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학은 임씨 부인을 따라 매화당에 갔다.임원의 병은 자가 의원의 보살핌으로 이미 크게 나았고, 가끔 기침이 몇 번 나는 것 외에는 이미 큰 문제가 없다.임씨 부인과 임학이 왔을 때, 그녀는 정원에서 매화를 감상하고 있었다.그녀가 얇게 입은 것을 보고 임씨 부인은 눈썹을 찌푸렸다.“병이 낫기도 전에 왜 나왔어? 그것도 이렇게 얇게 입고, 어서 방으로 들어가!"임씨 부인은 임원을 품에 안고 방에 들어가, 명희를 불러 뜨거운 물을 가져오라고 했다. 그제야 품에서 작은 약병을 꺼냈다.“덕빈마마는 네가 심하게 기침했다는 말을 듣고, 특별히 사람에게 내의원에서 약을 가져오라고 명령했다. 약왕곡에서 얻은 것이어서 전에 중전마마께서 보름 동안 기침을 했는데, 바로 이것을 먹고 낳은 것이라고 한다."임학은 임씨 부인이 직접 임원에게 약을 먹이는 것을 보면서 임씨 부인이 무엇 때문에 집에 돌아오자마자 임원에게 급히 왔는지를 알게 되었다.그도 당연히 임원을 걱정하지만 임원의 안색이 이미 평소와 같아 보이고 또 지금까지 기침 소리를 듣지 못한 것을 보니 큰 문제는 없을 것으로 생각했다. 그래서 그는 다른 일이 더 걱정된다.“어머님, 빨리 말씀해 주세요, 도대체 단이랑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요? 어머님은 또 왜 마차 안에서 그렇게 울었습니까? 그리고 단이가 방금 전에 남은 몇 달을 말했는데, 그 '몇 달'은 무슨 뜻입니까?”임씨 부인은 임원이 약을 삼키는 것을 보고서야 긴 한숨을 내쉬었다.“내가 단이를 위해 혼사를 찾았다. 3개월 후에 단이는 명정대군과 함께 탐라성으로 갈 것이다. 그러니 이 3개월 동안 너는 가만히 있어, 더 이상 단이에게 시비 걸지 마! 이번에 가면 언제 돌아올지도 모르는데..."이렇게 말하자 임씨 부인은 또 코가 찡하더니 눈시울이 약간 붉어졌다.임학은 깜짝 놀랐다.“명정대군요? 어머님! 왜 이런 잘못된 결정을 했나요? 어떻게 단이를 명정대군에게 시집보낼 생각을 할 수 있어요?”임원은 오히려 이해하지 못하는 표정을 지었다.“오라버니는 왜
다른 한편, 김단은 임학이 임씨 부인에게 무슨 말을 했는지 전혀 아랑곳하지 않았다.그녀는 급히 큰 마님을 보러 갔다.어제와 비교해 큰 마님의 상태가 아주 좋아졌는데, 김단이 왔을 때 큰 마님은 수 나인의 시중하에 약을 마시고 있었다.그 약은 매우 쓴 것 같다. 큰 마님은 약을 마시더니 이목구비가 구겨질 정도였다. 그러나 김단을 보자마자 그녀는 바로 웃음을 터뜨렸다.“단아, 왔어?”“조모”김단은 인사를 하고 앞으로 나아가 큰 마님의 침대 옆에 앉았다.“조모, 오늘 기분이 어떠세요?”“좀 나아졌어.”큰 마님은 웃으며 부드럽게 손을 뻗어 김단의 볼을 어루만졌다.“많이 놀랐지?”김단은 연신 고개를 저었다.“조모만 괜찮으시면 됩니다.”그녀의 눈시울이 붉어지는 모습을 보고, 큰 마님은 정말 마음이 아팠다. 갑자기 어젯밤 임씨 부인이 한 말을 다시 생각나서 물었다."지금 막 궐내에서 돌아온 거니?"김단은 노부인도 이 일을 알고 있을 줄은 생각지도 못하고 살짝 멍하더니 침묵하며 고개를 끄덕였다.다시 큰 마님의 말을 들었다.“다른 것 걱정할 필요가 없다. 만약 네가 원하지 않는다면 명정대군은커녕 덕빈께서 직접 와도 조모는 너를 위해 막을 수 있다.”조모는 당연히 무엇이든 그녀의 편이다.김단의 마음속에 따뜻한 기운이 솟아오르더니 그녀는 큰 마님을 보고 고개를 살짝 흔들었다.“손녀의 현재 상황으로 명정대군에게 시집갈 수 있는 것은 이미 넘치는 복입니다. 조모, 걱정할 필요 없어요. 제가 원한 것입니다.”“네가 정말 원하면 좋고!" 큰 마님은 긴 한숨을 내쉬었다.“조모는 네가 조모를 기쁘게 해주고 싶어서 황급히 아무 사람을 찾아서 시집갈까 봐 무서워. 단아, 혼사는 일생의 큰 일이다. 소홀히 해서는 절대 안 된다!”진산군댁 안에서 큰 마님만이 그녀의 혼사를 정말 큰일로 여길 것이다.김단은 참지 못하고 큰 마님 품에 들어가 큰 마님을 꼭 안았다.“조모, 안심하세요. 단이가 정말 원해서 한 겁니다.”조모의 마음을 즐겁게 할 수만 있다면,
김단은 어쩔 수 없이 한숨을 쉬었고, 그제야 매무새를 가다듬고 임원을 만나러 갔다.얼마 지나지 않아 숙희는 임원을 따라 들어왔다.숙희가 정말 한 발짝도 떨어지지 않고 임원을 따라다니는 것을 보고 김단은 하마터면 소리 내 웃을 뻔했다.임원이 방에 들어가 김단에게 인사 했다. 김단의 입가에 웃음을 보고는 김단이 오늘 기분이 아주 좋은 줄 알고 오기 전의 긴장감을 어느 정도 내려놓았다.그녀는 김단을 향해 웃으며 말했다.“제가 이 아침부터 찾아와서 언니를 귀찮게 한 건 아니죠?”김단는 멍하더니 대체 임원이 왜 이러는지 도무지 알 수 없어 살짝 한숨을 쉬며 물었다.“무슨 용건이 있소?”“제가 언니랑 함께 법화사에 같이 가자고 초대하러 왔소.”임원은 엄청나게 기대를 많이 한 것처럼 보인다.김단도 갑자기 오늘이 정월 초 여덟이라 법화사의 성절이라는 것을 떠올랐다.성절 당일에는 부처님 앞에서 성심성의껏 청원하면 무엇을 원하든 다 들어준다는 소문이 있다.예전에 매번 성절마다 그녀는 법화사에 갔는데 먼저는 가족의 평안과 순조롭기를 구하고 또 다른 한 가지는 소한을 만나기 위한 것이다.벌써 3년이나 가 본 적이 없으니, 그녀도 당연히 가족의 평안도 바라고 싶지 않고, 소한은 더더욱 만나고 싶지 않다.하지만, 조모를 위해서라면 한 번 가도 좋을듯싶다.보살님께 조모께서 몇 년을 더 즐겁게 지낼 수 있도록 보우해 달라고 빌어야겠다.다만, 성절은 1년에 한 번뿐이기 때문에 오늘 법화사에 가는 고관과 귀인들이 적지 않으니, 당연히 예전부터 알고 있던 각 집안의 규수들도 만날 수 있을 것이다.자기 지금의 신분이 이미 예전과 비교할 수 없으니, 이번에 가면 아마 많은 쓸데없는 말을 많이 들을 것이다.하지만 쓸데없는 소리를 조금 듣는 것은 조모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지 않겠는가?김단은 얼마 망설이지 않고 대답했다.“그래요, 그럼 가서 준비하겠소.”기왕 절에 가서 신에게 빌어야 하는 바에야 당연히 빈손으로 갈 수 없다.하지만 임원이 다시 말했다.“언니,
김단은 이해할 수 없었다. 그녀는 단지 임원에게 손을 놓으라고 했을 뿐인데, 임원은 어떻게 화제를 임씨 부인에게 돌릴 수 있었을까.자기가 임씨 부인을 괴롭혔다고?이 진산군댁 일가가 와서 자기를 괴롭히지 않으면, 그녀는 이미 대단히 고마운 일이라 생각한다.어찌 감히 그 임씨 부인을 괴롭히겠는가!김단은 깊이 숨을 들이마시고 자기 손목을 꽉 쥐고 앞으로 다가가 임원에게 따귀를 때리는 충동을 힘겹게 가라않혔다.하지만 옆에 서 있던 숙희가 참지 못하고 입을 열었다.“둘째 아씨, 혹시 병 있는 건 아니시죠?”그녀는 조금도 망설이지 않고 욕설을 퍼부어 임원을 그 자리에서 멍하게 만들었다.“네, 네 이년...”너무 놀랐는지 임원은 한참 동안 말을 하지 못했다.김단도 깜짝 놀랐다, 숙희의 간이 이렇게 클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자기가 한 말을 마음에 두지 않은 것이다. 그녀는 분명히 자신이 그녀를 보호할 수 없다고 말했다.마침 숙희를 대신해서 설명하려고 했는데, 숙희가 한 걸음 앞으로 나아가 임원을 향해 웃으며 말했다. “둘째 아씨는 며칠 전까지만 해도 기침을 하고 있지 않았습니까?”숙희의 앳된 작은 얼굴에 진지함이 가득한 것을 보고, 임원은 오히려 이 시녀가 정말 자신에게 관심을 가지는 건지 아니면 그녀를 욕하는지 분간할 수 없었다.그녀의 억울한 눈동자가 깜박거렸다.“어머님께서 궐에서 약을 가져다주셔서 나, 난 이미 다 나았다.”“아, 약이 있군요?”숙희가 웃으며 다가오더니 마치 뒷말을 전혀 듣지 못한 것처럼 임원을 부축하여 밖으로 나갔다.“약이 있으면 약을 드셔야 합니다. 둘째 아씨는 오늘 아직 약을 드시지 않았죠? 시간이 늦었으니, 소인이 부축하여 돌아가서 약을 드시도록 하겠습니다.”‘부축’ 이라고 하지만 숙희는 분명히 반강제적으로 임원을 밖으로 내쫓았다.그 사이에 임원은 김단에게 다시 무슨 말을 하고 싶었지만 숙희에게 막아서 할수 없었다.숙희한테 별당에서 내보낼 때까지도 임원는 숙희가 도대체 그녀를 욕하고 있는 게 맞는지 알아차리지
숙희가 마차의 발을 내려 밖으로 보고는 참지 못하고 뒤돌아서서 김단을 향해 말했다.“아씨, 올해 법화사에 가는 사람이 예전보다 더 많은 거 같아요!”김단은 마음속으로 꽤 기뻐했다.“법화사가 확실히 영험하다는 것을 알 수 있구나.”숙희가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당연하죠! 인연을 구하는 것이 가장 영험하다고 들었어요!”이 말을 듣자, 김단은 그저 웃으며 말하지 않았다. 그녀가 생각하기에는 법화사의 모든 것이 다 영험하지만, 유독 이 인연만이 가장 영험하지 않다고 생각했다.진짜로 영험하다면 3년 전에 그녀는 이미 소한에게 시집갔을 것이다.생각하면서 그녀는 또 참지 못하고 살짝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다행히 시집을 가지 않았으니 망정이지 그렇지 않았다면 지금은 틀림없이 불구덩이에 빠져 헤어날 수 없었을 것이다.얼마 지나지 않아 마차가 법화사 밖에 세워졌다.숙희가 먼저 마차에서 내린 후에 몸을 돌려 김단을 부축했다.뜻밖에도 김단의 두 발이 땅에 닿자마자 멀지 않은 곳에서 몇 갈래의 비꼬는 소리가 들려왔다.“난 또 어느 집 시녀가 이렇게 대담한데, 감히 주인과 함께 마차를 탄다더니, 이제 봤더니 임씨 아가씨였군요!”“임씨네 아가씨라니요? 그건 분명히 김낭자지오!”“아, 맞네, 맞아, 이걸 깜빡했소!"목소리가 너무 익숙해서 김단은 보지 않아도 상대방이 누군지 다 안다.한 사람은 병부판서의 둘째 아가씨 송백선이고, 다른 한 사람은 소씨네 큰아가씨 소정원이자, 또한 소한의 직계 친여동생이다.김단은 일찍이 소한의 일로 그들 두 사람과 사이가 좋지 않았다.그때는, 그녀는 진산군댁의 큰 아가씨로서 그녀들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세 사람은 심지어 몸싸움도 있었다 하지만 송백선과 소정원은 손을 잡아도 그녀를 이길 수 없었다. 하물며 그녀의 신분은 그녀들보다 높았다. 예전에 그녀들의 싸움에서 송백선과 소정원은 모두 밀렸다.그러나 지금은 다르다.소정원은 벌써 김단을 향해 걸어왔다. 그녀는 키가 크지 않고 심지어 김단보다 머리 하나 정도 작았지만 매우 도
모두가 깜짝 놀랐다.“명정대군자가?”그러자 모두 무릎을 꿇고 절을 했다.“명정대군자가님.”김단도 무릎을 꿇으려다가 명정대군이 말렸다.명정대군은 두 눈을 가늘게 뜨고 여러 사람을 힐끗 쳐다보며 일어나라고 하지도 않고 도리어 여러 사람의 앞에서 김단의 손을 잡았다.“앞으로 낭자의 의지는 이 대군이다. 누가 감히 낭자에게 무례하면 이 대군에게 불경한 것이다 알겠느냐?”이전 3년 동안 모두 김단이 다른 사람에게 무릎을 꿇었다. 비록 진산군댁에서 애지중지 총애를 받았던 15년에도 그녀는 주위 사람들이 모두 그녀에게 무릎을 꿇는 느낌을 받은 적이 없다.하지만, 이 순간, 그녀는 명정대군의 곁에 서서 사방의 화려한 옷차림을 한 각 집 도련님들과 아가씨들을 내려다보면서도 아무런 기쁨이나 기를 펴는 느낌도 없었다.오히려 현실감이 없었다.그리고 이런 비현실적인 느낌도 그녀를 당황하게 했다.그녀는 자기의 손을 빼고 싶었지만, 명정대군이 너무 꽉 쥐어서 그녀는 두 번 힘써 봤지만 헛수고였다.하지만 감히 너무 크게 움직이지는 못했다. 어쨌든 명정대군이 지금 나타나 그녀를 위해 나서는 것이어서 그녀가 어떻게 사람 앞에서 그의 체면을 구길 수 있겠는가?그래서 그저 침묵하며 눈을 내려다봤다.이 모습은 다른 사람이 보기에는 그냥 명정대군에게 대한 귀여운 투정 정도다.소정원은 김단과 명정대군이 함께 서 있는 모습을 보고 왠지 마음속에 약간의 불쾌감이 솟아올랐다. 그래서 예의 지키는 것도 생각하지 못하고 명정대군을 향해 말했다.“대군자가, 김단은 하인이 낳은 천한 혈맥에 불과합니다. 어떻게 고귀한 신분인 대군자가와 함께 설 수 있습니까?"지금 한양의 모든 사람은 김단의 생모가 진산군댁의 산파라는 것을 알고 있는데, 주인의 정을 생각하지 않고 주인의 아이로 바꾸다니, 정말 천박하다!이런 사람이 낳은 자식이 어떻게 대군자가처럼 존귀한 사람과 함께 설 수 있겠는가?소정원은 정말 화가 나서 죽을 지경이다.그러자 명정대군의 눈동자가 약간 가라앉는 것을 보았고, 줄곧
그러나 지금의 김단은 혼자서 구석에서 조용히 있고 싶을 뿐 제일 좋기는 누구에게도 발견되지 않았으면 한다.지금처럼 이런 상황은 너무 눈에 띈다.더군다나 그녀는 이미 이 혼사를 승낙했지만, 아직 주상의 승낙을 얻지 못했으니, 아직 어찌 될지 모르는 일이다.참으로 이 많은 사람 앞에서 명정대군과 손을 잡지 말아야 했다.다행히도 명정대군은 절에 들어간 후 법화사의 방장을 만났고, 예불할 때 자연스럽게 김단의 손을 놓았다.김단은 급히 손을 거두고 그제야 한숨을 돌렸다.방장은 특별히 명정대군을 맞이하러 왔다, 그는 명정대군을 위해 불법을 강의하려고 한다.명정대군은 몸을 돌려 김단을 바라보았다.“낭자는 밖에서 나를 기다려주시오, 한 시진이면 되오. 조금 늦게 낭자를 데리고 갈 때가 있소.”김단은 오늘 밖에서 오래 머무를 생각도 하지 않고 평안부적을 구하고 돌아갈 생각만 했다. 그래서 명정대군의 말을 듣고 어리둥절했다. 그러나 명정대군은 말을 마치고 가버려서 김단이 도대체 어떤 반응이 있었는지도 보지 못했다.명정대군의 뒷모습이 시야에서 사라지고 나서야 뒤에 숙희가 참지 못하고 다가와 작은 소리로 물었다.“아씨, 명정대군자가께서 어떻게 우리가 오늘 올 줄을 알았습니까?”장소까지 찾아서 있다가 아씨를 데리고 간다니!김단은 고개를 저었다.“아마도 오늘 성절이어서 한양의 백성들이 대부분 올 것이기 때문이겠지.”김단은 설마 임원이 명정대군에게 알렸겠느냐고 생각했다.더이상 아랑곳하지 않고 김단은 숙희에게 말했다.“어서 부처님께 평안부적을 구하러 가자.”말을 마치자, 숙희를 데리고 안으로 들어갔다.법화사에서 가장 큰 관음상 앞에 무릎을 꿇고 김단은 두 손을 모으고 진심으로 절을 했다.갑자기 뒤에서 가슴을 답답하게 만드는 소리가 들려왔다.“언니, 왜 혼자 왔소?”임원이다!김단은 어쩔 수 없이 눈을 떴는데, 임원이 이미 김단의 곁에 무릎을 꿇은 것을 보았다.다만 그녀는 보살에게 절을 하지 않고 두 눈을 똑바로 뜨고 김단을 쳐다보았다.“나와 함께
모든 사람이 멍해졌다.김단이 이렇게 예고 없이 소정원에게 따귀를 때릴 줄은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다.그래서 소정원의 곁에 소한과 임학이 서 있더라도 이 따귀가 소정원의 얼굴에 떨어지는 것을 막지 못했다.하지만, 이 따귀 역시 침묵하던 사람들을 깨운 것 같다.임학은 갑자기 앞으로 나아가 김단의 손을 덥석 잡았다.“너 이게 뭐 하는 짓이야? 빨리 소낭자에게 사과하지 못해?”김단은 차가운 눈동자로 임학을 바라봤다.“손, 놓으시오! ”목소리는 크지 않았고, 어떤 기세도 차지 않았다.이렇게 아무런 압박이 없는 한마디가 임학의 심장을 갑자기 움츠리게 했다.그는 무의식중에 손을 놓았다.김단은 자기 손을 거두고 임학에게 잡혀 아픈 손목을 주무르고 있는데 옆에 있는 임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언니, 소낭자의 말은 좀 심했으나, 언니가 정말 손을 대서는 아니 되었소. 그것도 절에서..., 언니가 이러는 것은 보살님께서 탓할 것이오!”김단은 오히려 임원을 보지도 않고 담담하게 말했다.“너, 지금 한 마디만 더 하면 너도 같이 때릴 것이다.”임원은 갑자기 눈시울을 붉히며 억울하게 김단을 바라봤다.그러자, 김단은 소한을 바라보았다.“소장군께서도 무슨 할 말이 있습니까?”그녀는 그들이 할 쓸데없는 말을 다 듣고 한 번에 다 해결할려고 한다.그러나 소한은 고개를 살짝 흔들었다.“정원의 불손한 말이 먼저였다. 김낭자가 화를 풀었으면 하오.”의외다.김단은 자기도 모르게 소한을 깊게 쳐다보았다. 하지만 따귀를 맞은 소정원은 참을 수 없었다.“내가 무슨 말을 잘못했소? 김단이 천박한 것이지, 오늘 모든 사람이 김단이 명정대군과 손을 잡는 것을 보았소! 그들이 뭐라고? 주상께서 아직 혼사를 하사하지 않았다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 정말로 하사했다고 해도 두 사람이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이렇게 다정해서는 되겠소? 내가 김단이 명정대군을 꼬셨다고 하는 말이 어디가 틀렸소?”“조금 전에 내가 소낭자의 귀를 후비는 것을 막지 말아야 했나 보오.”김
임씨 부인도 얼른 나서 구슬렀다.“대감, 원이가 좋은 뜻으로 한 일인데 결과가 나빴던 거죠. 보세요, 단이가 얘를 때려서 이 지경을 만들어 놨는데, 그런 원이를 어떻게 매정하게 또 벌하실 수가 있어요?”임원의 빨갛게 부어오른 반쪽 얼굴을 보자 진산군은 문득 3년 전 임원이 돌아왔을 때가 떠올랐다. 말라서 거의 피골이 상접해 있었다.임원은 그들이 15년간이나 헤어져 지낸 딸로, 헤어져 있던 15년간 그녀는 내내 고생만 했구나!그래, 그런 아이한테 진산군이 어떻게 매정하게 굴 수 있겠어?심호흡을 하고 진산군은 결국 임학에게 눈을 돌렸다.그러고는 다짜고짜 발로 찼다.“전부 이 못난 놈이 저지른 짓이야!”하지만 이번엔 임학도 벌써 준비를 단단히 하고 있어서 낼름 피했다.진산군은 발길질을 해도 차이는 게 없자 다시 걷어 차려고 하는데, 임학이 임씨 부인 뒤로 쏙 숨을 줄 몰랐다.“어머니, 아들이 어제 발길질을 당해서 지금도 가슴이 이렇게 아픈데! 또 차였다가는 죽을 거예요!”임씨 부인에게 막혀 진산군은 발을 멈출 수 밖에 없었다.임씨 부인은 그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지만 차마 입을 떼지 못하는 분위기로, 그 말은 바로 임학을 용서해 달라는 것이었다.바로 그때 진산군이 낭패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부인! 이 못난 놈을 좀 보라고, 당신이 오냐오냐해서 어떻게 됐는지? 당신이 저 놈을 계속 감싸고 돌면 그야말로 수 나인이 말한 대로 우리 가문에 큰 화가 미치고 말 거야!”임씨 부인은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없지만, 임학은 오히려 입을 삐죽거렸다.“제가 뭘 어쨌다고 그러세요? 그저 단이와 명정 대군의 혼사를 망치려던 것 뿐이잖아요! 누가 걔더러 황제께 사혼을 명 받고 그렇게 기고만장하래요? 걔가 먼저 어머니와 원이를 울리지 않았으면, 제가 뭘 그렇게까지 했겠어요?”임씨 부인도 맞장구를 쳤다.“단이가 사혼을 받고 확실히 좀 방자하게 굴었죠. 학이가 잘못했지만 저와 원이를 아껴서 그런건데, 모든 결과에는 원인이 있는 법 아니겠어요. 대감,
임학의 말에 아픈 곳을 찔렸는지, 임씨 부인은 눈을 동그랗게 뜨고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며, 임학을 가리켜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내가, 내가 언제 단이를 죽이려는 생각을 해 본 적이 있다고 그래? 내 손으로 걔를 키웠어!”울먹이느라 마지막 말은 제대로 맺지도 못했다.임씨 부인의 이런 모습을 보고 임학도 당황해서 얼른 잘못했다고 했다.“제가 말 실수를 했습니다. 어머니, 화내지 마세요! 제가 잘못했습니다!”임학이 용서를 구해도 임씨 부인은 듣기 싫다는 듯 임학에게 등을 돌리고 있었다.어머니의 태도에 임학은 미간을 꿈틀거렸다.그의 눈이 임원에게 향하더니 차가운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사실 똑바로 말하면 단이 자신을 탓해야지, 어떻게 이렇게 모질 수가 있어. 어떻게 원이한테 이렇게 심한 짓을 할 수가 있냐고!”멀쩡한 얼굴을 때려서 이 지경이 되다니!그때 생각지도 못한 소리가 옆방에서 들려왔다.“둘째 아가씨께서 이말 저말 옮기지만 않으셨어도 큰 마님께서 쓰러지실 일은 없었습니다. 큰 아가씨께서 큰 마님을 대신해 둘째 아가씨께 가르침을 줬을 뿐이라, 큰 마님이 깨어나신 뒤에 큰 아가씨 행동을 칭찬하실 거라 생각합니다.”수 나인의 목소리였다.그녀는 이 말을 하며 네 사람 앞으로 오더니, 진산군에게 허리를 굽혀 예를 올렸다.수 나인은 나이가 지긋한 사람으로, 큰 마님이 진산군댁으로 시집올 때 따라와서 진산군이 자라는 것을 쭈욱 지켜봤다. 비록 명목 상은 하인에 불과하나 진산군에게 있어 수 나인은 어른 중 하나였다. 따라서 그도 바로 손을 모아 읍하며 답례했다.이윽고 수 나인이 말을 이었다.“최근 집안에 벌어진 일은 둘째 아가씨 덕분에 쇤네도 큰 마님과 함께 들어 알고 있습니다.”이 말을 듣고 진산군은 뒤를 돌아 임원를 째려봤다.임원이 여전히 불쌍하고 가련한 모습을 하고 있지만, 진산군 마음 속에는 울컥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 그 자리에 모두가 오늘 큰 마님이 쓰러진 이유를 알기 때문이었다.진산군이 입을 열가도 전에 수 나인이 말을 계속했
수 나인은 차가운 시선으로 주변을 둘러보다가, 임씨 부인이 어디론가 달려가는 게 보였다.‘구원병이라도 청하러 가는 건가?’그렇게 생각하는 찰나 임씨 부인이 금방 다시 달려왔으나, 손에 매우 큰 돌멩이를 들고 있었다.수 나인이 너무 놀란 나머지 채 뭐라 입을 열기도 전에 진산군이 소리쳤다.“부인, 안 돼!”하지만 한 발 늦었다.커다란 돌멩이가 세차게 김단의 머리를 내리쳤다.김단은 순간 머리가 멍해지는 것을 느끼고 귀에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더니 예리하게 윙윙거리는 소리만 들렸다. 그리고 핏방울이 눈가를 타고 한방울 뚝 떨어지더니 이어서 두방울 세방울….그녀는 그제서야 상황을 파악하고 서서히 고개를 들어 임씨 부인을 쳐다봤다.선혈로 물든 김단의 두 눈을 본 임씨 부인도 뭔가 깨달았는지 얼른 손에 든 돌멩이를 던져버렸다.“아니, 그게 아니라, 단아. 어미 말 좀 들어봐.” 임씨 부인의 목소리가 심하게 떨리고 있었다.“이 어미는 그저 네가 그만 뒀으면 해서, 다치게 하고 싶지 않았어…”“털썩!”김단은 눈 앞이 깜깜해지더니 바닥에 쿵하고 쓰러졌다.진산군이 제일 먼저 나섰다.“전부 뭘 멍하니 있는 게야! 의원을 불러 오너라! 어서. 아가씨를 방으로 데리고 들어가고!”마당에 시녀들도 수 나인의 지휘 하에 허둥거리긴 했지만 김단을 방 안으로 옮기는데 성공했다.수 나인도 바짝 붙어 들어갔으나, 방으로 들어가기 전에 임씨 부인을 뚫어지게 쳐다봤다.이때 임씨 부인은 놀란 나머지 사지에 힘이 들어가지 않아 진산군의 품에 안겨 있었다.임원도 이미 사람들의 부축을 받고 일어났는데 얼굴 반쪽은 팅팅 부어올랐고 입술에는 피가 베어나왔다.그녀는 임씨 부인 곁으로 가서 아무 말도 하지 않고 흐느낄 뿐이었으나, 임씨 부인은 한 팔로 그녀를 품에 안고 꺼이꺼이 대성통곡했다. 세 식구가 한데 끌어안고 있는 모습이 이 사건으로 제일 깊게 상처를 입은 건 바로 자기들 셋인 양 보였다.하지만 화가 치밀어 거의 죽을 뻔한 사람은 큰 마님이고, 머리가 깨져서 피를
김단은 전에 자신을 괴롭히던 무수리들에게 달려들 때처럼 맹렬하게 임원을 덮쳤다. 임씨 부인은 눈 앞에 뭐가 휙 지나갔나 싶었는데, 벌써 임원이 김단 아래 깔려 있었다.“악!”임원이 큰 소리로 비명을 지르자, 곧바로 김단이 그녀의 입을 틀어막았다.할머니께서 안에서 쉬고 계시기 때문이었다. 할머니께서 쉬시는데 방해가 되고 싶지 않았다.하지만 김단의 가슴 속에 활활 타오르는 분노의 불길은 밖으로 표출하지 않을 수 없었다!김단은 한 손으로 임원의 입을 틀어막고, 그녀를 꽉 눌러 발버둥치지 못하게 했다.그리고 다른 손으로는 조금도 사정을 봐주지 않고 따귀를 때렸다.김단이 임원을 패주고 싶은지는 오래 됐지만 그동안 억지로 인내해왔다.임원이 비록 악랄하고 못됐어도 그건 전부 성격이 그런 거라 생각했다.임원에게는 임씨 집안의 피가 흐르고 있기 때문에, 다들 임원을 싸고돌고 임원도 매사에 임씨 집안 사람이 먼저였을 거라고 말이다.그들이 저지른 짓 하나하나가 김단을 아주 깊이 상처입혔어도, 김단은 매번 임원에게 손찌검을 하고 싶은 자신의 감정을 억눌러야 했다. 하지만 오늘은, 더이상 참는 건 불가능한 것이, 임원이 그녀의 참을성의 한계를 건드렸기 때문이다!“찰싹!”따귀를 때리는 소리가 우렁차게 울려퍼지며 임원의 눈에서 눈물이 후두둑 떨어졌다.놀라 멈춰서 있던 임씨 부인이 달려나와 김단을 뜯어말렸다.“단아! 이게 무슨 짓이니! 어서 동생을 풀어줘!”하지만 임씨 부인이 김단을 말리는 정도는 사실 아무 소용없었다.예전에 세답방에 있을 때 그녀가 다른 사람을 올라타서 때릴 때, 적어도 열댓명의 나인들이 달려들어 그녀를 말렸다.누구는 그녀의 목을 잡아 조르고, 누구는 그녀의 머리끄댕이를 낚아채고, 전부 그녀가 상대의 몸에서 내려오게 하려고 했다. 하지만 김단은 철천지원수에게 대항하는 능력을 키워, 누구든 마음만 먹으면 절대로 쉽게 놔 주는 법이 없었다!임씨 부인이 몇 번 잡아당겨봤지만 김단을 끌어내지 못할 뿐 아니라 오히려 그동안 김단은 임원의 얼굴에
“맞아 맞아, 다들 좀 비켜봐!”하녀들이 수선을 떠느라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하지만 그 순간 김단은 오히려 따스함을 느꼈다. 그녀는 줄곧 이 집은 너무 차갑다고 생각했다. 빙고처럼 차가워서, 오직 할머니만 그녀의 몸을 따스하게 덥혀주며 온기를 느끼게 해주는 분이셨다. 그런데 그런 할머니께서 지금 편찮으시므로, 그녀의 억울한 사정이나 고통을 할머니께 얘기해 충격받으시게 할 수 없었다. 그래서 그녀는 오늘밤 자기 혼자 이 감정을 삭여야 할 거라고 생각했는데, 별당에 발을 들이자마자 마음이 벌써 차갑지 않아졌다.게다가 그녀가 다친 곳은 손인데, 숙희는 굳이 그녀를 방까지 부축하겠다고 우기기까지 했다.자리에 막 앉자 하녀 하나가 뜨거운 차를 가져왔다.“아가씨, 오늘 분명 많이 놀라셨을 거예요. 이건 쇤네가 끓인 안정차로, 마시고 편히 한숨 주무시고 나면 내일 아침엔 모든 일이 다 끝나 있을 겁니다!”“쇤네 아가씨께서 세수 하시게 뜨거운 물 떠올 게요.”“아가씨, 이불 따듯하게 데워놨으니 차 드시고 머리 빗으신 뒤 푹 쉬세요.”이런 일은 전부 숙희가 하던 것인데, 숙희도 다치자 어린 하녀들이 숙희의 일을 자진해서 맡아준 것이다.아마도 어린 하녀들이 너무 열정적이기 때문일 거야. 김단은 눈시울이 뜨거워지는 것을 느꼈다.그녀는 숙희에게 가서 좀 쉬라고 하고 차를 마신 뒤, 하녀들이 머리를 빗겨주는 가운데 자리에 누웠다.좋은 냄새가 나는 부드러운 이부자리에 눕자, 복잡한 머리 속까지 이불 속에 쏙 넣고 싶었다. 임씨 집안의 모든 사람을 머리 속에서 끄집어 내고, 자신은 진산군의 금지옥엽같은 건 하고 싶지 않았다.‘난 임씨 집안 사람과 아무 관계도 없어!’안정차 효과가 상당히 괜찮았다.김단은 얼마 지나지 않아 잠이 들었지만 밤새 꿈에 시달렸다.꿈 속에서 그녀는 두 명의 건장한 괴한에게 쫓기고 있었다. 막 달아나려는 순간 갑자기 임학이 나타나 그녀를 심연으로 밀어넣었다.김단은 놀라서 꿈에서 깨 아직 정신을 차리지 못한 사이, 방 밖에 숙희가 놀라서
이 말을 마친 뒤 김단은 임학의 얼굴에 당황스러운 기색이 가득한 것을 똑똑히 봤다.아주 웃겨!김단을 망가뜨리려고 할 때는 그렇게 말발을 세우고 당당했으면서, 이제 자기가 끌려들어가니까 당황하는 꼴 좀 봐!임학뿐 아니라 임씨 집안 사람 거의 다 당황했다.오히려 계속 질질 짜던 임원이 일어서서 김단에게 말했다.“언니 오늘 큰 일을 당했으니 일찍 돌아가서 쉬어! 시간도 꽤 됐으니, 무슨 일이 있으면 내일 다시 얘기하는 게 어때?”임원의 말을 듣고 임씨 부인도 얼른 맞장구를 쳤다.“그래 그래, 단아, 봐 날이 벌써 이렇게 저물었구나. 소 장군까지 이 일에 말려들어 아직 돌아가지도 못하셨지 뭐니. 우리 내일 일찍 다시 논의하는 게 어떨까?”김단은 그제서야 대청에 아직도 소한이 서 있다는 사실을 깨달은 듯 했다.그녀는 고개를 돌려 그를 건너다봤다.대청의 촛불이 소한의 냉담한 얼굴 위에 일렁이자, 깎은 듯 날카로운 이목구비는 전보다 더 냉정하게 보였다.소한도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의 어두운 눈동자에 김단이 이해할 수 없는 감정이 용솟음치고 있었다.김단은 왠지 가슴이 시큰거려 숨을 크게 들이마셨다.그녀도 오늘 엄청난 일을 당해, 기력이 하나도 없는 게 사실이었다.만약 임씨 집안 사람들과 말다툼을 계속해 나간다면 먼저 쓰러지는 쪽은 그녀 자신일 게 틀림없었다.하룻밤 쉬어도 그녀는 절대 임학을 가만 두지 않겠어!이런 생각을 하며 그녀는 소한에게 걸어가는 것을 본 임원이 바짝 긴장하기 시작했다.김단이 모든 걸 팽개치고 소한 품에 안기기라도 할까봐, 김단과 소한의 거리가 점점 좁혀지자 임원은 도저히 참지 못하고 소리를 질렀다. “언니!”임원의 목소리에 두려움과 당황스러움이 묻어나는 걸 모두가 느꼈으나, 김단은 걸음을 멈추지 않은 채 곧장 소한 앞으로 걸어갔다.거리가 꽤 가까워졌다.임원에게 좀 삐졌던 김단은 임원의 두려움에 찬 외침에 속이 시원했지만 결국 도를 넘는 행동은 하지 않고 소한에게 감사의 예를 표했다.“오늘 정암 종사관께서 구해
“왜냐면 절 해치는 편이 쉽기 때문이죠, 절 속이는 쪽이 쉬우니까요.”“미래의 제 행복을 위해 천 냥이란 거금을 써 가며, 장정 둘을 고용해 제 정절을 더럽히고자 했다는 건데, 본인이 생각해도 웃기지 않으세요?”“임학, 토 나올 것 같은 표정 집어치워요. 당신은 애초에 저따위한테 관심조차 없었으니까. 그저 제가 당신보다 높은 자리에 서는 게 싫었던 거잖아요! 조금도 저를 위한 게 아니라, 제가 잘 되는 꼴이 못마땅했던 거죠!”가볍게 몇 마디 던지는 것에 불과했지만, 임학의 마음 속 가장 추악학 구석을 들춰냈다.임학은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네가 잘 되는 걸 내가 못마땅해할 이유가 어딨어? 명정 대군께 시집가는 게 좋은 일인 것 같아? 그리고 네가 정절 좀 잃는 게 뭐? 우리 집안이 너 하나 시집보내는 거 못 받쳐줄까봐 겁나?”말이 떨어지자 대청 안은 한동안 침묵에 잠겨, 임원이 훌쩍이는 소리 외에 모두 숨소리도 내지 않는 듯했다.김단의 주변을 쭉 둘러보고 임씨 부인에게 눈길을 주고, 다시 진산군을 쳐다보고 마지막으로 암학을 향해 낮은 소리로 비웃었다.“이제야 알겠습니다. 진산군 마님과 정부인께서는 아슬아슬 위태롭던 지위에서 진산군 가문을 지키기 위해, 제 치마폭을 선택하셨던 것이로군요.”살랑살랑 나부끼는 한마디 말이, 모든 임씨 가문 사람의 얼굴을 후려쳤다.김단의 비아냥거리는 눈빛이 한층 심해졌다.“당신처럼 머리에 든 게 없는 아들을 뒀으니, 진산군 가문이 자산몰수와 멸문을 당하는 것도 시간문제겠군요.”“김단 너 지금 뭐라는 거야!” 김단이 진산군 집안을 저주하고 있다고 생각해 임학은 분노했다.그런데 오히려 진산군이 자신을 꾸짖을 줄 생각도 못했다.“이 짐승만도 못한 놈, 닥치지 못할까! 그런 짓을 저지르고도 아직도 네 동생에게 가타부타할 낯짝이 있어? 네 동생이 죄를 묻지 않기로 했으니 망정이지, 넌 벌써 감옥에 끌려가고도 남았어!”‘응?’거참 이상하기 짝이 없는 소리였다.임학은 진산군의 꾸중에 입을 다물고 가슴을 움켜쥔 채
임학은 여전히 아무 말이 없었다.오히려 임씨 부인이 몸을 떨며 한걸음 한걸음 임학 곁으로 걸어가, 임학의 소매를 잡아 당겼다.“학이야, 어서 동생에게 이 모든 게 오해라고 얘기하렴.”임학은 차가운 얼굴로 침묵했다.그러나 그가 침묵하면 할수록 애가 타는 임씨 부인이 더욱 세게 임학의 옷자락을 잡아 당기다 못해 거의 밀다시피했다.“얘기 해! 어서 얘기하라니까!”목소리가 흐느끼고 있었다.임씨 부인이 이렇게 흥분한 것을 보고 임원이 얼른 다가와 임씨 부인을 끌어 안았다.“어머니, 이러시지 마세요. 앉으셔서 오라버니가 천천히 얘기하게 두세요. 전 오라버니께 반드시 무슨 이유가 있는 게 확실하다고 믿어요!”이 말을 듣고 있던 김단은 도무지 믿어지지 않는다는 눈빛으로 임원을 바라봤다.임학은 김단의 정절을 더럽히고자 했던 진범이었다. 그런 임학이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다니, 이게 도대체 말이야 방귀야? 두 사람은 어떻게 돼먹은 인간들이지?임원은 여자의 몸으로 어떻게 그따위 말을 주워섬길 수가 있단 말인가?하지만 임학은 임원의 말에 정신을 차린 듯했다.심지어 감동의 눈빛으로 임원을 지긋이 바라보더니, 김단을 노려봤다.“그래, 이 일은 확실히 내가 한 거야.”그는 떳떳하고 당당한 태도로 말했다. “편지는 내가 뜯었고, 복래 차관이라고 내가 바꿨어. 그 두 명의 강호인도 내가 고용했지! 하지만 김단, 가슴에 손을 얹고 대답해봐, 두 사람이 널 해쳤어?”그는 두 사람에게 절대로 김단을 해쳐서는 안된다고 신신당부했기 때문에 김단이 입은 상처는 스스로 밧줄을 빠져나오다 생겼다는 걸 이미 알고 있었다!얌전히 날이 밝기만 기다리고 있었으면 아무 상처없이 돌아왔을 텐데, 괜히 일을 이렇게 크게 만들게 뭐야!임학은 사건은 전부 김단 본인이 자초한 것처럼 말했다.전에 자신이 그토록 아끼고 사랑하던 얼굴이 저런 표정을 짓는 것을 보자, 김단은 아주 세게 따귀를 갈겨 버리고 싶은 마음을 억누를 수 없었다.정말 귓방망이를 날려도 시원치 않은데, 임학의 말에 기가
어쨌든 여자에게 정절은 무엇보다 가장 중요하니까.하지만 그 자리에 있는 사람은 모두 그게 사실이 아니란 것을 알고 있었다.소한은 진산군의 인사에 화답하고 김단을 향해 말했다.“명정 대군은 연래 차관이라고 하셨는데, 어째서 복래 차관으로 바뀐 겁니까?”김단은 한 켠에 오도카니 앉아 있었는데, 손에 상처는 처치를 마쳤지만 조금만 움직여도 여전히 아팠다. 의원 말로는 상처가 심각하다고는 할 수 없지만, 기볍게 여겨 함부로 행동하지 말고 적어도 한 달 간은 손에 힘을 주지 말라고 했다.이때 소한의 질문을 받고 김단은 일어나 소한에게 말했다.“제가 서신을 받았을 때 서신에 분명 복래 차관이라고 쓰여있었습니다. 그 서신은 아직 분명히 제 화장대에 들어 있습니다.”여기까지 말하고 김단은 고개를 돌려 임학을 바라봤다.임학은 별로 멀지 않은 후미진 구석에 서 있었는데, 사람들 눈에 띌까봐 몸을 사리고 있는 듯했다.하지만 임학이 들어올 때 벌써 김단은 그를 눈여겨 봐뒀다.그녀가 사뿐사뿐 임학에게 걸어갔다.“도련님께서는 오늘 아주 얌전하시네요. 어떻게 된 거죠? 무슨 일 있으셨어요?”임씨 부인은 김단이 왜 갑자기 임학에게 관심을 보이는지 어리둥절해 하며 그녀의 앞을 막아서려 했다.“네가 아주 큰 봉변을 당했는데 가만 앉아서 쉴 일이지, 오라비 일에는 신경쓰지 않아도 돼.”하지만 김단은 임씨 부인을 밀쳐냈다.손에 힘을 전혀 주지 않고 임씨 부인의 손은 뿌리친 뒤 가려던 것 뿐인데, 임씨 부인 뒤에 하필 태사의가 놓여 있어 김단에게 밀쳐진 순간 태사의에 철퍼덕 주저앉는 꼴이 되었다.이를 보고 임원이 바로 달려나왔다.“언니 이게 뭐하는 짓이야? 어머니는 언니를 걱정해서 그런 거잖아! 어떻게 이럴수가….”“닥쳐!”김단이 날카롭게 소리치며 임원을 노려봤다.“이 일에 네가 관련이 됐는지는 아직 모르겠지만, 네가 한마디만 더 지껄였다간 맞을 줄 알아.”임원은 무공을 할 줄 모르기 때문에 그녀가 임원을 때리기로 마음 먹으면 식은 죽 먹기였다.그러나 김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