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오히려 다른 일로 대답할 수 있다.“소 장군 농담도 잘하시네요. 저는 ‘김’ 씨 인데 아무리 해도 ‘임’ 씨 성을 가진 사람이 가르칠 차례가 아니지오.”“김단!”임학은 진노했다.“너무 제멋대로 굴지 마라!”“제멋대로는 당신들이겠죠!”김단은 오늘 정말 참을 수 없었다.“더는 오로지 조모를 위해 평안부적을 구하러 왔을 뿐인데, 도대체 당신들에게 무슨 방해가 됐다고 그러는 거죠? 당신들이 뭔데 이 사람 저 사람이 내 앞에 와서 이래라저래라 하는 겁니까? 특히 당신, 임학 도련님! 제가 모욕당할 때는 침묵하더니, 이제 와서는 마치 오라버니라도 된 듯 저를 훈계하려 드는 건가요? 당신이 뭐라고!”“내가 네 오라버니이니 당연히 너를 혼낼 자격이 있어!”임학은 노발대발했다.오늘 비록 소정원이 옳지 않더라도 두 집안의 친분이 꽤 깊어서 모든 것은 집으로 돌아간 후에 다시 이야기할 수 있다. 그 역시 직접 소씨네 부모님을 찾아가 소정원을 잘 관리하라고 고자질할 수도 있다.어쨌든 김단은 손을 대지 말아야 했다!그런데 이 말이 나오자, 김단은 바로 웃음이 터졌다.“뭐라고요? 오라버니? 웃기는 소리 하지 마세요!”“김단!”임학은 큰 소리로 화를 내며 또 무슨 험한 말을 하려고 했다.그러나 김단이 갑자기 차갑게 입을 열었다. 목소리는 크지 않았지만, 불당 안에 있는 모든 사람으로 하여금 똑똑히 들리게 했다.“내 오라버니는 이미 3년 전에 죽었소.”그녀의 마음속에서 그들은 벌써 모두 죽었다.김단의 차가운 눈동자를 보자 임학은 숨을 쉴 수가 없었다.분명히 그녀는 그를 저주하고 있었고, 분명히 그는 화가 나서 반박해야 했는데, 지금, 이 순간 그는 한마디도 하지 못했다.심지어 옆에 있던 소한조차도 자기도 모르게 주먹을 꽉 쥐었다.말할 수 없는 감정이 마음속에서 솟아올라 순식간에 그의 온몸을 침범하여 그의 온몸의 피를 끓게 하였다. 하지만 오히려 그 온몸을 빙산처럼 얼게 하여 제자리에 서서 꼼짝도 할 수 없게 하였다.지금에 와서 송백선과 소정
임학도 당연히 멍해졌다.그래, 김단은 조모의 평안을 구하러 왔는데, 그가 어떻게 이런 말을 할 수 있지?왜 이러지?왜 매번 김단을 만날 때마다 멍청한 짓을 하는 건지?임학은 가슴이 두근거리며 조모가 자신의 이 말 때문에 무슨 일이 생기면 김단은 커녕 자기 자신도 평생 자신을 용서하지 못 할 것으로 생각했다!그런데, 다시 생각해 보면 이 일은 김단을 탓해야 하는 것이 아니야?왜 그는 임원을 대할 때 모두 조리가 뚜렷한데, 하필 김단을 만나면 화가 치밀어 오르는 건가?이 모든 것이 모두 김단이 일으킨 것이 아닌가?3년 전에 그가 죽었다고? 자기가 그녀를 가르칠 자격이 없다고?그는 오히려 그녀에게 그가 도대체 자격이 있는지 없는지를 보여줘야겠다고 결심했다.김단이 집으로 돌아온 이래 쌓인 분노가 이 순간에 철저하게 폭발하자 임학은 갑자기 앞으로 다가가 손을 뻗어 김단을 향해 잡았다.김단은 깜짝 놀랐다. 임학이 여기서 그녀에게 손을 댈 줄은 몰랐지만 신속하게 반응하여 몸을 옆으로 피했다.그러나 임학은 그래도 김단보다 몇 살 더 먹었고, 또 어릴 때부터 무예를 익혔으며, 그의 능력은 김단보다 훨씬 뛰어났고, 몇 수 안에 김단을 항복시켰다.김단의 두 손은 모두 임학에 의해 갇혀 조금도 움직일 수 없었다.이 상황을 보자, 숙희가 바로 달려왔다.“도련님! 이곳은 절입니다, 대군자가도 아직 계십니다! 허튼짓하지 마시고 아씨를 놓아주세요!”“비켜!”임학은 다짜고짜 숙희를 발로 걷어찼다.숙희가 걷어차서 날아가 그 자리에서 피를 토해냈다.김단의 두 눈동자에 순식간에 피가 충혈되었다.“임학, 이 나쁜 놈아!”“내가 나쁜 놈이라고? 내가 어렸을 때부터 얼마나 너를 감싸고 싸웠는데, 네가 뭘 먹고 싶으면 밤을 새워서라도 구해다 주고. 직접 내 손으로 너의 성인식(성인식:옛날 15세가 되면 머리에 비녀 같은 장식품을 꽂아 성인이 되었다고 알리는 식) 비녀를 만들어 주고, 멀고먼 곳에서 이 세상에서 가장 눈부신 야명주를 찾아왔어! 내가 너를 위해 그렇게
“맞아요, 당신은 원래 진산군댁의 친자식도 아닌데, 여러 해 동안 부귀영화를 잘 누렸으면 만족해야 하지 않겠소?”“정말 너무하네요, 자기 오라버니를 죽었다고 저주하다니, 정말 보살님도 화를 낼 것 같네요!”그 몇 사람의 말을 듣고 주위에 김단을 알아보지 못하는 사람들도 모두 맞장구를 치기 시작했는데, 갑자기 김단은 뜻밖으로 모든 사람의 지적을 받았다.그러나 그 3년 동안 얻어맞는 것이 습관이 되었는지 김단은 이렇게 심한 학대를 받고도 일어날 수 있었다.그녀는 몸을 버티고 앉아, 많은 사람들의 비난에도 그저 가볍게 한쪽에 침을 뱉을 뿐이었다.만약 그 침이 붉은색이 아니었다면, 그녀의 안색에서 정말 맞은 흔적이 보이지 않았다.그녀는 고개를 들어 사방을 둘러싼 사람들을 바라보았다.송백선, 소정원, 임원, 소한....그들 중 어떤 사람은 고소해하고, 어떤 사람은 마음에도 없는 행동을 하고, 또 어떤 사람은 시종일관 냉담한 표정을 지었다.마지막에 김단의 시선은 임학의 얼굴에 떨어졌다.예전에, 이 얼굴은 일부러 못생긴 척 분장하여 그녀의 환심을 사기도 했는데, 오늘날 그녀를 마주하고 있는 것은 끝없는 노여움과 미움뿐이다.김단은 이 얼굴을 보고 마침내 웃음을 참을 수 없었다.“허허, 하하하하...”그녀의 웃음소리가 점점 커지자, 주위 사람들은 모두 그녀가 맞아서 바보가 된 줄 알았다.김단의 웃음은 임학을 당황하게 했다.김단은 웃으면서 땅바닥에서 기어오르는데 그 모습은 유난히 낭패스러웠다.그리고 그녀는 마침내 웃음소리를 멈추었지만, 여전히 웃으며 임학을 바라보았다.“보아하니 도련님께서 정말 기억력이 나쁜 것 같네요. 당신이 직접 저를 위해 만든 비녀? 그럼, 그 비녀가 지금 누구의 머리 위에 꽂아져 있는지 보실래요?”말을 듣자, 임학은 멍하니 있다가 무의식적으로 임원을 바라보았다.그는 그제야 김단의 성인식 날이 바로 임원이 집으로 돌아왔던 날이었기 때문에 아직 김단에게 선물하지 못한 그 비녀가 그렇게 임원의 머리에 꽂혔다는 것이 생각났다.
명정대군을 보자 사람들은 무릎을 꿇고 절을 했다.소한은 주상의 뜻을 받고 주상을 만난도 무릎을 꿇을 필요가 없는 사람으로서 지금은 그저 공수해 읍을 올렸다.김단은 무릎을 꿇기도 전에 이미 명정대군이 부축했다.그의 큰 손은 뜨거운 온도를 지니고 있었고 그녀를 부축할 때 그녀 몸의 떨림을 뚜렷하게 느낄 수 있다.그마저도 많은 사람들 앞에서 임학의 학대를 평온하게 받아들인 그녀가 이미 이렇게 심하게 떨고 있는지 생각 못 했다.김단도 분명히 이미 방장과 떠났던 명정대군이 왜 갑자기 나타났는지 모르지만, 지금은 명정대군이 옆에 나타난 것에 대해 그녀는 여전히 감사하고 있다.임학이 온 힘을 다해 그녀를 때리자, 그녀는 결국 몸을 가누지 못하고 휘청거렸다. 만약 명정대군이 제때에 나타나지 않았다면 아마 그녀는 이미 여러 사람들의 앞에서 다시 땅으로 쓰러졌을 것이다.“고맙습니다.”그녀는 낮은 소리로 고맙다고 말했지만, 다른 사람이 듣기에는 목소리가 워낙 가늘었다. 그러나 명정대군은 똑똑히 들었다.이 가늘고 나지막한 한마디는 바늘처럼 그의 마음속에 깊이 파고들었다.따라서 그의 노여움도 점점 격해졌다.바로 임학을 향해 노려보았다.“진산군댁 도련님이 참 허세가 작작 하네. 어찌 감히 성지인 절에서 이렇게 심하게 내 사람을 학대하다니, 진산군댁은 정말 이 대군을 안중에 두지 않고 나아가서는 아바마마를 안중에 두지 않은 것이 아니오!”이렇게 큰 죄명을 내리자, 임학은 그 당장에서 멍청해져 마구 절을 했다.“소신이 어찌 감히 그러겠습니까?”“감히? 이렇게 중요한 절에서도, 자네가 사람을 이렇게 다치게 했는데, 진산군댁의 도련님이 감히 하지 못할 일이 뭐가 있겠느냐?”명정대군은 즉시 명령을 내렸다.“여봐라! 이놈을 죽도록 때려라! 이놈이 일어날 수 없을 때까지 때려라!”“네.”명을 받은 시종들은 바로 나아가 임학을 땅에 눌렀다.그리고 주위에 있는 빗자루를 들고 임학의 등을 향해 호되게 때렸다.갑자기 울려 퍼지는 소리에 많은 사람들이 당황했다.그러나
명정대군의 매서운 눈동자에 대해 소한도 똑같은 눈빛으로 맞섰다.“소신은 대국을 중시했을 뿐입니다.”명정대군이 진산군댁과 혼인을 맺으려고 한 이상 일을 너무 과분하게 해서는 안 된다.그러나 이 말을 듣자, 명정대군은 오히려 비웃었다.“소 장군은 정말 크게 보시는군. 이런 큰 생각이 있는 사람이 조금 전에 어떻게 한마디도 하지 않고 벙어리가 되었는가?”방금 김단이 맞았을 때, 그의 이 입은 꿰매져 있었나?명정대군이 이렇게 묻는 것을 듣고 김단의 마음은 참지 못하고 아프기 시작했다.그러나 그녀는 분명히 이미 소한에 대해 단념했다. 분명히 이미 소한이 자신을 좋아하지 않는다는 것을 똑똑히 느꼈다.하지만, 이 마음, 왜 아직도 이렇게 아픈건지?그녀는 자신의 입술을 가볍게 깨물며 자신이 쓸모없다는 것을 미워했다. 눈동자 속에 뭔가 따뜻한 것이 있었는데, 오히려 그녀에게 재빨리 눌려 참았다.소한은 무의식적으로 김단의 안색을 관찰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의 각도에서 볼 때 그녀의 몸 절반은 모두 명정대군의 뒤에 숨어있었다. 자태가 친절하여 그의 마음을 더욱 먹먹하게 했다.그래서 말투도 따라서 약간의 포악한 기운을 띠고 있다.“오늘의 일은 도대체 누가 옳고 그른지, 많은 사람들이 당연히 알 수 있사옵니다. 임 도련님은 자신의 여동생을 훈계했을 뿐이고 설령 힘을 좀 무겁게 썼다 하더라도, 기어코 진산군댁의 집안일이지오. 이 일은 소신이 관여할 수도 없고 대군자가마저도 아마 관여할 수 없을 것입니다.”소한이 집안일을 핑계로 대니 명정대군을 좀 난처하게 했다.설령 그가 대군자가라 할지라도 남의 집안일에 끼어들 도리는 절대 없다.더군다나 그가 김단과 결혼한 또 다른 중요한 이유는 바로 진산군댁와 관계에 맺는 것인데, 오늘 만약 너무 지나치게 한다면, 아마도...명정대군이 침묵하는 것을 보고 소한은 시종 몇 명을 향해 눈길을 던졌다.그는 원래 무관이었고, 전쟁터에서 단호하고 살벌한 인물이었기에, 눈빛 하나만으로 그 몇 명의 시종들은 놀래서 분분히 손에 든
명정대군은 직접 김단을 궐로 데리고 들어갔다.김단이 깨어났을 때 이미 덕빈의 궁에 있었다.온 집안의 화려한 장식을 보고, 김단은 그제야 자신이 명정대군에게 마차까지 안아서 가기도 전에 기절했다는 것을 떠올리고, 마음이 다급해져, 무의식중에 몸부림치며 일어났다.공교롭게도 덕빈이 문을 밀고 들어오고 있었는데, 그녀가 깨어난 것을 보고 황급히 다가갔다.“빨리 엎드려 있거라. 상처가 아직 덜 나아서 함부로 움직이지 않는 것이 좋다.”하지만 김단은 이미 앉았기 때문에 당연히 다시 엎드려 있을 도리가 없다. 그래서 침대에서 내려 덕빈에게 절을 하려고 하는데, 덕빈이 또 말렸다.“이 애가 참, 이렇게 심하게 다쳤는데도 이런 번거롭고 불필요한 예절을 신경 써서 뭘 하느냐?”덕빈은 말하면서 약을 든 나인에게 손을 흔들었다.나인이 약을 들고 오자 덕빈은 받아서 직접 한 숟가락을 떠서 불어 김단의 입가로 향했다.“이것은 내의원에서 처방한 약이다. 외상에 효과가 좋다고 하니, 자, 식기 전에 어서 마셔.”김단은 깜짝 놀랐다.“소인이 직접 먹을게요.”말하고는 바로 손을 뻗어 약을 가지려 했는데 덕빈이 피했다.“넌 아직도 환자야, 어떻게 혼자 한다고 그래? 말 들어, 입 벌려.”덕빈의 목소리는 부드럽고 말투는 온천처럼 김단의 마음을 다 녹이려는 것 같았다.김단은 더 이상 거절하지 않고 말을 듣고 입을 열었다.씁쓸한 약이 입에 들어가자, 그녀는 삼켰지만, 머릿속에는 어릴 때 아팠을 때 임씨 부인이 자기에게 약을 먹이는 장면이 떠올랐다.지금처럼 한 입 한 입, 살살 불어서 그녀의 입으로 보냈다, 혹시나 그녀가 데일까 봐....다만 그 기억들은 너무 오래되어 코끝이 찡할 정도로 멀었고, 김단의 눈동자는 약간 붉어졌다.그러자 덕빈은 눈치를 채고 바삐 물었다.“왜 이러는 거야? 상처가 아픈 건가, 아니면 약이 너무 쓴 건가?”그녀의 상처를 생각하니, 덕빈은 여전히 가슴이 아팠다.임씨네 그 녀석도 참 어찌 그렇게 독한가!김단은 머리를 흔들면서 말하지 않았
덕빈도 따라서 일어섰다.“자네 상처는 아직 낫지 않았으니 절대로...”사실 방금 김단은 한순간 덕빈에게 감동한 적이 있지만, 지금 그 감동은 이미 거의 사라졌다.그녀는 덕빈을 향해 웃었다.“덕빈마마 안심하십시오!”말을 마치자, 밖으로 나갔다.그녀의 상처를 안심하라는 건지, 아니면 명정대군을 안심하라는 것은 덕빈 스스로 천천히 생각하게 해야 할 나름이다.김단이 세답방에 있던 그 3년은 대부분 시간은 세답방안에서 옷을 빨았지만, 상궁을 따라 각 궁에 가서 물건을 보낼 때도 적지 않았다.그래서 그녀는 궐 안의 길에 대해 잘 알고 있다.얼마 지나지 않아 그녀는 어서재 밖으로 찾아갔다.보고를 한 후, 그녀는 내시 한 분을 따라 어서재로 들어갔는데, 어서재 안에 진산군댁의 부부 외에 소한도 있는 것을 보았다.다 고하러 온 사람인가?김단은 마음속으로 은근히 비꼬았지만, 얼굴에는 드러나지 않고 앞으로 나가 무릎을 꿇고 절을 했다.“소인 김단, 주상전하께 인사드리옵니다.”책상 앞에, 그 밝은 노란색 그림자가 김단을 훑어보았다.“네가 바로 김단인가?”나지막한 목소리는 스스로 위엄의 기운을 띠고 있다. 비록 소리가 크지 않더라도 이 대전 안에 울려 퍼지는 목소리는 여전히 사람을 당황하게 한다.김단은 공손하게 대답했다.“네, 소인이 맞습니다.”‘헉’차가운 웃음소리와 함께 짙은 풍자가 흘러나왔다.“참 재주가 많은 사람이로구나. 3년 전에 진산군댁과 과인 모두 시끄럽게 하더니 이제는 또 과인의 아들을 해치러 왔는가?”김단은 가슴이 철렁했다. 이 말만으로도 주상이 자기를 좋아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아차릴 수 있다.그래서 오늘, 그녀가 주상 앞에서 무슨 말을 하든, 주상은 믿지 않을 것이다. 하물며 임씨 부부와 소한도 아직 현장에 있다. 혼자서 세명을 맞다들이려는 생각을 하니 아무리 해도 손해를 볼 것 같다.그래서 김단은 머리를 땅에 세게 부딪쳤다.“맞습니다, 모든 것은 소인의 잘못이고 명정대군과는 무관합니다. 또한 주상전하께서 소인에게 벌를 내
진산군은 주상의 이 말이 도대체 무슨 뜻인지 어떻게 모를 수 있겠는가?바로 앞으로 나가 무릎을 꿇고 절을 한다.“주상전하, 우식은 천성이 충동적이고 무모하여, 절같은 중한 자리에서 대중 앞에서 행패를 부려 명정대군에게 얻어맞은 것은 그 자업자득이니, 주상전하의 식견을 믿사옵니다.”말하자면 명정대군을 탓하지 않겠다는 뜻이다.사실 진산군은 처음부터 명정대군을 탓할 생각을 하지 않았다.진산군댁의 내막은 그는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다.다만 주상이 이 일을 듣고 특별히 그를 부인과 함께 궐로 불러들여 그들의 앞에서 명정대군을 책망하겠다고 선포하고 줄곧 그들에게 말할 기회를 주지 않았다.지금 진산군의 이 말을 듣고 주상은 오히려 만족했다.다만 코끝에서 가볍게 콧방귀를 뀌었을 뿐, 다소 경멸의 뜻을 들어냈다.그는 고개를 돌려 소한을 향해 물었다.“소 장군이 그 자리에 있었는데, 자네는 어떻게 생각하는가?”소한이 읍하고 인사 하자 무서운 눈동자가 김단을 깊이 쳐다보고 나서야 입을 열었다.“주상전하. 비록 이 일은 김단의 언행이 무례하여 일어난 것이지만, 임학의 충동은 사실이고, 명정대군의 처벌이 너무 지나친 것도 사실입니다. 다만 지금 명정대군은 이미 벌을 받았고, 임학도 중상을 입고 침대에 있으니 이 일은 여기서 끝내는 것도 좋을듯 싶사옵니다.”소한의 말을 듣고 주상은 고개를 끄덕였다.“과인도 이런 뜻이야, 진산군은 어떻게 생각하는가?”"주상전하 영명하시옵니다!”진산군은 망극하다고 외치고 나서야 주상이 그제야 손을 흔들었다.“명정대군 들라하라!”"네!"서재 밖에서 누군가 대답하다.그러나 지금 명정대군이 어찌 혼자 걸어 들어갈 수 있겠는가, 몇 사람에게 실려 들어왔다.그들은 명정대군을 김단의 곁에 두었다. 김단은 등에 이미 피투성이가 된 명정대군을 보면서 이 모든 것이 고육지책일 뿐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당황하는 기색을 금치 못했다.“대군자가...”김단의 목소리를 듣고 명정대군은 고개를 돌려 그녀를 보았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고통스러
임씨 부인도 얼른 나서 구슬렀다.“대감, 원이가 좋은 뜻으로 한 일인데 결과가 나빴던 거죠. 보세요, 단이가 얘를 때려서 이 지경을 만들어 놨는데, 그런 원이를 어떻게 매정하게 또 벌하실 수가 있어요?”임원의 빨갛게 부어오른 반쪽 얼굴을 보자 진산군은 문득 3년 전 임원이 돌아왔을 때가 떠올랐다. 말라서 거의 피골이 상접해 있었다.임원은 그들이 15년간이나 헤어져 지낸 딸로, 헤어져 있던 15년간 그녀는 내내 고생만 했구나!그래, 그런 아이한테 진산군이 어떻게 매정하게 굴 수 있겠어?심호흡을 하고 진산군은 결국 임학에게 눈을 돌렸다.그러고는 다짜고짜 발로 찼다.“전부 이 못난 놈이 저지른 짓이야!”하지만 이번엔 임학도 벌써 준비를 단단히 하고 있어서 낼름 피했다.진산군은 발길질을 해도 차이는 게 없자 다시 걷어 차려고 하는데, 임학이 임씨 부인 뒤로 쏙 숨을 줄 몰랐다.“어머니, 아들이 어제 발길질을 당해서 지금도 가슴이 이렇게 아픈데! 또 차였다가는 죽을 거예요!”임씨 부인에게 막혀 진산군은 발을 멈출 수 밖에 없었다.임씨 부인은 그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지만 차마 입을 떼지 못하는 분위기로, 그 말은 바로 임학을 용서해 달라는 것이었다.바로 그때 진산군이 낭패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부인! 이 못난 놈을 좀 보라고, 당신이 오냐오냐해서 어떻게 됐는지? 당신이 저 놈을 계속 감싸고 돌면 그야말로 수 나인이 말한 대로 우리 가문에 큰 화가 미치고 말 거야!”임씨 부인은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없지만, 임학은 오히려 입을 삐죽거렸다.“제가 뭘 어쨌다고 그러세요? 그저 단이와 명정 대군의 혼사를 망치려던 것 뿐이잖아요! 누가 걔더러 황제께 사혼을 명 받고 그렇게 기고만장하래요? 걔가 먼저 어머니와 원이를 울리지 않았으면, 제가 뭘 그렇게까지 했겠어요?”임씨 부인도 맞장구를 쳤다.“단이가 사혼을 받고 확실히 좀 방자하게 굴었죠. 학이가 잘못했지만 저와 원이를 아껴서 그런건데, 모든 결과에는 원인이 있는 법 아니겠어요. 대감,
임학의 말에 아픈 곳을 찔렸는지, 임씨 부인은 눈을 동그랗게 뜨고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며, 임학을 가리켜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내가, 내가 언제 단이를 죽이려는 생각을 해 본 적이 있다고 그래? 내 손으로 걔를 키웠어!”울먹이느라 마지막 말은 제대로 맺지도 못했다.임씨 부인의 이런 모습을 보고 임학도 당황해서 얼른 잘못했다고 했다.“제가 말 실수를 했습니다. 어머니, 화내지 마세요! 제가 잘못했습니다!”임학이 용서를 구해도 임씨 부인은 듣기 싫다는 듯 임학에게 등을 돌리고 있었다.어머니의 태도에 임학은 미간을 꿈틀거렸다.그의 눈이 임원에게 향하더니 차가운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사실 똑바로 말하면 단이 자신을 탓해야지, 어떻게 이렇게 모질 수가 있어. 어떻게 원이한테 이렇게 심한 짓을 할 수가 있냐고!”멀쩡한 얼굴을 때려서 이 지경이 되다니!그때 생각지도 못한 소리가 옆방에서 들려왔다.“둘째 아가씨께서 이말 저말 옮기지만 않으셨어도 큰 마님께서 쓰러지실 일은 없었습니다. 큰 아가씨께서 큰 마님을 대신해 둘째 아가씨께 가르침을 줬을 뿐이라, 큰 마님이 깨어나신 뒤에 큰 아가씨 행동을 칭찬하실 거라 생각합니다.”수 나인의 목소리였다.그녀는 이 말을 하며 네 사람 앞으로 오더니, 진산군에게 허리를 굽혀 예를 올렸다.수 나인은 나이가 지긋한 사람으로, 큰 마님이 진산군댁으로 시집올 때 따라와서 진산군이 자라는 것을 쭈욱 지켜봤다. 비록 명목 상은 하인에 불과하나 진산군에게 있어 수 나인은 어른 중 하나였다. 따라서 그도 바로 손을 모아 읍하며 답례했다.이윽고 수 나인이 말을 이었다.“최근 집안에 벌어진 일은 둘째 아가씨 덕분에 쇤네도 큰 마님과 함께 들어 알고 있습니다.”이 말을 듣고 진산군은 뒤를 돌아 임원를 째려봤다.임원이 여전히 불쌍하고 가련한 모습을 하고 있지만, 진산군 마음 속에는 울컥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 그 자리에 모두가 오늘 큰 마님이 쓰러진 이유를 알기 때문이었다.진산군이 입을 열가도 전에 수 나인이 말을 계속했
수 나인은 차가운 시선으로 주변을 둘러보다가, 임씨 부인이 어디론가 달려가는 게 보였다.‘구원병이라도 청하러 가는 건가?’그렇게 생각하는 찰나 임씨 부인이 금방 다시 달려왔으나, 손에 매우 큰 돌멩이를 들고 있었다.수 나인이 너무 놀란 나머지 채 뭐라 입을 열기도 전에 진산군이 소리쳤다.“부인, 안 돼!”하지만 한 발 늦었다.커다란 돌멩이가 세차게 김단의 머리를 내리쳤다.김단은 순간 머리가 멍해지는 것을 느끼고 귀에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더니 예리하게 윙윙거리는 소리만 들렸다. 그리고 핏방울이 눈가를 타고 한방울 뚝 떨어지더니 이어서 두방울 세방울….그녀는 그제서야 상황을 파악하고 서서히 고개를 들어 임씨 부인을 쳐다봤다.선혈로 물든 김단의 두 눈을 본 임씨 부인도 뭔가 깨달았는지 얼른 손에 든 돌멩이를 던져버렸다.“아니, 그게 아니라, 단아. 어미 말 좀 들어봐.” 임씨 부인의 목소리가 심하게 떨리고 있었다.“이 어미는 그저 네가 그만 뒀으면 해서, 다치게 하고 싶지 않았어…”“털썩!”김단은 눈 앞이 깜깜해지더니 바닥에 쿵하고 쓰러졌다.진산군이 제일 먼저 나섰다.“전부 뭘 멍하니 있는 게야! 의원을 불러 오너라! 어서. 아가씨를 방으로 데리고 들어가고!”마당에 시녀들도 수 나인의 지휘 하에 허둥거리긴 했지만 김단을 방 안으로 옮기는데 성공했다.수 나인도 바짝 붙어 들어갔으나, 방으로 들어가기 전에 임씨 부인을 뚫어지게 쳐다봤다.이때 임씨 부인은 놀란 나머지 사지에 힘이 들어가지 않아 진산군의 품에 안겨 있었다.임원도 이미 사람들의 부축을 받고 일어났는데 얼굴 반쪽은 팅팅 부어올랐고 입술에는 피가 베어나왔다.그녀는 임씨 부인 곁으로 가서 아무 말도 하지 않고 흐느낄 뿐이었으나, 임씨 부인은 한 팔로 그녀를 품에 안고 꺼이꺼이 대성통곡했다. 세 식구가 한데 끌어안고 있는 모습이 이 사건으로 제일 깊게 상처를 입은 건 바로 자기들 셋인 양 보였다.하지만 화가 치밀어 거의 죽을 뻔한 사람은 큰 마님이고, 머리가 깨져서 피를
김단은 전에 자신을 괴롭히던 무수리들에게 달려들 때처럼 맹렬하게 임원을 덮쳤다. 임씨 부인은 눈 앞에 뭐가 휙 지나갔나 싶었는데, 벌써 임원이 김단 아래 깔려 있었다.“악!”임원이 큰 소리로 비명을 지르자, 곧바로 김단이 그녀의 입을 틀어막았다.할머니께서 안에서 쉬고 계시기 때문이었다. 할머니께서 쉬시는데 방해가 되고 싶지 않았다.하지만 김단의 가슴 속에 활활 타오르는 분노의 불길은 밖으로 표출하지 않을 수 없었다!김단은 한 손으로 임원의 입을 틀어막고, 그녀를 꽉 눌러 발버둥치지 못하게 했다.그리고 다른 손으로는 조금도 사정을 봐주지 않고 따귀를 때렸다.김단이 임원을 패주고 싶은지는 오래 됐지만 그동안 억지로 인내해왔다.임원이 비록 악랄하고 못됐어도 그건 전부 성격이 그런 거라 생각했다.임원에게는 임씨 집안의 피가 흐르고 있기 때문에, 다들 임원을 싸고돌고 임원도 매사에 임씨 집안 사람이 먼저였을 거라고 말이다.그들이 저지른 짓 하나하나가 김단을 아주 깊이 상처입혔어도, 김단은 매번 임원에게 손찌검을 하고 싶은 자신의 감정을 억눌러야 했다. 하지만 오늘은, 더이상 참는 건 불가능한 것이, 임원이 그녀의 참을성의 한계를 건드렸기 때문이다!“찰싹!”따귀를 때리는 소리가 우렁차게 울려퍼지며 임원의 눈에서 눈물이 후두둑 떨어졌다.놀라 멈춰서 있던 임씨 부인이 달려나와 김단을 뜯어말렸다.“단아! 이게 무슨 짓이니! 어서 동생을 풀어줘!”하지만 임씨 부인이 김단을 말리는 정도는 사실 아무 소용없었다.예전에 세답방에 있을 때 그녀가 다른 사람을 올라타서 때릴 때, 적어도 열댓명의 나인들이 달려들어 그녀를 말렸다.누구는 그녀의 목을 잡아 조르고, 누구는 그녀의 머리끄댕이를 낚아채고, 전부 그녀가 상대의 몸에서 내려오게 하려고 했다. 하지만 김단은 철천지원수에게 대항하는 능력을 키워, 누구든 마음만 먹으면 절대로 쉽게 놔 주는 법이 없었다!임씨 부인이 몇 번 잡아당겨봤지만 김단을 끌어내지 못할 뿐 아니라 오히려 그동안 김단은 임원의 얼굴에
“맞아 맞아, 다들 좀 비켜봐!”하녀들이 수선을 떠느라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하지만 그 순간 김단은 오히려 따스함을 느꼈다. 그녀는 줄곧 이 집은 너무 차갑다고 생각했다. 빙고처럼 차가워서, 오직 할머니만 그녀의 몸을 따스하게 덥혀주며 온기를 느끼게 해주는 분이셨다. 그런데 그런 할머니께서 지금 편찮으시므로, 그녀의 억울한 사정이나 고통을 할머니께 얘기해 충격받으시게 할 수 없었다. 그래서 그녀는 오늘밤 자기 혼자 이 감정을 삭여야 할 거라고 생각했는데, 별당에 발을 들이자마자 마음이 벌써 차갑지 않아졌다.게다가 그녀가 다친 곳은 손인데, 숙희는 굳이 그녀를 방까지 부축하겠다고 우기기까지 했다.자리에 막 앉자 하녀 하나가 뜨거운 차를 가져왔다.“아가씨, 오늘 분명 많이 놀라셨을 거예요. 이건 쇤네가 끓인 안정차로, 마시고 편히 한숨 주무시고 나면 내일 아침엔 모든 일이 다 끝나 있을 겁니다!”“쇤네 아가씨께서 세수 하시게 뜨거운 물 떠올 게요.”“아가씨, 이불 따듯하게 데워놨으니 차 드시고 머리 빗으신 뒤 푹 쉬세요.”이런 일은 전부 숙희가 하던 것인데, 숙희도 다치자 어린 하녀들이 숙희의 일을 자진해서 맡아준 것이다.아마도 어린 하녀들이 너무 열정적이기 때문일 거야. 김단은 눈시울이 뜨거워지는 것을 느꼈다.그녀는 숙희에게 가서 좀 쉬라고 하고 차를 마신 뒤, 하녀들이 머리를 빗겨주는 가운데 자리에 누웠다.좋은 냄새가 나는 부드러운 이부자리에 눕자, 복잡한 머리 속까지 이불 속에 쏙 넣고 싶었다. 임씨 집안의 모든 사람을 머리 속에서 끄집어 내고, 자신은 진산군의 금지옥엽같은 건 하고 싶지 않았다.‘난 임씨 집안 사람과 아무 관계도 없어!’안정차 효과가 상당히 괜찮았다.김단은 얼마 지나지 않아 잠이 들었지만 밤새 꿈에 시달렸다.꿈 속에서 그녀는 두 명의 건장한 괴한에게 쫓기고 있었다. 막 달아나려는 순간 갑자기 임학이 나타나 그녀를 심연으로 밀어넣었다.김단은 놀라서 꿈에서 깨 아직 정신을 차리지 못한 사이, 방 밖에 숙희가 놀라서
이 말을 마친 뒤 김단은 임학의 얼굴에 당황스러운 기색이 가득한 것을 똑똑히 봤다.아주 웃겨!김단을 망가뜨리려고 할 때는 그렇게 말발을 세우고 당당했으면서, 이제 자기가 끌려들어가니까 당황하는 꼴 좀 봐!임학뿐 아니라 임씨 집안 사람 거의 다 당황했다.오히려 계속 질질 짜던 임원이 일어서서 김단에게 말했다.“언니 오늘 큰 일을 당했으니 일찍 돌아가서 쉬어! 시간도 꽤 됐으니, 무슨 일이 있으면 내일 다시 얘기하는 게 어때?”임원의 말을 듣고 임씨 부인도 얼른 맞장구를 쳤다.“그래 그래, 단아, 봐 날이 벌써 이렇게 저물었구나. 소 장군까지 이 일에 말려들어 아직 돌아가지도 못하셨지 뭐니. 우리 내일 일찍 다시 논의하는 게 어떨까?”김단은 그제서야 대청에 아직도 소한이 서 있다는 사실을 깨달은 듯 했다.그녀는 고개를 돌려 그를 건너다봤다.대청의 촛불이 소한의 냉담한 얼굴 위에 일렁이자, 깎은 듯 날카로운 이목구비는 전보다 더 냉정하게 보였다.소한도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의 어두운 눈동자에 김단이 이해할 수 없는 감정이 용솟음치고 있었다.김단은 왠지 가슴이 시큰거려 숨을 크게 들이마셨다.그녀도 오늘 엄청난 일을 당해, 기력이 하나도 없는 게 사실이었다.만약 임씨 집안 사람들과 말다툼을 계속해 나간다면 먼저 쓰러지는 쪽은 그녀 자신일 게 틀림없었다.하룻밤 쉬어도 그녀는 절대 임학을 가만 두지 않겠어!이런 생각을 하며 그녀는 소한에게 걸어가는 것을 본 임원이 바짝 긴장하기 시작했다.김단이 모든 걸 팽개치고 소한 품에 안기기라도 할까봐, 김단과 소한의 거리가 점점 좁혀지자 임원은 도저히 참지 못하고 소리를 질렀다. “언니!”임원의 목소리에 두려움과 당황스러움이 묻어나는 걸 모두가 느꼈으나, 김단은 걸음을 멈추지 않은 채 곧장 소한 앞으로 걸어갔다.거리가 꽤 가까워졌다.임원에게 좀 삐졌던 김단은 임원의 두려움에 찬 외침에 속이 시원했지만 결국 도를 넘는 행동은 하지 않고 소한에게 감사의 예를 표했다.“오늘 정암 종사관께서 구해
“왜냐면 절 해치는 편이 쉽기 때문이죠, 절 속이는 쪽이 쉬우니까요.”“미래의 제 행복을 위해 천 냥이란 거금을 써 가며, 장정 둘을 고용해 제 정절을 더럽히고자 했다는 건데, 본인이 생각해도 웃기지 않으세요?”“임학, 토 나올 것 같은 표정 집어치워요. 당신은 애초에 저따위한테 관심조차 없었으니까. 그저 제가 당신보다 높은 자리에 서는 게 싫었던 거잖아요! 조금도 저를 위한 게 아니라, 제가 잘 되는 꼴이 못마땅했던 거죠!”가볍게 몇 마디 던지는 것에 불과했지만, 임학의 마음 속 가장 추악학 구석을 들춰냈다.임학은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네가 잘 되는 걸 내가 못마땅해할 이유가 어딨어? 명정 대군께 시집가는 게 좋은 일인 것 같아? 그리고 네가 정절 좀 잃는 게 뭐? 우리 집안이 너 하나 시집보내는 거 못 받쳐줄까봐 겁나?”말이 떨어지자 대청 안은 한동안 침묵에 잠겨, 임원이 훌쩍이는 소리 외에 모두 숨소리도 내지 않는 듯했다.김단의 주변을 쭉 둘러보고 임씨 부인에게 눈길을 주고, 다시 진산군을 쳐다보고 마지막으로 암학을 향해 낮은 소리로 비웃었다.“이제야 알겠습니다. 진산군 마님과 정부인께서는 아슬아슬 위태롭던 지위에서 진산군 가문을 지키기 위해, 제 치마폭을 선택하셨던 것이로군요.”살랑살랑 나부끼는 한마디 말이, 모든 임씨 가문 사람의 얼굴을 후려쳤다.김단의 비아냥거리는 눈빛이 한층 심해졌다.“당신처럼 머리에 든 게 없는 아들을 뒀으니, 진산군 가문이 자산몰수와 멸문을 당하는 것도 시간문제겠군요.”“김단 너 지금 뭐라는 거야!” 김단이 진산군 집안을 저주하고 있다고 생각해 임학은 분노했다.그런데 오히려 진산군이 자신을 꾸짖을 줄 생각도 못했다.“이 짐승만도 못한 놈, 닥치지 못할까! 그런 짓을 저지르고도 아직도 네 동생에게 가타부타할 낯짝이 있어? 네 동생이 죄를 묻지 않기로 했으니 망정이지, 넌 벌써 감옥에 끌려가고도 남았어!”‘응?’거참 이상하기 짝이 없는 소리였다.임학은 진산군의 꾸중에 입을 다물고 가슴을 움켜쥔 채
임학은 여전히 아무 말이 없었다.오히려 임씨 부인이 몸을 떨며 한걸음 한걸음 임학 곁으로 걸어가, 임학의 소매를 잡아 당겼다.“학이야, 어서 동생에게 이 모든 게 오해라고 얘기하렴.”임학은 차가운 얼굴로 침묵했다.그러나 그가 침묵하면 할수록 애가 타는 임씨 부인이 더욱 세게 임학의 옷자락을 잡아 당기다 못해 거의 밀다시피했다.“얘기 해! 어서 얘기하라니까!”목소리가 흐느끼고 있었다.임씨 부인이 이렇게 흥분한 것을 보고 임원이 얼른 다가와 임씨 부인을 끌어 안았다.“어머니, 이러시지 마세요. 앉으셔서 오라버니가 천천히 얘기하게 두세요. 전 오라버니께 반드시 무슨 이유가 있는 게 확실하다고 믿어요!”이 말을 듣고 있던 김단은 도무지 믿어지지 않는다는 눈빛으로 임원을 바라봤다.임학은 김단의 정절을 더럽히고자 했던 진범이었다. 그런 임학이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다니, 이게 도대체 말이야 방귀야? 두 사람은 어떻게 돼먹은 인간들이지?임원은 여자의 몸으로 어떻게 그따위 말을 주워섬길 수가 있단 말인가?하지만 임학은 임원의 말에 정신을 차린 듯했다.심지어 감동의 눈빛으로 임원을 지긋이 바라보더니, 김단을 노려봤다.“그래, 이 일은 확실히 내가 한 거야.”그는 떳떳하고 당당한 태도로 말했다. “편지는 내가 뜯었고, 복래 차관이라고 내가 바꿨어. 그 두 명의 강호인도 내가 고용했지! 하지만 김단, 가슴에 손을 얹고 대답해봐, 두 사람이 널 해쳤어?”그는 두 사람에게 절대로 김단을 해쳐서는 안된다고 신신당부했기 때문에 김단이 입은 상처는 스스로 밧줄을 빠져나오다 생겼다는 걸 이미 알고 있었다!얌전히 날이 밝기만 기다리고 있었으면 아무 상처없이 돌아왔을 텐데, 괜히 일을 이렇게 크게 만들게 뭐야!임학은 사건은 전부 김단 본인이 자초한 것처럼 말했다.전에 자신이 그토록 아끼고 사랑하던 얼굴이 저런 표정을 짓는 것을 보자, 김단은 아주 세게 따귀를 갈겨 버리고 싶은 마음을 억누를 수 없었다.정말 귓방망이를 날려도 시원치 않은데, 임학의 말에 기가
어쨌든 여자에게 정절은 무엇보다 가장 중요하니까.하지만 그 자리에 있는 사람은 모두 그게 사실이 아니란 것을 알고 있었다.소한은 진산군의 인사에 화답하고 김단을 향해 말했다.“명정 대군은 연래 차관이라고 하셨는데, 어째서 복래 차관으로 바뀐 겁니까?”김단은 한 켠에 오도카니 앉아 있었는데, 손에 상처는 처치를 마쳤지만 조금만 움직여도 여전히 아팠다. 의원 말로는 상처가 심각하다고는 할 수 없지만, 기볍게 여겨 함부로 행동하지 말고 적어도 한 달 간은 손에 힘을 주지 말라고 했다.이때 소한의 질문을 받고 김단은 일어나 소한에게 말했다.“제가 서신을 받았을 때 서신에 분명 복래 차관이라고 쓰여있었습니다. 그 서신은 아직 분명히 제 화장대에 들어 있습니다.”여기까지 말하고 김단은 고개를 돌려 임학을 바라봤다.임학은 별로 멀지 않은 후미진 구석에 서 있었는데, 사람들 눈에 띌까봐 몸을 사리고 있는 듯했다.하지만 임학이 들어올 때 벌써 김단은 그를 눈여겨 봐뒀다.그녀가 사뿐사뿐 임학에게 걸어갔다.“도련님께서는 오늘 아주 얌전하시네요. 어떻게 된 거죠? 무슨 일 있으셨어요?”임씨 부인은 김단이 왜 갑자기 임학에게 관심을 보이는지 어리둥절해 하며 그녀의 앞을 막아서려 했다.“네가 아주 큰 봉변을 당했는데 가만 앉아서 쉴 일이지, 오라비 일에는 신경쓰지 않아도 돼.”하지만 김단은 임씨 부인을 밀쳐냈다.손에 힘을 전혀 주지 않고 임씨 부인의 손은 뿌리친 뒤 가려던 것 뿐인데, 임씨 부인 뒤에 하필 태사의가 놓여 있어 김단에게 밀쳐진 순간 태사의에 철퍼덕 주저앉는 꼴이 되었다.이를 보고 임원이 바로 달려나왔다.“언니 이게 뭐하는 짓이야? 어머니는 언니를 걱정해서 그런 거잖아! 어떻게 이럴수가….”“닥쳐!”김단이 날카롭게 소리치며 임원을 노려봤다.“이 일에 네가 관련이 됐는지는 아직 모르겠지만, 네가 한마디만 더 지껄였다간 맞을 줄 알아.”임원은 무공을 할 줄 모르기 때문에 그녀가 임원을 때리기로 마음 먹으면 식은 죽 먹기였다.그러나 김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