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됐어요!” 진석이 강솔을 나무랐다. “스승님하고 싸우지 마!”그 말을 끝으로, 진석은 도경수에게 시선을 돌렸다. “강솔이 항상 생각 없이 말하잖아요. 스승님께서 그녀와 같은 수준에서 대응하실 필요 있나요?”경수는 투덜거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널 봐서 내가 참는다.”“진석 때문에 너하고는 신경 안 쓸게!”경수가 돌아서자. 입에 케이크를 한가득 넣어 볼이 빵빵한 소희의 모습을 보고 웃음을 터뜨렸다.“우리 소희는 참 착하다니까, 먹는 것조차 복스럽게 먹네!”“…….”갑작스러운 칭찬에 소희는 당황했다. 이내 강솔은 한숨을 쉬며 말했다. “진석아, 봤지? 스승님이 소희를 얼마나 편애하는지!”진석은 강솔을 훑어보며 말했다. “소희는 너보다 훨씬 말을 잘 듣잖아.”강솔은 눈을 크게 뜨며 반박했다. “소희는 그저 먹는 것을 좋아할 뿐인데, 그게 잘 듣는 거야?”진석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네가 먹을 때 입이 바빠서, 적게 말하고 스승님을 화나게 하지 않으면, 당연히 착하게 보이지.”강솔은 깨달은 듯 말했다.“음 그러고 보니 맞는 말인 것 같네!”오늘 모두 모여서 그런지 경수는 기뻤다. 경수는 하인들에게 저녁 식사를 정원으로 가져오라고 지시했다. 꽃과 풀, 새와 곤충이 있는 정원에서 저녁을 먹으며 별을 바라보고 있었다.모두가 둘러앉아, 경수는 소희에게 물었다. “네 할아버지는 어떠시냐? 내가 네 할아버지랑 영상 통화할 때마다 항상 건강하다고 자랑하더라고.”“한 번에 삼백 그릇을 먹는다느니, 산꼭대기까지 한 번에 올라간다 느니 하며 허풍을 떨어. 그 정도가 하늘을 찌를 정도야.”소희가 대답했다. “어제 장의건 의사선생님이랑 통화했는데, 할아버지는 회복이 잘 되고 있어요. 큰 문제는 없다고 하셨어요.”“그래, 다행이네. 나한테 강성으로 오라고 했지만, 그 노인네는 고집이 세서 안 온다니까. 정말 고집스러운 사람이지!”“할아버지는 산속 공기에 익숙하다고 하시더라고요.”“나이 든 사람들은 환경을 바꾸기 싫어하지, 나도 그걸
강솔과 진석이 이야기하는 동안, 소희는 자기 식사에만 집중했다. 마치 King의 일이 자신과 아무 상관이 없는 것처럼. 그러다 도경수가 갑자기 강솔에게 물었다. “너 남자친구 사귀었니?”강솔은 놀라며 얼굴이 붉어졌고, 진석을 향해 눈을 흘겼다. “혹시 네가 스승님께 말한 거야?”진석은 안경 너머로 차가운 눈빛을 숨기고, 무덤덤하게 말했다. “아니.”도경수는 웃으며 말했다. “아니, 네 아버지가 며칠 전에 전화해서, 네가 남자친구를 사귀었을지도 모른다고, 내가 널 좀 지켜봐 달라고 하더라.”“뭐가 볼 거 있어요, 제가 어린애도 아니고, 남자 고르는 눈은 틀리지 않을 거예요.” 강솔이 작게 중얼거리자 도경수가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 “네 남자친구를 나에게 소개시켜 줄 생각은 없어?”“솔직히 오늘 데려올 생각이었는데, 갑자기 중요한 고객이 왔다고 해서 못 왔어요.” 강솔이 웃으며 말했다. “못 믿겠으면 소희한테 물어보세요.”소희는 고개를 끄덕였다. “네, 강솔의 말이 사실이에요.“소희가 맞다 하니 믿을게.” 도경수가 젓가락을 내려놓고 진지하게 물었다. “그 남자 이름이 뭐고, 뭘 하는 사람이야?”“이름은 주예형이고, 스스로 창업해서 회사 사장이에요. 자수성가한 사람이라 엄청 대단하죠!” 강솔은 예형을 언급하며 자랑스러운 표정을 짓자 진석은 갑자기 차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나처럼 가정 배경이 좋아서 창업한 사람은 차별받는 건가?”“아니 내가 우리 예형 씨 얘기를 하고 있는데 왜 자꾸 자기 얘기를 끼워요? 너무 예민하게 구는 거 아냐?” 강솔이 눈살을 찌푸렸지만 소희는 진석을 바라보며 그가 받은 ‘공격'에 동정심이 들었다.이에 도경수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자수성가한 사람들은 자기 이익을 중요하게 여기니까 조심해야 해.”“아니에요!” 강솔이 서둘러 자신의 남자친구를 감싸고 돌았다.“예형 씨는 전혀 그렇지 않아요. 그는 자수성가이긴 하지만, 하나도 인색하지 않고, 창업 과정을 즐기고 있어요.”발끈해하는 강솔이
진석은 잠깐 강솔을 바라봤지만, 아무 말도 없었다.차 안에서 조용히 울려 퍼지는 낮고 서늘한 목소리가 약간의 슬픔을 담아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바람 속을 걷네 오늘의 햇살이 갑자기 너무나도 따스해하늘도 땅도 따스하게 마치 네가 나를 안아주듯그런데 네 변화를 알게 되고 외로운 앞날들이추워지면 어떻게 지낼까”……“방해하지 않는 것이 그게 내가 줄 수 있는 따스함모르겠고 이해할 수 없어 원하지 않아왜 내 마음은가까이하고 싶은데 외롭게 새벽을 맞이할까”……강솔은 창밖을 바라보며 음악에 맞춰 조용히 따라 불렀다. 강솔은 예형을 몰래 좋아했던 날들을 문득 떠올렸고, 진석을 돌아보며 물었다.“사장님, 좋아하는 사람 있어?”진석은 핸들을 꽉 쥐었지만, 표정은 변함없이 담담하게 물었다. “그걸 왜 물어보는 거야?”“예전에 내가 예형 씨를 짝사랑할 때 매일 사장님한테 매달려서 내 말 들어달라고 했잖아.”“거기다가 어떻게 꼬실지도 대신 생각해 주고, 지금 보면 나한테 은인이니까. 만약 좋아하는 사람 있으면 내가 도와줄 수도 있어.”강솔의 순진한 얼굴에는 진지함이 어렸다. “물론, 소희는 제외하고. 소희는 남자친구가 있으니까, 남의 연애를 방해하려고 해선 안 되잖아.강솔에 말에 진석은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난 소희를 좋아하지 않아요. 내 눈에는 너희들 모두 똑같아.”“좋아하지 않는다고?” 강솔은 믿지 못하겠다는 듯이 물었다.“임구택이 나타났을 때, 너 분명히 기분 나빠했어. 그걸 난 눈치챘고!”“그건 임구택이 예전에 소희한테 상처 줬기 때문이야. 만약 주예형이 너에게 상처 준다면, 나도 기분이 좋지 않을 거고.”진석의 말에 강솔은 곧바로 반박했다.“예형 씨는 상처주지 않을 거야!”진석의 옆 얼굴은 서늘하게 변했고, 얇은 입술을 굳게 다물고 말없이 있었다.“소희를 좋아하지 않는다면, 누구를 좋아하는 거야? 그 사람이 싱글이라면, 내가 꼭 도와줄게.”“괜찮아, 나는 좋아하는 사람이 없어.”“없다고?” 강솔이 무언가가 생각
인터넷에서 스타쉽 매니지먼트 회사가 고용한 댓글 알바들과, King의 팬들의 논쟁이 점점 격해지고 있었다.논쟁의 핵심은 스타쉽 매니지먼트가 King을 이용했음에도 불구하고 겸손한 태도가 전혀 없으며, King을 비하하며 소동을 띄우고 있다는 것이었다. 그들의 말에는 그 어떤 지켜야 할 선도, 존중도 없이 욕설이 난무했고, 말속에는 어떤 마지노선도 없었다.금요일, ‘여신의 옷장’이라는 새 프로그램의 마지막 녹화가 진행되었고, 소동은 놀라운 디자인으로 심사위원들의 칭찬을 받았다.이제 소동은 프로그램의 애정하는 인물이 되었고, 심사위원들도 소동에 대한 찬사를 아끼지 않아 분위기는 굉장히 좋았다.심사평이 끝나고, 소동은 부드러운 목소리로 웃으며 말했다.“여러분의 지지에 대해 감사드립니다. 이런 영광과 축하를 받는 동시에, 저는 일부 사람들의 의심을 받고 있습니다.”“그래서 이 자리를 빌려 명확히 하고 싶은 게 있습니다. 저는 그 어떤 자리에서도 저를 ‘리틀 King’이라고 말한 적이 없습니다.”“또한 제 디자인은 저의 창작이며, 그 누구의 영향도 받지 않았습니다.”“저를 호시탐탐 노리시기 전에 제 작품에 더 많은 관심을 가져주셨으면 좋겠고 저의 창작을 지지해주시길 바랍니다.”소동의 이 발언은 제작진팀이 미리 준비한 것이 아니었기에, 무대 뒤의 감독과 앞줄에 앉은 심사위원들은 모두 당황했다.관객석에서 누군가가 호응을 하며 박수를 치기 시작했고, 초대받은 관객들도 소동을 지지하는 박수를 보냈다.소시연은 소동의 옆에 서 있었는데, 참지 못하고 웃음을 터트렸다.“인기를 얻고 나니까 발뺌을 하고 있네. 얼굴에 철판을 깔았나.”시연의 마이크는 꺼지지 않았기에, 그녀의 날카로운 목소리는 전체 스튜디오에 울러 퍼졌다.시연의 충격적인 발언에 모두가 놀랐고, 소동은 차가운 눈으로 시연을 바라보며 마이크를 끄고 말했다.“시연아, 또 내 얘기하는 거야? 지금도 내가 King의 인기에 업혀 간다고 생각하는 거야? 내가 보기에는 King의 팬들이 날 무차별하게 공
“알겠어요, 제가 말할게요!” 감독은 계속해서 소시연의 발언을 제한하겠다고 보장했다.소동을 설득한 후, 감독은 소시연을 설득하기 위해 마찬가지로 아부를 하듯이 달랬고, 시연이 남도록 설득했다.모두가 방송 스튜디오로 돌아와 프로그램 녹화를 계속했다. 시연이 다시 무슨 말을 할지 두려워, 제작진은 시연의 마이크를 끄기로 결정했다. 그리고 마침내 겨우 한 회 분의 녹화를 끝마쳤다.편집을 하고 나자, 모든 출연진은 한 팀처럼 화목하고 서로 존중하고 사랑하는 모습으로 보여졌다.소동이 처음에 한 ‘King을 모방하지 않았다’는 발언에 대해 감독은 고민한 끝에, 시청률을 위해서 그대로 방영하기로 했다.감독은 프로그램에 논란이 있어야 인기가 생긴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더군다나 그 발언은 소동이 직접 한 발언이었기에 본인들과는 상관이 없었으며, 나중에 문제가 생겨도 빠져나갈 구멍이 있었다.방송이 끝나고, 안단희는 소동과 함께 나가며 말했다. “소시연 그 멍청한게 실력이 안 되니까 괜히 트집 잡잖아. 그것 때문에 애꿎은 소유까지 미운털 박히게 됐으니!”단희의 말에 소동은 웃으며 말했다.“됐어요. 전 이제 걔 신경 안 쓸 거니까. 어차피 온라인에서 나를 욕하는 사람이 한둘도 아니고. 탈탈 털어도 먼지 한 톨도 없는 나니까, 난 괜찮아요.”“맞아, 온라인에 있는 그런 사람들하고 신경 쓰지 마세요. 그들이 더 난리를 칠수록 당신은 더 유명해질 거니까!” 단희는 말하고는 장시 망설이다가 더 친근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소동 씨, ‘뷰티풀 클로즈’ 라는 예능 프로그램도 소동 씨를 게스트로 초대하더라고요.”“저희가 계속 협력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저도 추천해 주면 안 될까요?”“아, 그거요?” 소동이 조금 곤란해하며 말했다. “저 아직 출연할지 말지 결정하지 못했어요.”“같은 유형의 예능 프로그램 두 개를 연속으로 나가면, 팬들이 지루해할 수도 있으니까요. 결정하고 나서 알려드릴게요.”소동이 그렇게 말하고, 자기를 데리러 온 차에 올라타고 떠났다.단
소정인은 진연의 말에 동의하지 않았다. 소정인은 안정적으로 차근차근 진행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했지만, 진연은 항상 강하게 밀어붙여 소정인이 반박할 수 없었다.“그래, 이번 달에 몇몇 고객들이 결제를 늦게 해서 회사의 운영 자금에 문제가 생겼어.”“소동에게 말 좀 해서 돈을 빌려줄 수 있는지 알아봐 줘.” 소정인이 화제를 바꾸었다.“그런 사소한 일은 당신이 직접 소동과 말하면 돼요.” 진연은 TV를 보며 움직이길 원하지 않았고 소정인은 고개를 끄덕이고 소동의 방으로 갔다. 문을 두드리고 들어가자, 소동은 기쁜 얼굴로 일어나 소정인을 맞이했다. “아빠!”소정인은 진연과 한 이야기를 다시 언급했지만 소동은 별로 관심을 보이지 않았고, 표정도 좋지 않았다.소정인은 소동이 듣고 싶어 하지 않는 것을 보고 더 이상 언급하지 않았다. 단지 소동에게 잠시 자금을 돌려달라고 부탁했다.소동은 눈을 굴리면서 해맑게 말했다. “제가 예전에 작업실을 운영할 때 부모님이 저를 많이 도와주셨죠. 이제 제가 도울 차례예요, 물론 문제없어요.”소정인은 기뻐하며 말했다. “엄마 말이 맞았어. 넌 정말 훌륭한 아이야!”소동은 더욱 달콤하게 웃으며 핸드폰을 꺼내고 입을 열었다.“지금 바로 6천만원 보내드릴게요!”“6천만원?” 소정인의 얼굴에 미소가 얼어붙었다. 대기업에게 은은 정말 턱없이 부족한 금액이었다.표정이 안 좋은 소정인에 소동은 담담하게 물었다. “부족한가요? 아빠, 저도 돈이 많지 않아요. 이건 거의 제 전부예요.”‘여신의 옷장'의 대성공으로 소동의 상업적 가치는 상승했다.더군다나 스타쉽 매니지먼트 회사와 계약한 후 소동은 네 개의 광고를 찍었고, 두 개의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했다. 그랬기에 실제 수입은 20억을 넘었다.하지만 소동은 이 돈을 소정인에게 주고 싶지 않았다. 자기가 얼마나 힘들게 번 돈인데, 남한테 빌려주겠나?돈을 ‘빌려달라'고 하지만, 과연 돌려받을 수 있을지 그 누구도 몰랐다.진연이나 소정인에게 선물을 사 주거나, 이천만원이나
마민영은 리스트를 곧 찾아서 소희에게 건네주었다. “이거 봐요!”네티즌이 만든 소동의 디자인 모음 영상은 매우 인상적이었다. 하나하나가 눈부시게 아름다웠지만, 소희는 보면 볼수록 얼굴이 어두워졌다.소희는 잠시 뭔가 생각났다는 듯 민영에게 말했다. “이 영상 나한테 보내줘요!”말을 마친 후, 소희는 급히 휴게실을 빠져나갔다.“소희, 무슨 일이야?” 민영이 걱정스럽게 물었지만, 소희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그냥 갔다. 그리고 민영은 어리둥절한 채 소희가 부탁한 대로 영상을 보내주었다.소희는 자신의 작업실로 돌아와 컴퓨터를 켜고, GK를 위해 만든 FW 신상 디자인 파일을 열었다. 그리고 민영이 보내준 영상을 열어 하나하나 비교하자 충격적이었다.소동이 만든 모든 옷에는 소희의 디자인이 있었다. 한두 개가 우연이라면 몰라도, 모든 옷에 소희의 디자인 요소가 사용된 것은 분명 우연이 아니었다.이미 프로그램이 다섯 회 방영되었는데, 소희는 이제야 발견했다는 사실에 놀랐다. 소동이 언제 자신의 디자인을 봤는지 몰랐다.소희는 소동이 예능 프로그램에 참여한 시간을 떠올리며, 소동이 자신의 디자인을 훔친 시기가 아마도 드라마 촬영 중일 것으로 추측했다. 소동이 그렇게 빨리 촬영장을 떠난 것도 자신의 디자인을 훔쳤기 때문일 수도 있었다.그 와중에 제일 큰 문제는 소동이 분명히 표절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렇게 피해자처럼 행동한다는 것이 소희에게는 이해할 수 없었다. 하지만 곧 소희는 다른 중요한 일을 떠올렸고, 바로 핸드폰을 꺼내 하영에게 전화를 걸었다.“FW 신상 발표회, 언제 시작하죠?”하영은 웃으며 대답했다. “아이고, 사장님. 너무 무관심 한 거 아니에요? 바로 오늘 아침이에요. 저 지금 발표회에 있는데 생중계해드릴까요?”하영의 대답에 소희의 마음은 무겁게 가라앉았다.“사장님?” 하영이 불렀음에도 아무런 대답이 없자 다시 불렀다.“괜찮아요, 계속하세요.”소희는 괜찮다는 말만 했을 뿐 다른 말은 하지 않았다. 이미 너무 늦어버렸기 때문에, 그
소희가 임구택의 어깨에 몸을 기대며 웃으며 말했다. “당신 곁에서 내가 뭘 할 수 있는데?”“뭐든 좋아, 아니면 아무것도 안 해도 돼. 당신이 보고 싶을 때마다 당신을 볼 수 있으면 그걸로 충분해.”“질리지 않을까?” 소희가 묻자 구택은 낮게 웃으며 말했다. “나를 보면 질리나?”“안 그래!” 소희는 구택을 꽉 안자 구택이 기대에 찬 목소리로 물었다.“같이 갈래?”“난 내 일이 있어.”소희는 고개를 저었다. “난 드라마 촬영 끝날 때까지 기다릴 수 있어.” 구택이 소희의 옆얼굴에 입을 맞추며 말했다. “사장 부인으로 회사에 오는 건 어때?”“싫어!” 소희가 즉시 거절하자 구택은 한숨을 쉬며 말했다. “보아하니, 사장 부인 자리에 나까지 더해져도 당신의 디자인 초안보다 못한 모양이네!”소희는 구택의 무기력한 목소리를 듣고 킥킥 웃었다.“유명해지고 싶어? 소동처럼, 원한다면 어떤 인기 있는 예능 프로그램에도 참여시켜 줄 수 있어. 당신의 재능이라면 소동 못지않을 거야.”소희는 구택의 가슴에 편하게 기대며 물었다. “소동의 디자인, 어떻게 생각해요?”“회사에서 Kally가 소동의 팬이야. 심지어 소동을 임씨 그룹의 제품 모델로 추천하려고 했어.”“작품을 나한테 보여줬는데, 괜찮더라고. 물론, 모델 제안은 거절했지만.”소희가 물었다. “정말 괜찮아?”구택은 마치 다시 한번 진지하게 생각하는 듯이 말했다. “그냥 그래, 우리 소희 님만 못하겠지만!”소희는 웃음을 참지 못하며 말했다. “괜찮아요, 솔직하게 말해도 돼. 나 안 화낼 거니까.”“좋든 나쁘든 나랑 상관없어!”구택은 긴 손가락으로 그녀의 얼굴을 쓰다듬으며 말했다. “예능에 나가고 싶어? 아니면 자기 이름을 건 작업실을 열고 싶은 거야? 그게 뭐든 다 할 수 있어!”과거에도 구택은 소희가 무엇을 하든 그녀가 행복하기만 하면 좋았다. 하지만 지금은 소희를 가장 높은 곳에 올려놓고 싶어 했다. 소씨 집안 사람들이 더 이상 소희를 경시하지 못하게, 소동 때문에
방 안이 삽시간에 조용해졌고, 서인도 고개를 들어 임유진을 바라보았다. 유진은 눈처럼 맑고 투명한 얼굴로 휴대전화를 꺼내 녹음 파일을 찾아 재생했다.녹음 속에서는 두 사람의 대화가 선명하게 들려왔다. 처음에는 안주설의 목소리가 먼저 나왔다.“쥐구멍이 없어도 쥐는 나타나요. 쥐는 정말 어디든 들어올 수 있어요. 창문으로 기어들었을 수도 있고요.”“난 쥐가 제일 무서워요. 전에 내가 살던 원룸에도 한 번 쥐가 나온 적이 있었는데, 어디서 들어온 건지 도통 모르겠더라고요.”“강성에서 월세 살고 있나 봐요?”“음, 그렇죠!”...녹음이 계속 이어지다, 주설의 목소리가 확연히 낮아졌다.“유진 씨랑 서인 사장님, 토니네 일에서 손 떼면 안 될까요?”유진이 놀란 목소리로 물었다.“뭐요?”“내가 400만 원 줄게요. 그러니까 서인 사장님 설득해서 여기서 떠나게 해 줘요.제발, 네?”“왜 그래요? 무슨 일인데요?”“묻지 말고, 그냥 네가 서 사장님을 설득해서 돌아가게 해 줘요. 우린 모두 토니 가족을 위하는 마음이 같잖아요. 그러니까 제발, 그냥 손 떼고 돌아가 줘요.”...유진의 목소리가 차가워졌다.“설마 주설 씨였어요?”“뭐가요?”“주설 씨, 이 민박집이 철거되길 바라고 있네요. 보상금 받아서 해성에 집 사려는 거죠?”“그게 유진 씨랑 무슨 상관이죠? 왜 우리 집 문제에 왜 당신이 끼어드는데요? 지나치게 참견하는 거 아닌가요?”“보상금 받아서 집 사면, 토니 씨 부모님은 어떻게 하라고요? 여기가 토니 씨 부모님들이 가진 전부예요.”“집이 무너지면, 부모님을 해성으로 모셔 갈 거예요?”“당신이 상관할 일 아니잖아요! 본인이 집 못 사니까 우리도 못 사야 한다고 생각하는 거예요? 질투하는 거죠? 솔직히?”녹음은 거기서 끝났다. 유진은 녹음이 끝난 휴대전화를 내려놓고, 충격에 빠진 주설을 바라보며 싸늘하게 웃었다.“누가 이 집을 철거시키려 했는지, 누가 보상금을 노렸는지, 누가 우리를 여기서 쫓아내려 했는지 이제 다들 알겠죠?”모든
윤석경은 손에 청경채를 들고 뛰어나오며 소리쳤다.“박민란 씨! 또 무슨 일이죠?”박민란은 서인과 임유진을 발견하자 더욱 흥분한 얼굴로 외쳤다.“당신들 가족 전부 나오라고 해요! 안토니도 불러요! 오늘은 꼭 이 비열한 배신자를 색출해야겠어요!”그 말에 윤석경은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배신자라니, 무슨 소리예요?”곧 가족들이 모두 1층 거실에 모였다. 그리고 박민란은 휴대전화를 꺼내 사진을 테이블 위에 올려놓았다.“자, 직접 보세요!”유진의 시선이 사진에 닿자마자 눈이 커졌다. 사진 속에는 서인과 유진이 있었다. 일요일, 호텔에서 네 사람이 함께 식사할 때 찍힌 사진이었다. 사진 속에서 오석준이 서인에게 차 한 상자를 건네는 장면이 담겨 있었다.이에 박민란은 더욱 목소리를 높였다.“자, 똑똑히 보세요! 다들 잘 보라고요!”본래도 목소리가 컸던 그녀는, 화까지 난 상태라 더욱 격렬하게 소리를 질렀다. 거기다 입을 열 때마다 침까지 튀었다. “이 두 사람이 호텔 측 사람들에게 돈을 받고, 당신네 집을 팔아넘겼어요! 그런데도 당신들은 이들을 손님처럼 대접하고 있다니, 제정신이에요?”토니 가족은 사진을 보며 놀란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 토니도 호텔에서 공사 담당자를 찾아갔던 적이 있었기에, 사진 속 인물을 바로 알아보았다.유진은 억울하고 화가 치밀었고, 바로 박민란을 향해 따져 물었다.“이 사진 어디서 난 거죠? 누가 보낸 거예요?”박민란은 비웃으며 말했다.“그건 당신이랑 상관없어요! 아무튼 당신들 얼른 떠나요! 우리 일에 끼어들지 말고요!”토니 가족들은 사진을 들고 자세히 들여다보았고, 유진은 단호하게 설명했다.“사장님이 친구를 통해 호텔 공사 담당자를 만났고, 그 사람이 여기를 철거하지 않기로 약속했어요.”“그날 저녁에 그 사람과 식사한 것도 그 자리에서 설명해 드렸잖아요? 그리고 저 가방 안에는 차가 들어 있어요.”“지금도 차 안에 있으니까 가져와서 보여드릴게요!”토니는 사진을 테이블 위에 내려놓으며 진지하게 말했다.“
방으로 들어가 문을 닫자, 임유진은 주변을 살피며 혹시라도 쥐구멍이 있는지 찾기 시작했고, 안주설은 창가에 기대어 웃으며 말했다.“쥐구멍이 없어도 쥐는 나타날 거예요. 쥐는 정말 어디든 들어올 수 있거든요. 창문을 통해서 들어왔을 수도 있어요.”그러자 유진은 실망한 표정을 지었다.“난 쥐가 제일 무서워요. 전에 내가 살던 원룸에도 한 번 쥐가 나온 적이 있었는데, 어디서 들어온 건지 도통 모르겠더라고요.”주설의 눈빛이 미묘하게 흔들렸다.“강성에서 월세로 살고 있나 봐요?”유진은 고개를 끄덕였다.“음, 그렇죠!”주설은 조심스레 떠보듯 물었다.“그러면 나중에 사장님이랑 결혼하면 집을 살 테니까 더 이상 월세 살 일은 없겠네요? 사장님은 꽤 돈이 많아 보이던데요.”유진은 한숨을 쉬었다.“사장님이요? 무슨 돈이 많아요? 차 한 대 그나마 좀 값나가는 거지, 그거 팔아도 강성에서 집 사긴 어림도 없어요. 강성 집값 엄청 비싸요.”주설은 피식 웃으며 말했다.“전 집 없이는 절대 결혼 안 할 거예요. 자기 집이 있어야 마음 편하잖아요.”“저도 그렇게 생각해요!”유진은 적극적으로 동의하며 물었다.“두 사람은 언제 결혼할 거예요?”그러자 주설은 살짝 미소 지으며 말했다.“연말쯤이요. 우리 둘 다 직장도 안정적이고, 하반기부터 결혼 준비를 시작하려고 해요.”“그럼 집은 샀어요?”유진은 궁금한 눈빛으로 묻자 주설은 어색하게 웃으며 답했다.“거의 다 됐어요. 지금 집을 알아보는 중이에요.”“좋겠네요! 해성 집값도 강성이랑 비슷하게 비싸던데, 정말 대단하네요. 나랑 사장님은 언제쯤 자기 집을 가질 수 있으려나?”유진이 부러워하는 듯한 말투를 쓰자, 주설의 얼굴에는 은근한 우월감이 스쳤다.“열심히 일하면 언젠간 생길 거예요!”유진은 어깨를 으쓱하며 툴툴거렸다.“월급 모아서 집 사려면 늙어야 가능할걸요? 하늘에서 갑자기 돈 보따리라도 떨어지면 좋겠네요!”주설은 그녀의 말을 듣고 눈빛이 스치듯 어두워졌고 살짝 목소리를 낮추며 말했다.“유진
점심시간이 가까워지자, 안토니의 부모님은 점심을 준비하러 갔고, 안주설은 안토니를 방으로 끌고 가서 상처에 약을 발라주었다.임유진은 서인을 향해 눈짓을 보냈다. 두 사람은 밖으로 나와 조용히 이야기를 나누었다. 마당에 나서자, 유진이 생각에 잠긴 듯 말을 꺼냈다.“내 생각엔, 토니 가족 중에 뭔가 이상한 사람이 있어요.”서인은 눈을 살짝 들며 유진을 바라보았다.“무슨 뜻이지?”유진은 목소리를 낮추며 말했다.“어제 우리가 떠날 때, 토니가 우리한테 언제 돌아가냐고 물었잖아요? 그때 사장님이 바로 강성으로 간다고 했죠.”그러나 돌아가는 과정에 산길에 교통사고가 발생해 도로가 막히는 바람에, 한 시간 정도 지체되었고 시내에 도착했을 땐 이미 밤이 되어 떠나지 못했다.“하지만 토니 가족은 우리가 이미 떠난 줄 알았겠죠.”서인은 눈을 가늘게 뜨며 중얼거렸다.“우리가 떠난 줄 알고 철거팀이 몰래 들이닥친 거라는 거군.”유진은 입술을 살짝 깨물며 고개를 끄덕였다.“너무 우연의 일치라고 하기엔 미심쩍잖아요.”서인은 미간을 좁히며 말했다.“토니일 리는 없어.”며칠간 함께 지내며 그를 지켜본 결과, 토니는 형과 마찬가지로 솔직하고 올곧은 성격이었다.무엇보다 부모님께 극진한 효심을 가지고 있었기에, 겉으로만 도와주는 척하면서 뒤로는 배신하는 짓을 할 리가 없었다.유진은 눈을 반짝이며 장난스럽게 물었다.“오늘 우리 여기서 자는 거죠?”서인은 고개를 끄덕였다.“그래야 할 것 같아.”지금 상황으로 보면, 철거팀은 무슨 짓이든 할 가능성이 컸다. 만약 토니 가족 중 누군가가 정보를 흘린 거라면, 오늘 밤 서인과 유진이 없는 틈을 타 다시 올지도 모른다.그러자 유진은 싱긋 웃으며 말했다.“그럼 난 2층에 올라가서 전에 묵었던 방에 아직도 쥐가 있는지 봐야겠어요.”서인은 눈썹을 살짝 올렸고, 유진은 장난기 가득한 미소를 지으며 돌아섰다.2층으로 올라가려던 찰나에, 유진의 휴대전화가 울렸다. 화면을 보니 임구택이었다. 유진은 전화를 받자마자 들려오
안토니의 다급한 목소리가 전화기 너머로 들려왔다.[서인 형! 호텔 철거팀이 또 왔어요! 이번엔 포크레인까지 끌고 와서 우리 집을 당장 부수겠다고 해요!][이게 대체 어떻게 된 거죠? 분명 철거하지 않기로 합의한 거 아니었어요? 우린 어떤 계약서에도 서명한 적 없고, 동의한 적도 없는데 왜 갑자기 이렇게 나오는 거죠?]서인의 얼굴이 굳어졌고, 눈빛은 차갑게 변했다.“지금 바로 갈 테니까 철거 인부들을 최대한 막아봐. 하지만 네 안전이 최우선이야. 가족들도 꼭 보호해야 해!”[네!]토니는 급히 대답했다.[일단 어떻게든 붙잡아 볼게요!]“반드시 조심해!”전화를 끊고 나서야 임유진이 놀란 얼굴로 물었다.“무슨 일이에요?”서인은 간략하게 상황을 설명하자, 유진은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어제 확실히 협의 끝난 거 아니었어요? 혹시 아래 직원들이 전달을 못 받은 거 아닐까요?”서인은 차 시동을 걸면서 오석준에게 전화를 걸었으나, 그러나 신호가 길게 가더니 결국 연결되지 않았다.이에 곧바로 이한우에게 전화하자, 한우도 다급한 목소리로 말했다.[내가 바로 형님한테 전화해 볼게. 안 받으면 직접 찾아갈게!]전화를 끊자마자 서인은 급히 차를 몰아 토니의 집으로 향했다. 차의 속도를 올려 빠르게 도착했을 때, 그곳은 이미 아수라장이 되어 있었다.포크레인 한 대가 집 앞에 서 있었고, 토니의 아버지는 바닥에 쓰러져 있었다. 몇몇 사람들이 그를 억지로 일으키려 하고 있었고, 토니와 다른 두 사람이 몸싸움을 벌이고 있었다.윤석경은 철거 인부들에게 울며 애원했지만, 한 명이 그녀를 밀쳐버렸고, 이내 윤석경은 중심을 잃고 벽에 부딪칠 뻔했다.그 순간, 서인은 조금도 망설이지 않고 앞으로 나섰다. 토니의 아버지를 붙잡고 있던 사람 중 하나를 단숨에 발로 걷어찼다. 그리고 막 아버지를 부축하려던 순간, 유진이 소리쳤다.“조심해요!”서인은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재빠르게 몸을 틀어 뒤에서 날아오는 공격을 피했다. 그리고 순식간에 상대의 손목을 잡아 꺾었다.
유진은 한눈에 서인의 잠든 모습을 훑어보았다. 거칠고 자유분방한 그의 잠든 모습조차도 심장을 뛰게 했다. 정말 사랑에 빠지면 상대가 제일 멋있어 보인다는 말이 딱 맞는 순간이었다.유진은 침대로 올라가 눈을 감았다가 다시 떴다. 그리고 옆에 있는 자신의 최고 미남을 바라보며 말했다.“사장님, 나 이야기 듣고 싶어요!”서인은 살짝 눈꺼풀을 들어 유진을 곁눈질하며 말했다.“내 229명의 여자친구 이야기라도 들려줄까?”그 말에 유진은 눈을 부릅떴다.“말할 용기가 있으면, 난 들을 용기도 있어요!”“좋아.”서인은 침대 머리맡에 기대앉으며 회상하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첫 번째 여자는 나랑.”그러자 유진은 휙 하고 이불 속으로 파고들어 머리까지 덮어버렸다. 서인은 마치 타조처럼 몸을 숨기는 그녀의 모습에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 이내 서인은 손을 들어 조용히 불을 껐다.다음 날, 서인은 유진과 함께 흥성 주변의 명소를 둘러보았다. 유진은 하루 종일 신나게 놀았고, 시간은 순식간에 흘러갔다.월요일전과 같은 찻집에서 서인은 한우와 오전 10시에 만나기로 약속했다. 두 사람은 미리 10분 전에 도착해 기다렸다.서인은 유진에게 말차 케이크를 하나 주문해 주었고, 그녀는 속으로 조금 설렜다.‘지난번에 내가 이걸 좋아한다는 걸 기억하고 있었구나.’정확히 10시가 되자, 한우와 그가 부른 사람이 도착했다. 한우는 두 사람에게 소개를 건넸다.호텔 프로젝트의 공사 책임자는 오석준, 마흔이 갓 넘은 나이에 머리 위가 약간 벗겨졌고, 몸집이 풍채가 있었다. 늘어지는 듯한 눈꺼풀 사이로 날카롭고 계산적인 눈빛이 스쳤다.일행이 자리를 잡고 앉자, 한우가 오늘 만남의 목적을 간단히 설명했고, 서인도 안토니 가족의 상황을 차분히 이야기했다.한우는 이야기를 들은 뒤, 바로 전화를 걸어 토니 가족의 집이 있는 정확한 위치를 확인했다.그 후, 다정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원래 안토니 씨 댁은 철거 대상에 포함되어 있었어요.”“하지만 서인 사장님이 직접 나를 찾아왔
유진은 맑은 눈으로 서인을 바라보다가, 이내 애잔한 눈빛으로 변하며 말했다.“내가 멍청하고, 잘 몰라서 이렇게 남아서 당신과 함께 세상을 보고 배우려는 거잖아요. 내가 함부로 아무거나 따거나 건드리지 않을게요.”“약속할게요, 그래도 안 될까요?”서인은 유진의 애처로운 표정을 보며 결국 마음이 약해졌다.“그럼 네 일은 어떻게 할 건데?”“휴가 내야죠. 마침 프로젝트 하나 끝낸 참인데, 여진구 선배가 며칠 쉬라고 했어요.”유진은 덧붙였다.“걱정 안 해도 돼요. 저 그런 무책임한 사람 아니에요. 일에 지장 주지 않을 거예요.”서인은 잠시 고민했는데, 유진을 혼자 차 타고 돌아가게 하는 것도 마음에 걸렸다.“그러면 이틀 동안 나랑 같이 다니되, 혼자 돌아다니지는 마.”이에 유진은 환하게 웃었다.“걱정하지 마세요. 하루 24시간 내내 사장님이랑 붙어 있고 싶을 정도니까요.”서인은 할 말을 잃었고, 순간 유진이 일부러 자신을 흔드는 게 아닐지 하는 의심이 들었다. 사랑스러운 말이 너무 자연스럽게 튀어나온다.그러나 유진의 맑은 눈동자를 보고 있자니, 어쩌면 자신이 너무 깊이 생각하는 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두 사람은 마당에서 바람을 쐬며 시간을 보내고 있었고, 유진은 의자에 편하게 몸을 묻고 앉아 서인에게 물었다.“이한우 씨한테서 연락이 왔어요?”서인은 고개를 끄덕였다.“호텔 공사 담당자와 연락이 닿았어. 월요일에 만나서 이야기할 거야.”유진은 손으로 턱을 괴며 말했다. “그 사람이 안토니 씨 집을 허물지 않겠다고 동의하면 문제는 해결된 거네요. 일이 순조롭게 풀리는 것 같아요.”서인은 고개를 끄덕였다.“그러길 바랄 뿐이지.”유진은 미소를 지었다.“동의하지 않을 거면 굳이 만나려 하지도 않았을 테니까요. 걱정하지 마세요.”서인은 문득 유진에게 물었다.“회사에서는 무슨 일 해?”그러자 유진의 눈빛이 반짝였다.“드디어 내게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네요?”서인은 입을 꾹 다물고 약간 어색한 기색을 보이며 시선을 피했다.“그
그 말에 서인은 코웃음을 치며 믿지 않는다는 듯이 옷장을 열어 옷을 꺼냈다. 그러면서 담담한 목소리로 말했다.“나가 있어.”임유진은 못마땅한 표정을 지으며 일어났고,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리며 문을 열었다.“내가 훔쳐볼 것도 아니잖아요. 그 정도로 경솔하지 않아요. 보면 당당하게 보죠!”유진은 그렇게 말하면서 문을 밀어 열고, 밖으로 나갔다. 그리고 서인은 유진의 뒷모습을 바라보다가 살짝 미간을 찌푸렸다.‘임유진, 정말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네.’서인은 서둘러 샤워를 끝내고, 나와서 밖을 내다보았으나 그녀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이내 서인의 표정이 굳어졌고, 그는 곧장 발걸음을 옮기며 유진을 불렀다.“임유진!”그러나 대답이 없었다. 수영장 주변은 조용했고, 희미한 조명 아래로 물결만이 은은하게 일렁이고 있었다.검은색 철제 울타리 너머로 다른 객실의 정원이 보였지만, 어디에도 유진은 없었다. 서인의 목소리가 낮아졌고, 이번에는 조금 더 강한 어조로 유진의 이름을 불렀다.“임유진!”그때, 화악 물살을 가르며, 유진이 수면 위로 튀어나왔다. 촉촉한 얼굴에는 물방울이 반짝였고, 커다란 눈동자가 더욱 맑게 빛났다. 유진은 장난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자신의 눈앞에 있는 서인을 바라보았다.잔물결이 유진의 주변에서 별빛처럼 흩어졌다. 그녀는 마치 물에서 갓 피어난 연꽃처럼 수면 위에 떠 있었다.서인은 순간적으로 말이 막혔고, 유진은 그의 반응이 재미있다는 듯, 수영하며 천천히 다가왔다.그리곤 눈앞에서 손가락을 살랑살랑 흔들며 말했다.“왜 그래요? 놀랐어요?”서인은 눈을 가늘게 뜨고 아무 말 없이 몸을 돌렸다. 유진은 웃으며 수영장에서 나와 그를 따라가려 했지만, 나오자마자 재채기했다.그러자 서인은 한숨을 쉬고, 방으로 들어가 수건을 꺼내고는, 곧장 유진에게 다가가 수건을 둘러주며 나지막이 말했다.“옷 입은 채로 물에 들어가? 유진, 너 혹시 뇌를 물에 빠뜨린 거 아니야?”유진은 수건을 감싸 안으면서 속으로 생각했다.‘내가 옷을 안 입고
유진은 고개를 돌려 안주설과 안토니를 힐끗 보더니, 작은 목소리로 속삭였다.“사장님, 힘들지 않아요? 내려줄까요?”서인은 태연한 얼굴로 대답했다.“두 시간은 거뜬해.”그 말에 유진은 깔깔 웃었다. 그녀는 그의 어깨에 몸을 더욱 기대고, 탄탄한 팔뚝을 베개 삼아 살짝 눈을 감았다.따뜻한 햇살과 산속의 상쾌한 공기, 그리고 서인이 주는 안정감. 이 순간만큼은 그 어떤 불안도 없었다.유진의 몸은 가볍고 부드러웠고, 땀방울이 살짝 맺힌 피부는 촉촉하고 서늘했다. 그리고 은은한 향이 서인의 코끝을 간질였다. 서인은 잠시 숨을 멈추었다가, 아무렇지 않은 듯 다시 걸음을 뗐다.그러나 그때, 유진이 몸을 조금 더 밀착시키더니,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사장님, 정말 나를 좋아하지 않아요?”갑작스러운 말에 서인의 발걸음이 순간 멈췄다. 유진의 숨결이 서인의 목을 스쳤고, 목소리는 부드럽고도 깊었다.그러나 서인은 단호하게 말했다.“안 좋아해.”유진의 눈빛이 살짝 흔들렸고, 그녀는 가만히 한숨을 내쉬며, 아주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그래도 좋아요. 사장님이 나 말고 다른 사람도 안 좋아하면, 난 그걸로 괜찮아요.”유진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서인은 걸음을 멈추고 고개를 돌렸다. 그의 눈빛은 어두웠고, 깊은 곳에서 무언가가 일렁이고 있었다.“그만 말해.”유진은 입술을 꼭 다물었다. 그녀는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서인은 다시 묵묵히 걸었다.마침내 정상에 도착했을 때, 유진과 서인은 산 정상의 너른 바위 위에 앉아 경치를 바라보았다.잠시 후, 토니와 주설도 간신히 정상에 도착했다. 둘은 이미 땀범벅이었고, 숨을 헐떡이고 있었다.반면, 서인과 유진은 여유롭게 앉아 있었다. 토니는 헉헉대며 엄지를 치켜세웠다.“서인 형, 진짜 대단해요!”주설은 다소 무안한 표정으로 억지 미소를 지었다. 그러나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하산할 때는 토니와 주설이 더욱 느리게 걸었고, 결국 민박집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해가 저물어 있었다.토니의 부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