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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화

Author: 적매화
김단은 방금 벗어 놓았던 옷을 걸칠 새도 없이 밖으로 달려 나갔다.

“무슨 일이냐? 누가 이리 소리치는 것이냐?”

숙희가 걱정스러운 얼굴로 그녀의 뒤를 바짝 따랐다.

“쇤네도 모르겠습니다. 아씨 옷을 걸치십시오. 밖이 많이 찹니다!”

하지만 김단은 자신의 옷 따위를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임원이 물에 빠졌다면 아마도 자기 별당에 있는 연못일 것이기에.

그 옛날 유리잔 깨뜨린 죄로 세답방에 끌려가 고초를 겪었었다. 만일 임원이 이번 사고로 무슨 일이 생긴다면 임학이 당장 그녀를 죽여버릴지도 모른다.

김단이 도착했을 땐, 물속에서 허우적거리는 임원이 보였다.

얼어붙은 물속에서 커다란 구멍이 뚫려 있었다.

돌다리 위에 몰려든 하인들이 어쩔 줄 몰라 했다.

성큼성큼 다가간 김단이 그들에게 외쳤다.

“뭣들 하는 것이냐? 당장 구하지 않고 뭐 하는 것이냐?”

몇 명의 몸종들이 난처한 표정으로 답했다.

“쇤네 때문에 아씨께서 정절을 잃으시면 어찌합니까?”

“정절을 지키는 것이 생명보다 중하더냐?”

김단은 말도 안 되는 말을 하는 몸종을 노려보더니 망설임 없이 물속으로 뛰어들었다.

연못은 깊지 않았으나 찬 기운이 뼛속까지 스며들어 얼음장 같았다.

연못 바닥은 진흙투성이라 발을 딛기가 어려웠다. 조금만 방심하면 가라앉을 수 있다.

힘겹게 임원을 구해낸 김단이 밖으로 나오자, 숙희는 얼른 두터운 옷으로 두 사람을 단단히 감쌌다.

“뭣들 하는 거야? 어서 의관을 불러와! 내가 두 분을 모시고 방으로 갈 테니 뜨거운 불을 지피고 따뜻한 생강차를 내오거라!”

숙희의 화난 목소리에 구경하고 있던 다른 몸종들이 제각기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제야 임원의 몸종이 이곳으로 달려왔다.

몸종의 뒤에는 임학도 있었다.

얼음물에 빠져 얼굴이 창백해진 자기 주인을 발견한 명희는 황급히 임원을 감싸안았다.

“아씨 괜찮으시옵니까? 어찌 물에 빠지신 겁니까?”

명희는 곧장 김단을 노려보며 따졌다.

“아씨께서 우리 아가씨를 밀치신 거지요?”

억울한 사람을 몰아가는 것은 3년 전 그대로였다.

그녀가 뭐라 답하기도 전에 옆에 있던 숙희가 명희의 뺨을 손바닥으로 내리쳤다.

순간 둔탁한 소리가 울려 퍼졌다.

김단은 자기도 모르게 숨을 멈췄다.

임학도 그 자리에 얼어붙었다.

자기가 데리고 다녔던 몸종에게 이런 과격한 면모가 있는 줄 그도 몰랐다.

숙희는 명희에게 고함을 지르며 나무라 했다.

“이 년이, 주둥이 한 번만 더 마구 놀려보거라. 우리 아씨께서 너희 아씨를 구하기 위해 물에 안 뛰어들었으면 진작 세상을 뜨셨을 것이다! 여기에 몰린 몸종들이 전부 목격했다! 우리 아씨께서 너희 아씨를 밀쳤다는 증거나 갖고 오거라! 안 그러면 내 당장 그 주둥이부터 찢어버리겠다!”

김단은 멍한 눈으로 숙희를 빤히 쳐다보았다.

자그마한 몸집의 계집애에게 이런 모습이 있을 줄은 상상도 못 했다.

물속에서 허우적거린 탓에 말할 기력도 없어 보이는 임원이 아랫입술을 깨물며 힘겹게 말했다.

“어찌 내 사람에게 손을 댈 수 있단 말이냐?”

자기 몸종을 감싸는 임원의 모습에 임학이 미간을 찌푸리며 자기 누이의 편을 들었다.

“감히 몸종 따위가 뉘 앞에서 손을 드는 것이냐! 누가 그리 가르쳤더냐!”

“접니다.”

김단의 입에서 짤막한 답이 나왔다.

두툼한 옷을 꽁꽁 여민 그녀의 안색이 창백했다. 머리카락에서 물이 계속 떨어졌고 그중 몇 가닥은 이미 얼어붙었다.

임학은 불과 몇 걸음밖에 되지 않는 거리에 서 있는 그녀가 아주 멀게 느껴졌다.

“쇤네를 빈번하게 모함하는 낭자의 몸종에게 적절한 벌을 내린 쇤네의 몸종이 잘못했다 여기지 않습니다.”

빈번하게 모함한다는 말에 자연스레 3년 전의 일이 떠올랐다.

임원은 몸종의 품에 움츠러들며 기침을 두어 번 하더니 연약한 목소리로 대꾸했다.

“그렇다 할지언정, 사람을 이리 패면 되겠소?”

임원이 눈물을 흘리는 모습에 임학은 김단이 의도적으로 옛일을 언급하여 자기 누이를 모욕한다 여겼다.

그래서 눈살을 찌푸리며 더욱 차갑게 말했다.

“원이 말이 옳다. 그렇다고 사람을 때리면 되겠느냐! 하물며 넌 헤엄칠 줄도 모르지 않더냐.”

김단이 거짓을 고한다고 여긴 임학의 싸늘한 태도에 김단의 몸이 부들부들 떨렸다.

임학이 알고 있는 김단은 어릴 적 소한에게 받은 귀걸이가 호수에 빠지자 헤엄칠 줄도 모르면서 덥석 물에 뛰어든 무모한 아이였다. 그 자리에 있었던 자신과 소한이 헤엄을 못했더라면 그녀는 물에 빠져 죽었을 것이다.

그렇기에 김단이 임원을 구했다는 말을 믿을 수 없었다.

“하면, 도련님께서도 쇤네가 아씨를 밀쳤다 여기시는 겁니까?”

떨리는 목소리로 치밀어오르는 화를 참으며 반문했다.

그러나 임학의 대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부들부들 떨고 있는 그녀에게 상처 주는 말을 차마 내뱉을 수 없었다.

김단의 시선이 다시 임원에게 향했다.

말없이 조용히 바라보기만 했을 뿐인데, 임원은 그녀와 눈이 마주치자마자 말없이 고개를 떨궜다.

3년 전 그날처럼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아까 흐느끼며 사죄하던 모습은 온데간데없었다.

“하!”

김단의 입에서 외마디 헛웃음이 터져 나왔다.

고개를 숙인 임원은 눈물만 흘려댔다.

더는 그 모습을 두고 볼 수 없었던 임학은 차마 김단에게 화내지 못했고 대신 숙희에게 분노를 표출했다.

“가서 곤장을 받아라!”

숙희는 자신에게 내려진 벌이 불만스러웠지만 김단을 곤란하게 만들고 싶지 않았다.

임학의 명을 받들기 위해 움직이려던 숙희를 잡아 세운 것은 김단의 차가운 팔이었다.

비록 얼굴은 평온해 보였으나, 그녀의 눈가엔 분노가 명백했다.

“이 아이는 오늘 자리를 비울 수 없습니다. 목욕도 도와야 하고 환복도 도와야 합니다. 도련님께서 목격한 자들에게 탐문하시면 아씨를 구한 사람도 알게 될 것입니다.”

김단은 그대로 숙희를 끌고 돌아가려 했다.

하지만 두 걸음도 채 가지 못하고 자리에 다시 멈춰 섰다.

“전에는 수영을 못했으나, 1년 반 전에 몇 명의 나인들이 합십하여 물속에 던져 넣은 뒤 올라오지 못하게 막대기를 휘둘렀고 쇤네는 어떻게든 살아남으려고 물속에서 허우적거렸습니다. 그렇게 반 시진을 버티다 보니 다시 위로 끌어올리더군요. 그때부터 수영을 할 수 있게 되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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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실 김단도 이 집에서 나가고 싶었다.그러나 그녀는 가진 돈이 한 푼도 없었고 알고 있는 친구도 없었기에 떠날래야 떠날 수가 없었다.게다가 조모님은 아직 여기에 계셨다. 조모님을 홀로 남겨두고 맘 편히 떠날 순 없었다.그렇기에 진산군과 임학이 아무리 듣기 싫은 소리를 해도 묵묵히 참을 수밖에 없었다. 그녀의 시선이 그릇에 닿았다. 이 사달이 난 원인이었다. 그녀는 천천히 그릇에 있는 고기를 한 점 집어 입에 넣었다.임학이 차갑게 웃으며 말했다. “이제야 먹을 마음이 생긴 것이냐? 진산군댁 첫째 아씨 성정 한 번 맞추기 어렵구나.”김단은 임학을 한 번 쳐다본 뒤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녀는 진산군에게 예바르게 말했다. “노여워 마십시오. 의도적으로 도련님께서 집어주신 음식을 피한 것이 아닙니다. 몇 해 전에 몸이 상하면서 비린내가 나는 음식을 먹으면 발진과 아양으로 견딜 수 없었사옵니다. 하여 금일도 음식을 먹지 못한 것입니다. 다른 해산물에도 손을 대지 않았사옵니다.”김단의 말에 진산군 일가는 깜짝 놀라 그녀의 앞에 놓인 접시를 쳐다보았다. 그녀의 말대로 그녀는 어떤 해산물도 먹지 않았다.임학은 믿기 어렵다는 듯 말했다.“위병이 나 먹지 못한다면 믿었을 것이다. 한데 네가 제일 좋아하는 생선을 먹고 발진이 났다는 것을 나더러 믿으라는 것이냐? 내 한 번도 그런 모습을 보지 못했다!”김단은 조용히 옷소매를 거둬 자신의 팔을 보여주었다.매질에 상처가 가득한 팔에는 발진 증세가 보이기 시작했다.“이럴 수가! 어서 의원을 부르거라!”부인이 다급히 외쳤다. 바로 이때, 임원의 기침 소리가 거세졌다.목에 무엇이 걸리기라도 했는지 숨이 가쁘게 기침하는 임원의 모습에 부인은 김단은 뒷전에 두고 임원부터 살펴보았다.그러나 임학의 시선은 여전히 김단의 팔에 향해 있었다. 이런 꼴을 보려고 한 말이 아니었다.그저 가족들에게 체면을 주지 않는 그녀가 얄미워 모질게 말했던 것이다. 생선을 좋아했던 누이의 얼굴에 어느새 발진 증세가 일어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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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갑작스러운 제안에 소한은 마음이 살짝 흔들렸다.그러나 그가 답하기도 전에 임학은 소한에게 주먹을 날렸다.소한은 재빨리 몸을 옆으로 피했다.허공에 주먹을 휘두른 임학의 몸이 술상에 엎어졌고 음식들이 바닥에 떨어졌다.그는 손에 잡히는 대로 음식을 들어 소한에게 던졌다.소한은 뒷걸음질을 치며 물러섰다. 얼굴에 불편한 기색이 역력했다.“미친 것이오?”이것은 취기가 아니었다. 아무리 술에 취해도 이런 행동을 한 적은 없었다. 천천히 몸을 일으킨 임학의 옷자락이 어지럽혀있었다.임학은 신경 쓰지 않는 듯 손가락으로 소한을 가리키며 말했다.“원이의 마음에 상처를 줄 시 내 자네를 가만두지 않겠네!”소한은 차가운 표정으로 미간을 찌푸리며 옷 정리를 했다.“전에도 그런 말을 했었던 것 같군.”그때는 김단을 위해 말했었다. 멈칫하던 임학이 말을 이었다.“이제는 원이의 정혼자이니 탐욕 부리지 말게.”“자네가 먼저 제안했소. 난 아무 말도 안 했소.”소한은 차분하게 다른 쪽에 앉았다.임학은 헛웃음을 지었다.“우리가 알고 지낸 지가 몇 해인데 내가 자네 속셈을 모를 것 같소? 단이가 그날 수정과를 가져가지 않아 오늘 특별히 챙겨주지 않았소? 알고 있는지 모르겠지만 집으로 돌아오자마자 수정과를 원이에게 보냈다네. 단이는 자네에게 마음이 없네. 그만 질척거리시오!”‘내가 질척거려? 먼저 질척거린 게 누구인데.’소한은 마음속 말을 삼킨 채 술잔을 들이켰다.소한의 옆에 털썩 주저앉은 임학은 술병을 들어 입에 털어 넣었다. 소한의 뇌리로 상흔과 발진이 얼기설기 자리 잡은 김단의 팔이 스쳐 지났다. 옆 방에서 들려오는 떠들썩한 웃음소리가 들려왔다.얼마 뒤 밖에서 폭발음이 들렸고 불꽃놀이가 시작한 듯 시끌벅적해졌다.사람들은 하늘에 터지는 화려한 불꽃을 바라보며 환호성을 질렀다.두 사람도 고개를 들어 밖을 바라보았다.창가에 기대 손을 흔드는 여인의 형체가 어렴풋이 보였다. 환한 미소를 지으며 불꽃을 즐기는 형체가 두 사람의 시야로 다가왔다.올해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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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대군, 사랑에 살다: 무수리의 반격   제699화

    윤이의 말에 서원 공주가 코웃음을 쳤다.곧이어 입가에 미소가 지어졌다.“본궁도 같은 생각이다. 이전에는 큰 소리도 치더니, 어제 겸인의 시체를 보고는 조용하기 그지없다.”윤이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저 미소를 지어 보였다.뇌리에는 평양 원군 관저에 있을 때,김단이 그녀를 위해 해준 말이 맴돌았다.그 말 때문인 것일 까.공주 마마께서는 김단을 해하려고 하지 않았다.오히려 그녀를 더 신뢰하기 시작했다.마냥 좋은 일은 아닐 수 있다.하나 공주 마마께 신뢰를 얻었으니,살 길은 하나 생긴 것이 아닌가.마침 공주 마마의 곁에 일을 할 자가 필요하다.김단은 서원 공주의 침소에서 나간 뒤, 어의원으로 돌아갔다.돌아가는 내내, 김단은 마음이 불안했다.방금 공주의 앞에서 한 말이, 소하 오라버니를 도울 수 있는 말이었을까.이번에는 넘어갔다 하여도, 다음에는 쉽게 넘어갈 수 없을 것이다.그녀는 자신이 계속 ‘수’의 입장에 서 있을 수는 없었다.하나 ‘수’ 에서 ‘공’으로 바꿀 방법이 생각나지 않았다.곧이어 어의원 안으로 들어갔다.문을 열자마자, 목소리가 들려왔다.“드디어 김 낭자께서 도착하셨나이다,소 장군께서 낭자를 오래 기다리셨나이다!”김단이 걸음을 멈추었다.고개를 들어 방 안을 바라보았다.곧이어 소한이 교의에서 일어나 그녀를 향해 걸어왔다.그녀는 미간을 찌푸리는 동시에, 예의를 갖추어 인사를 건넸다.“의녀 김단, 소 장군을 뵙습니다. 소 장군께서 어찌 어의원에 행차 하셨나이까?”“낭자를 찾아 왔소.”소한이 부드럽게 답했다.하나 그의 미간에는 강렬한 감정이 숨겨 있었다.“낭자가 의녀로 봉직 되었다는 소식을 들었소. 경축하는 마음에 가져왔소.”그리고는 보석함 하나를 건넸다.김단은 받지 않았다.계속 미간을 찌푸리며 대답했다.“감사하옵니다. 하나 소인은 그저 마음만 받겠나이다. 오는 것이 있다면 주는 것이 응당한 터인데, 소인은..”“낭자와 그리 생소한 사이는 아니지 않소?”소한은 김단의 말을 끊었다.보석함을 쥐

  • 대군, 사랑에 살다: 무수리의 반격   제698화

    김단은 서원 공주의 살기를 느꼈다.하나 당황하지 않았다.“소신은 소 장군을 감싸는 것이 아니옵니다. 소 장군께서 총령으로 봉직된 지 얼마 되지 않았사옵니다. 어떤 자가 금군을 이리 다스렸는지, 내막을 알아야 하지 않겠사옵니까?”곧이어 서원 공주의 눈빛이 변했다.“이전에 금군을 맡은 자가 누군지 알고 있소?”옆에 있던 윤이가 서둘러 답했다.“공주 마마께 아룁니다. 덕빈의 친 아우인 손헌이라는 자 이옵니다.”“그래, 손헌 이구나!”서원 공주의 눈빛이 차갑게 변했다.“그래. 자신의 누이가 덕빈 인 것을 핑계 삼아, 그 손헌 이라는 자가 본궁을 몇 번이나 무시했는지 모른다.”서원 공주는 무언가를 떠오른 것처럼,말투에 냉기가 돌았다.“어쩌면 그 일은 모두 그놈이 계획 한 일이지도 모른다!”김단은 공주의 말에 심장이 철렁했다.그녀는 그저 소하의 억울함을 풀고 싶었을 뿐이다.이때, 서원 공주가 물었다.“손헌은 지금 어디 있는가?”윤이가 대답했다.“노비가 듣기로는 손 대감께서 파직 되신 이후에, 덕빈과 주상 전하가 많은 대화를 나누셨다 하옵니다. 하나, 전하께서는 좀처럼 윤허를 내리지 않으셨다 합니다.”서원 공주가 코웃음을 쳤다.“본궁에게 그러한 수모를 겪게 하고도, 어찌 감히 위로 오를 생각을 하는 것이야?”그녀는 금방 어찌 손헌을 해칠지 생각을 끝냈다.김단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한 순간이라도 마음을 약하게 먹어서는 안된다.서원 공주의 방식은 흉악하기 그지없다.만일 소하 오라버니에 대한 살의를 품었다면, 아무리 무예가 좋은 그도 그녀에게 꼼짝 당하고 말 것이다.소하 오라버니와 손헌 중에 한 명만 죽어야 한다면, 죽어야 하는 자는 손헌이다!김단이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서원 공주는 그녀를 뚫어져라 보고 있었다.낮은 목소리로 물었다.“자네의 뜻은 소하가 아무런 연관이 없다는 것이오?”김단이 고개를 들어 그녀를 한번 바라보았다.떠보려는 서원 공주의 말에도, 김단은 깊게 숨을 들이켰다.“소한 총령께서 여러 도움을 받

  • 대군, 사랑에 살다: 무수리의 반격   제697화

    김단은 말을 멈추고, 서있는 궁녀 몇 명을 바라보았다.소리를 낮추어 자신과 서원 공자만 들을 수 있는 목소리로 물었다.“공주 마마께서 실혈이 과다하였나이다. 제대로 추스르지 않으시면, 단시일에 기력이 회복되지 않사옵니다.”김단의 말에 서원 공주는 그제야 눈을 떴다.그리고는 서 있는 궁녀들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고개를 아래로 떨구고 있는 그들을 보며, 일말의 동요도 보이지 않았다.곧이어 김단에게 물었다.“본궁이 어찌하면 좋소?”서원 공주가 의술에 대해 까막눈이라고 해도, 낙태를 하고 먹어야 하는 약은, 한풍을 맞아 먹는 약과 다르다는 것을 알고 있다.어선방의 사람들은 약방에 대해 잘 알지 못하나, 궁녀의 여인들이 낙태를 하면 무엇을 먹어야 하는지 알고 있었다.만일 다른 이가 눈치라도 채면, 귀찮아지기 마련이다.김단은 잠시 생각하고는 입을 열었다.“공주 마마의 보양을 핑계삼아, 소신이 친히 약을 끓어 드리겠나이다. 손수 다룬 약재이기에 다른 이가 발견하는 일은 없을 것이옵니다.”서원 공주는 만족하지 않았다.“수 어의가 때를 맞추어 약재를 정리하니, 어떻게든 알게 될 것 이오.”김단이 미간을 찌푸렸다.“공주마마, 소신이 빈궁들의 보양을 핑계삼아, 처방을 몇 가지 더 내리면 되옵니다. 약재도 섞으면 수 어의 께서도 알아보지 못할 것이옵니다.”서원 공주는 그제야 미소를 지어 보였다.“좋은 생각이오.”김단이 답했다.“아뢰옵기 송구하오나, 빈궁들은 공주 마마께서 나서야 할 것 같사옵니다.”고작 칠품 의녀가 빈궁들의 보양을 도와준다 하여도, 귀를 기울이는 자는 없을 것이다.서원 공주는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작은 일에 마음 둘 필요 없소, 술시에 사람을 보내겠소.”“예.”김단이 공손하게 대답했다.어쩌면 그녀의 공손한 태도가 마음에 들었는지, 서원 공주가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그리고 김단을 향해 말했다.“또 한 가지 일. 자네와 상의할 게 있소.”그리고 옆에 있던 윤이를 한 번 바라보았다.윤이는 눈치를 채고 궁녀들과 함

  • 대군, 사랑에 살다: 무수리의 반격   제696화

    늦은 밤.김단은 악몽을 꾸었다.꿈에서 그녀는 세답방 시절로 돌아갔다.다른 이에 의해 채찍질을 당하던 곳이었다.그녀는 개울가 근처로 끌려가 매질을 당하고 있었다.하나 가장 두려웠던 것은 매질이 아니었다,김단의 곁에 숙희의 시체가 가지런히 놓여져 있었다.눈도 감지 못하고 죽어 있는 것이 아닌가.김단은 소리를 지르며 자리에서 일어났다.익숙한 침장 너머로, 뛰어오는 숙희를 발견하고 나서야 꿈인 것을 알아챘다.생생한 꿈 탓에 등에 식은땀이 흘렀다.숙희가 지극정성으로 그녀를 살펴도,자신의 눈앞에 있어도 가쁜 호흡은 좀처럼 진정이 되지 않았다.“아씨, 노비를 놀라게 하지 마지 옵소서!”숙희는 김단의 모습을 보고 깜짝 놀랐다.“노비,노비가 의원을 데려오겠나이다!”그리고 발걸음을 옮기려 하자,김단이 그녀를 저지했다.“나는 괜찮다.”혹여 숙희가 걱정을 할까하여, 억지스러운 미소를 지어 보였다.“지금 시진이 어느 즈음이냐?”“묘시이옵니다.”숙희가 부드러운 말투로 물었다.“더 누워 계시렵니까?”김단이 고개를 저었다.“어의원에 가야한다.”의녀이기에 어의원의 규칙을 따라야만 했다.숙희가 고개를 끄덕였다.“노비가 부축해드리겠나이다.”그리고 김단의 세수를 돕고, 뒤이어 옷을 갈아입혔다.반 시진이 지나고 나서야 김단은 어의원에 도착했다.수 어의는 김단이 의녀로 봉직되었다는 사실을 전해 들은 뒤였다.하나 그녀를 축하하기는커녕, 김단을 아무도 없는 곳으로 데려가고는 충고를 건넸다.“서원 공주는 불손한 성격을 가지고 있소, 눈치도 보면서, 주의 있게 대답을 해야 할 것이오. 이전처럼 공주를 화나게 만들면 아니되오, 알겠소?”수 어의가 말한 이전은 임금이 평양 원군에게 열어준 연회때 일어난 일을 뜻한다.그 날도 김단은 곤란한 처치에 빠졌었다.다행히도 최지습과 구연평이 도와주었다.수 어의도 이전의 일을 전해 들은 듯했다.하나 오늘날에는 최지습이 외지로 출정을 나갔고, 구 낭자도 매번 김단을 대신하여 나설 수 없는 일.어쩔 수 없이

  • 대군, 사랑에 살다: 무수리의 반격   제695화

    하나 김단은 멈추지 않고, 서둘러 궐 밖으로 향했다.이전에 의원이 목숨을 살리는 환약을 두 개 건네 주었었다.소한에게 주고 나서, 하나 밖에 남지 않았다.김단은 서둘러 평양 원군 관저로 돌아가야만 했다.겸인이 숨을 멎기 전에, 그 약을 겸인에게 먹여야 한다!김단은 다급한 마음에 관저로 뛰어갔다.사실 그녀는 겸인과 그저 몇 마디만 나눈 사이다.하나 부지런하고 성실하며, 선한 태도로 사람을 대한다.최지습도 겸인을 칭찬한 적이 있었다.절대로 죽게 해서는 안되었다!드디어 김단이 궐 문에 도착했다.곧이어 관저의 마차에 올라타 다급하게 말했다.“어서! 관저로 돌아가시오!”마부는 영문을 모르고, 밧줄을 세게 흔들었다.그 덕에 처음 달리는 속도로 관저로 돌아갔다.하나, 김단이 한발 늦었다.그녀가 마차에서 내리자, 내시 하나가 호위병사 두 명과 함께 관저에서 나왔다.내시가 김단을 보고는 예의를 차렸다.김단이 놀란 표정을 지었다.호위병사들의 대곤에 피가 묻어있었기 때문이다.순간, 심장이 세게 요동쳤다.그녀는 내시가 무슨 말을 하는지 상관 없었다.서둘러 관저 안으로 들어갔다.안에는 시체 하나가 놓여져 있다.그 위로 하얀 천이 덮여 있었다.천 위로는 붉은색으로 가득 물들었다.“아씨!”숙희는 김단을 보고, 서둘러 달려왔다.어찌 된 영문인지 모를 것이라 생각하여, 그녀에게 작게 속삭였다.“궐에서 사람이 왔사옵니다, 겸인께서 공주 마마께 불경한 언행을 하셨다 하여 형벌을 집행하였나이다. 허나 겸인께서 나이가 있으신 탓에 열세 대를 맞으시고, 그대로 숨을 거두셨나이다…”숙희는 울먹거리며 말했다.관저의 하인들이 시체를 정리하기 시작했다.모두 비통한 표정을 지었다.순간, 김단은 무엇이 크게 잘못되었다 생각했다.또 한편으로는 숙희가 아닌 것에 다행이라 생각이 들었다.어쩌면 마당에 누워있는 자가,열세 대도 넘기지 못하는 자가, 숙희 일 수도 있었다.김단의 안색에 이상을 느낀 숙희가 서둘러 그녀를 부축했다.그리고는 깜짝 놀랐다.

  • 대군, 사랑에 살다: 무수리의 반격   제694화

    소곤도 아니고 대곤 삼십 대였다.대곤은 비교적 넓은 모양을 갖춘다.또한 형벌을 집행하는 자들은 군부대의 사람이기에, 힘이 세서 뼈가 저릴 정도의 아픔을 느낄 것이다.삼십 대를 맞고 나면, 겸인이 어찌 살아남을 수 있는가.김단이 서둘러 입을 열려고 하자, 손등에서 무언가에 쏘이는 통증이 느껴졌다.다름 아닌 서원 공주가 그녀의 손등을 꼬집고 있었다.김단이 고개를 들자, 서원 공주가 경고하는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다.김단은 그제야 서원 공주가 자신을 상대로 시험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챘다.서원 공주를 성심성의껏 그녀를 도운 것은, 이후에 자신의 안전을 보장하고 싶은 마음뿐이었다.한데 어찌 겸인을 처리하려 한 단 말인 가.서원 공주는 김단이 다른 이 때문에 자신을 배신하는지 시험하는 것이다.동시에 임금에게 자신이 어떠한 존재인지를 그녀에게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그녀의 한 마디, 작은 애교에도 사람의 생사가 왔다갔다 한다.그 자가 평양 원군의 겸인이라 할지라도 말이다.그 자는 외지로 나가 있는 평양원군의 신뢰를 받고 있는 겸인이다!어떠한 증거도 없으면서, 김단의 말을 끊고, 백 세를 넘긴 관리에게 막대한 벌을 내렸다.삼십 대가 아닌 열 대라고 할지라도,겸인은 버티지 못할 것이다.김단은 서원 공주와 임금을 번갈아 바라보았다.겸인을 위하여 다급하게 해석을 하려는 자신의 모습을, 임금은 보지 못한 것일까.평양 원군의 겸인이 어찌 감히 국가의 공주에게 불경스러운 모습을 보인단 말인가,임금이 가장 잘 알고 있지 않는가.혹여 그저 친 자식을 너무 사랑하는 탓에, 평양 원군 관저의 사람이라 할지라도 전혀 신경 쓰지 않는 것인가.아니면 겸인의 일을 빌미로, 다른 것을 경고하는 것인가.김단은 이해가 가지 않았다.하나 겸인의 오해를 풀려고 해도, 아무런 소용이 없다는 사실은 어렴풋이 알아챘다.“그만하거라. 짐도 돌아가 문서를 읽어야 하느니라!”임금이 자리에서 일어나 김단을 바라보았다.“그저 작은 겸인에 불과하다, 짐이 다시 사

  • 대군, 사랑에 살다: 무수리의 반격   제693화

    사실 임금은 이전부터 김단을 눈여겨보고 있었다.신의에게 의술을 배운 자가 아닌가.임 씨 부인이 궐 안에서 고열이 내려가지 않았을 때, 김단이 침을 놓아 열이 내려갔다는 사실은 임금도 전해 들었다.당시에는 신의의 실력에 혀를 내둘렀다.또한 짧은 기간 동안 배운 의술로 김단은 어의원들을 제쳤다.그 덕에 서원 공주의 칭송에 임금도 동의했다.고개를 끄덕거리고는 김단에게 물었다.“짐이 생각하기에는 아주 좋은 제안이네. 김 낭자는 어떠한 가.”임금과 공주가 좋다고 하는 데. 어찌 김단이 싫다고 할 수 있는가.하물며 의녀로 봉하는 것은 나쁜 것은 아니지 않은가.곧이어 김단은 그들에게 절을 했다.“소인, 성은이 망극 하옵니다.”그녀의 모습에 임금이 웃음소리를 냈다.“소인이 아니라 소신이라 하거라.”“예. 소신, 성은이 망극 하옵니다.”김단은 한번 더 절을 했다.임금은 그제야 그녀에게 일어나라, 명했다.그리고는 공주를 보살핀 공으로, 귀한 약재를 적지 않게 하사했다.그 덕에 김단은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조모가 남긴 많은 금은보화와 땅이 있었지만, 유일하게 약재가 부족했었다.오늘 궐에 온 것은 잘한 일이라고 생각하던 찰나, 서원 공주가 입을 열었다.“아바마마, 사실 아뢰올 말씀이 있사옵니다. 소녀가 평양 원군 관저에서 머무는 동안, 김 낭자의 보살핌을 보살핌을 입었사오나, 소녀에게 불경스러운 언행을 보인 자가 있었나이다.”그녀의 말에 김단이 깜짝 놀랐다.웃음을 짓고 있던 임금의 표정이 순식간에 달라졌다.미간을 찌푸리며 물었다.“누가 감히 공주에게 그러한 언행을 한 것이지?”“평양원군 관저의 겸인이옵니다!”서원 공주는 살을 덧붙여 말했다.“가장 낙후한 방을 소녀에게 내어 줄 뿐만 아니라, 윤이가 몇 마디 한 것을 빌미로 삼아 불경한 언행까지 일삼았사옵니다. 마치 관저가 제 거처인 것 마냥 행세하였사온데, 졸개가 호랑이 행세를 하는 격이옵니다. 아바마마, 부디 소녀를 위하여 나서 주셔야 하옵니다.”서원 공주의 말에 김단은 바닥 ㅣ

  • 대군, 사랑에 살다: 무수리의 반격   제692화

    서원 공주는 나흘간 한풍을 맞았다는 이유로 방 안에서 나오지 않았다.나흘 동안 윤이를 제외하고, 김단이 그녀의 곁을 지켰다.나흘 이후.서원 공주의 안색이 돌아왔다.그녀는 그제야 평양 원군 관저를 떠나, 궐로 돌아갔다.때마침 숙희도 마당에서 돌아왔다.하나 그녀의 표정은 좋지 않아 보였다.김단을 보자, 눈가가 벌겋게 변했다.“아씨, 노비가 원림장를 찾아갔나이다. 적매 나무가 아주 잘 크고 있다 하였사옵니다. 이듬해 겨울에 나뭇가지에 가득 피울 것이라 말씀하셨습니다! 마당에 정리해야 할 곳은 노비가 손을 써 두었나이다.”곧 울음을 터트릴 것 같은 숙희의 모습에 김단은 걱정이 되었다.“왜 그러느냐, 누가 괴롭히기라도 한 것이야?”숙희는 고개를 저었다.곧이어 눈물을 터트렸다.“노비도 압니다. 노비를 위하셨다는 것을요. 그래서 노비를 떠나셨지요. 하나, 노비도 아씨가 걱정이 됩니다.흑흑흑..아씨, 노비도 고된 일 정도는 할 줄 압니다. 이후에 이런 일이 또 생기면, 노비를 내보내시지 말아 주시 옵소서.”숙희는 이러한 기분이 싫었다.아씨가 장양강에 몸을 던지고, 한양에 홀로 남은 사실에 견디기 힘들었다.우연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하나 이번에는 어떠한가.자신을 위해서라는 것을 알고 있다.그저 아씨 홀로 감내해야 한다는 것에 걱정이 되었다.적어도 자신이 곁에 있다면, 아씨가 외롭지 않았을 것이다.며칠 동안 김단이 홀로 관저에 남아,서원 공주의 수발을 들었을 생각에 숙희는 마음이 아팠다.김단은 서둘러 숙희를 품에 안았다.“알겠어, 알겠어. 다음에는 내보내지 않겠다고 약조하마.”숙희는 훌쩍거렸다.“흑흑..약조 지키셔야 합니다!”울면서도 새끼손가락을 내미는 것은 잊지 않은 모양이다.마치 어린아이 같았다.김단은 숙희를 다독이고는, 자신의 새끼손가락을 걸었다.숙희의 안색은 그제야 한결 밝아졌다.그 다음 날.김단은 호출을 받아 궐로 들어갔다.길을 안내하는 내시는 김단을 데리고 어화원으로 향했다.초가을의 날씨.쌀쌀한 바람이 불

  • 대군, 사랑에 살다: 무수리의 반격   제691화

    서원 공주가 차가운 눈빛으로 김단을 바라보았다.눈빛에는 그녀를 향한 비웃음이 담겼다.“다른 이를 엮지 말라니, 그러하면 내 노여움은 자네가 감내하겠다는 뜻이오?”김단은 서원 공주의 눈을 직시했다.그녀는 조금이라도 물러 날 생각이 없었다.“만일 소인이 공주 마마를 이 고난에서 무사히 헤쳐 나갈 수 있도록 지켜 드린다면, 소인 또한 마마께 요긴한 인재라 할 수 있지 않사옵니까.”무슨 재앙이 닥칠 지 모르는 것처럼,자신을 필요로 하지 않다고 어찌 장담할 수 있으랴.김단의 말에 서원 공주도 머리를 굴렸다.위아래로 그녀를 훑어보고 물었다.“본궁이 자네를 세답방에 보냈소. 자네를 괴롭히라고 하루도 빠짐없이 사람을 보냈소. 어찌 본궁이 밉지도 않소?”“원한이란 본디 근원이 있기 마련이며, 그에 따른 업보가 따르옵니다. 소인이 당한 수모는 모두 임원이 시작한 일이옵니다. 오늘날 임원은 죽었으니, 그 업보는 갚았다고 할 수 있사옵니다.”더 이상 캐묻지 않겠다는 뜻이다.서원 공주는 김단을 뚫어져라 바라보았다.그녀의 눈빛에서 작은 가식이라도 찾아내고 싶은 모습이다.하나, 김단의 눈빛에는 진심밖에 보이지 않았다.짧게 탄식을 내뱉고는 말했다.“잘만 한다면, 본궁도 자네에게 무례하게 대하지 않을 것이오.”“공주 마마께 깊은 감사를 올립니다.”곧이어 김단은 손에 쥐고 있던 그릇을 건넸다.윤이가 그릇을 건네받고, 공손하게 서원 공주에게 가져다주었다.곧이어 김단이 입을 열었다.“공주 마마, 염려하지 않으셔도 돼옵니다. 이 약을 드시면 두 시진 동안 잠에 드시고, 두 시진이 지나면 제자리를 잡을 것이옵니다.”두 시진 동안 잠에 든다는 말에 서원 공주는 당황한 모습을 보였다.하나 김단의 자신만만한 모습을 보고는, 평양 원군의 관저에서 자신을 속이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다.잠시 뒤, 그릇을 건네받고는 한번에 들이켰다.약 효과는 금방 나타났다.서원 공주는 약을 마시자마자 어지러운 증상을 보였다.윤이가 서둘러 그녀를 부축하여, 침상으로 향했다.다행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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