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유미가 손에 들린 찻잔을 바닥으로 힘껏 내던졌다. “쨍그랑!”찻잔이 순식간에 산산이 조각났다.“무릎 꿇고 이거 다 정리해.”송유미의 괴롭힘은 점점 도가 지나쳤다. 그녀의 명령에 윤성아가 미간을 구겼다.반항 한 번 않던 그녀가 송유미를 바라보며 무덤덤하게 말했다.“유미 씨, 당신은 대표님 약혼자로 높은 위치에 있는 사람이고 저는 당신의 어시로서 어떤 명령이든 따라야 해요. 제가 잘못하여 화를 내시면 참아야 하는 게 당연하지만 저도 인권이 있습니다.”그러자 송유미가 가소로운 듯이 웃었다.“하, 지금 인권 얘기하는 거야? 윤성아, 네가 못 견디고 여기서 떠나지 않는 이상 넌 내 어시고 내 명령에 따라야 해. 지금 무릎 꿇고 여기 깨끗하게 정리하라고.”가만히 서서 움직이지 않는 윤성아를 향해 송유미가 저벅저벅 다가와 그녀의 다리를 걷어찼다. “내 말 안 들려?”하이힐의 뾰족한 앞굽으로 힘껏 아랫배를 걷어차이니 눈물이 찔끔 나올만큼 아파서 저도모르게 허리를 굽혔다. “유미 씨, 빗자루 가지러 갈게요.”그녀는 비참한 몰골로 뒤돌아서 그곳을 떠났다. 빗자루와 쓰레받기를 챙겨와 말없이 그곳의 찻물과 유리 조각을 치우기 시작했다.하지만 송유미가 가로막으며 윤성아의 손목을 잡아끌었다. 그녀는 눈을 부릅뜨고 절대 포기하지 않을 것처럼 말했다.“내 말이 이해가 안 돼? 무릎을 꿇으라고! 꿇은 채로 청소하라고!”윤성아는 묵묵부답이었다.자그마한 그녀의 무표정한 얼굴은 도도했다. 보고 있으면 누구든 마음이 아릴 얼굴이었다. 그런 얼굴이 송유미의 화를 더 부추겼다.송유미가 손을 뻗어 또다시 윤성아의 뺨을 때리려고 했으나 뜻밖에도 윤성아가 그녀의 팔목을 잡았다.“유미 씨, 전 그저 당신의 어시로 일했을 뿐이에요. 전에 저를 괴롭히고 화를 내도 다 참았죠. 유미 씨가 절 싫어한다는 거 저도 잘 압니다.”윤성아가 차가운 눈동자로 송유미를 응시했다.“제가 이 회사에 있는 것이 싫으시면 당신은 대표님 약혼녀의 자격으로 저를 회사에서 내보낼 수 있습니다.”
송유미가 그를 보며 말했다.“강주환, 네가 윤성아를 스폰하든 안 하든, 네 약혼녀는 나야. 앞으로 네 아내가 될 사람은 나라고. 난 그 여자가 싫어. 나를 위해서 회사에서 내보내 줘, 응?”윤성아의 업무 능력은 아주 뛰어나고 그녀와 함께 일하는 것이 이미 익숙해졌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송유미에게 알려준 강주환은 떠나기 전 그녀에게 나지막이 얘기했다. “네 신분으로 아무것도 아닌 비서를 질투할 필요는 없어. 네 신분에 맞게 행동해. 이미 지나간 일은 더 묻지 않겠지만 앞으로 또 반복하는 일은 없길 바라.”“내가 기어코 이대론 못 넘어가겠다면?”송유미가 강주환을 보며 말했다.“난 그냥 아무것도 아닌 비서를 내보내고 싶었을 뿐이야. 주환아, 이 요구도 들어줄 수 없는 거야?”강주환이 차갑게 웃으며 송유미를 바라봤다.“내가 원하는 약혼녀는 질투에 가득 차서 트집이나 잡는 여자가 아냐. 특히 회사 일은 여자가 너무 많이 간섭하지 말았으면 해.”그리고 한 걸음 더 다가가며 말했다.“우리 두 집안이 약혼에 관한 얘기를 마쳤지만 아직 결혼하지 않았어. 강씨 집안 결혼 상대가 꼭 너여야만 하는 건 아냐.”그는 이미 경고하고 있었다.그날 밤. 드디어 윤성아와 같은 곳의 아파트를 구매한 송유미가 망원경으로 발코니의 강주환과 윤성아를 보게 되었다.건장한 체격의 강주환이 등 뒤에서 윤성아를 끌어안더니 키스하기 시작했다...“X발!”송유미는 이를 부득부득 갈며 맹세했다. ‘빌어먹을 X, 내가 너 꼭 망쳐버릴 거야! 주환이가 널 혐오하며 직접 내쫓게 만들 거야! 차라리 죽는 게 낫다고 생각하게 할 거야!”...호진 그룹은 아주 컸다. 본사 아래 많은 자회사가 있었는데 부동산, 엔터테인먼트, 패션, 쥬얼리등 여러 분야에 종사하고 있었다. 이미 연말이었고 설날이 되자 호진 그룹 본사 및 자회사의 경영진들이 성대한 연말 만찬회에 참여하게 되었다.대표님의 수석 비서로서 윤성아는 타이트한 검은색 이브닝드레스를 입었는데 등이 뚫린 스타일이 대범하면서도 지적이었
그곳은 크고 긴 커튼에 가려져 아무에게도 보이지 않았다.남자의 커다란 그림자가 그녀를 점차 집어삼켰고 윤성아는 그와 발코니 난간 사이에 깔리게 되었다. 그가 무거운 낯빛으로 윤성아를 향해 물었다.“너, 나엽이랑 무슨 사이야?”“아무 사이도 아니에요.”윤성아가 사실대로 답했다. 연회장에 들어오기 전에 나엽을 만난 적은 한 번도 없었다.“하.”강주환이 차갑게 웃었다. 그리고 경멸하는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보며 말했다.“나엽이 어떤 사람인데? 모르는 사람인 너에게 작업을 걸 리가 없어.”윤성아는 어이가 없었지만 그저 강주환을 바라보며 말했다.“작업을 건 게 아니라 몇 마디 얘기 나눴을 뿐이에요.”담담한 그녀의 얼굴엔 별다른 감정이 보이지 않았다. 최근 너무 많은 뒷담화와 욕을 들어서 였을까, 갑자기 자신이 우습게 느껴졌다. 그녀가 물었다.“그러니까 대표님은 비천한 내가 나엽 씨에게 작업을 걸었다고 생각하는 거네요?”강주환이 미간을 구겼다. 그런 뜻으로 한 말은 아니었다.하지만 윤성아는 자신을 비웃듯이 씁쓸한 미소를 지었는데 보고 있기가 불편했다. “난 나엽 씨와 개인적으로 친분이 없어요. 나엽 씨는 그저 내가 어릴 적 알고 지내던 여자애랑 닮았다고 말했을 뿐이에요.”“그 남자랑 너무 가까이하지 마.”“네.”윤성아가 답하곤 강주환을 바라봤다.“대표님, 다른 일 없으시면 저 놓아주세요. 누가 보면 어쩌려고 그래요.”윤성아가 남자를 밀어내려 했다.“누가 볼까 봐 겁나?” 남자가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 순식간에 화가 나 그녀가 대답하기도 전에 입을 맞췄다...“씁...”입술에서 피가 흐르자 윤성아가 눈을 커다랗게 뜨고 믿을 수 없다는 듯이 남자를 바라봤다.예전엔 화려한 새장 같은 그 아파트 외 다른 곳에서 그는 절대로 그녀를 건드리지 않았다.하지만 오늘은...강주환이 멈췄다.그의 검은 눈동자는 깊은 바다 같았고 싸늘함 외에 다른 감정을 품고 있는 것 같지 않았다.그는 커다란 손으로 자신이 키스를 퍼붓다 물어버린 윤성아의 입
다행히 이성까지 잃은 것 같진 않았다.“유미 누나, 어떻게 오셨어요?”송유미는 대답 대신 독한 눈빛으로 이종원을 바라보며 물었다. “윤성아는?”그가 고개를 저었다. 그도 어떻게 된 일인지 알 수 없었다. 분명 윤성아가 메시지를 보내서 이곳으로 찾아왔는데 그녀는 없었다. 그래서 잠시 기다리면 올 줄 알았는데 앉아있을수록 몸이 더워지며 벌레가 온몸을 무는 것 같았다.지금 송유미를 바라보면서 오직 한가지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그는 송유미를 향해 천천히 다가갔다. 시선이 점차 흐릿해지더니 눈앞의 송유미가 윤성아로 보였다.그는 대뜸 송유미를 안았다. “성아 누나, 저 누나 좋아해요!”“성아 누나!”그가 중얼거리며 송유미를 향해 입술을 내밀었고 송유미는 버둥거리며 차가운 눈빛으로 이종원을 향해 외쳤다.“정신 차려! 똑바로 봐! 내가 어떻게 그 빌어먹을 윤성아로 보일 수 있어?”하지만 소용이 없었다. 점점 흐리멍덩해지는 눈빛을 하고 송유미를 끌어안던 이종원은 그녀의 옷을 벗기려 하며 바닥으로 깔아 눕혔다...젖 먹던 힘까지 다해서 몸부림쳤지만 송유미는 건장한 남자의 상대가 되지 않았다. 하지만 이내 핸드폰을 찾아 강주환에게 전화를 걸었고 울먹이며 소리쳤다.“구해줘! 주환아, 나 좀 구해줘...”강주환이 미간을 구기며 싸늘하게 물었다. “어디야?”송유미는 이미 눈물범벅이 되어있었다. “주환아, 나 드레스룸에 있어.”곧이어 달려온 강주환은 옷이 찢긴 채 바닥에 깔린 송유미와 그녀의 위에서 뭔가 하려는 듯한 이종원을 보게 되었고 화가 치밀어 폭발하듯 발로 이종원을 차서 날려버렸다.“퍽!”옷장에 부딪혔다가 옷 속에 파묻힌 이종원은 몸을 일으키려 했고 일어나다가 옷에 발이 걸려 뒤로 넘어져 버렸다. 뒤통수를 크게 다친 그는 단번에 기절해버렸다.강주환은 정장 외투를 벗어 처참한 몰골의 송유미를 감싸주며 물었다. “어떻게 된 거야?”“주환아...”송유미는 강주환의 품을 파고들며 엉엉 울었다. 그녀는 어깨가 부들부들 떨렸고 서럽고 무서워서 못 견딜
기겁한 나엽이 그녀를 말리려고 했을 때는 이미 늦었다. 윤성아는 차가운 엘리베이터 벽에 머리를 찧고 이마가 커다랗게 부어올랐는데 빨간 피가 주르륵 흘러내렸다.철 막대기에 맞아 이미 머리가 어지러웠던 그녀는 자신의 바람대로 기절해버렸다.“윤성아 씨!”나엽이 쓰러지려는 그녀의 몸을 부축했다.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자 그는 단숨에 그녀를 안아 들었다. 이리저리 생각하더니 그는 결국 다시 윤성아를 내려놓고 정장을 벗어 그녀의 머리를 가려준 후, 다시 안아 들었다.윤성아가 정신을 차렸을 때는 이미 새벽이었다.“깼어요?”나엽이 그녀의 곁을 지키고 있었다. 그녀가 깨어나자 기다란 눈매에 부드럽게 웃음기가 감돌았다. “배고파요? 뭐 좀 먹을래요?”“괜찮아요.”윤성아는 몸을 일으키며 여전히 검은색 이브닝드레스를 입고 있는 자신을 확인하곤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그녀가 주위를 둘러보며 물었다. “여긴...?”“내가 사는 아파트예요.”“연예인이다보니 당신을 병원에 데려갈 수 없어서 의사인 친구를 불렀어요. 이마의 상처는 이미 처리했으니까 걱정하지 마세요.”“고마워요.”나엽이 해명했고 윤성아는 감사를 전했다. 그녀는 더 머물 생각 없이 떠나려는 듯했다. 아무래도 이렇게 깊은 밤 낯선 남자의 집에 남아 보내는 건 아닌 것 같았다.“내가 어떻게 할까 봐 걱정돼요?”나엽은 부드럽게 웃었다. “정말 성아 씨를 어떻게 하려면 기절했을 때 더 쉽지 않았을까요?”윤성아는 담담하게 말했다.“나엽 씨는 올바른 사람이에요. 그리고 왜 저 같은 여자에게 그런 마음을 품겠어요?”“누가 그래요?”윤성아를 바라보는 나엽의 눈빛은 사뭇 진지했다.“만약 내가 정말 윤성아 씨에게 마음을 품었다면요? 말했잖아요. 내가 어릴 때 알던 사람과 엄청나게 닮았다고요.”“...”오랫동안 침묵이 이어졌다. 나엽이 어색한 침묵을 깨트리며 입을 열었다.“쓰러졌을 때 핸드폰이 여러 번 울렸어요. 전부 강주환 대표님 전화였어요.”그리고 그녀의 핸드폰을 돌려줬다. 핸드폰을 받고 나엽
조사한 바로는 확실히 윤성아때문에 송유미의 와인이 쏟아졌고 윤성아가 먼저 옷을 갈아입으러 가자고 제안했다. 또한 윤성아가 이종원에게 보낸 메시지 내용도 확인됐다.「종원아, 이따가 드레스룸에서 만나.」“이종원을 드레스룸으로 부른 이유는 뭔데?”아무것도 알 수 없었던 윤성아는 남자가 따져 묻자 얼굴을 들고 말했다.“종원이를 드레스룸으로 부른 적 없어요. 그때 머리를 맞고 기절한 다음 무슨 일이 있었는지 몰라요...”“맞아서 기절했다고? 나엽이 너 안고 간 거 몰라? 윤성아, 거짓말도 사람 가려서 해. 나를 속일 수 있을 것 같아?”말문이 턱 막혀왔다. 하지만 누군가 그녀에게 이상한 약을 먹었다고 얘기하려는데 강주환이 성난 사자처럼 엄청나게 차가운 기운을 뿜어냈고 결국 입을 닫아버렸다.그가 한층 짙어진 눈빛으로 윤성아를 바라봤다.“왜? 벌써 다음 고객을 찾았어? 그 남자한테서 돈을 받으려는 거지? 그래서 내가 필요 없어? 그 사람, 나엽이지?”연거푸 질문을 던지던 남자가 자리에서 일어나 윤성아를 덮쳤다. “찍-!”그녀의 옷이 찢겼고 강주환은 마치 사냥감을 보듯이 그녀를 보며 차갑게 명령했다.“나엽이 널 안고 가서 건드렸는지 내가 직접 확인해야겠어.”견딜 수 없는 수치스러움에 그녀는 눈을 크게 뜨고 남자를 바라봤다.“왜 가만히 있어?”그는 그녀의 턱을 강하게 잡고 허리를 숙여 미친 듯이 키스를 퍼부으며 옷을 하나하나 벗겨냈다.눈밭처럼 하얀 그녀의 몸에 수상한 흔적은 전혀 보이지 않았다.그제야 약간 만족한 듯한 표정을 지었지만 반항하는 윤성아를 보면 화가 치밀었다. 그녀는 그를 밀어내려 안간힘을 쓰고 있었다.윤성아는 지금 머리가 굉장히 어지러웠다. “몸이 불편해요.”“하.”강주환은 차갑게 웃었다.“나엽을 알게 된 지 얼마나 됐다고 내 손길을 거부하는 건데? 윤성아, 내가 먼저 포기하지 않는 한, 넌 내 사람이야. 몸이 불편하다고? 숨이 겨우 붙어 있어도 견뎌야 해. 내가 너한테 얼마나 많은 돈을 줬는지 잊지 마.”그는 윤성아를
“돈 다 모으지 못했어요.”윤정월은 처절하게 무너졌다.“그 남자를 찾아가 돈을 달라고 해! 너 네 아빠 죽는 꼴 보고 싶어서 그러지! 성아야, 네가 어떻게 이렇게 배은망덕할 수 있어!”윤정월은 윤성아를 욕하고 나무라기 시작했다.“재수가 없어. 성아야, 넌 항상 재수가 없어! 네 동생이 병에 걸린 것도 너 때문이야! 이젠 네 아빠도 죽이려는구나. 하늘 아래 너 같은 딸이 어디 있을까? 부모도 저버리고 피도 눈물도 없어! 이럴 줄 알았으면 애초에 널 내 곁에 두는 게 아니었어! 그때 너를 버렸어야 했어...”사실 아무도 모르는 윤성아의 출신에 관한 비밀이 있는데 윤정월이 꽁꽁 싸매고 있었다. 그 일은 그녀 외에 오직 양지강만 알 뿐이다.죽는 한이 있어도 윤성아에게 사실을 알려주지 않을 것이다.그래서 그녀는 뭔가를 숨기려는 듯이 계속해서 욕했다. “넌 네 아빠의 친딸이 아니지만 네 아빤 널 친딸보다 더 널 아껴줬어...”확실히 그녀는 양지강의 친딸이 아니었다. 하지만 어려서부터 지금까지 양지강은 어머니보다 그녀를 더 아껴줬다. 어릴 때 동네 사람들이 그녀와 윤정월이 닮지 않았다고 말해서 혹시 엄마가 그녀를 주워 온 건 아닐까 하는 의문을 품기도 했었다.나중에 생각해 보면 아마도 윤정월이 딸 보다 아들을 더 귀하게 여겨서일 거로 추측했다. 게다가 동생은 그녀보다 어리니까 엄마가 남동생을 더 챙긴다고 생각했다.그래서 오늘 윤정월이 한 말도 크게 마음에 새겨두지 않았다.“엄마, 저한테 남은 돈은 4천만 원이 전부에요.”윤성아는 집에 들러 4천만 원을 가져와 윤정월에게 건네며 우선 이것으로 시간을 더 끌어보라고 했다.“알았어. 내가 가져다줄게. 하지만 성아야, 서둘러야 해. 얼른 남은 돈을 다 가져와야 해.”윤성아가 고개를 끄덕였다. 밤이 되자 그녀는 강주환에게 전화를 걸었다.“오늘 밤에 아파트로 올 수 있어요? 할 얘기가 있어요.”“뭔데?”남자의 목소리가 차가웠다. 그녀를 경멸하는 듯한 어조로 “또 돈이 필요한 거야?” 라고 물었다.
비가 내리는 밤, 외곽의 허름한 창고 안.사채업자들에게 붙잡힌 양지강은 도망갈 기회를 찾게 되었다. 그는 온몸이 피투성이였다. 전에 도망치려다 들켜 며칠 굶고 칼에 두 번 찔리기까지 해서 몸이 아프고 무거웠으나 죽을힘을 다해 앞으로 달렸다.도로까지 달려 나왔을 때, 비가 점점 더 크게 내렸다. 양동이로 물을 퍼붓듯이 쏟아져 와이퍼가 무의미해질 정도였다.“퍽!”허겁지겁 도망치던 양지강은 도로의 한 차량에 부딪혀 수 미터 가량 날아가 버렸다.운전하던 여자는 자신이 사고를 쳤다는 사실에 몹시 놀랐다. 그녀는 빗속에서 차를 멈추고 쓰러져 있는 양지강 앞으로 다가와 그를 툭툭 건드리며 물었다.“이봐요, 괜찮아요?”양지강이 눈을 떠 눈앞의 여자를 바라봤다. “성아?”비를 맞으며 그의 옆에 서 있는 여자는 윤성아와 똑같게 생겼는데 양지강은 자신이 사람을 잘못 보지 않았다는 생각에 활짝 웃었다. 온몸이 피투성이였으나 그는 이 순간 고통도 잊은 듯, 여자의 다리를 끌어안으며 말했다.“정말 너구나! 성아야, 아빠를 구하러 온 거지? 넌 나를 내버려 두지 않을 거야!”그러자 여자가 표정을 구겼다.“미쳤어요? 내가 왜 당신 같은 사람 딸이에요?”그녀는 운성 안씨 가문의 둘째 딸 안효주였는데 친구들과 파티를 즐기다 이제 집으로 돌아가던 참이었다.안효주에게 쌍둥이 언니가 있었으나 몇 해 전에 사망했고 그녀는 어머니의 환심을 사기 위해 언니의 얼굴로 성형수술을 했었다...양지강을 발로 차버린 그녀는 차에 돌아와 돈을 한 다발 꺼내 양지강의 옷 속에 넣어주며 말했다. “당신이 갑자기 튀어나와서 제 차에 들이박았잖아요. 이 돈으로 병원에 가서 치료나 받으세요.”말을 마치고 그녀는 다시 차로 돌아왔다. 오직 이 재수 없는 상황에서 빨리 벗어나고 싶을 뿐이었다. 양지강이 몸을 일으키며 외쳤다.“성아야, 다시는 도박하지 않을게! 아빠 좀 구해줘. 이대로 두고 가지 마! 그놈들이 날 찾게 될 거야! 그럼 난 맞아 죽는다고!”그는 벌떡 일어나 미친 듯이 이미 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