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유

제18화

작가: 적매화
last update 최신 업데이트: 2025-01-06 17:40:52
갑작스러운 제안에 소한은 마음이 살짝 흔들렸다.

그러나 그가 답하기도 전에 임학은 소한에게 주먹을 날렸다.

소한은 재빨리 몸을 옆으로 피했다.

허공에 주먹을 휘두른 임학의 몸이 술상에 엎어졌고 음식들이 바닥에 떨어졌다.

그는 손에 잡히는 대로 음식을 들어 소한에게 던졌다.

소한은 뒷걸음질을 치며 물러섰다. 얼굴에 불편한 기색이 역력했다.

“미친 것이오?”

이것은 취기가 아니었다. 아무리 술에 취해도 이런 행동을 한 적은 없었다.

천천히 몸을 일으킨 임학의 옷자락이 어지럽혀있었다.

임학은 신경 쓰지 않는 듯 손가락으로 소한을 가리키며 말했다.

“원이의 마음에 상처를 줄 시 내 자네를 가만두지 않겠네!”

소한은 차가운 표정으로 미간을 찌푸리며 옷 정리를 했다.

“전에도 그런 말을 했었던 것 같군.”

그때는 김단을 위해 말했었다.

멈칫하던 임학이 말을 이었다.

“이제는 원이의 정혼자이니 탐욕 부리지 말게.”

“자네가 먼저 제안했소. 난 아무 말도 안 했소.”

소한은 차분하게 다른 쪽에 앉았다.

임학은 헛웃음을 지었다.

“우리가 알고 지낸 지가 몇 해인데 내가 자네 속셈을 모를 것 같소? 단이가 그날 수정과를 가져가지 않아 오늘 특별히 챙겨주지 않았소? 알고 있는지 모르겠지만 집으로 돌아오자마자 수정과를 원이에게 보냈다네. 단이는 자네에게 마음이 없네. 그만 질척거리시오!”

‘내가 질척거려? 먼저 질척거린 게 누구인데.’

소한은 마음속 말을 삼킨 채 술잔을 들이켰다.

소한의 옆에 털썩 주저앉은 임학은 술병을 들어 입에 털어 넣었다.

소한의 뇌리로 상흔과 발진이 얼기설기 자리 잡은 김단의 팔이 스쳐 지났다.

옆 방에서 들려오는 떠들썩한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얼마 뒤 밖에서 폭발음이 들렸고 불꽃놀이가 시작한 듯 시끌벅적해졌다.

사람들은 하늘에 터지는 화려한 불꽃을 바라보며 환호성을 질렀다.

두 사람도 고개를 들어 밖을 바라보았다.

창가에 기대 손을 흔드는 여인의 형체가 어렴풋이 보였다. 환한 미소를 지으며 불꽃을 즐기는 형체가 두 사람의 시야로 다가왔다.

올해의 불꽃은 다른 어느 때보다 화려했다.

한편, 김단은 뜨거운 물에 발을 담그고 있었다.

밖에서 몸종들이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리더니 이내 불꽃의 폭발음이 들려왔다.

그러나 김단은 자기 발끝만 바라보았다.

숙희가 따듯한 차를 들고 흥분한 얼굴로 들어왔다.

“아씨, 불꽃놀이가 얼마나 멋진지 모릅니다. 차를 드신 뒤 같이 나가서 구경하셔요.”

김단은 숙희가 건네준 차를 한 모금 들이킨 뒤 고개를 저었다.

“불꽃을 싫어한다.”

숙희는 어리둥절한 얼굴로 그녀를 쳐다보았다.

어릴 적 김단은 임학과 함께 불꽃놀이를 즐기는 것을 제일 좋아했다고 들은 적 있었다.

숙희가 궁금한 얼굴로 물었다.

“도련님 때문에 속상하셔서 그러신 겁니까? 아씨 그러지 마시고 즐기셔요. 도련님께서도…”

“그분과 상관없다.”

단호하게 말한 김단은 숙희를 바라보며 미소를 살짝 지었다.

“그냥 싫은 것뿐이다.”

예전에는 세상에서 불꽃놀이가 제일 좋았다. 화려하고 아름다운 것을 싫어할 사람이 없었다.

하지만 세답방에서 고된 일을 하며 궐에 갇혀서 본 불꽃은 아름답지 않았다. 그녀의 처지를 더욱 잘 보여줄 뿐이었다. 그 뒤로 김단은 불꽃이 싫었다.

숙희는 말없이 그녀의 곁에 서 있었다.

창밖으로 화려한 불꽃이 일렁였다. 몸종들의 흥분한 소리가 들려왔다.

다음 날, 음력 1월1일.

이른 아침 잠에서 깬 김단은 조모님께 문안을 드리러 갔으나 몸종이 막아서는 바람에 들어갈 수 없었다.

“큰 마님께서 편찮으십니다. 금일 아씨의 문안은 받지 못할 것 같습니다.”

김단의 두 눈에 눈물이 고였다. 그녀는 파르르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조모님 병세가 어떠냐?”

“의원을 부르러 갔사옵니다.”

아직 의원이 들지 않았기에 병세를 알 수 없었다.

얼마뒤 의원이 황급히 달려왔다.

곧이어 진산군과 정부인도 달려왔다.

고뿔에 걸려 앓고 있는 임원도 달려왔다.

반 시진이 지난 뒤, 의원이 밖으로 나왔다.

“어떠냐?”

진안군이 초조한 얼굴로 다급히 물었다.

의원은 그에게 허리를 숙여 인사를 한 뒤 천천히 입을 열었다.

“대감마님, 큰 마님의 병세는 쇤네가 전에 말했던 것과 별반 다르지 않사옵니다.”

진산군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임씨 부인은 의원을 배웅하고 오자마자 김단이 그녀에게 물었다.

“조모님께서 많이 안 좋으십니까?”

아무 말도 하지 않는 진산군을 쳐다보던 부인이 옅은 한숨을 내쉬었다.

“연세가 많으시니 시간이 지날수록 상황이 안 좋아질 수밖에… 어쩌면…”

임씨 부인은 차마 뒷말을 잇지 못했다.

김단도 어렴풋이 알 것 같았다.

진산군이 무거운 목소리로 말했다.

“중전마마께서도 네 조모님의 상황을 알기에 이리 풀어주신 것이다.”

진산군은 울적한 목소리로 말했다.

김단의 두 눈이 빨갛게 변해다.

옆에 서 있던 임원이 눈물을 훔치며 말했다.

“아버님, 어머님, 내의원의 어의를 불러오면 안 됩니까?”

진산군 부부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사실 진산군댁의 의원은 약왕곡의 의원이다. 오래전 진산군에게 목숨을 빚진 의원은 진산군댁의 의원이 되어 그들을 돌봤다.

그의 의술은 내의원의 어의 못지않게 훌륭했다.

김단은 조모님이 깨실 때까지 밖에서 지키고 있으려 했으나 한사코 자기가 지키겠다는 진산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물러섰다.

별당으로 돌아온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무렵 숙희가 안으로 들어왔다.

“아씨, 마님께서 오셨습니다.”

관련 챕터

  • 대군, 사랑에 살다: 무수리의 반격   제19화

    이 시점에서 자신을 찾아온 것으로 보아 무슨 의도가 있는 것 같았다.자리에서 일어선 김단은 임씨 부인에게 예를 갖춰 인사했다.“마님, 오셨습니까.”아직도 자신을 마님으로 칭하는 그녀 때문에 임씨 부인은 속상했다.그녀는 부드러운 손길로 김단의 손을 맞잡으며 자리에 앉았다.“혼자 울적하게 있을까 봐 이리 와 보았다.”김단은 말없이 자기 손을 빼냈다.임씨 부인은 미간을 살짝 찌푸리며 말했다.“큰 마님께서 널 얼마나 아끼셨니, 네가 이 집안 핏줄이 아닌 것을 안 뒤에도 널 가장 어여뻐 하셨다.”김단도 인정한다.누가 자기를 좋아하는지 누가 진심으로 대하는지 그녀는 알 수 있었다.편찮으신 몸으로 중전마마께 간청하여 자기를 빼내온 것만으로 봐도 그녀의 진심은 의심할 바가 없었다.고개를 떨군 김단의 어깨가 들썩였다. 그녀는 눈물을 쏟지 않기 위해 애썼다.하지만 임씨 부인은 그녀의 진심을 모르는 듯했다.임씨 부인은 옅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대감이 계셔 말을 아꼈다. 네 조모님께 남은 시일이 얼마 없다.”임씨 부인의 말에 김단은 고개를 번쩍 쳐들었다. 애써 참았던 눈물이 그대로 흘러내렸다.‘조모님 곁을 지킨 지 며칠이나 됐다고…’임씨 부인은 안쓰러운 심정으로 손수건을 꺼내 그녀의 눈물을 닦아주었다.“큰 마님을 향한 네 마음도 잘 알고 있다. 하나, 지금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느니라. 큰 마님의 근심을 조금이라도 덜어주는 게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이느리라.”김단은 코를 훌쩍이며 답했다.“직언하시지요, 마님.”둘 사이에 묘한 괴리감이 들었다. 김단의 눈물을 닦아주기 위해 손을 들었던 임씨 부인은 어쩔 수 없이 손을 거뒀다.긴 한숨을 내쉰 부인이 다시 말했다.“이런 상황에서 이런 말을 하는 어미가 미울지도 모르겠구나. 허나 큰 마님께서도 나와 생각이 같을 것 같구나.”임씨 부인은 물끄러미 김단을 쳐다보았다.“네 나이가 적은 것도 아니고 이젠 혼처를 찾을 때가 된 것 같구나.”사실 그녀도 어느 정도 예상은 했다. 그

    최신 업데이트 : 2025-01-06
  • 대군, 사랑에 살다: 무수리의 반격   제20화

    김단과 명정대군과 아는 사이였다.덕빈과 임씨 부인은 오랜 친우였기에 어릴 적부터 두 여인의 아이들은 함께 놀면서 컸다. 하지만 신분이 고귀했던 명정대군과 아무리 친하게 지냈다고 할지 언정, 그들 사이에는 높고 낮음이 존재하고 거리감이 있었다.훗날 학업에 열중해야 했던 명정대군은 궐밖으로 나오는 빈도수가 점점 줄었고 그들의 만남도 줄어들었다.그녀는 세답방에서 명정대군과 마주친 적이 있었다. 다만 무수리의 신분이었던 그녀는 많은 나인들 뒤에서 무릎을 꿇고 고개를 숙여 인사밖에 하지 못했다. 그렇기에 대군도 그녀를 보지 못했을 것이다. 덕빈의 옆에 명정대군이 앉아 있었다. 정갈하게 옷을 갖춰 입은 명정대군은 우아했다. 워낙 키가 컸던 탓에 앉은 키도 덕빈보다 훨씬 컸다.이목구비가 뚜렷했던 명정대군은 주상전하를 닮았다. 눈매는 덕빈을 닮아 온화하면서 부드러웠다.그는 연민이 어린 시선으로 김단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의 눈빛에 김단은 자기가 세상에서 가장 불쌍한 사람처럼 느껴졌다.“일어나시오.”덕빈은 바닥에 엎드려 인사하는 그녀를 일으켜 세웠다.“낭자의 모친께서 어제 서신을 도내왔다오. 이제 와서 그런 얘기를 꺼낸 것이 늦은 감은 있구려. 내 미리 알았더라면 그날 낭자가 왔을 때 좀 더 이야기를 나눠을텐데.”김단은 눈을 내리깔고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남들 눈에는 부끄러워 아무 말도 못 하는 것처럼 보일지도 몰랐다.사실 그녀는 할 말이 없었다.김단에게 인정을 베푸는 덕빈의 모습에 임씨 부인은 기분이 좋았다. 김단을 물끄러미 바라보는 명정대군에게 임씨 부인이 화색을 띠며 말했다.“대군자가께서 점점 준수해지고 비범해지십니다.”명정대군은 임씨 부인에게 가볍게 목례했다.“장모의 농이 지나치군.”장모라는 호칭에 임씨 부인은 그들의 관계가 더 가까워진 것 같았다.덕빈과 임씨 부인은 눈을 마주쳤고 둘 사이에 만족스러운 미소가 오갔다.그러나 김단은 이해되지 않았다.덕빈은 그녀가 진산군의 수양딸인 것을 알고 있다.세답방에서 3년 간 무수리로

    최신 업데이트 : 2025-01-06
  • 대군, 사랑에 살다: 무수리의 반격   제21화

    아마도 들려오는 냉랭한 목소리가 익숙한 탓인지, 김단은 심장이 덜컥 내려앉았다. 그녀는 황급히 뒤로 두 발짝 물러서려 했지만, 서두르는 바람에 다리가 풀려 넘어질 뻔했다.다행히도 명정대군이 민첩하게 반응해 그녀를 끌어당겼다.하지만 명정대군이 끌어당기는 탓에 두 사람의 거리는 더욱 가까워졌고 멀리서 봤을 때, 마치 명정대군이 김단을 안은 것처럼 보였다.소한의 원래 맹렬했던 눈동자는 김단의 팔을 꽉 잡은 명정대군의 손에 내려앉았고, 어두운 눈빛은 더욱 깊어졌다.김단은 머리를 흔들면서 왠지 모르게 찔린 기분이 들었다.하지만 찔릴게 뭐 있어?자신은 소한과 이미 아무런 관계도 없으며, 설령 관계가 있다 해도 그저 명목상의 '친척'일 뿐이다. 따라서 그녀가 누구와 함께 있든, 무엇을 하든 그것은 소한과 전혀 상관없는 일이다.아마 소한은 아무렇지도 않을 텐데, 괜히 자기 혼자만 마음이 혼란스러워진 것이었다!김단은 깊은 숨을 들어마시고, 마음속 쓸데없는 생각을 가라앉지고 멀지 않은 곳에 있는 소한에게 인사를 올렸다.“소 장군님.”명정대군도 소한을 바라봤다.“소 장군, 또 궁에 들려 복명하러 왔소?”'또' 자에는 약간의 괴상함이 은은하게 물들어 있었다.소한의 시선은 드디어 명정대군의 손에서 떠나 명정대군을 바라보면서 천천히 다가갔다.“요즘 당우리 주위에 산적들이 창궐해서 현지 관려들이 몇 번이나 토벌 시도했지만 모두 실패하여 주상전하께서 저를 불러 대책을 상의한다고 하십니다.”이 일은 명정대군뿐만 아니라 김단도 들었던 소문이다.전에 세답방에 있을 때부터 나인들이 얘기한 걸 들었다.듣기로는 당우리에 있는 산적들은 일반 산적들과 달리 일찍 전쟁터에서 내려온 장병들로 구성된 사람들이라 훈련도 잘되어 있고 능력이 탁월해서 일반 관병들이 대처하기 힘들 뿐만 아니라 정예 군대를 투입해도 쉽게 승리하지는 못할 것이라 한다.이 일을 생각하자, 김단의 안색은 자기도 모르게 무거워졌다.이때 그녀의 곁에는 명정대군의 지극히 부드러운 속삭임이 들려왔다.“걱정하지

    최신 업데이트 : 2025-01-06
  • 대군, 사랑에 살다: 무수리의 반격   제22화

    김단은 마음속으로만 이렇게 생각하고 입 밖으로 말하지 않았는데 이는 소한이 보기에는 묵인의 뜻이었다.몸 뒤에 주먹을 꽉 잡은 채, 그는 김단을 차가운 눈빛으로 봤다.“탐라성은 저 멀리 남쪽에 있고, 풍토와 인심도 한양이랑 차이가 매우 큰 것으로 알고 있소, 낭자 정말 잘 생각했소?”김단은 소한이 그녀에게 탐라의 날씨에 적응하지 못할 것이라고 경고한다는 것으로 생각해, 다소 진지하게 말했다.“대군자가께서 탐라의 겨울은 한양처럼 이렇게 춥지 않을 것이라고 했어요, 아주 춥지 않은 한, 저는 잘 적응할 수 있어요.”그녀는 정말 추위를 많이 탄다.두 손을 물속에 담그고 있는 시린 한기도, 겨울밤 문밖에 갇혀 있는 그 차가움도 그녀는 다시는 겪어보고 싶지 않았다.소한은 김단의 이 말에 목이 메어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그는 김단을 노려보며 눈에는 한기가 사그라지지 않았다.그래서 김단이 소한을 쳐다보지 않더라도 강렬한 분노를 느낄 수 있었다.소한은 화가 났다.왜 화가 난걸 가?명정대군한테 시집가기 때문인가?그럴리가 없어!그는 그녀가 혼인하기를 바라고 있지 않았던가?그녀가 시집가야 그도 쉽게 임원과 혼례를 치를 수 있지 않겠는가?아, 그렇구나, 그녀는 그제야 알았다. 그는 그녀가 시집을 너무 잘 갔다고 화내고 있었던 것이다.세답방에 들어가 3년 동안이나 노비로 일한 그녀가 언젠가 대군자가께 시집가서 대군빈이 될 줄 누가 생각이나 했겠는가!김단은 사실 이처럼 천박한 생각으로 소한을 생각하고 싶지 않았지만 소한의 노여움은 정말 엉뚱했다.그래서 그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생각하면 할수록 그녀의 마음속에는 분노가 치밀어 올라 머리를 들고 소한을 보고 미소를 지었다.“어쨌든, 난 더 이상 소 장군의 길을 막지 않을 겁니다. 소 장군은 응당히 기뻐해야 하지오”여기 서서 자기에게 눈치를 주는 대신에!소한은 주먹을 꽉 쥐었다. 만약 이때 그의 손에 무엇인가가 쥐어졌다면 이미 재가 되었을 것이다.그러자 명정대군은 뭔가 생각난

    최신 업데이트 : 2025-01-06
  • 대군, 사랑에 살다: 무수리의 반격   제23화

    소한을 한 번 비웃으려 했던 명정대군은 이내 안색이 변했다.이를 본 소한은 가볍게 눈썹을 치키며 나지막한 말투에 약간 조롱의 의미를 담았다.“그녀는 모르고 있나 봐요. 그럼, 이게 바로 백성들이 말하는 사기 결혼이 아닙니까?”“네 이놈!” 명정대군은 고함을 치면서 소한을 뚫어지게 봤다.“소한, 공훈 몇 개 세워 아바마마 면전에서 총애를 받는다고 해서 내 머리를 밟을 수 있다고 생각하지 마오. 네까짓 게 이 대군 일까지 상관할 자격이 없소!"“대군자가 이렇게 노발대발할 필요는 없사옵니다.”소한의 입가에는 웃음이 흘렀지만, 눈빛에 맴도는 경멸함은 마치 명정대군의 존엄마저 발밑에 깔아놓는 것 같았다.그리고 명정대군도 이미 이전의 그 온화하고 따뜻한 모습이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잘생긴 이목구비는 심지어 약간 비뚤어져 보이는 듯 했다. 그는 목소리를 낮추고, 어조는 으스스하게 말했다.“설사 사기를 친 결혼이라고 한들? 소한, 당신도 속이지 그래. 낭자가 아직도 당신을 상대할 것 같소?”소한의 검고 침울한 두 눈동자는 그 순간 살인할 것 같은 기색을 띠고 미소도 따라서 입가에 굳어졌다.그러고는 명정대군이 코웃음을 지으며 득의양양한 말투로 말했다. “하여튼, 임단은, 아니, 김단이지. 본 대군이 꼭 대군빈으로 맞이할 테니, 소 장군은 앞으로 비난을 사지 않도록 좀 멀리 떨어져 있는 게 좋겠소.”이렇게 말하고는 옷소매를 뿌리치고 나가 홀로 어화원에 남겨진 소한 온몸의 한기는 홍매 몇 송이도 떨어지게 했다.집으로 돌아가는 마차에 앉은 김단은 시종 말을 하지 않았다.임씨 부인은 그녀를 보면서, 머릿속에 생각하고 있는 것은 모두 3년 전의 김단이다.3년 전, 김단은 조용히 있는 성격이 아니었다. 마차 안에서도 끊임없이 재잘거려서, 매번 궁궐에 들어갈 때마다 어머니인 그녀는 김단이 말을 잘못할까 봐 신신당부해야 했다.그러나, 요즘의 김단은 입에 금을 박아 놓은 듯 좀처럼 입을 열지 않는다.그래서 그녀는 김단의 말을 들으려면 말거리를 잘 생각해야 했

    최신 업데이트 : 2025-01-06
  • 대군, 사랑에 살다: 무수리의 반격   제24화

    또 이런 우스운 소리다.김단은 웃고 싶었지만, 마음속의 씁쓸함이 만연되어 그녀는 결국에 웃지 못했다.임씨 부인은 아주 가볍고 부드럽게 그녀의 손을 잡았다.“물론 진산군댁의 현재 지위는 이전만큼만 아니지만 난파선도 못이 3,000개가 남았듯이 명정대군이 앞으로 한양으로 돌아오려면 진산군댁에 의거할 수밖에 없다.”여기까지 말하자 임씨 부인은 또 살짝 한숨을 쉬었다.“물론 이 어미도 확실히 사심이 있다. 소한은 젊고 유능하여 적지 않은 공훈을 세웠고 소씨 집안도 지금 조정에서 한창 전성기에 처해있다. 너도 주상께서 지금 얼마나 진산군댁을 꺼리고 있는지 잘 알고 있을 것이다. 그래서 원이를 순조롭게 소씨 집안에 시집 보내는 대신 너는 더 이상 권세가 있는 어떤 집안도 찾을 수 없다. 명정대군이 가장 좋은 선택이야.”김단은 이제야 알았다.결국 그녀의 이번 혼사는 모든 이익에 저울질 된 결과이다.진산군댁이 소씨 집안에 얹혀가고 싶고 명정대군은 진산군댁의 여력이 필요하고 그래서 그녀의 일생이 달린 큰 일은 자연스럽게 그다지 중요하지 않게 되었다.“그렇군요.”그녀는 작은 소리로 말했다. 왠지 한숨이 놓인 기분이다. 만약에 오늘 임씨 부인의 대답이 명정대군의 대답과 같다면, 김단의 마음은 오히려 불안할 것이다. 그러나 지금 그녀는 자기의 이 혼사는 여전히 계산된 것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그녀는 원래 임씨 부인이 소한이 전에 자기가 먼저 시집가야 임원과 결혼할 수 있다고 말한 후에야 계산하기 시작한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지금 생각해 보면 조모가 궁에 들어가 중전마마에게 그녀를 세답방을 떠나게 해달라고 부탁한 후부터 시작되었을 것이다.심지어 더 오래전부터 시작됐다.이제야 다 맞아떨어졌다. 이것이야말로 그들이 자기에게 대하는 태도에 부합된다.아마도 그녀가 안도의 한숨을 내쉬는 느낌이 너무 티가 나서인지, 그녀의 목소리는 분명히 매우 부드러웠지만, 마치 칼처럼 임씨 부인의 마음속에 박혔다.임씨 부인은 두 눈이 약간 붉어졌다."단아, 이 어미를 원망하는가

    최신 업데이트 : 2025-01-06
  • 대군, 사랑에 살다: 무수리의 반격   제25화

    김단은 일찍이 자기 오라버니를 아주 좋아했다. 왜냐하면 그녀의 오라버니는 그녀를 위해서 말이 불손한 호색가를 쫓아 내고, 그녀를 위해 이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열매를 찾아올 것이며, 심지어 이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야명주까지도 그녀의 앞에 가져다주었기 때문이다.김단의 마음속에서 예전의 임학은 못 하는 것이 없었고, 가장 대단한 오라버니였다.그러나 임원이 돌아온 후부터 그녀의 그 대단한 오라버니는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그저 하루 종일 그녀에게 누명을 씌우고, 그녀에게 구정물을 쏟고, 머리를 쓰지 않고, 충동적이고 무모한 멍청이로만 남아졌다.마치 지금처럼.김단의 팔이 그에게 잡혀 아파서 미간을 심하게 찌푸렸다.그녀가 입을 열기도 전에 옆에 있던 임씨 부인은 이미 손바닥으로 임학의 팔을 때렸다.“너 이게 뭐하는 짓이야, 어서 네 동생 팔을 놔!”“어머님, 왜 그녀를 감싸는 것입니까? 이 마차 안에 어머님이랑 김단 둘 밖에 없는데, 어찌 그녀가 어머님을 울린 것이 아니라고 말할 수 있어요?”임학은 눈썹을 찌푸리며 매섭게 김단을 노려보았다.“경고하는데, 내가 너에게 떳떳하지 못한 곳이 있어도 어머님과는 무관한 일이야. 더 이상 어머님 앞에서 허장성세하지 말고, 다시 한번 어머님을 울게 하면, 난 절대 너를 용서할 수 없다!”임학은 이렇게 호통을 치고는 갑자기 김단을 밀어냈다.김단은 밀려서 세 걸음 뒤로 물러났다. 가뜩이나 삐끗한 발목에서 따끔한 통증이 전해 왔다. 다행히 숙희가 이미 김단의 뒤에 서서 김단을 잘 부축해 안정시켰다.“너 이게 뭐 하는 짓이야!”임씨 부인도 임학을 밀었다. 하지만 임학은 몸체가 건장하여 어디 그녀가 민다고 밀수 있는 것인가.임학이 그대로 제자리에 안정적으로 서 있는 것을 보고 임씨 부인은 또 임학을 두 번 때렸다.“단이와는 관계없는 일이야. 내가 혼자서 운 거야. 너 이 충동적인 성격은 언제 고칠수 있는 게야?”“어머님은 이 말을 해놓고도 우습다고 생각하지 않습니까?” 임학은 벌써 임씨 부인이 김단의 편을

    최신 업데이트 : 2025-01-06
  • 대군, 사랑에 살다: 무수리의 반격   제26화

    임학은 임씨 부인을 따라 매화당에 갔다.임원의 병은 자가 의원의 보살핌으로 이미 크게 나았고, 가끔 기침이 몇 번 나는 것 외에는 이미 큰 문제가 없다.임씨 부인과 임학이 왔을 때, 그녀는 정원에서 매화를 감상하고 있었다.그녀가 얇게 입은 것을 보고 임씨 부인은 눈썹을 찌푸렸다.“병이 낫기도 전에 왜 나왔어? 그것도 이렇게 얇게 입고, 어서 방으로 들어가!"임씨 부인은 임원을 품에 안고 방에 들어가, 명희를 불러 뜨거운 물을 가져오라고 했다. 그제야 품에서 작은 약병을 꺼냈다.“덕빈마마는 네가 심하게 기침했다는 말을 듣고, 특별히 사람에게 내의원에서 약을 가져오라고 명령했다. 약왕곡에서 얻은 것이어서 전에 중전마마께서 보름 동안 기침을 했는데, 바로 이것을 먹고 낳은 것이라고 한다."임학은 임씨 부인이 직접 임원에게 약을 먹이는 것을 보면서 임씨 부인이 무엇 때문에 집에 돌아오자마자 임원에게 급히 왔는지를 알게 되었다.그도 당연히 임원을 걱정하지만 임원의 안색이 이미 평소와 같아 보이고 또 지금까지 기침 소리를 듣지 못한 것을 보니 큰 문제는 없을 것으로 생각했다. 그래서 그는 다른 일이 더 걱정된다.“어머님, 빨리 말씀해 주세요, 도대체 단이랑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요? 어머님은 또 왜 마차 안에서 그렇게 울었습니까? 그리고 단이가 방금 전에 남은 몇 달을 말했는데, 그 '몇 달'은 무슨 뜻입니까?”임씨 부인은 임원이 약을 삼키는 것을 보고서야 긴 한숨을 내쉬었다.“내가 단이를 위해 혼사를 찾았다. 3개월 후에 단이는 명정대군과 함께 탐라성으로 갈 것이다. 그러니 이 3개월 동안 너는 가만히 있어, 더 이상 단이에게 시비 걸지 마! 이번에 가면 언제 돌아올지도 모르는데..."이렇게 말하자 임씨 부인은 또 코가 찡하더니 눈시울이 약간 붉어졌다.임학은 깜짝 놀랐다.“명정대군요? 어머님! 왜 이런 잘못된 결정을 했나요? 어떻게 단이를 명정대군에게 시집보낼 생각을 할 수 있어요?”임원은 오히려 이해하지 못하는 표정을 지었다.“오라버니는 왜

    최신 업데이트 : 2025-01-06

최신 챕터

  • 대군, 사랑에 살다: 무수리의 반격   제70화

    임씨 부인도 얼른 나서 구슬렀다.“대감, 원이가 좋은 뜻으로 한 일인데 결과가 나빴던 거죠. 보세요, 단이가 얘를 때려서 이 지경을 만들어 놨는데, 그런 원이를 어떻게 매정하게 또 벌하실 수가 있어요?”임원의 빨갛게 부어오른 반쪽 얼굴을 보자 진산군은 문득 3년 전 임원이 돌아왔을 때가 떠올랐다. 말라서 거의 피골이 상접해 있었다.임원은 그들이 15년간이나 헤어져 지낸 딸로, 헤어져 있던 15년간 그녀는 내내 고생만 했구나!그래, 그런 아이한테 진산군이 어떻게 매정하게 굴 수 있겠어?심호흡을 하고 진산군은 결국 임학에게 눈을 돌렸다.그러고는 다짜고짜 발로 찼다.“전부 이 못난 놈이 저지른 짓이야!”하지만 이번엔 임학도 벌써 준비를 단단히 하고 있어서 낼름 피했다.진산군은 발길질을 해도 차이는 게 없자 다시 걷어 차려고 하는데, 임학이 임씨 부인 뒤로 쏙 숨을 줄 몰랐다.“어머니, 아들이 어제 발길질을 당해서 지금도 가슴이 이렇게 아픈데! 또 차였다가는 죽을 거예요!”임씨 부인에게 막혀 진산군은 발을 멈출 수 밖에 없었다.임씨 부인은 그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지만 차마 입을 떼지 못하는 분위기로, 그 말은 바로 임학을 용서해 달라는 것이었다.바로 그때 진산군이 낭패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부인! 이 못난 놈을 좀 보라고, 당신이 오냐오냐해서 어떻게 됐는지? 당신이 저 놈을 계속 감싸고 돌면 그야말로 수 나인이 말한 대로 우리 가문에 큰 화가 미치고 말 거야!”임씨 부인은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없지만, 임학은 오히려 입을 삐죽거렸다.“제가 뭘 어쨌다고 그러세요? 그저 단이와 명정 대군의 혼사를 망치려던 것 뿐이잖아요! 누가 걔더러 황제께 사혼을 명 받고 그렇게 기고만장하래요? 걔가 먼저 어머니와 원이를 울리지 않았으면, 제가 뭘 그렇게까지 했겠어요?”임씨 부인도 맞장구를 쳤다.“단이가 사혼을 받고 확실히 좀 방자하게 굴었죠. 학이가 잘못했지만 저와 원이를 아껴서 그런건데, 모든 결과에는 원인이 있는 법 아니겠어요. 대감,

  • 대군, 사랑에 살다: 무수리의 반격   제69화

    임학의 말에 아픈 곳을 찔렸는지, 임씨 부인은 눈을 동그랗게 뜨고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며, 임학을 가리켜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내가, 내가 언제 단이를 죽이려는 생각을 해 본 적이 있다고 그래? 내 손으로 걔를 키웠어!”울먹이느라 마지막 말은 제대로 맺지도 못했다.임씨 부인의 이런 모습을 보고 임학도 당황해서 얼른 잘못했다고 했다.“제가 말 실수를 했습니다. 어머니, 화내지 마세요! 제가 잘못했습니다!”임학이 용서를 구해도 임씨 부인은 듣기 싫다는 듯 임학에게 등을 돌리고 있었다.어머니의 태도에 임학은 미간을 꿈틀거렸다.그의 눈이 임원에게 향하더니 차가운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사실 똑바로 말하면 단이 자신을 탓해야지, 어떻게 이렇게 모질 수가 있어. 어떻게 원이한테 이렇게 심한 짓을 할 수가 있냐고!”멀쩡한 얼굴을 때려서 이 지경이 되다니!그때 생각지도 못한 소리가 옆방에서 들려왔다.“둘째 아가씨께서 이말 저말 옮기지만 않으셨어도 큰 마님께서 쓰러지실 일은 없었습니다. 큰 아가씨께서 큰 마님을 대신해 둘째 아가씨께 가르침을 줬을 뿐이라, 큰 마님이 깨어나신 뒤에 큰 아가씨 행동을 칭찬하실 거라 생각합니다.”수 나인의 목소리였다.그녀는 이 말을 하며 네 사람 앞으로 오더니, 진산군에게 허리를 굽혀 예를 올렸다.수 나인은 나이가 지긋한 사람으로, 큰 마님이 진산군댁으로 시집올 때 따라와서 진산군이 자라는 것을 쭈욱 지켜봤다. 비록 명목 상은 하인에 불과하나 진산군에게 있어 수 나인은 어른 중 하나였다. 따라서 그도 바로 손을 모아 읍하며 답례했다.이윽고 수 나인이 말을 이었다.“최근 집안에 벌어진 일은 둘째 아가씨 덕분에 쇤네도 큰 마님과 함께 들어 알고 있습니다.”이 말을 듣고 진산군은 뒤를 돌아 임원를 째려봤다.임원이 여전히 불쌍하고 가련한 모습을 하고 있지만, 진산군 마음 속에는 울컥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 그 자리에 모두가 오늘 큰 마님이 쓰러진 이유를 알기 때문이었다.진산군이 입을 열가도 전에 수 나인이 말을 계속했

  • 대군, 사랑에 살다: 무수리의 반격   제68화

    수 나인은 차가운 시선으로 주변을 둘러보다가, 임씨 부인이 어디론가 달려가는 게 보였다.‘구원병이라도 청하러 가는 건가?’그렇게 생각하는 찰나 임씨 부인이 금방 다시 달려왔으나, 손에 매우 큰 돌멩이를 들고 있었다.수 나인이 너무 놀란 나머지 채 뭐라 입을 열기도 전에 진산군이 소리쳤다.“부인, 안 돼!”하지만 한 발 늦었다.커다란 돌멩이가 세차게 김단의 머리를 내리쳤다.김단은 순간 머리가 멍해지는 것을 느끼고 귀에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더니 예리하게 윙윙거리는 소리만 들렸다. 그리고 핏방울이 눈가를 타고 한방울 뚝 떨어지더니 이어서 두방울 세방울….그녀는 그제서야 상황을 파악하고 서서히 고개를 들어 임씨 부인을 쳐다봤다.선혈로 물든 김단의 두 눈을 본 임씨 부인도 뭔가 깨달았는지 얼른 손에 든 돌멩이를 던져버렸다.“아니, 그게 아니라, 단아. 어미 말 좀 들어봐.” 임씨 부인의 목소리가 심하게 떨리고 있었다.“이 어미는 그저 네가 그만 뒀으면 해서, 다치게 하고 싶지 않았어…”“털썩!”김단은 눈 앞이 깜깜해지더니 바닥에 쿵하고 쓰러졌다.진산군이 제일 먼저 나섰다.“전부 뭘 멍하니 있는 게야! 의원을 불러 오너라! 어서. 아가씨를 방으로 데리고 들어가고!”마당에 시녀들도 수 나인의 지휘 하에 허둥거리긴 했지만 김단을 방 안으로 옮기는데 성공했다.수 나인도 바짝 붙어 들어갔으나, 방으로 들어가기 전에 임씨 부인을 뚫어지게 쳐다봤다.이때 임씨 부인은 놀란 나머지 사지에 힘이 들어가지 않아 진산군의 품에 안겨 있었다.임원도 이미 사람들의 부축을 받고 일어났는데 얼굴 반쪽은 팅팅 부어올랐고 입술에는 피가 베어나왔다.그녀는 임씨 부인 곁으로 가서 아무 말도 하지 않고 흐느낄 뿐이었으나, 임씨 부인은 한 팔로 그녀를 품에 안고 꺼이꺼이 대성통곡했다. 세 식구가 한데 끌어안고 있는 모습이 이 사건으로 제일 깊게 상처를 입은 건 바로 자기들 셋인 양 보였다.하지만 화가 치밀어 거의 죽을 뻔한 사람은 큰 마님이고, 머리가 깨져서 피를

  • 대군, 사랑에 살다: 무수리의 반격   제67화

    김단은 전에 자신을 괴롭히던 무수리들에게 달려들 때처럼 맹렬하게 임원을 덮쳤다. 임씨 부인은 눈 앞에 뭐가 휙 지나갔나 싶었는데, 벌써 임원이 김단 아래 깔려 있었다.“악!”임원이 큰 소리로 비명을 지르자, 곧바로 김단이 그녀의 입을 틀어막았다.할머니께서 안에서 쉬고 계시기 때문이었다. 할머니께서 쉬시는데 방해가 되고 싶지 않았다.하지만 김단의 가슴 속에 활활 타오르는 분노의 불길은 밖으로 표출하지 않을 수 없었다!김단은 한 손으로 임원의 입을 틀어막고, 그녀를 꽉 눌러 발버둥치지 못하게 했다.그리고 다른 손으로는 조금도 사정을 봐주지 않고 따귀를 때렸다.김단이 임원을 패주고 싶은지는 오래 됐지만 그동안 억지로 인내해왔다.임원이 비록 악랄하고 못됐어도 그건 전부 성격이 그런 거라 생각했다.임원에게는 임씨 집안의 피가 흐르고 있기 때문에, 다들 임원을 싸고돌고 임원도 매사에 임씨 집안 사람이 먼저였을 거라고 말이다.그들이 저지른 짓 하나하나가 김단을 아주 깊이 상처입혔어도, 김단은 매번 임원에게 손찌검을 하고 싶은 자신의 감정을 억눌러야 했다. 하지만 오늘은, 더이상 참는 건 불가능한 것이, 임원이 그녀의 참을성의 한계를 건드렸기 때문이다!“찰싹!”따귀를 때리는 소리가 우렁차게 울려퍼지며 임원의 눈에서 눈물이 후두둑 떨어졌다.놀라 멈춰서 있던 임씨 부인이 달려나와 김단을 뜯어말렸다.“단아! 이게 무슨 짓이니! 어서 동생을 풀어줘!”하지만 임씨 부인이 김단을 말리는 정도는 사실 아무 소용없었다.예전에 세답방에 있을 때 그녀가 다른 사람을 올라타서 때릴 때, 적어도 열댓명의 나인들이 달려들어 그녀를 말렸다.누구는 그녀의 목을 잡아 조르고, 누구는 그녀의 머리끄댕이를 낚아채고, 전부 그녀가 상대의 몸에서 내려오게 하려고 했다. 하지만 김단은 철천지원수에게 대항하는 능력을 키워, 누구든 마음만 먹으면 절대로 쉽게 놔 주는 법이 없었다!임씨 부인이 몇 번 잡아당겨봤지만 김단을 끌어내지 못할 뿐 아니라 오히려 그동안 김단은 임원의 얼굴에

  • 대군, 사랑에 살다: 무수리의 반격   제66화

    “맞아 맞아, 다들 좀 비켜봐!”하녀들이 수선을 떠느라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하지만 그 순간 김단은 오히려 따스함을 느꼈다. 그녀는 줄곧 이 집은 너무 차갑다고 생각했다. 빙고처럼 차가워서, 오직 할머니만 그녀의 몸을 따스하게 덥혀주며 온기를 느끼게 해주는 분이셨다. 그런데 그런 할머니께서 지금 편찮으시므로, 그녀의 억울한 사정이나 고통을 할머니께 얘기해 충격받으시게 할 수 없었다. 그래서 그녀는 오늘밤 자기 혼자 이 감정을 삭여야 할 거라고 생각했는데, 별당에 발을 들이자마자 마음이 벌써 차갑지 않아졌다.게다가 그녀가 다친 곳은 손인데, 숙희는 굳이 그녀를 방까지 부축하겠다고 우기기까지 했다.자리에 막 앉자 하녀 하나가 뜨거운 차를 가져왔다.“아가씨, 오늘 분명 많이 놀라셨을 거예요. 이건 쇤네가 끓인 안정차로, 마시고 편히 한숨 주무시고 나면 내일 아침엔 모든 일이 다 끝나 있을 겁니다!”“쇤네 아가씨께서 세수 하시게 뜨거운 물 떠올 게요.”“아가씨, 이불 따듯하게 데워놨으니 차 드시고 머리 빗으신 뒤 푹 쉬세요.”이런 일은 전부 숙희가 하던 것인데, 숙희도 다치자 어린 하녀들이 숙희의 일을 자진해서 맡아준 것이다.아마도 어린 하녀들이 너무 열정적이기 때문일 거야. 김단은 눈시울이 뜨거워지는 것을 느꼈다.그녀는 숙희에게 가서 좀 쉬라고 하고 차를 마신 뒤, 하녀들이 머리를 빗겨주는 가운데 자리에 누웠다.좋은 냄새가 나는 부드러운 이부자리에 눕자, 복잡한 머리 속까지 이불 속에 쏙 넣고 싶었다. 임씨 집안의 모든 사람을 머리 속에서 끄집어 내고, 자신은 진산군의 금지옥엽같은 건 하고 싶지 않았다.‘난 임씨 집안 사람과 아무 관계도 없어!’안정차 효과가 상당히 괜찮았다.김단은 얼마 지나지 않아 잠이 들었지만 밤새 꿈에 시달렸다.꿈 속에서 그녀는 두 명의 건장한 괴한에게 쫓기고 있었다. 막 달아나려는 순간 갑자기 임학이 나타나 그녀를 심연으로 밀어넣었다.김단은 놀라서 꿈에서 깨 아직 정신을 차리지 못한 사이, 방 밖에 숙희가 놀라서

  • 대군, 사랑에 살다: 무수리의 반격   제65화

    이 말을 마친 뒤 김단은 임학의 얼굴에 당황스러운 기색이 가득한 것을 똑똑히 봤다.아주 웃겨!김단을 망가뜨리려고 할 때는 그렇게 말발을 세우고 당당했으면서, 이제 자기가 끌려들어가니까 당황하는 꼴 좀 봐!임학뿐 아니라 임씨 집안 사람 거의 다 당황했다.오히려 계속 질질 짜던 임원이 일어서서 김단에게 말했다.“언니 오늘 큰 일을 당했으니 일찍 돌아가서 쉬어! 시간도 꽤 됐으니, 무슨 일이 있으면 내일 다시 얘기하는 게 어때?”임원의 말을 듣고 임씨 부인도 얼른 맞장구를 쳤다.“그래 그래, 단아, 봐 날이 벌써 이렇게 저물었구나. 소 장군까지 이 일에 말려들어 아직 돌아가지도 못하셨지 뭐니. 우리 내일 일찍 다시 논의하는 게 어떨까?”김단은 그제서야 대청에 아직도 소한이 서 있다는 사실을 깨달은 듯 했다.그녀는 고개를 돌려 그를 건너다봤다.대청의 촛불이 소한의 냉담한 얼굴 위에 일렁이자, 깎은 듯 날카로운 이목구비는 전보다 더 냉정하게 보였다.소한도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의 어두운 눈동자에 김단이 이해할 수 없는 감정이 용솟음치고 있었다.김단은 왠지 가슴이 시큰거려 숨을 크게 들이마셨다.그녀도 오늘 엄청난 일을 당해, 기력이 하나도 없는 게 사실이었다.만약 임씨 집안 사람들과 말다툼을 계속해 나간다면 먼저 쓰러지는 쪽은 그녀 자신일 게 틀림없었다.하룻밤 쉬어도 그녀는 절대 임학을 가만 두지 않겠어!이런 생각을 하며 그녀는 소한에게 걸어가는 것을 본 임원이 바짝 긴장하기 시작했다.김단이 모든 걸 팽개치고 소한 품에 안기기라도 할까봐, 김단과 소한의 거리가 점점 좁혀지자 임원은 도저히 참지 못하고 소리를 질렀다. “언니!”임원의 목소리에 두려움과 당황스러움이 묻어나는 걸 모두가 느꼈으나, 김단은 걸음을 멈추지 않은 채 곧장 소한 앞으로 걸어갔다.거리가 꽤 가까워졌다.임원에게 좀 삐졌던 김단은 임원의 두려움에 찬 외침에 속이 시원했지만 결국 도를 넘는 행동은 하지 않고 소한에게 감사의 예를 표했다.“오늘 정암 종사관께서 구해

  • 대군, 사랑에 살다: 무수리의 반격   제64화

    “왜냐면 절 해치는 편이 쉽기 때문이죠, 절 속이는 쪽이 쉬우니까요.”“미래의 제 행복을 위해 천 냥이란 거금을 써 가며, 장정 둘을 고용해 제 정절을 더럽히고자 했다는 건데, 본인이 생각해도 웃기지 않으세요?”“임학, 토 나올 것 같은 표정 집어치워요. 당신은 애초에 저따위한테 관심조차 없었으니까. 그저 제가 당신보다 높은 자리에 서는 게 싫었던 거잖아요! 조금도 저를 위한 게 아니라, 제가 잘 되는 꼴이 못마땅했던 거죠!”가볍게 몇 마디 던지는 것에 불과했지만, 임학의 마음 속 가장 추악학 구석을 들춰냈다.임학은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네가 잘 되는 걸 내가 못마땅해할 이유가 어딨어? 명정 대군께 시집가는 게 좋은 일인 것 같아? 그리고 네가 정절 좀 잃는 게 뭐? 우리 집안이 너 하나 시집보내는 거 못 받쳐줄까봐 겁나?”말이 떨어지자 대청 안은 한동안 침묵에 잠겨, 임원이 훌쩍이는 소리 외에 모두 숨소리도 내지 않는 듯했다.김단의 주변을 쭉 둘러보고 임씨 부인에게 눈길을 주고, 다시 진산군을 쳐다보고 마지막으로 암학을 향해 낮은 소리로 비웃었다.“이제야 알겠습니다. 진산군 마님과 정부인께서는 아슬아슬 위태롭던 지위에서 진산군 가문을 지키기 위해, 제 치마폭을 선택하셨던 것이로군요.”살랑살랑 나부끼는 한마디 말이, 모든 임씨 가문 사람의 얼굴을 후려쳤다.김단의 비아냥거리는 눈빛이 한층 심해졌다.“당신처럼 머리에 든 게 없는 아들을 뒀으니, 진산군 가문이 자산몰수와 멸문을 당하는 것도 시간문제겠군요.”“김단 너 지금 뭐라는 거야!” 김단이 진산군 집안을 저주하고 있다고 생각해 임학은 분노했다.그런데 오히려 진산군이 자신을 꾸짖을 줄 생각도 못했다.“이 짐승만도 못한 놈, 닥치지 못할까! 그런 짓을 저지르고도 아직도 네 동생에게 가타부타할 낯짝이 있어? 네 동생이 죄를 묻지 않기로 했으니 망정이지, 넌 벌써 감옥에 끌려가고도 남았어!”‘응?’거참 이상하기 짝이 없는 소리였다.임학은 진산군의 꾸중에 입을 다물고 가슴을 움켜쥔 채

  • 대군, 사랑에 살다: 무수리의 반격   제63화

    임학은 여전히 아무 말이 없었다.오히려 임씨 부인이 몸을 떨며 한걸음 한걸음 임학 곁으로 걸어가, 임학의 소매를 잡아 당겼다.“학이야, 어서 동생에게 이 모든 게 오해라고 얘기하렴.”임학은 차가운 얼굴로 침묵했다.그러나 그가 침묵하면 할수록 애가 타는 임씨 부인이 더욱 세게 임학의 옷자락을 잡아 당기다 못해 거의 밀다시피했다.“얘기 해! 어서 얘기하라니까!”목소리가 흐느끼고 있었다.임씨 부인이 이렇게 흥분한 것을 보고 임원이 얼른 다가와 임씨 부인을 끌어 안았다.“어머니, 이러시지 마세요. 앉으셔서 오라버니가 천천히 얘기하게 두세요. 전 오라버니께 반드시 무슨 이유가 있는 게 확실하다고 믿어요!”이 말을 듣고 있던 김단은 도무지 믿어지지 않는다는 눈빛으로 임원을 바라봤다.임학은 김단의 정절을 더럽히고자 했던 진범이었다. 그런 임학이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다니, 이게 도대체 말이야 방귀야? 두 사람은 어떻게 돼먹은 인간들이지?임원은 여자의 몸으로 어떻게 그따위 말을 주워섬길 수가 있단 말인가?하지만 임학은 임원의 말에 정신을 차린 듯했다.심지어 감동의 눈빛으로 임원을 지긋이 바라보더니, 김단을 노려봤다.“그래, 이 일은 확실히 내가 한 거야.”그는 떳떳하고 당당한 태도로 말했다. “편지는 내가 뜯었고, 복래 차관이라고 내가 바꿨어. 그 두 명의 강호인도 내가 고용했지! 하지만 김단, 가슴에 손을 얹고 대답해봐, 두 사람이 널 해쳤어?”그는 두 사람에게 절대로 김단을 해쳐서는 안된다고 신신당부했기 때문에 김단이 입은 상처는 스스로 밧줄을 빠져나오다 생겼다는 걸 이미 알고 있었다!얌전히 날이 밝기만 기다리고 있었으면 아무 상처없이 돌아왔을 텐데, 괜히 일을 이렇게 크게 만들게 뭐야!임학은 사건은 전부 김단 본인이 자초한 것처럼 말했다.전에 자신이 그토록 아끼고 사랑하던 얼굴이 저런 표정을 짓는 것을 보자, 김단은 아주 세게 따귀를 갈겨 버리고 싶은 마음을 억누를 수 없었다.정말 귓방망이를 날려도 시원치 않은데, 임학의 말에 기가

  • 대군, 사랑에 살다: 무수리의 반격   제62화

    어쨌든 여자에게 정절은 무엇보다 가장 중요하니까.하지만 그 자리에 있는 사람은 모두 그게 사실이 아니란 것을 알고 있었다.소한은 진산군의 인사에 화답하고 김단을 향해 말했다.“명정 대군은 연래 차관이라고 하셨는데, 어째서 복래 차관으로 바뀐 겁니까?”김단은 한 켠에 오도카니 앉아 있었는데, 손에 상처는 처치를 마쳤지만 조금만 움직여도 여전히 아팠다. 의원 말로는 상처가 심각하다고는 할 수 없지만, 기볍게 여겨 함부로 행동하지 말고 적어도 한 달 간은 손에 힘을 주지 말라고 했다.이때 소한의 질문을 받고 김단은 일어나 소한에게 말했다.“제가 서신을 받았을 때 서신에 분명 복래 차관이라고 쓰여있었습니다. 그 서신은 아직 분명히 제 화장대에 들어 있습니다.”여기까지 말하고 김단은 고개를 돌려 임학을 바라봤다.임학은 별로 멀지 않은 후미진 구석에 서 있었는데, 사람들 눈에 띌까봐 몸을 사리고 있는 듯했다.하지만 임학이 들어올 때 벌써 김단은 그를 눈여겨 봐뒀다.그녀가 사뿐사뿐 임학에게 걸어갔다.“도련님께서는 오늘 아주 얌전하시네요. 어떻게 된 거죠? 무슨 일 있으셨어요?”임씨 부인은 김단이 왜 갑자기 임학에게 관심을 보이는지 어리둥절해 하며 그녀의 앞을 막아서려 했다.“네가 아주 큰 봉변을 당했는데 가만 앉아서 쉴 일이지, 오라비 일에는 신경쓰지 않아도 돼.”하지만 김단은 임씨 부인을 밀쳐냈다.손에 힘을 전혀 주지 않고 임씨 부인의 손은 뿌리친 뒤 가려던 것 뿐인데, 임씨 부인 뒤에 하필 태사의가 놓여 있어 김단에게 밀쳐진 순간 태사의에 철퍼덕 주저앉는 꼴이 되었다.이를 보고 임원이 바로 달려나왔다.“언니 이게 뭐하는 짓이야? 어머니는 언니를 걱정해서 그런 거잖아! 어떻게 이럴수가….”“닥쳐!”김단이 날카롭게 소리치며 임원을 노려봤다.“이 일에 네가 관련이 됐는지는 아직 모르겠지만, 네가 한마디만 더 지껄였다간 맞을 줄 알아.”임원은 무공을 할 줄 모르기 때문에 그녀가 임원을 때리기로 마음 먹으면 식은 죽 먹기였다.그러나 김단

DMCA.com Protection Statu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