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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화 함정

그곳은 크고 긴 커튼에 가려져 아무에게도 보이지 않았다.

남자의 커다란 그림자가 그녀를 점차 집어삼켰고 윤성아는 그와 발코니 난간 사이에 깔리게 되었다. 그가 무거운 낯빛으로 윤성아를 향해 물었다.

“너, 나엽이랑 무슨 사이야?”

“아무 사이도 아니에요.”

윤성아가 사실대로 답했다. 연회장에 들어오기 전에 나엽을 만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하.”

강주환이 차갑게 웃었다. 그리고 경멸하는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보며 말했다.

“나엽이 어떤 사람인데? 모르는 사람인 너에게 작업을 걸 리가 없어.”

윤성아는 어이가 없었지만 그저 강주환을 바라보며 말했다.

“작업을 건 게 아니라 몇 마디 얘기 나눴을 뿐이에요.”

담담한 그녀의 얼굴엔 별다른 감정이 보이지 않았다.

최근 너무 많은 뒷담화와 욕을 들어서 였을까, 갑자기 자신이 우습게 느껴졌다.

그녀가 물었다.

“그러니까 대표님은 비천한 내가 나엽 씨에게 작업을 걸었다고 생각하는 거네요?”

강주환이 미간을 구겼다. 그런 뜻으로 한 말은 아니었다.

하지만 윤성아는 자신을 비웃듯이 씁쓸한 미소를 지었는데 보고 있기가 불편했다.

“난 나엽 씨와 개인적으로 친분이 없어요. 나엽 씨는 그저 내가 어릴 적 알고 지내던 여자애랑 닮았다고 말했을 뿐이에요.”

“그 남자랑 너무 가까이하지 마.”

“네.”

윤성아가 답하곤 강주환을 바라봤다.

“대표님, 다른 일 없으시면 저 놓아주세요. 누가 보면 어쩌려고 그래요.”

윤성아가 남자를 밀어내려 했다.

“누가 볼까 봐 겁나?” 남자가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 순식간에 화가 나 그녀가 대답하기도 전에 입을 맞췄다...

“씁...”

입술에서 피가 흐르자 윤성아가 눈을 커다랗게 뜨고 믿을 수 없다는 듯이 남자를 바라봤다.

예전엔 화려한 새장 같은 그 아파트 외 다른 곳에서 그는 절대로 그녀를 건드리지 않았다.

하지만 오늘은...

강주환이 멈췄다.

그의 검은 눈동자는 깊은 바다 같았고 싸늘함 외에 다른 감정을 품고 있는 것 같지 않았다.

그는 커다란 손으로 자신이 키스를 퍼붓다 물어버린 윤성아의 입술을 여러 번 어루만지며 경고하듯이 말했다.

“착하게 굴어. 네가 누구의 여자인지 잊지 마. 내가 너에게 질리기 전에 그 어떤 남자의 침대에 올라도 안 돼.”

말을 마치고 그가 떠나버렸다. 윤성아는 발코니에 잠시 머물렀다가 다시 연회장으로 돌아왔는데 그곳에서 고귀한 분위기를 뿜어내는 강주환이 많은 사람에게 둘러싸인 모습을 보게 되었다.

그들은 모두 조심스럽게 남자의 눈치를 살피며 비위를 맞추려고 애를 쓰고 있었다.

“윤 비서.”

그때 송유미가 다가왔다. 그녀는 윤성아의 찢어진 입술을 질투하듯이 바라보다가 차갑게 웃으며 물었다.

“입술은 어떻게 된 거야? 누가 물기라도 했어?”

“...”

“하!”

송유미가 피식 웃었다.

“지금 이게 어떤 자리인데... 감히 이런 곳에서 남자나 유혹하고 있어? 더러운 년은 어디를 가나 본연의 습성을 못 버리네.”

그녀는 중얼거리듯이 말하며 손을 들어 윤성아의 뺨을 내리치려고 했지만 윤성아가 피했다.

윤성아는 차가운 얼굴로 송유미를 향해 말했다.

“유미 씨, 오늘은 호진 그룹 연말 만찬회입니다. 사고를 치면 대표님과 유미 씨 모두에게 좋지 않을 거예요.”

“너 지금 나 협박하는 거야?”

그녀는 자신이 재민 그룹의 딸이자 강주환의 약혼녀라는 신분을 내세워 차가운 목소리로 윤성아에게 경고했다.

“잘 들어. 네가 예전에 강주환과 무슨 사이든 상관없어. 내가 있는 한 네 자리는 없으니까 꺼져. 게다가 너 같은 년은 좋은 결말을 맞이할 수가 없어.”

윤성아는 송유미와 함께 있는 것이 싫어 그냥 떠나려고 했지만 송유미는 갑자기 손에 들고 있던 와인잔을 기울여 자기 옷에 부어버리더니 윤성아의 손을 잡고 모두가 들으라는 듯이 큰 소리로 외쳤다.

“윤 비서, 내가 몇 마디 안 좋은 소릴 했다고 지금 일부러 나 밀친 거야?”

이게 대체 무슨 일인가 싶어 윤성아가 미간을 찌푸렸다.

송유미는 독한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보며 물었다.

“이브닝드레스가 다 젖었어. 이제 어떡할 거야? 내가 창피한 꼴을 당하게 하려고 일부러 그랬지!”

이번 연회의 모든 사항은 윤성아가 책임지고 있었다. 그녀는 차가운 눈빛으로 송유미를 바라보며 말했다.

“유미 씨, 일단 옆에 있는 방으로 함께 가요. 그곳에서 잠시 기다리시면 제가 새 드레스를 가져다드겠습니다.”

“좋아.”

웬일인지 송유미가 순순히 허락했다.

그녀는 윤승아와 함께 연회장에서 걸어나와 복도를 통과해 옷을 갈아입고 메메이크업하기위한 드레스룸에 도착했다.

연회에 공연을 준비한 직원이나 배우들의 헤어스타일과 메이크업은 모두 이곳에서 완성되었다.

그 시각, 모든 직원은 연회장에 있었고 그곳은 텅 비어서 아주 조용했다.

“유미 씨, 잠시만 기다려 주세요.”

이토록 규모가 큰 회사의 연말 연회라 이런 뜻밖의 상황에 관해 미리 준비해둔 윤성아였다.

고급스러운 맞춤 제작 드레스 역시 이미 준비해둔 상태였다.

윤성아가 열심히 송유미에게 맞는 드레스를 찾고 있을 때, 송유미는 음험한 얼굴로 방 안에 있던 기다란 철 막대기 도구를 손에 들고 천천히 다가오고 있었다.

곧이어 송유미가 철 막대기를 힘껏 휘둘러 윤성아의 머리를 내리쳤다!

정신을 잃고 쓰러진 윤성아. 그런 그녀를 보며 송유미는 차갑게 웃으며 하얀 약 한 알을 꺼내 그녀의 입에 밀어 넣었다.

그리고 윤성아의 핸드폰을 잠금 해제한 후, 회사에서 윤성아에게 관심이 많던 한 남자의 번호로 메시지를 보냈다.

그 남자의 이름은 이종원, 대학을 갓 졸업하고 디자인팀에서 어시로 일하고 있는 남자 직원이었다.

송유미는 일부러 한 시간 후 메시지가 발송되도록 설정했고 다시 연회장으로 돌아왔다.

이종원을 찾아간 그녀는 술을 권하기 시작했다. 연달아 양주를 마신 덕에 취기가 잔뜩 오른 이종원은 송유미가 약을 탄 술잔도 덥석 받아 마셨다.

곧이어, 그의 핸드폰이 울렸다.

“띠링-”

술에 너무 취해서인지 그는 메시지 음성을 듣지 못했다. 그러자 송유미가 웃으며 말했다.

“종원아, 너 핸드폰 울린 것 같아.”

“아...”

그제야 핸드폰을 확인하던 종원은 갑자기 눈을 반짝 빛내더니 헤벌쭉 웃으며 말했다.

“유미 누나, 성아 누나가 저 찾네요. 잠깐 나갔다 올게요.”

“그래.”

이종원이 연회장에서 나가는 것을 확인하고 한참 지난 후, 송유미도 밖으로 나와 드레스룸으로 향했다. 그녀는 자신이 꾸민 일이 성사되었는지 궁금했다. 만약 계획대로 되었다면 바로 사람들을 이곳으로 불러올 생각이었다.

그때가 되면...

송유미의 표정이 점차 일그러지며 괴이한 미소를 지었다.

“빌어먹을 X, 이번에 진짜 지옥을 보여줄게.”

드레스룸에 도착한 송유미는 잠기지 않은 방문을 살짝 밀었다. 하지만 그 어떤 신음이나 야한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어떻게 된 거지?’

그녀가 미간을 구기며 문을 살짝 더 열었다가 결국 아예 들어가 보기로 했다!

하지만 그곳에 윤성아는 없었다.

‘젠장, 그 빌어먹을 X이 어디로 사라진 거야?’

송유미가 들어온 것을 보자 이미 얼굴이 터질 듯이 붉어지고 자기 셔츠 단추를 몇 개 풀어 놓은 이종원이 침을 꿀꺽 삼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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