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은 차 안에 오랫동안 앉아 있었다. 핸들에 엎드려 손에 힘을 꼭 쥐고 있었지만, 또 죽은 사람처럼 가만히 있었다.가방 속의 핸드폰이 몇 번이나 울렸는데도 사랑은 상관하지 않았다.한참 지나자, 사랑이 천천히 일어나며, 차창을 열고 맑은 공기를 들이마셨다.몇 분 후, 정서가 점차 안정될 때, 사랑은 그제야 가방에서 핸드폰을 꺼냈는데, 모두 임다빈이 한 전화인 것을 발견했다.다빈은 며칠 전에야 귀국했다.[사랑아! 왜 계속 내 전화를 안 받은 거야?]사랑은 심호흡을 하며 대답했다.“방금 바빠서 핸드폰 확인할 새 없었거든.”다빈은 사랑의 목소리가 약간 쉰 것을 듣고 이상함을 느꼈다.[너 왜 그래? 그 심 대표가 또 널 괴롭혔니?]처음에 사랑과 태경이 결혼한 사실을 알고, 다빈은 진심으로 사랑을 위해 기뻐했다.얼마 지나지 않아, 사랑은 태경과의 결혼은 계약일 뿐, 사실이 아니라고 말했다. 그녀와 태경은 여전히 상사와 부하의 관계에 불과했던 것이다.다빈과 사랑은 고등학교의 짝꿍이었고, 가장 친한 친구였으니, 자연히 불만이 이만저만 아니었다.특히 태경이 회사에서 수많은 직원들을 괴롭히는 것을 본 뒤, 그를 극악무도하고 냉혈하며 매정한 상사라고 욕했다.사랑은 웃음을 금치 못했다.“아니야.”다빈은 가정형편이 아주 좋았고, 집안에 아이라곤 그녀 하나밖에 없었으니, 어릴 때부터 온갖 사랑을 받으며 자랐다. 그래서 다빈은 다른 재벌 집 아가씨에 비해, 욕심도 나쁜 마음도 없었다.그녀는 툴툴거렸다.[하긴, 심태경은 정신적 폭력을 선호했으니까!]태경은 빙산과 같았다. 사랑은 그를 무척 좋아했지만, 그걸로 이 차가운 마음을 녹일 순 없었다.다빈은 줄곧 태경을 사이코패스라고 생각했다.‘너무 무정해.’[사랑아, 심태경은 여전히 그 모양 그 꼴이야?]“뭐가?”[나도 잘 모르겠어. 네가 도대체 왜 그런 남자를 좋아하는지도 모르겠고.]태경은 확실히 잘생겼고, 일반 남자들에 비하면 외모가 빼어났다. 거기다 카리스마가 넘치고 또 수단도, 박력도 있으니
다빈은 사랑의 힘없는 목소리를 듣고, 마음이 좀 아팠다.[사랑아, 내가 병원으로 찾아갈게. 그리고 밥 사줄 테니까, 우리 이런 나쁜 일들 모두 잊어버리자.]사랑은 얌전하게 대답했다.“그래.”전화를 끊자, 사랑은 계속 차에 앉아 멍을 때렸다.‘내가 직접 임신한 사실을 태경에게 말했을 때, 그게 어떤 장면일지 상상할 수 있을 것 같아.’태경은 결혼에 대한 동경이 별로 없었기에, 아이를 낳는 것을 신성하고 행복한 일이라 생각하지 않았다.작년 설날에 심씨 가문에 많은 손님이 찾아왔다.태경의 사촌누나는 그때 금방 아이를 낳았는데, 귀엽고 예쁜 딸이었다. 동글동글한 작은 얼굴은 하얗고 부드러우며, 눈은 포도처럼 맑았다.어르신들은 아이를 안으며 결코 내려놓으려 하지 않았다.태경은 한가할 때, 자신의 조카딸과 놀아줬지만, 그것도 불과 몇 초일 뿐이었다. 그는 그 아이에 대해 흥미가 없었다.그날 밤, 사랑은 샤워를 마치고 침대에 누웠는데, 침실이 너무 조용해서 먼저 말을 꺼냈다.“그 아이, 너무 귀여운 것 같아요.”태경은 불을 끄며 그녀의 몸에 올라탔다.“울면 너무 시끄러워.”그는 사랑의 손을 위로 들어 올렸다. 사랑은 거칠게 숨을 몰아쉬며 대답했다.“울지 않는 아이가 어디 있겠어요.”태경은 벌을 주고 싶은 듯, 사랑의 입술을 깨물었다.“다른 사람 언급하지 말고, 집중 좀 해.”그 조카딸은 사랑이 본 아이들 중 가장 귀여운 어린이였다. 그러나 태경은 그 아이에게 아무 호감도 없었다.‘내 뱃속에 갑자기 나타난 아이에 관한 얘기를 들으면, 어떤 태도를 보일지 뻔한데.’...다빈은 집안의 기사에게 부탁하여 병원까지 찾아왔다.사랑은 차를 몰고 다빈과 함께 화성로에 있는 새로 연 레스토랑으로 향했다.두 사람은 오랫동안 만나지 못해서 엄청 기뻤다. 특히 다빈은 사랑을 안으며 뽀뽀도 하고 난리도 아니었다.사랑은 입맛이 없어서 우유 한 잔을 시켰는데, 다른 것은 먹고 싶지 않았다.다빈은 사랑을 안고서야 그녀가 지금 임산부라는 것을 떠올렸다.“
사랑은 태경의 변덕스러운 태도에 영문을 몰랐다. 그녀는 몰래 집사를 찾아가서 물었다.“오늘 집에 누가 왔었나요?”“아무도 오신 적이 없습니다, 작은 사모님.”사랑은 더욱 이상하다고 느꼈다. 진지하게 생각한 다음, 그녀는 태경이 그저 이런 사람이라고 자신을 설득했다.다행히 태경은 대부분 시간 동안 평온한 상태를 유지했다. 사랑은 지금 잠이 많아서, 태경의 마음을 알아맞힐 시간이 없었다. 그녀는 위층으로 올라간 다음, 눕자마자 바로 잠들었다.저녁을 먹을 시간이 되었는데도 사랑은 잠에서 깨어나지 못했고, 이불로 자신을 꽁꽁 감싸며 깊이 잠들었다.태경은 식탁 위에 빈자리가 있는 것을 보고, 차가운 얼굴로 물었다.“그 사람은요?”“위층으로 올라가신 후에 줄곧 내려오시지 않았습니다.”“가서 불러요.”박나은은 태경의 까칠한 태도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집에 네 원수라도 있어? 집에서도 그딴 표정 지을 거면 당장 나가.”태경은 침묵을 지키며 서서히 눈살을 찌푸렸다.‘난 강 비서의 일 때문에 이성을 잃으면 안 되는데.’태경은 일어섰다.“필요 없어요. 내가 올라가서 부를 테니까.”박나은은 이런 아들을 보며 그저 한심하다고 느낄 뿐이었다.“내가 어째서 이렇게 인정머리도 없는 아들을 낳았을까?”그건 아니었다. 예전에 태경은 세영을 아주 잘 달랬는데, 그 방식은 어찌나 다양한지,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수줍음을 느끼게 했다....커튼이 두꺼웠기에, 침실은 무척 어두웠다.태경이 불을 켜자, 침대가 볼록 튀어나온 것을 발견했다.그는 잠시 지켜보면서 소리도 내지 않았고 앞으로 나아가지도 않았다.‘정말 작은 여린 존재인 것 같아. 자칫하면 남에게 쉽게 안겨갈 수도.’태경은 처음으로 사랑을 깨웠고, 그 목소리는 무겁지도 않고 무척 부드러웠다.그러나 침대 위의 사람은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태경은 침대에 앉아 사랑이 덮은 이불을 젖히며, 뒤에서 그녀의 허리를 껴안았다. 사랑이 간지럼을 타는 것을 알고, 손을 쓸 준비를 하다가 실수로 그녀의 배를 만졌다
태경은 사랑이 말을 잘 듣고, 얌전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다.‘날 난처하게 만들 사람은 아닌데. 그러나 남녀 단둘이 지내면, 확실히 감정이 뜨거워질 수 있지.’태경은 입가에 냉소를 머금고, 전례 없는 냉담한 눈빛을 보였다.지금 이 순간, 그의 마음속의 분노는 확실히 가라앉을 수 없었다.사랑이 임신을 했다는 일에 태경은 기분이 별로 좋지 않았다. 그리고 이 존재할지도 모른다는 아이가 자신과 관계가 있다는 것을 의심하지 않은 것은, 그가 매번 콘돔을 썼기 때문이다.‘그때 딱 한 번 콘돔을 쓰지 않았는데. 물론 후에 강 비서에게 약을 처방 받으라고 했고. 강 비서는 멍청한 사람이 아니야. 반대로 아주 똑똑하지. 그렇다면 이런 멍청한 짓을 하지 않을 텐데. 자신의 몸을 신경 쓰지 않으면, 남이 뭐라 해도 소용없어.’태경은 검사 보고서를 손에 꽉 쥐며, 묵묵히 몇 번 훑어보았다.그는 위의 모든 설명이 무슨 뜻인지 잘 알고 있었는데, 덕훈이 말한 거와 다름없었다.태경은 보고서를 서랍에 던진 뒤, 내선 전화로 차갑게 말했다.“강 비서 들어오라고 해.”현미는 전화 속 태경의 말투가 매우 좋지 않다고 느꼈다. 마치 무슨 큰일이라도 생긴 것 같았다. 그녀는 얼른 탕비실에 가서 밀크티를 만들고 있는 사랑을 찾았다.“사랑아, 대표님이 찾으셔.”손을 데일 뻔한 사랑은 속눈썹을 드리우며 가볍게 떨었다.“이유는? 말씀하셨어?”현미는 고개를 가로저었다.“아니.”그녀는 사방을 둘러보며, 탕비실에 다른 사람이 없다는 것을 확인했다.“그러나 그 말투를 들어보니, 무서울 정도로 차분하시더라. 너 조심해, 괜히 대표님 심기 불편하게 하지 말고.”사랑은 고개를 끄덕이며 또 현미를 향해 웃었다.“고마워.”그녀는 태경이 무슨 일로 자신을 불렀는지 몰랐다.‘정리된 서류는 아침에 이미 사무실 책상에 놓았는데. 그리고 태경이 오늘 아침 외출할 때, 기분이 엄청 좋아 보였고.’사랑은 사무실 앞에 서서 문을 두드렸다. 잠시 후, 남자의 나지막한 목소리가 들렸다.“들어와.”
사랑은 태경의 물음에 어리둥절해졌다. 고개 들자, 그녀는 태경의 표정이 정말 어둡다는 것을 발견했다.남자는 좀처럼 움직이지 않았으며, 평소에 부드러운 미간도 지금 차갑고 포악한 기운이 배어 있었다.사랑은 턱이 아파 작은 소리로 말했다.“아닙니다.”태경은 계속 그녀를 바라보았다.“강 비서, 똑똑히 생각하고 말해.”사랑은 태경의 차가운 눈동자를 바라보며 또다시 멍해졌다.‘내가 정말 대표님을 배신한 적이 있나? 난 회사의 기밀을 팔아먹지 않았고, 대표님의 행방을 알아보러 온 여자들에게 일정을 털어놓은 적이 없는데.’사랑은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그런 적 없습니다, 대표님.”태경이 두려워 사랑의 목소리와 억양이 부드럽게 변했다.태경이 손을 내려놓았다. 눈 밑의 포악한 기운도 조금 누그러졌다.그는 사랑이 거짓말을 할 가능성이 있는지 없는지를 생각했다.사랑에 대한 태경의 인상은 줄곧 좋았다. 그의 앞에서 거짓말을 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업무 능력도 유난히 훌륭했으니까.‘정말 뭐가 잘못됐나? 그럴 수도 있어.’“강사랑, 이것만큼은 똑똑히 알아뒀으면 좋겠어.”태경은 이렇게 성까지 붙이며 사랑의 이름을 부른 적은 거의 없었다. 그녀는 잠시 넋을 잃더니 다시 정신이 들었다.“말씀하세요.”“이혼하고 나서, 네가 누구랑 함께 하든, 뭘 하든 난 상관하지 않을 거야.” 태경은 말투가 무척 엄숙했다. “그런데 우리 두 사람의 계약이 지속되는 동안, 난 절대로 네 배신을 용납할 수 없어.”태경이 왜 갑자기 이런 말을 하는지 영문을 몰랐지만, 사랑은 얌전히 고개를 끄덕였다.“알겠습니다.”‘내가 또 누구와 함께 하겠어? 난 다른 사람을 좋아하지 않는데.’태경은 화가 쉽게 가라앉지 않았다. 태경은 항상 남에게 여지를 남겨주었다. 그러나 왠지 모르게 지금 그는 사랑을 잔인하게 괴롭히고 싶었다. “난 결벽증이 있어서, 다른 남자가 갖고 놀던 여자는 절대로 건드리지 않을 거야.”이 말은 반은 사실이고, 반은 거짓이었다.사랑은 얼굴이 좀 창백해
지난 일을 돌이켜보면, 사랑을 기쁘게 할 수 있는 것은 하나도 없었다.유일하게 따뜻한 순간도 아마 남들이 아무 걱정 없이 살던 열여섯 살일지도 모른다.가장 생기가 넘치는 그해 여름, 남청연의 병원비 외에 사랑은 다른 슬픈 일이 없었다. 그녀는 매일 몰래 자신이 좋아하는 사람을 관찰할 수 있었다.회사 아래층의 벤치에서 오랫동안 앉아 있던 사랑은 엄청난 피곤함을 느꼈다.그녀는 심심하게 오가는 행인들을 관찰했다. 대부분 직장을 다니는 직원들이었다.맞은편 공원에는 비둘기에게 먹이를 주는 어린이가 있고, 대학생들이 꽃을 팔고 있었다. 사랑은 그녀들의 손에 든 장미꽃을 쳐다보며 멍을 때렸다.‘본가의 정원에도 장미가 가득 심어져 있는데. 하지만 날 위한 단 한 송이도 없어.’사랑은 피곤하게 일어서서 외투로 자신을 꽁꽁 감쌌다. 그녀는 스카프로 얼굴까지 가리며 추위와 맞섰다.꽃을 파는 대학생 앞으로 다가간 다음, 사랑은 손을 내밀었다.“한 송이에 얼마야?”요즘은 발렌타인데이도 아니고 크리스마스도 아니라서 꽃을 파는 장사가 그리 쉽지 않았다.대학생들은 오늘 아직 한 송이도 팔지 못했는데, 모처럼 자발적으로 꽃을 사려는 고객을 만났다.“언니, 한 송이에 1,000원이에요. 1,000원 주시면, 제가 두 송이 드릴게요.”“아니야, 한 송이만 줘, 고마워.”사랑은 지갑에서 현금을 꺼내 건넸다.장미를 받자, 뿌리에 있는 가시가 손을 찔렀다. 아픔을 느끼지 못했는지, 사랑은 장미를 쥐고 찬바람을 쐬고 있었다.‘아무도 날 사랑하지 않는 것도 나쁘지 않아. 이게 그렇게 받아들이기 어려운 사실은 아니잖아. 나도 자신을 위해 나 만의 장미를 살 수 있고.’...사랑은 장미를 산 다음, 다빈에게 전화를 걸어 나와서 밥 먹자고 했다.다빈은 지금 집안에서 가장 한가한 사람인데, 매일 쇼핑하는 것 외에 다른 일이 없었다. 그녀는 황급히 사랑이 보낸 주소로 달려갔다.사랑은 이미 음식을 주문했고, 다빈에게 와인 한 병을 시켰다. 다만 그녀 자신은 물을 마셨다.다빈은
사랑은 순간에 숨이 멎은 것 같았다. 그녀는 숨을 죽이고 떨리는 속눈썹을 들어, 조심스럽게 태경이 들고 있는 보고서를 보았다.흰 종이에는 희미한 그림이 찍혀 있었다.사랑은 제자리에 뻣뻣하게 서서, 발은 마치 못이 박힌 듯 들 수조차 없었다. 그녀는 지금 태경의 표정을 볼 용기가 없었다.사랑은 병원에서 받은 모든 검사서를 분쇄기에 던졌지만, 유독 이 초음파 사진 만큼은 버리기 아까워 줄곧 서랍에 숨겼다. 그녀는 지금까지도 태경이 어떻게 발견했는지 모른다.사랑은 진정을 하려고 노력했다. ‘아마도 태경 자신의 검사서일 거야. 내 것이 아닐 수도 있어.’사랑은 몸이 덜 떨릴 때까지 기다렸다가, 손을 꼭 잡으며 천천히 들어갔다. 그리고 아무렇지 않은 척, 옷을 갈아입기 시작했다.태경은 아무 소리도 내지 않고, 소파에 나른하게 앉아 무뚝뚝하게 사랑을 바라보았다.사랑은 그를 등진 채 잠옷으로 갈아입은 뒤, 씻을 옷을 안고 욕실에 들어가려 했다. 태경은 입술을 오므렸는데, 여전히 입을 열 생각이 없는 것 같았다.사랑은 지금 무척 불안했다. 옷을 쥔 손도 가볍게 떨고 있었고, 손톱은 거의 부러질 것만 같았다.욕실에 들어서자, 그녀는 망설일 새도 없이 바로 문을 잠갔다.모든 힘이 빠진 듯, 사랑은 문을 등지고 천천히 주저앉았다.‘제발, 심태경의 손에 있는 그 보고서는 내 초음파 사진이 아니었으면 좋겠어.’그러나 그녀는 또 생각했다.‘어차피 알려야 하지, 지금 알아도 별일 없을 거야.’사랑은 문에 기대어 바닥에 잠시 앉아 있다가, 차가운 손발이 점차 힘을 되찾을 때 천천히 일어섰다.욕실 안에서는 곧 샤워하는 물소리가 들려왔다.사랑은 뜨거운 물로 샤워를 했기에, 작은 얼굴이 붉어졌다. 그녀는 거울에 비친 자신을 바라보았는데, 안색도 불그스름해서 임산부처럼 보이지 않았다.마음의 준비를 충분히 하자, 사랑은 욕실에 나와 거울 앞에 앉으며 스킨을 바르기 시작했다.태경은 갑자기 입을 열었다.“강 비서, 오늘 오후에 어디 간 거야?”사랑은 멈칫하더니,
날카로운 종이에, 사랑은 하마터면 베일 뻔했다.한 달 정도 숨긴 비밀이 이 순간 들통나자, 사랑은 어찌할 바를 몰랐다.태경이 건넨 사진을 받으며, 사랑은 보지도 않고 말없이 거두었다.한참을 침묵한 뒤, 그녀는 태경을 바라보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네, 나 임신했어요.”이렇게 오래 숨겼지만, 결국 밝혀야 하다니.사랑은 요즘 태경에게 뭐라도 발견될까 봐 두려웠고, 다음 순간 그의 버림을 받을까 봐 두려웠다. 하지만 정작 들키고 나니, 그녀의 마음은 평온하기만 했다.마음에 걸려 있던 바위가 마침내 떨어졌다.혀끝에서 씁쓸한 맛이 전해오자, 사랑은 앞으로 어떻게 될지 몰랐지만, 좋은 결과가 아니란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그녀가 원하는 모든 것을 가질 순 없었다.‘만족 대신 실망뿐이겠지,’어두운 곳에 선 태경은 어렴풋이 냉엄한 윤곽을 드러내고 있었다. 그는 눈을 살짝 떨구며 묵묵히 담배를 꺼내 불을 붙이려 하다가, 또 무엇이 생각났는지 잠시 내려놓았다.“내 아이야?” 사랑은 몸이 굳어졌다.“맞아요.”그녀의 입술은 안색보다 더 창백했고, 목까지 쉬었다. 사랑은 불쌍하게 한 글자 한 글자, 어렵게 설명했다.“믿지 못하겠으면, 시간을 계산해 봐요. 임신한 지 7주가 됐으니, 마침 우리가 C시에 있을 때...”이제 더 이상 설명할 필요가 없었다. 부부 사이의 일에 대해 태경은 아주 잘 알고 있었으니, 자세히 말할 필요가 없었다.태경도 그날 밤을 아주 똑똑히 기억하고 있었다. 사랑은 술을 좀 마셨는데, 평소와 달리 단순하고 귀여운 모습을 드러냈다. 호텔로 돌아오자, 그도 욕구가 용솟음쳤다.태경은 침대 머리맡을 살펴 보았지만, 콘돔을 보지 못했다.그는 출장을 가도, 청소주가 방에 들어가서 청소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다. 그리고 콘돔은 전날 밤에 다 떨어졌다.태경은 이런 사소한 일을 기억할 리가 없었고, 사랑도 사러 갈 일이 없었다. 그는 그때 참지 못했지만, 다음날 여전히 사랑에게 약을 먹으라고 일깨워 주었다.여자에게 약을 먹이는 것은 정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