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주환은 유단자였다.그는 빠르게 몸을 피하면서 동시에 틈 사이로 공격을 해왔고 바로 쇠파이프와 각목을 잡았다. 그리곤 그들 손에서 빼앗아 사채업자들과 함께 싸우기 시작했다.그들은 아주 살벌하게 싸웠다.항상 줄곧 책상 앞에 앉아 두뇌 싸움만 해오던 남자는 흡사 학생이었던 시절로 돌아가는 것 같았다. 아니, 아무리 학생 시절이었다고 해도 그는 이렇게 격하게 누군가와 싸운 적이 없었다.“움직이지 마!”경찰들이 들이닥쳤을 때 강주환은 이미 네댓 명이나 쓰러뜨린 뒤였다. 지금은 오직 그와 흉터남, 그리고 또 다른 흉터남의 부하 한 명이 서로 대치 중인 상태였다.강주환이 입고 있는 옷은 한눈에 봐도 아주 고급스러워 보였고 귀티가 흘렀으며 절대 사채업자일 리가 없었다. 그는 자신이 호진 그룹의 대표님이라는 신분을 밝힌 후 구석에 웅크리고 있는 윤성아를 향해 성큼성큼 다가갔다.빠르게 피 묻은 겉옷을 벗어들고 윤성아 앞에 다가가 몸을 숙였다.“이젠 괜찮아, 집에 가자.”윤성아는 무릎에 파묻었던 고개를 들었다.하늘은 어느새 노을이 졌고 붉은 노을빛이 낡아빠진 창문을 통해 들어와 눈앞에 있는 남자를 비추었다. 노을빛에 비친 남자의 그림자는 더욱 길고 거대했다.그는 검은색 정장 바지에 흰 셔츠만 입고 있었다. 비록 셔츠에 피가 살짝씩 묻어있었지만 따스한 표정을 짓고 있는 그의 준수한 얼굴을 보니 그녀는 마음이 놓였다.이마 부분엔 사채업자들한테 맞았는지 부어올라 있었지만, 그의 사람을 홀리는 미모에 전혀 영향 주지 않았다.“이제 괜찮아.”그의 목소리는 여느 때와는 달리 너무나도 부드러웠다. 벗은 겉옷을 윤성아의 몸에 걸쳐주며 그녀를 꽈악 껴안았다. 그리곤 그녀를 들어 올려 차에 태웠다...강주환은 윤성아를 데리고 엠파이어 가든으로 돌아왔다.돌아온 뒤에도 그는 여전히 몸을 덜덜 떨고 있는 그녀를 끌어안고 있었고 다정하고 부드러운 목소리로 천천히 그녀를 달랬다.“괜찮아, 이젠 안전해졌어. 괜찮아, 응?”그는 계속 그녀를 달랬다.“내가 있으니까 누구도 널
강주환은 이글이글 타오르는 눈길로 말했다.“그러니까 책임져.”윤성아는 순간 머릿속이 하얘지는 것 같았다. 그녀는 말까지 더듬으며 말했다.“어, 어떻게 책임을 지는데요?”“그건 네가 더 잘 알잖아.”남자는 윤성아의 손을 잡았다. 그리고...그렇게 윤성아는 다시 강주환의 곁으로 돌아오게 되었다. 결국, 그의 내연녀가 되는 운명을 벗어나지 못했다.강주환은 기분이 아주 좋았다. 윤성아가 다시 곁으로 돌아왔기에 그는 베린 그룹과 나엽 또한 원래 상태로 돌려주었다.모든 게 그렇게 잘 흘러가는 것 같았다.윤성아는 얌전히 그의 곁에 있었다. 낮에는 집에서 책을 읽으며 공부를 했고 가끔 마트로 가서 장을 봤다. 그리고 밤이면 강주환과 둘만의 시간을 보냈다.사람들 앞에 나설 수 없는 것만 빼면 그녀는 강주환과 평화로운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강주환도 예전보다 더 그녀를 아껴주고 있었고 매일 밤 몸을 섞고 나면 항상 그녀를 다정하게 끌어안아 마치 부부의 생활을 보내는 듯한 기분이었다.그러나 두 사람의 소식을 들은 안효주는 화가 나 미칠 지경이었다.그날, 안효주는 심지어 두 눈으로 직접 강주환이 엠파이어 가든으로 들어가고 밤새 그곳에 머물렀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너무 화가 난 나머지 그녀는 메슥거림을 느꼈다. 그러다 문득 생리가 언제부턴가 오지 않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그녀는 바로 그곳을 떠났다. 너무 일찍 했던 터라 문 연 약국은 없었고 안효주는 대충 아무 약국 앞에서 문 열기만을 기다렸다가 바로 임신테스트기를 구매했다.아침이 밝고 윤성아는 먼저 일어나 강주환에게 아침밥을 만들어 주었다.기분이 좋아 보이는 강주환에 그녀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대표님, 저 이제 그만 집에 박혀있고 싶어요. 저도 일하고 싶어요. 다시 베린 그룹으로 돌아가도 될까요?”강주환은 바로 미간을 구겼다.“일하고 싶은 거라면 호진으로 와. 다시 원래 자리를 만들어 주지.”윤성아는 거부했다. 호진 그룹보다 그녀는 베린 그룹의 업무 분위기를 더 좋아했고 직장 동료도 그녀
방 안에 가만히 있던 윤성아는 갑자기 눈을 번쩍 떴다. 그녀는 분명히 들었다. 고은희가 큰 목소리로 강주환을 부르는 것을 말이다. 물론 안효주가 임신했다는 말도 똑똑히 들었다.‘둘이 진짜 살림 차리기로 한 건가?’윤성아는 강주환과 4년이라는 시간을 함께 보냈다. 아무것도 모르는 순진한 시절부터 지금까지 장장 4년을 말이다.그녀는 강주환에게 아무것도 바라지 않았다. 하지만 사람 마음이라는 게 생각처럼 되는 것이 아니었다. 그래서 그녀는 자신은 절대 양지에 나갈 수 없는 존재임을 되새기고 또 되새겼다.반년 전 강주환과 송유미가 약혼했을 때 자신은 이미 떠나야 했다고 윤성아는 생각했다. 가정 있는 남자의 사생활에 끼어든 결과는 파국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파국이란 어떤 것인지 윤성아보다도 잘 아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녀는 자신이 죽을 뻔한 건 물론이고 아이까지 잃고 말았으니 말이다. 하지만 반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강주환은 그녀를 포기하지 않았다. 그렇게 두 사람은 또다시 한데 얽히고설키고 말았다.그날 밤 강주환은 백마 탄 왕자처럼 나타나서 평소의 냉철함도 잃은 채 오로지 윤성아를 위해 사채업자와 싸워줬다. 그리고 가장 부드러운 목소리로 그녀가 좋다고, 그녀 외에는 아무와도 몸을 섞지 않겠다고 말았다.하지만...‘거짓말... 역시 다 거짓말이었어. 하긴 남자가 침대에서 한 말을 믿은 내가 바보지.’만약 강주환이 말한 대로 했다면 안효주가 임신했을 리가 없을 것이다. 그것도 그의 아이를 말이다.“하하...”윤성아는 작게 웃음소리를 냈다. 얼굴에는 씁쓸함과 비웃음으로 가득했다. 가슴은 커다란 돌에 깔린 것처럼 숨이 올라오지 않아 너무나도 괴로웠다.몸은 얼음물에 빠진 것처럼 추웠다. 구해줄 사람 하나 없는 차가운 얼음물 말이다. 뼈에 사무치는 외로움에 윤성아는 몸을 웅크리고 다리를 꽉 끌어안았다. 그런데도 몸은 도무지 따듯해지지 않았다.한동안 몸을 웅크린 채 가만히 있던 윤성아는 평평한 배를 쓰다듬었다. 이미 사라진 작은 생명과 다시는 생명을 품
이튿날.강주환은 안효주와 함께 운성시로 향했다. 이번에는 고은희도 함께 안효주의 친정에 방문했다. 두 집안 사람이 함께 저녁 식사를 하는 모습은 그날로 사진 찍혀 뉴스로 보도되었다.운성에서 돌아온 다음 강주환은 안효주와 함께 병원에 갔다. 그리고 고은희의 요구하에 그녀는 완전히 강주환의 집에서 살게 되었다. 그녀의 태교를 위한 결정이라고 했다.고은희가 감시하고 있던 탓에 강주환은 이틀 연속 꼬박꼬박 집에 돌아가서 두 사람과 함께 식사했다. 그러자 그와 같은 방을 쓰고 싶었던 안효주가 잔머리를 굴리면서 말했다.“어머님, 의사가 그러는데 아이가 아무리 작다고 해도 알 건 다 안대요. 그래서 태교는 일찍 시작해야 한댔어요. 태교에서 가장 중요한 건 남편이라는데, 저랑 주환 씨는...”안효주는 서운한 표정으로 시선을 떨구더니 조심스럽게 말을 이었다.“주환 씨는 저를 싫어하는 것 같아요. 저한테 항상 차갑게 굴어서 서운할 정도라니까요.”고은희는 곧바로 안효주의 뜻을 알아차렸다. 집안 출신이 마음에 드는 데다가 일찍이 그녀를 어머니라고 부르면서 싹싹하게 굴던 예비 며느리가 기특하게 임신까지 해줬으니, 그녀는 당연히 안효주의 편을 들어줘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안효주의 손을 쓰다듬으며 다정하게 말했다.“걱정하지 마. 내가 당장 주환이한테 말해서 둘이 같은 방을 쓰게 할 테니까!”고은희의 예상과 다르게 강주환은 단호하게 거절해 버렸다. 그리고 논리정연하게 고은희를 설득하기도 했다.“저는 한창 혈기 왕성할 나이인데 그건 좀 아니지 않나요? 임신한 사람이랑 같은 방을 쓰다가 사고라도 나면 어떡해요?”고은희는 강주환의 말에 바로 설득되었다. 젊은이의 충동 때문에 소중한 손주가 다치는 것은 원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바로 없던 일로 하기로 했다.저녁 식사가 끝난 다음 강주환은 외출 준비를 했다. 그러자 고은희가 곧바로 그를 불러 세우면서 말했다.“이 시간에 어디로 가는 거니?”강주환은 미간을 찌푸렸다. 윤성아를 한동안 만나지 못했던 그는 한시 빨리
강주환은 단호하게 안효주를 뿌리쳤다.“내가 전에도 말했지? 내 사생활에 간섭하는 일은 없어야 한다고. 그때는 성아가 그리운 마음에 너를 대체품으로 뒀어. 하지만 대체품이 설사 내 아내가 된다고 해도 대체품일 뿐이야. 내가 밖에서 누굴 만나든 넌 간섭할 자격이 없어. 성아를 만날 생각도, 감히 다치게 할 생각도 하지 마. 안 그러면 너는...”강주환은 위험하게 번뜩이는 눈빛으로 싸늘하게 경고했다.“송유미보다 훨씬 처참한 최후를 맛보게 될 거야. 이번 일로 어머니한테 들먹이며 나한테 협박할 생각은 하지 마. 네가 그러면 그럴수록 더 미움만 받게 될 테니까.”말을 마친 강주환은 안효주를 밀어내고 차에 올라탔다.혼자 밖에 남은 안효주는 화를 주체하지 못하고 몸을 벌벌 떨었다. 그녀는 운성 안씨 가문에서 태어난 고귀한 재벌이었다. 근데 왜 도박꾼의 딸, 더러운 피를 타고난 여자의 대체품이 되어야 하는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그 여자가 할 수 있는 걸 나라고 왜 못 하겠어? 나도 할 수 있어! 그 여자만 빠져주면 돼! 그 여자만 빠져주면 주환 씨는 나랑만 만날 거고, 나랑 주환 씨의 행복한 생활에 개입할 사람도 사라지는 거야!’...얼마 후, 호진 그룹이 M국에서 중요한 미팅이 있어서 강주환이 일주일간 출장을 가게 되었다.강주환이 출장 간 첫날, 베린 그룹은 또 하나의 프로젝트를 따낸 것을 축하하기 위해 회식을 한다고 했다. 그가 자리를 비우니, 윤성아는 집으로 돌아가 식사를 준비하거나 따로 허락받을 필요가 없었다. 그래서 쿨하게 회식에 참석하기로 했다.지난번처럼 필름이 끊기지 않기 위해 윤성아는 무턱대고 술을 마시지 않았다. 동료들이 함께 마시자고 해도 적당히 거절하면서 빠져나갔다. 그래도 회식 막바지에 가자 약간 알딸딸해졌다.회식 자리에서 천우혁이라는 남자는 윤성아를 관심 있게 바라보고 있었다. 그는 베린 그룹의 게임 엔지니어로 24살의 나이에 컴퓨터 천재로 평가받았다.얼굴이 꽤 잘생겼던 천우혁은 특히 미소가 가장 매력적이었다. 교회 오빠를 떠올
천우혁은 잠깐 멈칫하다가 머리를 끄덕였다.“네.”“하지만 저는 우혁 씨한테 관심 없어요. 연애할 생각은 더욱 없고요. 그러니 저한테 시간 낭비하지 말았으면 좋겠어요.”윤성아는 깔끔하고도 단호하게 거절했다. 천우혁의 상처받은 얼굴은 곁에 있던 동료 비서가 다 속상할 정도였다.“괜찮아요.”천우혁은 금당 다시 밝은 미소를 되찾았다. 그리고 초롱초롱한 눈빛으로 굳건하게 윤성아를 바라보며 말했다.“그래도 저는 성아 씨가 좋아요. 좋아하는 건 제 일이고 제 마음이니 거절하지 말아줬으면 해요. 성아 씨가 거절한다고 해도 괜찮아요. 제가 포기하지 않을 테니까요.”천우혁은 집요하기도 하고 열정적이기도 했다. 그리고 이날을 시작으로 갑작스러운 애정 공세를 시작했다.그는 매일 같이 윤성아의 자리로 가서 디저트와 마실 것을 선물했다. 윤성아뿐만 아니라 같은 사무실을 쓰는 동료 비서의 것도 있었다. 윤성아가 수도 없이 거절했는데도 그는 자기 마음이라고 우기며 멈추지 않았다.얼마 지나지 않아 회사의 대부분 사람이 다 천우혁이 윤성아를 좋아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물론 원이림도 포함해서 말이다.오늘 윤성아는 결재받을 일이 있어서 대표이사실에 가게 되었다.“대표님, 결재받을 서류를 가져왔어요.”“이리 줘.”원이림은 서류를 살펴보다가 금방 사인했다. 그리고 윤성아에게 다시 건네주면서 무심한 듯 물었다.“천우혁 씨가 윤 비서를 좋아한다고 하던데, 사실이야?”“네.”윤성아는 남 일이라도 되는 것처럼 덤덤하게 말했다.“너는 어떻게 생각해? 너는... 천우혁 씨를 좋아해?”“아니요.”단호하게 머리를 흔드는 윤성아의 모습에 원이림은 마음이 놓였다. 하지만 티를 내지 않고 그녀에게 말했다.“그러면 내가 앞으로 회사에서는 조심해 달라고 일러둘게. 계속 이러는 건 회사 분위기에도 좋지 않으니까.”“고마워요, 대표님.”윤성아는 감정 없는 눈빛으로 원이림을 바라보며 물었다.“혹시 다른 할 말이 있으실까요?”“없어, 이만 나가 봐.”윤성아는 머리를 끄덕이더니 서
여은진은 아주 호탕한 사람이었다. 그리고 현재 베린 그룹 비서실의 실세이기도 했다.시끄러운 구경꾼들을 몰아내고 난 여은진은 윤성아의 곁으로 다가가서 그녀의 어깨를 툭툭 치면서 말했다.“다른 사람 말은 들을 것 없어요. 성아 씨만 자기가 어떤 사람인지 알면 돼요. 저는 원 대표님의 안목이 틀리지 않았을 것이라고 믿거든요. 자, 이젠 일하러 갈까요?”이날 결과적으로 베린 그룹의 모든 사람이 윤성아가 호진 그룹 강주환 대표의 내연녀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천우혁도 포함해서 말이다.이러한 사실에도 천우혁이 윤성아에 대한 열정을 꺾지 못했다. 그리고 모든 사람에게 자신이 좋아하는 사람은 절대 누군가의 내연녀일 리가 없다고 말하고 다녔다.퇴근길, 천우혁은 급기야 999송이의 장미꽃과 깔끔한 정장을 무기 삼아 베린 그룹 아래에서 윤성아가 나타나기만을 기다렸다.“성아 씨, 사랑해요!”천우혁은 높은 목소리로 자신의 마음을 고백했다. 그러고는 긴장한 듯 떨리는 목소리로 이어서 물었다.“제 여자친구가 되어줄 수 있어요?”때는 퇴근 시간이라 회사 아래에는 많은 사람이 있었다.“사귀어라!”“사귀어라!”모든 사람이 한마음으로 외치고 있었다.천우혁의 도를 넘은 행동에 윤성아는 슬슬 불쾌해지기 시작했다. 그래도 사람이 많을 때 거절하면 더욱 효과적일 것 같아서 입을 열려고 할 때 핸드폰이 울리기 시작했다.핸드폰 화면을 확인하고 난 윤성아는 몸을 흠칫 떨었다. 그리고 진동이 몇 번 더 울리고 난 후에야 수락 버튼을 눌렀다.전화 건너편에서는 남자의 불쾌한 듯한 목소리가 들려왔다.“회사 앞이야. 빨리 와.”“...”윤성아는 놀란 표정으로 두리번거리다가 멀지 않은 곳에 세워져 있는 차를 발견했다. 선팅이 되어 있는 관계로 차 안이 보이지는 않았다. 그런데도 그녀는 남자의 차가운 눈빛이 느껴지는 것 같았다.이때 전화 건너편에서 남자의 목소리가 또다시 들려왔다.“네가 스스로 올래? 아니면 나한테 끌려올래?”“제가 스스로 갈게요.”전화를 끊은 윤성아는 바로 남자
아침, 강주환은 직접 윤성아를 회사까지 데려다줬다. 그리고 차에서 내린 그녀는 마침 한 동료와 마주쳤다.동료는 점점 멀어지는 강주환의 차를 바라보면서 말했다.“성아 씨, 어제도 저 차를 타고 가지 않았어요? 혹시 남자친구?”“...”윤성아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강주환과 다시 만나기 시작한 후로부터 그녀는 많은 것을 받았다. 어떻게 보면 정말 연애하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겠지만 사실은 절대 그렇지 않았다.“남자친구는 무슨. 저 차 강주환 대표님 차잖아요.”이때 한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목소리의 주인은 윤성아를 향해 성큼성큼 걸어가더니 그녀의 손목을 확 잡으면서 말했다.“언니 아직도 강 대표님이랑 만나고 있었어요?”윤성아는 미간을 찌푸리며 익숙한 얼굴의 여자를 바라봤다.“지수 씨가 어떻게 여기에 있어요?”“언니랑 사이좋게 지내던 것 때문에 호진에서 해고당했지 뭐예요. 하지만 괜찮아요. 오늘부터 저는 베린 그룹의 직원이니까요.”갑자기 나타난 김지수와 천우혁을 좋아하는 동료 비서는 윤성아가 강주환의 내연녀라는 사실을 정식으로 홍보하기 시작했다. 그러자 그녀는 전과 다름없는 처지에 떨어지게 되었고 가는 곳마다 손가락질당하기 십상이었다.이 일은 결국 원이림의 귀에도 들어갔고 그는 실망한 표정으로 윤성아를 불러서 말했다.“내가 윤 비서와 강 대표에 관한 이상한 소문을 들었는데...”“사실이에요.”윤성아는 차가운 표정으로 쿨하게 인정했다.“혹시 강 대표님이 우리랑 계약을 취소한 것 때문에 그래? 그런 거라면 윤 비서가 신경 쓸 필요 없어. 회사가 파산한다고 해도 내가 감당할 테니까. 윤 비서는 내 비서이기 전에 친구이기도 해. 나는 윤 비서가 가망 없는 예전 생활로 돌아가는 걸 원하지 않아.”같은 시각.강주환이 금지령을 푼 순간부터 나엽은 24시간이 모자랄 정도의 빽빽한 스케줄을 소화해야 했다. 겨우 시간을 내서 집에 돌아갔을 때는 윤성아가 이미 이사 가고 없다는 것을 발견하고 말았다.나엽은 바로 윤성아에게 전화를 걸어서 확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