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단은 방금 벗어 놓았던 옷을 걸칠 새도 없이 밖으로 달려 나갔다.“무슨 일이냐? 누가 이리 소리치는 것이냐?”숙희가 걱정스러운 얼굴로 그녀의 뒤를 바짝 따랐다.“쇤네도 모르겠습니다. 아씨 옷을 걸치십시오. 밖이 많이 찹니다!”하지만 김단은 자신의 옷 따위를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임원이 물에 빠졌다면 아마도 자기 별당에 있는 연못일 것이기에.그 옛날 유리잔 깨뜨린 죄로 세답방에 끌려가 고초를 겪었었다. 만일 임원이 이번 사고로 무슨 일이 생긴다면 임학이 당장 그녀를 죽여버릴지도 모른다.김단이 도착했을 땐, 물속에서 허우적거리는 임원이 보였다.얼어붙은 물속에서 커다란 구멍이 뚫려 있었다.돌다리 위에 몰려든 하인들이 어쩔 줄 몰라 했다.성큼성큼 다가간 김단이 그들에게 외쳤다.“뭣들 하는 것이냐? 당장 구하지 않고 뭐 하는 것이냐?”몇 명의 몸종들이 난처한 표정으로 답했다.“쇤네 때문에 아씨께서 정절을 잃으시면 어찌합니까?”“정절을 지키는 것이 생명보다 중하더냐?”김단은 말도 안 되는 말을 하는 몸종을 노려보더니 망설임 없이 물속으로 뛰어들었다.연못은 깊지 않았으나 찬 기운이 뼛속까지 스며들어 얼음장 같았다.연못 바닥은 진흙투성이라 발을 딛기가 어려웠다. 조금만 방심하면 가라앉을 수 있다.힘겹게 임원을 구해낸 김단이 밖으로 나오자, 숙희는 얼른 두터운 옷으로 두 사람을 단단히 감쌌다.“뭣들 하는 거야? 어서 의관을 불러와! 내가 두 분을 모시고 방으로 갈 테니 뜨거운 불을 지피고 따뜻한 생강차를 내오거라!”숙희의 화난 목소리에 구경하고 있던 다른 몸종들이 제각기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제야 임원의 몸종이 이곳으로 달려왔다. 몸종의 뒤에는 임학도 있었다.얼음물에 빠져 얼굴이 창백해진 자기 주인을 발견한 명희는 황급히 임원을 감싸안았다.“아씨 괜찮으시옵니까? 어찌 물에 빠지신 겁니까?”명희는 곧장 김단을 노려보며 따졌다.“아씨께서 우리 아가씨를 밀치신 거지요?”억울한 사람을 몰아가는 것은 3년 전 그대로였다.그녀가 뭐라
김단의 말에 임학은 정신이 아득해졌다. 그의 머릿속에 물속에서 발버둥 치는 그녀의 모습을 지켜보는 나인들이 떠올랐다.그는 뭐라 말하고 싶었지만 입이 쉽게 떨어지지 않았다.임학이 정신을 차렸을 땐 김단이 이미 자리를 뜬 뒤였다.“아씨…”명희의 울음소리가 그의 심기를 건드렸다.임원은 명희를 노려보며 말했다. “울기만 할 것이냐? 어서 의원을 불러오거라!”명희는 그제야 황급히 의원을 데리러 갔다.임학은 임원을 부축하여 매화당으로 향했다.얼마 뒤 의원은 임씨 부인과 함께 매화당으로 들어왔다.의원이 한편에서 임원의 진맥을 하고 있을 무렵 부인이 임학을 끌고 밖으로 나가 물었다.“어찌 된 일이오? 갑자기 물에 빠졌다니? 혹… 혹 단이가…”“어머님!”임학이 미간을 찡그리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단이가 원이를 구했습니다.”그는 한쪽에 서 있던 명희에게 손짓했다.“이리 오너라.”숙희에게 뺨을 맞아 얼굴이 부어있던 명희는 임학의 부름에 고개를 숙이고 서둘러 달려왔다.의도적으로 부인에게 자신이 맞았다는 것을 알리기 서인지 알 수 없었지만, 임씨 부인은 명희의 얼굴이 부어오른 것을 보고 깜짝 놀랐다.“네 얼굴은 왜 또 그 모양이냐?”명희는 말없이 임학의 눈치를 살폈다.임학은 명희를 한 번 흘겨보더니 물었다.“단이와 원한이 있는 사이냐?”속으로 깜짝 놀란 명희는 황급히 고개를 저었다.“아닙니다. 쇤네가 감히 아씨와 무슨 원한이 있을 수 있겠습니까!”“하면, 단이를 계속 모함하려 드는 연유가 무엇이더냐?”임학이 싸늘하게 물었다.자기가 알고 있는 누이는 절대 많은 사람들이 있는 곳에서 다른 이를 해칠 정도로 어리석지 않았다.게다가 임원과 김단이 밖으로 나온 뒤에야 임학은 명희와 함께 그곳에 도착했다.둘 사이에 있었던 일을 알고 있을 리 만무했다.3년 전에도 이 몸종의 증언 때문에 김단의 죄가 확실시되면서 세답방으로 끌려갔다.명희는 임학이 화를 참고 있는 것을 눈치챌 수 있었다. 이 자리에서 입을 잘못 굴렸다간 꼼짝없이 죽을 것
임씨 부인의 오랜 친우 덕빈이었다.물에 빠져있던 나인들은 그녀를 보자마자 울부짖었다.“덕빈마마…”“마마, 살려주시십시오.”상황을 파악한 덕빈은 얼굴을 찌푸리며 옆에 있던 상궁을 쳐다보았다.상궁은 얼른 아랫것들에게 지시했다.“당장 환복부터 하거라! 아랫것들이 고뿔에 걸리면 마마님들을 무슨 수로 모시단 말이야?”상궁의 불호령에 나인들은 울음을 멈추고 각자의 침방으로 돌아갔다. 나인들이 모두 흩어진 뒤에야 덕빈은 손에 막대기를 들고 있는 임학에게 차갑게 말했다.“본궁마저 때릴 작정이오?”정신을 차린 임학은 그제야 손에 든 막대기를 던지고 예를 갖췄다.“당치 않사옵니다.” “궐에조차 이리 막무가내로 구는데, 본궁에겐 그리하지 아니한다는 보장이 있소?”덕빈은 화가 나 보였다.임학은 그제야 자기가 성급하게 행동한 것을 알아차릴 수 있었다.세답방은 궐 내에서 가장 계급이 낮은 곳이지만, 어찌 되었든 궐의 일부였다.이 안에서 발생했던 일이 외부로 퍼져 사람들의 입방아에 오르면 임학은 물론 진산군댁이 고초를 겪을 것이다. 임학은 궐에 들어오지 말았어야 했다.3년 전 김단이 큰 처벌을 받았던 것도 공주자가의 가장 소중한 유리잔을 깨트린 죄를 물은 것도 있었지만 주상께서 진산군에게 경고하는 의미도 있었다.그렇기에 3년 간 아무도 김단을 찾아가지도 않은 것이다. 그녀의 안위도 궁금해하지 않았다.그들은 주상에게 충심을 표하기 위해 어심을 달래기 위해 항명하지 않았다. 그러나 누이가 고문당했던 것처럼 고초를 겪고 있는 나인들을 본 임학은 이성을 잃고 이런 짓을 벌인 것이다.그는 심호흡을 한 번 하더니 바닥에 꿇었다.“죽여주십시오, 마마. 소인이 저지른 잘못에 대한 벌은 기꺼이 받겠나이다.”덕빈은 화가 났지만 어릴 적부터 봐왔던 친우의 아들을 벌하는 게 쉽지 않았다.그녀는 손을 저으며 말했다.“이만 돌아가시게. 주상께는 본궁이 아뢰겠으니 이제부터 세답방에는 얼씬도 하지 마시오.”임학은 그녀의 명에 따를 수밖에 없었다.나인들을 혼내주긴 했
진산군은 김단과 임학을 번갈아 바라보았다.“덕빈마마께서 나서주지 않았으면 너는 물론이고 이 늙은 아비도 의금부로 끌려갔을 것이다!”바닥만 바라보던 김단은 헛웃음이 났다.임학에게 하는 말 같았으나, 이 말은 그녀에게 들려주는 것이다. 바로 그때, 밖에서 임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아버님…”숨넘어가는 듯 가녀린 목소리가 들려왔고 김단은 자기도 모르게 미간을 찡그렸다.임원은 몸종의 부축을 받아 비틀거리며 들어왔다.얼굴이 피로 범벅된 임학을 발견한 임원은 눈물을 떨구며 그의 옆에 무릎을 꿇었다.“아버님, 노여움 푸세요. 콜록…”격렬하게 기침을 하며 애원하는 여식의 모습이 애처로웠던 진산군은 그녀의 몸종에게 고함 질렀다. “당장 너희 아씨를 모시고 나가거라!”아들의 얼굴을 살피던 임씨 부인도 다급히 여식에게 다가가 부축했다.“고뿔이 다 낫지도 않았거늘, 어찌 이리 무모하더냐?”“오라버니를 벌하신다 들었습니다.”하염없이 눈물을 흘려대며 애원하는 임원이다.“오라버니를 용서해 주셔요. 오라버니가 큰 잘못을 저질렀기에 아버님께서도 이리 화나셨겠지요. 하오나 오라버니는 결코 불효자가 아니옵니다. 분명 말 못 할 이유가 있을 것입니다. 소녀를 봐서라도 오라버니를 용서해 주세요.” 여식의 간청에 진산군의 화가 눈 녹듯 사그라들었다.자신을 위해 아버님에게 간청하는 누이에게 큰 고마움을 느낀 임학의 시선이 다시 김단에게 향했다.그러나 김단은 무표정한 얼굴로 어떤 감정 변화도 보이지 않았다. 그녀의 냉정한 모습에 임학은 가슴이 아팠다.아픈 몸을 이끌고 나와 부친에게 간청하는 누이와 자신에게 눈길조차 주지 않는 누이는 완전히 상반되었다. 그녀를 괴롭혔던 나인들과 상궁에게 똑같이 갚아준 자신에게 눈길도 주지 않자 억울한 마음이 들었다.분노가 많이 사그라든 진산군은 여전히 어두운 얼굴로 말했다.“알겠다! 오늘 있었던 일은 교훈으로 삼거라!”말을 마친 진산군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나가 버렸다.임씨 부인은 임학의 몸종에게 일러주었다.“어서 의원을
김단은 덕빈궁의 뜰에서 불안한 마음으로 서 있었다.세답방에는 3년 있었지만 덕빈궁은 처음이다. 그러나 덕빈궁은 세답방과 느껴지는 기운이 비슷했다. 숨 막힐 듯한 불안감을 느끼게 하는 곳이었다.3년 전처럼 다시 집으로 돌아가지 못할까 봐 두려웠다.얼마나 서 있었을까, 차가운 날씨 때문에 발가락은 점점 감각을 잃었다. 그때 덕빈궁의 나인이 그녀를 안으로 안내했다.문을 열자, 따듯한 공기가 얼굴을 스쳐 지나갔다.김단은 코끝이 찡해냈다. “과연 빨래를 잘했더군.”덕빈의 목소리가 그녀의 귓가에 들려왔고 김단은 황급히 무릎을 꿇고 예를 갖춰 말했다.“마마, 그간 강녕하셨사옵니까?”덕빈은 가볍게 웃더니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말했다.“과연, 자네 모친 말대로군.”그녀가 말하는 모친은 임씨 부인이었다. 김단은 말없이 고개를 숙여 바닥을 내려다보았다.덕빈은 방안을 지키고 있던 사람들을 모두 물렸다.방문이 닫히자 따뜻한 기운이 그녀를 감쌌지만 김단은 마냥 편안하지는 않았다. 알 수 없는 불길함만 들었다.덕빈은 섬섬옥수 같은 손을 그녀에게 내밀었다.“자.”부드러운 덕빈의 목소리가 이질적으로 들렸다.김단은 어리둥절해서 덕빈의 손을 잡았다.그녀를 자리에서 일으킨 덕빈의 시선이 동상에 걸린 김단의 손에 머물렀다.“어제 빨래를 하라 명한 것에 속상하진 않았소?”덕빈이 옅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그녀를 걱정하는 듯한 어투에 김단은 미간을 살짝 찌푸리더니 고개를 저었다.그녀가 세답방에서 3년간 겪었던 수모에 비하면 그것은 아무것도 아니었다.김단을 자기 옆에 앉힌 덕빈이 계속해서 물었다. “본궁을 탓하지 말게. 세답방 궁녀들이 누구의 명 때문에 그리 한 것인지 잘 알고 있으리라 믿소. 하나, 낭자의 오라비가 충동적으로 군 것은 변하지 않는 사실이오. 본궁이 낭자를 벌하지 않았다면 전하께서 진산군댁을 가만두진 않았을 것이오.”김단도 이해했다.진산군댁의 지위는 예전 같지 않았다. 그들의 생사는 덕빈이나 다른 후궁들의 말 한마디에 좌지우지될 정도였
순간 김단은 가슴이 철렁했다. 나인도 깜짝 놀란 듯 김단과 소한을 번갈아 쳐다보았다.“알겠사옵니다.”나인은 곧장 떠났다.소한은 김단에게 손짓했다.“낭자, 가지요.”김단은 어쩔 수 없이 소한과 함께 입구로 향했다.오늘따라 궁궐 안의 길이 유난히 길게 느껴졌다.아무리 걸어도 커다란 궐문이 보이지 않았다.둘은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앞으로만 나아갔다.둘 사이에는 신발 밑창이 바닥에 닿을 때마다 나는 소리만 있었다. 소한의 기억 속엔 언제나 시끄럽게 떠들던 그녀만 있었다. 종일 쉬지 않고 떠들었던 그녀이기에 이런 침묵이 어색하게만 느껴졌다. 결국 참다못한 그가 먼저 입을 열었다. “낭자 오라버니의 일은 나도 들었소. 어심이 어지러웠던 것은 사실이나 크게 노여워하시진 않으셨소. 그러니 걱정하지 마시오.”자기를 위로하는 소한이 낯설게만 느껴졌다. 하지만 그녀는 임학의 걱정은 하지 않았다.아무 말도 하지 않는 그녀의 모습에 소한이 다시 말을 이었다. “덕빈마마도 진산군댁의 안위를 위해 그리한 것이니 마음에 두지 마시오. 큰 마님 생각도 해야지 않겠소.”덕빈의 의중도 그녀는 알고 있다. 이런 것은 그녀가 3년 전에 겪었던 고초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기에.소한의 목소리가 그녀의 등 뒤에서 들려왔다.“단 낭자.”순간, 그녀의 심장이 뛰었다. 3년이나 지난 뒤에도 자신을 불러주는 소한에게 심장이 반응할 줄 그녀도 몰랐을 것이다. 그녀는 얼른 자기 감정을 억제했다.소한은 조만간 임원의 낭군님이 될 사람이었고 명목상 그녀와 사돈이 될 사내였다.그에게 감정을 품어서는 아니 되었다.아무 대꾸도 하지 않는 그녀의 모습에 소한은 미간을 찌푸렸다.“언제부터 말수가 준 것이오?”소한은 그녀가 입을 다물고 있는 게 싫었다.그의 질문에는 항상 대답했던 김단이다. 하나, 오늘 김단은 인사 외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갑작스러운 질문에 김단은 살짝 당황했다. 그녀는 뒤늦게 자기가 아무 말도 하지 않은 것을 알아차릴 수 있었다. 세답방에선
김단은 갑작스러운 질문에 큰 마님을 살펴보았다.자신을 바라보는 큰 마님의 시선에서 소한과 다시 잘되길 바라는 큰 마님의 뜻을 알아차릴 수 있었다. 소한에게 아무 감정이 없다고 분명히 말했음에도 큰 마님의 눈에는 어릴 적부터 알고 지낸, 주상전하의 신뢰를 한 몸에 받는 소한가 그녀의 정혼자로 딱 맞았다.하지만 둘 사이의 감정은 오래전에 끝났고 소한의 곁에는 임원이 있었다. 이제 와서 그녀가 끼어들 수도 없었고 둘 사이에 끼어들 생각도 없었다.김단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조모님, 소 장군께서 임원 낭자에게 줄 수정과를 쇤네에게 부탁하여 전달하게 했습니다. 두 사람이야말로 부부의 연이지요. 하오니 더는 그런 생각 마십시오.”큰 마님은 한숨을 길게 내쉬며 한탄했다.“아이고! 남녀 사이의 정이 어디 한 번에 끊어지더냐? 난 그저 너희 둘이 전부터 잘 지내왔기에 아쉬워서 그런 것이다.”김단이 입꼬리를 살짝 올리며 그녀의 어깨에 머리를 살짝 올렸다.“소녀는 그저 조모님과 함께하고 싶사옵니다. 진심이옵니다.”어릴 적부터 같이 자라다시피 했기에 큰 마님이 이리 아쉬워하는 것도 이해가 되었다. 하지만 둘은 이미 오래전에 끝났다. 더는 소한 때문에 괴롭게 살고 싶지 않았다.그녀는 그저 조모님의 곁을 지키며 평화롭게 살고 싶었다.어둠이 깃들자 김단은 큰 마님을 모시고 방에서 나왔다. 몸종들은 풍성한 음식을 갖춰놓았고 진산군과 정부인은 진작에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김단의 부축을 받으며 나오는 큰 마님을 발견한 부부는 자리에서 일어나 그녀를 맞았다. 큰 마님은 김단의 부축을 받으며 원탁의 상석에 천천히 앉았다.“모두 자리에 앉게.” 큰 마님은 오늘 유난히 기분 좋아 보였다. 그간 김단의 자리가 계속 비어 있었던 탓에 그녀는 항상 우울했었다. 다행히 올해는 김단도 자리에 있었다. 흥이 난 큰 마님에 부부는 김단을 바라보며 말했다.“단아, 너도 앉거라.”고개를 살짝 끄덕인 김단은 어색하게 자리를 둘러보았다. 예전에는 모친의 곁에 앉았지만 지금은
사실 김단도 이 집에서 나가고 싶었다.그러나 그녀는 가진 돈이 한 푼도 없었고 알고 있는 친구도 없었기에 떠날래야 떠날 수가 없었다.게다가 조모님은 아직 여기에 계셨다. 조모님을 홀로 남겨두고 맘 편히 떠날 순 없었다.그렇기에 진산군과 임학이 아무리 듣기 싫은 소리를 해도 묵묵히 참을 수밖에 없었다. 그녀의 시선이 그릇에 닿았다. 이 사달이 난 원인이었다. 그녀는 천천히 그릇에 있는 고기를 한 점 집어 입에 넣었다.임학이 차갑게 웃으며 말했다. “이제야 먹을 마음이 생긴 것이냐? 진산군댁 첫째 아씨 성정 한 번 맞추기 어렵구나.”김단은 임혁을 한 번 쳐다본 뒤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녀는 진산군에게 예바르게 말했다. “노여워 마십시오. 의도적으로 도련님께서 집어주신 음식을 피한 것이 아닙니다. 몇 해 전에 몸이 상하면서 비린내가 나는 음식을 먹으면 발진과 아양으로 견딜 수 없었사옵니다. 하여 금일도 음식을 먹지 못한 것입니다. 다른 해산물에도 손을 대지 않았사옵니다.”김단의 말에 진산군 일가는 깜짝 놀라 그녀의 앞에 놓인 접시를 쳐다보았다. 그녀의 말대로 그녀는 어떤 해산물도 먹지 않았다.임학은 믿기 어렵다는 듯 말했다.“위병이 나 먹지 못한다면 믿었을 것이다. 한데 네가 제일 좋아하는 생선을 먹고 발진이 났다는 것을 나더러 믿으라는 것이냐? 내 한 번도 그런 모습을 보지 못했다!”김단은 조용히 옷소매를 거둬 자신의 팔을 보여주었다.매질에 상처가 가득 팔에는 발진 증세가 보이기 시작했다.“이럴 수가! 어서 의원을 부르거라!”부인이 다급히 외쳤다. 바로 이때, 임원의 기침 소리가 거세졌다.목에 무엇이 걸리기라도 했는지 숨이 가쁘게 기침하는 임원의 모습에 부인은 김단은 뒷전에 두고 임원부터 살펴보았다.그러나 임학의 시선은 여전히 김단의 팔에 향해 있었다. 이런 꼴을 보려고 한 말이 아니었다.그저 가족들에게 체면을 주지 않는 그녀가 얄미워 모질게 말했던 것이다. 생선을 좋아했던 누이의 얼굴에 어느새 발진 증세가 일어나기
진산군은 일부러 혹독한 말을 한 것이다.김단에게 절연이라는 말은 곧 그녀가 먼저 시작한 것이라고 알려 주고 싶었다.또한 그녀가 후회하거나 두려워하기를 바랐다.하지만 김단은 그에게 몸을 낮추어 예의를 표했다.“하신 말씀을 반드시 지켜주시기를 바라옵나이다.”그녀의 한 마디가 진산군의 심정을 바닥으로 내려 앉혔다.하지만 김단은 평온했다.자리에 있던 사람들을 쓱 훑어보고 다시 입을 열었다.“별도로 분부하실 일이 없으시옵거든, 저는 물러가 보겠나이다.”몸을 돌려 임원의 방문 앞에 다다랐을 때, 임 씨 부인이 대성통곡하는 소리가 들렸다.심장이 쪼그라들면서 아파 오기 시작했다.아픔에 김단의 미간이 저절로 찌푸려졌다.결국에 그녀는 외면을 선택했다.하지만 울음소리에 고개를 돌릴 수밖에 없었다.임 씨 부인이 임학의 어깨에 기대어 울고 있었다.그녀의 모습에 김단은 의아해했다.임 씨 부인이 잘 운다는 것은 진작에 알고 있었다.그녀는 진산군과 한 편을 먹고 그저 임원을 보호하려 했을 뿐이다.하지만 오늘은 달랐다.마치 김단을 보호하려는 것 같았다.'이게 어떻게 된 일 일까'김단은 생각에 빠졌다.그것도 잠시, 금방 생각을 접고 걸음을 옮겼다.한편 방 안.진산군은 남은 기운이 빠진 것 마냥 그대로 의자 위에 누웠다.그리고 한참이 지나고 나서야 제정신을 차렸다.그는 믿을 수 없는 사실에 입을 열었다.“저 계집이 나와 절연을 하려고 하다니…”자신이 기른 여식이다.직접 말 타는 것과 화살을 쏘는 것을 가르쳤으며 그의 목에 종종 그녀를 태워 밤하늘을 바라보곤 했다.그녀를 위해 세상에서 제일 이쁜 매화를 알아 본 적도 있었다.자신이 무척이나 아끼던 여식이었다.하지만 그 여식이 자신과 절연을 하려고 한다.임 씨 부인이 그를 때렸다.“대감! 저 계집의 성격이 누구와 닮았는지 아직도 모르오? 그렇게 몰아붙이면 더 고집부리려 할 게 뻔하지 않소, 흑흑흑..”진산군은 부인의 말에 무언가 깨달은 듯 하다.저번에도 김단의 태도에 탄식하지 않았는
씩씩거리던 진산군은 김단의 말에 잠시 멈칫했다.마치 믿을 수 없는 말을 들은 것 같은 반응이다.“무, 무슨 뜻이냐? 네가 정녕 임 씨 가문과 혈연을 끊고 싶은 것이냐?”그녀는 15년 동안 길러준 은혜를 이미 갚았다고 했다.하지만 무엇을 갚았는지 알 수 없다.머리가 자신의 주먹보다 더 작았던 아기 때부터 그녀를 길렀다.귀한 아씨가 될 때까지 그녀에게 쏟은 무수한 감정을 무슨 식으로 갚는 단 말인가.진산군은 분노에 차서 몸이 부들부들 떨렸다.반대로 김단의 표정은 평온했다.임 씨 부인은 김단이 혹독한 말을 할까 봐 서둘러 입을 열었다. “아닙니다, 단이는 그러한 뜻이 아닙니다. 대감께서는 화를 푸세요. 단아, 지금 아버지께서 많이 화가 나신 상태다. 그만하거라.”그녀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김단이 다시 입을 열었다.“만약 조모가 나서지 않으셨다면, 저를 진산군 관저의 여식으로 삼으려는 생각은 하셨사옵니까?”세답방에서 모욕과 학대를 받으면서 그녀는 그들의 가족이 되기를 포기했다.김단의 목소리는 부드럽고 물처럼 고요했다.하지만 천 년을 얼린 얼음처럼 사람의 마음을 순식간에 얼어붙게 했다.옆에 있던 임학도 다급해졌다.“김단! 그게 무슨 말이야!”그는 낮은 목소리로 그녀를 꾸짖었다.그리고 진산군의 눈치를 한번 보고는 다시 김단에게 말했다.“잠시만이라도 져줄 수는 있지 않은가!”침상에 누워있던 임원도 자리에서 일어났다.상체를 반쯤 일으키고 천천히 입을 열었다.“아버님, 소녀가 스스로 넘어졌사옵나이다. 누이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사오니, 누이와 다투지 마시옵소서..”임원이 눈물을 닦으며 말했다.김단이 임원을 흘겨 보았다.눈빛에는 임원을 향한 증오가 가득했다.하필 지금 나서서 저런 말을 하는 의도가 무엇인가.그저 그녀의 '무정함' 을 발판 삼아 자신의 '선함' 을 강조하려는 것이 아닌가.하지만 진산군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그저 김단을 뚫어져라 쳐다보았다.그는 김단이 모친의 설득을 이해하고, 형제의 암시를 이해하고, 동생의
임 씨 부인은 말하면서 김단에게 눈치를 주었다.김단은 금방 알아챘다.한 쪽은 선한 척 연기하고, 또 한 쪽은 악한 척 연기하는 중이다.하지만 김단은 이해가 가지 않는 듯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제가 어찌 용서를 구해야 하옵니까?”“무엄하도다!”진산군이 고함을 쳤다.“네가 원이한테 무슨 짓을 했는지 정녕 모르는 것이냐!”김단은 눈썹을 살짝 치켜들었다.그리고 차가운 눈빛으로 임원을 바라보았다.“아씨께서 스스로 넘어 지셨습니다.저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사옵니다.”“어찌 감히 거짓을 고하느냐! 소 장군이 네가 원이를 밀었다고 일러 두었다.”진산군은 흥분을 가라앉히지 못했다.그리고 말을 계속 이어 갔다.“이 아비가 어렸을 때부터 네게 가르쳐 주지 않았느냐. 잘못을 저지르는 것을 두려워 하지 말고, 인정하지 않는 것을 두려워하라고 말이다! 보아하니, 너는 다 잊었구나!”그의 말에 김단은 그저 헛웃음이 나왔다.“다 잊으신 분은 대감마님이 아니십니까?”3년 전, 임원이 유리그릇을 깼을 때 진산군은 직접 그녀를 혼내지 않았기 때문이다.진산군은 목에 들어간 것 마냥 말문이 막혔다.이때, 옆에 있던 임학이 입을 열었다.“걸핏하면 삼 년 전 일을 꺼내는 이유가 무엇이오? 원이는 삼 년 전에야 우리의 품으로 돌아왔소. 궐에 적응하지 못하여 유리그릇을 깨뜨린 것이 두려워 인정을 못한 것이 무엇이 문제요? 자네는 15년 동안 원이를 대신하여 살지 않았소, 잠시 원이의 죄를 덮어 주는 것이 무엇이 그리 잘못되었소? 낭자는 그저 이득만 취하려고 하는 것이오? 하지만 오늘은 그리하지 못할 것이오, 나와 소한이 직접 눈으로 보았소. 그런데 더 하고 싶은 말이 있는 것이오?”그의 한 마디, 한 글자가 김단의 가슴에 못처럼 박혔다.하지만 이러한 그의 태도는 이미 적응 한 지 오래다.그녀는 임학을 한번도 쳐다보지 않았다.냉정한 눈빛으로 침상 위에 있는 천막을 바라보았다.“먼저, 삼 년 전의 일은 소인이 아닌 도련님께서 먼저 말씀하신 것이옵니다. 그리고 소
이런 눈빛은 김단이 3년 전, 소한이 임원의 앞을 가로막았을 때의 모습을 떠올리게 했다.그때도 지금처럼 한마디도 하지 않고,단지 눈빛 하나로 그녀가 반박하려는 모든 욕망을 끊었다.이렇게 생각하니, 김단의 마음은 또 아팠고, 3년 전의 자신이 가소롭기만 했다.그녀는 그때 도대체 소한을 얼마나 사랑했으면, 어떻게 그의 눈빛 하나에 그녀는 아무 말도 못 했을가?임학도 임원의 상처를 보고 놀라서 김단을 세게 밀었다.“너는 왜 항상 무고한 사람에게 화를 내는 거냐? 원이가 너를 위해 기성복 가게를 여러 날 돌아다녀 가장 좋은 옷을 골라 주었는데, 너는 이런 식으로 보답하는 것인가? 잘 들어, 원이에게 무슨 일이 생기면 나는 절대 너를 가만두지 않을 것이다!”임학은 이렇게 말하고 소한을 쫓아갔다.이렇게 큰 정원에 김단만 남았다.바람이 적적함을 불어오기도 하고 오래 참았던 눈물도 마르게 했다.모든 게, 변하지 않았다!3년 전, 그들은 모두 임원의 편에 섰고, 3년 후에도 그들은 여전히 임원을 따라갔다. 버려진 사람은 오직 그녀뿐이었다.이렇게 생각하자, 김단은 또 깊은숨을 들이마시며 마음의 감정을 억눌렀다.혼자면 뭐 어때?세답방에서도 3년 동안 혼자서 견뎌왔잖아?세답방에서도 견딜 수 있는데, 이 조그마한 진산군댁에서 견딜 수 없단 말인가?이렇게 생각하자, 김단은 자신도 모르게 주먹을 꽉 쥐었다.이때, 문밖에서 갑자기 작은 머리가 보였다.숙희는 초롱초롱한 눈빛으로 정원에 다른 사람이 없다는 것을 확인하고서야 뛰어 들어왔다.“아씨, 괜찮으십니까? 방금 소 장군이 둘째 아씨를 안고 가는 것을 보았고, 도련님도 화내면서 가셨는데, 그들이 또 아씨를 괴롭혔습니까?”김단은 왠지 코끝이 시큰거렸다. 그녀는 고개를 저으며 가볍게 웃었다.“아니, 이 세상에 아무도 나를 괴롭힐 수 없어!”“그렇죠!” 숙희는 격동되기도 하고 궁금하기도 했다.“둘째 아씨는 상처를 입었고, 도련님 얼굴도 빨갛게 부었던데요, 아씨가 그랬습니까?”김단은 임학의 얼굴을 때린
임학도 이 일을 기억하고 있었다. 김단의 말을 듣고 마음이 약간 찔렸지만, 여전히 꿋꿋하게 말했다.“서화청은 이미 옛날과 많이 달라졌다. 그는 지금 그의 아버지를 따라 호조에서 일하고 있다. 얼굴도 그 정도면 괜찮은 셈이다.”‘팍!’김단은 마침내 참지 못하고 임학의 따귀를 때렸다.임학은 순식간에 두 눈을 부릅뜨고 분노를 억제하지 못하고 김단을 향해 주먹을 휘두르려 했지만, 김단 눈에 맺힌 눈물을 보더니, 주먹은 김단 눈앞에서 멈췄다.무언가에 가로막힌 듯이 더는 앞으로 나아가지 못했다.김단은 그를 뚫어지게 쳐다봤다. 눈에는 눈물 외에도 원망의 눈빛이 가득 담겨 있다.그녀는 8살 되던 해에 임학이 서화청이 자기를 익사할 뻔했다는 것을 알고 달려들어 서화청의 몸에 타고 때린 것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다. 옆에 있던 네, 다섯명의 어른들도 끌어내지 못했다. 서화청은 임학에게 맞아서 이빨 두 개를 떨어뜨리고 용서를 빌었다. 하마터면 기절할 뻔했다.임학의 주먹에도 상처가 생겼지만, 조금도 개의치 않고, 그저 그녀의 앞에 서서 서화청을 향해 악랄하게 위협했다.“다시 내 여동생 앞에 나타난다면, 나는 이 목숨을 걸어서도 너를 때려죽일 것이다!”그 후, 서화청은 다시는 그녀 앞에 나타나지 않았다.멀리서 봤어도 바로 도망갔다.그러나 지금 서화청은 임학이 직접 쓴 책자에 나타나 그녀의 맞선 명단에 나타났다.김단은 자신을 아끼던 오라버니는 이미 3년 전에 죽었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사랑과 총애를 받은 15년은 정말 실제로 존재했다!그녀는 15년 동안의 수많은 따뜻한 추억으로 세답방의 3년을 버틸 수 있었다. 그러나 지금 임학은 그 15년 동안의 좋은 추억마저 물거품으로 만들고 있다!그녀를 위해 다른 사람과 필사적으로 싸우던 임학을 갈기갈기 찢어버렸다...두 사람은 계속 대치하고 있다.임학도 꽉 쥔 주먹을 놓지 않았고, 김단도 눈물을 흐르지 않았다.그녀는 절대로 이 나쁜 놈 앞에서 눈물을 흘리지 않을 것이다!두 사람이 이렇게 대치하는 것을 보고
임학의 화 난 얼굴은 흉악해 보였다. 그러나 이 흉악한 얼굴이야말로 김단이 익숙한 것이다.조금 전에 부드러운 모습은 단지 지난날 오라버니의 가면을 쓴 사람 같았다, 정말 역겹다!김단은 차갑게 웃었다.“제가 조모와 약속한 이상 그렇게 할 것입니다. 하지만 도련님도 큰 기대는 하지 마십시오.”말을 마치자, 그녀는 몸을 돌려 떠나려 했다.그러자 임원이 황급히 다가와서 김단의 길을 막았다.“언니, 제가 할 말이 있는데, 해도 되겠소?” 이 위선적인 얼굴을 보고, 김단은 조금도 망설이지 않고 임원의 말을 끊었다.“하지 마오.”임원이 잠시 멍했다. 김단이 이렇게 그녀의 체면을 깎을지 몰랐다.그러나, 그녀는 여전히 말하려고 했다.그녀는 입술을 깨물고 큰 억울을 당한 것처럼 눈물을 글썽였다.“언니가 듣기 싫어도 난 꼭 해야겠소. 언니가 오라버니와 저를 싫어한다는 것을 알고 있소. 그러나 조모의 몸은 방금 보시다시피 좋지 않소. 조모의 유일한 소원이 언니가 시집가는 모습을 보는 것인데, 정말로 조모에게 아쉬움을 남겨야 하겠소?”말을 하면서 눈물을 흘리는 임원의 진실 어린 모습은 임학의 마음을 아프게 했다.그는 깊이 숨을 들이쉬고, 마음속의 분노를 억누르며 말했다.“원이는 조모를 모신 지 3년밖에 안 됐지만 벌써 효심이 가득하구나. 너는 조모의 사랑을 받으며 컸는데도 어찌 원이보다 못하느냐?”이 말을 듣고, 김단은 오히려 화가 나서 웃었다.“당신들은 지금 조모가 나의 유일한 약점이라는 것을 알고 조모의 건강은 안중에도 없고, 나를 여기로 부르지 않았습니까? 나는 이미 연석에 갈 것이라고 약속했는데, 왜 이렇게 사람을 못살게 구는 것입니까?”그녀는 눈썹을 찌푸리며 두 사람을 봤다.“설마, 당신들은 정말 나의 결혼 대사를 결정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겠죠?”조롱하는 말투는 임학을 격노시켰다. 임학은 다가가 김단의 팔을 잡았다.“내가 왜 결정 못 하는데? 네 마음속에 정암 그 녀석밖에 없는 거야? 내가 진짜로...”김단은 임학의 손을 뿌리치
임학은 웃으며 말했다.“원이는 항상 부드럽고, 착하고 철이 들었지.”임학과 큰 마님의 칭찬을 듣고 임원은 수줍어서 고개를 숙이고 얼굴에는 웃음꽃이 활짝 폈다.그런데, 김단의 표정은 여전히 쌀쌀했다. 아마도 김단이 싫어한다는 것을 알아봤는지, 큰 마님은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단이야, 그냥 가서 한 번 보는 거야. 마음에 드는 사람이 없으면 돌아오면 돼.”김단은 깊은숨을 들이쉬고 나서야 억지로 웃음을 지으며 큰 마님을 향해 말했다.“조모께서는 이렇게 급하게 단이를 시집보내고 싶어요? 단이는 조모와 몇 년 더 같이 있고 싶어요!”김단의 말을 듣자, 큰 마님은 눈물이 글썽거렸다.큰 마님은 김단의 머리를 어루만지며 상냥하게 바라보았다.“단이가 제일 착하지. 그러나 난 단이 곁에 얼마 오래 있지 못할 것 같구나...”그래서 그녀는 자신이 살아 있을 때 김단을 다른 사람의 손에 맡기고 싶었다. 김단이 행복하게 사는 모습을 봐야 그녀는 안심하고 떠날 수 있을 것 같았다.큰 마님의 말을 듣자, 김단의 마음도 따라서 떨렸다.그녀는 큰 마님의 살아 계시는 날이 많지 않다는 것을 안다.전에 같은 장소인 여기에 앉아서 자신과 이야기를 나눌 때는 생기가 넘쳤지만, 지금은 그녀의 머리를 만지는 손이 심하게 떨고 있다.만약 그녀의 일이 아니었다면, 큰 마님은 절대로 일어나지 않고 침대에 누워 휴양하고 있었을 것이다. .김단은 자신의 혼사가 조모의 유일한 걱정이라는 것을 알고, 더는 거절할 수 없어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알았어요, 조모의 말씀을 따를게요.”“그럼, 제가 가서 준비하겠습니다!”임학은 바로 일어섰고, 표정이 매우 흥분되었다.아주 급한 것 같다.그는 김단에게 잘해줄 수 있다고, 김단의 행복을 위해 노력할 수 있는 좋은 오라버니라는 것을 급히 증명하고 싶었다.큰 마님도 흐뭇하게 웃었다.“역시 단이가 제일 좋아!”말하는 사이에, 이미 피로가 드러났다.수 나인은 이 상황을 보고 바삐 앞으로 나가 부축하였다.“큰 마님, 피곤하신거
3일 후.안채의 시녀가 별당에 와서 김단에게 큰 마님께서 부르신다고 전했다. 그녀가 연금이 풀리는 날이 아직 안 됐는데, 큰 마님이 부르신다고 해서 정말 걱정됬다.그녀는 큰 마님의 몸에 이상이 있어, 이렇게 급하게 부르는 것이 아닌가 생각해서 빨리 안채로 갔다.안채에 들어서자, 그녀는 방에 들어가기도 전에 황급히 불렀다.“조모!”심지어 울먹였다. 그러나, 집 안에 있는 사람을 본 후, 김단은 멍해졌다.큰 마님은 상석에 앉아, 편찮아 보였지만, 입가에는 미소를 띠고 있었다.그리고 임학과 임원도 있었다.이게 무슨 상황이지?김단을 보자, 큰 마님은 바삐 그녀를 향해 손을 흔들었다.“단이야, 어서 오거라!”김단은 그제야 앞으로 다가가 큰 마님 곁에 앉았다. 그리고 경계하는 눈빛으로 임학을 보고 나서야 큰 마님을 향해 부드러운 목소리로 물었다.“조모께서 급하게 부르신 데는, 무슨 기쁜 일이라도 있으십니까?”“당연하지!”큰 마님은 다정하게 김단의 손을 두드렸다. “네 오라버니가 드디어 날 기쁘게 하는 일을 한 가지 했지. 뭐야!”이 말을 듣고, 김단은 임학을 힐끗 쳐다보고, 의심하며 물었다.“도련님이 무슨 일을 했길래, 조모가 이렇게 기뻐요?”“하하하, 자, 이것 좀 봐.”큰 마님은 말하면서 책상 위의 책자 한 권을 들고 김단에게 건네주었다.김단이 받아서 뒤져보니 모두 명단이었다.태부의 손자, 호조판서의 아들, 예조판서의 아들...이게 뭐지?김단이 물어보기도 전에 임원은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언니, 이 책자의 명단은 이미 부모님도 보셨고, 방금 조모도 보셨는데, 모두 칭찬이 자자하오!”큰 마님도 웃음기가 가득했다.“네 오라버니가 너를 위해 주선해 주려고 연석을 마련한단다, 이것은 연석에 올 사람들의 명단이다. 마음에 들어?”김단이 마음에 들든 말든, 큰 마님은 틀림없이 마음에 들 것이다.이 명단에 있는 사람들은 모두 권력과 세력이 있는 집안인데, 큰 마님이 봤을 때 김단에게 어울린다고 생각했다.그런데... 김단
“신분이 너무 낮아!"임학은 미간을 찌푸렸다.“일반 백성들에게 정암의 조건이면 괜찮겠지만 단이는 진산군댁의 큰 아씨이다. 어찌 종사관 따위에게 시집갈 수 있는가!”단이는 진산군댁의 큰 아씨이다.왠지 모르게 이 말을 들은 임원은 질투했다.그러나 그녀는 빨리 감정을 다잡고 임학을 향해 달콤하게 웃었다.“오라버니가 세상에서 가장 좋아요. 항상 저와 언니를 생각해 주시고...”그녀의 말은 임학 마음속의 분노를 조금씩 가라앉게 했다.임학은 그녀를 한 번 보고, 손으로 그녀의 머리를 가볍게 문질렀다.“단이도 너처럼 내 마음을 알아줬으면 좋겠다.”“언니도 알게 될 것입니다.!” 임원은 여전히 달콤하게 웃었다.“언니가 지금 이해하지 못해도 앞으로 다 알게 될 것입니다!”임학은 입꼬리를 올리며 웃었다.“그랬으면 좋겠다!”임원은 머리를 임학의 어깨에 기대었다.“그러나 오라버니께서 이렇게 언니와 정암을 갈라놓으면 언니는 틀림없이 오라버니를 미워할 것입니다.”이 말을 듣고, 임학의 얼굴은 또 굳어졌다.“갈라놓는다고 할 수는 없지.”함께 있는 사람을 갈라놓는다고 하지, 지금은 그저 그들이 함께 있는 것을 대비하는 것이다.임원은 다소 이해하지 못했다.“어쨌든 명정대군이 세상 뜬 후 언니는 상심이 컸을 것입니다. 오라버니는 또 정암도 언니 옆에 못 가게 하고..., 오라버니께서 언니를 위해 선 자리를 만들어 주는 게 어떤가요?”이 말을 듣고, 임학은 멍해졌다.“안 그래도 내가 단이를 위해 적합한 사람을 고르고 있다만, 단이가 마음에 들지 않을까 봐 두렵다.”어쨌든, 김단은 지금 자기를 싫어한다. 아마, 자기가 선택한 것이라면 모두 마음에 들지 않을 것이다!임원은 그 말을 듣고 입을 삐죽거리며 고개를 들어 임학을 바라보았다.“오라버니는 연석을 마련하여 적합한 사람을 모두 모아서, 언니가 스스로 선택하게 하면 되죠."임학의 눈빛이 반짝이었다.정말 좋은 생각이다!그가 먼저 신분으로 선별한 후에, 김단이 마음에 드는 사람을 선택하게 하면 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