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그녀와 함께 하면서 매우 잘 보살펴줬다. 분명 월급을 주는 건 선우인데 정윤은 그녀를 더 향해 있었다.“아참, 윤아 님. 요 며칠 밥 잘 드시고 계신다는 거 아직 대표님께 말씀드리지 않았어요. 조금 더 마음 졸이게 하려고요.”마치 윤아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아는 사람처럼 정윤이 한마디 보충했다.윤아는 입꼬리를 올리며 웃었다.“고마워요.”정윤이 잘못 본 게 아니었다. 윤아가 진짜 웃은 것이다. 정윤은 그 미소에 따라서 웃음을 지었다. 이렇게만 나간다면 윤아 님은 앞으로 문제없겠지?“별말씀을요. 앞으로도 잘 챙겨드릴게요. 매일매일 지금처럼요.”매일?윤아는 시선을 아래로 늘어트린 채 대꾸하지 않았다. 가능하다면 정말 한시라도 빨리 이곳을 떠나고 싶었다.여기를 떠나면 이곳에 있는 사람도 다시 볼 일이 없을 것이다.윤아는 정윤의 말에 대꾸하지 않았다. 하지만 정윤이 재잘재잘 계속 떠들어댔다.“윤아 님, 처음엔 밥을 계속 안 드시니까 너무 걱정됐어요.”며칠 전 얘기가 나오자 윤아는 할 말이 없었다. 만약 우진이 윤아에게 아이가 있다는 사실을 얘기해주지 않았으면 정말 계속 그랬을지도 모른다. 그러다 진짜 무슨 일이라도 생기면 두 아이는 어떡할까?생각만 해도 무서웠다.살고 싶은 의지가 없다는 건 정말 무서운 일이었다.갑자기 뭔가 떠올랐는지 윤아는 입술을 오므리더니 가볍게 물었다.“얼마나 얘기한대요? 선우한테 알려줘요. 내가 만나고 싶어 한다고요.”이를 들은 정윤이 약간 의아한 표정으로 물었다.“윤아 님, 드디어 대표님을 만나주시는 거예요? 전에는 대표님이 오시면 상대하기 싫어하셨잖아요.”낡은 것을 파괴하지 않으면 새것을 세울 수 없다고 여기를 떠나려면 선우를 만나야 했다.정윤이 방을 나섰다. 선우와 유지태의 상담이 끝나면 윤아에게 가보라고 할 생각에 계속 문 앞에서 기다리고 있었다.하지만 한참이 지나도 선우는 나오지 않았다. 정윤은 조금 궁금해지기 시작했다.유지태와 뭘 그렇게 오래 얘기하는 거지?약 한 시간을 기다린 정윤은 더
“선우가 나를 만나고 싶어 한다고요?”정윤은 방으로 돌아와 윤아에게 소식을 전했다.“네, 근데 대표님 안색이 조금 이상해 보였어요.”윤아는 뭔가를 생각하고 있다가 정윤의 말에 그녀에게로 시선을 돌렸다.“안색이 이상하다고요”정윤이 고개를 끄덕였다.“네. 전체적인 느낌과 표정이 전이랑은 좀 다른 것 같았어요.”이를 들은 윤아가 입을 앙다물었다.정윤의 말도 일리가 없지는 않았다. 며칠간 선우를 보지 못했고 윤아도 그런 선우를 신경 쓰지 않았다.대부분 자고 있었기에 선우가 몇 번 찾아와도 못 본 척하기가 일쑤였고 그러면 선우는 가만히 침대맡에 서 있었다.어떤 때는 반 시간, 어떤 때는 한 시간, 또 어떤 때는 오전 내내 서 있었다.하지만 윤아는 모르고 있었고 윤아가 잠에서 깨면 정윤이 알려줬다.그런 선우가 지금 갑자기 윤아를 만나겠다고 한다.설마 요즘 버티다가 지겨워서 끝장을 보려는 건가?...정윤은 윤아에게 새로운 옷을 가져다주었다.윤아의 옷차림은 꽤 캐주얼했다. 하얀 터틀넥 니트에 기모가 있는 바지를 입고 밖엔 회색 코트를 걸쳤다. 긴 머리까지 묶으니 전체적으로 정신이 나 보였다.비록 요 며칠 음식을 조금 먹긴 했어도 몸은 아직 허약했고 날씨가 추운 까닭에 윤아의 얼굴과 입술엔 아직 핏기가 없었다. 아직 완전히 낫지 못한 게 뻔했다.윤아는 걸어가고 싶었지만 선우가 어디서 휠체어를 가지고 왔는지 올라타게 하고는 정윤에게 밀라고 했다.처음에는 내키지 않았다. 멀쩡한데 휠체어가 웬 말인가.하지만 정윤이 이렇게 말했다.“윤아 님, 아마 요 며칠 잘 먹지 못하는 바람에 몸이 허약해져서 걷기엔 힘들까 봐 휠체어를 보낸 것 같습니다. 휠체어를 타고 가면 체력을 보존할 수 있을 거예요.” 윤아는 순간 선우의 뜻을 알아채고 고개를 끄덕였다.“그래요.”윤아는 휠체어에 앉았다. 그도 그럴 것이 오래 서 있으면 머리가 약간 어지러웠다. 아직 후유증이 채 낫지 않은 것 같았다. 이런 상황에 휠체어가 있으니 확실히 더 편했다.약속은 저녁이었기에
그러다 우연히 백미러를 본 윤아의 미간이 구겨졌다.뒤를 따라는 까만 세단이 보였다. 윤아가 탄 차를 오랫동안 미행하고 있었다.달리는 차가 많고 도로 상황이 복잡한 데다 밤이라 일반적으로 이를 신경 쓰는 사람이 없을 것이다.하지만 윤아는 섬세했기에 백미러로 여러 번 확인했고 그 차가 계속 따라오고 있음을 발견했다.바짝 따라오는 건 아니었지만 그래도 끈질기게 따라왔다.윤아는 차 안에 앉은 이들을 힐끔 쳐다봤다. 정윤은 아직도 창가에 기대 별을 올려다보았고 우진도 앞으로 팔짱을 낀 채 눈을 지그시 감고 명상하고 있었다. 기사님은 운전에 집중했다.차 안에 이 상황을 발견한 사람은 윤아밖에 없었다.논리적으로 생각해 보면 기사님과 정윤은 몰라도 정상인데 우진까지 모른다는 게 이상했다.윤아는 입을 앙다물고 우진에게 알려줄까 생각했지만 차가 길을 또 바꿨다.다시 한번 백미러를 확인했지만 따라오던 차가 사라졌음을 발견했다.윤아는 이를 이상하게 생각했다. 이렇게 놓쳐버렸다고? 설마 너무 예민했던 건가?이때 정윤이 말했다.“윤아 님, 도착했어요.”도착했다고?고개를 돌려보니 차는 한 고급 호텔 앞에 멈춰 섰다.우진도 그제야 눈을 떴다.차 문이 열리고 안에 탄 사람들이 내렸다. 기사님은 내리지 않고 주차하러 갔다.윤아는 정윤의 손을 잡고 차에서 내렸다. 앞에 놓인 휠체어를 본 윤아의 미간이 구겨졌다. 딱히 휠체어는 필요하지 않다고 생각했다.윤아는 입을 앙다물더니 말했다.“이 휠체어…”“윤아 님, 걱정하지 마세요. 옥상에 도착하면 의자가 있으니 그때는 휠체어를 치울 거예요. 그냥 윤아 님 체력 보존을 위해 옥상까지 가는 데에만 사용할 예정입니다.”정윤과 우진의 설득하에 윤아는 다시 휠체어에 올랐고 그들이 밀어주는 대로 움직였다.가는 길에 사람들의 시선이 자신에게 쏠려도 윤아는 애써 모른척했다.우진과 정윤은 윤아를 중간에 보호한 채 엘리베이터를 기다렸다.윤아는 주변을 빙 들러보더니 창백한 입술을 오므렸다. 너무 이상했다. 아까 들어올 때까지만
이를 들은 우진이 여러 버튼을 눌렀지만 엘리베이터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윤아는 휠체어에 앉아 있었고 뒤에 가려져 있었기에 그들이 무엇을 하는지 보이지는 않았지만 한참을 기다려도 엘리베이터가 움직이지 않자 무슨 상황인지 대략 알게 되었다.“엘리베이터가 고장 난 거 같은데? 계단으로 가는 게 어떨까요? 아니면 옆에 다른 엘리베이터가 있나요?”꽤 비싼 호텔 같아 보이는데 엘리베이터가 여러 개 있어야 마땅했다.윤아의 말에 정윤이 대답했다.“안 돼요. 윤아 님. 지금 문이 안 열려서 나갈 수도 없어요.”이렇게 말한 정윤은 혹시나 윤아가 놀랄까 봐 몸을 돌려 이렇게 다독였다.“근데 걱정하지 마세요. 겨우 두 층 전도 올라왔고 요즘 엘리베이터에는 추락 방지 설계가 추가되어 있으니 아무 일도 없을 거예요.”윤아는 정윤이 자신을 걱정한다는 걸 알아챘다. 하지만 그녀는 딱히 걱정하지 않았다. 대도시에 살면서 고층 건물이 많으니 엘리베이터는 꼭 필요한 설비였다.매일 엘리베이터를 타는 윤아는 고장을 한두 번 겪은 게 아니었다. 요즘 엘리베이터의 안전 조치는 꽤 발전했기에 위험할 거라는 걱정은 전혀 들지 않았다.“나는 괜찮으니 걱정하지 마요.”윤아가 정윤을 다독였다.“옆에 구조용 엘리베이터가 있으니 한번 연락해 볼게요.”옆에 서 있던 남자가 갑자기 이렇게 말하더니 핸드폰으로 어디론가 전화를 걸기 시작했다.남자는 서구적인 외모를 가졌지만 한국어를 구사했고 이에 다른 세 사람이 놀랐다. 우진은 그 남자가 어디론가 전화해 엘리베이터에 고장이 났다고 하자 입술을 오므리더니 그 남자를 몇 번 더 쳐다봤다.“곧 사람을 보내 수리하러 온다며 침착하라고 하네요.”전화를 끊고 남자는 세 사람이 드를 뚫어져라 쳐다보자 웃었다.“제가 한국어를 하니 신기한 모양이군요. 전에 한국에서 교환 생으로 있을 때 한국어를 배울 수 있게 되었죠.”윤아는 그 말을 듣고도 별생각이 없었지만 정윤이 흥분하며 그 남자와 얘기를 나누었다.약 2분이 지나자 엘리베이터를 수리하러 온 사람들의
“고마워요.”윤아는 오늘 정말 기력이 별로 없었기에 부축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우진은 그 남자와 함께 윤아를 들어 올렸다. 위에 닿을 때쯤 그녀를 향해 내민 큰 손 하나가 보였다.그 손은 뼈마디가 선명했고 손가락도 길었다. 손에 낀 은색 반지가 눈에 띄었다.호텔 직원의 손이 이 정도로 예쁘다고?기억은 없지만 전에 탄 엘리베이터가 고장 났을 때 수리공의 손이 이 정도로 예뻤던 적은 없었던 것 같았다.이상하다고 생각한 윤아는 손을 내밀지 말아야지 하면서도 뭔가에 홀린 듯 자신의 손을 내밀었다.하지만 손이 닿은 찰나 자신을 향해 내밀었던 큰 손이 그녀의 손을 꽉 잡았고 뜨거운 체온이 아무 예고 없이 윤아의 손에 전달됐다.다른 생각을 할 겨를이 없었다. 그 손은 힘이 매우 셌고 냉큼 그녀의 손목을 잡아 위로 끌어올렸다.윤아는 그 힘을 빌려 올라가면서도 자꾸만 익숙하다는 느낌이 들었다.올라간 다음 그 사람이 누군지 확인하고 싶었지만 그는 가느다란 윤아의 허리를 휘감더니 그녀를 안아서 들어 올렸다.그 속도가 너무나도 빨라 윤아는 자기도 모르게 뭔가를 잡으려고 손을 위로 올렸다. 안정적으로 바닥에 착지하고 나서야 윤아는 자신이 상대의 목을 휘감고 얼굴을 그의 품속에 파묻고 있음을 발견했다.낯설지만 익숙한 냄새가 윤아의 코를 자극했다.윤아가 고개를 들어 누군지 확인하려 했지만 그 남자는 윤아를 번쩍 안아 들었다.“가자!”냉정한 말투가 윤아의 귀청을 때렸다. 목소리가 익숙했다.윤아가 미처 반응하기도 전에 상대가 안고 달리는 바람에 상대의 목을 감고 있던 손을 내리지 못했다.익숙한 상황이 여러 개 겹치자 윤아는 뭔가 집히는 게 있어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시야에 들어온 건 조각 같은 턱이었다. 그 턱에는 조급하게 한 면도로 채 깎이지 않은 수염이 보였다. 곧이어 오뚝한 코와 차가운 눈매, 깔끔하게 정리한 짧은 머리가 보였다.상대의 얼굴을 확인한 윤아는 심장이 떨려왔다.전에 핸드폰으로 사진을 검색할 때 멀리서 찍은 사진 한 장밖에 찾지 못했고 그
수현의 뒤를 따라오는 사람들도 보였다. 그중에는 민재도 보였다. 그는 다급한 표정으로 윤아에게 물었다.“윤아 님, 혹시 다리를 다치신 건가요?”이를 들은 수현이 윤아의 다리를 한번 쓱 보더니 다시 고개를 들어 앞을 바라봤다.그녀를 안고 달리면서 길도 봐야 하니 넘어지지 않게 조심할 수밖에 없었다.“일단 이 얘기는 넣어두고 여기에서 벗어나면 병원에 가보자.”수현은 이렇게 말하더니 윤아의 가느다란 허리를 더 꽉 끌어안았다. 그 힘이 어찌나 센지 마치 그녀를 품속에 묶으려는 것 같았다.윤아는 수현에게 잠깐만이라고 몇 번이나 외쳤지만 수현은 마치 듣지 못한 듯 그녀를 안고 성큼성큼 걸어갈 뿐이었다.그녀가 여기 나타날 것이라는 걸 사전에 알기라도 한 것처럼 호텔의 다른 쪽 길도 마련해 놓았기에 가는 길에 막는 사람이 없었고 그녀는 그렇게 순조롭게 차에 올라탔다.역시 아까 윤아가 봤던 그 까만 세단이 맞았다.하지만 아까 길목을 건너올 때 이 차는 분명 다른 길로 갔는데 언제 다시 돌아온 거지? 속도가 이렇게 빠르다고?차에 오른 수현이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가자.”엔진소리와 함께 차에 시동이 걸렸고 그 뒤로 차가 가로로 줄을 지어 달려왔다.자리에 앉아 있는 윤아는 정윤과 우진을 거기에 놓고 온 게 생각나 자기도 모르게 뒤로 고개를 돌렸다.수현은 차가운 기운을 내뿜으며 윤아의 어깨를 으스러지게 꽉 끌어안았다.“너만 무사하면 돼.”윤아는 턱을 수현의 어깨에 기댔다. 수현이 속삭이는 소리가 귓가에 울렸다.수현의 손은 마치 넝쿨처럼 윤아를 단단히 자기 몸에 묶었다.한평생 놓지 않을 것처럼 말이다.윤아는 왠지 코가 시큰거리는 것 같았다.수현에 대한 기억은 없지만 몸은 절대 속일 수가 없다.그의 손길에도 윤아는 거부감을 느끼지 않았다.그녀가 기억을 잃었을 때 선우는 자신을 그녀의 약혼자라고 소개했지만 그래도 그녀는 무의식중에 선우와의 스킨십을 거부했다.하지만 수현은 아니다.그의 숨결, 포옹, 그리고 체온까지 다 그녀가 그리던 것이었다.
“그래?”윤아는 의심을 거두지 못하며 그를 뚫어져라 쳐다봤다.“괜찮은 거 맞아?”“괜찮아.”말은 그렇게 했지만 잡고 있는 윤아의 손은 놓지 않았다. 혹시나 윤아가 가까이 다가와 확인할까 봐 두려운 사람처럼 말이다.윤아는 약간 언짢은 듯 손을 뿌리치려 했지만 수현이 단단히 붙잡고 놓아주지 않았다.그러더니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일단 이거 놔.”“안 놔.”수현은 고개를 가볍게 저었다. 눈동자는 창밖으로 비쳐 드는 네온사인과 달빛을 받아 유난히 부드러워 보였다.“너무 보고 싶었어. 잠깐만 더 잡고 있자.”“...”윤아는 할 말을 잃었다.이 말을 들은 민재는 사실 약간 낯 간지러워 몰래 고개를 다른 쪽으로 돌렸다. 수현에게 이런 면이 있을 줄은 몰랐다. 다친 곳을 윤아에게 들키지 않기 위해 이런 이유로 돌려막다니.하지만 윤아는 그렇게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수현이 보고 싶었다고 말하니 마음이 약간 설레긴 했지만 그래도 지금 제일 걱정되는 건 수현의 상처였다.이렇게 생각한 윤아는 다시 손을 뿌리쳤다.“아무리 내가 보고 싶었다고 해도 얼마나 다쳤는지 봐야지. 아니면 처치하든가.”상처가 너무 깊어서인지 아니면 다른 이유가 있어서인지 수현은 끝내 윤아의 손을 놓아주지 않았고 그저 시선을 아래로 향한 채 가만히 있었다.“너는 다친 데 없어? 어디 아프진 않고? 너 다리는...”아까 윤아가 차에서 내릴 때 휠체어를 타고 있는 걸 수현은 보았다.윤아는 멈칫하더니 아까 휠체어를 탔던 걸 떠올렸다. 아마 그녀의 다리에 무슨 문제가 생겼다고 오해하고 있는 것 같아 얼른 설명했다.“내 다리는 괜찮아. 휠체어를 탄 건 내가 요즘 좀 기력이 없어서 그래.”“기력이 없다고?”이 말에 수현이 눈을 찌푸렸다.“혹시 선우가 너 학대했어?”이 질문을 하는 순간 수현은 위험한 살기를 뿜어냈다.윤아는 이를 느끼고 살짝 난감한 표정으로 말했다.“나를 학대한 적은 없어. 내 문제야.”“왜?”수현의 말투는 여전히 긴장에 가득 차 있었다.윤아는 대답하지 않
수현은 원래 민재에게 상처를 처치하라고 하려 했지만 민재가 구급상자를 가져오자마자 윤아가 받아 갔다.민재는 윤아와 수현을 번갈아 봤다. 그러다 수현이 고개를 끄덕여서야 얌전하게 제일 뒷줄에 위치한 좌석으로 향했다.“이제 손 좀 놓지?”윤아는 수현이 꼭 잡고 놓지 않는 자기 손을 보며 말했다.수현은 자신의 큰 손에 잡혀 있는 하얗고 보들보들한 손목을 힐끔 쳐다봤다. 살짝만 힘을 줘도 부러질 것 같은 크기에 수현은 미간을 찌푸렸다. 못 본 지 얼마 되지도 않는데 이 정도로 야위다니.그런 윤아를 보며 수현이 마음이 너무 아팠고 걷잡을 수 없는 자책감에 휩싸였다.이럴 줄 알았으면 그때 마음 약해지는 게 아닌데... 그래서는 안 되는 건데...수현은 어금니를 꽉 깨물더니 잡고 있던 윤아의 팔목을 놓아줬다.자유로워진 윤아는 아무 말 없이 구급상자를 열더니 수현의 상처에 필요한 약을 꺼냈다. 윤아가 준비하는 동안 수현은 그런 윤아를 물끄러미 쳐다봤다.아까는 급해서 신경 쓰지 못했는데 지금 보니 볼살도 많이 빠져 있었고 뼈가 선명하게 튀어나와 있었다. 얼굴과 입술 색도 창백하기 그지없었다.보면 볼수록 수현의 마음이 아파왔고 너무 후회막심했다.윤아는 이내 필요한 약을 찾아냈다. 구급상자에 쓸 수 있는 물건이 그렇게 많지 않았기에 간단한 처치만 가능했다.윤아는 약을 들고 수현에게 가까이 다가가 수현의 손에 들린 손수건을 빼려는데 수현이 자꾸만 상처를 가렸다.윤아가 고개를 들어 수현을 바라봤다.그제야 수현이 난감한 표정으로 말했다.“아니면 그냥 이 비서한테 맡겨.”수현은 민재가 하는 게 낫겠다고 했다.“왜? 나는 안돼?”윤아가 되물었다.“아니, 혹시나 네가 놀랄까 봐.”“이렇게 지체하다가 쓰러지기라도 하면, 어차피 그때도 내가 처치해 줄 텐데.”한참 망설이던 수현이 손을 비키더니 단추를 풀기 시작했다.이 상처는 새로 생긴 것이었고 전에 난 상처와는 다른 곳에 있었다. 이 상처로 하마터면 죽을 뻔했다.깨어났을 때 의사는 이 상처로 수현이 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