냈다.그리고 요요는 또 무슨 재미있는 벌레를 발견했는지 금세 달려갔고, 시원은 멀리 있는 요요의 모습을 바라보다가 임구택에게 말했다.“할아버지한테 안부 좀 전해줘!”“응!” 구택은 무덤덤하게 대답했다“요요 보고 싶으면 언제든 연락해. 사진 찍어서 보내줄 테니까.”구택의 말에 시원은 입꼬리를 띄우며 무심한 미소를 지었다.“괜찮아.”이에 구택은 눈빛이 깊어지며 말했다.“그럼 이만 끊는다!”“그래!”휴대폰을 놓은 구택은 눈썹을 찌푸렸다. 시원이 이번에는 정말 마음을 쓴 것 같은데, 청아가 또다시 고집을 부리고 있다.소희가 시원에게 요요의 출생 비밀을 말하지 말라고 했지만, 구택은 어떻게 해야 간접적으로 시원이 알 수 있게 해야 할지 궁리를 해야 했다....밤이 깊어지자 청아는 요요를 안고 방으로 자러 갔고, 소희도 강재석을 방으로 모셨다.“오빠는 언제 돌아온다고 했어요?” 소희가 물었다.“몰라, 명절에도 연락이 안 돼. 네가 알아보려고 했는데, 혹시 전화 왔어?” 강재석이 질문에 소희는 고개를 저었다.“저도 거의 한 달 동안 오빠 소식을 못 들었어요.”이에 강재석은 못마땅한지 투덜댔다.“걔 얘기는 하지 마, 이름만 나와도 화가 나니까!”하지만 소희는 강시언을 변호하며 말했다.“오빠는 분명 임무를 수행하느라 집에 연락이 어려운 거예요.”“걔가 목숨을 걸고 일하는 한, 집에 돌아오지 않을 거야. 언젠가 누군가가 그의 유골함을 가져다주면, 마음이라도 놓게 되겠지.”강재석이 비웃듯 말하자 소희는 미간을 좁혔다.“그럴 리가 없어요. 오빠는 언젠가 무사히 돌아와 할아버지 곁을 지킬 거예요!”“그날이 올지말지 내가 어떻게 알겠니?“그런 재수 없는 얘기는 하지 마세요.”소희가 입술을 깨물며 말하자 강재석이 소희를 진지하게 보더니 급히 손을 툭툭 치며 웃었다.“농담
임구택이 눈썹을 치켜올리며 말했다.“넌 당시 진언이 일부러 죽음을 가장해 조직에서 탈출하도록 계획했다고 의심하는 거야?”“아니!” 소희는 확신에 찬 목소리로 말했다. “오빠는 그럴 리 없어. 임무 정보가 유출되었고, 백양들이 위험에 처할 것을 알면서도 그들을 위험으로 몰아넣을 리 없어!소희는 오빠가 그럴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믿었으나 구택이 소희의 손을 꽉 잡으며 말했다.“이미 몇 년이 지났어, 더 이상 생각하지 마.”소희는 고개를 끄덕이며 걸음을 계속했다. 구택의 말이 맞았다. 오래전 일을 추궁하는 것은 이제 의미가 없었다. 소희가 지금 고민해야 할 것은 오빠가 어떻게 집으로 돌아올 수 있을지였다.다음 날, 소희 일행은 운성에서 하루를 더 보냈다.강재석은 요요와 함께 산에 올라 야생 과일을 따고 밤을 캐고 호두나무에 올라가 호두를 따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돌아온 후, 오석이 요요에게 밤을 까는 법을 가르쳤다.저녁에는 그들이 가져온 밤으로 밤 케이크 등을 만들어 즐겁고 알찬 하루를 보냈다.다음 날 아침, 일행은 운성을 떠났는데 강재석과 요요가 가장 아쉬워했다. 강재석은 청아에게 시간이 나면 소희와 함께 다시 집에 오라고 당부했고 청아는 강재석의 따뜻한 환대에 감사하며, 꼭 다시 요요와 함께 찾아뵙겠다고 약속했다.모두 차에 올라 멀어지자 소희는 강재석이 아직도 문 앞에 서 있는 것을 보고 웃으며 말했다.“역시 우리 요요가 인기가 있어. 평소에 나 출근할 때 할아버지가 절대 이렇게 배웅해 주신 적 없었거든.”이에 청아가 웃으며 말했다.“할아버지 정말 좋으신 분이야. 기회가 되면 또 올게.”그러자 소희가 눈썹을 추켜세우며 말했다.“다음에 혼자 돌아왔는데 요요를 데리고 오지 않으면, 할아버지가 날 쫓아내실 거야.”소희의 말에 차 안의 모두가 함께 웃었다.…강성으로 돌아온 다음 날, 소희는 드라마 세트장으로 출근했고, 청아도 새로운 일자리 면접을 보러 갔다.저녁에 돌아온 후, 청아는 맛있는 저녁을 차려 소희에게 자신이 면접에
금요일 밤, 우청아가 새로운 일자리를 찾은 것을 축하하기 위해 성연희가 넘버 나인에서 저녁 식사를 대접했다. 소희는 먼저 집에 돌아가 요요를 데리고 왔고, 청아는 퇴근 후 바로 거기로 가기로 했다.추석이 지나 날은 일찍 어두워졌다. 그리고 소희가 요요를 안고 넘버 나인에 도착했을 때, 이미 화려한 조명이 켜져 있었고, 호텔 전체가 반짝거렸다. 로비를 지나갈 때, 많은 젊은이들이 서 있었는데, 모두 패셔너블하거나 독특한 옷차림을 하고 있어 학생들처럼 보였다. 이들이 지나갈 때, 갑자기 누군가가 소리치자 순식간에 조용해졌다.“다들 조용히 해, 선유 누나가 전화 중이야!”이에 소희가 뒤돌아보니 정말로 이선유였다. 선유는 프론트 데스크에서 전화를 하고 있었고, 목소리는 사랑스러웠다.“노명성 오빠, 저희들이 넘버 나인에 놀러 왔는데, 사람이 많아서 오빠 프라이빗 룸을 빌리고 싶어요.”“근데 프론트 데스크 직원이 안 된다고 해서 저 대신 얘기 잘 해주실 수 있어요?” 이들은 모두 선유를 중심으로 모여 있었고, 선유가 말할 때 모두가 조용히 기다렸다.이윽고 선유가 프론트 데스크에 전화를 건네주자, 명성이 뭐라고 했는지, 직원은 곧바로 태도가 돌변하여 대답했다.“알겠습니다, 노명성 사장님, 분부대로 하겠습니다!”전화를 끊은 후, 프론트 데스크 직원은 웃으며 말했다.“이선유님, 노명성 사장님이 프라이빗 룸을 사용하시도록 허락하셨습니다.”그러자 이선유는 프론트 데스크를 차갑게 쳐다보며 말했다.“말했지? 나 노명성 사장이랑 친하다고. 다음부터 나를 막으면 바로 컴플레인 들어 갈 줄 알아.”협박 아닌 협박을 하는 선유에 프론트 데스크 직원의 얼굴이 살짝 창백해지며 말을 잇지 못했다.그리고 선유는 일행을 이끌고 엘리베이터로 향했고, 일행이 몰리자 소희를 옆으로 밀쳐냈다. 또한 선유 옆에 있는 여학생이 선유에게 아부를 하듯 입을 열었다.“선유야, 너 진짜 대단하다. 전화 한 통으로 문제를 직방으로 해결하다니!”“오빠의 프라이빗 룸을 잠시 사용하는 것뿐이야
소희가 눈썹을 치켜올리며 묻자 성연희는 도리머리를 치며 말했다.“널 몰래 찍던 사람이 다시 나타났어?”“아니, 최근에 특히 조심했는데, 의심스러운 사람은 없었어!”“발각됐으니까 더 조심할 거야. 하지만 목적을 달성하지 못했다면 다시 나타날 거고.”“난 조심할 거야!” 연희가 밝은 웃음을 지으며, 이 일을 그리 심각하게 여기지 않는 듯했다. 하지만 소희의 눈에는 걱정이 가득했다.“노명성이 너와의 약속을 취소하고 이선유와 함께 시험 촬영을 간 건 어떻게 된 거야?”그러자 연희가 눈썹을 치켜올리며 물었다.“그걸 어떻게 알았어?”“들었어.”“그렇게 과장된 건 아니야. 그날 내가 명성과 새로 오픈한 프렌치 식당에서 식사하기로 했었어.”“근데 선유의 아버지가 명성에게 전화해서, 딸이 여주인공 역할을 맡게 됐는데 시험 촬영을 가야 한다고 한거지.”“그리고 자신은 못 미덥지만 경성에 올 수 없으니, 선유랑 함께 가서 딸이 속임수에 빠지지 않도록 봐달라고 부탁한 거야.”이에 소희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네가 알고 있으면 돼.”“걱정하지 마, 내가 명성과의 관계에 문제가 있다고 해도 그건 선유 때문이 아닐 거야.” 연희의 눈빛에는 결연함이 어려있었지만 소희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문제가 이미 생겼다면, 선유의 개입은 너희 문제를 확대시킬 거야. 결국 어떤 결과가 될지 아무도 예측할 수 없으니, 싹을 잘라버려.”“알아, 우리 사이에 걔가 들어올 틈? 여지? 절대 없을 거야.”“연희 누나!” 김영이 연희를 불렀다.“청아 씨가 왔어!”소희가 고개를 돌리자 청아가 방금 들어온 것을 보았고 연희는 소희의 어깨를 두드리며 말했다.“청아가 장시원과 이제 막 헤어져서 입으로는 말 안 해도 마음속으로는 분명히 힘들 거야. 오늘은 좀 즐겁게 해주자.”“응!” 소희가 고개를 살짝 끄덕였고 연희는 환하게 웃으며 옆에 놓인 꽃다발을 집어 들고 청아에게 다가갔다.…그다음 주말, 소희와 임구택은 청원에서 이틀을 보냈다. 청원에 올 때마다, 두 사람은
두 사람은 빠른 걸음으로 로비를 가로질러 사무실로 향했다. 문을 열고 들어서자, 그 안에는 마심호뿐만 아니라 서인과 이한우도 있었다.오석준이 나타나자마자, 한우가 벌떡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의 얼굴에는 분노가 가득 차 있었다. 그는 성큼 다가가 오석준의 옷깃을 거칠게 잡아챘다.“오석준 사장님, 감히 날 가지고 놀아요?”오석준은 서인과 한우를 보자마자 상황을 눈치챘다. 하지만 정작 그가 두려워하는 사람은 둘이 아니라, 마심호였다.오석준은 재빨리 이한우의 손을 뿌리치고 옷깃을 정리하더니, 곧장 마심호에게 다가가 얼굴 가득 아부하는 미소를 지었다.“마심호 사장님, 저는 오석준이라고 해요. 호텔의 모든 건설 프로젝트를 담당하고 있죠.”“이번에 몇몇 민박이 우리가 계획한 골프장 부지에 포함되어 있어서, 보상금을 주고 이주하도록 했죠.”“그런데 이 두 사람이 그중 한 가족을 대신해 저를 찾아와서 뇌물을 주려 했어요. 그 집을 철거하지 말아 달라고 하더군요.”“제가 거절했더니, 이렇게 와서 소란을 피우는 거예요!”그러자 한우가 격분하여 소리쳤다.“헛소리하지 마세요! 본인이 분명 동의해 놓고, 나중에 말을 바꿨잖아요! 이제 와서 우리한테 누명을 씌우겠다고요?”하지만 오석준은 오직 마심호만 바라보며 말했다.“마심호 사장님, 저는 오로지 우리 호텔을 위해 일했을 뿐이에요. 호텔과 그룹을 배신하는 행동은 단 한 번도 한 적이 없어요!”마심호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오석준 사장, 누가 당신한테 뇌물을 줬다는 거죠?”그러자 오석준은 곧장 서인을 가리켰다.“바로 이 사람이요! 그날 저를 초대해 밥을 사더니, 돈을 주려고 했어요. 하지만 저는 받지 않았죠. 제 비서가 그 증인이에요!”그 순간, 서인 옆에 앉아 있던 유진이 피식 웃음을 터뜨렸고, 마심호의 얼굴에 복잡한 표정이 스쳤다.“당신 말은, 서인 씨가 당신에게 뇌물을 줬다고요?”오석준은 확신에 찬 듯 말했다.“네, 맞아요!”마심호가 다시 물었다.“그럼, 당신이 말하는 서인 씨가 누구인지 알고
사람들이 끌려가고, 바닥에는 피가 얼룩진 채 남아 있어 보는 이로 하여금 경악을 금치 못하게 했다.도로가 깨끗이 정리되자, 두 사람은 차를 길가로 옮겨 도로를 비워주었다. 서인은 차를 출발시켜, 굉음을 내며 달려 나갔다.임유진의 얼굴은 창백해져 있었고,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서인은 그녀를 한 번 쳐다보더니, 몇 분 후 차를 길가에 세웠다. 서인은 휴지를 꺼내 몸을 기울여 유진의 옆얼굴과 머리카락에 묻은 핏자국을 닦아주며 담담하게 말했다.“놀랐어?”서인의 눈빛은 깊고 어두웠다.“이제야 깨달았겠지? 나 같은 사람은 좋아할 만한 가치가 없어. 멀리하는 게 가장 현명한 선택이야.”유진은 서인을 바라보며 천천히 그의 손을 잡았다.“예전에도 이렇게 살아왔어요?”서인의 손등 위로 유진의 따뜻하고 부드러운 손길이 닿았다. 그러자 서인 심장이 미묘하게 흔들렸지만, 얼굴은 여전히 냉담했다.“그래.”유진은 서인을 깊이 바라보며 단호하게 말했다.“이제 사장님이 싸울 수 있는 걸 존경하지 않을래요. 대신, 네가 이런 생활에서 벗어나 평범하고 안전하게 살길 바랄 거예요.”오늘 유진은 분명 충격을 받았다. 저 칼은 진짜였고, 사람을 향해 휘두르면 살점이 찢기고 피가 튀었다. 저 무거운 곤봉이 내려치면 뼈가 부러질 정도의 위력이었다.서인은 강했다. 하지만 결국 서인도 피와 살로 이루어진 사람이었다. 만약, 혹시라도 다친다면...서인은 유진을 바라보았고, 두 사람의 시선이 가까이에서 맞닿았다.“어떤 일들은 피할 수 없어.”유진은 즉시 말했다.“그러면 앞으로 내가 항상 따라다닐 거예요. 사장님이 싸우면 나도 따라갈 거예요.”서인은 미소를 지으며 물었다.“안 무섭다고?”유진의 눈빛이 깊어졌다.“사장님이 보이지 않는 게 더 무서워요.”서인은 갑자기 손을 내리며 비웃듯 말했다.“구제 불능이군.”유진은 즉시 반박했다.“누가 그래요? 사장님은 내 치료약이예요.”서인은 유진을 힐끗 쳐다보았다. 그녀의 집요함에 어쩔 수 없다는 듯, 액셀을 밟아 차를 빠르게
두 사람이 앞으로 나아가자, 맞은편 무리에서 한 남자가 걸어 나왔다. 그의 얼굴에는 음침한 웃음이 서려 있었다.“지금 당장 흥성을 떠나. 그렇지 않으면 오늘 여기서 죽게 될 거야. 네가 죽으면 네 여자친구는 더 비참한 꼴을 당할 거고. 선택해 봐!”곁에 있던 또 다른 남자가 느끼한 목소리로 거들었다.“고작 안토니 가족 일에 네 목숨을 걸겠다고? 이렇게 예쁜 여자를 두고? 어이 형씨, 다시 한번 생각해 봐.”한쪽 팔에 기린 문신이 새겨진 사내가 비웃으며 말했다.“주제도 모르고 까불긴.”남자의 조롱에 주변에 있던 사람들이 폭소를 터뜨렸다. 그러나 서인은 검은 옷을 입은 채, 강렬한 햇빛 아래에서도서인의 분위기는 얼음장처럼 차가웠다.“안토니 가족 일, 내가 끝까지 책임질 거야.”“이 새끼가 죽고 싶나 보네!”기린 문신의 사내가 침을 뱉으며, 손에 들고 있던 긴 몽둥이를 휘둘러 서인을 향해 강하게 내리쳤다.그러나 서인은 남자가 몽둥이를 휘두르기도 전에 순식간에 몸을 날렸다. 단숨에 앞으로 돌진한 그는 강하게 발차기를 날려 그 사내의 얼굴을 정통으로 가격했다.퍽! 문신남은 피를 뿜으며 나가떨어졌다. 땅에 쓰러진 그의 입에서 부러진 이빨이 튀어나오자, 주변의 남자들은 순간 굳어버렸다.그 순간 공기가 얼어붙었고, 산속을 스치는 바람마저도 싸늘하게 불어닥쳤다. 그러나 침묵은 오래가지 않았다.몇 초 후, 무리가 일제히 달려들었고, 길고 날카로운 칼과 몽둥이를 든 열 명이 넘는 사내들이 맹렬한 기세로 서인을 향해 돌진했다.유진은 본능적으로 숨을 멈췄지만, 뒤로 물러나지 않았다.“사장님!”유진은 잔뜩 긴장했지만, 차마 서인을 혼자 두고 도망칠 수 없었다.서인은 냉정하게 움직였다. 달려오는 자의 가슴을 강하게 걷어차 쓰러뜨린 후, 그가 떨어뜨린 칼을 순식간에 집어 들었다.그러고는 재빠르게 몸을 틀어 왼쪽에서 달려드는 또 다른 적의 허벅지에 칼을 박아 넣었다.“윽!”피가 솟구쳤고, 그 남자는 비명을 지르며 쓰러졌다. 그러나 뒤쪽에서 또 다른 남자
윤석경은 눈가가 붉어졌지만, 환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너무 힘들어하지 마. 정말 안 되면 그냥 철거해도 괜찮아. 어차피 아들이 매달 돈을 보내주니 굶어 죽을 일은 없으니까.”서인은 잠시 윤석경을 바라보다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임유진과 함께 자리를 떠났다.차가 산길로 접어들자, 유진은 여전히 분을 삭이지 못한 채 씩씩댔다.“그 안주설, 정말 능청스럽게 변명하더라고요. 증거가 다 나왔는데도 저렇게 뻔뻔하게 나오다니!”“누가 들어도 우리가 철거를 막는 게 못마땅했던 게 분명한데, 뒤에서 조종한 거 아니에요?”서인은 앞을 주시하며 담담하게 말했다.“너도 거짓말을 했잖아. 그러니 사람들이 네 말을 전적으로 믿겠어?”“내가 언제 거짓말을 했다고 그래?”유진은 커다란 눈을 동그랗게 뜨고 서인을 바라보자, 서인은 유진을 힐끗 보며 말했다.“네가 월세로 산다고 했잖아. 그리고 나랑 결혼해도 계속 월세로 살 거라고?”유진은 순간 멍해졌다가, 이내 얼굴이 빨개졌다. 입술을 꼭 다문 채 잠시 생각하더니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만약 우리가 결혼한다면, 월세 살아도 괜찮아요.”서인은 코웃음을 쳤다.“너 좀 철들었다고 생각했는데, 여전히 철없네.”유진은 억울한 표정으로 눈썹을 치켜올렸다.“왜요?”서인은 무심하게 말했다.“넌 돈이 없는 생활을 해 본 적 있어? 돈이 없을 때 어떤 기분인지 알아?”유진은 서인의 눈을 가만히 바라보고는 조용히 말했다.“내 이름으로 된 집이 여러 채 있어요. 결혼하든 안 하든 그건 변하지 않고요. 사장님이 월세 살고 싶다면 나도 그렇게 할게요.”“사장님이 원치 않는다면, 그냥 내 집에서 살면 돼요.”서인은 순간 할 말을 잃었고, 유진은 기다렸다는 듯 다시 물었다.“그래서, 월세 살 거예요? 아니면 내 집에서 살 거예요?”서인은 그제야 정신을 차린 듯 반문했다.“누가 너랑 결혼한대?”유진은 장난스럽게 피식 웃더니, 창밖을 바라보며 한껏 우쭐해했다.그때, 도로 한가운데 두
방 안이 삽시간에 조용해졌고, 서인도 고개를 들어 임유진을 바라보았다. 유진은 눈처럼 맑고 투명한 얼굴로 휴대전화를 꺼내 녹음 파일을 찾아 재생했다.녹음 속에서는 두 사람의 대화가 선명하게 들려왔다. 처음에는 안주설의 목소리가 먼저 나왔다.“쥐구멍이 없어도 쥐는 나타나요. 쥐는 정말 어디든 들어올 수 있어요. 창문으로 기어들었을 수도 있고요.”“난 쥐가 제일 무서워요. 전에 내가 살던 원룸에도 한 번 쥐가 나온 적이 있었는데, 어디서 들어온 건지 도통 모르겠더라고요.”“강성에서 월세 살고 있나 봐요?”“음, 그렇죠!”...녹음이 계속 이어지다, 주설의 목소리가 확연히 낮아졌다.“유진 씨랑 서인 사장님, 토니네 일에서 손 떼면 안 될까요?”유진이 놀란 목소리로 물었다.“뭐요?”“내가 400만 원 줄게요. 그러니까 서인 사장님 설득해서 여기서 떠나게 해 줘요.제발, 네?”“왜 그래요? 무슨 일인데요?”“묻지 말고, 그냥 네가 서 사장님을 설득해서 돌아가게 해 줘요. 우린 모두 토니 가족을 위하는 마음이 같잖아요. 그러니까 제발, 그냥 손 떼고 돌아가 줘요.”...유진의 목소리가 차가워졌다.“설마 주설 씨였어요?”“뭐가요?”“주설 씨, 이 민박집이 철거되길 바라고 있네요. 보상금 받아서 해성에 집 사려는 거죠?”“그게 유진 씨랑 무슨 상관이죠? 왜 우리 집 문제에 왜 당신이 끼어드는데요? 지나치게 참견하는 거 아닌가요?”“보상금 받아서 집 사면, 토니 씨 부모님은 어떻게 하라고요? 여기가 토니 씨 부모님들이 가진 전부예요.”“집이 무너지면, 부모님을 해성으로 모셔 갈 거예요?”“당신이 상관할 일 아니잖아요! 본인이 집 못 사니까 우리도 못 사야 한다고 생각하는 거예요? 질투하는 거죠? 솔직히?”녹음은 거기서 끝났다. 유진은 녹음이 끝난 휴대전화를 내려놓고, 충격에 빠진 주설을 바라보며 싸늘하게 웃었다.“누가 이 집을 철거시키려 했는지, 누가 보상금을 노렸는지, 누가 우리를 여기서 쫓아내려 했는지 이제 다들 알겠죠?”모든
윤석경은 손에 청경채를 들고 뛰어나오며 소리쳤다.“박민란 씨! 또 무슨 일이죠?”박민란은 서인과 임유진을 발견하자 더욱 흥분한 얼굴로 외쳤다.“당신들 가족 전부 나오라고 해요! 안토니도 불러요! 오늘은 꼭 이 비열한 배신자를 색출해야겠어요!”그 말에 윤석경은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배신자라니, 무슨 소리예요?”곧 가족들이 모두 1층 거실에 모였다. 그리고 박민란은 휴대전화를 꺼내 사진을 테이블 위에 올려놓았다.“자, 직접 보세요!”유진의 시선이 사진에 닿자마자 눈이 커졌다. 사진 속에는 서인과 유진이 있었다. 일요일, 호텔에서 네 사람이 함께 식사할 때 찍힌 사진이었다. 사진 속에서 오석준이 서인에게 차 한 상자를 건네는 장면이 담겨 있었다.이에 박민란은 더욱 목소리를 높였다.“자, 똑똑히 보세요! 다들 잘 보라고요!”본래도 목소리가 컸던 그녀는, 화까지 난 상태라 더욱 격렬하게 소리를 질렀다. 거기다 입을 열 때마다 침까지 튀었다. “이 두 사람이 호텔 측 사람들에게 돈을 받고, 당신네 집을 팔아넘겼어요! 그런데도 당신들은 이들을 손님처럼 대접하고 있다니, 제정신이에요?”토니 가족은 사진을 보며 놀란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 토니도 호텔에서 공사 담당자를 찾아갔던 적이 있었기에, 사진 속 인물을 바로 알아보았다.유진은 억울하고 화가 치밀었고, 바로 박민란을 향해 따져 물었다.“이 사진 어디서 난 거죠? 누가 보낸 거예요?”박민란은 비웃으며 말했다.“그건 당신이랑 상관없어요! 아무튼 당신들 얼른 떠나요! 우리 일에 끼어들지 말고요!”토니 가족들은 사진을 들고 자세히 들여다보았고, 유진은 단호하게 설명했다.“사장님이 친구를 통해 호텔 공사 담당자를 만났고, 그 사람이 여기를 철거하지 않기로 약속했어요.”“그날 저녁에 그 사람과 식사한 것도 그 자리에서 설명해 드렸잖아요? 그리고 저 가방 안에는 차가 들어 있어요.”“지금도 차 안에 있으니까 가져와서 보여드릴게요!”토니는 사진을 테이블 위에 내려놓으며 진지하게 말했다.“
방으로 들어가 문을 닫자, 임유진은 주변을 살피며 혹시라도 쥐구멍이 있는지 찾기 시작했고, 안주설은 창가에 기대어 웃으며 말했다.“쥐구멍이 없어도 쥐는 나타날 거예요. 쥐는 정말 어디든 들어올 수 있거든요. 창문을 통해서 들어왔을 수도 있어요.”그러자 유진은 실망한 표정을 지었다.“난 쥐가 제일 무서워요. 전에 내가 살던 원룸에도 한 번 쥐가 나온 적이 있었는데, 어디서 들어온 건지 도통 모르겠더라고요.”주설의 눈빛이 미묘하게 흔들렸다.“강성에서 월세로 살고 있나 봐요?”유진은 고개를 끄덕였다.“음, 그렇죠!”주설은 조심스레 떠보듯 물었다.“그러면 나중에 사장님이랑 결혼하면 집을 살 테니까 더 이상 월세 살 일은 없겠네요? 사장님은 꽤 돈이 많아 보이던데요.”유진은 한숨을 쉬었다.“사장님이요? 무슨 돈이 많아요? 차 한 대 그나마 좀 값나가는 거지, 그거 팔아도 강성에서 집 사긴 어림도 없어요. 강성 집값 엄청 비싸요.”주설은 피식 웃으며 말했다.“전 집 없이는 절대 결혼 안 할 거예요. 자기 집이 있어야 마음 편하잖아요.”“저도 그렇게 생각해요!”유진은 적극적으로 동의하며 물었다.“두 사람은 언제 결혼할 거예요?”그러자 주설은 살짝 미소 지으며 말했다.“연말쯤이요. 우리 둘 다 직장도 안정적이고, 하반기부터 결혼 준비를 시작하려고 해요.”“그럼 집은 샀어요?”유진은 궁금한 눈빛으로 묻자 주설은 어색하게 웃으며 답했다.“거의 다 됐어요. 지금 집을 알아보는 중이에요.”“좋겠네요! 해성 집값도 강성이랑 비슷하게 비싸던데, 정말 대단하네요. 나랑 사장님은 언제쯤 자기 집을 가질 수 있으려나?”유진이 부러워하는 듯한 말투를 쓰자, 주설의 얼굴에는 은근한 우월감이 스쳤다.“열심히 일하면 언젠간 생길 거예요!”유진은 어깨를 으쓱하며 툴툴거렸다.“월급 모아서 집 사려면 늙어야 가능할걸요? 하늘에서 갑자기 돈 보따리라도 떨어지면 좋겠네요!”주설은 그녀의 말을 듣고 눈빛이 스치듯 어두워졌고 살짝 목소리를 낮추며 말했다.“유진
점심시간이 가까워지자, 안토니의 부모님은 점심을 준비하러 갔고, 안주설은 안토니를 방으로 끌고 가서 상처에 약을 발라주었다.임유진은 서인을 향해 눈짓을 보냈다. 두 사람은 밖으로 나와 조용히 이야기를 나누었다. 마당에 나서자, 유진이 생각에 잠긴 듯 말을 꺼냈다.“내 생각엔, 토니 가족 중에 뭔가 이상한 사람이 있어요.”서인은 눈을 살짝 들며 유진을 바라보았다.“무슨 뜻이지?”유진은 목소리를 낮추며 말했다.“어제 우리가 떠날 때, 토니가 우리한테 언제 돌아가냐고 물었잖아요? 그때 사장님이 바로 강성으로 간다고 했죠.”그러나 돌아가는 과정에 산길에 교통사고가 발생해 도로가 막히는 바람에, 한 시간 정도 지체되었고 시내에 도착했을 땐 이미 밤이 되어 떠나지 못했다.“하지만 토니 가족은 우리가 이미 떠난 줄 알았겠죠.”서인은 눈을 가늘게 뜨며 중얼거렸다.“우리가 떠난 줄 알고 철거팀이 몰래 들이닥친 거라는 거군.”유진은 입술을 살짝 깨물며 고개를 끄덕였다.“너무 우연의 일치라고 하기엔 미심쩍잖아요.”서인은 미간을 좁히며 말했다.“토니일 리는 없어.”며칠간 함께 지내며 그를 지켜본 결과, 토니는 형과 마찬가지로 솔직하고 올곧은 성격이었다.무엇보다 부모님께 극진한 효심을 가지고 있었기에, 겉으로만 도와주는 척하면서 뒤로는 배신하는 짓을 할 리가 없었다.유진은 눈을 반짝이며 장난스럽게 물었다.“오늘 우리 여기서 자는 거죠?”서인은 고개를 끄덕였다.“그래야 할 것 같아.”지금 상황으로 보면, 철거팀은 무슨 짓이든 할 가능성이 컸다. 만약 토니 가족 중 누군가가 정보를 흘린 거라면, 오늘 밤 서인과 유진이 없는 틈을 타 다시 올지도 모른다.그러자 유진은 싱긋 웃으며 말했다.“그럼 난 2층에 올라가서 전에 묵었던 방에 아직도 쥐가 있는지 봐야겠어요.”서인은 눈썹을 살짝 올렸고, 유진은 장난기 가득한 미소를 지으며 돌아섰다.2층으로 올라가려던 찰나에, 유진의 휴대전화가 울렸다. 화면을 보니 임구택이었다. 유진은 전화를 받자마자 들려오
안토니의 다급한 목소리가 전화기 너머로 들려왔다.[서인 형! 호텔 철거팀이 또 왔어요! 이번엔 포크레인까지 끌고 와서 우리 집을 당장 부수겠다고 해요!][이게 대체 어떻게 된 거죠? 분명 철거하지 않기로 합의한 거 아니었어요? 우린 어떤 계약서에도 서명한 적 없고, 동의한 적도 없는데 왜 갑자기 이렇게 나오는 거죠?]서인의 얼굴이 굳어졌고, 눈빛은 차갑게 변했다.“지금 바로 갈 테니까 철거 인부들을 최대한 막아봐. 하지만 네 안전이 최우선이야. 가족들도 꼭 보호해야 해!”[네!]토니는 급히 대답했다.[일단 어떻게든 붙잡아 볼게요!]“반드시 조심해!”전화를 끊고 나서야 임유진이 놀란 얼굴로 물었다.“무슨 일이에요?”서인은 간략하게 상황을 설명하자, 유진은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어제 확실히 협의 끝난 거 아니었어요? 혹시 아래 직원들이 전달을 못 받은 거 아닐까요?”서인은 차 시동을 걸면서 오석준에게 전화를 걸었으나, 그러나 신호가 길게 가더니 결국 연결되지 않았다.이에 곧바로 이한우에게 전화하자, 한우도 다급한 목소리로 말했다.[내가 바로 형님한테 전화해 볼게. 안 받으면 직접 찾아갈게!]전화를 끊자마자 서인은 급히 차를 몰아 토니의 집으로 향했다. 차의 속도를 올려 빠르게 도착했을 때, 그곳은 이미 아수라장이 되어 있었다.포크레인 한 대가 집 앞에 서 있었고, 토니의 아버지는 바닥에 쓰러져 있었다. 몇몇 사람들이 그를 억지로 일으키려 하고 있었고, 토니와 다른 두 사람이 몸싸움을 벌이고 있었다.윤석경은 철거 인부들에게 울며 애원했지만, 한 명이 그녀를 밀쳐버렸고, 이내 윤석경은 중심을 잃고 벽에 부딪칠 뻔했다.그 순간, 서인은 조금도 망설이지 않고 앞으로 나섰다. 토니의 아버지를 붙잡고 있던 사람 중 하나를 단숨에 발로 걷어찼다. 그리고 막 아버지를 부축하려던 순간, 유진이 소리쳤다.“조심해요!”서인은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재빠르게 몸을 틀어 뒤에서 날아오는 공격을 피했다. 그리고 순식간에 상대의 손목을 잡아 꺾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