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연준은 얼굴을 감싸 쥐고 한숨을 내쉬었다.아들이 태어나기 전 나날들은 정말 행복하고 아름다웠었다... 그때 강서연은 물처럼 부드러웠고, 토끼처럼 온순했다. 그녀는 그의 가슴에 기대는 것을 아주 좋아했다. 세상에서 자신에게 가장 큰 안정감을 느끼게 해주는 곳이 바로 그의 넓은 가슴이라고 하면서 말이다...하지만 지금은?아들이 그녀의 몸, 그녀의 마음, 그녀의 세계까지 송두리째 빼앗아 갔다.최연준은 이 모든 것을 바꿀 방법을 찾고 싶었다.그중 하나가 바로 모유 수유를 끝내는 것이었다.군형이가 태어난 지 6개월에 접어들었을 때, 강서연은 모유가 점점 줄어들기 시작했고 그 질도 좋지 않았다. 또한 아이의 입안에 이가 자라나 가끔 꽉 깨물 때면 강서연은 통증에 정신이 아찔해 났다.그때마다 최연준은 식은땀에 흠뻑 젖어있음에도 아이가 깰까 봐 입술을 꽉 깨물고 소리조차 내지 않는 강서연의 모습을 안타깝게 지켜보곤 했다.하지만 그대로 가만히 놔둘 최연준이 아니었다.그는 옆에 있는 방울을 집어 들고 아들의 주의력을 끌었다. 역시나 군형이가 입을 열고 큰 눈동자를 데굴데굴 굴렸다. 최연준의 입꼬리가 스르륵 올라갔다. 이놈은 정말 배가 고픈 것이 아니라 이가 자라나 씹는 연습을 하는 것이다.“뭐 하는 거예요?”강서연이 눈을 부릅떴다.남자는 그녀가 반응하기도 전에 큰손으로 아이를 안아 재빨리 도우미에게 건네고는 분부했다.“데리고 나가서 우유를 먹이세요.”도우미와 유모가 아이를 데리고 다른 방으로 들어갔다.강서연은 옷도 미처 정리하지 못한 채 급히 따라 나가려 했다.하지만 최연준이 그녀를 막아 세우고 품 안에 꼭 끌어안았다.“이거 놔요!”강서연은 때리고 발길질하면서 벗어나려 했다.“군형이가 아직 못 먹었단 말이에요.”“유모도 있고 우유도 있으니 배고프진 않을 거야.”최연준이 진지한 얼굴로 말했다.“이제 더는 모유 먹이지 마!”“뭐라고요?”“군형이한테 물린 것 좀 봐!”강서연은 난처한 얼굴로 옷을 내렸다.하지만 그 두 곳이 옷과 접촉하니
송혁준은 최연준 강서연 부부, 그리고 두 사람의 아이도 함께 황궁에 초대했다. 또한 남양 최고의 사진작가를 찾아 그들의 가족사진을 찍어주었다.군형이는 아기 보행기를 타고 뒤뚱뒤뚱 걸어 다니고 있었다. 황궁 어화원에 흥미를 느꼈는지 통통한 작은 손으로 풀을 휘젓고, 잔뜩 흥분한 채 아야아야 옹알이를 하며 나비와 새들에게 인사를 건네고 있었다.최연준은 단번에 그를 들어 어깨 위에 올렸다. 아들은 또다시 겁에 질려 연신 소리를 질렀다.강서연은 불안한 마음에 몇 번이나 최연준을 제지하려 했지만 그럴 때마다 송혁준이 그녀를 막아섰다.“걱정하지 마세요. 연준 씨는 절대 아들을 다치게 하지 않을 거예요.”송혁준이 웃으며 말했다.강서연도 고개를 숙이고 웃음을 터뜨렸다. 실은 송혁준은 황궁 안 경호원과 시녀들에게 한순간도 놓치지 말고 따라다니라고 일러두었다. 만에 하나 최연준이 손이 미끄러져 아이를 떨어뜨린다고 해도 그들은 틀림없이 아이를 받아 안을 것이다.강서연이 고마움에 미소를 지어 보였다.“전하께선 정말 다정하고 세심하시네요.”“난 그저 아이가 웃는 걸 보는 게 좋을 뿐이에요.”송혁준이 들뜬 목소리로 말했다.“저 부자를 보세요. 얼마나 즐거워 보여요.”“송혁준...”강서연은 연준 씨를 좋아하냐고 물으려다가 잠시 고민하고는 입 밖에 꺼내지 않았다.그걸 물어 무엇하겠는가.송혁준은 이미 그걸 비밀에 부치기로 마음먹었으니, 그의 생각을 존중해 주면 된다.“왜요?”송혁준이 고개를 돌리고 물었다.강서연이 싱긋 웃으며 말했다.“아무것도 아니에요. 그냥... 전하께선 정말 좋은 사람 같아서요. 전하 같은 분이 국왕이 되신다면 남양 국민들은 분명 행복할 거예요.”“하하. 저 역시 국왕이 되고 싶어요.”송혁준이 씁쓸한 표정으로 말했다.“하지만 남양 국민들은 제가 어떤 사람인지 알게 되면 절 남양에서 내쫓을지도 몰라요.”“그들이 과연 자신들을 진심으로 위하는 사람을 내쫓으려 할까요?”강서연이 그를 바라보며 말했다.“전하, 사람들은 전하가 생각하는
나석진은 이쪽으로 걸어오고 있는 송지아를 발견하고는 이마를 찌푸린 채 서지현의 어깨를 감싸 안고 다른 곳으로 향했다.그 모습을 본 사람들은 난감함에 고민에 잠겼다. 여친왕의 심기를 건드리고 싶지 않았지만, 나씨 가문도 그리 호락호락한 상대는 아니다.때문에 그들은 간단히 예만 표하고 핑계를 대어 자리를 떴다.송지아는 사람들이 자신을 외면하는 이 광경을 보고도 믿을 수가 없었다.“누나.”그때 송혁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그녀가 고개를 돌리자 송혁준이 웃는 듯 마는 듯한 얼굴로 그녀를 쳐다보고 있었다.“황실 핏줄이라는 신분을 너무 중요하게 생각하면 안 된다고 했잖아.”송혁준이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사람들은 바보가 아니야. 누나가 어느 정도의 사람인지 다들 짐작하고 있어.”“뭐라고?”송지아가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나 이제 이런 파티에도 참석하지 못하는 거야? 여긴 궁이고, 내 집이기도 해. 주인의 동의도 없이 파티를 연 이 상황이 말이 된다고 생각해?”“누나,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 마. 이 황궁이 언제부터 누나 집이었어? 여긴 큰아버지의 집이야. 우리 두 남매는 얹혀사는 것뿐이고!”“너...”“그리고 이 파티는 큰아버지에게 허락받고 연 거야.”“송혁준!”송지아의 얼굴이 붉으락푸르락해졌다.“넌 왜 그렇게 나랑 맞서지 못해서 안달이야? 피 한 방울 안 섞인 남한테는 그렇게 잘해주면서 친누나인 나한테는 왜 이렇게 못되게 구는 건데!”“누나, 난 그냥 누나가 이곳에서 비웃음을 당하는 걸 원치 않는 거야.”송혁준의 얼굴이 어두워졌다.“누난 매일같이 황실 체면이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살잖아. 그러니까 제발 황실 체면을 깎아내리는 일은 하지 마!”말을 마친 송혁준은 차갑게 그녀를 노려보고는 매정하게 돌아섰다.송지아는 손톱이 살을 파고들도록 주먹을 꽉 말아쥐었다. 분노에 씩씩거리는 그녀의 얼굴에 악독함이 어렸다.그때 마침 도우미들이 목탄을 들고 이쪽으로 걸어오고 있었다.송지아는 아무도 모르게 발을 쑥 뻗었다. 그 바람에 도우미는 바닥
시녀는 그녀가 또 서지현 때문에 화났음을 눈치챘다.“전하.”시녀가 그런 그녀를 달래주려고 이렇게 말했다.“새로 들어온 정보가 있습니다...”송지아가 미간을 찌푸리며 물었다.“뭔데?”“뒷조사하러 간 사람이 그러는데 서지현은 맨체스터 시티 판자촌에서 자라나 종일 집시들과 어울렸다고 합니다. 부모님은 밀항객에 아버지는 마약, 어머니는 몸 파는 여자라 어릴 적부터 버려진 거나 다름없다고 했습니다.”“그럼 우리 고모와도 아무 관계 없겠네.”송지아는 그제야 길게 숨을 내쉬며 자기가 생각이 많아진 거라고 생각했다.“전하, 당연한 말씀입니다.”시녀가 웃으며 말했다.“그 비천한 출신으로 남양에 상경할 수 있는 것만으로도 큰 복이지요. 전하, 오늘 무슨 일 있었습니까? 혹시 석진 도련님과 싸우셨는지요?”송지아는 울화가 치밀어올라 등을 돌렸다.차라리 싸웠으면 얼마나 좋을까. 나석진이 얼마나 다쳤는지도 모르는데 이 상황을 어떻게 넘겨야 할지 모르겠다.저번에 가연 왕후가 이미 그녀에게 나씨 집안과 윤씨 집안과 대적하지 말라고 했건만 지금 이렇게 상황이 꼬인 것이다.송지아는 눈을 질끈 감더니 다시 번쩍 떴다.“흥, 내가 무서워할게 뭐람?”그녀는 갑자기 웃기 시작했다.“아저씨가 이런 비천한 여자랑 돌아다니는 걸 알면 나씨 집안도 쪽팔릴 거야. 오늘 내가 서지현 씨한테 손댄 건 혼 좀 내줘서 나씨 집안 체면을 살려주려고 한 것뿐이라고.”가연 왕후가 물으면 이렇게 답할 생각이었다.칼날을 서지현에게 돌리면 가연 왕후도 나석진이 다친 걸 추궁하지는 않을 것이다.이렇게 생각한 송지아는 기분이 좋아졌다. 좋은 아이디어가 생기자 몸도 마음도 편안해지는 것 같았다.“됐어. 나도 이만 쉴래. 나가봐.”“전하, 말씀드릴 게 하나 더 있습니다...”“뭔데?”“어제 윤 회장님을 봤습니다.”시녀가 낮은 소리로 말했다.“서궁 쪽으로 가는 걸 봤습니다. 혁준 전하께서 정말 윤 회장님께 임월 공주님의 치료를 부탁하셨나 봅니다.”“그런 일이 있었어?”송지아가 미간을
“...”최연준은 말문이 막혔다.만약 강서연이 아이를 낳지 않기로 마음 먹으면, 이제 뜨겁고 엉큼한 짓은 못하게 된다.아이를 낳는 건 둘째 치고 뜨겁고 엉큼한 짓을 못 하는 건 큰일이다.요즘 일진이 좋지 않은지 말을 잘못하지 않으면 곧 말을 잘못할 예정이었다.최연준은 얼른 강서연의 팔을 끌어안으며 귓가에 속삭였다.“여보, 나는 그 뜻이 아니라, 내 말은... 그러니까 전에 당신한테도 얘기하지 않았나? 당신을 딸처럼 아껴주겠다고?”강서연이 가볍게 웃으며 말했다.“그만해요.”“진짜야.”최연준도 웃으며 말했다.“이번 생에 내 ‘딸’은 너 하나야...”“네 이놈!”최연준은 갑자기 들려오는 윤정재의 목소리에 심장이 떨렸다.윤정재는 어느샌가 편전으로 들어와 있었다. 최연준은 고개를 들자마자 부릅뜬 윤정재의 두 눈을 맞닥트렸다.“무슨 헛소리야?”“...”“지금 감히 내 머리 위로 기어올라?”윤정재는 은침으로 소독을 하던 차에 은침을 하나 더 꺼내 최연준을 찌르려고 했다.강서연이 얼른 최연준을 막아서며 말을 돌렸다.“아빠, 아빠가 약 가져다 달라고 시켜서 온 거잖아요. 확인해 보세요. 이거 맞아요?”윤정재는 그제야 동작을 멈추고 그들이 가져온 한약을 유심히 살펴봤다.그는 한약을 살피면서 오버스럽게 냄새를 킁킁 맡더니 고개를 끄덕이며 흐뭇하게 웃었다.“그래, 이거 맞아... 음, 그래 이것도 맞고.”강서연은 윤정재가 도대체 뭐 하자는 건지 도무지 이해되지 않았다.최연준은 멈칫하더니 주변을 둘러봤다.생기를 잃은 듯 창백한 여자가 내전 침대에 누워 있었는데 바로 송임월이었다.강서연과 최연준이 오기 전에 윤정재는 이미 송임월의 주요 혈 자리에 침을 놓았기에 그녀는 이렇게 깊이 잠들 수 있었다.송임월 주변을 둘러싸고 있는 사람은...최연준은 미간을 찌푸리더니 보일 듯 말 듯한 미소를 지었다.그 시녀들은 아마 송임월을 보살피러 온 사람들일 것이다. 하지만 누군가가 ‘좋은 마음’으로 일부러 송임월 옆에 심어놓은 사람일 수도 있다.지
윤정재는 실눈을 뜨고 씩씩거리며 최연준을 뚫어져라 쳐다보더니 한 손을 주머니에 찔러넣고 은침함을 만지작거렸다.이때 멀지 않은 곳에서 달콤하지만 어딘가 어색한 발음이 들려왔다.“하라부지.”윤정재가 멈칫했다.최군형이 비틀거리며 윤정재를 향해 달려왔다. 멀리서 보면 정말 하얗고 동그란 것이 찹쌀떡 같았고 동그란 눈은 사람을 사르르 녹게 했다.햇빛 아래 어린아이의 미소는 유난히 빛났다. 마치 하느님이 그를 만들 때 모든 아름다움을 그의 보조개에 때려 넣은 것처럼 말이다.강서연은 어이없다는 듯 웃음을 지으며 얼른 고쳐주었다.“내 새끼, 할아버지야, 하라부지가 아니라.”윤정재는 마음이 사르르 녹는 것 같았다. 할아버지든 하라부지든 막론하고 손주의 목소리는 천사의 속삭임 같았다.윤정재는 얼굴에 주름이 잡힐 정도로 환하게 웃으며 두 팔을 벌리고 큰 소리로 불렀다.“아이고! 하라부지 여기 있다. 하라부지가 우리 손주 만나러 왔어.”강서연과 최연준이 서로 마주 보며 겨우 웃음을 참아냈다.찹쌀떡과도 같은 최군형은 그대로 윤정재의 품에 쏙 안겼고 윤정재는 최군형을 번쩍 들어 올리더니 조심스럽게 그를 꼭 끌어안았다. 뽀뽀하고 싶었지만 꺼칠꺼칠한 수염이 그를 찌를까 봐 짓궂은 표정을 지었고 이에 최군형이 깔깔 웃어댔다.최연준은 한숨을 푹 내쉬었다. 최군형은 하늘이 보낸 구세주임이 틀림없다고 생각했다.윤정재는 최군형을 보자 최연준이 개코라고 한 것도 신경 쓰지 않고 손주랑 놀아주기 시작했다.평소에 다가가기 힘들다고 소문난 윤정재는 늘 엄숙하고 거리감이 느껴졌고 그와 대화하려면 숨을 꾹 참고 얘기해야 할 것 같았다.하지만 최군형은 세상에서 유일하게 윤정재의 수염을 당기고 눈썹을 뽑고 머리채를 잡을 수 있는 사람이었다.아이는 힘 조절이라는 걸 몰랐기에 윤정재는 아파서 표정이 일그러졌고 보다 못한 강서연이 최군형의 포동포동한 손을 찰싹 내리쳤다.“이거 놔!”“뭐 하는 거야?”윤정재는 바로 눈을 부릅뜨며 최군형을 품속에 숨겼다.“아빠, 어릴 때부터 좋은 습
“...”최연준은 할말을 잃었다.강서연은 풍부한 남편의 표정에 풉하고 웃음을 터트리며 꺼이꺼이 웃었다....송지아가 낮잠을 자려는데 누군가 살금살금 들어오는 게 보였다.“전하, 왕후 마마께서 부르십니다.”송지아는 가슴이 떨렸다. 말하는 사람은 가연 왕후의 시녀였다. 왕후는 인자하기로 소문난 사람이기에 오수에 이렇게 시녀를 보내지 않을 것이다.이 시간에 그녀를 불렀다는 건 아마 나석진이 다쳤다는 소문을 들어서일 것이다.송지아는 정신을 차리고 시녀에게 단장을 해달라고 하고는 얼른 정전으로 향했다.왕후가 그녀를 부른 곳은 정전 속의 한 밀실이었다.송지아가 안으로 들어가자마자 뒤에 있던 나무문이 묵직한 소리를 내며 닫혔다. 어두운 불빛 아래 왕후는 돌벽을 마주하고 서 있었다. 깡마른 뒷모습이었지만 아우라는 여전했다.송지아는 앞으로 다가가 인사를 올렸다.“숙모님...”이렇게 부르자마자 저번처럼 가연의 따귀가 날라왔다.“지아야, 도대체 무슨 짓을 벌이고 있는 거야?”가연 왕후는 참다못해 이번에 끝내 터지고 말았다.이번에 송지아를 때릴 때도 힘을 잔뜩 넣었기에 손바닥이 아팠다.덕분에 송지아는 얼굴에 선명한 손자국이 났고 바로 눈물이 핑 돌면서 억울하고 분했다.“숙모님, 이번엔 정말 억울합니다.”송지아가 변명을 늘어놓았다.“아저씨가 다칠 줄은 몰랐어요. 그냥 그 비천한 여자를 손 봐주려고 했을 뿐인데...”“그게 네 무덤을 직접 파는 거야!”가연 왕후는 눈을 부릅뜬 채 죽일 듯이 송지아를 노려봤다.“나석진이 그렇게 심하게 다쳤는데 황궁에서 다쳤다는 걸 장군부 전체가 다 알고 있어. 나씨 집안과 얼마나 더 원수를 지려고 그러는 거야?”“지아야, 너 알기나 하니? 내각에서 정권을 잡고 있다면 나도훈 장군은 군권을 들고 있어. 우리는 황족이지만 그냥 타이틀만 있을 뿐이고. 송혁준도 너보다 이를 더 잘 알고 있어!”“숙모님, 저는...”송지아는 입술을 꽉 깨물며 미리 생각해 둔 핑계를 꺼냈다.“그날 저들이 어화원에서 연회를 열었는데
요새 나석진은 계속 병원에서 지냈다.병원 꼭대기의 VIP 병실 피부과.두 손 다 화상으로 껍질이 한층 벗겨졌기에 잘 보호해야 했고 의사들은 회진 후 두 손을 만두처럼 붕대로 꽁꽁 감쌌다.자세히 보지 않으면 아마 도라에몽과 비슷할 것이다.손을 쓸 수 없으니 핸드폰을 만지거나 게임을 할 수도 없었고 그저 매일 침대에 누워 천장을 바라보며 거기에 새겨진 모양이 몇 개의 실로 이루어졌는지를 셌다.다행히 서지현은 양복점에 휴가를 내고 매일 밤낮으로 나석진의 곁을 지켰다.서지현은 나석진이 그를 보호하다가 다쳤다고 생각해 죄책감으로 가득 찼다. 전에는 그저 약간의 애정을 느꼈을 뿐이었다면 지금은 그 애정이 홍수처럼 그녀의 마음을 덮치고 있었다.밥을 먹고 물을 마시는 작은 일부터 시작해 몸을 닦는 일까지 손수 진행했다.처음에는 나석진도 이를 불편해했다.하지만 익숙해져서 그런지 세 번째부터는 그저 즐겼다.서지현이 몸을 닦아주는 손짓이 너무 부드러워 녹아내릴 것만 같았다. 손은 야들야들하고 타올의 온도도 알맞았다. 그렇게 그의 몸을 닦아줄 때마다 그는 코피가 터질 것 같았고 머릿속엔 19금 장면들로 가득했다.“아저씨.”서지현이 열심히 나석준의 몸을 닦으며 말했다.“의사 선생님 말씀으로는 남양은 날씨가 더워서 반드시 몸이 뽀송해야 한다고 했어요. 아니면 계속 이렇게 누워 있다가 땀띠가 날 수도 있다고 하더라고요.”“그래.”나석진은 서지현의 부드러움에 푹 빠져 자기가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인지하지 못했다.“그럼 몇 번 더 닦아주든지.”서지현이 멈칫하더니 빨개진 얼굴로 아무 말 없이 계속 몸만 닦았다.하지만 고양이처럼 사람의 마음을 간질간질하게 하는 그녀의 손짓이 점점 아래로 향할수록 나석진은 온몸에 불이 붙은 것처럼 안절부절못했다.이러다 정말 망신을 당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대배우로서 그럴 수는 없었다. 특히 서지현 앞이라면 더더욱 말이다.하여 나석진은 마치 장어처럼 펄떡거리며 자리에서 일어났다.이에 서지현이 화들짝 놀라며 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