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 밤, 김단은 새벽녘까지 잠에 들 수 없었다.방 안의 난로가 뜨겁게 타올라서일 수도 있고, 3년 동안 추위에 떨며 비가 새는 음침한 오두막과는 달리 너무 포근한 잠자리 때문일 수도 있었으며, 마른 이불이 너무 따뜻해서일 수도 있었다. 모든 것이 황홀하게 느껴질 만큼, 마치 다른 세상에 온 듯한 낯선 기분이 들었다.남은 생은 세답방에서 보내게 될 줄 알았으나 다행히 그곳을 벗어났다.이튿날 아침, 눈 부신 햇살이 방 안을 비췄다.그녀는 비로소 자기가 누리고 있는 것이 현실임을 자각할 수 있었다.임씨 부인이 새로 준비해 준 옷은 그녀의 몸에 알맞지 않았지만 상처는 가려줄 순 있었다.그녀는 아침 일찍 안채로 향했다. 아침 기도를 하시는 조모님을 기다리기 위해 안채 밖에서 기다리기로 했다.인기척을 느낀 큰 마님은 문밖으로 나와 그녀를 마주하고 눈시울을 붉혔다.“돌아왔느냐?”짧디짧은 말이었으나 무한한 슬픔이 담겨 있었다. 김단의 눈에서도 눈물이 흘러내렸다.그녀는 안채 안으로 들어가 무릎을 꿇으며 문안 인사를 올렸다.“조모님, 그간 기체일향하시나이까?”“어서 할미에게 오거라.”큰 마님은 그녀를 가까이에서 보기 위해 팔을 들었다.김단은 조심스레 그녀에게 다가갔다.큰 마님은 떨리는 손으로 그녀의 얼굴을 어루만지며 눈시울을 붉혔다.“많이 여위었구나.”짤막한 한마디의 말에 묵혀뒀던 설움이 밀려 온 김단은 그녀의 품에 안겼다. 몸종들도 눈시울을 붉히며 이 광경을 지켜보았다.3년 전 진산댁의 모두가 친딸에게 관심을 쏟던 순간에, 한켠에 덩그러니 혼자 남겨졌던 김단에게 손을 내밀어 준 것이 큰 마님이었다. 김단은 언제고 당신의 손녀이라며 그녀의 버팀목이 되어주었다.그녀가 세답방에서 고초를 겪을 때, 중전마마께 간청을 올리려한 것도 큰 마님뿐이었다. 하지만 중전을 뵙기도 전에 이 사실을 알아차린 공주가 그녀를 궐 밖으로 내쫓는 바람에 세답방에서 바로 빼내지 못했다.진산군댁 큰 마님의 무모한 성정을 나무라 하는 나인에게 달려든 김단은 결국 그날
임학은 믿기지 않는다는 눈으로 김단을 쳐다보았다. 김단이 철없다고 여겼던 그는, 자기 모친께서 눈을 내리깔고 아무 말도 하지 않는 모습에 그는 진실을 알 수 있었다.김단의 입에서 나온 말이 믿기지 않았다.어릴 적부터 하나뿐인 여식을 누구보다 아끼셨던 부친께서 그런 선택을 한 게 실로 믿기지 않았다.그는 뒤늦게 깨달은 진실에 가슴이 찢기는 듯한 통증을 느꼈다.혼란스러운 눈빛으로 방 안에 있는 사람들을 둘러보았지만 달라지는 것은 없었다. 결국 자리에서 일어난 그는 방문을 박차고 나가버렸다.혼자 남은 소한은 어색한 표정을 지었다.“그간 별고 없으셨는지요.”그는 어색하게 큰 마님에게 인사 올렸다.어린 나이에 늠름한 호국 장군이 된 사내를, 용맹과 지혜를 겸비한 자를, 예의 바른 사내를 싫어할 사람은 없었다.“소 장군, 어서 앉으시게! 어제 보내준 귀한 약재들은 잘 받았네. 내가 직접 감사 인사를 해야 했거늘.”소한은 임원의 곁에 앉았다. “소인의 부모님들은 정년이라 귀한 약재들을 필요로 하지 않습니다. 주상전하께서 하사하신 인삼과 녹용이니 좋은 품질일 것입니다. 큰 마님께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정말 효심이 깊구려. 마침 소 장군의 혼사에 대해 논의 중이었소. 소 장군이 직접 부모님께 여쭤보게. 적절한 날을 골라 상의를 하는 게 좋을 것 같소.”소한의 시선이 임원에게 향했다.임원은 얼굴을 붉히며 고개를 숙였다.임씨 부인이 미소를 지으며 그녀를 변론했다.“아이고, 아직도 이런 것에 얼굴을 붉히면 어쩌자는 게냐?”임씨 부인은 얼른 소한에게 말을 돌렸다.“나이도 어느 정도 찼으니, 이젠 혼사를 진행할 때가 된 것 같네.”그 말에 동의하는 듯 고개를 끄덕이던 소한의 시선이 김단에게 닿았다.“낭자 생각은 어떻소?”갑작스러운 질문에 김단은 당황한 얼굴로 그를 바라보았다.‘나랑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그녀는 물론, 옆에 있던 임씨 부인과 임원도 상당히 놀란 눈치챘다.소한과 김단을 번갈아 쳐다보던 임원의 눈시울이 붉어졌다.‘혹
한편, 김단의 부축을 받아 방으로 들어온 큰 마님의 병세가 악화하였다.임씨 부인의 말대로 큰 마님의 건강은 예전 같지 않았다.금일 무리를 해서인지 눕자마자 숨을 거칠게 내쉬었다.다행히 큰 마님을 모시고 있던 몸종이 미리 의원을 불러왔고 침소에 누운 그녀에게 침을 놓기 시작했다. 한 시진이 훌쩍 지나서야 그녀는 다시 기운을 차릴 수 있었다.옆에서 그 광경을 지켜보던 김단은 처음 보는 모습에 당황해 어찌할 바를 몰랐다.큰 마님은 당황한 김단에게 손짓을 했다.김단은 혹여 자신 때문에 그녀의 병세가 악화할까 봐 눈물을 참으며 곁으로 다가갔다.“많이 놀랐느냐?”부드러운 목소리에 김단은 코를 훌쩍이며 그녀의 손을 꼭 잡았다.“무병장수하시겠다고 약조하셨잖아요.”하지만 큰 마님에게 남은 시간은 많지 않아 보였다.“이 할미도 오래오래 네 곁에 남아 널 지켜주고 싶구나.”큰 마님은 불현듯 그녀를 바라보며 물었다.“이 할미가 너에게 좋은 혼 자리를 알아봐도 되겠느냐?”건강이 그리 악화되지 않았을 때, 이 집안에서 자리를 잡고 있을 때, 손녀를 위한 좋은 혼사를 찾아주는 게 그녀가 김단을 지킬 수 있는 유일한 방도였다.그 뜻을 모를 리 없었던 김단이었지만 선뜻 받아들일 수 없었다.“소녀는 조모님을 떠나고 싶지 않아요.”3년간 그녀는 많은 것들을 깨달았다.15년간 함께한 가족도 하루아침에 버리는 마당에 피도 섞이지 않은 부군에게 자신의 일생을 맡길 수 없었다.이번 생은 조모님의 곁을 지키기로 결심했다.조모님이 세상을 뜨면 이 집을 나가 홀로 살기로 했다.절에 들어가 수행을 하는 게 이 집안 사람들과 얽히는 것보단 나았다.큰 마님도 그녀의 성정을 모를 리 없었다.한번 결심한 일은 누가 뭐라 해도 할 성정이기에 큰 마님은 한숨을 내쉬며 말을 아꼈다.김단은 큰 마님이 잠들 때까지 곁을 지키다가 조용히 밖으로 나왔다.그녀가 별당으로 들어가자마자 숙희가 다가왔다.“아씨, 둘째 아씨께서 찾아오셨습니다.”‘임원이?’미간을 살짝 찌푸린 김단에게
그녀의 질문에 임원은 결국 눈물을 터트렸다.임원은 연신 고개를 저으며 부정했다.“아니오. 그런 적 없소. 그때 공주자가의 유리잔을 깨트린 게 나인 것은 맞지만, 낭자를 모함한 것은 내 몸종이오…”그녀는 억울한 듯 말했다.문에 비스듬히 기댄 임원이 부드러운 목소리로 물었다.“한데 3년 전에는 왜 진실을 고하지 않은 것이오?”말문이 막힌 임원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김단이 조롱어린 어투로 말했다.“낭자가 유리잔을 깨트렸다고 중전마마와 공주자가께 고하면 됐을 터인데, 왜 하지 않았소?”당황한 임원은 자리에서 휘청거렸다.“무, 무서웠소. 처음 궐에 들어 중전마마와 공주자가를 뵙는 자리에서 내 죄를 고하는 것이 두려웠소. 하여…”“이제 와서 왜 이런 말을 하오?”김단은 임원의 말을 중도에서 가로챘다.어떤 말로든 3년 전의 일을 무마시킬 순 없었다.임원은 흐느끼며 고개를 푹 숙였다.“낭자가 날 용서만 해준다면 원하는 건 전부 돌려줄 수 있소. 아버님과 오라버니에게도 말씀해 낭자의 오해를 풀겠소. 매화당도 돌려주겠소. 그리고, 그리고 장군님도 돌려주겠소.”김단은 그제야 임원이 여기까지 찾아온 까닭을 눈치챌 수 있었다.김단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내 분명히 말했소. 낭자의 부모님이고 낭자의 오라버니요. 나와는 아무 관계가 없는 분이오. 매화당은 내 비록 좋아하긴 하나, 대감의 심혈이 깃든 곳이니 낭자의 것이어야 하오. 만일 이곳이 탐난다면 알려주게. 낭자 말 한마디면 언제든지 가질 수 있소.”임원이 황급히 고개를 저었다.“아니오. 낭자와 거처를 다투려고 온 것이 아니오.”“알고 있소.”김단이 비릿한 미소를 지었다.“장군님 때문에 왔다는 것을 알고 있소.”잘못을 빌러 왔다고는 했지만 결국은 남자 때문이었다.임원의 속내를 알아차린 김단의 말에, 임원의 얼굴이 순식간에 붉어졌다.“3년 전, 세답방에 가기 전부터 낭자의 혼처였네. 내 비록 지금 여기에 묶고 있긴 하나 그것 또한 조모님의 은혜에 대한 보답 때문이오. 하물며 난 더는
김단은 방금 벗어 놓았던 옷을 걸칠 새도 없이 밖으로 달려 나갔다.“무슨 일이냐? 누가 이리 소리치는 것이냐?”숙희가 걱정스러운 얼굴로 그녀의 뒤를 바짝 따랐다.“쇤네도 모르겠습니다. 아씨 옷을 걸치십시오. 밖이 많이 찹니다!”하지만 김단은 자신의 옷 따위를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임원이 물에 빠졌다면 아마도 자기 별당에 있는 연못일 것이기에.그 옛날 유리잔 깨뜨린 죄로 세답방에 끌려가 고초를 겪었었다. 만일 임원이 이번 사고로 무슨 일이 생긴다면 임학이 당장 그녀를 죽여버릴지도 모른다.김단이 도착했을 땐, 물속에서 허우적거리는 임원이 보였다.얼어붙은 물속에서 커다란 구멍이 뚫려 있었다.돌다리 위에 몰려든 하인들이 어쩔 줄 몰라 했다.성큼성큼 다가간 김단이 그들에게 외쳤다.“뭣들 하는 것이냐? 당장 구하지 않고 뭐 하는 것이냐?”몇 명의 몸종들이 난처한 표정으로 답했다.“쇤네 때문에 아씨께서 정절을 잃으시면 어찌합니까?”“정절을 지키는 것이 생명보다 중하더냐?”김단은 말도 안 되는 말을 하는 몸종을 노려보더니 망설임 없이 물속으로 뛰어들었다.연못은 깊지 않았으나 찬 기운이 뼛속까지 스며들어 얼음장 같았다.연못 바닥은 진흙투성이라 발을 딛기가 어려웠다. 조금만 방심하면 가라앉을 수 있다.힘겹게 임원을 구해낸 김단이 밖으로 나오자, 숙희는 얼른 두터운 옷으로 두 사람을 단단히 감쌌다.“뭣들 하는 거야? 어서 의관을 불러와! 내가 두 분을 모시고 방으로 갈 테니 뜨거운 불을 지피고 따뜻한 생강차를 내오거라!”숙희의 화난 목소리에 구경하고 있던 다른 몸종들이 제각기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제야 임원의 몸종이 이곳으로 달려왔다. 몸종의 뒤에는 임학도 있었다.얼음물에 빠져 얼굴이 창백해진 자기 주인을 발견한 명희는 황급히 임원을 감싸안았다.“아씨 괜찮으시옵니까? 어찌 물에 빠지신 겁니까?”명희는 곧장 김단을 노려보며 따졌다.“아씨께서 우리 아가씨를 밀치신 거지요?”억울한 사람을 몰아가는 것은 3년 전 그대로였다.그녀가 뭐라
김단의 말에 임학은 정신이 아득해졌다. 그의 머릿속에 물속에서 발버둥 치는 그녀의 모습을 지켜보는 나인들이 떠올랐다.그는 뭐라 말하고 싶었지만 입이 쉽게 떨어지지 않았다.임학이 정신을 차렸을 땐 김단이 이미 자리를 뜬 뒤였다.“아씨…”명희의 울음소리가 그의 심기를 건드렸다.임원은 명희를 노려보며 말했다. “울기만 할 것이냐? 어서 의원을 불러오거라!”명희는 그제야 황급히 의원을 데리러 갔다.임학은 임원을 부축하여 매화당으로 향했다.얼마 뒤 의원은 임씨 부인과 함께 매화당으로 들어왔다.의원이 한편에서 임원의 진맥을 하고 있을 무렵 부인이 임학을 끌고 밖으로 나가 물었다.“어찌 된 일이오? 갑자기 물에 빠졌다니? 혹… 혹 단이가…”“어머님!”임학이 미간을 찡그리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단이가 원이를 구했습니다.”그는 한쪽에 서 있던 명희에게 손짓했다.“이리 오너라.”숙희에게 뺨을 맞아 얼굴이 부어있던 명희는 임학의 부름에 고개를 숙이고 서둘러 달려왔다.의도적으로 부인에게 자신이 맞았다는 것을 알리기 서인지 알 수 없었지만, 임씨 부인은 명희의 얼굴이 부어오른 것을 보고 깜짝 놀랐다.“네 얼굴은 왜 또 그 모양이냐?”명희는 말없이 임학의 눈치를 살폈다.임학은 명희를 한 번 흘겨보더니 물었다.“단이와 원한이 있는 사이냐?”속으로 깜짝 놀란 명희는 황급히 고개를 저었다.“아닙니다. 쇤네가 감히 아씨와 무슨 원한이 있을 수 있겠습니까!”“하면, 단이를 계속 모함하려 드는 연유가 무엇이더냐?”임학이 싸늘하게 물었다.자기가 알고 있는 누이는 절대 많은 사람들이 있는 곳에서 다른 이를 해칠 정도로 어리석지 않았다.게다가 임원과 김단이 밖으로 나온 뒤에야 임학은 명희와 함께 그곳에 도착했다.둘 사이에 있었던 일을 알고 있을 리 만무했다.3년 전에도 이 몸종의 증언 때문에 김단의 죄가 확실시되면서 세답방으로 끌려갔다.명희는 임학이 화를 참고 있는 것을 눈치챌 수 있었다. 이 자리에서 입을 잘못 굴렸다간 꼼짝없이 죽을 것
임씨 부인의 오랜 친우 덕빈이었다.물에 빠져있던 나인들은 그녀를 보자마자 울부짖었다.“덕빈마마…”“마마, 살려주시십시오.”상황을 파악한 덕빈은 얼굴을 찌푸리며 옆에 있던 상궁을 쳐다보았다.상궁은 얼른 아랫것들에게 지시했다.“당장 환복부터 하거라! 아랫것들이 고뿔에 걸리면 마마님들을 무슨 수로 모시단 말이야?”상궁의 불호령에 나인들은 울음을 멈추고 각자의 침방으로 돌아갔다. 나인들이 모두 흩어진 뒤에야 덕빈은 손에 막대기를 들고 있는 임학에게 차갑게 말했다.“본궁마저 때릴 작정이오?”정신을 차린 임학은 그제야 손에 든 막대기를 던지고 예를 갖췄다.“당치 않사옵니다.” “궐에조차 이리 막무가내로 구는데, 본궁에겐 그리하지 아니한다는 보장이 있소?”덕빈은 화가 나 보였다.임학은 그제야 자기가 성급하게 행동한 것을 알아차릴 수 있었다.세답방은 궐 내에서 가장 계급이 낮은 곳이지만, 어찌 되었든 궐의 일부였다.이 안에서 발생했던 일이 외부로 퍼져 사람들의 입방아에 오르면 임학은 물론 진산군댁이 고초를 겪을 것이다. 임학은 궐에 들어오지 말았어야 했다.3년 전 김단이 큰 처벌을 받았던 것도 공주자가의 가장 소중한 유리잔을 깨트린 죄를 물은 것도 있었지만 주상께서 진산군에게 경고하는 의미도 있었다.그렇기에 3년 간 아무도 김단을 찾아가지도 않은 것이다. 그녀의 안위도 궁금해하지 않았다.그들은 주상에게 충심을 표하기 위해 어심을 달래기 위해 항명하지 않았다. 그러나 누이가 고문당했던 것처럼 고초를 겪고 있는 나인들을 본 임학은 이성을 잃고 이런 짓을 벌인 것이다.그는 심호흡을 한 번 하더니 바닥에 꿇었다.“죽여주십시오, 마마. 소인이 저지른 잘못에 대한 벌은 기꺼이 받겠나이다.”덕빈은 화가 났지만 어릴 적부터 봐왔던 친우의 아들을 벌하는 게 쉽지 않았다.그녀는 손을 저으며 말했다.“이만 돌아가시게. 주상께는 본궁이 아뢰겠으니 이제부터 세답방에는 얼씬도 하지 마시오.”임학은 그녀의 명에 따를 수밖에 없었다.나인들을 혼내주긴 했
진산군은 김단과 임학을 번갈아 바라보았다.“덕빈마마께서 나서주지 않았으면 너는 물론이고 이 늙은 아비도 의금부로 끌려갔을 것이다!”바닥만 바라보던 김단은 헛웃음이 났다.임학에게 하는 말 같았으나, 이 말은 그녀에게 들려주는 것이다. 바로 그때, 밖에서 임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아버님…”숨넘어가는 듯 가녀린 목소리가 들려왔고 김단은 자기도 모르게 미간을 찡그렸다.임원은 몸종의 부축을 받아 비틀거리며 들어왔다.얼굴이 피로 범벅된 임학을 발견한 임원은 눈물을 떨구며 그의 옆에 무릎을 꿇었다.“아버님, 노여움 푸세요. 콜록…”격렬하게 기침을 하며 애원하는 여식의 모습이 애처로웠던 진산군은 그녀의 몸종에게 고함 질렀다. “당장 너희 아씨를 모시고 나가거라!”아들의 얼굴을 살피던 임씨 부인도 다급히 여식에게 다가가 부축했다.“고뿔이 다 낫지도 않았거늘, 어찌 이리 무모하더냐?”“오라버니를 벌하신다 들었습니다.”하염없이 눈물을 흘려대며 애원하는 임원이다.“오라버니를 용서해 주셔요. 오라버니가 큰 잘못을 저질렀기에 아버님께서도 이리 화나셨겠지요. 하오나 오라버니는 결코 불효자가 아니옵니다. 분명 말 못 할 이유가 있을 것입니다. 소녀를 봐서라도 오라버니를 용서해 주세요.” 여식의 간청에 진산군의 화가 눈 녹듯 사그라들었다.자신을 위해 아버님에게 간청하는 누이에게 큰 고마움을 느낀 임학의 시선이 다시 김단에게 향했다.그러나 김단은 무표정한 얼굴로 어떤 감정 변화도 보이지 않았다. 그녀의 냉정한 모습에 임학은 가슴이 아팠다.아픈 몸을 이끌고 나와 부친에게 간청하는 누이와 자신에게 눈길조차 주지 않는 누이는 완전히 상반되었다. 그녀를 괴롭혔던 나인들과 상궁에게 똑같이 갚아준 자신에게 눈길도 주지 않자 억울한 마음이 들었다.분노가 많이 사그라든 진산군은 여전히 어두운 얼굴로 말했다.“알겠다! 오늘 있었던 일은 교훈으로 삼거라!”말을 마친 진산군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나가 버렸다.임씨 부인은 임학의 몸종에게 일러주었다.“어서 의원을
진산군은 일부러 혹독한 말을 한 것이다.김단에게 절연이라는 말은 곧 그녀가 먼저 시작한 것이라고 알려 주고 싶었다.또한 그녀가 후회하거나 두려워하기를 바랐다.하지만 김단은 그에게 몸을 낮추어 예의를 표했다.“하신 말씀을 반드시 지켜주시기를 바라옵나이다.”그녀의 한 마디가 진산군의 심정을 바닥으로 내려 앉혔다.하지만 김단은 평온했다.자리에 있던 사람들을 쓱 훑어보고 다시 입을 열었다.“별도로 분부하실 일이 없으시옵거든, 저는 물러가 보겠나이다.”몸을 돌려 임원의 방문 앞에 다다랐을 때, 임 씨 부인이 대성통곡하는 소리가 들렸다.심장이 쪼그라들면서 아파 오기 시작했다.아픔에 김단의 미간이 저절로 찌푸려졌다.결국에 그녀는 외면을 선택했다.하지만 울음소리에 고개를 돌릴 수밖에 없었다.임 씨 부인이 임학의 어깨에 기대어 울고 있었다.그녀의 모습에 김단은 의아해했다.임 씨 부인이 잘 운다는 것은 진작에 알고 있었다.그녀는 진산군과 한 편을 먹고 그저 임원을 보호하려 했을 뿐이다.하지만 오늘은 달랐다.마치 김단을 보호하려는 것 같았다.'이게 어떻게 된 일 일까'김단은 생각에 빠졌다.그것도 잠시, 금방 생각을 접고 걸음을 옮겼다.한편 방 안.진산군은 남은 기운이 빠진 것 마냥 그대로 의자 위에 누웠다.그리고 한참이 지나고 나서야 제정신을 차렸다.그는 믿을 수 없는 사실에 입을 열었다.“저 계집이 나와 절연을 하려고 하다니…”자신이 기른 여식이다.직접 말 타는 것과 화살을 쏘는 것을 가르쳤으며 그의 목에 종종 그녀를 태워 밤하늘을 바라보곤 했다.그녀를 위해 세상에서 제일 이쁜 매화를 알아 본 적도 있었다.자신이 무척이나 아끼던 여식이었다.하지만 그 여식이 자신과 절연을 하려고 한다.임 씨 부인이 그를 때렸다.“대감! 저 계집의 성격이 누구와 닮았는지 아직도 모르오? 그렇게 몰아붙이면 더 고집부리려 할 게 뻔하지 않소, 흑흑흑..”진산군은 부인의 말에 무언가 깨달은 듯 하다.저번에도 김단의 태도에 탄식하지 않았는
씩씩거리던 진산군은 김단의 말에 잠시 멈칫했다.마치 믿을 수 없는 말을 들은 것 같은 반응이다.“무, 무슨 뜻이냐? 네가 정녕 임 씨 가문과 혈연을 끊고 싶은 것이냐?”그녀는 15년 동안 길러준 은혜를 이미 갚았다고 했다.하지만 무엇을 갚았는지 알 수 없다.머리가 자신의 주먹보다 더 작았던 아기 때부터 그녀를 길렀다.귀한 아씨가 될 때까지 그녀에게 쏟은 무수한 감정을 무슨 식으로 갚는 단 말인가.진산군은 분노에 차서 몸이 부들부들 떨렸다.반대로 김단의 표정은 평온했다.임 씨 부인은 김단이 혹독한 말을 할까 봐 서둘러 입을 열었다. “아닙니다, 단이는 그러한 뜻이 아닙니다. 대감께서는 화를 푸세요. 단아, 지금 아버지께서 많이 화가 나신 상태다. 그만하거라.”그녀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김단이 다시 입을 열었다.“만약 조모가 나서지 않으셨다면, 저를 진산군 관저의 여식으로 삼으려는 생각은 하셨사옵니까?”세답방에서 모욕과 학대를 받으면서 그녀는 그들의 가족이 되기를 포기했다.김단의 목소리는 부드럽고 물처럼 고요했다.하지만 천 년을 얼린 얼음처럼 사람의 마음을 순식간에 얼어붙게 했다.옆에 있던 임학도 다급해졌다.“김단! 그게 무슨 말이야!”그는 낮은 목소리로 그녀를 꾸짖었다.그리고 진산군의 눈치를 한번 보고는 다시 김단에게 말했다.“잠시만이라도 져줄 수는 있지 않은가!”침상에 누워있던 임원도 자리에서 일어났다.상체를 반쯤 일으키고 천천히 입을 열었다.“아버님, 소녀가 스스로 넘어졌사옵나이다. 누이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사오니, 누이와 다투지 마시옵소서..”임원이 눈물을 닦으며 말했다.김단이 임원을 흘겨 보았다.눈빛에는 임원을 향한 증오가 가득했다.하필 지금 나서서 저런 말을 하는 의도가 무엇인가.그저 그녀의 '무정함' 을 발판 삼아 자신의 '선함' 을 강조하려는 것이 아닌가.하지만 진산군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그저 김단을 뚫어져라 쳐다보았다.그는 김단이 모친의 설득을 이해하고, 형제의 암시를 이해하고, 동생의
임 씨 부인은 말하면서 김단에게 눈치를 주었다.김단은 금방 알아챘다.한 쪽은 선한 척 연기하고, 또 한 쪽은 악한 척 연기하는 중이다.하지만 김단은 이해가 가지 않는 듯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제가 어찌 용서를 구해야 하옵니까?”“무엄하도다!”진산군이 고함을 쳤다.“네가 원이한테 무슨 짓을 했는지 정녕 모르는 것이냐!”김단은 눈썹을 살짝 치켜들었다.그리고 차가운 눈빛으로 임원을 바라보았다.“아씨께서 스스로 넘어 지셨습니다.저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사옵니다.”“어찌 감히 거짓을 고하느냐! 소 장군이 네가 원이를 밀었다고 일러 두었다.”진산군은 흥분을 가라앉히지 못했다.그리고 말을 계속 이어 갔다.“이 아비가 어렸을 때부터 네게 가르쳐 주지 않았느냐. 잘못을 저지르는 것을 두려워 하지 말고, 인정하지 않는 것을 두려워하라고 말이다! 보아하니, 너는 다 잊었구나!”그의 말에 김단은 그저 헛웃음이 나왔다.“다 잊으신 분은 대감마님이 아니십니까?”3년 전, 임원이 유리그릇을 깼을 때 진산군은 직접 그녀를 혼내지 않았기 때문이다.진산군은 목에 들어간 것 마냥 말문이 막혔다.이때, 옆에 있던 임학이 입을 열었다.“걸핏하면 삼 년 전 일을 꺼내는 이유가 무엇이오? 원이는 삼 년 전에야 우리의 품으로 돌아왔소. 궐에 적응하지 못하여 유리그릇을 깨뜨린 것이 두려워 인정을 못한 것이 무엇이 문제요? 자네는 15년 동안 원이를 대신하여 살지 않았소, 잠시 원이의 죄를 덮어 주는 것이 무엇이 그리 잘못되었소? 낭자는 그저 이득만 취하려고 하는 것이오? 하지만 오늘은 그리하지 못할 것이오, 나와 소한이 직접 눈으로 보았소. 그런데 더 하고 싶은 말이 있는 것이오?”그의 한 마디, 한 글자가 김단의 가슴에 못처럼 박혔다.하지만 이러한 그의 태도는 이미 적응 한 지 오래다.그녀는 임학을 한번도 쳐다보지 않았다.냉정한 눈빛으로 침상 위에 있는 천막을 바라보았다.“먼저, 삼 년 전의 일은 소인이 아닌 도련님께서 먼저 말씀하신 것이옵니다. 그리고 소
이런 눈빛은 김단이 3년 전, 소한이 임원의 앞을 가로막았을 때의 모습을 떠올리게 했다.그때도 지금처럼 한마디도 하지 않고,단지 눈빛 하나로 그녀가 반박하려는 모든 욕망을 끊었다.이렇게 생각하니, 김단의 마음은 또 아팠고, 3년 전의 자신이 가소롭기만 했다.그녀는 그때 도대체 소한을 얼마나 사랑했으면, 어떻게 그의 눈빛 하나에 그녀는 아무 말도 못 했을가?임학도 임원의 상처를 보고 놀라서 김단을 세게 밀었다.“너는 왜 항상 무고한 사람에게 화를 내는 거냐? 원이가 너를 위해 기성복 가게를 여러 날 돌아다녀 가장 좋은 옷을 골라 주었는데, 너는 이런 식으로 보답하는 것인가? 잘 들어, 원이에게 무슨 일이 생기면 나는 절대 너를 가만두지 않을 것이다!”임학은 이렇게 말하고 소한을 쫓아갔다.이렇게 큰 정원에 김단만 남았다.바람이 적적함을 불어오기도 하고 오래 참았던 눈물도 마르게 했다.모든 게, 변하지 않았다!3년 전, 그들은 모두 임원의 편에 섰고, 3년 후에도 그들은 여전히 임원을 따라갔다. 버려진 사람은 오직 그녀뿐이었다.이렇게 생각하자, 김단은 또 깊은숨을 들이마시며 마음의 감정을 억눌렀다.혼자면 뭐 어때?세답방에서도 3년 동안 혼자서 견뎌왔잖아?세답방에서도 견딜 수 있는데, 이 조그마한 진산군댁에서 견딜 수 없단 말인가?이렇게 생각하자, 김단은 자신도 모르게 주먹을 꽉 쥐었다.이때, 문밖에서 갑자기 작은 머리가 보였다.숙희는 초롱초롱한 눈빛으로 정원에 다른 사람이 없다는 것을 확인하고서야 뛰어 들어왔다.“아씨, 괜찮으십니까? 방금 소 장군이 둘째 아씨를 안고 가는 것을 보았고, 도련님도 화내면서 가셨는데, 그들이 또 아씨를 괴롭혔습니까?”김단은 왠지 코끝이 시큰거렸다. 그녀는 고개를 저으며 가볍게 웃었다.“아니, 이 세상에 아무도 나를 괴롭힐 수 없어!”“그렇죠!” 숙희는 격동되기도 하고 궁금하기도 했다.“둘째 아씨는 상처를 입었고, 도련님 얼굴도 빨갛게 부었던데요, 아씨가 그랬습니까?”김단은 임학의 얼굴을 때린
임학도 이 일을 기억하고 있었다. 김단의 말을 듣고 마음이 약간 찔렸지만, 여전히 꿋꿋하게 말했다.“서화청은 이미 옛날과 많이 달라졌다. 그는 지금 그의 아버지를 따라 호조에서 일하고 있다. 얼굴도 그 정도면 괜찮은 셈이다.”‘팍!’김단은 마침내 참지 못하고 임학의 따귀를 때렸다.임학은 순식간에 두 눈을 부릅뜨고 분노를 억제하지 못하고 김단을 향해 주먹을 휘두르려 했지만, 김단 눈에 맺힌 눈물을 보더니, 주먹은 김단 눈앞에서 멈췄다.무언가에 가로막힌 듯이 더는 앞으로 나아가지 못했다.김단은 그를 뚫어지게 쳐다봤다. 눈에는 눈물 외에도 원망의 눈빛이 가득 담겨 있다.그녀는 8살 되던 해에 임학이 서화청이 자기를 익사할 뻔했다는 것을 알고 달려들어 서화청의 몸에 타고 때린 것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다. 옆에 있던 네, 다섯명의 어른들도 끌어내지 못했다. 서화청은 임학에게 맞아서 이빨 두 개를 떨어뜨리고 용서를 빌었다. 하마터면 기절할 뻔했다.임학의 주먹에도 상처가 생겼지만, 조금도 개의치 않고, 그저 그녀의 앞에 서서 서화청을 향해 악랄하게 위협했다.“다시 내 여동생 앞에 나타난다면, 나는 이 목숨을 걸어서도 너를 때려죽일 것이다!”그 후, 서화청은 다시는 그녀 앞에 나타나지 않았다.멀리서 봤어도 바로 도망갔다.그러나 지금 서화청은 임학이 직접 쓴 책자에 나타나 그녀의 맞선 명단에 나타났다.김단은 자신을 아끼던 오라버니는 이미 3년 전에 죽었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사랑과 총애를 받은 15년은 정말 실제로 존재했다!그녀는 15년 동안의 수많은 따뜻한 추억으로 세답방의 3년을 버틸 수 있었다. 그러나 지금 임학은 그 15년 동안의 좋은 추억마저 물거품으로 만들고 있다!그녀를 위해 다른 사람과 필사적으로 싸우던 임학을 갈기갈기 찢어버렸다...두 사람은 계속 대치하고 있다.임학도 꽉 쥔 주먹을 놓지 않았고, 김단도 눈물을 흐르지 않았다.그녀는 절대로 이 나쁜 놈 앞에서 눈물을 흘리지 않을 것이다!두 사람이 이렇게 대치하는 것을 보고
임학의 화 난 얼굴은 흉악해 보였다. 그러나 이 흉악한 얼굴이야말로 김단이 익숙한 것이다.조금 전에 부드러운 모습은 단지 지난날 오라버니의 가면을 쓴 사람 같았다, 정말 역겹다!김단은 차갑게 웃었다.“제가 조모와 약속한 이상 그렇게 할 것입니다. 하지만 도련님도 큰 기대는 하지 마십시오.”말을 마치자, 그녀는 몸을 돌려 떠나려 했다.그러자 임원이 황급히 다가와서 김단의 길을 막았다.“언니, 제가 할 말이 있는데, 해도 되겠소?” 이 위선적인 얼굴을 보고, 김단은 조금도 망설이지 않고 임원의 말을 끊었다.“하지 마오.”임원이 잠시 멍했다. 김단이 이렇게 그녀의 체면을 깎을지 몰랐다.그러나, 그녀는 여전히 말하려고 했다.그녀는 입술을 깨물고 큰 억울을 당한 것처럼 눈물을 글썽였다.“언니가 듣기 싫어도 난 꼭 해야겠소. 언니가 오라버니와 저를 싫어한다는 것을 알고 있소. 그러나 조모의 몸은 방금 보시다시피 좋지 않소. 조모의 유일한 소원이 언니가 시집가는 모습을 보는 것인데, 정말로 조모에게 아쉬움을 남겨야 하겠소?”말을 하면서 눈물을 흘리는 임원의 진실 어린 모습은 임학의 마음을 아프게 했다.그는 깊이 숨을 들이쉬고, 마음속의 분노를 억누르며 말했다.“원이는 조모를 모신 지 3년밖에 안 됐지만 벌써 효심이 가득하구나. 너는 조모의 사랑을 받으며 컸는데도 어찌 원이보다 못하느냐?”이 말을 듣고, 김단은 오히려 화가 나서 웃었다.“당신들은 지금 조모가 나의 유일한 약점이라는 것을 알고 조모의 건강은 안중에도 없고, 나를 여기로 부르지 않았습니까? 나는 이미 연석에 갈 것이라고 약속했는데, 왜 이렇게 사람을 못살게 구는 것입니까?”그녀는 눈썹을 찌푸리며 두 사람을 봤다.“설마, 당신들은 정말 나의 결혼 대사를 결정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겠죠?”조롱하는 말투는 임학을 격노시켰다. 임학은 다가가 김단의 팔을 잡았다.“내가 왜 결정 못 하는데? 네 마음속에 정암 그 녀석밖에 없는 거야? 내가 진짜로...”김단은 임학의 손을 뿌리치
임학은 웃으며 말했다.“원이는 항상 부드럽고, 착하고 철이 들었지.”임학과 큰 마님의 칭찬을 듣고 임원은 수줍어서 고개를 숙이고 얼굴에는 웃음꽃이 활짝 폈다.그런데, 김단의 표정은 여전히 쌀쌀했다. 아마도 김단이 싫어한다는 것을 알아봤는지, 큰 마님은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단이야, 그냥 가서 한 번 보는 거야. 마음에 드는 사람이 없으면 돌아오면 돼.”김단은 깊은숨을 들이쉬고 나서야 억지로 웃음을 지으며 큰 마님을 향해 말했다.“조모께서는 이렇게 급하게 단이를 시집보내고 싶어요? 단이는 조모와 몇 년 더 같이 있고 싶어요!”김단의 말을 듣자, 큰 마님은 눈물이 글썽거렸다.큰 마님은 김단의 머리를 어루만지며 상냥하게 바라보았다.“단이가 제일 착하지. 그러나 난 단이 곁에 얼마 오래 있지 못할 것 같구나...”그래서 그녀는 자신이 살아 있을 때 김단을 다른 사람의 손에 맡기고 싶었다. 김단이 행복하게 사는 모습을 봐야 그녀는 안심하고 떠날 수 있을 것 같았다.큰 마님의 말을 듣자, 김단의 마음도 따라서 떨렸다.그녀는 큰 마님의 살아 계시는 날이 많지 않다는 것을 안다.전에 같은 장소인 여기에 앉아서 자신과 이야기를 나눌 때는 생기가 넘쳤지만, 지금은 그녀의 머리를 만지는 손이 심하게 떨고 있다.만약 그녀의 일이 아니었다면, 큰 마님은 절대로 일어나지 않고 침대에 누워 휴양하고 있었을 것이다. .김단은 자신의 혼사가 조모의 유일한 걱정이라는 것을 알고, 더는 거절할 수 없어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알았어요, 조모의 말씀을 따를게요.”“그럼, 제가 가서 준비하겠습니다!”임학은 바로 일어섰고, 표정이 매우 흥분되었다.아주 급한 것 같다.그는 김단에게 잘해줄 수 있다고, 김단의 행복을 위해 노력할 수 있는 좋은 오라버니라는 것을 급히 증명하고 싶었다.큰 마님도 흐뭇하게 웃었다.“역시 단이가 제일 좋아!”말하는 사이에, 이미 피로가 드러났다.수 나인은 이 상황을 보고 바삐 앞으로 나가 부축하였다.“큰 마님, 피곤하신거
3일 후.안채의 시녀가 별당에 와서 김단에게 큰 마님께서 부르신다고 전했다. 그녀가 연금이 풀리는 날이 아직 안 됐는데, 큰 마님이 부르신다고 해서 정말 걱정됬다.그녀는 큰 마님의 몸에 이상이 있어, 이렇게 급하게 부르는 것이 아닌가 생각해서 빨리 안채로 갔다.안채에 들어서자, 그녀는 방에 들어가기도 전에 황급히 불렀다.“조모!”심지어 울먹였다. 그러나, 집 안에 있는 사람을 본 후, 김단은 멍해졌다.큰 마님은 상석에 앉아, 편찮아 보였지만, 입가에는 미소를 띠고 있었다.그리고 임학과 임원도 있었다.이게 무슨 상황이지?김단을 보자, 큰 마님은 바삐 그녀를 향해 손을 흔들었다.“단이야, 어서 오거라!”김단은 그제야 앞으로 다가가 큰 마님 곁에 앉았다. 그리고 경계하는 눈빛으로 임학을 보고 나서야 큰 마님을 향해 부드러운 목소리로 물었다.“조모께서 급하게 부르신 데는, 무슨 기쁜 일이라도 있으십니까?”“당연하지!”큰 마님은 다정하게 김단의 손을 두드렸다. “네 오라버니가 드디어 날 기쁘게 하는 일을 한 가지 했지. 뭐야!”이 말을 듣고, 김단은 임학을 힐끗 쳐다보고, 의심하며 물었다.“도련님이 무슨 일을 했길래, 조모가 이렇게 기뻐요?”“하하하, 자, 이것 좀 봐.”큰 마님은 말하면서 책상 위의 책자 한 권을 들고 김단에게 건네주었다.김단이 받아서 뒤져보니 모두 명단이었다.태부의 손자, 호조판서의 아들, 예조판서의 아들...이게 뭐지?김단이 물어보기도 전에 임원은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언니, 이 책자의 명단은 이미 부모님도 보셨고, 방금 조모도 보셨는데, 모두 칭찬이 자자하오!”큰 마님도 웃음기가 가득했다.“네 오라버니가 너를 위해 주선해 주려고 연석을 마련한단다, 이것은 연석에 올 사람들의 명단이다. 마음에 들어?”김단이 마음에 들든 말든, 큰 마님은 틀림없이 마음에 들 것이다.이 명단에 있는 사람들은 모두 권력과 세력이 있는 집안인데, 큰 마님이 봤을 때 김단에게 어울린다고 생각했다.그런데... 김단
“신분이 너무 낮아!"임학은 미간을 찌푸렸다.“일반 백성들에게 정암의 조건이면 괜찮겠지만 단이는 진산군댁의 큰 아씨이다. 어찌 종사관 따위에게 시집갈 수 있는가!”단이는 진산군댁의 큰 아씨이다.왠지 모르게 이 말을 들은 임원은 질투했다.그러나 그녀는 빨리 감정을 다잡고 임학을 향해 달콤하게 웃었다.“오라버니가 세상에서 가장 좋아요. 항상 저와 언니를 생각해 주시고...”그녀의 말은 임학 마음속의 분노를 조금씩 가라앉게 했다.임학은 그녀를 한 번 보고, 손으로 그녀의 머리를 가볍게 문질렀다.“단이도 너처럼 내 마음을 알아줬으면 좋겠다.”“언니도 알게 될 것입니다.!” 임원은 여전히 달콤하게 웃었다.“언니가 지금 이해하지 못해도 앞으로 다 알게 될 것입니다!”임학은 입꼬리를 올리며 웃었다.“그랬으면 좋겠다!”임원은 머리를 임학의 어깨에 기대었다.“그러나 오라버니께서 이렇게 언니와 정암을 갈라놓으면 언니는 틀림없이 오라버니를 미워할 것입니다.”이 말을 듣고, 임학의 얼굴은 또 굳어졌다.“갈라놓는다고 할 수는 없지.”함께 있는 사람을 갈라놓는다고 하지, 지금은 그저 그들이 함께 있는 것을 대비하는 것이다.임원은 다소 이해하지 못했다.“어쨌든 명정대군이 세상 뜬 후 언니는 상심이 컸을 것입니다. 오라버니는 또 정암도 언니 옆에 못 가게 하고..., 오라버니께서 언니를 위해 선 자리를 만들어 주는 게 어떤가요?”이 말을 듣고, 임학은 멍해졌다.“안 그래도 내가 단이를 위해 적합한 사람을 고르고 있다만, 단이가 마음에 들지 않을까 봐 두렵다.”어쨌든, 김단은 지금 자기를 싫어한다. 아마, 자기가 선택한 것이라면 모두 마음에 들지 않을 것이다!임원은 그 말을 듣고 입을 삐죽거리며 고개를 들어 임학을 바라보았다.“오라버니는 연석을 마련하여 적합한 사람을 모두 모아서, 언니가 스스로 선택하게 하면 되죠."임학의 눈빛이 반짝이었다.정말 좋은 생각이다!그가 먼저 신분으로 선별한 후에, 김단이 마음에 드는 사람을 선택하게 하면 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