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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9화 나도 모르게 그만

사랑은 농담을 할 기분이 아니었는데, 매사에 무척 진지한 그녀는 자존심 때문에 태경 앞에서 만큼은 이런 말을 듣고 싶지 않았다.

“난 다른 사람을 꼬시지 않았어요.”

그녀는 한 글자 한 글자 진지하게 해석했다.

태경은 눈썹을 들더니, 사랑의 부드러운 피부를 매만졌고, 조금만 힘을 주자, 붉은 자국을 남겼다.

“정헌이 널 좋아한다고 말했어.”

태경은 아주 차분하게 말했다. 사랑은 그의 얼굴에서 불쾌 또는 관심을 찾아보려 했다.

유감스럽게도 그런 건 없었다. 태경은 마치 이 일에 개의치 않은 것 같았다.

사랑은 고개를 떨구며 대답했다.

“난 구 대표님과 잘 아는 사이가 아니에요.”

그녀는 불편함을 참으며 계속 말했다.

“하물며 구 대표님에 곁에 미인이 그렇게 많으시니, 좋아하는 사람도 엄청 많으시겠죠.”

태경의 엄지손가락은 여전히 사랑의 턱을 쥐고 있었다. 의미심장하게 그녀를 바라보며, 눈 밑에는 이해할 수 없는 감정이 숨어 있었다.

“꼭 그렇지는 않아.”

사랑은 말을 하지 않았다.

‘구정헌이 오늘 저녁에 데리고 온 그 모델은 지난번 연회에 데리고 간 여자가 아니잖아. 여자를 물 마시듯이 바꾸는 사람인데.’

태경은 눈앞의 사랑을 자세히 들여다보았다. 화려하지 않지만 확실히 눈길을 끄는 미모였다.

그는 엄지손가락을 천천히 내려놓으며, 사랑의 피부에 남긴 선명한 붉은 자국을 바라보았다.

“미안. 나도 모르게 그만.”

태경은 사랑보다 더 얌전한 사람을 본 적이 없었다. 어떻게 대해도 화가 나지 않는 것처럼.

“강 비서, 만약 좋아하는 사람이 생겼거나, 적합한 남자가 나타났다면, 먼저 눈여겨봐도 돼.”

태경은 자신이 이미 충분히 사랑을 너그럽게 대했다고 생각했다. 적어도 그녀 앞으로의 계획을 방해하지 않았다.

사랑은 억지로 소리를 냈다.

“고마워요.”

태경은 또 주의를 주었다.

“그러나 우리의 결혼이 지속되는 동안, 그 어떤 진도도 나가지 않았으면 좋겠어.”

“알아요.”

태경은 말을 마치자마자 욕실에 가서 샤워를 했다. 사랑은 미처 치우지 못한 약병을 얼른 서랍에 넣었다.

샤워를 하고 옷을 갈아입은 다음, 태경은 회사로 향했다. 그와 같은 차를 타니, 사랑은 좀처럼 익숙하지 않았다. 그녀는 기사에게 회사 앞의 길목에 차를 세우라고 한 다음, 자신의 가방을 들고 차에서 내렸다.

‘만약 사람들이 내가 대표님의 차를 타고 출근하는 것을 본다면, 아주 안 좋은 소문들이 쫙 퍼지겠지.’

태경은 사무실에 도착하자마자 덕훈을 불렀다. 그는 손에 든 약병을 덕훈에게 건네주었다.

“병원에 가져가서 성분을 검사해. 어떤 약인지 궁금해서.”

덕훈은 약병을 받았는데, 그것이 비타민제인 것을 발견했다.

“네, 대표님.”

어린 시절부터 최고의 가문에서 자란 태경은 결코 단순한 사람이 아니었고, 비타민제가 무엇인지 모를 정도는 아니었다.

태경은 사랑이 평소에 무슨 일을 했는지에 대해 알아보라고 한 적이 없었다. 그럴 필요 없으니까,

그러나 사랑은 거짓말을 한 적이 없었고, 오늘 아침은 유난히 이상했다. 그래서 태경도 의심을 품지 않을 수 없었다.

‘나에게 뭘 숨겨서 그런 것 같은데.’

...

하루 일과를 마친 다음, 사랑은 박나은의 전화 한 통에 본가로 달려갔고, 태경도 같이 불려갔다.

박나은은 친절한 사람이었기에, 사랑은 평소에 자신을 잘 대해주는 그녀가 무척 고마웠다. 하지만 오늘 박나은의 안색이 별로 안 좋았다.

태경은 집에 들어오자마자 자신의 어머니에 의해 서재로 불려갔다.

“강세영이 귀국했어?”

박나은은 언젠가 이 일을 알게 될 것이기에, 태경도 숨길 생각이 없었다.

“네.”

그녀는 숨이 막히더니 가슴에 심한 기복이 일었다.

“그리고 넌 또 그 아이를 만나러 간 거야?!”

태경은 침착하게 인정했다.

“만난 적이 한두 번 아니죠.”

박나은은 화가 나서 책상을 두드렸고, 또 태경을 향해 오늘 아침 기사에 찍힌 사진을 던졌다.

“네가 봐! 기사가 어떻게 떴는지.”

태경은 사진에 맞았지만, 자신과 세영이 찍힌 사진을 담담하게 훑어보았다.

“꽤 잘 나왔네요.”

파파라치의 촬영 기술은 무척 대단했다.

심씨 가문의 권력자와 강씨 가문의 큰아가씨, 정말 재밌는 드라마 소재였다.

많은 여자들이 온갖 수단을 다 써서 태경의 여자로 되고 싶었지만, 결국 하나 또 하나 바뀌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정유아였다. 두 사람 모두 명문가 출신이라, 누가 이길 수 있는지 모른다.

박나은은 화가 나서 죽을 지경이었다.

“넌 지금 이미 결혼했으니, 무슨 일을 해야 하고, 무슨 일을 하지 말아야 하는지, 모르는 거야? 내가 가르쳐줘?”

박나은은 세영을 무척 좋아하지 않았다. 첫눈에 봤을 때부터, 그녀는 마음에 들지 않았다.

철들고 똑똑했던 자신의 아들이 세영을 위해 어리석은 짓을 많이 했을 뿐만 아니라, 하마터면 죽을 뻔까지 했으니, 엄마로서 화를 내지 않을 수가 어딨겠는가?

박나은은 차가운 얼굴을 하고 말했다.

“적어도 네 아내를 배신하지 말아야지. 사랑처럼 좋은 아가씨가 어딨다고. 너도 절대로 사랑의 마음을 저버리지 마.”

태경은 얼버무리며 대답했다.

“저도 다 생각이 있어요.”

박나은은 참지 못하고 잔소리를 했다.

“사랑은 그래도 널 좋아하는 것 같은데. 일편단심 너만 바라보고 있잖아.”

태경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지만, 또 무척 궁금했다.

“그걸 어떻게 아신 거예요?”

그에게 이렇게 말하는 사람은 이미 한둘이 아니었다.

‘강 비서의 연기가 너무 좋아서 일까, 금슬 좋은 부부로 연기할 때마다 남들을 제대로 속일 수 있다니.’

박나은은 속이 터졌다.

“네가 관심을 좀 가지면 다 알 수 있을 거야.”

태경은 부인하지 않았다.

“아마도요.”

박나은은 그들을 본가로 부를 때마다, 아이에 관한 얘기를 꺼냈는데, 이번에도 예외가 아니었다.

“너희들 언제 아이를 가질 계획이야?”

태경은 나른하게 웃었다.

“줄곧 노력하고 있어요.”

박나은은 그의 허튼소리를 믿지 않았다. 시간이 오래되자, 그녀도 의심하기 시작했다.

“너희들 지금 아이를 원하지 않는 건 아니겠지?”

태경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는 확실히 매번 피임 조치를 하며, 그 어떤 사고도 발생하지 못하게 했다.

‘그런데 정말 아이가 생긴다면, 난 괜히 노력을 한 거잖아?’

태경은 박나은을 위로했다.

“어머니, 저희를 걱정하실 필요가 없어요.”

박나은은 태경이 자신의 말을 듣지 않는 것을 보고 정말 화가 났다.

“나도 이제 지쳤어.”

‘내가 사랑을 설득해 봐야지. 사랑은 틀림없이 아이를 원할 거야.’

아래층으로 내려가자, 박나은은 사랑이 소파에 기대어 잠든 것을 발견했다.

‘사랑이가 살이 좀 찐 것 같은데. 볼도 많이 통통해졌고.’

박나은이 다가가자, 사랑은 바로 깨어나며 졸린 두 눈을 깜박였다.

“어머님.”

박나은은 소파 옆에 앉아 그녀의 손을 잡았다.

“너와 태경도 이제 아이를 가져야 해.”

사랑은 순식간에 정신을 차렸다.

“네.”

“나도 태경이 아직 아이를 원하지 않는다는 것을 잘 알고 있어.”

사랑은 눈을 드리우며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태경이 아이를 좋아하지 않는다는 것은 이미 비밀이 아니었다. 그러나 박나은은 그게 큰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했다. 젊은이들은 노는 것을 좋아해서, 아이가 있어야 가정이 안정될 수 있으니까.

“하지만 임신하고 싶다면, 방법은 많지. 몰래 콘돔에 작은 구멍 몇 개 뚫어도, 태경은 모를 거야.”

사랑은 어처구니가 없어서 웃음을 터뜨렸다.

태경은 아래층으로 내려가다가 박나은이 하는 말을 듣고, 약간 어이가 없었다. 그는 사랑의 손을 잡고 떠나려고 했다.

박나은은 태경을 노려보았다.

“너 뭐 하는 거야?”

태경은 사랑의 허리를 꼭 껴안으며 무척 다정하게 행동했다.

“지금 바로 위층으로 올라가서 손자 낳아드릴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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