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다른 이유는 양나나도 의술과 독술에 능했다. 양나나가 따라 가면 많이 배울 수도 있고 도움도 될 것이다.그래서 남서훈이 양나나를 함께 데리고 간다고 했을 때 용준이 거절하지 않았던 것이다.마당에 들어선 후 용준은 어제처럼 밖에 서 있었다.감히 한 발짝도 더 들이지 못했고 저녁이 되어서야 들어가서 예서를 볼 수 있었다. 만약 예서가 깨어있을 때 그를 보게 되면 자극을 받고 발작할까 봐 그런 것이다.남서훈과 양나나가 안으로 들어갔고 예서는 남서훈을 보더니 순간 얼굴에 미소가 번졌다.“남 선생님, 오셨어요?”“네.”남서훈은 고개를 끄덕였다.예서는 남서훈 옆에 따라 들어온 양나나를 보더니 눈빛이 번쩍이며 즉시 물었다.“남 선생님, 이 아이는 선생님 아들인가요? 눈썹이 선생님이랑 똑 닮았네요. 너무 잘생겼어요!”남서훈은 당황해하면서 인정하지도, 부정하지도 않았다. 그저 화제를 돌리면서 예서에게 말했다.“이 아이의 이름은 남희예요. 남희도 피아노를 칠 줄 알아요.”그러자 예서의 눈빛이 다시 번쩍였다.“진짜요?”양나나는 다가와서 손을 뻗어 예서의 손을 잡고 빛나는 별처럼 반짝이는 두 눈으로 예서를 바라보면서 말했다.“이모, 전 오래전부터 피아노를 배웠지만 이모만큼 잘 치지는 못해요. 하지만 원하시면 언제든지 들려드릴 수 있어요.”그러자 예서가 답했다.“나야 좋지.”그녀는 양나나의 손을 잡고 피아노 앞으로 끌고 가서 앉았다.앙나나의 피아노 연주를 들은 후 예서는 박수를 쳤다.“정말 잘 치네.”그러고는 남서훈과 양나나의 기대에 찬 눈빛에 못 이겨 직접 한 곡 연주했다.남서훈과 양나나가 예서와 함께 시간을 보내주었고 오전 시간 동안 그들은 예서와 많이 친해졌다.떠나기 전에 남서훈이 입을 열었다.“예서 씨, 제가 먼저 예서 씨 몸 해독을 시도해 봐도 될까요?”예서는 그 말에 몹시 당황했다. 애써 미소를 지어 보이려 했지만 예쁜 그녀의 얼굴에 쓴 미소가 번졌다.“괜찮아요. 제 몸 해독할 수 있는 사람은 없을 거예요. 게다가 전 해독
용준은 미리 다 준비를 마쳤다.예전에 왔던 의사들도 차례로 남서훈이 지금 머물고 있는 마당에서 지냈는데, 예서가 중독된 것을 보아낸 의사들도 몇 명 있었고 최선을 다해 치료 방법을 연구했었다. 심지어 그들 중 한 의사는 여기서 일 년 가까이 머물면서 여러 가지 의학 실험을 했었다. 그러나 결과는 좋지 않았다.남서훈은 실험실로 들어가서 먼저 예서의 몸속에 있는 독소가 도대체 무엇인지 검사해 봐야 했다. 독소의 정체를 알아내야만 그에 대응하는 해독제를 개발해 낼 수 있기 때문이다.한편.마샤 아라벨라는 벌써 중독된 지 사흘이 지났다.이 사흘 동안, 마샤는 매일 죽을 것 같은 고통을 겪었다. 얼굴과 몸을 빽빽하게 덮은 고름 상처를 보고, 몸에서 풍기는 악취를 맡고, 하인들이 너무 겁에 질려하며 역겨워서 가까이 오기조차 두려워하는 모습을 보자 마샤는 이성을 잃고 분노하면서 물건을 부수고 하인들을 처벌했다.화가 나다 못해 히스테리까지 부렸다.“나쁜 년! 그 망할 년이 어떻게 감히 내게 이럴 수 있어? 반드시 그년을 잡아서 이 모든 걸 되찾을 거야! 뼈까지 발라버릴 거야...”그리고 욕을 실컷 하기도 전에 벌써 온몸이 아파지기 시작했다.개미 수백 마리가 심장을 갉아 먹는 것 같은 느낌, 몸의 모든 장기, 살과 피부가 아주 무딘 칼로 긁히는 것 같은 느낌과 동시에 가렵다 못해 미칠 것 같았다.마샤는 차라리 죽고 싶었다. 독이 발작할 때마다 그녀는 버티지 못하고 죽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정작 죽을 것처럼 아파도 정말 죽지는 않았다.마샤는 더 이상 견딜 수 없었다. 그녀는 고통 속에서 엄마의 손을 꼭 붙잡고 점점 초점이 흐려지는 두 눈으로 옆에 있는 부모님을 바라보며 외쳤다.“아빠, 엄마, 살려주세요. 제발, 저를 구할 방법을 찾아주세요.”하지만 어떻게 구할 수 있을까?마샤의 아버지는 오래전에 X 국에서 많은 의사들을 초대해 진찰하게 했다. 하지만 그들은 모두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자신들이 할 수 있는 일이 전혀 없다고 말했다.“그럼 가서 그
여신 그룹의 막대한 자산이 뒷받침 해주지 않았다면 그룹에서 가장 오래된 향수 및 화장품 회사는 이미 파산했을 것이다.여은진은 새출발을 위해 조향에 몰두하기 시작했고, 향수와 화장품을 연구하며 여신 그룹의 향수 및 화장품회사를 살리기 위한 일에 모든 정력을 쏟아부었다.그녀는 매일 바빴다.원승진도 점차 여요한을 데려가서 보내는 시간이 길어졌다. 나중에는 매일 아침 와서 여요한을 데려갔다. 그렇게 하루 종일 여요한을 돌보고 저녁이 되면 다시 여은진네로 돌려보냈다.그러던 어느 날.여은진은 회사에서 돌아와 샤워하고 옷을 갈아입었다.별장에서 나와 원승진이 살고 있는 옆 별장으로 걸어갔다.별장 대문은 열려 있었고 여은진이 안으로 들어가자 멀리서 여요한의 웃음소리가 들려왔다.그녀는 저도 모르게 입꼬리가 올라갔다. 여요한의 웃음소리 덕분에 갑자기 기분이 좋아졌다.하지만 여은진이 집 안으로 들어서려던 그때 별장 거실에서 원승진과 원이림이 대화하는 소리를 듣게 되었다.“이림아, 이렇게 계속 숨기는 건 해결책이 아니야. 과거에 네가 나쁜 짓을 하고 착한 은진이에게 상처를 줬지만, 은진이는 마음이 넓어서 너한테 따지지 않고 요한이 같은 사랑스러운 아이까지 낳았잖아. 은진이의 마음을 얻고 싶으면 태도를 보여야 해. 이렇게 숨어서 요한이를 몰래 돌보는 게 무슨 소용이야?”원승진은 답답한 건 딱 질색이었다. 여러 번 아들을 데리고 가서 용서를 구하고 여은진에게 무릎을 꿇게 하고 싶었다.그러나 그는 원이림도 사실 그와 함께 이사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 여은진이 화를 내고 그에게까지 손자를 볼 수 없게 할까 봐 두려웠다.그래서 원승진은 아무것도 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쓸모없는 아들놈 원이림이 숨을 수 있도록 도와야 했다. 혹시 여은진이 집에 오게 되면 들키지 않도록 원이림을 숨겨줘야 했다.하지만 언제 끝날까?원승진은 여은진과 원이림이 결혼하여 자신이 요한이를 돌보면서 한 가족이 함께 행복한 삶을 살 수 있기를 매우 희망했다.그러나 정작 당사자들은 서두르지 않고
여은진은 화가 났지만 여전히 교양과 예의를 지켰다.원승진의 말이 끝난 뒤에야 입을 열었다.“어르신, 저랑 이림 씨는 오래전부터 가능성이 없었어요. 저는 앞으로 결혼할 생각도 없고요, 그저 요한이를 잘 돌보면서 살고 싶어요.”말을 마치는 그녀는 원이림을 바라보며 말했다.“그러니까 이림 씨도 요한이 데려갈 생각하지 마요. 저는 이미 포기했어요. 다시는 요한이 때문에 잘못된 선택을 하지 않을 거예요. 그리고 누군가가 요한이를 가지고 저의 마음을 통제하려는 건 딱 질색이에요.”원이림은 눈살을 찌푸리고 설명하려고 입을 벌렸지만 말을 내뱉지 않고 다시 삼켰다.여은진의 성격을 잘 알기 때문이다. 10년 동안이나 남몰래 그를 사랑하고 따라다녔던 것처럼 한 번 결정을 내리면 얼마나 집요한지를 그는 알고 있었다.그녀가 포기하고 싶을 때도 마찬가지였다.원이림도 별다른 방법이 없어서 요한이를 이용해 여은진에게 한 번만 기회를 달라고 애원하려 했었다.여은진은 요한이를 안은 채 떠나려고 했는데 분위기가 심상치 않은 것을 감지했는지 요한이가 갑자기 울기 시작했다. 그것도 떠나갈 듯이 큰 소리로 말이다.원승진은 그 모습을 보고 마음이 너무 아파 다가가면서 말했다.“은진아, 요한이가 심하게 우니까 내가 먼저 안아서 달래주면 어떨까? 이제 울음이 그치면 데려가도 되잖아?”그러나 여은진이 차갑게 거절했다.“괜찮아요.”아들이 우는 것을 보자 그녀도 가슴이 찢어질 듯 아팠지만 마음을 굳게 먹고 요한이를 안고 떠났다.원승진은 돌아서서 원이림을 세게 때렸다.“쓸모없는 놈, 너만 아니었으면 요한이 엄마가 요한이를 데려가지 않았어. 그렇게 슬프게 울지도 않았을 거고. 아이고, 마음이 아프네.”원이림도 당연히 마음이 아팠다. 요한이가 큰소리로 서글프게 우는 것도 걱정되었지만, 여은진이 냉담한 태도로 결연하게 떠나는 것을 보자 심장이 부서지는 듯 아팠다.하지만 모든 것이 그의 잘못이었고 여은진이 이런 태도를 보이는 게 당연했다.그녀가 냉담한 태도로 원이림을 대하고 그를 용서
고작 하루를 보지 못했는데 너무 보고 싶었다.원승진은 줄리아에게 부탁했다.“일단 날 들여보내 주면 안 돼요? 은진이는 이 시간대면 출근했잖아요. 들어가서 요한이를 잠깐 보고 나올게요. 줄리아 씨가 말하지 않으면 은진이도 모를 거예요. 정말 그냥 보고만 나올게요. 절대 밖으로 데려가지 않을 거라니까요.”그러나 줄리아는 원승진을 집 안으로 들여보내 주지 않았다.그녀는 원승진에게 말했다.“사모님께서 오늘 출근 안 하셨습니다. 오늘은 집에서 쉬고 계세요. 그리고 절대 어르신을 집으로 들이지 말라고 당부하셨으니 무슨 말씀을 하셔도 들여보낼 수 없습니다. 죄송해요. 어르신, 이만 돌아가세요.”결국 원승진은 요한이를 보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별장 안으로 들어가지도 못했다.그는 고개를 떨구었다. 70이 다 된 노인은 몸은 아직 튼튼했지만 허리는 많이 구부려져 있었다.원승진은 지팡이를 짚고 있었고 구부정한 몸에는 낙담과 슬픔이 가득했다.이때 여은진은 2층 창문 앞에 서 있었다.그녀는 벨소리를 듣고 원승진이 왔을 거라 예상하고 침대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창문 앞으로 다가가 모든 것을 지켜보고 있었다.원승진이 떠나는 뒷모습을 보자 사실 조금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여은진은 창가에 한참 서 있었고 원승진이 옆집 별장으로 들어갈 때도 계속 거기에 서 있었다.점심때 여은진은 아래층으로 내려가 밥을 먹고 오후에도 회사에 나가지 않았다. 이미 충분히 휴식한 그녀는 요한이와 함께 놀아주었다.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요한이가 또 울기 시작했다.여은진이 요한이를 안고 달래주었지만 아무리 달래주어도 소용이 없었다. 요한이는 큰 소리로 울면서 팔을 쭉 내밀어 여은진에게서 벗어나려고 발버둥 쳤다. 밖에 나가서 놀고 싶어 하는 듯했다.여은진은 어쩔 수가 없어 줄리아를 불러 요한이를 안고 같이 밖으로 나갔다. 요한이를 데리고 바닷가로 가서 좀 놀다가 다시 돌아오기로 했다.그런데 별장을 나서자 눈가에 눈물이 고여 있는 요한이는 옆집 별장으로 가고 싶은 듯 몸을 그쪽으로 돌렸다
보채고 있는 요한을 안고 달래는 남자의 잘생긴 얼굴에는 부성애가 넘치는 자상함이 그득했다.“우리 요한이 착하지? 그만 울어, 응? 우리 사내대장부 맞지? 할아버지랑 아빠가 보고 싶었어?”가늘고 긴 손가락으로 아이 얼굴의 눈물을 닦아내며 듣기 좋은 중저음으로 계속하여 살살 달랬다.“어디 보자, 요한이 얼굴이 얼룩 고양이가 됐네? 아빠가 둥개둥개 비행기 태워줄까? 아...”원이림은 문득 뭔가를 깨달은 표정을 지었다.“요한이 그 놀이터 가고 싶구나? 거기 가서 놀고 싶어서 운 거야?”요한은 원이림의 품에 안긴 지 얼마 되지 않고부터 울음을 뚝 그쳤다. 비록 몇 달밖에 안 되는 아기지만 사람을 알아볼 수 있었고, 낮에는 원승진, 원이림과 같이 노는 것에 익숙해져 오늘 그들이 보이지 않자 울음을 터트렸던 것이다. 하나 지금은 거의 그치고 흑진주 같은 눈망울에 눈물만 그렁그렁한 채 원이림을 쳐다보며 끄억끄억 작게 흐느낄 뿐이다.“아유, 착해라...”원이림은 아이를 안고 별장으로 걸어갔다.“아빠랑 놀이터 가자...”그러자 원승진이 여은진을 보며 자애롭게 말을 걸어왔다.“은진아, 너 오늘 바쁜 거 아니면 우리 집에 같이 갈래? 요한이 노는 것도 보고 같이 놀아주기도 하면서 말이야. 지 아빠가 놀이터 만들어줬는데 엄청 좋아해.”여은진은 제안에 거절하지 않고 함께 별장으로 걸어들어갔다. 대문을 지나 뒷마당으로 향하며 여은진은 눈앞의 광경에 조금 멍해지고 말았다.원승진이 사들인 이 별장은 앞마당에 정자와 화초가 적당하게 어우러진 2층짜리 단독주택으로, 여은진이 살고 있는 별장과 같은 구조였다. 그러나 뒷마당은 그녀의 집과 완전 딴판이었다.면적도 무려 300평이나 되는데, 기존에 살고 있던 주인은 뒷마당에 매우 큰 유리 하우스를 지었고, 그 옆에는 유기농야채와 과일들을 심는 밭을 만들었었다.전에 그 주인은 심은 채소와 과일들을 여은진한테 가져다 주기도 했고, 그녀가 아직 임신 중일 때 집주인의 요청으로 유리 하우스에 와서 거기에 심은 진귀한 품종의 화초를
딴 열매를 원이림은 세심하게 그 속의 씨를 제거하고, 전과 같이 새콤달콤한 과즙이 흘러내리는 체리를 요한의 입안에 넣어주었다.요한은 오물오물 잘도 받아먹었다. 워낙에 식탐이 있는 요한은 싫은 내색 없이 주는 대로 전부 받아먹고는 즐거운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이유식 추가한 지도 얼마 되지 않은 생후 네댓 달 된 아이에게, 원이림은 너무 많이 먹게 할 생각이 없었다.몇 알만 먹이고 입에 넣어주던 동작이 멈춰버리니 요한은 그 탐스럽고 빨갛게 익은 체리를 뚫어져라 쳐다보며 군침을 입 밖으로 흘렸다.그 모습에 원이림은 픽 웃음을 터트리며 자상하고도 단호한 말투로 말했다.“안 돼. 오늘은 이만큼이면 됐어. 내일에 또 먹자, 요한아.”요한은 알 듯 모를 듯 아리송한 표정으로 체리를 계속 입에 가져다 넣으려고 했다. 그런데 그때 원승진이 작은 과일 바구니를 들고 나타나자 입에 넣으려다 말고 습관적으로 손에 쥔 열매를 얌전히 바구니에 넣었다.그 후 원이림은 아이를 안고 신선한 자두와 복숭아를 몇 개 더 따고, 원승진은 밭에서 참외를 서너 개 따서 바구니 속에 함께 집어넣었다.아이와 더 놀고 싶었지만 오늘은 특별한 상황이니만큼 원승진은 아이를 일찍 돌려보내기로 하였다. 괜히 또 여은진이 기분 나빠할까 봐서였다. 그리하여 속으로는 미련이 남았지만 꾹 참고 원이림한테 얘기했다.“인제 그만 네가 요한이를 안고 집에 돌려보내거라.”“네.”원이림도 순순히 대답했다.그는 한쪽 팔에 요한이를 안고 또 다른 한 손에는 바구니를 들고 뒷마당에서 걸어 나왔다. 원승진도 뒤를 따라 같이 별장 밖에까지 나와서는 시름이 놓이질 않아 당부를 덧붙였다.“너 이 자식, 태도 똑바로 하고. 은진이가 아무리 쌀쌀맞게 대해도 넌 성질 부리면 안 된다, 알았어? 그리고 가능하면 잘 얘기해 봐. 예전처럼 요한이를 매일 여기 데려다 맡길 순 없는지. 내가 애를 돌볼 테니까 은진이 걔는 할 일 하러 가라 하고.”원이림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아이를 안고 계속 앞으로 걸어갔다.그 뒤에서 잠
이윽고 커다란 몸집이 앞으로 성큼 다가왔다. 그한테서 뿜어져 나오는 강렬한 남성의 기운이 너무 위압적으로 느껴져 여은진은 저도 모르게 한 발짝 뒷걸음질을 쳤다.남자의 빨려 들어갈 것만 같은 새카만 눈동자가 그녀를 응시하고 있었다.“요한이를 달라며?”“아... 네.”여은진은 그녀와 고작 반보 떨어진 원이림을 향해 팔을 뻗어 그의 품에 안겨있던 요한이를 데려오려고 했다. 그러나 그때 원이림이 더 가까이 다가왔다. 그러다가 갑자기 삐끗한 것처럼 비틀거리며 중심을 잃었다. 너무 놀란 여은진은 생각할 틈도 없이 그를 부축했다. 동그랗게 뜬 눈매에 걱정이 어려있었다.“왜 그래요?”“아, 별거 아니야.”다시 똑바로 선 원이림은 짙고 어두운 눈으로 그녀를 보며 말했다.“죽을 고비를 넘긴 지 얼마 안 돼서 그런가. 몸이 아직 완전히 회복되지 않아서 허약해. 방금 다리에 쥐가 났는지 갑자기 힘이 풀려서...”진지하게 얘기하는 모습을 보고 여은진은 따로 의심하진 않았다.무사히 그의 품에서 요한이를 받아 안으니, 그가 떠날 준비를 하며 한마디 남겼다.“요한이가 울면서 혹시 날 찾게 되면, 언제든지 날 불러. 아직 몸이 이래서 휴양차 계속 별장에 있을 거야.”여은진은 그렇게 하겠다고도 안 하겠다고도 하지 않고, 그냥 아이를 안은 채 묵묵히 그가 떠나는 걸 보기만 했다.돌아서는 순간, 원이림의 입꼬리가 비스듬하게 올라갔다. 흑요석같이 검은 눈동자는 반짝거리며 빛이 났다.조금 전 반응으로 봐서 여은진도 그에 대한 감정을 다 내려놓았다고 볼 수는 없는 것 같았다. 분명 일말의 여지는 있었다. 그게 아니면 왜 가까이 다가서니 얼굴이 붉어지고, 쓰러질 뻔하니 그런 걱정되는 눈빛을 하고 있었겠는가.그녀의 마음을 되찾을 앞으로의 계획에 자신감이 더 붙었다.이튿날 아침, 여은진은 아침 식사가 끝나기 바쁘게 회사로 갔다.원승진은 와서 요한이랑 한참 놀아주다가 전처럼 애를 안고 그의 별장으로 갔다.줄리아와 시터 아주머니는 그를 저지하지 않았다. 여은진이 그리 하라고 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