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 얘기는 다음에 임문호 대표님과 따로 하고 오늘은 다른 얘기를 나누죠. 오늘은 원 대표님과 얘기를 나누고 싶어서 만든 자리거든요.”“...”원이림은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몰라 잠깐 침묵에 잠겼다. 그리고 자본주의 미소를 지으며 인사치레 말을 계속했다.“하하, 이거 참 부끄러운데요. 강 대표님과 얘기를 나누는 자리라면 저는 언제나 환영이에요. 오히려 그럴 기회가 없어서 문제죠.”눈치가 빨랐던 임문호는 곧바로 따라 웃으면서 말했다.“그 기회가 오늘 생겼으니 다 함께 한잔 마실까요? 강 대표님, 원 대표님, 진 비서님, 그리고...”임문호는 윤성아를 바라봤다. 호진 그룹 계열사의 대표로서 그는 당연히 윤성아가 누군지 알고 있었다. 그녀가 한때 호진 그룹의 수석 비서였다는 것도, 그리고 강주환과 스캔들이 있었다는 것도 물론 알고 있었다.송유미의 사건이 그토록 큰 주목을 이끌었으니 모르면 간첩이라고 할 지경이었다. 하지만 강주환도 모르는 척하는 마당에 임문호가 아는 척할 수는 없었으니, 그는 눈치껏 낯선 이를 대하듯이 행동했다.“저는 윤 비서라고 부르시면 됩니다.”“하하! 그래요, 윤 비서. 자, 저희 함께 한잔해요.”사람들은 다 함께 술잔을 들어 올렸다. 임문호 덕분에 그래도 분위기는 꽤 좋았다.강주환은 이 와중에서도 윤성아를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다가 호기심 어린 말투로 물었다.“원 대표님은 아주 특별한 비서를 뒀네요.”윤성아는 몸을 흠칫 떨었다. 그리고 강주환의 비서로 일한 4년간 배운 술자리 예절에 따라 몸을 일으키며 싫은 티 하나 없는 완벽한 미소를 지었다. 그러고는 술병을 들어 올리며 말했다.“강 대표님, 제가 한 잔 따라드릴게요.”윤성아가 술을 따르자마자 강주환은 바로 원샷해 버렸다. 그리고 또다시 그녀에게 시선을 고정한 채 술병을 들어 올리며 말했다.“이번엔 제가 따라줄게요.”“...”윤성아는 어쩔 수 없이 술을 받아 들고 강주환과 마찬가지로 원샷 했다. 그런 그녀가 걱정됐던 원이림은 작게 머리를 저으며 그녀의 귀가에 대
“젠장!”강주환은 윤성아를 목 졸라 죽이고 싶은 충동마저 들었다. 그리고 그는 실제로 윤성아의 목에 손을 대기도 했다. 눈빛은 마치 사냥감을 노리고 있는 사자와 같았다.“아주 잘하는 짓이다! 밖에서는 원이림이랑, 집에서는 나엽이랑 만난 거야? 그리고 그게 나랑은 상관없는 일이라고? 상관있는지 없는지는 두고 보면 되겠네!”강주환은 말을 마치자마자 가까이 다가가 입술을 겹쳤다. 익숙하도록 치명적인 향기가 코끝으로 밀려들었다. 비상계단에서 그냥 끝까지 하고 싶다는 충동이 드는 순간이었다. 그래서 그는 충동을 억제하지 않고 손을 아래로 내렸다.윤성아는 몸부림을 치며 강주환을 밀어내려고 했다. 하지만 그는 콘크리트 벽이라도 되는 것처럼 꿈쩍하지 않았고 윤성아는 그저 그의 손길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이곳은 비상계단이다. 아무리 오가는 사람이 적다고 해도 공공장소라는 말이다. 비상계단의 출입문이 언제든지 열릴 수 있다는 생각에 윤성아는 문득 서러워졌다. 눈물은 뚝뚝 떨어지다가 강주환의 입꼬리에 닿았다.강주환은 잠깐 멈칫하다가 윤성아를 바라봤다. 그러고는 불쾌한 표정으로 말했다.“처음도 아니면서 울긴 왜 울어? 혹시 몸을 지키고 싶어진 남자라도 생겼나?”“대표님 제발 그만 하세요. 저는 원 대표님과 그런 사이가 아니에요. 나엽 씨랑도 그냥 친구 사이일 뿐이에요. 대표님을 피할 생각도 없었어요. 안 그러면 영주시에 남아 있지도 않았겠죠. 저는 그저 대표님 약혼녀한테 더 이상 당하고 싶지 않을 뿐이에요.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저는 죽은 목숨 하나라고요.”윤성아는 눈물을 흘리며 말했다.그 모습에 강주환은 서서히 마음이 약해졌다. 그래서 손을 올려 윤성아의 눈물을 닦아주며 그녀의 볼을 어루만졌다. 그러고는 깊은 눈으로 그녀를 바라보며 물었다.“원이림이랑 그런 사이가 아니라는 게 사실이야? 나엽이랑도 그냥 친구 사이고?”“네.”“그래, 역시 내 여자다워. 잊지 마, 넌 영원히 내 거라는 걸.”강주환의 위압감은 금세 줄어들었다. 그리고 전보다 훨씬 부드러
윤성아는 차가운 눈빛으로 강주환을 바라보며 말했다.“대표님, 그만 하세요. 이건 성추행이에요. 계속 이러시면 저 진짜 고소할 거예요.”윤성아는 애써 덤덤한 표정으로 말했다. 마음속 깊은 곳의 두려움을 들키지 않기 위해서 말이다.“하하하.”강주환은 싸늘한 웃음소리를 내더니 윤성아를 뚫어져라 쳐다보며 물었다.“내 돈으로 4년이나 먹고 살아 놓고 뭐? 고소?”강주환은 윤성아를 향해 한 발짝 다가가더니, 그녀를 차가운 벽과 자신의 품속에 완전히 가둬버렸다. 그리고 자세를 낮추며 그녀의 귀가에 대고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뭐로 고소할 건데? 혹시 강간이라도 당했다고 할 건가?”윤성아는 빨간 얼굴로 주먹을 꽉 쥐었다.“안 될 건 없죠. 대표님이 오늘 한 일만 해도 이미 강간 미수로 고소하기에 충분해요. 호진 그룹의 대표로서 이런 일로 경찰서에 가게 되면 사람들이 어떻게 볼 것 같아요?”강주환은 화가 치밀어 올라 이성을 잃을 지경이었다.윤성아는 강주환을 밀어내고 비상계단의 출입문으로 향했다. 그리고 문손잡이에 손을 올린 순간 무언가 생각난 듯 머리를 돌리며 말했다.“참, 대표님의 현 약혼녀는 제 아버지의 죽음과 연관된 뺑소니 사건 때문에 고소당했어요. 대표님은 간섭하지 말았으면 좋겠네요.”강주환은 미간을 찌푸렸다. 그러고는 차가운 눈빛으로 윤성아를 노려보며 말했다.“네게 안효주를 고소할 능력이 있다고 생각해?”윤성아는 심장이 철렁 내려앉는 것만 같았다. 안효주의 말이 맞았다, 강주환은 역시 그녀보다는 약혼녀의 편을 들어줄 사람이었다.윤성아는 피식 웃더니 차가운 눈빛으로 강주환에게 말했다.“그래도 저는 강 대표님이 정직한 사람일 줄 알았어요. 아무리 큰 권력이 있다고 해도 법은 존중할 줄 아는 그런 사람이요. 근데 이제 보니 대표님도 다른 자본가들과 별반 다르지 않네요.”강주환은 자신이 정직한 사람이라고 생각한 적이 없었다. 필요할 때는 물론 법도 어길 수 있었다. 그래서 그는 단호한 말투로 윤성아에게 말했다.“내 사람을 위해서라면 정직 따
윤성아는 강주환의 곁으로 돌아가기를 원하지 않는다. 그녀는 새로운 생활, 평범한 생활을 원한다고 했다.‘허허, 평범한 생활이란 게 도대체 뭔데? 네가 떠나면 나는 어떻게 살라고 그러는 거야?’강주환은 무슨 수를 써서라든 윤성아를 놓쳐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그녀는 그의 소유물이니, 원하지 않는다고 해도 억지로 데려와야 했다.그렇게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강주환은 드디어 시선을 거두고 다시 차에 올라탔다. 하지만 그는 시동을 걸고 떠난 뒤에도 계속 윤성아만 생각했다.강주환은 윤성아가 과연 윤정월의 딸이 맞는지 알고 싶었다. 지금으로서는 일단 윤정월의 딸이 맞는 것 같았다. 아마 윤정월은 쌍둥이를 낳고 키울 형편이 되지 않아 윤성아를 남겨두고 한 명을 버렸는데, 그 버림받은 한 명이 안씨 가문에 가게 되었을 것이다.물론 윤정월이 안진강의 혼외자식을 낳은 것일 수도 있었다. 그렇게 낳은 쌍둥이 자식을 안진강과 나눠 키웠다고 해도 충분히 말이 되었다. 이 외에도...‘잠깐... 내가 왜 그 여자 출신을 생각하고 있는 거지? 됐어, 그만 생각하자.’강주환은 저도 모르게 생각을 이어가다가 순간 미간을 찌푸렸다. 윤성아의 출신은 그와 하등 상관없었다. 그가 원하는 것은 오직 윤성아를 되찾는 것뿐이니 말이다.이튿날.퇴근 시간, 집으로 돌아간 강주환은 안효주와 고은희가 함께 소파에 앉아 있는 것을 보게 되었다. 안효주가 무슨 얘기를 했는지는 모르겠지만 고은희는 활짝 미소를 짓고 있었다.발걸음 소리를 듣고 안효주가 먼저 머리를 돌렸다. 강주환이 돌아온 것을 보고는 생글생글 웃으며 다가갔다.“주환 씨, 왔어요?”안효주는 자연스럽게 손을 뻗어 강주환이 벗어 놓은 외투를 받아서 들었다. 그러고는 애교 섞인 말투로 조곤조곤 말했다.“저 오늘 어머님이랑 같이 병원에 다녀왔어요. 의사가 그러는데 항암 치료가 아주 잘 되고 있대요. 며칠 후에는 어머님이랑 같이 유명한 한의사한테 다녀오려고요. 운성시에 진짜 유명한 한의사가 있는데 수많은 암 환자를 치료했대요.”“
장석호는 돌려 거절하면서 윤성아에게 말했다.“아버님은 이미 화장된 상태라 뼛가루만 남으셨는데 제가 어떻게 증거를 찾습니까? 윤성아 씨, 경찰서는 그리 한가한 곳이 아닙니다. 저희 서장님께서는 이미 제게 다른 중대한 일을 맡기셔서 더는 그 사건에 대해 조사할 수가 없습니다...”그리곤 전화를 끊어버렸다.윤성아는 무력감에 힘이 빠졌다.그녀의 머릿속에 순간 강주환이 전에 했던 말이 떠올랐다.‘내 사람은 당연히 내가 지켜!'그때 그녀는 아무리 강주환이 그녀를 지켜봤자 이미 법조계까지 손을 뻗은 안효주를 상대할 수 없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녀는 이 세상이 얼마나 잔혹한지 잊고 있었다. 강주환은 영주시를 휘어잡는 존재였고 그는 안효주를 감방에 보낼 생각이 없을 뿐만아니라 그녀가 고소를 해도 전부 취하되었다!법원에서는 이 사건을 받아들이지 않았고 그녀를 도와주던 장석호마저 손을 떼겠다고 했다.윤성아는 더는 방법이 없었다!게다가 하필 이런 때에 호진 그룹은 베린 그룹과의 모든 협력을 중단한다고 했고 원이림은 골치가 아픈 듯했다.나엽 쪽의 상황도 마찬가지로 안 좋았다.이 모든 건 다 그 남자의 짓이었다!윤성아는 하는 수 없이 강주환을 찾아왔다.호진 그룹.윤성아가 들어가려 하자 입구 경비원이 그녀를 막았다.“윤 비서님, 비록 예전에는 이곳에서 출근하셨지만 지금은 아니죠!”“대표님 승인 없이는 들어가실수 없습니다!”윤성아는 심지어 호진 그룹으로 발조차 들일수 없었다.‘하하, 이젠 정말 딱딱하게구네.'게다가 이때, 송유미의 일로 그녀를 조롱하고 무시하던, 그녀와 한때는 같은 사무실에서 일했던 전 직장 동료들이 다가왔다.특히 그녀와 마찰이 있었던 동료들이 말이다!아마도 윤성아가 입구에서 제지당했다는 말을 듣고 바로 내려온 것이 틀림없었다.“어머, 이게 누구야? 윤 비서네요! 그 뻔뻔함 덕에 대표님 약혼녀한테 해코지당한 거 아니었어요?”“정말이네요. 나쁜 사람들은 왜 항상 명줄이 긴걸까요? 아직도 살아있다니!”“그러게요. 쯧쯧쯧. 어차피 저희
지난번 후로 그는 오랫동안 그녀를 이렇게 가까이에서 본 적이 없었다.빨갛게 물든 눈가에 훌쩍이는 모습을 보니 그는 더욱 그녀를 괴롭혀주고 싶었다. 그리고 그는 바로 생각을 행동으로 옮기었다. 강주환은 순간 그녀 앞으로 성큼 다가가 그녀의 머리를 두 손으로 받쳐 들고 입술을 맞추었다...그의 힘 있는 키스가 말해주고 있었다. 그는 이미 살짝 이성을 잃은 상태라고, 당장이라도 둘밖에 없는 대표이사실에서 그녀와 뒤엉키고 싶다고!그러나 화가 치밀어 오른 윤성아는 있는 힘껏 그의 혀를 꽉 깨물었다.“쓰읍...”강주환은 느껴지는 고통에 입술을 뗐다. 그의 혀에서는 피가 순식간에 흘러나오게 되었고 그는 얼른 손을 들어 닦았다. 그는 윤성아의 턱을 세게 잡으며 잔뜩 어두워진 얼굴로 말했다.“4년이나 같이 있었는데, 네가 이렇게 무례한 여자일 줄은 몰랐군.”윤성아는 굴하지 않고 독기 가득한 눈길로 남자를 보았다.“대표님이 계속 이렇게 절 괴롭힌다면 이것보다 더한 무례를 보여드릴 수 있어요! 대표님도 느껴 보세요, 혀가 잘리는 고통이 어떤 고통인지!”“하하.”강주환은 도리어 나직하게 웃어버렸다. 그는 칠흑 같은 두 눈으로 눈앞에 있는 여자를 향한 욕망을 억누르며 입을 열었다.“그래. 네가 내 곁으로 돌아온다면 마음껏 깨물게 해주지!”“...”윤성아는 어이가 없었다.‘이 남자가 정말 미쳤나?'눈앞에 있는 남자와 4년이라는 시간을 함께 보냈지만, 그의 심기를 건드린 적은 별로 없었다. 그랬기에 그녀는 지금 그의 모습이 너무나도 낯설고... 뻔뻔하게 느껴졌다.강주환은 손을 들어 다시 한번 그녀의 눈에 맺힌 눈물을 닦아주려 했다.그러나 윤성아는 그의 손을 '탁' 쳐내면서 눈물을 그대로 흘려버렸다. 아까의 침착함은 온데간데없이 그녀의 얼굴엔 분노와 실망의 감정만이 남아있었다.“전 절대 돌아가지 않을 거예요. 제가 오늘 이렇게 찾아온 건, 안효주 씨 때문이기도 하지만 베린 그룹과 나엽 씨 때문이기도 해요!”그녀는 따지듯 물었다.“대표님, 어떻게 그렇
그런 말을 해주는 원이림에 윤성아는 고마움을 느꼈지만 그래도 회사를 그만두기로 했다.“대표님, 정말로 고마워요. 하지만 전 저 때문에 회사가 피해를 보게 되는 게 더 싫어요. 그러면 전 죄책감을 느끼게 되고 마음도 편하지 않을 날이 더 많아질 거예요. 게다가 전 지금 제 아버지 일로 해결해야 할 일도 있고요. 나중에...”윤성아는 이미 마음속에 계획이 있었고 그걸 원이림에게 말해주었다.“아버지 사건이 해결되면 전 영주시를 떠나 해외로 갈 생각이에요. 공부하고 싶거든요.”원이림은 믿을 수 없다는 얼굴로 윤성아를 보았다.“영주시를 떠나 앞으로도 영원히 돌아오지 않을 생각인 거야?”윤성아는 고개를 끄덕였다.“네.”강주환이 그녀를 놓아주지 않고 계속 질척대니 그녀는 영원히 영주시를 떠나 다시 돌아오지 않을 생각이었다. 그래야 만이 진정한 평화로운 삶을 살아갈 수 있을 것 같았다.원이림은 시선을 떨구고 있는 아름다운 윤성아를 보며 참지 못하고 입을 열었다.“안 가면 안 돼?”그녀는 4년 전 그가 빗속에서 우연히 만난 웃음이 아름다운 소녀였다. 마치 활짝 핀 해바라기처럼 맑고 순진무구한 아이였으며 백합꽃처럼 순결해 보이기도 했다. 너무나 아름다운 미소에 그의 마음마저 따듯해지게 만들었다.아버지의 힘을 빌리지 않고 혼자 영주시로 내려와 창업한 지 4년, 그는 매번 힘든 일이 있을 때마다 빗속에서 찬란하게 웃어주던 소녀의 얼굴을 떠올렸다.그녀는 그에게 아주 특별한 사람이었다. 4년이 지난 후 다시 만난 그녀를 보니 그는 그녀를 지켜주고 싶은 욕망이 생겼고, 그가 30년을 살아오는 동안 처음으로 결혼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게 한 사람이었다.원이림은 이런 귀한 인연을 놓치고 싶지 않았다. 그는 윤성아에게 말했다.“만약 아버님 일로 그러는 거라면 휴가를 주지. 아버님 사건을 해결한 뒤에도 마음이 울적하거나 휴식이 필요한 것 같으면 장기 휴가를 내주지. 휴가 기간이 얼마나 되든 상관없어. 마음 정리가 되면, 그때 돌아와도 돼. 그러니 굳이 사직서를 낼 필요
강주환은 깊어진 두 눈으로 윤성아를 빤히 보았다.“내가 누구길 바랐는데?”“...”윤성아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강주환은 그녀를 무시한 채 원룸 안으로 들어갔다.자그마한 사이즈에 인테리어 마저 단조로웠고, 게다가 먼지가 여기저기 쌓여 있는 걸 보아 꽤 오랫동안 사람이 살지 않은 집 같았다. 그는 바로 인상을 팍 찌푸렸다. 그리곤 이내 불쾌한 어투로 말했다.“정말 이딴 곳에서 지내겠다고? 우리 집으로 정말 죽어도 오기 싫은 거야?”이곳은 나엽의 명의로 된 원룸이 아니었기에 강주환은 집주인을 조사하지 않았고 정말로 윤성아가 전세를 맡은 집이라고 생각했다.윤성아는 아직 눈치채지 못한 그의 모습에 마음이 살짝 놓였다. 아무런 대답조차 하지 않았던 그녀는 고개를 들더니 완강한 얼굴로 눈앞에 있는 남자를 보았다.“대표님, 이곳은 대표님을 환영하지 않아요.”“응, 그래.”남자는 화조차도 나지 않는 눈치였다. 그는 칠흑 같은 눈동자로 심지어 그녀를 향해 다정한 미소를 지었다.“내 예상보다 빨리 그 회사를 그만두고 나엽의 집에서 나왔네? 아주 착하게 말이야.”그는 그녀 앞으로 성큼 다가갔다. 그리곤 이내 윤성아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애틋한 눈길로 그녀는 보았다.“여기서 조금만 더 얌전했으면 더 좋겠네. 얼른 내 곁으로 돌아와. 나랑 같이 엠파이어 가든으로 가서 살자, 응?”윤성아는 거절했다. 그녀는 이미 그에게 분명하게 의사를 전달했다. 절대 그의 곁으로 돌아가는 일은 없을 거라고!강주환은 눈썹 사이를 확 구겼다. 그는 허리를 꼿꼿하게 펴더니 완강한 태도의 그녀를 보며 말했다.“고집 좀 그만 부리면 안 돼? 내 곁으로 돌아오면 너에게도 나쁠 것 없잖아. 안 그래?”그는 거대한 몸집을 굽혀 천천히 그녀의 턱을 잡아 올리면서 차가운 시선으로 그녀를 보았다. 그가 말을 할 때마다 뜨거운 온기가 그녀의 얼굴에 쏟아졌다.“꼭 그렇게 내가 움직이게 만들어야겠어? 네게 더는 갈 곳이 없게 만들어야 돌아올 거냐고.”윤성아는 그를 밀쳐냈다. 그녀는 낯선 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