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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2화 심태경 정말 사람도 아니야

다빈은 사랑의 힘없는 목소리를 듣고, 마음이 좀 아팠다.

[사랑아, 내가 병원으로 찾아갈게. 그리고 밥 사줄 테니까, 우리 이런 나쁜 일들 모두 잊어버리자.]

사랑은 얌전하게 대답했다.

“그래.”

전화를 끊자, 사랑은 계속 차에 앉아 멍을 때렸다.

‘내가 직접 임신한 사실을 태경에게 말했을 때, 그게 어떤 장면일지 상상할 수 있을 것 같아.’

태경은 결혼에 대한 동경이 별로 없었기에, 아이를 낳는 것을 신성하고 행복한 일이라 생각하지 않았다.

작년 설날에 심씨 가문에 많은 손님이 찾아왔다.

태경의 사촌누나는 그때 금방 아이를 낳았는데, 귀엽고 예쁜 딸이었다. 동글동글한 작은 얼굴은 하얗고 부드러우며, 눈은 포도처럼 맑았다.

어르신들은 아이를 안으며 결코 내려놓으려 하지 않았다.

태경은 한가할 때, 자신의 조카딸과 놀아줬지만, 그것도 불과 몇 초일 뿐이었다. 그는 그 아이에 대해 흥미가 없었다.

그날 밤, 사랑은 샤워를 마치고 침대에 누웠는데, 침실이 너무 조용해서 먼저 말을 꺼냈다.

“그 아이, 너무 귀여운 것 같아요.”

태경은 불을 끄며 그녀의 몸에 올라탔다.

“울면 너무 시끄러워.”

그는 사랑의 손을 위로 들어 올렸다. 사랑은 거칠게 숨을 몰아쉬며 대답했다.

“울지 않는 아이가 어디 있겠어요.”

태경은 벌을 주고 싶은 듯, 사랑의 입술을 깨물었다.

“다른 사람 언급하지 말고, 집중 좀 해.”

그 조카딸은 사랑이 본 아이들 중 가장 귀여운 어린이였다. 그러나 태경은 그 아이에게 아무 호감도 없었다.

‘내 뱃속에 갑자기 나타난 아이에 관한 얘기를 들으면, 어떤 태도를 보일지 뻔한데.’

...

다빈은 집안의 기사에게 부탁하여 병원까지 찾아왔다.

사랑은 차를 몰고 다빈과 함께 화성로에 있는 새로 연 레스토랑으로 향했다.

두 사람은 오랫동안 만나지 못해서 엄청 기뻤다. 특히 다빈은 사랑을 안으며 뽀뽀도 하고 난리도 아니었다.

사랑은 입맛이 없어서 우유 한 잔을 시켰는데, 다른 것은 먹고 싶지 않았다.

다빈은 사랑을 안고서야 그녀가 지금 임산부라는 것을 떠올렸다.

“사랑아, 넌 심태경과 어떻게 말할 작정이야?”

사랑은 두 손으로 턱을 받쳤다, 익숙한 사람 앞에서만 그녀는 위장을 벗고, 자신의 진실한 모습을 드러낼 수 있었다.

“솔직하게 말해야지.”

다빈도 거침없이 말했다.

“심태경은 아마도 네가 더 많은 걸 받고 싶어서 임신했다고 생각할 거야!”

사랑은 그녀의 말에 웃음을 터뜨렸다.

“그럴 리가 없어.”

태경은 아마 사랑이 신용을 지키지 않는 사람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그때 같이 계약을 체결했으니까.

다빈은 조심스럽게 자신의 요구를 제기했다.

“그 뭐지, 배 좀 만져봐도 될까?”

사랑은 웃으며 대답했다.

“그럼.”

그녀는 고개를 숙이며 부드러운 표정으로 자신의 배를 바라보았다.

“하지만 아직 티가 나지 않아서, 별다른 감각이 없을 거야.”

다빈은 사랑의 배 위에 가볍게 손을 얹었다.

“신기하다.”

배를 다 만진 후, 다빈은 또 화가 났다.

“심태경 정말 사람도 아니야.”

...

사랑과 다빈은 레스토랑에 오래 있지 않았다. 두 사람은 간단히 점심을 먹은 다음, 또 근처의 백화점에 가서 쇼핑을 했다.

다빈은 가방을 많이 샀고, 상쾌한 기분으로 나와 경호원에게 전화를 걸었다.

“어, 지금 나 백화점에 있으니까, 와서 내가 새로 산 가방 좀 들어줘.”

사랑은 육아용품을 파는 가게를 지나다가 발걸음을 멈췄다. 그녀는 참지 못하고 어린 여자아이가 입는 치마를 하나 샀다.

자신의 예감이 정확한지 모르겠지만, 사랑은 자꾸만 뱃속의 아기가 귀여운 딸이라고 느꼈다.

백화점에서 나오자, 사랑은 먼저 다빈을 집으로 데려다 준 후에야 본가로 돌아갔다.

그러나 뜻밖에도 태경이 오늘 회사에 나가지 않았을 줄이야.

차를 세우면서 사랑은 꽃방에서 물을 주는 남자를 힐끗 보았다. 정원 뒤에는 붉은 장미가 엄청 많았다.

태경은 남이 손 대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고, 평소에 그가 직접 다듬었다. 아무리 냉혈하고 이성적인 남자라도 부드럽고 낭만적인 면이 있을 것이다.

사랑이 차에서 내리자, 태경도 천천히 거실 쪽으로 다가왔다.

늦겨울의 날씨는 무척 쌀쌀했다.

태경은 집에서 얇은 터틀넥 스웨터만 입고 있었고, 긴 다리, 좁은 허리 그리고 넓은 어깨는 모두 그의 우월한 몸매를 과시하고 있었다.

잔잔한 눈빛에 은근히 압박감이 들어있었다. 태경은 담담하게 입을 열었다.

“돌아왔어?”

사랑은 뻣뻣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가방을 꼭 쥐었다.

“네.”

그녀는 오늘 태경의 차를 몰고 나갔는데, 병원의 명세서와 검사서를 차에 남기면 안 됐기에 먼저 가방에 넣을 수밖에 없었다.

태경은 사랑의 얼굴을 바라보며, 그녀의 표정을 관찰했다.

‘아침에 외출할 때보다 안색이 좋아진 것 같은데. 생기가 넘쳐 보이네. 재밌게 놀아서 기분이 좋은가 봐.’

태경은 이를 악물었고, 차분한 표정 아래 마치 분노를 참고 있는 듯했다. 그는 지금 기분이 많이 좋지 않았다.

태경은 손목시계를 보았는데, 사랑이 아침 8시에 외출했고, 오후 4시가 되어서야 돌아온 것을 발견했다.

“8시간이나 나간 걸 보면, 강 비서의 데이트 상대가 꽤 괜찮나 봐.”

사랑은 태경이 오해할 줄 알았다. 전에도 이런 오해가 있었는데, 그녀는 해명한 적이 없었다.

그때 특수한 일이 있어서 어쩔 수 없이 휴가를 내야 했는데, 사랑은 대학 후배를 핑계로 삼아, 전 남자친구가 아파서 입원했으니, 돌볼 사람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사실 이렇게 말해도 나쁠 건 없었다. 그럼 태경을 향한 사랑의 감정이 들키지 않을 것이다.

사랑은 계속 거짓말을 말했다.

“영화도 보고, 커피도 마셨어요. 그리고 마지막에 같이 쇼핑 좀 했죠.”

태경은 냉담한 표정으로 말했다.

“강 비서, 네 일정을 나에게 보고할 필요 없어.”

사랑은 그가 좀 무섭다고 느꼈다.

‘기분이 좋지 않은가?’

그녀도 항상 재수가 없었는데, 자주 기분이 좋지 않은 태경을 마주치곤 했다.

“아, 네.”

태경은 더욱 불쾌해졌다. 전에도 사랑은 자신의 남자친구이니, 전 남자친구와 데이트하는 일이 있었고, 그는 심지어 사랑의 대학 후배를 만난 적이 있었다.

그때 태경은 심지어 정헌에게 이렇게 말했다.

“꽤 잘 생겼고, 배려심이 많지만 가진 게 아무것도 없는 멍청한 대학생일 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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