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씨 부인의 오랜 친우 덕빈이었다.물에 빠져있던 나인들은 그녀를 보자마자 울부짖었다.“덕빈마마…”“마마, 살려주시십시오.”상황을 파악한 덕빈은 얼굴을 찌푸리며 옆에 있던 상궁을 쳐다보았다.상궁은 얼른 아랫것들에게 지시했다.“당장 환복부터 하거라! 아랫것들이 고뿔에 걸리면 마마님들을 무슨 수로 모시단 말이야?”상궁의 불호령에 나인들은 울음을 멈추고 각자의 침방으로 돌아갔다. 나인들이 모두 흩어진 뒤에야 덕빈은 손에 막대기를 들고 있는 임학에게 차갑게 말했다.“본궁마저 때릴 작정이오?”정신을 차린 임학은 그제야 손에 든 막대기를 던지고 예를 갖췄다.“당치 않사옵니다.” “궐에조차 이리 막무가내로 구는데, 본궁에겐 그리하지 아니한다는 보장이 있소?”덕빈은 화가 나 보였다.임학은 그제야 자기가 성급하게 행동한 것을 알아차릴 수 있었다.세답방은 궐 내에서 가장 계급이 낮은 곳이지만, 어찌 되었든 궐의 일부였다.이 안에서 발생했던 일이 외부로 퍼져 사람들의 입방아에 오르면 임학은 물론 진산군댁이 고초를 겪을 것이다. 임학은 궐에 들어오지 말았어야 했다.3년 전 김단이 큰 처벌을 받았던 것도 공주자가의 가장 소중한 유리잔을 깨트린 죄를 물은 것도 있었지만 주상께서 진산군에게 경고하는 의미도 있었다.그렇기에 3년 간 아무도 김단을 찾아가지도 않은 것이다. 그녀의 안위도 궁금해하지 않았다.그들은 주상에게 충심을 표하기 위해 어심을 달래기 위해 항명하지 않았다. 그러나 누이가 고문당했던 것처럼 고초를 겪고 있는 나인들을 본 임학은 이성을 잃고 이런 짓을 벌인 것이다.그는 심호흡을 한 번 하더니 바닥에 꿇었다.“죽여주십시오, 마마. 소인이 저지른 잘못에 대한 벌은 기꺼이 받겠나이다.”덕빈은 화가 났지만 어릴 적부터 봐왔던 친우의 아들을 벌하는 게 쉽지 않았다.그녀는 손을 저으며 말했다.“이만 돌아가시게. 주상께는 본궁이 아뢰겠으니 이제부터 세답방에는 얼씬도 하지 마시오.”임학은 그녀의 명에 따를 수밖에 없었다.나인들을 혼내주긴 했
진산군은 김단과 임학을 번갈아 바라보았다.“덕빈마마께서 나서주지 않았으면 너는 물론이고 이 늙은 아비도 의금부로 끌려갔을 것이다!”바닥만 바라보던 김단은 헛웃음이 났다.임학에게 하는 말 같았으나, 이 말은 그녀에게 들려주는 것이다. 바로 그때, 밖에서 임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아버님…”숨넘어가는 듯 가녀린 목소리가 들려왔고 김단은 자기도 모르게 미간을 찡그렸다.임원은 몸종의 부축을 받아 비틀거리며 들어왔다.얼굴이 피로 범벅된 임학을 발견한 임원은 눈물을 떨구며 그의 옆에 무릎을 꿇었다.“아버님, 노여움 푸세요. 콜록…”격렬하게 기침을 하며 애원하는 여식의 모습이 애처로웠던 진산군은 그녀의 몸종에게 고함 질렀다. “당장 너희 아씨를 모시고 나가거라!”아들의 얼굴을 살피던 임씨 부인도 다급히 여식에게 다가가 부축했다.“고뿔이 다 낫지도 않았거늘, 어찌 이리 무모하더냐?”“오라버니를 벌하신다 들었습니다.”하염없이 눈물을 흘려대며 애원하는 임원이다.“오라버니를 용서해 주셔요. 오라버니가 큰 잘못을 저질렀기에 아버님께서도 이리 화나셨겠지요. 하오나 오라버니는 결코 불효자가 아니옵니다. 분명 말 못 할 이유가 있을 것입니다. 소녀를 봐서라도 오라버니를 용서해 주세요.” 여식의 간청에 진산군의 화가 눈 녹듯 사그라들었다.자신을 위해 아버님에게 간청하는 누이에게 큰 고마움을 느낀 임학의 시선이 다시 김단에게 향했다.그러나 김단은 무표정한 얼굴로 어떤 감정 변화도 보이지 않았다. 그녀의 냉정한 모습에 임학은 가슴이 아팠다.아픈 몸을 이끌고 나와 부친에게 간청하는 누이와 자신에게 눈길조차 주지 않는 누이는 완전히 상반되었다. 그녀를 괴롭혔던 나인들과 상궁에게 똑같이 갚아준 자신에게 눈길도 주지 않자 억울한 마음이 들었다.분노가 많이 사그라든 진산군은 여전히 어두운 얼굴로 말했다.“알겠다! 오늘 있었던 일은 교훈으로 삼거라!”말을 마친 진산군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나가 버렸다.임씨 부인은 임학의 몸종에게 일러주었다.“어서 의원을
김단은 덕빈궁의 뜰에서 불안한 마음으로 서 있었다.세답방에는 3년 있었지만 덕빈궁은 처음이다. 그러나 덕빈궁은 세답방과 느껴지는 기운이 비슷했다. 숨 막힐 듯한 불안감을 느끼게 하는 곳이었다.3년 전처럼 다시 집으로 돌아가지 못할까 봐 두려웠다.얼마나 서 있었을까, 차가운 날씨 때문에 발가락은 점점 감각을 잃었다. 그때 덕빈궁의 나인이 그녀를 안으로 안내했다.문을 열자, 따듯한 공기가 얼굴을 스쳐 지나갔다.김단은 코끝이 찡해냈다. “과연 빨래를 잘했더군.”덕빈의 목소리가 그녀의 귓가에 들려왔고 김단은 황급히 무릎을 꿇고 예를 갖춰 말했다.“마마, 그간 강녕하셨사옵니까?”덕빈은 가볍게 웃더니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말했다.“과연, 자네 모친 말대로군.”그녀가 말하는 모친은 임씨 부인이었다. 김단은 말없이 고개를 숙여 바닥을 내려다보았다.덕빈은 방안을 지키고 있던 사람들을 모두 물렸다.방문이 닫히자 따뜻한 기운이 그녀를 감쌌지만 김단은 마냥 편안하지는 않았다. 알 수 없는 불길함만 들었다.덕빈은 섬섬옥수 같은 손을 그녀에게 내밀었다.“자.”부드러운 덕빈의 목소리가 이질적으로 들렸다.김단은 어리둥절해서 덕빈의 손을 잡았다.그녀를 자리에서 일으킨 덕빈의 시선이 동상에 걸린 김단의 손에 머물렀다.“어제 빨래를 하라 명한 것에 속상하진 않았소?”덕빈이 옅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그녀를 걱정하는 듯한 어투에 김단은 미간을 살짝 찌푸리더니 고개를 저었다.그녀가 세답방에서 3년간 겪었던 수모에 비하면 그것은 아무것도 아니었다.김단을 자기 옆에 앉힌 덕빈이 계속해서 물었다. “본궁을 탓하지 말게. 세답방 궁녀들이 누구의 명 때문에 그리 한 것인지 잘 알고 있으리라 믿소. 하나, 낭자의 오라비가 충동적으로 군 것은 변하지 않는 사실이오. 본궁이 낭자를 벌하지 않았다면 전하께서 진산군댁을 가만두진 않았을 것이오.”김단도 이해했다.진산군댁의 지위는 예전 같지 않았다. 그들의 생사는 덕빈이나 다른 후궁들의 말 한마디에 좌지우지될 정도였
순간 김단은 가슴이 철렁했다. 나인도 깜짝 놀란 듯 김단과 소한을 번갈아 쳐다보았다.“알겠사옵니다.”나인은 곧장 떠났다.소한은 김단에게 손짓했다.“낭자, 가지요.”김단은 어쩔 수 없이 소한과 함께 입구로 향했다.오늘따라 궁궐 안의 길이 유난히 길게 느껴졌다.아무리 걸어도 커다란 궐문이 보이지 않았다.둘은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앞으로만 나아갔다.둘 사이에는 신발 밑창이 바닥에 닿을 때마다 나는 소리만 있었다. 소한의 기억 속엔 언제나 시끄럽게 떠들던 그녀만 있었다. 종일 쉬지 않고 떠들었던 그녀이기에 이런 침묵이 어색하게만 느껴졌다. 결국 참다못한 그가 먼저 입을 열었다. “낭자 오라버니의 일은 나도 들었소. 어심이 어지러웠던 것은 사실이나 크게 노여워하시진 않으셨소. 그러니 걱정하지 마시오.”자기를 위로하는 소한이 낯설게만 느껴졌다. 하지만 그녀는 임학의 걱정은 하지 않았다.아무 말도 하지 않는 그녀의 모습에 소한이 다시 말을 이었다. “덕빈마마도 진산군댁의 안위를 위해 그리한 것이니 마음에 두지 마시오. 큰 마님 생각도 해야지 않겠소.”덕빈의 의중도 그녀는 알고 있다. 이런 것은 그녀가 3년 전에 겪었던 고초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기에.소한의 목소리가 그녀의 등 뒤에서 들려왔다.“단 낭자.”순간, 그녀의 심장이 뛰었다. 3년이나 지난 뒤에도 자신을 불러주는 소한에게 심장이 반응할 줄 그녀도 몰랐을 것이다. 그녀는 얼른 자기 감정을 억제했다.소한은 조만간 임원의 낭군님이 될 사람이었고 명목상 그녀와 사돈이 될 사내였다.그에게 감정을 품어서는 아니 되었다.아무 대꾸도 하지 않는 그녀의 모습에 소한은 미간을 찌푸렸다.“언제부터 말수가 준 것이오?”소한은 그녀가 입을 다물고 있는 게 싫었다.그의 질문에는 항상 대답했던 김단이다. 하나, 오늘 김단은 인사 외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갑작스러운 질문에 김단은 살짝 당황했다. 그녀는 뒤늦게 자기가 아무 말도 하지 않은 것을 알아차릴 수 있었다. 세답방에선
김단은 갑작스러운 질문에 큰 마님을 살펴보았다.자신을 바라보는 큰 마님의 시선에서 소한과 다시 잘되길 바라는 큰 마님의 뜻을 알아차릴 수 있었다. 소한에게 아무 감정이 없다고 분명히 말했음에도 큰 마님의 눈에는 어릴 적부터 알고 지낸, 주상전하의 신뢰를 한 몸에 받는 소한가 그녀의 정혼자로 딱 맞았다.하지만 둘 사이의 감정은 오래전에 끝났고 소한의 곁에는 임원이 있었다. 이제 와서 그녀가 끼어들 수도 없었고 둘 사이에 끼어들 생각도 없었다.김단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조모님, 소 장군께서 임원 낭자에게 줄 수정과를 쇤네에게 부탁하여 전달하게 했습니다. 두 사람이야말로 부부의 연이지요. 하오니 더는 그런 생각 마십시오.”큰 마님은 한숨을 길게 내쉬며 한탄했다.“아이고! 남녀 사이의 정이 어디 한 번에 끊어지더냐? 난 그저 너희 둘이 전부터 잘 지내왔기에 아쉬워서 그런 것이다.”김단이 입꼬리를 살짝 올리며 그녀의 어깨에 머리를 살짝 올렸다.“소녀는 그저 조모님과 함께하고 싶사옵니다. 진심이옵니다.”어릴 적부터 같이 자라다시피 했기에 큰 마님이 이리 아쉬워하는 것도 이해가 되었다. 하지만 둘은 이미 오래전에 끝났다. 더는 소한 때문에 괴롭게 살고 싶지 않았다.그녀는 그저 조모님의 곁을 지키며 평화롭게 살고 싶었다.어둠이 깃들자 김단은 큰 마님을 모시고 방에서 나왔다. 몸종들은 풍성한 음식을 갖춰놓았고 진산군과 정부인은 진작에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김단의 부축을 받으며 나오는 큰 마님을 발견한 부부는 자리에서 일어나 그녀를 맞았다. 큰 마님은 김단의 부축을 받으며 원탁의 상석에 천천히 앉았다.“모두 자리에 앉게.” 큰 마님은 오늘 유난히 기분 좋아 보였다. 그간 김단의 자리가 계속 비어 있었던 탓에 그녀는 항상 우울했었다. 다행히 올해는 김단도 자리에 있었다. 흥이 난 큰 마님에 부부는 김단을 바라보며 말했다.“단아, 너도 앉거라.”고개를 살짝 끄덕인 김단은 어색하게 자리를 둘러보았다. 예전에는 모친의 곁에 앉았지만 지금은
사실 김단도 이 집에서 나가고 싶었다.그러나 그녀는 가진 돈이 한 푼도 없었고 알고 있는 친구도 없었기에 떠날래야 떠날 수가 없었다.게다가 조모님은 아직 여기에 계셨다. 조모님을 홀로 남겨두고 맘 편히 떠날 순 없었다.그렇기에 진산군과 임학이 아무리 듣기 싫은 소리를 해도 묵묵히 참을 수밖에 없었다. 그녀의 시선이 그릇에 닿았다. 이 사달이 난 원인이었다. 그녀는 천천히 그릇에 있는 고기를 한 점 집어 입에 넣었다.임학이 차갑게 웃으며 말했다. “이제야 먹을 마음이 생긴 것이냐? 진산군댁 첫째 아씨 성정 한 번 맞추기 어렵구나.”김단은 임혁을 한 번 쳐다본 뒤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녀는 진산군에게 예바르게 말했다. “노여워 마십시오. 의도적으로 도련님께서 집어주신 음식을 피한 것이 아닙니다. 몇 해 전에 몸이 상하면서 비린내가 나는 음식을 먹으면 발진과 아양으로 견딜 수 없었사옵니다. 하여 금일도 음식을 먹지 못한 것입니다. 다른 해산물에도 손을 대지 않았사옵니다.”김단의 말에 진산군 일가는 깜짝 놀라 그녀의 앞에 놓인 접시를 쳐다보았다. 그녀의 말대로 그녀는 어떤 해산물도 먹지 않았다.임학은 믿기 어렵다는 듯 말했다.“위병이 나 먹지 못한다면 믿었을 것이다. 한데 네가 제일 좋아하는 생선을 먹고 발진이 났다는 것을 나더러 믿으라는 것이냐? 내 한 번도 그런 모습을 보지 못했다!”김단은 조용히 옷소매를 거둬 자신의 팔을 보여주었다.매질에 상처가 가득 팔에는 발진 증세가 보이기 시작했다.“이럴 수가! 어서 의원을 부르거라!”부인이 다급히 외쳤다. 바로 이때, 임원의 기침 소리가 거세졌다.목에 무엇이 걸리기라도 했는지 숨이 가쁘게 기침하는 임원의 모습에 부인은 김단은 뒷전에 두고 임원부터 살펴보았다.그러나 임학의 시선은 여전히 김단의 팔에 향해 있었다. 이런 꼴을 보려고 한 말이 아니었다.그저 가족들에게 체면을 주지 않는 그녀가 얄미워 모질게 말했던 것이다. 생선을 좋아했던 누이의 얼굴에 어느새 발진 증세가 일어나기
갑작스러운 제안에 소한은 마음이 살짝 흔들렸다.그러나 그가 답하기도 전에 임학은 소한에게 주먹을 날렸다.소한은 재빨리 몸을 옆으로 피했다.허공에 주먹을 휘두른 임학의 몸이 술상에 엎어졌고 음식들이 바닥에 떨어졌다.그는 손에 잡히는 대로 음식을 들어 소한에게 던졌다.소한은 뒷걸음질을 치며 물러섰다. 얼굴에 불편한 기색이 역력했다.“미친 것이오?”이것은 취기가 아니었다. 아무리 술에 취해도 이런 행동을 한 적은 없었다. 천천히 몸을 일으킨 임학의 옷자락이 어지럽혀있었다.임학은 신경 쓰지 않는 듯 손가락으로 소한을 가리키며 말했다.“원이의 마음에 상처를 줄 시 내 자네를 가만두지 않겠네!”소한은 차가운 표정으로 미간을 찌푸리며 옷 정리를 했다.“전에도 그런 말을 했었던 것 같군.”그때는 김단을 위해 말했었다. 멈칫하던 임학이 말을 이었다.“이제는 원이의 정혼자이니 탐욕 부리지 말게.”“자네가 먼저 제안했소. 난 아무 말도 안 했소.”소한은 차분하게 다른 쪽에 앉았다.임학은 헛웃음을 지었다.“우리가 알고 지낸 지가 몇 해인데 내가 자네 속셈을 모를 것 같소? 단이가 그날 수정과를 가져가지 않아 오늘 특별히 챙겨주지 않았소? 알고 있는지 모르겠지만 집으로 돌아오자마자 수정과를 원이에게 보냈다네. 단이는 자네에게 마음이 없네. 그만 질척거리시오!”‘내가 질척거려? 먼저 질척거린 게 누구인데.’소한은 마음속 말을 삼킨 채 술잔을 들이켰다.소한의 옆에 털썩 주저앉은 임학은 술병을 들어 입에 털어 넣었다. 소한의 뇌리로 상흔과 발진이 얼기설기 자리 잡은 김단의 팔이 스쳐 지났다. 옆 방에서 들려오는 떠들썩한 웃음소리가 들려왔다.얼마 뒤 밖에서 폭발음이 들렸고 불꽃놀이가 시작한 듯 시끌벅적해졌다.사람들은 하늘에 터지는 화려한 불꽃을 바라보며 환호성을 질렀다.두 사람도 고개를 들어 밖을 바라보았다.창가에 기대 손을 흔드는 여인의 형체가 어렴풋이 보였다. 환한 미소를 지으며 불꽃을 즐기는 형체가 두 사람의 시야로 다가왔다.올해의
이 시점에서 자신을 찾아온 것으로 보아 무슨 의도가 있는 것 같았다.자리에서 일어선 김단은 임씨 부인에게 예를 갖춰 인사했다.“마님, 오셨습니까.”아직도 자신을 마님으로 칭하는 그녀 때문에 임씨 부인은 속상했다.그녀는 부드러운 손길로 김단의 손을 맞잡으며 자리에 앉았다.“혼자 울적하게 있을까 봐 이리 와 보았다.”김단은 말없이 자기 손을 빼냈다.임씨 부인은 미간을 살짝 찌푸리며 말했다.“큰 마님께서 널 얼마나 아끼셨니, 네가 이 집안 핏줄이 아닌 것을 안 뒤에도 널 가장 어여뻐 하셨다.”김단도 인정한다.누가 자기를 좋아하는지 누가 진심으로 대하는지 그녀는 알 수 있었다.편찮으신 몸으로 중전마마께 간청하여 자기를 빼내온 것만으로 봐도 그녀의 진심은 의심할 바가 없었다.고개를 떨군 김단의 어깨가 들썩였다. 그녀는 눈물을 쏟지 않기 위해 애썼다.하지만 임씨 부인은 그녀의 진심을 모르는 듯했다.임씨 부인은 옅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대감이 계셔 말을 아꼈다. 네 조모님께 남은 시일이 얼마 없다.”임씨 부인의 말에 김단은 고개를 번쩍 쳐들었다. 애써 참았던 눈물이 그대로 흘러내렸다.‘조모님 곁을 지킨 지 며칠이나 됐다고…’임씨 부인은 안쓰러운 심정으로 손수건을 꺼내 그녀의 눈물을 닦아주었다.“큰 마님을 향한 네 마음도 잘 알고 있다. 하나, 지금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느니라. 큰 마님의 근심을 조금이라도 덜어주는 게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이느리라.”김단은 코를 훌쩍이며 답했다.“직언하시지요, 마님.”둘 사이에 묘한 괴리감이 들었다. 김단의 눈물을 닦아주기 위해 손을 들었던 임씨 부인은 어쩔 수 없이 손을 거뒀다.긴 한숨을 내쉰 부인이 다시 말했다.“이런 상황에서 이런 말을 하는 어미가 미울지도 모르겠구나. 허나 큰 마님께서도 나와 생각이 같을 것 같구나.”임씨 부인은 물끄러미 김단을 쳐다보았다.“네 나이가 적은 것도 아니고 이젠 혼처를 찾을 때가 된 것 같구나.”사실 그녀도 어느 정도 예상은 했다. 그
정암은 진산군댁에 들어서자마자, 별당으로 곧장 달려갔지만, 김단을 만나지 못했다.숙희가 방문 밖에 서서 정암을 향해 인사하고 입가에 옅은 미소를 지었다.“정암 종사관님의 아버지께서 괜찮으시다니 첨만 다행입니다. 그러나 오늘 우리 아씨께서 휴침 중이시라 아마도 종사관님을 만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다음에 오시지요!” 정암은 눈썹을 찌푸리며 물었다.“혹시 아씨께서 날 만나고 싶지 않은 건지?”숙희의 표정이 약간 굳어졌다가 다시 말했다.“종사관님,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아씨께서는 최근 며칠간 제대로 쉬지 못했습니다. 종사관님 아버님께서 풀려나셨다는 소식을 듣고 나서야 겨우 안심하고 잠이 들었습니다. 제가 방해하고 싶지 않아서 그런 겁니다.”정암은 심장이 갑자기 쪼여지더니, 바삐 고개를 끄덕였다.“그래, 방해하지 말고, 푹 쉬게 해야지. 그럼, 그럼 내일 다시 오겠네.”그는 말하고는 돌아가려 했다그러나 숙희가 급하게 그를 불렀다.“종사관님!”정암은 발걸음을 멈추고 그녀를 쳐다보았다.숙희는 여전히 웃고 있었지만, 미간에는 걱정이 가득했다.“아씨는 종사관님 아버지께서 감옥에서 고생하셨을 거라 생각하셨고, 종사관님께서 요 며칠 동안 가족들과 시간을 많이 보내시며 아버님의 마음을 달래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며칠 지나서 저희 아씨께서 종사관님을 보러 갈 것입니다.”며칠 지나서 김단이 그를 보러 갈 테니, 그는 다시 올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정암은 여전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알고 있다. 잘 알고 있다.그녀는 며칠 동안 단식을 했으니, 지금은 분명히 매우 허약할 것이다. 자신이 이렇게 허약한 모습을 보여주면 그가 걱정하고 자책할까 봐, 그녀는 그를 만나고 싶지 않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다만, 가슴이 찢어지듯이 아파서 그의 두 눈마저 시뻘게졌다.그는 무능한 자신이 너무 밉다.숙희는 정암의 마음을 꿰뚫어 보고 바삐 입을 열었다.“종사과님, 아씨의 마음속에는 종사관님이 있어요.”이 말을 듣고 정암이 멍하니 있다가, 계속 고개만 끄덕였다.
정암은 멍해졌다.단식? 찌꺼기를 먹는다고?요즘, 그는 아버지의 일 때문에 바쁘게 뛰어다녔고, 가끔 한가해질 때면 항상 그녀를 그리워했다.그는 그녀가 자기 아버지가 걱정되어 먹지 못하고 잠도 잘 이루지 못했을 것으로 생각했다.그래서 그는 쉬지 않고 달려왔다.진산군댁의 호위가 그를 들어가지 못하게 막는다. 하지만 그도 감히 담을 넘지 못한다. 자신의 경솔한 행동이 그녀의 처지를 더욱 어렵게 할까 봐 걱정했다.그러나 그는 그녀가 이렇게 큰 희생을 할 줄 몰랐다.그는 그가 찾은 증거가 충분해서 아버지가 석방된 것으로 생각했다.그러나 지금은 아버지가 경조부에서 나올 수 있었던 것은 그녀가 단식하고, 찌꺼기까지 먹었기 때문이라는 걸 깨달았다!가슴이 무언가에 찢기는 것 같았다. 정암은 지금처럼 자신을 미워한 적이 없다.무능한 자신이 너무 미웠고, 그녀를 보호해 주겠다고 해놓고, 결국 그녀는 자신을 위해 이 지경까지 괴롭힘을 당했다!임학은 이 틈을 타서 정암의 제한 속에서 벗어났고 정암의 얼굴을 향해 두 주먹을 날렸다.“너 때문이야! 이 썩을 놈아! 네가 뭔데 내 여동생이라 혼인하겠다는 거야!”정암은 비틀거리며 두 발짝 뒤로 물러섰지만, 정신을 차리고 갑자기 임학을 향해 돌진했다. 주먹이 사정없이 임학의 얼굴로 향했다.“당신들은 왜 계속 그녀를 괴롭힙니까? 그녀는 진산군댁의 친딸이 아니더라도 당신 집에서 15년 동안 키운 딸이지 않습니까?”임학은 몇 대 맞고 피를 토했지만, 여전히 물러서지 않고 정암을 향해 주먹을 휘둘렀다.“네가 분수도 모르고 나대지만 않았어도 단이는 이렇게 괴롭힘을 당하지 않았을 것이다!”정암은 피하지 않았고, 피하고 싶지도 않았다.그는 자신이 맞아도 싸다고 느꼈다.자신의 무능함에 주는 벌이라 생각했다.그러나 그는 임학이 자기보다 더 못났다고 생각했다.그래서 다시 주먹을 휘두르고 차가운 목소리로 소리쳤다.“당신들이 그녀의 살갗을 벗기고 피를 마시고 있습니다!”임학은 쓰러지더니, 발버둥 치며 일어나 바닥에 앉아 거
진산군은 몸을 돌려 시녀들을 향해 화냈다.“다들 멍청이느냐? 빨리 의원을 불러 큰 아씨한테 오라고 해! 어서 제비집 죽 가져와!”이렇게 소리쳤지만 몸을 돌려 김단을 쳐다보지는 못했다.숙희도 그제야 김단 곁으로 다가가 손수건을 꺼내 그의 다른 손을 살며시 닦아주었다. 하지만 눈물은 멈추지 않고 계속 흘러내렸다.“아씨, 흑흑흑, 방에 들어가요...”그러나 김단은 그저 평온하게 임학을 바라보며 목이 멘 목소리로 천천히 말했다.“도련님께서는 말한 대로 하시기를 바랍니다.”오늘 이후로, 진산군댁은 더 이상 정암 가족을 괴롭히지 못한다!이 말은 마침내 임학을 자극했다.임학은 김단을 보고 이해할 수 없는 표정을 지었다.“정암이 그렇게 좋아?”얼마나 좋았으면, 정암을 위해 많은 사람이 보는 앞에서 한 통의 찌꺼기를 다 먹을 수 있겠어?정암이 도대체 무슨 능력이 있어서 그녀를 이 지경까지 만드는 건가?김단은 그를 상대하지 않고 숙희랑 방 안으로 걸어갔다.그녀는 과연 정암을 그렇게 많이 좋아하나?그녀도 잘 모른다.그녀의 진산군댁 생활은 마치 바다 한가운데 떠 있는 듯했다. 거대한 파도가 밀려올 때면, 물속으로 가라앉지 않기 위해 필사적으로 허우적대는 것 외엔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걸 그녀는 알고 있었다.그러나 정암은 마치 바다에 떠 있는 쪽배처럼 그녀가 익사할 때 나타나 그녀를 배에 태워서 마음을 따뜻하게 했다.모든 사람이 정암은 자신을 보호할 수 없다고 한다. 작은 쪽배도 바다 위에서는 물결을 따라갈 수밖에 없다. 거센 파도가 밀려올 때면 쪽배도 부서지고 새고 결국 그녀와 함께 바다에 가라앉을 것이다...하지만 그들은 이 쪽배가 그녀의 생명을 구했었다는 것을 모른다.그래서 무슨 일이 있어도 정암이 그녀를 버리지 않는 한 그녀는 정암을 포기할 수 없다!임씨 부인은 눈물을 훔치며 김단을 따라 방에 들어가려 했지만, 방문에 들어서기도 전에 김단이 막았다.“숙희만 있으면 돼요, 마님은 돌아가세요!”말이 떨어지자, 김단은 방에 들어가 담담하게
임학은 김단을 노려보았다. 마치 김단이 먹지 않을까 봐 걱정된 듯 또 입을 열었다.“만약 네가 이 통 안의 것을 먹는다면 진산군댁에서 더는 정암을 귀찮게 하지 않겠다고 약속하마.”임학의 말을 듣고, 임씨 부인은 마음이 쪼여졌다.“학아, 네가 어떻게 단이에게 이렇게 대할 수 있느냐? 단이는 벌써 며칠 동안 아무것도 먹지 않았는데, 네가 어떻게 단이에게 찌꺼기를 먹이느냐?”임학은 몸을 돌려 임씨 부인을 바라보았다.“어머님! 제가 독한 것이 아니라, 정말 김단이 너무 교활해서 그래요! 이번에 원이를 단식하게 하고, 다음에 또 무슨 짓을 할지 누가 알겠어요? 두 분은 정말 더 이상 김단을 믿어서는 안...”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사방에서 숨을 들이쉬는 소리가 들렸다.임학은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임원마저 삼키는 동작을 멈추고 모든 사람과 함께 놀라서 그의 뒤를 바라보는 것을 보았다.그제야 임학은 무언가를 깨달은 듯 온몸이 뻣뻣해져 천천히 몸을 돌렸다.김단은 어느새 찌꺼기 통 옆에 엎드려 두 손을 통에 넣고 통 안의 물건을 잡고 먹고 있었다.임원처럼 게걸스럽게 먹는 것과 달리, 그녀는 천천히 먹고 있었다.그녀는 그저 조용히 먹고 있었다.마치 평범한 음식을 먹는 것 같았다.그런데, 그것은 어젯밤에 남겨진 찌꺼기다!모든 사람이 먹다 남은 것이다!먹기는커녕, 한쪽에 서 있는 것만으로도 그는 찌꺼기 통에서 가끔 풍기는 이상한 냄새를 맡을 수 있다!냄새만 맡아도 속이 쓰리다.그런데, 그녀는 어떻게 이렇게 맛있게 먹을 수 있지?임원의 눈이 심하게 떨고 있었다.3년 전에 그녀가 김단을 해쳤지만, 그녀가 도대체 김단을 어느 지경까지 만들었는지 잘 몰랐다.지금, 이 순간, 한때 구슬처럼 눈부시게 빛났던 사람이 지금에 와서 길가의 거지처럼 찌꺼기 통을 안고 먹는 모습을 보고, 그녀는 마침내 자기가 도대체 김단을 어느 지경까지 헤쳤는지 깨달았다!이렇게 생각하자, 그녀는 가슴이 두근거려 무의식적으로 진산군과 임씨 부인을 바라보았는데, 두 사람은 여전히 놀
김단의 움푹 들어간 검은 눈언저리를 본 숙희는 마음이 깨질 것만 같았다.김단이 힘없이 입을 여는 것을 보았다.“사람을 보내서 경조부에 가서 확인해 봐.”숙희는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알았어요. 제가 바로 사람을 보내겠습니다!”말을 마치자, 숙희는 즉시 사람을 경조부로 보냈다.진산군은 조급했다.“너도 사람을 보냈으니, 내가 속일 수는 없지 않느냐? 빨리 네 여동생에게 좀 먹어라 해!”말하는 사이에 임씨 부인도 왔다. 그녀의 뒤를 바짝 따르던 시녀 두 명이 제비집을 넣고 끓인 죽을 한 그릇씩 들고 있었다.김단과 임원을 보고 임씨 부인은 마음이 아팠고 바삐 시녀에게 말했다.“빨리 두 아씨에게 죽을 먹여라!”그러자 두 시녀는 김단과 임원 앞에 무릎을 꿇고 제비집 죽 한 숟가락을 떠서 두 사람의 입으로 떠넣었다.그러나 김단은 입을 굳게 다물었다.김단은 위협하는 눈빛으로 임원을 바라보았다.김단의 시선을 감지한 임원은 가슴이 조여와, 이미 벌린 입을 재빨리 다물고 다시 누웠다.임원은 눈을 감고 어깨를 계속 떨며 우는 것 같았다.그러나 5일 동안 물을 마시지 않아서, 그녀는 지금 눈물 한 방울도 흘리지 못했다.이 장면을 보고 진산군과 임학은 분노했다.임학은 심지어 욕설을 퍼부었다.“양심 없는 년! 아버지께서 이미 사람을 풀어주셨는데, 또 뭐 어쩌려고? 정말 원이를 죽게 만들 셈이야? 정암 때문에 네 눈에는 네 여동생의 목숨도 보이지 않니?”임학은 화가 나서 정말 미쳐 버릴 것 같았다.그러나 김단은 천천히 눈을 감고 그를 보지 않았다.5일 동안 먹고 마시지 않았는데, 그녀는 지금 정말 그와 다툴 힘도 없었다.그렇지 않으면, 그녀는 꼭 한마디 했을 것이다. 임원은 자기의 여동생이 아니라고!다행히도 얼마 지나지 않아, 숙희가 보낸 머슴애가 황급히 돌아왔다.이 머슴애는 별당 사람이다. 김단의 모습을 보고, 가슴이 떨려 말하는 소리에는 슬픔이 묻어났다. “아씨, 소인은 정암 종사관이 그의 아버지를 데리고 가는 것을 똑똑히 봤습니다.”이
예전에 김단을 위해 별도 달도 따다 주겠다는 사람이 지금은 그녀를 가만두지 않겠다고 한다. 참!김단은 소리 내며 웃더니, 몸을 돌려 계속 풀을 뽑았다. 땅을 바라보는 눈빛 속에는 누구에게도 보이고 싶지 않은 슬픔이 숨어 있었다.“대감마님께서 정말 임 낭자를 아끼신다면 빨리 무고한 사람들을 풀어주세요. 그렇지 않으면 임 낭자는 굶어 죽어도 전 계속 살아 있을 것입니다.”이렇게 말하자, 김단은 무언가가 생각난 듯 고개를 들어 진산군을 바라보았다.눈빛에 담긴 슬픔은 이미 사라졌고, 오직 비웃음만이 남아 있었다. “임 낭자는 대감마님의 유일한 딸이십니다. 그녀를 죽게 내버려둘 수는 없지 않겠습니까?”진산군은 화가 나서 피가 거꾸로 치밀어 오르는 것 같았다. 김단의 득의양양한 모습을 보고, 마음속의 분노는 더욱 솟구쳤다.“좋아! 좋아! 정말 이것으로 나를 쥐락펴락할 수 있을 거로 생각하니? 너는 정말 이 아버지를 우습게 보는구나! 내가 전쟁터에 나갔을 때, 넌 아직 태어나지도 않았어!” 진산군은 김단에게 자기도 고집불통이라 절대 굴복하지 않는다고 알려주고 싶었다.그러나 김단은 가볍게 말을 내뱉었다. “제 아버지의 성은 김씨 입니다. 벌써 죽었다고 들었습니다.”그 말을 들은 진산군은 분노가 치밀어 올라 한동안 말문이 막혔다. 손가락으로 김단을 가리키다가 한참이 지나서야 소매를 뿌리치고 가버렸다.커다란 별당이 다시 썰렁해졌다.김단은 그제야 동작을 멈추고 다시 굳게 닫힌 정원 문을 보면서 오랫동안 눈길을 거두지 못했다.정원 문이 다시 열릴 때는 3일 후였다.이때 김단은 정원의 흔들의자에 누워 힘이 조금도 없었다.소리를 듣고 고개를 들어 입구를 바라보니 진산군이 한 무리의 사람을 이끌고 화내며 걸어오는 것을 보았다.배고픔이 극에 달했는지, 김단은 눈앞이 흐릿해져도 진산군이 오는 쪽을 힘겹게 바라보았다. 그러다 마침내 진산군의 뒤를 따르는 임학과, 뒤에서 누군가에게 이끌려 오는 임원의 모습을 뚜렷이 알아보았다.그녀는 그제야 입꼬리를 올렸다.보
김단은 정원 문 뒤에 서서 어두운 밤 속에 가려진 연못을 조용히 바라보았다.연못 물은 맞은편에 있는 초롱의 빛을 거꾸로 비추고 있었다. 약한 빛은 마치 언제든지 어둠에 삼켜 버릴 것만 같아 연못의 돌다리조차도 똑똑히 비추지 못했다.김단은 깊은 숨을 들이마시고 나서야 돌다리를 향해 걸어갔다. 부드러운 바람이 불어와 귀밑의 살쩍을 불었지만,연못은 미동도 없었다.김단은 자기가 마치 초롱의 빛이고, 부드러운 바람이라 생각했다. 그녀가 어떤 모습으로 망가지든 옛 가족의 마음을 흔들 수 없다고 느꼈다.이렇게 생각하자, 김단은 갑자기 고개를 숙이고 씁쓸하게 웃었다.이 순간, 그녀는 오히려 임원이 있어서 다행이라 생각했다.임원이 정말 마시지 않고 먹지 않는 한 진산군은 반드시 마음이 아플 것이다!김단의 짐작이 맞았다.이틀이 지나자, 진산군은 노기등등하여 별당으로 왔는데, 마침, 김단은 정원에서 김매고 있었다.초봄이 되어 화단의 잡초가 매우 빨리 자라서 제때 뽑지 않으면 며칠이 지나지 않아 꽃보다 더 높아질 수 있다.진산군이 문을 부수고 들어오는 걸 본 김단은 그제야 몸을 일으켰다. 진흙으로 더럽혀진 두 손을 진산군을 향해 내보이며서야 비로소 입을 열었다.“대감마님께서 오늘 오실 줄 몰랐습니다. 제대로 인사드리지 못한 점, 양해 부탁드립니다.”“망할 년!”진산군은 노발대발하더니 손을 휘젓더니 엄하게 명령했다.“뒤져라!”갑자기 두 팀의 호위가 좌우로 나뉘어 줄지어 들어왔다.김단은 그제야 눈살을 찌푸렸다.“대감마님께서 무슨 뜻입니까?”진산군은 대답 없이 김단만 뚫어지게 쳐다보았다.얼마 지나지 않아 두 팀의 호위는 또 모두 나왔다.“대감마님, 어떤 음식도 찾아내지 못했습니다.”“대감마님, 저희도 아무것도 찾지 못했습니다.”그녀가 음식을 숨겨서 먹는 줄 알았던 모양이다.김단은 자기도 모르게 콧방귀를 꼈다.진산군이 차갑게 소리치며 물었다.“너는 도대체 먹을 것을 어디에 숨겼느냐!”이틀 동안 먹지도 마시지도 않아서 임원은 침대에서 내려올 힘
진산군은 이 일을 알고 매우 화가 났다.김단이 별당에 도착하기도 전에 진산군댁의 호위들은 벌써 별당을 포위했다.호위장은 때마침 돌아온 김단에게 인사를 올리고 나서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대감마님께서 오늘부터 큰 아씨를 별당에 연금하여 외출을 금지하라는 명을 내렸습니다.”김단은 이미 예상해서 놀라지도 않고 그저 담담하게 받아들이고 별당 안으로 들어가려 했다.그러자, 호위장은 또 김단을 막고, 이어서 말했다.“그리고 큰 아씨께서 단식하는 것을 좋아하시니 오늘부터 잘못을 뉘우칠 때까지 마시지 말고, 먹지도 말라고 명하셨습니다.”김단은 한숨을 내쉬었다.그러고는 여전히 담담한 모습으로 말했다.“알겠으니, 이제 들어가도 되겠소?”김단이 이렇게 차분한 것을 보자, 호위장은 의아했다. 김단이 무슨 방법이 있어 연금에서 빠져나갈까 봐 작은 소리로 알려줬다.“대감마님께서 우리더러 별당을 엄격히 지키라 하셨습니다. 이 기간에 별당에는 아무도 드나들지 못합니다. 명을 거역하는 자는 당장 죽이라고 하셨습니다.”이 말은 김단이 이 문을 들어서는 순간, 밖의 사람과 연락을 하지 말아야 한다는 뜻이다.예를 들면, 전에 몰래 그녀를 보러 왔던 정암을 말한다.하지만 지금, 김단이 걱정되는 사람은 정암이 아니다.그녀는 미간을 찌푸리며 물었다.“대감마님께서 벌을 내린 사람은 나뿐이오. 내 마당의 하인과는 무관하오. 나를 가둬두기 전에 내 마당에 있는 모든 사람을 나오라 해도 되겠소?”이 말을 듣자, 호위장도 난감했다.“이러면...”“모두 살자고 일하는 것인데, 그들도 집에 살려 먹여야 할 사람이 있는데, 주인인 내가 잘못했다고 그들까지 연루해야 하오?”김단은 말하면서 머리에서 비녀 하나를 뽑아서 호위장 손에 넣어 줬다.“좀 봐주시죠.”이 비녀는 전에 궐에서 하사한 것이다. 비녀 위에 있는 진주만이라도 가치가 어마어마해서 호위장은 바로 마음이 움직였다. 생각해 보면 김단의 말도 도리가 있다.더군다나, 진산군은 큰 아씨를 연금하라 했지, 미리 별당 사람을
진짜 살인범은 바로 임학을 가리킨다.임학도 알아듣고, 갑자기 주먹을 꽉 쥐었다.“정암의 아버지가 무사하기를 원한다면 아주 간단해. 네가 정암과 헤어지면 돼.”“저는 정암과 헤어지지 않을 것입니다.”김단은 차가운 목소리로 대답하고는, 임원을 쳐다봤다.“임 낭자는 진산군댁을 위해 속죄할 것입니다. 그때 가면 진산군의 마음속에 제 혼사가 중요한지, 아니면 그의 유일한 딸이 중요한지 알겠지요!”임원은 김단의 위협하는 눈빛을 보고, 바로 임학의 소매를 잡았다.“오라버니, 정암 종사관의 아버지는 죄가 없습니다. 그를 억울하게 해서는 안 됩니다! 제발 오라버니가 가서 아버지를 좀 말려주세요! 아버지께서 사람을 풀어주지 않으면, 저도 음식을 먹지 않을 것입니다!”임원의 말을 듣고, 임학은 화가났다.“너까지 왜 이러는 거야? 김단이 시켰어?”임원이 무서워하는 모습을 보자, 임학은 바로 알았다.“김단이 뭐라고 위협했길래, 네가 이렇게 무서워하는 것이야?”임원은 머리를 숙이고 눈물이 맺혔다.“오라버니께서 저를 아끼신다면 아버지를 설득해서 사람을 풀어주라고 하면 안 돼요?”“너!”임학은 화가 났지만, 임원을 바라보면 도저히 혼낼 수가 없었다.그저 김단을 향해 낮은 소리로 혼냈다.“네가 누구의 성격을 닮았는지 잊지 마! 만약 아버지께서 네가 원이로 자기를 위협한다는 것을 알게 된다면, 아버지가 사람을 풀어줄 거 같아?”“꼭 풀어 줄 겁니다.”김단은 자신 있게 웃었다. 확신했지만 씁쓸하기도 했다.“단식한 사람이 제가 아니라 임원이기 때문이죠.”임원이라서 그는 꼭 조급하고 마음 아파할 것이다!하지만 단식하는 사람이 자기라면, 그녀가 진산군댁에서 굶어죽어도 진산군은 사람을 풀어주지 않을 것이다.김단은 이 점을 똑똑히 알기에 임원을 찾아왔다.김단의 말은 임학의 마음을 아프게 했다. 임학도 자기가 왜 이런 반응이 있는지 몰라서 오히려 화냈다.“너! 그래 좋아. 내가 지금 당장 아버지에게 아뢰러 가마. 나중에 누가 더 큰손해를 볼지 두고 보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