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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화 넌 내 사람이야

송유미가 손에 들린 찻잔을 바닥으로 힘껏 내던졌다.

“쨍그랑!”

찻잔이 순식간에 산산이 조각났다.

“무릎 꿇고 이거 다 정리해.”

송유미의 괴롭힘은 점점 도가 지나쳤다. 그녀의 명령에 윤성아가 미간을 구겼다.

반항 한 번 않던 그녀가 송유미를 바라보며 무덤덤하게 말했다.

“유미 씨, 당신은 대표님 약혼자로 높은 위치에 있는 사람이고 저는 당신의 어시로서 어떤 명령이든 따라야 해요. 제가 잘못하여 화를 내시면 참아야 하는 게 당연하지만 저도 인권이 있습니다.”

그러자 송유미가 가소로운 듯이 웃었다.

“하, 지금 인권 얘기하는 거야? 윤성아, 네가 못 견디고 여기서 떠나지 않는 이상 넌 내 어시고 내 명령에 따라야 해. 지금 무릎 꿇고 여기 깨끗하게 정리하라고.”

가만히 서서 움직이지 않는 윤성아를 향해 송유미가 저벅저벅 다가와 그녀의 다리를 걷어찼다.

“내 말 안 들려?”

하이힐의 뾰족한 앞굽으로 힘껏 아랫배를 걷어차이니 눈물이 찔끔 나올만큼 아파서 저도모르게 허리를 굽혔다.

“유미 씨, 빗자루 가지러 갈게요.”

그녀는 비참한 몰골로 뒤돌아서 그곳을 떠났다. 빗자루와 쓰레받기를 챙겨와 말없이 그곳의 찻물과 유리 조각을 치우기 시작했다.

하지만 송유미가 가로막으며 윤성아의 손목을 잡아끌었다. 그녀는 눈을 부릅뜨고 절대 포기하지 않을 것처럼 말했다.

“내 말이 이해가 안 돼? 무릎을 꿇으라고! 꿇은 채로 청소하라고!”

윤성아는 묵묵부답이었다.

자그마한 그녀의 무표정한 얼굴은 도도했다. 보고 있으면 누구든 마음이 아릴 얼굴이었다.

그런 얼굴이 송유미의 화를 더 부추겼다.

송유미가 손을 뻗어 또다시 윤성아의 뺨을 때리려고 했으나 뜻밖에도 윤성아가 그녀의 팔목을 잡았다.

“유미 씨, 전 그저 당신의 어시로 일했을 뿐이에요. 전에 저를 괴롭히고 화를 내도 다 참았죠. 유미 씨가 절 싫어한다는 거 저도 잘 압니다.”

윤성아가 차가운 눈동자로 송유미를 응시했다.

“제가 이 회사에 있는 것이 싫으시면 당신은 대표님 약혼녀의 자격으로 저를 회사에서 내보낼 수 있습니다.”

자신을 도발하는 듯한 윤성아의 말에 송유미가 악에 받쳐 눈을 부릅떴다.

“내가 못 할 거로 생각해?”

“그런 생각 한 적 없어요.”

윤성아는 화를 내지도, 힘들어하는 티를 내지도 않았고 예쁜 얼굴엔 항상 어떠한 감정도 드러나지 않았다. 그녀는 조용히 난장판이 된 사무실을 깨끗이 치우곤 그곳을 떠났다.

송유미는 화를 주체하기 어려웠다. 그녀는 당장 강주환을 찾아가 윤성아가 말을 듣지 않는다고 퇴사시켜달라고 요구했다. 그리고 온갖 애교를 부리며 윤성아를 나쁘게 말했으나 아무 소용이 없었다.

“잠시 너에게 어시로 빌려준 것뿐이야. 마음에 들지 않으면 나한테 와서 전에 하던 일 하라고 해.”

강주환은 담담하게 얘기할 뿐이었다.

아무런 소득 없이 다시 돌아온 송유미.

그녀는 퇴근 때가 되자 문서를 한가득 가져와 윤성아에게 던져줬다.

“이거 다 정리해놔. 내일 아침에 쓸 거야.”

“네.”

윤성아는 밤 11시가 되어서야 모든 정리를 마치고 아파트로 돌아올 수 있었다.

씻을 힘조차 없어 불도 켜지 않고 피곤한 몸으로 침대에 누웠는데 침대에 누군가가 또 있는 것 같았다.

미처 반응하기도 전에 익숙한 남자의 향기가 물씬 풍겨왔다. 그는 그녀의 옷을 다급하게 벗기며 불만스러운 듯이 중얼거렸다.

“왜 이렇게 늦게 왔어? 내가 너 얼마나 기다렸는데...”

“오늘 많이 피곤해요.”

“응.”

강주환이 달래듯이 말했다.

“그럼 한 번만.”

말을 마치고 그의 입술이 포개졌다. 그녀의 호흡을 삼키며 천천히 목으로 키스를 이어갔다.

“흣...”

고통이 전해졌다. 하지만 강주환은 오직 그녀를 공략하는 것에만 몰두해서 신경 쓰지 못했다.

반 시간 후, 다시 조용해진 침실.

강주환이 꾸벅꾸벅 졸고 있는 여자를 안고 욕실에 가서 씻겨주려고 했을 때 그녀의 가슴팍에 난 상처에 물집이 잡힌 것을 보고 미간을 구겼다.

“이게 뭐야?”

“...”

그녀는 이런저런 생각을 하고 싶지도, 할 힘도 없었다.

“내일 당장 다시 돌아와!”

남자가 결심한 듯 말했다. 윤성아는 힘겹게 눈을 떠 남자를 보며 말했다.

“괜찮아요. 유미 씨 팀에서 이제 적응 잘하고 있어요.”

그 모습에 강주환은 순식간에 화가 치밀었다. 그가 죽일 듯이 윤성아를 노려봤다.

“너에게 마조의 성향이 있는 줄 몰랐네. 원하면 다시 돌아와. 어떤 플레이를 원하든 내가 다 만족시켜줄게.”

“...”

그녀는 당연히 마조히스트가 아니었다.

게다가 강주환은 이미 ‘엄청났’고 매번 할 때마다 죽다 살아나는 기분인데 여기서 더 오픈하면...

윤성아는 끔찍한 느낌에 몸을 부르르 떨었다.

“왜? 고작 말뿐인데도 무서워? 그렇게 무서우면 왜 송유미 곁에서 학대당하는 건데, 응?”

그녀가 애원하거나 부탁하기만 하면 그는 바로 그녀를 비서실로 다시 불러올 수 있었으나 윤성아는 고집이 너무나 셌다.

그동안 한 번도 강주환에게 돌아가고 싶다고 얘기한 적이 없었고 지금 이 순간도 마찬가지였다. 심지어 이미 눈을 감고 잠들어 있었다.

“넌 내 사람이야!”

강주환의 한마디에 윤성아가 흠칫 놀라며 눈앞의 남자를 바라봤다.

“반 달 동안 네 얼굴이나 몸에 상처가 끊임없이 나타났어. 윤성아, 네 몸은 내 거야. 게다가 오늘처럼 내가 널 기다리게 만든 게 벌써 몇 번째인데? 이렇게 죽은 생선처럼 누워만 있으면 내 기분이 어떻겠어?”

“...”

그녀는 말없이 다시 눈을 감았다. 너무 피곤했던 탓에 바로 곯아떨어졌다.

꿈속에서 그녀는 남자가 연고를 가져와 기다란 손가락으로 상처가 난 곳에 약을 바르는 것을 느꼈다. 싸한 느낌이 그의 손가락 끝을 통해 전해졌다.

뺨을 맞아 얼굴이 부었을 때도 그는 얼음찜질을 해주고 약을 발라줬었다.

윤성아는 무거운 눈꺼풀을 살짝 들어 남자를 바라봤다. 그는 정말 그녀의 몸을 많이 아끼는 것 같았다.

‘하긴, 너의 커다란 장난감이니까.’

그가 질리기 전에 그녀의 얼굴과 몸은 값비싼 것이었다. 그래서 그가 아껴주고 남이 망가트리면 마음이 아픈 것이다.

다음날.

출근 후, 강주환은 직접 디자인 팀으로 향했다. 그는 송유미를 찾아와 윤성아를 데려가겠다고 말했다.

“네 어시로 반 달 동안 일했어. 내 업무에 그녀가 필요해. 다른 사람은 제대로 못 하는 부분이야. 아, 그리고 너에게 더 적합한 어시를 찾아놨어.”

송유미는 견딜 수 없었고 강주환에게 따져 물었다.

“윤성아, 네가 스폰하는 애인이지? 강주환, 너 그거 알아? 대표님 사무실 직원 그리고 디자인팀 직원들까지 모르는 사람이 없어. 다들 너와 윤성아의 관계가 깨끗하지 못하다는 걸 알고 있어.”

강주환이 미간을 찌푸리며 송유미를 바라봤다.

“내가 보기엔 네가 괜한 트집을 잡지 않았더라면 아무도 나와 그녀의 사이가 보통이 아니라는 걸 몰랐을 것 같은데.”

차갑게 송유미를 보며 강주환이 말을 이었다.

“그래서? 적당히 간섭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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