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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5화 그냥 내 이름 불러

눈물은 쓸모없는 것이 아니었지만, 사랑의 눈물은 태경에게 아무 소용이 없었다.

사랑은 자신이 이런 일로 상처받지 않을 줄 알았다. 그러나 막상 이런 말을 들으니, 그녀의 마음은 여전히 아팠다.

심하게 아파오는 게 아니라, 마치 바늘이 천천히 찌르는 것처럼 아팠다. 아파서 사랑은 제대로 설 수가 없었다.

사랑은 깊이 숨을 쉬고는, 자신의 감정을 잘 조절했다. 그녀는 조용히 사무실 문을 닫고, 비서실로 돌아왔다.

그녀는 사인할 서류를 책상 위에 놓은 다음, 새로 입사한 인턴을 불렀다.

“대표님에게 서류 좀 보내줘. 내일 쓰실 거야.”

인턴은 태경을 유난히 두려워했다. 평소에 회의를 할 때도, 뒤에 숨어있다가 가끔 태경을 훔쳐보곤 했다.

동료들의 말을 빌리자면, 태경은 카리스마가 넘쳐서, 화를 내지 않고 웃어도 눈빛으로 사람을 죽일 수 있었다.

“강 비서님, 저 정말 너무 무서워요.”

인턴은 평소에 잡일을 하면서, 입사한 이래 대표님 사무실에도 들어가 본 적이 없었다. 그녀는 사랑이 가장 대단하다고 느꼈다. 못 하는 것이 없고, 또 무엇이든 잘 했다. 회사 일을 잘 처리할 뿐만 아니라, 태경의 사생활까지 해결 하다니.

사랑은 어쩔 수 없었다.

“진 비서는?”

인턴은 무거운 짐을 벗은 듯 얼른 대답했다.

“진 비서님은 이 비서님과 같이 나가셨어요. 곧 돌아오실 거예요.”

“그럼 진 비서 기다리자.”

“네.”

...

태경과 세영은 점심식사를 하러 나갔고, 오후 두세 시가 되어도 태경은 사무실로 돌아오지 않았다. 사람들은 편한 마음으로 일을 끝낸 후 핸드폰을 하며 수다를 떨었다.

사랑은 오후에 할 일이 별로 없어서 자리에 앉아 멍하니 있다가, 사무실에 사람이 없는 틈을 타서 컴퓨터로 임신 중 주의해야 할 사항을 검색했다.

수많은 주의사항들이 튀어나왔다.

사랑은 열심히 핸드폰에 옮겨 적다가 한 순간에 힘이 빠졌다.

‘아이를 낳을 생각이 없는데, 이렇게까지 주의해야 할 필요가 있을까?’

사랑의 마음 속에서 천사와 악마가 다투고 있었다.

천사는 쓸모가 있다고 했고, 악마는 쓸모가 없다고 했다. 결국 천사가 이겼다.

‘자신의 몸을 챙기는 거니까 나쁠 건 없지.’

사랑은 퇴근할 때까지 버티려다가 모처럼 한가한 데다 마침 졸음이 몰려와 일찍 퇴근해 집으로 돌아가야겠다고 생각했다.

임신을 하고 나니 잠도 많아졌다.

사랑은 컴퓨터를 끄고 사무실 밖의 하늘을 멍하니 바라봤다. 이때 핸드폰이 갑자기 울렸다. 태경이 처음으로 먼저 그녀에게 보낸 문자였다.

주소 하나가 적혀있는 아주 간단한 문자였다.

도심에 있는 유명한 클럽이었다.

‘구씨 가문의 산업인 것 같은데.’

사랑은 저도 모르게 정헌을 떠올렸다. 솔직히 태경의 절친은 좋은 사람이 아니었다. 비록 잘생겼고 돈이 많았지만.

태경도 그날 밤 느닷없이 호텔로 찾아왔기에, 사랑은 예상하지도 못했다.

정헌도 사실 그녀를 좋아하지 않지만, 사랑을 갖고 노는 것을 즐거움으로 여기는 것이었다. 호감이 있다면서 그녀를 존중하지 않고 깔보고 있는 것이다.

사랑은 태경에게 전화를 했다.

“대표님, 이게 무슨 뜻이죠?”

태경 쪽은 시끄러웠다. 자리를 옮긴 듯, 소란스러운 소리가 많이 작아졌다.

[저녁 8시에 이곳으로 와.]

사랑은 가기 싫다고 거절할 자격도 없었다.

남의 밑에서 일하고 있는 입장인데 어떻게 거절하겠는가.

사랑은 물었다.

“접대하러 가는 건가요?”

[아니.]

태경은 빠르게 부인했다.

[오늘 밤 정헌이랑 그 무리들이 세영이를 위해 환영 파티를 열 예정이거든. 너도 와.]

사랑이 불편할까 봐 태경은 다정하게 한마디 덧붙였다.

[다 네가 아는 사람들이야.]

사랑과 태경이 결혼했다는 것을 아는 사람은 거의 없었지만, 그의 친구들은 잘 알고 있었다.

재벌 2세들 중 오직 태경 만이 스스로 결혼 상대를 결정했다. 다른 사람들은 기본적으로 집안이 비슷한 재벌 집 아가씨와 결혼을 했다.

사랑은 한참 동안 침묵했다.

“안 가면 안 돼요?”

태경도 조용해졌다.

[이유는?]

사랑은 적당한 이유를 댈 수 없었다. 저번에 이미 몇 번이나 몸이 불편하다고 그를 거절했으니까.

태경이 검진을 받으라며 휴가까지 줬으니 말이다. 사랑은 좋은 핑계를 생각해 내지 못했다.

한참을 망설이다가 사랑은 조심스럽게 물었다.

“술 마셔야 하나요?”

[마시고 싶으면. 그러고 싶지 않으면 마실 필요 없어.]

사랑은 작은 소리로 응했다.

“네.”

[예쁘게 입고 와.]

사랑이 잊어버릴까 봐, 그는 한 마디 덧붙였다.

[날 대표님이라고 부르지 마.]

사랑은 핸드폰을 꽉 쥐었다.

“그럼... 뭐라고 불러야 하나요?”

태경은 잠시 생각했다.

[그냥 내 이름 불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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