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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화 너 하기에 달렸어

윤성아는 6천만 원을 더 달라고 말할 생각이었다.

하지만 입을 열기도 전에, 강주환의 곁에서 여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주환 씨, 빨리 와요.”

“응.”

그가 부드럽게 대답했다. 그리고 윤성아에게 한마디도 하지 않은 채 전화를 끊어버렸다.

다음날.

회사에 있을 때 사적인 얘기는 일절 하면 안 된다고 강주환이 얘기한 적이 있었기에 윤성아는 6천만 원에 관한 얘기를 꺼내지 않았다.

하지만 오후 네 시 쯤, 윤정월이 다시 전화를 걸어왔다.

“성아야, 돈은 구했어? 그놈들이 네 아빠를 감금하고 있어. 오늘 찾으러 갔는데 네 아빠를 때리고 밥도 안 주고 있었어...”

윤성아가 미간을 찌푸리며 대답했다. “최대한 빨리 돈을 구해서 돌아갈게요.”

전화를 끊고 그녀는 잠시 망설였으나 결국 대표님 사무실의 문을 두드렸다.

그녀는 고개를 푹 숙이고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로 물었다.

“대표님, 6천만 원 더 빌려줄 수 있나요?”

강주환이 고개를 들어 서늘한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봤다.

“빌려? 나한테서 네가 가져간 돈이 얼만데? 한 번이라도 갚은 적 있어? 그리고, 뭐로 갚을 생각인데? 응?”

“...”

고개를 숙인 윤성아는 대답할 수 없었다.

“하.”

강주환이 차갑게 웃었다. 그는 마치 윤성아의 모든 것을 꿰뚫어 보는 것 같은 눈빛으로 말했다.

“너에게 관심이 있는 건 맞아. 하지만 윤성아, 너 그렇게까지 비싸지 않아.”

그는 이미 경고했었다.

“...”

그녀는 여전히 말없이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하지만 이 순간 완전히 발가벗겨진 기분이었다. 비천한 모습으로 치욕의 벽에 못 박힌 것 같았다. 하지만 자처한 것이니 어쩔 수 없었다.

그녀는 입술을 꽉 깨물었고 양옆으로 늘어뜨린 주먹을 꽉 쥐었는데 서러운 와중에 강인함이 엿보였다.

“젠장!”

강주환이 낮게 읊조렸다. 그의 까만 눈동자가 윤성아를 흘긋 봤다.

“금방 돈을 줬는데 모자라다?”

“사고 싶은 가방이 있어요. 6천 만원이에요.”

윤성아가 드디어 입을 열었다.

“내가 너와 함께한 뒤로 네가 가방을 몇 개나 샀어? 죄다 가짜였잖아. 심지어 그럴듯한 가짜도 아니었어. 넌 평생 나에게 솔직해질 수 없는 거지?”

놀란 눈빛으로 윤성아가 남자를 바라봤다.

‘다 알게 된 건가?’

그녀는 해명하지도, 그렇다고 설명하지도 않았고 그냥 남자를 바라보며 말했다.

“돈이 필요해요.”

강주환이 눈썹을 추켜세웠다.

“하룻밤이 1억의 가치가 있냐고.”

“...”

강주환은 점차 화가 치밀었고 눈빛이 한층 더 차가워졌다.

“회사에서 사적인 얘기 하지 말라고 내가 말했지? 액수 부르며 팔 듯이 말하는 건 더더욱 안 된다고 했어. 돈이 필요하면 밤에 다시 얘기해.”

윤성아는 고개를 숙인 채 밖으로 나갔다. 속이 불에 타는 듯이 뒤집혔다.

이 순간, 이토록 비참하게 이 세상을 살아가야 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궁금해졌다.

저녁때가 되자 윤정월이 또다시 전화를 걸어 그녀를 재촉했다.

“그 사람들에게 전해요. 내일 반드시 돈을 갖고 올 거라고요!”

그렇게 토해내듯 말을 뱉곤 그대로 전화를 끊어버렸다.

그녀는 무기력하게 자리에 한동안 앉아있다가 다시 일어나 주방으로 갔다. 한 상 가득 음식을 차려놓고 강주환을 기다렸다.

하지만 차갑게 식은 음식을 다시 데웠을 때는 이미 밤 10시가 되었지만 강주환은 오지 않았다.

어쩔 수 없이 그에게 전화를 걸었지만 몇 번을 걸어도 전화를 받지 않았다.

밤 11시쯤, 식탁 앞에 앉은 윤성아가 꾸벅꾸벅 졸고 있을 때, 아파트 문이 열렸고 온몸에서 술 냄새를 진하게 풍기는 강주환이 걸어들어왔다.

그는 차가운 눈빛으로 식탁에 가득 차려진 반찬을 훑어보며 피식 웃었다.

“돈을 받으려고 하는 짓이 천하기 짝이 없네. 내 상상을 뛰어넘었어. 윤성아, 넌 너무 가식적이야. 젠장...”

윤성아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저 그의 곁에 다가와 정장을 벗겨주며 부드러운 눈빛으로 그를 향해 말했다.

“술을 이렇게 많이 마시다니. 식사는 하셨어요? 당신이 좋아하는 반찬을 만들었는데 먹어 봐요. 해장국 좀 끓일게요.”

주방으로 가서 해장국을 준비하려는데 강주환이 거절했다.

“필요 없어.”

그는 윤성아의 손목을 낚아채 그녀를 확 끌어당겼고 거칠게 그녀를 식탁으로 밀쳤다.

식탁에 허리를 부딪친 윤성아는 고통에 미간을 살짝 찌푸렸지만 그녀는 ‘아프다’고 말할 권리가 없었다.

강주환의 커다란 몸이 그녀를 향해 바싹 다가왔다.

그는 손을 뻗어 그녀가 온 저녁 열심히 만든 음식을 전부 밀쳐버렸고 음식들이 바닥에 잔뜩 흩뿌려졌다.

그리고 커다란 손으로 윤성아의 허리를 잡아 들어 올려 식탁 위에 앉혔다.

분노와 독기가 가득 서린 까만 눈동자가 윤성아를 바라봤다.

“6천만 원이 필요하다며? 날 즐겁게 해주면 줄게.”

“...”

“뭘 가만히 있어? 윤성아, 나한테서 돈을 얼마 가져가는지는 너 하기에 달렸어!”

그녀는 말없이 입술을 살짝 깨물다가 결국 남자에게 가까이 다가갔다. 그리고 약간 떨리는 손으로 그의 셔츠 단추를 풀었다.

하나, 둘...

남자의 목을 감싸고 그녀의 입술이 그의 피부에 닿았다...

“윤성아, 넌 너무 천박해.”

...

모든 것이 끝나고, 남자는 그녀를 쳐다보지도 않고 욕실로 들어가 버렸다. 이내 다시 깨끗한 옷으로 갈아입고 욕실 밖으로 나왔다.

그는 그녀와 함께 밤을 보낼 생각이 없었다.

떠나기 전, 카드 한 장을 윤성아에게 뿌려주며 말했다.

“다음에 돈을 받고 싶거든 더 노력해봐. 날 즐겁게 할만한 능력을 더 키워야 할 것 같은데.”

‘쾅!’하는 소리와 함께 방문이 무겁게 닫혔다.

강주환이 떠났다.

텅 빈방 안으로 차가운 바람이 불어오자 윤성아는 두 팔로 자신을 끌어안고 소파에 털썩 주저앉았다. 눈물이 마치 줄 끊어진 구슬처럼 흘러내렸다.

그녀의 눈물은 소리가 없었지만 슬프기 짝이 없었다.

다음날, 윤성아는 6천만 원을 들고 어머니와 함께 양지강을 데리러 갔다.

양지강의 꼴은 말이 아니었다. 온몸이 피범벅이었고 사흘을 굶어 사람이 핼쑥하고 늙어 보였다. 몸에서 시큼한 냄새도 났다.

“미안하다... 성아야.”

양지강이 사과했다. 그는 윤성아를 볼 면목이 없었다. 그는 눈빛을 피하며 윤성아에게 말했다.

“한순간의 충동을 참을 수 없었어. 그날 운이 아주 좋았다고! 내가 꼭 이길 수 있을 거로 여겼어. 난 그냥 더 많은 돈을 벌어 빚을 갚고 싶었을 뿐이야. 그럼 너랑 네 엄마도 지금보다 훨씬 잘 살 수 있을 거고...”

“이번이 마지막이에요.”

윤성아가 차가운 눈빛으로 양지강을 쏘아봤다.

“당신이 도박하고부터 식당도, 집도 모든 돈이 되는 건 다 가져다 팔았어요! 이제 4년이에요! 매번 다신 안 그런다고 해놓고, 매번 독하게 맹세해놓고! 뭐가 달라졌죠?”

4년 전, 양지강은 술을 마시기 시작했고 이후엔 도박에 손을 대기 시작했다.

술주정과 도박 때문에 집은 더 이상 집이 아니게 되었다. 좋은 남편, 좋은 아빠였던 그의 인성은 술과 함께 조금씩 사라져버렸다.

윤성아의 눈빛은 비참했다.

“당신은 이미 나를 망쳤어요. 여기서 멈추지 않으면 이제 다치는 건 엄마랑 신우겠죠!”

“미안하다...”

사과하며 양지강은 자신의 따귀를 힘껏 때렸다.

“하.”

윤성아가 차갑게 웃으며 계속해서 말했다.

“기억해요. 앞으로 도박을 못 끊으면 빚을 얼마 지든, 누가 당신을 감금하든, 손가락이 잘리든 말든, 목숨을 내놓으라 하든 말든! 다 저랑 상관없는 일이라는 걸요!”

“당신이 죽는다고 해도 상관하지 않을 거예요!”

모든 말을 뱉어내고 나서 윤성아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떠났다. 목놓아 울며 양지강을 욕하는 윤정월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빌어먹을 놈! 양심도 없는 놈! 우리 성아를 네가 다 망쳤어...”

뜨거운 눈물이 윤성아의 볼을 타고 흘러내렸다.

그녀는 말한 대로 할 것이다. 양지강을 위해 빚을 갚는 건 이번이 정말로 마지막이다.

윤성아는 다시 회사로 돌아갔다.

오후, 강주환이 금방 출장갔을 때, 그의 어머니 고은희가 예쁘게 꾸민 여자를 데리고 회사로 찾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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