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아의 말에 소영은 잠시 멈칫했다.생각 못 해본 일은 아니다. 이미 여러 번 눈치를 줬는데도 진수현이 받아들이지 않는 것뿐. 못 알아듣는 건지 못 알아듣는 척을 하는 것인지 모르지만 말이다. 소영은 직접 말했다가 수현이 자신을 가벼운 여자로 생각 할까 봐 천불이 나는 걸 꾹 참고 있었던 거다.소영이 낯빛이 어두워져서는 말이 없자 윤아가 눈썹을 들어 올리며 말했다.“혹시 불러내지 못해서 절 찾아와 부탁하는 건가요?”그 말에 소영은 머리를 들어 불쾌한 기색이 역력해서 윤아를 쳐다봤다. 그러나 소영의 시선에도 꿈쩍 않는 윤아.“제 말이 틀렸나요? 이런 쓸데없는 일은 굳이 하지 않아도 되잖아요. 절 싫어하면서도 도시락을 가져다주는 건 수현 씨 앞에서 대인배 행세를 하고 싶은 건가요? 그런 거라면 그만두는 게 좋을 거예요. 당신 아량이 넓지 못하다고 싫어할 남자라면 이참에 헤어지는 게 낫지 않겠어요?”윤아의 말은 소영의 속내를 낱낱이 파헤치고 있었다. 소영은 주먹을 꽉 쥐며 당장 윤아를 능지처참으로 만들어버리고 싶은 충동을 꾹 참았다.윤아는 입꼬리를 올려 환한 미소를 지어 보이며 말했다.“제가 일을 해야 해서요. 별일 없으면 이만 가시죠.”소영은 분노로 부글거렸다. 대인배 행세를 하려고 여기까지 온 것이 미치게 후회되었다. 마음 같아서는 윤아에게 날카로운 말 몇 마디라도 날려주고 싶었지만 윤아의 심기를 건드려 수현의 앞에서 막말이라도 할까 봐 간신히 참아냈다. 소영은 차오르는 분노를 꾹꾹 누르며 얼굴에 미소를 띠었다.“윤아 씨. 제게 이렇게까지 적대적일 필요 없어요. 윤아 씨가 제 요구를 들어준다고 약속했을 때부터 우리 관계는 이제 다 풀린 거예요. 전 그냥 윤아 씨와 좋은 친구가 되고 싶어서 잘 챙겨주려는 거예요. 나이로 따지면 사실 제가 언니인데...”소영이 말을 채 마치기도 전에 윤아가 싸늘하게 그의 말을 끊었다.“강소영 아가씨. 우리 집 딸은 저 하나밖에 없습니다.”잠깐의 침묵이 흘렀다.“그래요. 제가 준비한 반찬이 윤아 씨 입맛에 맞지
“제 말을 이해하지 못했나 봐요. 똑똑히 들어요. 진 씨 그룹에서 연수 님은 그저 일개 직원일 뿐이에요. 그리고 저와 연수 님이 무슨 사이라고 절 대신해 화를 내주는 거죠?”연수의 눈엔 어느새 눈물이 그렁그렁 맺혔다. 그녀는 아랫입술을 꼭 깨물며 눈물이 흘러내리지 않도록 간신히 참고 있었다.사무실은 쥐 죽은 듯 고요했다.“큼, 큼.”이때, 밖에서 누군가 목을 가다듬는 소리가 적막을 깨트렸다. 윤아는 고개를 들어 문 쪽을 바라봤다. 언제 왔는지 강찬영이 문어구에 서 있었다.윤아는 여전히 차가운 목소리로 연수에게 말했다.“가서 일 보세요.”연수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사무실을 나갔다. 그가 강찬영의 옆을 스쳐 지나갈 때 찬영은 연수의 눈에 맺혀있던 눈물이 볼을 타고 뚝뚝 떨어지는 걸 보았다.연수가 나간 후에야 윤아는 찬영에게 물었다.“찬영 오빠. 무슨 일이에요?”찬영이 문을 닫으며 윤아에게 다가갔다. 그는 윤아를 쳐다보더니 한숨을 쉬며 말했다.“왜 말을 그렇게 못되게 해? 그러다 너 호의도 다 곡해되는 수가 있어.”윤아는 아무 표정 없이 그저 시선을 떨궜다.“상관없어요. 어차피 전 얼마 안 가 떠날 거니까요.”좋게좋게 말했다가 연수가 자기만의 세상에 빠져 성장하지 못하면 어떡한단 말인가.윤아의 담담한 모습에 찬영은 잠시 멈칫했다. 이윽고 들고 있던 파일을 윤아의 책상에 올려놓고는 무심한 척 말했다.“간다고? 언제?”윤아는 강찬영에게 수현과의 가짜 결혼과 임신 사실을 제외하고는 딱히 숨기는 게 없었다. 그녀는 잠시 입을 앙다물더니 이내 말했다.“구체적인 시간은 아직 정하지 않았는데 아마 곧 갈 거예요.”찬영은 말없이 미간을 찌푸렸다.곧 떠난다는 그 말에 조금 전 연수를 대하는 태도까지... 찬영은 이런 정황들로 보아 윤아가 한 달 안에 회사를 떠날 거라 짐작했다. 그는 아무래도 다른 수를 써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생각에 잠긴 찬영의 모습에 윤아도 저도 모르게 미간을 찌푸렸다.“찬영 오빠.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해요?
찬영은 윤아의 사무실에서 한참을 머물다 떠났다.그녀의 사무실에서 나올 때 그는 마침 함께 대표실에서 나오는 진수현과 강소영과 마주쳤다.강찬영의 모습을 보자 순식간에 표정이 굳는 수현. 그는 온몸으로 서늘한 기운을 내뿜으며 불쾌하다는 표정으로 찬영을 쳐다봤다. 그리고 그 모습을 본 소영도 금세 수현의 달라진 분위기를 느낄 수 있었다.그녀는 저 멀리 윤아의 사무실에서 나오는 강찬영을 보며 넌지시 말했다.“찬영 씨는 윤아 씨와 사이가 참 좋나 봐. 며칠 전 둘이 함께 밥을 먹는 모습도 봤었던 것 같은데.”수현은 미간을 찌푸리고 입술을 꾹 다문 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소영은 그런 수현을 눈치채지 못한 듯 말을 이었다.“사실 생각해보면 찬영 씨가 윤아 씨에게 참 잘해줘. 심씨 가문이 망했을 때도 다른 사람들은 다 윤아 씨를 멀리했는데 찬영 씨만 윤아 씨와 같이 회사에 들어왔잖아. 지금까지도 자주 보는 것 같고. 예전에 사람들이 윤아 씨 아버님이 찬영 씨를 사위로 생각한다고 하던데 그땐 그저 농담일 줄 알았지 뭐야.”소영은 더 말하지 않았다. 이만하면 충분하다고 생각했기에. 소영은 윤아를 어찌할 수가 없다. 그러니 수현의 옆에서라도 손을 쓰는 수밖에.역시나 소영의 말에 급격히 낯빛이 어두워지는 수현이다. 그녀의 말을 정말 받아들인 듯 보였다.그러나 소영은 조금도 기쁘지 않았다. 수현의 이런 반응은 그녀의 예상 밖이었다. 소영은 이런 이유로 더더욱 윤아의 임신 소식을 감추려 했던 것이다.소영은 아무래도 일을 가능한 한 빨리 처리해야겠다고 생각했다._그날 밤,샤워를 마친 수현은 허리에 수건 한 장만 달랑 걸친 채 상체를 훤히 드러내며 욕실을 나왔다. 그는 수건을 들어 물기를 가득 머금은 머리를 탈탈 털며 안방으로 향했다.안방의 불은 아직 켜져 있었다. 윤아가 아직 처리하지 못한 업무를 보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녀는 이어폰을 귀에 낀 채 침대에서 노트북을 보고 있었다.“네. 이 부분은 한 번 더 보고 수정한 후에 보내주세요.”그는 청아한 목소
윤아는 잔잔한 호수같이 평온했다. 마음속에는 그저 일을 어떻게 잘 마무리할지, 연수를 어떻게 잘 가르칠지에 대한 생각 뿐이었다.그러나 수현은 아녔다. 그녀가 수현의 곁을 지날 때 그는 참지 못하고 가시 돋친 말을 내뱉었다.“낮 시간이 일을 다 하기에 부족했나 봐? 아니면 다른 중요한 일 때문에 일에 차질을 준건가”그의 말에 윤아는 걸음을 멈췄다.“무슨 뜻이야?”윤아는 정확히 수현과 등을 지고 있는 상태에서 걸음을 멈췄고 고개를 돌리지 않았다. “다른 중요한 일 때문에 일에 차질을 주다니? 그게 무슨 말이야? 내가 회사에서 일을 열심히 안 했다고 생각 하는 거야?”“아닌가?’수현은 비릿하게 웃으며 말했다.“열심히 했으면 집에서까지 해야 할 일은 없었겠지.”윤아는 미간을 찌푸렸다. 수현이 왜 또 시비를 거는 것인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두 사람은 누구도 고개를 돌리지 않고 그대로 등을 진 채 서 있었다.잠시 후, 수현이 실소를 터뜨렸다.“왜 말이 없어? 네 그 잘난 찬영 오빠랑 얘기하는 게 그렇게 좋았나 봐?”윤아는 잠시 멈칫했다. 그의 말을 들으니 왜 이러는지 알 것 같았다. 그놈의 알량한 남자의 자존심 때문이었나보다.윤아의 태도는 똑같았다. 그와 상대하기 싫다는 듯 별다른 설명 없이 그저 발걸음을 옮겨 방을 빠져나가려 했다.그러나 윤아의 가느다란 손목을 확 낚아채는 수현.윤아가 채 반응하기도 전에 수현은 그녀를 자기 쪽으로 잡아당긴 후 몸을 들어 안았다. 수현의 손에 정신없이 들린 탓에 윤아는 손에 들고 있던 노트북도 그만 떨어트리고 수현에게 두 손이 잡힌 채 푹신한 침대에 던져졌다.윤아가 정신을 차렸을 땐 이미 그녀의 몸을 수현의 몸에 깔려 있었다.“진수현. 뭐 하는 짓이야?”윤아가 버둥거리자 수현은 미간을 찌푸리며 그녀의 손을 더 힘있게 잡았고 무릎을 들어 마구잡이로 움직이는 그녀의 다리를 꾹 눌렀다.수현에게 짓눌린 윤아는 화가 머리끝까지 나 고개를 돌려 그의 팔뚝을 꽉 깨물었다. 아무리 힘 있는 수현의 팔이라도 윤아의
질투?수현은 잠시 멈칫했다. 잠시 후 그는 손가락으로 윤아의 입가에 묻은 붉은 핏자국을 꾹 누르며 반쯤 잠긴 목소리로 말했다.“내가 정말 질투 하는 거면 뭐 어때서? 잊었나 본데 넌 법적으로 내 아내야.”그의 퇴폐적인 목소리는 사람을 홀리는 무언가가 있었다. 수현은 말을 하는 동시에 윤아에게로 바짝 다가갔다. 그의 얇은 입술이 윤아의 입술에 다가가자 윤아는 뜨거운 열기가 얼굴을 감도는 것을 느꼈다.두 사람의 입술이 거의 닿으려 할 때, 윤아가 말했다.“법적으로 아내면 또 어때서? 그렇다고 수현 씨가 질투할 자격 있어?”수현은 멈칫했다.윤아는 옅은 미소와 함께 조롱을 곁들이며 말했다.“말을 바꿔서 그럼 질투했다고 쳐. 그럼 강소영 씨는 어쩌려고?”제3자의 등장에 수현은 야릇하던 감정이 순식간에 찬물을 끼얹은 듯 사라졌다. 윤아의 입에서 강소영이 나올 줄 몰랐던 그는 어느새 눈빛이 차게 식었다.“강소영이 여기서 왜 나오는데?”윤아: “왜? 하면 안 돼? 그럼 수현 씨는 찬영 오빠에 대해 왜 얘기했는데?”수현: “...”둘은 한참을 정적 속에서 눈을 맞추다 결국 수현이 잡았던 손을 풀며 침대에서 일어났다. 윤아도 몸을 일으키고는 자신의 손목을 내려다보았다. 수현이 세게 잡은 탓에 그녀의 손목은 붉게 부어올랐다.“짐승같은 놈.”윤아는 낮은 소리로 한마디 내뱉고는 땅에 떨어진 노트북을 챙겼다. 바닥에 제대로 떨어져 버린 탓에 윤아는 노트북이 고장 나진 않았는지 확인해야 했다. 그렇게 일 분을 노트북을 켜보려고 시도했으나 아무래도 완전히 망가져버린듯 했다. 윤아는 일하기도 글렀으니 어쩔 수 없이 핸드폰을 꺼내 연수에게 문자를 남겼다.「노트북이 고장 나서 오늘은 이만하고 내일 회사에서 계속하죠.」메시지를 전송한 윤아는 노트북을 닫고 정리를 했다.수현은 윤아의 움직임을 옆에서 가만히 바라보았다. 대형 냉장고 못지않게 냉기를 뿜어내면서도 윤아의 곁에서 떠나질 않았다.윤아가 노트북을 닫자 수현이 입을 열었다.“일은 안 하나?”그걸 질문이라
순식간에 선을 그어버린 윤아. 계산까지 이 정도로 정확히 한다니. 수현은 이해할 수 없었다.‘혹시 이러는 이유가... 그 사람 때문인가.’이튿날, 윤아는 노트북을 수리하러 갔다. 십만 원 정도가 들었지만 나름 괜찮았다. 이제 이 회사에 있을 날이 얼마 남지 않았는데 새 노트북을 사는 건 낭비였다.윤아는 연수와 함께 아침을 먹으러 회사 근처의 브런치 가게로 향했다. 그녀는 밥을 먹으면서도 어김없이 일 얘기를 시작했다.연수는 잔뜩 풀이 죽어 커피만 마셔대며 윤아를 힐끗 봤다. 착각인지는 모르겠지만 윤아가 요즘 들어 너무 무리하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부쩍 많은 걸 가르쳐주려고 하기도 한다. 전부 감탄만 나오는 것들을 말이다. 생각에 빠져있던 연수는 입안의 커피를 꿀꺽 넘기고는 물었다.“윤아 님. 저 뭐 좀 물어봐도 돼요?”윤아는 연수를 한 눈 보고는 말했다.“말해요.”연수는 주변을 한번 살피고는 경계태세로 잔뜩 수상하게 윤아의 곁에 다가왔다.“혹시 회사 그만두시려는 거예요?”윤아:“...”‘참 눈치도 빠르네.’윤아는 입술을 앙다문 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연수는 곤란해하는 윤아의 기색에 되려 당황하며 말했다.“윤...윤아님. 제가 일부러 떠보려거나 그런 게 아니라요. 그냥 요즘 갑자기 너무 무리하시는 것 같아서... 게다가 부쩍 많은 걸 가르쳐주시기도 하고요. 그래서 든 생각이에요.”“맞아요.”윤아는 지금 연수에게 알려도 괜찮겠다는 생각에 부정하지 않았다.“그니까 잘 배워둬요. 남은 시간이 얼마 없으니까.”믿을 수 없다는 듯, 연수가 눈을 둥그렇게 떴다.“윤아 님...”윤아는 하던 일을 끝마치고 노트북을 접으며 담담하게 말했다.“아직 다른 사람들한테는 말하지 말아줘요.”연수는 그저 멍하니 머리를 끄덕였다. 그녀는 충격적인 소식에 뒤늦게 슬픔이 밀려왔다. 마음속에 큰 파도가 덮쳐 심장을 집어삼키는 느낌이었다. 어제 윤아가 갑자기 그렇게 화를 낼 때는 자신이 한 말 때문에 화가 난 줄 알고 어리둥절했었는데 지금 생각해
어제 분명 거절의 의사를 밝혔는데도 불구하고 또 도시락을 가져다주겠다고 찾아온 소영. 윤아는 좋은 사람으로 보이기 위해 애를 쓰는 소영의 모습이 그저 우스웠다. 이제는 그녀의 속셈을 추측하고 싶지도, 그녀를 상대하고 싶지도 않았다.“윤아 씨. 전에 한번 아프더니 몸이 많이 안 좋아졌네요. 오늘은 특별히 삼계탕을 준비했어요. 정말 한 입도 안 먹어줄 거예요?”윤아는 턱을 괸 채 여유만만하게 소영을 바라봤다.이곳엔 둘 뿐인데 왜 여기서까지 착한 척을 하는 것인지 윤아는 보기만 해도 자기가 덩달아 피곤해지는 기분이었다. 그래서 신나게 돌리던 펜도 내려놓고 그녀를 찬찬히 바라보았다.“안 피곤해요? 이러면?’이렇게 착한 척 하는 게 피곤하지 않냐는 질문이었다.하지만 소영은 윤아의 말을 알아듣지 못한 듯 화제를 돌렸다.“직접 좋아하는 사람에게 줄 음식을 하는 건데 힘들긴요. 맛있게 먹어주는 모습만 봐도 행복한걸요.”소영은 이 정도로는 윤아를 비꼬기에 부족한지 말을 더 보탰다.“윤아 씨도 사랑하는 사람이 생기면 제 기분 알게 될 거예요. 평생을 하라고 해도 하고 싶은걸요?”말을 마친 소영은 윤아를 빤히 쳐다봤다. 윤아의 발끈하는 모습을 보고 싶어서였다. 그러나 윤아는 잔잔한 호수마냥 평온한 얼굴로 말을 던졌다.“그래요? 그럼 그 소망 꼭 이루길 바랄게요.”소영은 주먹으로 솜뭉치를 친 것만 같은 밋밋한 타격감에 힘이 쭉 빠지며 짜증이 확 밀려왔다.‘왜! 왜 이 여자는 매번 아무렇지 않은 거야. 분명 정곡을 찌르는 말이었는데.’윤아는 항상 그랬듯 별일 아니라는 듯 소영의 공격을 흘려버렸다. 그 바람에 소영은 자기만 안달 난 사람이 된 것 같은 기분에 매번 기분을 잡쳤다.마침 그때, 연수가 문을 열고 들어왔다. 그는 강소영을 한 눈 보고는 가소롭다는 듯 코웃음을 치려다가 윤아가 어제 했던 말을 떠올리고 간신히 참아냈다. 연수는 목을 가다듬고 윤아에게 말했다.“윤아 님. 이 비서님이 찾으러 오셨어요.”“들어오시라 해요.”사무실에 들어온 이성민은 소
더 챙겨달라고?이성민의 말에 소영은 얼이 빠진 사람처럼 그 자리에 멀뚱히 서 있었다. 그녀는 자신이 잘못 들은 줄 알고 재차 확인했다.“뭐...뭐라고요?”성민은 새하얀 치아를 드러내며 밝게 웃었다.“그냥 얻어먹으려는 건 아니니 걱정하지 마세요. 얼마 필요하신지 말씀해주시면 저희가 드리겠습니다.”윤아는 입을 꾹 닫은 채 어이가 없다는 듯 수현의 조수 이성민을 바라봤다. 윤아는 이 사람이 지금 소영에게 아부를 떠는 것인지 뭘 하려는 건지 도무지 종잡을 수가 없었다.반면 강소영은 이미 똥 씹은 표정이 되어 있었다.‘얼마 주면 되냐고? 지금 날 뭐로 보는 거야? 내가 도우미 아줌마야? 아니면 뭐 식당 아줌마로 보이는 거야?’소영은 성민이 드디어 사태파악을 한 줄 알았는데 전보다 더 재수가 없어져서 돌아올 줄은 몰랐다. ‘이거 지금 나 엿 먹이려는 거지?’더 최악인 것은 소영은 지금 진 씨 집안의 안주인이 아니기에 화를 내지도 못한다는 거다. 소영은 간신히 입꼬리를 올리고는 애써 웃는 얼굴을 만들었다.“돈은 필요 없어요. 좋아하신다니 내일부터는 사무실 직원들 몫까지 준비할게요.”“정말입니까?”성민은 눈을 반짝이며 말을 이었다.“너무 번거롭게 해드린 게 아닌지. 그리고 대표님이 허락하실까요? 저희 혼나는 거 아니겠죠?”소영은 어색하게 웃어 보였다.“괜찮아요. 제가 잘 말해볼게요.”“그래 주시면 너무 감사하죠.”소영은 더는 윤아의 사무실에 있을 수 없을 것 같아 고개를 휙 돌려 나가버렸다.소영이 떠나자 사무실은 찬물을 끼얹은 듯 조용해졌다. 성민은 곧바로 들고 있던 도시락을 책상 위에 올려놓더니 불쾌한 듯 손을 탈탈 털며 말했다.“누가 이런 걸 먹기 좋아한다고. 반은 가공품인 음식을 가져다가 직접 한 거라고 말하고 다닌다니. 참 뻔뻔하기도 하지.”윤아는 갑작스러운 그의 행동에 어리둥절해졌다.“그럼 조금 전엔 왜?’성민은 윤아를 보며 씩 웃고는 말했다.“심 비서님 대신 골탕 좀 먹여주려는 거죠. 제가 모시는 사모님은 심비서님뿐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