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화를 끊은 후 소희가 고개 돌려 이정남을 향해 말했다."나 먼저 갈게요. 그리고 당분간 출근 못 할 거 같으니까 이 감독님에게 일이 있으면 메시지를 보내달라고 전해줘요."찔린 게 없으니 두려울 것도 없었지만 제작진에게 골치 아픈 문제를 일으키지 않기 위해 소희는 이 열기가 지나 팬들이 냉정해질 때까지 숨을 수밖에 없었다."그래, 내가 데려다줄게."이정남이 대답하며 소희를 밖까지 데려다주려 했다. 하지만 소희가 차분하게 컴퓨터를 가방에 챙기며 거절했다."괜찮아요, 나 혼자 갈게요. 걱정 마요. 아무리 많은 사람이 나타나도 나를 막을 수 없어요."소희에게 그럴만한 실력이 있다는 걸 알고 있었기에 이정남은 결국 고개를 끄덕였다."알았어. 조심하고, 일이 있으면 바로 나한테 연락해. 네 핸드폰 번호도 곧 인터넷에 폭로될 수 있으니까 미리 새 번호를 준비하고, 바꾸고 나면 나에게도 새 번호를 알려줘.""네. 이현이 다음으로 정남 씨를 노릴 수 있으니 조심해요.""걱정 마."밖으로 나온 소희는 주위를 한 번 살피고 안전하다는 걸 확인한 후 민첩하게 별장의 담장을 뛰어넘어 성연희가 주차한 곳에 도착했다.그리고 소희가 차에 오르자마자 성연희는 즉시 차에 시동을 걸어 그곳을 떠났다.소희를 토벌하려고 별장 대문으로 몰려든 팬들은 갈수록 많아졌다. 그들은 하나같이 격동되어 심지어 스태프들한테까지 손을 댔다.장면은 놀라울 정도로 통제를 벗어났다.차를 몰고 별장 대문 쪽을 지나가다 그 장면을 목격한 성연희의 예쁜 얼굴에는 노기로 가득했다."이현 그 나쁜 여인이 팬을 이용하여 널 해치려 하더니. 정말 뻔뻔스럽네. 그렇게 죽고 싶으면 내가 직접 보내줄 수도 있는데."소희는 순간 전에 여민이 했던 말이 생각났다.이현이 블루드에서 겪었던 일들...... 보아하니 결사의 각오로 소희한테 달려든 게 분명했다."소희야, 걱정하지 마. 홍보팀이 이미 사람을 사서 언론을 공제하고, 댓글들을 삭제했어. 실검도 곧 철수될 거고."성연희의 화는 이미 극으로 달했다. 그
소희가 고개를 숙인 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확실히 쌤통이긴 하지, 임구택의 곁에서 멀리 떨어지지 못했으니.’그리고 그러는 소희의 모습에 성연희는 마음이 아파 다시 입을 열었다."이제 이 일이 끝나게 되면 너 바로 심명 씨와 함께 강성을 떠나. 그리고 다시는 임구택 앞에 나타나지 마.""지금은 안 돼. 적어도 임구택과 이혼할 수 있을 때까지 기다려해. 안 그러면 심명은 유부녀를 유괴한 죄명을 쓰게 될 거야.""이럴 때엔 농담하지 않으면 안 돼?"소희의 대답에 성연희는 화가 나면서도 웃음을 참을 수가 없었다.하지만 소희의 태도는 의외로 엄청 진지했다."농담 아니야.""너 임구택과 별거한 지 이미 2년이 넘었어. 이혼을 기소할 수 있다고.""임구택이 동의할 것 같아?""그놈이 대체 뭘 하려는 건데?"성연희의 화가 묻은 물음에 소희가 창밖을 바라보며 담담하게 대답했다."아마 죽을 때까지 나와 엮이려는 거겠지."결국 성연희는 소희의 고집을 꺾지 못하고 수운로의 별장으로 데려다주었다.그리고 별장에 도착한 후, 성연희는 가는 길에 슈퍼에 들러 산 음식들을 전부 냉장고에 집어넣었다."일은 해결될 거야. 하지만 해결되기 전 너 절대 나가지 마. 필요한 게 있으면 나한테 말해, 내가 매일 사람 시켜 보내줄게."그러면서 성연희는 또 소희에게 새 핸드폰을 건네주며 정중히 당부했다."핸드폰 번호가 인터넷에 폭로되면 이 걸로 연락해. 이현의 팬들이 무슨 일이든 할 수 있으니까 절대 방심하지 말고. 네티즌이고 팬들의 폭로에 정신이 이상해진 사람이 엄청 많아, 신변이 위험해진 사람들도 있고. 그러니 팬들을 얕보지 마.""알았어, 주의할 게.""나머지는 나에게 맡겨!"성연희의 눈빛은 진지하고 굳건했다."천하의 사람들이 너와 맞서더라도 난 영원히 너의 곁에 있을 거야."소희는 순간 마음이 따듯해 났다."난 한 번도 그 점을 의심한 적이 없었어."소희의 대답에 성연희가 입꼬리를 올려 밝게 웃으며 소희의 어깨를 껴안았다."소희야, 나 영원히 널
기자가 듣더니 되려 화를 내며 말했다."이현 씨, 이현 씨는 정말 너무 착해요! 소희 씨가 이현 씨의 용모뿐만 아니라 남자친구도 노리고 있었습니다. 오래전부터 계획되었던 것이라고요!"하지만 이현은 마치 심각한 충격을 받은 사람마냥 두 어깨를 떨며 흐느끼고 있을 뿐 아무 말을 하지 않았다."그럼 임 대표님께서는 소희 씨와의 관계를 해석해 준 적이 있었습니까? 어떻게 해석했습니까?"기자의 계속되는 물음에 이현이 숨을 한 번 크게 들이마시고는 억지웃음을 드러내며 대답했다."구택 씨는 이미 나에게 잘못을 인정했습니다. 난 여전히 이 사이에 오해가 있을 거라고 생각하고 있기에 그 사람을 믿기로 선택했습니다.""그럼 임 대표님께서 어떻게 해석하셨는지 구체적으로 말씀해 주시겠어요?""미안하지만, 이건 나와 구택 씨 사이의 사적인 일이니 프라이버시를 지켜주시죠.""그럼 소희 씨가 제작진의 조감독 및 스태프와 썸을 탔다는 건 사실인가요?"답을 듣지 못한 기자가 포기하지 않고 또 다른 물음을 제기했다.이에 이현이 이마를 찌푸린 채 한참 생각하는 모습을 보이더니 천천히 입을 열었다."소희 씨가 조감독님과 많이 가깝게 다니긴 했지만, 난 두 사람이 단지 동료사이일 거라고 생각합니다.""그럼 이현 씨는 조감독님과 사이가 어떤가요?""처음 합작하는 거라 별로 안 친해요."기자가 계속 물으려고 입을 여는데 이현의 조수가 다가와 이현을 감싸고 현장을 떠나려 했다. 그러면서 큰소리로 말했다."현이가 요 며칠 기분이 좋지 않아 그러는데 다들 이해해 주시고 더 이상 현이의 상처를 들춰내지 말아 주세요!""이현 씨가 기분이 좋지 않은 건 혹시 임 대표님과 소희 씨의 일 때문인가요?"이번 기회를 이대로 포기하고 싶지 않아 다시 몰려들어 묻는 기자의 물음에 조수가 차갑게 웃으며 대답했다."글쎄요? 약혼을 앞둔 남자친구와 가장 믿었던 친구에게 이런 일이 생겼는데 누가 태연할 수 있겠어요? 아무튼 현이에게 시간을 좀 주시죠. 현이가 곧 컨디션을 회복하고 업무에 복귀해 더
제1057화진연이 듣더니 차갑게 웃으며 말했다."좋은 싹이 아니니 아무리 성장한다고 해도 거기서 거기인 거야."이에 소정인이 가볍게 기침을 한 번 하고는 눈치를 주었다."소희는 우리가 낳은 아이라는 걸 잊지 마.""우리가 낳았지만 우리가 키운 게 아니잖아! 아무리 좋은 씨앗이라 해도 저질인 땅에 심어져 자라게 되면 결국 좋은 열매를 맺지 못하는 거야. 뻔뻔스럽긴, 처신을 잘했어야지, 우리까지 연루시켜 창피하게 만들다니!"진연의 조롱에 무언가를 말하려고 입을 연 소정인이 마침 위층에서 내려오는 소동을 보고 어눌하게 입을 다물었다.귀여운 잠옷 차림에 인형을 안고 내려온 소동이 유난히 기뻐하며 물었다."아빠, 엄마, 무슨 얘기를 하고 계셨어요?"진연은 소희에 대해 한마디도 언급하고 싶지 않아 소동의 손을 잡고 웃으며 화제를 돌렸다."요즘 작업실 쪽은 어때?""저 마침 두 분에게 이 일을 말하려던 참이었어요!"소동이 정겹게 진연의 손을 잡고 말을 이어갔다."저희가 지금 외국의 아주 유명한 패션쇼에 참가할 계획이에요. 하지만 그 패션쇼의 문턱이 높아 어느 정도의 자금을 투자해야 하거든요."진연이 듣더니 잠깐 멍해졌다."또 돈을 투자해야 해?""엄마, 우리 작품이 패션쇼에 나타나기만 하면 반드시 대박 날 거예요. 그때가 되면 무조건 퍼부었던 돈만큼 벌어들일 수 있을 거라고요!"사실 진연은 벌써 소정인과 상의가 끝난 상태였다, 더는 소동의 작업실에 돈을 투입하지 않기로. 요 몇 년간 그들은 이미 2억 넘게 투자했지만 아무런 수익도 없었으니까.게다가 근 2년 동안 경제 위기가 날로 심각해져 소씨 가문의 장사가 가까스로 유지되고 있는 상태라 진연은 손에 돈을 조금이라도 더 남겨 만일의 상황을 대비하고 싶었다.그러나 이번에 소희에게 갑자기 일이 생기면서 진연은 다시 생각을 바꾸었다.소희 쪽에 기대를 걸려는 계획은 이미 물거품으로 되었으니 그녀와 소정인의 남은 생은 소동한테 맞길 수밖에 없었다. 그러니 그들이 소동의 사업을 전폭적으로 지지하는
전에 쓰던 핸드폰을 꺼놓은 후, 소희는 줄곧 성연희가 준 핸드폰으로 바깥과 연락을 하고 있었다.인터넷상의 일이 어느 지경까지 발효되었는지에 대해 소희는 아무런 관심도 없었다. 심지어 핸드폰을 거의 하지도 않았다.오직 성연희가 가끔 전화 와서는 이현이 인터뷰를 받으며 했던 말들을 전하곤 했다.그리고 임구택은 지금까지 아무런 입장도 밝히지 않았다.하지만 바깥세상과는 달리 소희는 누구보다도 덤덤했다. 매일 서재에 박혀 책을 보지 않으면 디자인에만 전념을 했고, 가끔은 기분전환 할 겸 직접 밥을 지어먹기도 했다. 비록 음식을 만드는 솜씨가 여전히 진보되지 않아 맛은 늘 이상했지만 소희는 음식을 낭비해서는 안 된다는 인생의 신조를 지켜 한 번도 남긴 적이 없었다.진석과 하영, 그리고 서인은 매일 소희에게 페이스 톡을 보내 잘 지내고 있는지를 확인했다.이현의 팬들이 가장 심하게 소희를 욕했을 때 진석은 심지어 소희가 바로 킹이라는 걸 폭로하려 했다. 킹에게도 많은 팬이 있었으니 그녀를 도와 몇 마디라도 할 수 있을 것 같아서.하지만 소희가 바로 거절했다. 그녀는 자신을 지지하는 팬들을 이용하여 자신의 명예를 수호하고 싶지 않았다. 자칫했다간 그들도 억울하게 이번 인터넷 폭력에 말려들 수도 있으니까.소희는 사건의 열기가 언젠가는 식을 거고 욕설도 끝나는 날이 있을 거라고 믿었다. 그리고 그녀는 잘못한 게 없으니 아무런 타격도 받지 않을 거고.다만 이번 일에서 소희는 개인의 힘이 얼마나 보잘것없는지를 뼈저리게 느끼게 되었다.과학 기술의 발전에 따라 네티즌들의 문화 수준도 예전보다 점점 높아지고 있었으나 그들의 유언비어는 여전히 무고한 사람을 죽일 수 있었다.심리적으로 받아들이는 능력이 약한 사람이 이런 인터넷 폭력을 당하게 되었더라면 진작 자신의 목숨을 끊어 억울함을 증명했을 것이다.점심에 소희는 면 끓여 먹을 생각에 물을 가스레인지에 올렸다. 하지만 면을 너무 많이 넣는 바람에 결국 반 냄비의 양을 끓이게 되었다.게다가 면의 양에 비해 소금을 너무
소희가 갑자기 일어나서 소리쳤다."버리지 마!""안 버려. 다시 간을 맞춰줄게."임구택이 말하면서 두 그릇의 면을 다시 솥에 부었다.소희가 보더니 차가운 목소리로 물었다."임구택 씨, 너무 비위생적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까?"이에 임구택이 고개를 돌려 장난기가 묻은 눈빛으로 소희를 보며 대답했다."키스도 할 만큼 다 한 사이에, 이제 와서 위생을 논하는 거야?"화가 치밀어 올라 따지러 온 소희가 임구택의 장난에 얼굴이 순간 빨개져서는 한마디도 하지 못했다.임구택은 냉장고에서 야채를 꺼내 깨끗이 씻어 냄비에 넣고는 후춧가루와 여러 소스로 간을 다시 맞췄다.그러고는 두 그릇으로 나누어 소희에게 한 그릇 건네주었다.이정남이 했던 ‘져도 진 티를 내서는 안 된다’는 말이 생각나 소희는 숨을 크게 한번 들이마시고 제자리에 앉아 아무렇지 않은 듯 면을 먹기 시작했다.소희의 그릇에는 임구택이 새로 부친 계란후라이도 있었다. 황금빛으로 부드럽게 잘 부쳐진 게 향기가 코를 찌르고 있었다. 그리고 그녀가 전에 부친 후라이는 임구택의 그릇에 누워있었다.면의 맛도 전보다 많이 좋아졌다. 적어도 간은 입에 맞았다.그래서 소희는 더욱 화가 났다. 무엇 때문에 임구택과 같은 평소에 밥도 하지 않는 사람이 뭘 해도 이렇게 맛있게 해낼 수 있는지 알 수가 없었다.이때 임구택이 고개를 들어 웃으며 물었다."죽어가고 있는 면을 살려낸 내가 대단하지?"소희는 대답하기는커녕 덤덤하게 되물었다."대체 무슨 일이 있어서 온 거지?""나 배고파. 면 다 먹고, 나중에 이야기하자."임구택이 한마디 내뱉고는 면을 먹기 시작했다.그러는 그를 소희가 한참 쳐다보더니 덩달아 고개를 숙여 먹기 시작했다.그렇게 두 사람은 커플마냥 마주 앉아 조용히 점심시간을 즐겼다.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소희가 그릇을 다 비우고 고개를 들었다."이제 말해도 되지?""왜 그렇게 빨리 먹어? 너 위도 좋지 않는데, 천천히 먹어야지.""임구택!"소희의 표정이 좋지 않았다.임구택은 그제야
"나갈 때 문 닫는 걸 잊지 말고요, 앞으로 다시 찾아오지도 마시고요."소희는 더 이상 임구택과 마주하고 싶지 않아 덤덤하게 한마디 내뱉고는 일어나 서재로 돌아갔다.한치의 망설임도 없이 떠나는 소희의 뒷모습을 쳐다보는 임구택의 눈동자는 점점 어두워지고 있었다.한참 후, 임구택은 고개를 숙여 면을 마저 먹었다. 면은 이미 식어 불었지만 임구택은 한입도 남기지 않았다.그러다 면을 다 먹고 식탁에서 일어서려는데 소희가 식탁에 잊고 간 핸드폰이 울렸다.임구택이 수신번호를 확인하고는 받았다.그러자 성연희의 목소리가 핸드폰 맞은 편에서 전해왔다.[소희야, 점심 먹었어?]이에 임구택이 눈살을 찌푸린 채 얼음이 낀 목소리로 물었다."성연희, 앞으로 다시는 소희를 주방 근처에 얼씬도 못하게 해. 소희는 요리에 천부적인 재능이 없어 자칫했다간 중독될 수도 있다는 걸 몰라?"임구택의 목소리에 성연희가 잠깐 멍해지더니 곧 화를 내며 소리쳤다.[임구택? 너 왜 소희 집에 있는 거야?]임구택이 핸드폰을 귀에서 멀리한 후 다시 물었다."내가 방금 한 말, 들었어?"[너 소희 집에서 뭘 하려는 건데? 그리고 네가 뭔데 감히 나한테 이래라 저래라야? 소희가 집에 박혀 나가지도 못하고 직접 요리해 먹을 수밖에 없는 게 누구 덕분인데? 뭘 잘했다고 내 탓을 하는 거냐고!]"소희를 설득시켜, 내가 보내준 음식을 먹도록. 그럼 너도 나한테 이래라 저래라할 수 있어."임구택의 요구에 성연희가 콧방귀를 뀌었다.[소희는 굶어 죽는 한이 있어도 네가 보내준 걸 먹지 않을 거야.]"아니, 네가 틀렸어. 소희가 방금 내가 만든 면을 먹었거든."[임구택, 너 대체 소희한테 무슨 짓을 한 거야!]"할 수 있는 건 다 했는데, 어느 걸 그러는 거지?"[임구택, 너 미쳤어?]"성연희!"성연희의 노호에 임구택의 목소리가 순간 차가워졌다."너 소희에게 여전히 자폐증상이 있다는 걸 알아?"임구택의 물음에 성연희가 잠깐 멍해있더니 바로 웃음을 터뜨렸다.[맞아, 소희가 심리적으
소희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핸드폰을 들고 다시 서재로 돌아갔다.임구택은 그릇을 씻고 주방까지 깨끗이 치운 후 거실에 잠시 앉아 있었다. 그러다 한참 후 일어나 서재로 다가가 조심스럽게 문을 두드리며 말했다."나 갈게. 걱정 마, 요 며칠 사이로 다 끝날 거야."책상 앞에 앉은 소희는 문 밖의 나지막한 소리를 들으며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곧 문밖의 발자국 소리는 점점 멀어졌고 집안이 다시 조용해졌다.소희는 손에 들고 있던 펜을 내려놓고 책상 위에 엎드렸다. 온몸의 힘이 다 빨려나간 느낌이 들었다.......다음 날, GK 측은 연예인 이현과의 계약을 일방적으로 해지한다고 통고를 냈다. 그러면서 오늘부로 이현은 더 이상 GK 측의 모델이 아니거니와 앞으로도 영원히 계약을 맺지 않을 거라고 의사를 똑똑히 밝혔다.GK의 결정에 이현뿐만 아니라 많은 동업자들도 어안이 벙벙해졌다.남자친구와 절친의 "배신"으로 인해 많은 팬과 네티즌의 동정, 그리고 지지를 얻어낸 이현은 지금이야말로 화제 중심의 공중파 인물로 되어 많은 브랜드, 심지어 업계 감독들이 앞다투어 가면서 이현과 합작하려 하고 있었다. 이번 기회를 빌려 이현 팬들의 지지를 얻으려고.그런데 GK는 오히려 이현과의 계약을 해지하겠다고 의사를 밝혔으니, 자살행위와 다름이 없었다.게다가 GK는 이현이 찍은 첫 번째 대형 광고 브랜드로 이현에게 많은 인지도와 인기를 더해주었고 또 몇 년 동안 꾸준히 작업해 왔는데 갑자기 이현이 제일 잘 나가고 있을 때 계약을 해지한다니, 다들 이해할 수가 없었다.이에 팬들은 곧 다시 GK를 인터넷 폭력 속으로 끌어들였다. 그들은 GK의 흑역사까지 파내면서 GK 측이 이유 없이 계약을 해지하고 신용을 지키지 않았다고, 인성이 바닥난 소희를 동조하고 있다고 호되게 질책했다.나중에 기자들이 GK로 몰려드는 바람에 하영은 어쩔 수 없이 기자들의 인터뷰를 받게 되었다. 하영은 전혀 찔린 곳이 없는 사람마냥 당당하게 대답했다."저희 GK 측은 이현 씨가 신용과 인성 방면
곽시양은 임유진의 사무실에서 30분 넘게 있다가 나왔다. 복도로 나서자 동료들의 시선이 어딘가 이상하게 느껴졌다.시양은 다들 자신이 승진한 걸로 수군대는 줄 알고 웃으며 지나치려 했지만, 평소 친하게 지내던 동료 한 명이 다급하게 말했다.“시양 씨, 얼른 회사 이메일 확인해 봐요.”시양은 곧장 사내 메일함을 열어봤고, 그 내용을 확인한 뒤 3분 넘게 멍하니 서 있었다.그러고는 갑자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눈에 잡히는 물건을 움켜쥐고 그대로 진소혜를 향해 달려들며 집어던졌다.소혜도 가만히 있지 않았고, 두 사람은 한순간에 몸싸움으로 번졌다. 동료들이 달려와 가까스로 둘을 떼어놓자, 시양은 눈에 광기를 담고 소리쳤다.“진소혜, 이 악랄한 년! 팀장님도 모함하고, 나도 똑같은 수법으로 뒤통수 쳐? 너 같은 건 세상에서 그냥 사라져버려야 해!”소혜도 물러서지 않았다.“미쳤어? 그게 왜 내 탓인데? 그딴 더러운 짓을 해놓고 몰래 찍혔다고 나한테 화를 내?”“너야! 너밖에 없잖아!”시양은 미친 사람처럼 소혜에게 다시 달려들려 했다. 이때, 현준이 달려 나와 그녀를 막으며 말했다.“진정 좀 해!”“꺼져!”시양은 손을 뻗어 정현준의 뺨을 그대로 후려쳤고, 그녀의 눈에선 눈물이 그렁그렁했다.“당신이 날 찍었지! 그리고 진소혜한테 넘겼지! 둘 다 정말 비열해!”현준도 결국 폭발했다.“유혹한 건 당신이 먼저였잖아!”시양은 그대로 와락 울음을 터뜨렸다.“아악!”유진은 사무실 문 앞에 서서 이 난장판을 조용히 지켜봤다. 몇 마디 오가는 대화를 듣는 것만으로도 상황이 어찌 돌아간 건지 충분히 파악할 수 있었다.시양은 입사 이후 내내 소혜에게 눌려 지냈다. 겉으론 아첨하며 따라다녔지만, 소혜가 자신을 무시하고 조롱하듯 대하던 걸 속으로는 원망하고 있었다.시양은 현준이 소혜를 좋아한다는 걸 알고 있었다. 회사에서도 소혜에게 특혜를 줬던 그를 시양은 일부러 유혹했다. 현준을 차지해 소혜를 공격하려는 의도였다. 하지만 현준은 시양의 유혹을 뿌리치지 못
이날, 임유진은 티타임에 진소혜와 마주쳤다. 소혜는 입술을 다물고 웃으며 말했다.“팀장님, 구씨그룹의 총애를 받으니 우리 부서 실적도 쭉쭉 오르겠죠? 부서 직원들 대신 감사드려요, 팀장님.”유진은 커피를 받아 들고 나가려다, 소혜의 옆을 지나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이 일, 소혜 씨가 한 거라는 거 알아요. 이미 누가 나한테 말해줬거든요. 그래서 소혜 씨 그냥 두지 않을 거예요.”소혜의 얼굴빛이 살짝 굳어졌고, 고개를 돌려봤을 땐, 유진은 이미 자리를 떠나 있었다.오후 회의에서 유진은 이렇게 발표했다.“이번 평가 기간 동안 곽시양 씨가 업무에 성실히 임했고, 탁월한 성과를 보여주었어요. 따라서 정현준 씨의 직책을 승계하여 부서 부팀장으로 승진해요.”“인사팀에서 곧 공식 공지드릴 예정이에요.”유진의 말이 끝나자 회의실엔 놀라움이 번졌고, 시양 본인조차 믿기 힘들다는 표정이었다. 부서 내에서도 존재감이 적었고, 입사한 지 오래되지도 않았으며, 능력이나 실적 모두 소혜에 비해 부족했기에, 시양이 발탁된 건 모두에게 의외였다.소혜는 얼굴을 일그러뜨리며 노골적으로 불만을 드러냈다.“팀장님, 부팀장 선발 기준이 뭔가요? 기준을 명확히 해주시죠.”유진은 싸늘한 눈빛으로 소혜를 응시하며 말했다.“기준? 내 마음대로 정하는 게 기준이라면 기준이겠죠”소혜는 눈을 크게 떴고, 유진은 고개를 돌려 멍하니 있는 시양을 바라보며 부드럽게 말했다.“시양 씨, 제 사무실로 잠깐 와요.”“네?”시양은 얼떨떨한 목소리로 대답하며, 소혜의 얼굴을 보지 않으려는 듯 고개를 숙인 채 서둘러 유진을 따라갔다.유진이 회의실을 나서자, 안에서는 수군거림이 폭발했다. 최근 있었던 일로 인해 유진은 여전히 비난의 대상이었고, 그런 유진이 능력도 부족한 신입을 뛰어넘어 부팀장으로 발탁했다는 점에서 불만과 의문은 더 커졌다.현준도 아무 말 없이 앉아 있었다. 이 인사 결정은 사전 상의 없이 유진이 발표한 것이었고, 그 역시 놀라고 있었기 때문이다.소혜는 맞은편에 앉은 베
유진은 구은정의 표정을 보고, 가슴 어딘가가 서늘해졌다. 그는 평소와는 어딘가 다르게 느껴졌고, 유진은 참지 못하고 입을 열었다.“어제 술 마셨다던데, 괜찮아요?”은정은 유진을 뚫어지게 바라보다가, 한참이 지나서야 낮은 목소리로 대답했다.“괜찮아.”“안 좋아 보이던데, 이제 술은 좀 줄이는 게 좋을 것 같아요.”유진이 조용히 은정에게 당부했다.“응.”그 말에 은정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시간 됐어요. 나 출근해야 해요.”유진은 그렇게 말하며 엘리베이터 쪽으로 걸어갔고, 그렇게 둘은 스쳐 지나갔다. 엘리베이터가 도착하자 유진은 안으로 들어갔다.그런데 조금 전 은정이 자신을 바라보던 눈빛이 자꾸 마음에 걸렸고, 가슴이 쿵 내려앉는 것 같았다. 순간 망설임도 없이 엘리베이터 문을 다시 열고, 급히 뛰쳐나왔다.그러나 복도엔 이미 그의 모습이 없었다. 유진은 그 자리에 멈춰 서서 스스로가 어이없었다.‘내가 지금, 도대체 뭐 하는 거지? 도대체 무슨 말을 하려고 했던 걸까? 아니, 지금은 내 문제부터 정리해야 해. 괜히 그 사람한테 짐이 되어선 안 돼.’그날 오후, 은정은 늦게서야 회사에 출근했다. 회사에 도착하자마자 법무팀에 최이석 관련 고소를 철회하라고 지시했다.마심호는 납득하지 못한 얼굴이었다.“그 사람 같은 놈은 봐줄 이유가 없죠. 이번 기회에 서성 라인 애들도 좀 눌러놓는 게 나아요.”그러나 은정은 별다른 설명 없이 단호하게 말했다.“저도 제 나름대로 생각이 있어요.”그날 저녁, 은정은 늘 그랬듯 이경 아파트로 돌아왔다. 조용히 복도를 지나, 곧장 유진의 집 앞으로 갔다.문 비밀번호는 여전히 바뀌지 않았고, 은정은 문을 열고 들어갔다. 집 안은 예전 그대로였고, 유진은 아무것도 챙겨가지 않았다.그런데도 방 안은 왠지 썰렁했는데, 무언가 본질적으로 달라져 있었다. 은정은 그녀가 드라마를 자주 보던 소파에 앉았다. 그 자리에 오래도록 앉아 있었다. 해가 지고, 어둠이 드리울 때까지 그렇게 있다가 조용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은정은 책상 위의 휴대폰을 들어 보이며 말했다.“녹음 안 했어요.”서선영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은정아, 이 일은 내가 밖에 알리지 않을게. 대신 조건이 있어. 최이석 일, 바로 고소 취하하고 다시는 들추지 마.”“그리고 스스로 구씨그룹 사장 자리에서 물러나. 회사도, 강성도 떠나서, 다시는 돌아오지 마.”“네 아버지에겐 그냥 말하면 돼. 죄책감 때문에 이 집에 더는 못 있겠다고. 이번엔 분명히 놔줄 거야.”“네가 떠날 땐, 내가 사람을 시켜서 돈도 챙겨줄게. 아버지한텐 그걸로도 충분히 체면 세워준 셈이 될 거야.”은정은 서선영을 냉랭하게 바라보며 의미심장하게 말했다.“당신 딸을 희생해서까지 날 함정에 빠뜨린 이유가 최이석 때문이었네요.”서선영의 얼굴이 순간 굳더니 곧바로 해명했다.“그 사람은 내 동생 밑에서 오래 일했어. 난 내 동생을 위해서 한 거야. 은정아, 지금 네가 분위기 바꿔서 빠져나갈 생각은 아예 하지 마.”“내가 당신 말대로 안 하면요?”은정은 담배를 내뿜으며 한껏 무심한 얼굴로 말했다.“어차피 난 이미 악명 높은 놈이 됐어. 하나쯤 더 얹혀도 그만이죠. 오히려 구은서는 이제 절대 부잣집 자제와의 결혼은 꿈도 못 꾸겠죠.”서선영의 얼굴은 날카롭고 차가웠다.“끝장을 보겠다는 거야? 그렇게 되면 은서는 동정받는 쪽이 될 거야.”서선영은 은정을 똑바로 노려봤다.“임유진하고 너, 꽤 가까운 사이잖아. 그 애는 나랑 너 때문에 몇 번이나 맞붙었지. 근데 만약 그 애가 네가 술에 취해 여동생을 건드린 놈이라는 걸 알게 되면?”“그 아이 눈엔 네가 어떻게 보일까? 널 어떻게 생각할까? 넌 그걸 감당할 수 있어?”그 말에 은정의 얼굴빛이 순식간에 어두워졌다. 서선영은 그 반응에 확신을 얻은 듯 미소를 지었다.“내 말대로 해. 열흘 안에 강성 떠나서 다시는 돌아오지 마. 안 그러면 임유진이든, 임씨 집안이든, 강성 전체가 너란 인간이 얼마나 추잡한 놈인지 알게 될 거야.”“널 사회적으로 매장 시킬거고, 임유진도 널 경멸하
은정은 격노한 아버지를 똑바로 바라보며 또렷하게 말했다.“저는 그런 짓 하지 않았어요. 이건 서선영 저 사람이 꾸민 함정이에요.”서선영은 엉엉 울면서 외쳤다.“내가 내 딸을 희생시켜서 너한테 함정을 판다고? 구은정, 네가 나를 미워하는 건 알아.”“예전부터 나한테 편견이 있었지. 그래, 미우면 나한테 손찌검을 해. 왜 애먼 은서를 괴롭혀?!”“은서는 아직 시집도 안 갔어. 이제 어떻게 살라고 해? 이 소문이 밖에 나가면, 우리 집안은 완전히 끝장이야!”은정은 오직 구은태만 바라보며 물었다.“저를 믿으세요?”구은태는 아들의 눈을 바라보다가, 문득 다른 기억 하나가 떠오르며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그때 갑자기 은서가 벽을 향해 몸을 던지듯 달려갔다. 죽을 각오로 내달리는 눈빛이었다.“은서야! 안 돼, 은서야!”서선영이 급히 은서를 껴안고 붙잡았고, 울음이 멎지 않았다.“은서야, 제발 그런 짓 하지 마. 이건 네 잘못이 아니야!”“거기 누구 없어요! 얘 좀 붙잡아줘요!”서선영은 울먹이며 도우미들을 향해 소리쳤다. 몇 명의 도우미가 급히 달려와 은서를 붙들고 감싸 안았다.그중 평소 은서를 따르던 도우미가 조심스럽게 구은태 앞에 다가와 입을 열었다.“회장님, 사실은 전에도 도련님께서 밤에 아가씨 방문을 두드리는 걸 몇 번 본 적이 있었어요.”“하지만 도련님이 너무 무서워서, 보복당할까 봐 말씀 못 드렸어요. 제가 잘못했어요.”그 도우미는 흐느끼며 말을 잇지 못했다.“제가 좀 더 일찍 말씀드렸더라면, 이런 일은 없었을 텐데요!”은정은 도우미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기억이 떠올랐다. 예전에 애옹이가 은서에게 보내졌던 그날 밤, 은정은 술에 취해 돌아와 애옹이가 사라진 걸 알고 은서를 찾아갔다. 그때 이 도우미가 어두운 구석에서 숨어 지켜보고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구은태는 거기까지는 떠올리지 못했다.죽을힘을 다해 몸을 던지려던 은서, 그리고 도우미의 일방적인 증언이 더해지자, 구은태는 은정을 더 이상 믿지 않았다.다시 근처에 있던 물
[말 좀 해봐요.][삼촌?]서선영이 천천히 2층에서 걸어 내려오더니, 바닥에 떨어져 있던 휴대폰을 집어 장말숙 아주머니에게 건네며 눈짓을 보냈다. 이에 장말숙 아주머니는 눈치를 채고 전화를 받아 들고 말했다.“유진 씨죠? 저희 도련님이 술에 취하셨어요.”유진은 잠시 침묵하더니 말했다.[네, 신세 좀 질게요. 잘 부탁드려요.]“네!”장말숙 아주머니는 괜히 말을 더했다가 실수라도 할까 봐 다급하게 전화를 끊었다. 은정의 까만 눈동자가 서선영을 향해 있었지만, 그 시선은 이미 흐릿했다.서선영은 은정을 부축하듯 손을 내밀며, 자애로운 얼굴로 말했다.“은정아, 술 너무 많이 마셨잖아. 방으로 데려다줄게.”“으악!”날카로운 비명에 은정은 정신이 번쩍 들며 눈을 떴고, 날은 훤하게 밝아 있었다.옆에서는 구은서가 실크 잠옷 차림으로, 옷가지로 몸을 허둥지둥 가리고 있었고, 얼굴은 절망감에 젖은 눈물로 가득했다. 그녀는 분노로 떨리는 눈으로 은정을 노려보고 있었다.구서의 비명은 곧 서선영과 집 안 도우미들을 방으로 불러 모았다. 문이 열리고 방 안 풍경을 본 순간, 모두가 굳어버렸다.은정은 조금씩 의식을 되찾았고, 은서를 훑어보며 눈빛이 짙게 가라앉았다. 이불을 들추고 자신을 확인해 보니, 바지는 제대로 입고 있었지만 상의는 전혀 없었다.은정은 몸을 일으켜 세우려다 이마를 짚으며 침대 머리에 기대앉았다. 머리가 묵직하게 지끈거렸다.“엄마!”은서는 멘탈이 완전히 무너져 울부짖었다.“은서야!”서선영이 달려와 은서를 안고, 옷을 덮어주며 얼굴이 창백하게 질렸다.“도대체 이게 어떻게 된 일이니?”“몰라요!”구은서는 서선영 품에 얼굴을 묻은 채 오열했다.“밤에 오빠가 갑자기 방에 들어왔어요. 술에 취해서 저를 한 대 치더니 그다음은...”은서의 머리는 흐트러져 있었고, 드러난 어깨엔 붉은 자국이 가득했다. 누가 봐도 무슨 일이 있었는지 짐작할 수 있었다.“짐승 같은 놈!”서선영은 벼락을 맞은 듯 충격에 빠져 온몸을 떨며 은정을 향해 소리
우정숙은 이 모든 상황이 이해되지 않아 눈썹을 살짝 찌푸렸다. 예전에 은정은 분명히 임유진은 내 스타일 아니라며 선을 그은 적이 있는데, 왜 지금 와서 이렇게 적극적으로 쫓고 있는 걸까?“넌 어떻게 생각해?”우정숙이 묻자, 유진은 여전히 고개를 숙인 채 조용히 말했다.“조금 냉정해질 필요가 있을 것 같아서요. 그래서 돌아왔어요.”그 말투가 생각보다 무거워, 우정숙은 분위기를 일부러 누그러뜨리며 웃었다.“이미 거절했는데도 냉정해져야 해?”유진의 귀가 붉게 물들었다.“어쨌든, 엄마는 이 일. 할아버지, 할머니한테는 말하지 말아줘요. 그리고 삼촌한테도 되도록 비밀로 해주세요.”그 말에 우정숙은 딸의 속내를 단번에 알아차렸다.“갑자기 이렇게 서둘러 집에 돌아온 이유 혹시 일이 더 커질까 봐? 너희 할아버지가 구은정한테 가서 따질까 봐 걱정돼서 그런 거 아니야?”유진은 재빨리 대답했다.“누가 그 사람 걱정했대요? 밖에서 사는 게 질려서 온 거지, 그 사람이랑은 아무 상관 없어요.”하지만 우정숙의 따뜻하고 조용한 눈빛은 유진의 진심을 꿰뚫고 있었다. 우정숙은 다만 조용히 숨을 내쉬며, 더는 묻지 않았다.그날 밤, 구은정은 외부 일정으로 접대를 나갔고, 유진에게 메시지를 보냈다.[오늘 좀 늦을 것 같아. 집에 들어가면 애옹이 좀 봐줘.]유진은 곧바로 답장을 보냈다.[저도 집에 왔어요. 아주머님께 부탁하세요.]은정은 유진이 하루 정도 집에서 자려는 줄로만 알고, 별 의심 없이 답했다.[알겠어.]밤 10시.은정은 아직 접대 자리에서 술자리를 이어가고 있었다. 그때, 휴대폰에 구은태가 보낸 메시지가 하나 들어왔다.[은정아, 나 몸이 좀 안 좋다. 한번 집에 들러줄래?]은정은 미간을 찌푸렸다.[몸 안 좋으면 병원 가시죠.]그렇게 답장을 보냈지만, 더 이상의 응답은 없었다.술자리가 끝나고 나니 이미 자정 무렵이었다. 은정은 그래도 아버지를 확인하고자 구씨 저택으로 향했다. 집에 들어서자, 애옹이를 돌봐주던 장말숙 아주머니가 거실에서 그
정현준은 인상을 찌푸리며 말했다. “내가 지난번에 뭐라고 했죠? 임유진 건드리지 말랬잖아요. 왜 말을 안 들어요?”진소혜는 웃었다.“들었어요. 적이 내 사람이 될 수 없다면, 없애버리라는 그 말, 정말 감명 깊었거든요. 곧 임유진은 이 회사에서 쫓겨날 거예요.”현준은 진지하게 말했다.“그럼 단도직입적으로 말할게요. 임유진은 쫓겨나지 않아요. 사장님이 반드시 지킬 거니까요.”현준은 걱정 가득한 얼굴로 덧붙였다.“유진 씨, 그 정체가 간단하지 않아요. 사장님이 곤란한 일에 휘말릴 때마다 뒤에서 도와준 사람이 바로 그 애였다고요.”“이렇게 성급하게 나가면 결국 당하는 건 소헤 씨라고요.”소혜는 비웃으며 말했다.“그런 것도 그 얼굴 덕 아니었을까요? 임유진이 무슨 대단한 집안 출신이라도 돼요?”현준은 의미심장하게 말했다.“그 애, 성이 임이야.”소혜는 비웃었다.“강성에 임 씨 많은데요? 임씨라고 다 임씨 집안이예요?”“임유진이 정말 그 임씨 집안 사람이었으면, 이런 작은 곳에서 평사원으로 일할 일이 없죠.”강성에서도 가장 윗자리에 있는 집안, 그 임씨 집안 사람이라면 당연히 격이 달랐을 것이다.현준은 소혜를 바라보며, 무력한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소혜 씨, 소혜 씨는 너무 자만해요. 이제 막 졸업한 사람이잖아요. 세상이 어떤지 아직 몰라요.”“내가 경력은 부족하지만, 머리는 좋아요.”소혜는 코웃음을 치며 말했다.“내가 원하는 건, 어떻게든 손에 넣을 수 있어요.”현준은 더는 어떻게 설득해야 할지 막막했고, 소혜는 입꼬리를 올리며 말했다.“이번 달 말이면, 임유진은 이 회사에서 존재 자체가 사라질 거예요.”이메일은 해외 IP에서 발송된 것으로 확인되어, 추적이 쉽지 않았다. 하지만 루머는 벌써 영업팀까지 퍼진 상황이었다.한때 유진이 구씨 프로젝트를 따낸 걸 보고 감탄했던 동료들조차, 그녀가 정말 실력만으로 이룬 건지 의심하기 시작했다.너무 젊은 나이에, 임씨 그룹 같은 대형 고객을 설득하고, 이미 다른 부서에서 거의 성
서선영은 유혹적인 눈빛으로 남자를 바라보며, 거절하려는 듯하면서도 몸은 피하지 않았다.“안 돼. 나, 한 시간밖에 못 나와 있어.”“당신 보고 싶어서 미치는 줄 알았다니까.”최이석은 그렇게 말하면서 서선영의 치마 지퍼를 내렸다.“밖에 사람 세워놨어. 아무도 안 들어와.”...오전, 임유진은 구씨그룹과의 계약을 마무리했다. 오후에는 회사 고위층 회의에 참석했고, 회의가 끝나고 마케팅부로 돌아왔을 때쯤, 팀 동료들의 시선이 평소와 달랐다.유진이 고개를 돌려 쳐다보자, 모두는 급히 예의를 갖춘 표정으로 바뀌었다. 그리고 유진은 손에 든 자료를 들고 여진구를 찾아갔다.문을 열고 들어가니, 진구는 휴대폰을 들여다보고 있었고, 유진이 들어오자, 그는 무의식적으로 휴대폰을 내려놓았다.“무슨 일 있었어요?”유진이 맑은 목소리로 묻자, 진구는 곧바로 말을 돌렸다.“아니야. 너 손에 든 거, 청원안 자료야? 나 좀 볼게.”하지만 유진은 단호한 표정으로 말했다.“휴대폰, 보여줘요.”진구는 어쩔 수 없다는 듯 휴대폰 화면을 다시 켰다. 방금 보고 있던 건, 유진과 은정이 함께 있는 사진들이었다.둘이 식당에서 식사하는 모습, 그리고 둘이 함께 아파트 단지에 들어가는 장면. 얼마 전 중식당에서 있었던 그날이었다.진구는 얼굴을 굳히고 말했다.“누군가 이 사진들을 너희 팀 메일에 전체 전송했어. 내용은, 네가 구씨 프로젝트를 따낸 게 구은정과 부적절한 관계가 있어서라고.”유진은 이미 그 메일을 확인했었다. 메일에는 프로젝트 성공을 위해 구씨 그룹 사장을 유혹했다는 식의 악의적이고 천박한 문장들이 적혀 있었다.업계 풍기를 망친다는 말까지, 표현이 거칠고 추했다. 유진은 이를 꽉 물었지만, 곧 침착하게 물었다.“발신 IP 추적할 수 있어요?”진구가 답했다.“지금 IT팀에서 추적 중이야. 내부 직원일 수도 있고, 유지그룹 쪽의 보복일 가능성도 있어. 하지만 반드시 밝혀낼 거야.”“일단 외부로 확산은 안 됐고, 회사 내부 루머 수준이야. 이미 전체 공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