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단과 명정대군과 아는 사이였다.덕빈과 임씨 부인은 오랜 친우였기에 어릴 적부터 두 여인의 아이들은 함께 놀면서 컸다. 하지만 신분이 고귀했던 명정대군과 아무리 친하게 지냈다고 할지 언정, 그들 사이에는 높고 낮음이 존재하고 거리감이 있었다.훗날 학업에 열중해야 했던 명정대군은 궐밖으로 나오는 빈도수가 점점 줄었고 그들의 만남도 줄어들었다.그녀는 세답방에서 명정대군과 마주친 적이 있었다. 다만 무수리의 신분이었던 그녀는 많은 나인들 뒤에서 무릎을 꿇고 고개를 숙여 인사밖에 하지 못했다. 그렇기에 대군도 그녀를 보지 못했을 것이다. 덕빈의 옆에 명정대군이 앉아 있었다. 정갈하게 옷을 갖춰 입은 명정대군은 우아했다. 워낙 키가 컸던 탓에 앉은 키도 덕빈보다 훨씬 컸다.이목구비가 뚜렷했던 명정대군은 주상전하를 닮았다. 눈매는 덕빈을 닮아 온화하면서 부드러웠다.그는 연민이 어린 시선으로 김단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의 눈빛에 김단은 자기가 세상에서 가장 불쌍한 사람처럼 느껴졌다.“일어나시오.”덕빈은 바닥에 엎드려 인사하는 그녀를 일으켜 세웠다.“낭자의 모친께서 어제 서신을 도내왔다오. 이제 와서 그런 얘기를 꺼낸 것이 늦은 감은 있구려. 내 미리 알았더라면 그날 낭자가 왔을 때 좀 더 이야기를 나눠을텐데.”김단은 눈을 내리깔고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남들 눈에는 부끄러워 아무 말도 못 하는 것처럼 보일지도 몰랐다.사실 그녀는 할 말이 없었다.김단에게 인정을 베푸는 덕빈의 모습에 임씨 부인은 기분이 좋았다. 김단을 물끄러미 바라보는 명정대군에게 임씨 부인이 화색을 띠며 말했다.“대군자가께서 점점 준수해지고 비범해지십니다.”명정대군은 임씨 부인에게 가볍게 목례했다.“장모의 농이 지나치군.”장모라는 호칭에 임씨 부인은 그들의 관계가 더 가까워진 것 같았다.덕빈과 임씨 부인은 눈을 마주쳤고 둘 사이에 만족스러운 미소가 오갔다.그러나 김단은 이해되지 않았다.덕빈은 그녀가 진산군의 수양딸인 것을 알고 있다.세답방에서 3년 간 무수리로
아마도 들려오는 냉랭한 목소리가 익숙한 탓인지, 김단은 심장이 덜컥 내려앉았다. 그녀는 황급히 뒤로 두 발짝 물러서려 했지만, 서두르는 바람에 다리가 풀려 넘어질 뻔했다.다행히도 명정대군이 민첩하게 반응해 그녀를 끌어당겼다.하지만 명정대군이 끌어당기는 탓에 두 사람의 거리는 더욱 가까워졌고 멀리서 봤을 때, 마치 명정대군이 김단을 안은 것처럼 보였다.소한의 원래 맹렬했던 눈동자는 김단의 팔을 꽉 잡은 명정대군의 손에 내려앉았고, 어두운 눈빛은 더욱 깊어졌다.김단은 머리를 흔들면서 왠지 모르게 찔린 기분이 들었다.하지만 찔릴게 뭐 있어?자신은 소한과 이미 아무런 관계도 없으며, 설령 관계가 있다 해도 그저 명목상의 '친척'일 뿐이다. 따라서 그녀가 누구와 함께 있든, 무엇을 하든 그것은 소한과 전혀 상관없는 일이다.아마 소한은 아무렇지도 않을 텐데, 괜히 자기 혼자만 마음이 혼란스러워진 것이었다!김단은 깊은 숨을 들어마시고, 마음속 쓸데없는 생각을 가라앉지고 멀지 않은 곳에 있는 소한에게 인사를 올렸다.“소 장군님.”명정대군도 소한을 바라봤다.“소 장군, 또 궁에 들려 복명하러 왔소?”'또' 자에는 약간의 괴상함이 은은하게 물들어 있었다.소한의 시선은 드디어 명정대군의 손에서 떠나 명정대군을 바라보면서 천천히 다가갔다.“요즘 당우리 주위에 산적들이 창궐해서 현지 관려들이 몇 번이나 토벌 시도했지만 모두 실패하여 주상전하께서 저를 불러 대책을 상의한다고 하십니다.”이 일은 명정대군뿐만 아니라 김단도 들었던 소문이다.전에 세답방에 있을 때부터 나인들이 얘기한 걸 들었다.듣기로는 당우리에 있는 산적들은 일반 산적들과 달리 일찍 전쟁터에서 내려온 장병들로 구성된 사람들이라 훈련도 잘되어 있고 능력이 탁월해서 일반 관병들이 대처하기 힘들 뿐만 아니라 정예 군대를 투입해도 쉽게 승리하지는 못할 것이라 한다.이 일을 생각하자, 김단의 안색은 자기도 모르게 무거워졌다.이때 그녀의 곁에는 명정대군의 지극히 부드러운 속삭임이 들려왔다.“걱정하지
김단은 마음속으로만 이렇게 생각하고 입 밖으로 말하지 않았는데 이는 소한이 보기에는 묵인의 뜻이었다.몸 뒤에 주먹을 꽉 잡은 채, 그는 김단을 차가운 눈빛으로 봤다.“탐라성은 저 멀리 남쪽에 있고, 풍토와 인심도 한양이랑 차이가 매우 큰 것으로 알고 있소, 낭자 정말 잘 생각했소?”김단은 소한이 그녀에게 탐라의 날씨에 적응하지 못할 것이라고 경고한다는 것으로 생각해, 다소 진지하게 말했다.“대군자가께서 탐라의 겨울은 한양처럼 이렇게 춥지 않을 것이라고 했어요, 아주 춥지 않은 한, 저는 잘 적응할 수 있어요.”그녀는 정말 추위를 많이 탄다.두 손을 물속에 담그고 있는 시린 한기도, 겨울밤 문밖에 갇혀 있는 그 차가움도 그녀는 다시는 겪어보고 싶지 않았다.소한은 김단의 이 말에 목이 메어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그는 김단을 노려보며 눈에는 한기가 사그라지지 않았다.그래서 김단이 소한을 쳐다보지 않더라도 강렬한 분노를 느낄 수 있었다.소한은 화가 났다.왜 화가 난걸 가?명정대군한테 시집가기 때문인가?그럴리가 없어!그는 그녀가 혼인하기를 바라고 있지 않았던가?그녀가 시집가야 그도 쉽게 임원과 혼례를 치를 수 있지 않겠는가?아, 그렇구나, 그녀는 그제야 알았다. 그는 그녀가 시집을 너무 잘 갔다고 화내고 있었던 것이다.세답방에 들어가 3년 동안이나 노비로 일한 그녀가 언젠가 대군자가께 시집가서 대군빈이 될 줄 누가 생각이나 했겠는가!김단은 사실 이처럼 천박한 생각으로 소한을 생각하고 싶지 않았지만 소한의 노여움은 정말 엉뚱했다.그래서 그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생각하면 할수록 그녀의 마음속에는 분노가 치밀어 올라 머리를 들고 소한을 보고 미소를 지었다.“어쨌든, 난 더 이상 소 장군의 길을 막지 않을 겁니다. 소 장군은 응당히 기뻐해야 하지오”여기 서서 자기에게 눈치를 주는 대신에!소한은 주먹을 꽉 쥐었다. 만약 이때 그의 손에 무엇인가가 쥐어졌다면 이미 재가 되었을 것이다.그러자 명정대군은 뭔가 생각난
소한을 한 번 비웃으려 했던 명정대군은 이내 안색이 변했다.이를 본 소한은 가볍게 눈썹을 치키며 나지막한 말투에 약간 조롱의 의미를 담았다.“그녀는 모르고 있나 봐요. 그럼, 이게 바로 백성들이 말하는 사기 결혼이 아닙니까?”“네 이놈!” 명정대군은 고함을 치면서 소한을 뚫어지게 봤다.“소한, 공훈 몇 개 세워 아바마마 면전에서 총애를 받는다고 해서 내 머리를 밟을 수 있다고 생각하지 마오. 네까짓 게 이 대군 일까지 상관할 자격이 없소!"“대군자가 이렇게 노발대발할 필요는 없사옵니다.”소한의 입가에는 웃음이 흘렀지만, 눈빛에 맴도는 경멸함은 마치 명정대군의 존엄마저 발밑에 깔아놓는 것 같았다.그리고 명정대군도 이미 이전의 그 온화하고 따뜻한 모습이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잘생긴 이목구비는 심지어 약간 비뚤어져 보이는 듯 했다. 그는 목소리를 낮추고, 어조는 으스스하게 말했다.“설사 사기를 친 결혼이라고 한들? 소한, 당신도 속이지 그래. 낭자가 아직도 당신을 상대할 것 같소?”소한의 검고 침울한 두 눈동자는 그 순간 살인할 것 같은 기색을 띠고 미소도 따라서 입가에 굳어졌다.그러고는 명정대군이 코웃음을 지으며 득의양양한 말투로 말했다. “하여튼, 임단은, 아니, 김단이지. 본 대군이 꼭 대군빈으로 맞이할 테니, 소 장군은 앞으로 비난을 사지 않도록 좀 멀리 떨어져 있는 게 좋겠소.”이렇게 말하고는 옷소매를 뿌리치고 나가 홀로 어화원에 남겨진 소한 온몸의 한기는 홍매 몇 송이도 떨어지게 했다.집으로 돌아가는 마차에 앉은 김단은 시종 말을 하지 않았다.임씨 부인은 그녀를 보면서, 머릿속에 생각하고 있는 것은 모두 3년 전의 김단이다.3년 전, 김단은 조용히 있는 성격이 아니었다. 마차 안에서도 끊임없이 재잘거려서, 매번 궁궐에 들어갈 때마다 어머니인 그녀는 김단이 말을 잘못할까 봐 신신당부해야 했다.그러나, 요즘의 김단은 입에 금을 박아 놓은 듯 좀처럼 입을 열지 않는다.그래서 그녀는 김단의 말을 들으려면 말거리를 잘 생각해야 했
또 이런 우스운 소리다.김단은 웃고 싶었지만, 마음속의 씁쓸함이 만연되어 그녀는 결국에 웃지 못했다.임씨 부인은 아주 가볍고 부드럽게 그녀의 손을 잡았다.“물론 진산군댁의 현재 지위는 이전만큼만 아니지만 난파선도 못이 3,000개가 남았듯이 명정대군이 앞으로 한양으로 돌아오려면 진산군댁에 의거할 수밖에 없다.”여기까지 말하자 임씨 부인은 또 살짝 한숨을 쉬었다.“물론 이 어미도 확실히 사심이 있다. 소한은 젊고 유능하여 적지 않은 공훈을 세웠고 소씨 집안도 지금 조정에서 한창 전성기에 처해있다. 너도 주상께서 지금 얼마나 진산군댁을 꺼리고 있는지 잘 알고 있을 것이다. 그래서 원이를 순조롭게 소씨 집안에 시집 보내는 대신 너는 더 이상 권세가 있는 어떤 집안도 찾을 수 없다. 명정대군이 가장 좋은 선택이야.”김단은 이제야 알았다.결국 그녀의 이번 혼사는 모든 이익에 저울질 된 결과이다.진산군댁이 소씨 집안에 얹혀가고 싶고 명정대군은 진산군댁의 여력이 필요하고 그래서 그녀의 일생이 달린 큰 일은 자연스럽게 그다지 중요하지 않게 되었다.“그렇군요.”그녀는 작은 소리로 말했다. 왠지 한숨이 놓인 기분이다. 만약에 오늘 임씨 부인의 대답이 명정대군의 대답과 같다면, 김단의 마음은 오히려 불안할 것이다. 그러나 지금 그녀는 자기의 이 혼사는 여전히 계산된 것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그녀는 원래 임씨 부인이 소한이 전에 자기가 먼저 시집가야 임원과 결혼할 수 있다고 말한 후에야 계산하기 시작한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지금 생각해 보면 조모가 궁에 들어가 중전마마에게 그녀를 세답방을 떠나게 해달라고 부탁한 후부터 시작되었을 것이다.심지어 더 오래전부터 시작됐다.이제야 다 맞아떨어졌다. 이것이야말로 그들이 자기에게 대하는 태도에 부합된다.아마도 그녀가 안도의 한숨을 내쉬는 느낌이 너무 티가 나서인지, 그녀의 목소리는 분명히 매우 부드러웠지만, 마치 칼처럼 임씨 부인의 마음속에 박혔다.임씨 부인은 두 눈이 약간 붉어졌다."단아, 이 어미를 원망하는가
김단은 일찍이 자기 오라버니를 아주 좋아했다. 왜냐하면 그녀의 오라버니는 그녀를 위해서 말이 불손한 호색가를 쫓아 내고, 그녀를 위해 이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열매를 찾아올 것이며, 심지어 이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야명주까지도 그녀의 앞에 가져다주었기 때문이다.김단의 마음속에서 예전의 임학은 못 하는 것이 없었고, 가장 대단한 오라버니였다.그러나 임원이 돌아온 후부터 그녀의 그 대단한 오라버니는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그저 하루 종일 그녀에게 누명을 씌우고, 그녀에게 구정물을 쏟고, 머리를 쓰지 않고, 충동적이고 무모한 멍청이로만 남아졌다.마치 지금처럼.김단의 팔이 그에게 잡혀 아파서 미간을 심하게 찌푸렸다.그녀가 입을 열기도 전에 옆에 있던 임씨 부인은 이미 손바닥으로 임학의 팔을 때렸다.“너 이게 뭐하는 짓이야, 어서 네 동생 팔을 놔!”“어머님, 왜 그녀를 감싸는 것입니까? 이 마차 안에 어머님이랑 김단 둘 밖에 없는데, 어찌 그녀가 어머님을 울린 것이 아니라고 말할 수 있어요?”임학은 눈썹을 찌푸리며 매섭게 김단을 노려보았다.“경고하는데, 내가 너에게 떳떳하지 못한 곳이 있어도 어머님과는 무관한 일이야. 더 이상 어머님 앞에서 허장성세하지 말고, 다시 한번 어머님을 울게 하면, 난 절대 너를 용서할 수 없다!”임학은 이렇게 호통을 치고는 갑자기 김단을 밀어냈다.김단은 밀려서 세 걸음 뒤로 물러났다. 가뜩이나 삐끗한 발목에서 따끔한 통증이 전해 왔다. 다행히 숙희가 이미 김단의 뒤에 서서 김단을 잘 부축해 안정시켰다.“너 이게 뭐 하는 짓이야!”임씨 부인도 임학을 밀었다. 하지만 임학은 몸체가 건장하여 어디 그녀가 민다고 밀수 있는 것인가.임학이 그대로 제자리에 안정적으로 서 있는 것을 보고 임씨 부인은 또 임학을 두 번 때렸다.“단이와는 관계없는 일이야. 내가 혼자서 운 거야. 너 이 충동적인 성격은 언제 고칠수 있는 게야?”“어머님은 이 말을 해놓고도 우습다고 생각하지 않습니까?” 임학은 벌써 임씨 부인이 김단의 편을
임학은 임씨 부인을 따라 매화당에 갔다.임원의 병은 자가 의원의 보살핌으로 이미 크게 나았고, 가끔 기침이 몇 번 나는 것 외에는 이미 큰 문제가 없다.임씨 부인과 임학이 왔을 때, 그녀는 정원에서 매화를 감상하고 있었다.그녀가 얇게 입은 것을 보고 임씨 부인은 눈썹을 찌푸렸다.“병이 낫기도 전에 왜 나왔어? 그것도 이렇게 얇게 입고, 어서 방으로 들어가!"임씨 부인은 임원을 품에 안고 방에 들어가, 명희를 불러 뜨거운 물을 가져오라고 했다. 그제야 품에서 작은 약병을 꺼냈다.“덕빈마마는 네가 심하게 기침했다는 말을 듣고, 특별히 사람에게 내의원에서 약을 가져오라고 명령했다. 약왕곡에서 얻은 것이어서 전에 중전마마께서 보름 동안 기침을 했는데, 바로 이것을 먹고 낳은 것이라고 한다."임학은 임씨 부인이 직접 임원에게 약을 먹이는 것을 보면서 임씨 부인이 무엇 때문에 집에 돌아오자마자 임원에게 급히 왔는지를 알게 되었다.그도 당연히 임원을 걱정하지만 임원의 안색이 이미 평소와 같아 보이고 또 지금까지 기침 소리를 듣지 못한 것을 보니 큰 문제는 없을 것으로 생각했다. 그래서 그는 다른 일이 더 걱정된다.“어머님, 빨리 말씀해 주세요, 도대체 단이랑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요? 어머님은 또 왜 마차 안에서 그렇게 울었습니까? 그리고 단이가 방금 전에 남은 몇 달을 말했는데, 그 '몇 달'은 무슨 뜻입니까?”임씨 부인은 임원이 약을 삼키는 것을 보고서야 긴 한숨을 내쉬었다.“내가 단이를 위해 혼사를 찾았다. 3개월 후에 단이는 명정대군과 함께 탐라성으로 갈 것이다. 그러니 이 3개월 동안 너는 가만히 있어, 더 이상 단이에게 시비 걸지 마! 이번에 가면 언제 돌아올지도 모르는데..."이렇게 말하자 임씨 부인은 또 코가 찡하더니 눈시울이 약간 붉어졌다.임학은 깜짝 놀랐다.“명정대군요? 어머님! 왜 이런 잘못된 결정을 했나요? 어떻게 단이를 명정대군에게 시집보낼 생각을 할 수 있어요?”임원은 오히려 이해하지 못하는 표정을 지었다.“오라버니는 왜
다른 한편, 김단은 임학이 임씨 부인에게 무슨 말을 했는지 전혀 아랑곳하지 않았다.그녀는 급히 큰 마님을 보러 갔다.어제와 비교해 큰 마님의 상태가 아주 좋아졌는데, 김단이 왔을 때 큰 마님은 수 나인의 시중하에 약을 마시고 있었다.그 약은 매우 쓴 것 같다. 큰 마님은 약을 마시더니 이목구비가 구겨질 정도였다. 그러나 김단을 보자마자 그녀는 바로 웃음을 터뜨렸다.“단아, 왔어?”“조모”김단은 인사를 하고 앞으로 나아가 큰 마님의 침대 옆에 앉았다.“조모, 오늘 기분이 어떠세요?”“좀 나아졌어.”큰 마님은 웃으며 부드럽게 손을 뻗어 김단의 볼을 어루만졌다.“많이 놀랐지?”김단은 연신 고개를 저었다.“조모만 괜찮으시면 됩니다.”그녀의 눈시울이 붉어지는 모습을 보고, 큰 마님은 정말 마음이 아팠다. 갑자기 어젯밤 임씨 부인이 한 말을 다시 생각나서 물었다."지금 막 궐내에서 돌아온 거니?"김단은 노부인도 이 일을 알고 있을 줄은 생각지도 못하고 살짝 멍하더니 침묵하며 고개를 끄덕였다.다시 큰 마님의 말을 들었다.“다른 것 걱정할 필요가 없다. 만약 네가 원하지 않는다면 명정대군은커녕 덕빈께서 직접 와도 조모는 너를 위해 막을 수 있다.”조모는 당연히 무엇이든 그녀의 편이다.김단의 마음속에 따뜻한 기운이 솟아오르더니 그녀는 큰 마님을 보고 고개를 살짝 흔들었다.“손녀의 현재 상황으로 명정대군에게 시집갈 수 있는 것은 이미 넘치는 복입니다. 조모, 걱정할 필요 없어요. 제가 원한 것입니다.”“네가 정말 원하면 좋고!" 큰 마님은 긴 한숨을 내쉬었다.“조모는 네가 조모를 기쁘게 해주고 싶어서 황급히 아무 사람을 찾아서 시집갈까 봐 무서워. 단아, 혼사는 일생의 큰 일이다. 소홀히 해서는 절대 안 된다!”진산군댁 안에서 큰 마님만이 그녀의 혼사를 정말 큰일로 여길 것이다.김단은 참지 못하고 큰 마님 품에 들어가 큰 마님을 꼭 안았다.“조모, 안심하세요. 단이가 정말 원해서 한 겁니다.”조모의 마음을 즐겁게 할 수만 있다면,
5일 후.김단은 허약해 보이는 안색을 숨기기 위해 가볍게 치장을 하고 외출하려 했다.그녀는 이미 십여 일 동안 조모께 문안드리지 않았다. 비록 수 나인께서 돌보고 계시지만, 조모는 틀림없이 그녀를 매우 걱정하실 것이다. 그녀는 조모께 안부를 드려야 한다.조모를 만난 후에 그녀는 정암을 찾아가려 한다.그녀는 정암도 틀림없이 자기를 매우 걱정하고 있다고 생각했다.그러나 문을 나서자마자, 마당에 서 있는 임씨 부인을 보았다.김단을 보자 임씨 부인은 어색하게 웃으며 입을 열었지만,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라 망설였다. 다가서려 했으나 김단이 밀어낼까 봐 걱정되어 그 자리에 서서 안절부절못하는 모습이었다.김단은 살짝 한숨을 쉬고 나서야 임씨 부인을 향해 걸어갔다.그녀는 인사를 올렸다.“마님께서 무슨 일로 찾아오셨습니까?”김단의 부드러운 말투를 듣자, 임씨 부인의 웃음은 그제야 어색하지 않았지만, 눈에는 자기도 모르게 눈물이 맺혔다. 그녀는 김단을 보고 말했다.“원이가 오늘 침대에서 내려온 것을 보고서야 너를 보러 왔다. 지금 네가 이렇게 잘 회복되는 것을 보니 나도 안심할 수 있다.”김단은 고개를 숙이고 말하지 않았다.분위기가 어색해하자, 임씨 부인은 다시 물었다.“이렇게 예쁘게 차려입고 외출하려는 것이냐?”김단은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네, 정암한테 가려고 합니다.”“뭐?”임씨 부인은 좀 놀랐고, 얼굴에는 난감한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단이야, 잘 생각했어? 정말 정암과 함께 할 셈이야?”김단은 대답은 하지 않고 단지 조용히 임씨 부인을 보고 있었다. 하지만 임씨 부인은 그녀 눈에 담겨있는 확고함을 똑똑히 보았다.이 상황을 본 임씨 부인의 마음은 매우 아팠다.“나는 네 결심을 알고 있지만..., 이번에는 정암의 아버지께 일이 생기고, 그럼 다음은? 앞으로 정암의 가족에게 문제가 생기면 너는 계속 이렇게 너와 원이의 몸을 망가트릴 것이냐?”이 말을 듣고서야 김단은 참지 못하고 비웃었다.임씨 부인이 걱정하는 것은 자기가 아니라,
정암은 진산군댁에 들어서자마자, 별당으로 곧장 달려갔지만, 김단을 만나지 못했다.숙희가 방문 밖에 서서 정암을 향해 인사하고 입가에 옅은 미소를 지었다.“정암 종사관님의 아버지께서 괜찮으시다니 첨만 다행입니다. 그러나 오늘 우리 아씨께서 휴침 중이시라 아마도 종사관님을 만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다음에 오시지요!” 정암은 눈썹을 찌푸리며 물었다.“혹시 아씨께서 날 만나고 싶지 않은 건지?”숙희의 표정이 약간 굳어졌다가 다시 말했다.“종사관님,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아씨께서는 최근 며칠간 제대로 쉬지 못했습니다. 종사관님 아버님께서 풀려나셨다는 소식을 듣고 나서야 겨우 안심하고 잠이 들었습니다. 제가 방해하고 싶지 않아서 그런 겁니다.”정암은 심장이 갑자기 쪼여지더니, 바삐 고개를 끄덕였다.“그래, 방해하지 말고, 푹 쉬게 해야지. 그럼, 그럼 내일 다시 오겠네.”그는 말하고는 돌아가려 했다그러나 숙희가 급하게 그를 불렀다.“종사관님!”정암은 발걸음을 멈추고 그녀를 쳐다보았다.숙희는 여전히 웃고 있었지만, 미간에는 걱정이 가득했다.“아씨는 종사관님 아버지께서 감옥에서 고생하셨을 거라 생각하셨고, 종사관님께서 요 며칠 동안 가족들과 시간을 많이 보내시며 아버님의 마음을 달래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며칠 지나서 저희 아씨께서 종사관님을 보러 갈 것입니다.”며칠 지나서 김단이 그를 보러 갈 테니, 그는 다시 올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정암은 여전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알고 있다. 잘 알고 있다.그녀는 며칠 동안 단식을 했으니, 지금은 분명히 매우 허약할 것이다. 자신이 이렇게 허약한 모습을 보여주면 그가 걱정하고 자책할까 봐, 그녀는 그를 만나고 싶지 않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다만, 가슴이 찢어지듯이 아파서 그의 두 눈마저 시뻘게졌다.그는 무능한 자신이 너무 밉다.숙희는 정암의 마음을 꿰뚫어 보고 바삐 입을 열었다.“종사과님, 아씨의 마음속에는 종사관님이 있어요.”이 말을 듣고 정암이 멍하니 있다가, 계속 고개만 끄덕였다.
정암은 멍해졌다.단식? 찌꺼기를 먹는다고?요즘, 그는 아버지의 일 때문에 바쁘게 뛰어다녔고, 가끔 한가해질 때면 항상 그녀를 그리워했다.그는 그녀가 자기 아버지가 걱정되어 먹지 못하고 잠도 잘 이루지 못했을 것으로 생각했다.그래서 그는 쉬지 않고 달려왔다.진산군댁의 호위가 그를 들어가지 못하게 막는다. 하지만 그도 감히 담을 넘지 못한다. 자신의 경솔한 행동이 그녀의 처지를 더욱 어렵게 할까 봐 걱정했다.그러나 그는 그녀가 이렇게 큰 희생을 할 줄 몰랐다.그는 그가 찾은 증거가 충분해서 아버지가 석방된 것으로 생각했다.그러나 지금은 아버지가 경조부에서 나올 수 있었던 것은 그녀가 단식하고, 찌꺼기까지 먹었기 때문이라는 걸 깨달았다!가슴이 무언가에 찢기는 것 같았다. 정암은 지금처럼 자신을 미워한 적이 없다.무능한 자신이 너무 미웠고, 그녀를 보호해 주겠다고 해놓고, 결국 그녀는 자신을 위해 이 지경까지 괴롭힘을 당했다!임학은 이 틈을 타서 정암의 제한 속에서 벗어났고 정암의 얼굴을 향해 두 주먹을 날렸다.“너 때문이야! 이 썩을 놈아! 네가 뭔데 내 여동생이라 혼인하겠다는 거야!”정암은 비틀거리며 두 발짝 뒤로 물러섰지만, 정신을 차리고 갑자기 임학을 향해 돌진했다. 주먹이 사정없이 임학의 얼굴로 향했다.“당신들은 왜 계속 그녀를 괴롭힙니까? 그녀는 진산군댁의 친딸이 아니더라도 당신 집에서 15년 동안 키운 딸이지 않습니까?”임학은 몇 대 맞고 피를 토했지만, 여전히 물러서지 않고 정암을 향해 주먹을 휘둘렀다.“네가 분수도 모르고 나대지만 않았어도 단이는 이렇게 괴롭힘을 당하지 않았을 것이다!”정암은 피하지 않았고, 피하고 싶지도 않았다.그는 자신이 맞아도 싸다고 느꼈다.자신의 무능함에 주는 벌이라 생각했다.그러나 그는 임학이 자기보다 더 못났다고 생각했다.그래서 다시 주먹을 휘두르고 차가운 목소리로 소리쳤다.“당신들이 그녀의 살갗을 벗기고 피를 마시고 있습니다!”임학은 쓰러지더니, 발버둥 치며 일어나 바닥에 앉아 거
진산군은 몸을 돌려 시녀들을 향해 화냈다.“다들 멍청이느냐? 빨리 의원을 불러 큰 아씨한테 오라고 해! 어서 제비집 죽 가져와!”이렇게 소리쳤지만 몸을 돌려 김단을 쳐다보지는 못했다.숙희도 그제야 김단 곁으로 다가가 손수건을 꺼내 그의 다른 손을 살며시 닦아주었다. 하지만 눈물은 멈추지 않고 계속 흘러내렸다.“아씨, 흑흑흑, 방에 들어가요...”그러나 김단은 그저 평온하게 임학을 바라보며 목이 멘 목소리로 천천히 말했다.“도련님께서는 말한 대로 하시기를 바랍니다.”오늘 이후로, 진산군댁은 더 이상 정암 가족을 괴롭히지 못한다!이 말은 마침내 임학을 자극했다.임학은 김단을 보고 이해할 수 없는 표정을 지었다.“정암이 그렇게 좋아?”얼마나 좋았으면, 정암을 위해 많은 사람이 보는 앞에서 한 통의 찌꺼기를 다 먹을 수 있겠어?정암이 도대체 무슨 능력이 있어서 그녀를 이 지경까지 만드는 건가?김단은 그를 상대하지 않고 숙희랑 방 안으로 걸어갔다.그녀는 과연 정암을 그렇게 많이 좋아하나?그녀도 잘 모른다.그녀의 진산군댁 생활은 마치 바다 한가운데 떠 있는 듯했다. 거대한 파도가 밀려올 때면, 물속으로 가라앉지 않기 위해 필사적으로 허우적대는 것 외엔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걸 그녀는 알고 있었다.그러나 정암은 마치 바다에 떠 있는 쪽배처럼 그녀가 익사할 때 나타나 그녀를 배에 태워서 마음을 따뜻하게 했다.모든 사람이 정암은 자신을 보호할 수 없다고 한다. 작은 쪽배도 바다 위에서는 물결을 따라갈 수밖에 없다. 거센 파도가 밀려올 때면 쪽배도 부서지고 새고 결국 그녀와 함께 바다에 가라앉을 것이다...하지만 그들은 이 쪽배가 그녀의 생명을 구했었다는 것을 모른다.그래서 무슨 일이 있어도 정암이 그녀를 버리지 않는 한 그녀는 정암을 포기할 수 없다!임씨 부인은 눈물을 훔치며 김단을 따라 방에 들어가려 했지만, 방문에 들어서기도 전에 김단이 막았다.“숙희만 있으면 돼요, 마님은 돌아가세요!”말이 떨어지자, 김단은 방에 들어가 담담하게
임학은 김단을 노려보았다. 마치 김단이 먹지 않을까 봐 걱정된 듯 또 입을 열었다.“만약 네가 이 통 안의 것을 먹는다면 진산군댁에서 더는 정암을 귀찮게 하지 않겠다고 약속하마.”임학의 말을 듣고, 임씨 부인은 마음이 쪼여졌다.“학아, 네가 어떻게 단이에게 이렇게 대할 수 있느냐? 단이는 벌써 며칠 동안 아무것도 먹지 않았는데, 네가 어떻게 단이에게 찌꺼기를 먹이느냐?”임학은 몸을 돌려 임씨 부인을 바라보았다.“어머님! 제가 독한 것이 아니라, 정말 김단이 너무 교활해서 그래요! 이번에 원이를 단식하게 하고, 다음에 또 무슨 짓을 할지 누가 알겠어요? 두 분은 정말 더 이상 김단을 믿어서는 안...”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사방에서 숨을 들이쉬는 소리가 들렸다.임학은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임원마저 삼키는 동작을 멈추고 모든 사람과 함께 놀라서 그의 뒤를 바라보는 것을 보았다.그제야 임학은 무언가를 깨달은 듯 온몸이 뻣뻣해져 천천히 몸을 돌렸다.김단은 어느새 찌꺼기 통 옆에 엎드려 두 손을 통에 넣고 통 안의 물건을 잡고 먹고 있었다.임원처럼 게걸스럽게 먹는 것과 달리, 그녀는 천천히 먹고 있었다.그녀는 그저 조용히 먹고 있었다.마치 평범한 음식을 먹는 것 같았다.그런데, 그것은 어젯밤에 남겨진 찌꺼기다!모든 사람이 먹다 남은 것이다!먹기는커녕, 한쪽에 서 있는 것만으로도 그는 찌꺼기 통에서 가끔 풍기는 이상한 냄새를 맡을 수 있다!냄새만 맡아도 속이 쓰리다.그런데, 그녀는 어떻게 이렇게 맛있게 먹을 수 있지?임원의 눈이 심하게 떨고 있었다.3년 전에 그녀가 김단을 해쳤지만, 그녀가 도대체 김단을 어느 지경까지 만들었는지 잘 몰랐다.지금, 이 순간, 한때 구슬처럼 눈부시게 빛났던 사람이 지금에 와서 길가의 거지처럼 찌꺼기 통을 안고 먹는 모습을 보고, 그녀는 마침내 자기가 도대체 김단을 어느 지경까지 헤쳤는지 깨달았다!이렇게 생각하자, 그녀는 가슴이 두근거려 무의식적으로 진산군과 임씨 부인을 바라보았는데, 두 사람은 여전히 놀
김단의 움푹 들어간 검은 눈언저리를 본 숙희는 마음이 깨질 것만 같았다.김단이 힘없이 입을 여는 것을 보았다.“사람을 보내서 경조부에 가서 확인해 봐.”숙희는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알았어요. 제가 바로 사람을 보내겠습니다!”말을 마치자, 숙희는 즉시 사람을 경조부로 보냈다.진산군은 조급했다.“너도 사람을 보냈으니, 내가 속일 수는 없지 않느냐? 빨리 네 여동생에게 좀 먹어라 해!”말하는 사이에 임씨 부인도 왔다. 그녀의 뒤를 바짝 따르던 시녀 두 명이 제비집을 넣고 끓인 죽을 한 그릇씩 들고 있었다.김단과 임원을 보고 임씨 부인은 마음이 아팠고 바삐 시녀에게 말했다.“빨리 두 아씨에게 죽을 먹여라!”그러자 두 시녀는 김단과 임원 앞에 무릎을 꿇고 제비집 죽 한 숟가락을 떠서 두 사람의 입으로 떠넣었다.그러나 김단은 입을 굳게 다물었다.김단은 위협하는 눈빛으로 임원을 바라보았다.김단의 시선을 감지한 임원은 가슴이 조여와, 이미 벌린 입을 재빨리 다물고 다시 누웠다.임원은 눈을 감고 어깨를 계속 떨며 우는 것 같았다.그러나 5일 동안 물을 마시지 않아서, 그녀는 지금 눈물 한 방울도 흘리지 못했다.이 장면을 보고 진산군과 임학은 분노했다.임학은 심지어 욕설을 퍼부었다.“양심 없는 년! 아버지께서 이미 사람을 풀어주셨는데, 또 뭐 어쩌려고? 정말 원이를 죽게 만들 셈이야? 정암 때문에 네 눈에는 네 여동생의 목숨도 보이지 않니?”임학은 화가 나서 정말 미쳐 버릴 것 같았다.그러나 김단은 천천히 눈을 감고 그를 보지 않았다.5일 동안 먹고 마시지 않았는데, 그녀는 지금 정말 그와 다툴 힘도 없었다.그렇지 않으면, 그녀는 꼭 한마디 했을 것이다. 임원은 자기의 여동생이 아니라고!다행히도 얼마 지나지 않아, 숙희가 보낸 머슴애가 황급히 돌아왔다.이 머슴애는 별당 사람이다. 김단의 모습을 보고, 가슴이 떨려 말하는 소리에는 슬픔이 묻어났다. “아씨, 소인은 정암 종사관이 그의 아버지를 데리고 가는 것을 똑똑히 봤습니다.”이
예전에 김단을 위해 별도 달도 따다 주겠다는 사람이 지금은 그녀를 가만두지 않겠다고 한다. 참!김단은 소리 내며 웃더니, 몸을 돌려 계속 풀을 뽑았다. 땅을 바라보는 눈빛 속에는 누구에게도 보이고 싶지 않은 슬픔이 숨어 있었다.“대감마님께서 정말 임 낭자를 아끼신다면 빨리 무고한 사람들을 풀어주세요. 그렇지 않으면 임 낭자는 굶어 죽어도 전 계속 살아 있을 것입니다.”이렇게 말하자, 김단은 무언가가 생각난 듯 고개를 들어 진산군을 바라보았다.눈빛에 담긴 슬픔은 이미 사라졌고, 오직 비웃음만이 남아 있었다. “임 낭자는 대감마님의 유일한 딸이십니다. 그녀를 죽게 내버려둘 수는 없지 않겠습니까?”진산군은 화가 나서 피가 거꾸로 치밀어 오르는 것 같았다. 김단의 득의양양한 모습을 보고, 마음속의 분노는 더욱 솟구쳤다.“좋아! 좋아! 정말 이것으로 나를 쥐락펴락할 수 있을 거로 생각하니? 너는 정말 이 아버지를 우습게 보는구나! 내가 전쟁터에 나갔을 때, 넌 아직 태어나지도 않았어!” 진산군은 김단에게 자기도 고집불통이라 절대 굴복하지 않는다고 알려주고 싶었다.그러나 김단은 가볍게 말을 내뱉었다. “제 아버지의 성은 김씨 입니다. 벌써 죽었다고 들었습니다.”그 말을 들은 진산군은 분노가 치밀어 올라 한동안 말문이 막혔다. 손가락으로 김단을 가리키다가 한참이 지나서야 소매를 뿌리치고 가버렸다.커다란 별당이 다시 썰렁해졌다.김단은 그제야 동작을 멈추고 다시 굳게 닫힌 정원 문을 보면서 오랫동안 눈길을 거두지 못했다.정원 문이 다시 열릴 때는 3일 후였다.이때 김단은 정원의 흔들의자에 누워 힘이 조금도 없었다.소리를 듣고 고개를 들어 입구를 바라보니 진산군이 한 무리의 사람을 이끌고 화내며 걸어오는 것을 보았다.배고픔이 극에 달했는지, 김단은 눈앞이 흐릿해져도 진산군이 오는 쪽을 힘겹게 바라보았다. 그러다 마침내 진산군의 뒤를 따르는 임학과, 뒤에서 누군가에게 이끌려 오는 임원의 모습을 뚜렷이 알아보았다.그녀는 그제야 입꼬리를 올렸다.보
김단은 정원 문 뒤에 서서 어두운 밤 속에 가려진 연못을 조용히 바라보았다.연못 물은 맞은편에 있는 초롱의 빛을 거꾸로 비추고 있었다. 약한 빛은 마치 언제든지 어둠에 삼켜 버릴 것만 같아 연못의 돌다리조차도 똑똑히 비추지 못했다.김단은 깊은 숨을 들이마시고 나서야 돌다리를 향해 걸어갔다. 부드러운 바람이 불어와 귀밑의 살쩍을 불었지만,연못은 미동도 없었다.김단은 자기가 마치 초롱의 빛이고, 부드러운 바람이라 생각했다. 그녀가 어떤 모습으로 망가지든 옛 가족의 마음을 흔들 수 없다고 느꼈다.이렇게 생각하자, 김단은 갑자기 고개를 숙이고 씁쓸하게 웃었다.이 순간, 그녀는 오히려 임원이 있어서 다행이라 생각했다.임원이 정말 마시지 않고 먹지 않는 한 진산군은 반드시 마음이 아플 것이다!김단의 짐작이 맞았다.이틀이 지나자, 진산군은 노기등등하여 별당으로 왔는데, 마침, 김단은 정원에서 김매고 있었다.초봄이 되어 화단의 잡초가 매우 빨리 자라서 제때 뽑지 않으면 며칠이 지나지 않아 꽃보다 더 높아질 수 있다.진산군이 문을 부수고 들어오는 걸 본 김단은 그제야 몸을 일으켰다. 진흙으로 더럽혀진 두 손을 진산군을 향해 내보이며서야 비로소 입을 열었다.“대감마님께서 오늘 오실 줄 몰랐습니다. 제대로 인사드리지 못한 점, 양해 부탁드립니다.”“망할 년!”진산군은 노발대발하더니 손을 휘젓더니 엄하게 명령했다.“뒤져라!”갑자기 두 팀의 호위가 좌우로 나뉘어 줄지어 들어왔다.김단은 그제야 눈살을 찌푸렸다.“대감마님께서 무슨 뜻입니까?”진산군은 대답 없이 김단만 뚫어지게 쳐다보았다.얼마 지나지 않아 두 팀의 호위는 또 모두 나왔다.“대감마님, 어떤 음식도 찾아내지 못했습니다.”“대감마님, 저희도 아무것도 찾지 못했습니다.”그녀가 음식을 숨겨서 먹는 줄 알았던 모양이다.김단은 자기도 모르게 콧방귀를 꼈다.진산군이 차갑게 소리치며 물었다.“너는 도대체 먹을 것을 어디에 숨겼느냐!”이틀 동안 먹지도 마시지도 않아서 임원은 침대에서 내려올 힘
진산군은 이 일을 알고 매우 화가 났다.김단이 별당에 도착하기도 전에 진산군댁의 호위들은 벌써 별당을 포위했다.호위장은 때마침 돌아온 김단에게 인사를 올리고 나서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대감마님께서 오늘부터 큰 아씨를 별당에 연금하여 외출을 금지하라는 명을 내렸습니다.”김단은 이미 예상해서 놀라지도 않고 그저 담담하게 받아들이고 별당 안으로 들어가려 했다.그러자, 호위장은 또 김단을 막고, 이어서 말했다.“그리고 큰 아씨께서 단식하는 것을 좋아하시니 오늘부터 잘못을 뉘우칠 때까지 마시지 말고, 먹지도 말라고 명하셨습니다.”김단은 한숨을 내쉬었다.그러고는 여전히 담담한 모습으로 말했다.“알겠으니, 이제 들어가도 되겠소?”김단이 이렇게 차분한 것을 보자, 호위장은 의아했다. 김단이 무슨 방법이 있어 연금에서 빠져나갈까 봐 작은 소리로 알려줬다.“대감마님께서 우리더러 별당을 엄격히 지키라 하셨습니다. 이 기간에 별당에는 아무도 드나들지 못합니다. 명을 거역하는 자는 당장 죽이라고 하셨습니다.”이 말은 김단이 이 문을 들어서는 순간, 밖의 사람과 연락을 하지 말아야 한다는 뜻이다.예를 들면, 전에 몰래 그녀를 보러 왔던 정암을 말한다.하지만 지금, 김단이 걱정되는 사람은 정암이 아니다.그녀는 미간을 찌푸리며 물었다.“대감마님께서 벌을 내린 사람은 나뿐이오. 내 마당의 하인과는 무관하오. 나를 가둬두기 전에 내 마당에 있는 모든 사람을 나오라 해도 되겠소?”이 말을 듣자, 호위장도 난감했다.“이러면...”“모두 살자고 일하는 것인데, 그들도 집에 살려 먹여야 할 사람이 있는데, 주인인 내가 잘못했다고 그들까지 연루해야 하오?”김단은 말하면서 머리에서 비녀 하나를 뽑아서 호위장 손에 넣어 줬다.“좀 봐주시죠.”이 비녀는 전에 궐에서 하사한 것이다. 비녀 위에 있는 진주만이라도 가치가 어마어마해서 호위장은 바로 마음이 움직였다. 생각해 보면 김단의 말도 도리가 있다.더군다나, 진산군은 큰 아씨를 연금하라 했지, 미리 별당 사람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