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아는 허리를 굽혀 모니터의 수치들을 봤다. 매일 식사량과 수면시간 모두 기록되어 있었다. 요양원에 환자가 많아 간병인 분들도 매일 세심하게 환자 한 명 한 명의 생활습관을 체크 할 수 없으므로 간편한 구분을 위해 이렇게 매일 기록을 한다. 윤아는 기록된 수치들을 자세히 들여다보았다. 확실히 간병인 말대로 미세한 변화는 있었지만 굳이 신경 쓸 정도는 아녔다. 요양원에서 지정한 정상범위가 있는데 그 범위를 벗어나지 않으면 모두 정상으로 간주한다고 한다.윤아는 그래도 마음이 편하지 않은 듯 입을 앙다물었다. ‘내가 쓸데없는 생각을 한 건가?’윤아는 할머님의 기분이 미묘하게 달라진 것을 느꼈다. 그것도 나쁜 쪽으로.“사모님. 어르신 기분을 신경 써주시는 거 알아요. 하지만... 괜한 걱정 하시는 걸 수도 있지 않을까요?”그 말에 윤아도 굳이 부정하지 않았다.“네. 아무래도 제가 괜한 걱정을 했나 봐요.”윤아의 말은 언제나 격식을 갖췄다. 윤아가 이렇게 말하니 간병인분도 더는 설명하지 않았다. 윤아는 그를 향해 싱긋 웃어 보이고는 말을 이었다.“근 몇 주간의 수치를 프린트해주실 수 있을까요?”간병인은 잠시 멈칫하더니 고개를 끄덕였다.“그럼요.”“고마워요.”“고맙긴요.”간병인은 윤아의 행동이 이상하다 여겨졌지만 프린트는 어려운 일도 아니니 바로 해줬다.윤아는 옆에서 그 모습을 바라보다 뭔가 생각난 듯 말했다.“떠나기 전에 받으러 올게요. 일단 가지고 계셔 줄래요?”“네. 사모님.”윤아는 곧바로 선월을 보러 갔다. 그녀가 방으로 돌아갔을 땐 이미 진수현이 선월의 곁에서 말동무를 해 주고 있었다. 그는 입가에 미소를 머금은 채 선월을 따뜻한 눈길로 쳐다보고 있었다. 수현은 효심 깊은 손자였다. 그 사실은 윤아도 늘 알고 있었다.“윤아 왔니?”“할머님.”윤아는 선월에게 다가가 그들의 대화에 참여했다.진수현은 입가에 웃음이 잠시 옅어지는 것 같더니 이내 원래 상태로 되돌렸다. 둘은 마치 조금 전의 모든 불쾌했던 일들을 다 털어버린 듯
김선월은 잠시 멈칫하더니 물었다.“수술 날짜를 앞당겨?”“네.”수현의 말에 선월은 말을 잇지 않았다. 그 모습을 보던 윤아가 생각 끝에 입을 열었다.“할머님. 수술이 듣기에는 무서워도 과정은 아닐 거예요. 그냥 잠 한숨 푹 주무시고 나면 병이 다 나아있을 거예요.”윤아는 일부러 가벼운 말투로 장난스레 말했다. 그런 윤아의 모습에 수현도 저도 모르게 눈을 돌려 그녀를 바라보았다. 참 오랜만에 보는 윤아의 눈빛을 반짝이는 모습이었다.윤아의 기분 좋은 말투에 선월의 얼굴도 웃음을 되찾았다.“이 할미 웃게 만드는 데는 선수라니까.”“뭘요. 다 사실인데요. 할머님. 못 믿으시겠으면 내일 의사 선생님께 물어보세요.”“그래그래. 네가 나 걱정해 주는 거 다 안다. 할미는 하나도 안 무서워.”윤아와 수현이 요양원에서 나왔을 땐 이미 밤 여덟 시가가 되어가고 있었다.윤아는 선월과 좀 더 있고 싶었지만 선월도 휴식해야 하니 이만 나왔다.병실에서 나올 때까지도 금슬 좋던 부부는 한참을 걷고 나서야 본색을 드러냈다. 윤아는 아무런 표정 없이 그의 손을 놓고 걸어갔다. 수현도 그런 윤아를 보며 표정이 어두워졌다.“먼저 가.”윤아의 말에 수현이 미간을 찌푸렸다.“뭐 하려고?”“할머님 최근 수치 기록부 좀 가지고 올게.”“같이 가지.”같이 가자는 수현의 말에 윤아는 멈칫하더니 고개를 저었다.“괜찮아. 혼자 가면 돼.”“내일 아침에 이 요양원 전체에 내가 널 버리고 먼저 떠났다는 말이 돌길 원하는 거야?”잠깐의 정적이 흘렀다. 윤아는 그의 말에 어쩔 수 없이 수현과 함께 갔다.간병인은 그들에게 두꺼운 종이를 한 아름 줬고 윤아가 그걸 받아 조심스레 가방에 넣었다.“고마워요.”“고맙긴요. 이제 가시는 건가요?”“네.”“네. 조심히 가세요.”“그래요. 고마워요.”인사를 전하고 나가는 길에 수현은 윤아 손에 들린 두꺼운 프린트 더미를 보더니 물었다.“왜?”수현의 할머니 일이기도 하니 윤아는 그에게 자기 생각을 모두 말해주었다. 윤아의 말에
운전기사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의 고용주가 아직 차에 타지 않았는데... 그는 조심스레 차창을 내리고 밖에 덩그러니 서 있는 수현을 봤다. 그는 얼굴빛이 흙빛이 돼서는 온몸으로 어두운 기운을 내뿜고 있었다. 운전기사는 낮은 소리로 윤아에게 말을 건넸다.“사모님. 대표님이 아직...”“수현 씨는 일이 있어서 안탑니다. 가죠.”운전기사는 윤아의 말에 감히 대답하지도, 그렇다고 정말 차를 몰고 떠날 수도 없었다. 비록 그의 고용주는 진수현이라지만 그도 알다시피 뒷좌석에 앉아계신 분은 진수현의 부인이시다. 대표님은 평소에 사모님 말씀이라면 뭐든 따르며 그에게 극진해 대부분 사모님이 주도권을 잡고 있다. 하지만 그는 그 어느 쪽에도 밉보이고 싶지 않았다. 그 순간, 차 문이 벌컥 열리더니 진수현이 몸을 굽혀 차에 탔다.윤아가 그를 쳐다봤지만 수현은 그녀의 시선은 신경도 안 쓴 채 다리를 꼬았다. 그리고는 차갑게 운전기사를 보며 말했다.“운전하세요.”그의 목소리는 차갑다 못해 한기를 내뿜는 듯했다. 기사님도 더 지체하지 않고 얼른 액셀을 밟았다.차 안에는 불편하고 어색한 기류가 맴돌았다. 윤아는 자신이 그렇게 하면 그가 차에 타지 않을 거로 생각했다. 이런 경우는 생각해보지 못했는데... 하지만 윤아는 이제 수현을 신경 쓰고 싶지 않았다. 어차피 그 말도 수현이 자기 입으로 내뱉은 말인데 쪽팔린 사람도 장본인이겠지. 윤아는 부끄러울 사람은 자신이 아닌 수현이라 생각했다.기왕 이렇게 된 김에 윤아는 조금 전에 받은 프린트들을 살펴보기 시작했다. 윤아는 수현에게 말을 걸지 않았고 수현도 아무 말 하지 않았다. 차 안은 오직 윤아가 종잇장을 넘기는 소리만 간간이 들려왔다.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수현이 참지 못하고 고개를 돌려 윤아를 바라보았다. 밝지도 않은 차 안에서 그녀는 눈을 내리깔고 종잇장을 넘기며 열심히 보고 있었다. 보기 좋게 올라간 속눈썹은 그녀가 눈을 깜빡일 때마다 위아래로 흩날렸다. 윤아는 매우 집중하고 있었고 수현에게 말을 할 생각이
맞는 말이다. 그가 받아온 수치는 미세하지만 분명 변화가 있었고. 이는 윤아의 감이 맞았다는 걸 의미한다.윤아는 짧게 대꾸하고 말없이 프린트를 정리에 도로 넣었다. 이윽고 무언가 떠오른 듯 수현에게 말했다.“사실 할머님이 수술을 두려워하시는 것 같아. 오늘 오후에 수술 얘기를 하지 말았어야 했어.”그 말에 수현은 멈칫했다.“그래?”“응.”수현은 윤아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그는 세상 진지한 표정으로 말하고 있었다. 그 표정을 보니 요양원에서 들었던 선월에게 잘하는 이유는 자기 때문이 아니라던 윤아의 말이 그저 홧김에 한 거짓말이 아님을 느낄 수 있었다. 윤아는 그를 정말 친할머니라고 생각하고 있었다.수현은 입술을 만지작거리며 말했다.“그래. 알겠어. 앞으로 더 주의하지.”선월의 얘기에 두 사람은 오랜만에 평화를 만끽했다. 그러나 그 얘기가 끝나니 또다시 정적이 찾아왔다. 운전석에 있는 기사님은 이 상황들이 조금 믿기지 않았다. 윤아와 수현이 차에 탈 때까지만 해도 금방이라도 대판 싸울 것 같이 꽁꽁 얼어있던 분위기였는데 얼마 안 돼 도란도란 어르신 얘기를 나누고 있으니 말이다. 그는 역시 부부싸움은 칼로 물 베기라 생각하며 감탄하고 있었다. 그러나 얼마 못 가 두 사람은 다시 말이 없어졌다. 잠시나마 풀렸던 분위기가 다시 처음처럼 꽁꽁 얼어붙어 찬 바람이 쌩쌩 불고 있었다.기사님:”...”‘됐다 됐어. 도통 이해를 못 하겠네. 운전에나 집중하자.’집에 도착한 후, 윤아는 수현보다 먼저 차에서 내려 곧장 출입문 쪽으로 또각또각 걸어갔다. 그 속도는 빠르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느리지도 않았다. 얼마 안 가 수현은 윤아의 뒤에 멀리 떨어져 있었다.저택의 도우미들은 윤아가 무표정으로 먼저 집에 들어오고 뒤따라 수현도 그늘진 얼굴도 따라 들어오는 모습을 봤다. 그들은 사모님이 비를 홀딱 맞고 돌아왔던 그 날부터 집안의 분위기가 심상치 않음을 느끼고 있었다. 그들은 혹여 실수라도 했다간 윤아와 수현의 불똥이 튈까 봐 더더욱 일에 차질이 없도록 애썼
하지만 다르게 생각해보면 강소영은 그가 좋아하는 사람이니 감추는 게 없는 것이 당연한 일이다. 윤아는 머리로는 이해하지만 자신의 입장에서 봤을 때는 여전히 납득이 되지 않았다. 하지만 현재로서는 이해가 되지 않아도 평화를 유지하기 위해 내색해서는 안 된다.샤워를 마친 윤아는 거실 소파에 누워있는 수현을 발견했다. 그도 지쳤는지 외투만 벗고 누워 눈을 감은 채 쉬고 있었다. 인기척에 눈을 뜨는 수현. 그는 고개를 돌려 윤아를 바라보았다. 윤아도 그를 보고 있었던 터라 두 사람의 시선이 같은 곳에서 맞물렸다. 윤아는 갑작스러운 눈 맞춤에 황급히 눈을 돌렸다.수현은 신경 쓰지 않는 듯 담담하게 물었다.“다 씻었어?”윤아는 그제야 낮은 소리로 대답했다.“응”“그럼 나도 씻으러 갈게.”수현은 짧은 한마디와 함께 욕실로 향했다. 그가 샤워를 마치고 나왔을 땐 이미 반 시간이나 지난 뒤였다. 수현은 마른 수건으로 머리의 물기를 닦으며 방으로 향했다. 그러다 갑자기 걸음을 멈추는 수현. 그는 침대 모서리에 걸터누워 잠든 윤아를 바라봤다. 윤아는 등에는 베개를 받치고 한 손에는 몇 페이지 읽다 만 책을 쥔 채 전등도 끄지 않고 그대로 곤히 잠들어있었다.수현은 그 모습을 한참 바라보다 손에 들고 있던 수건을 바닥에 툭 던져버리고 윤아에게 다가갔다. 그는 윤아의 곁에 다가가 은은한 불빛 아래의 윤아를 가만히 바라보았다. 수현은 윤아의 눈이 참 예쁘다고 생각했다. 웃지 않을 때는 티 없이 맑고 차가운 느낌이 마치 설산의 샘물 같았다. 반면에 그녀가 웃을 때면 어찌나 사랑스러운지 가을날 어느 나른한 오후의 잔잔한 호수 같이 반짝거렸다. 이 두 모습 말고도 수현을 더욱 설레게 했던 모습이 있는데 그때 윤아의 눈을 또 다른 느낌의 매력을 발산하며 수현을 미치게 했다.수현의 손은 어느새 멋대로 윤아의 얼굴로 다가가고 있었다. 손끝이 살짝 눈썹 뼈에 닿았다가 천천히 아래로 내려가 그녀의 눈꺼풀로 향했다. 미지근한 불길이 손끝으로부터 순식간에 그의 몸을 파고들었다. 수현은
“응, 휴전하자.”윤아가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다시 예전처럼 돌아가는 게 어때?”예전처럼? 수현의 마음은 윤아의 한마디를 듣자마자 펄쩍 뛰는 듯했고 자신도 자신이 말을 더듬고 있다는 것을 알아채지 못했다.“네, 네 말은….”윤아는 그러한 수현을 흘끗 쳐다보고는 다시 시선을 거두고 진지하게 입을 열었다. “돌아오는 길에 다시 한번 진지하게 생각해봤어. 할머님의 정서도 지금 무척 안정돼 보이시고 사소한 변화도 딱히 문제 될 건 없을 것 같아. 하지만 어찌 됐건 보름 후면 바로 수술을 하셔야 하니 지금 싸우는 건 의미가 없는 일이야. 괜히 싸웠다가 할머님께서 눈치라도 채시면 할머님께 안 좋은 영향이 가는 건 불 보듯 뻔한 일이잖아.”여기까지 얘기를 듣고 나니 수현도 무언가를 알아차린 듯싶었다.“그럼 네 말은….”“아직도 못 알아듣겠어? 지금은 매우 중요한 시기라고. 그러니까 잘 협조해야 해. 보름만 지나면 수현 씨가 그때 가서 하고 싶은 일은 무엇이든 해도 좋아. 그 아무도, 그 어떤 일도 수현 씨 발목을 잡을 일은 없으니까.”심윤아는 자기 뜻을 이미 충분히 명백하게 전달했다고 생각했다.“수현 씨도 똑똑한 사람이니까 내 말은 충분히 이해했을 거야.”그의 말이 끝나자 수현은 입꼬리를 움찔거렸다. 그래. 그가 어떻게 모를 수가 있겠는가?그러니까 윤아의 뜻은 수현과 화해하려는 것도 아니고 그에게 화를 내고 있는 것도 아니었다. 그저 할머님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그와 휴전하려는 것이다.하지만 그렇다고 한들 수현이 무어라 말할 수 있겠는가? 윤아도 그저 할머니를 위한 것일 텐데.수현은 마음속으로 처연한 웃음을 터뜨렸다. 그는 도끼로 제 발등을 찍은 격이 되었다.수현은 목소리를 가다듬고 다시 입을 열었다. “그래.”그 모습을 보며 윤아의 붉은 입술이 달싹였다.본래 수현에게 아이는 자신이 데려가겠다 상의를 해볼 생각이었다. 하지만 다시 생각을 바꾸어 굳이 이 자리에서 이 얘기를 할 필요성이 없다고 여겨졌다. 강소영도 자기 생각을 굳혔으니 언
아침에 깨어난 뒤, 윤아는 평소대로 씻었고, 수현이 옷을 입는 것을 보았을 때 그녀는 직접 그의 넥타이까지 매어주었다.수현의 눈 밑은 퀭했는데 보아하니 잠을 설친 듯싶었다. 옆자리에 누운 여자는 세상모르고 자고 있는데 그는 거의 뜬눈으로 밤을 지새웠다고 말할 수 있었다. 하늘이 밝아올 때쯤 잠시 눈을 붙이고 얕은 잠을 취하다가 옆사람이 몸을 일으키는 소리에 수현도 그냥 계속 자기를 포기했다.잠도 설쳤는데 또 윤아의 저 반응까지 보자 그는 심기가 더 불편했다. 하지만 이런 불쾌함은 그 어디에도 털어놓을 방도가 없어 속만 답답해 났다. 그래서 옷을 입는 동작에는 짜증이 섞여 있었고 넥타이를 맬 때도 상당히 귀찮아 보였다. 기분이 나쁘다는 것을 소심히 티 내고 있는 듯싶었다.그러나 이때 윤아가 그의 넥타이를 매어줄 것은 생각조차 못 했다.“내가 해줄게.”그녀는 나지막하게 말했다.그러자 수현은 눈을 내리깔며 윤아를 뚫어지게 바라보았다.윤아는 의도적으로 수현의 날카로운 시선을 피하며 그를 보지 않은 채 또 조용히 입을 열었다.“허리 좀 숙여줘. 아니면 닿기 어렵거든.”수현은 얇은 입술을 길게 앙다물고는 속으로 무슨 꿍꿍이를 부리는지 끝까지 허리를 숙이지 않았다.윤아는 더는 참을 수 없다는 듯 그를 쳐다보았다. 그러자 수현이 입꼬리를 슬며시 올리며 입을 열었다.“드디어 날 봐주네.”“...”‘왜 저래? 어젯밤 분명히 얘기 다 끝났을 텐데. 근데 왜 또...”실은 수현도 왜 이러는지 잘 몰랐다. 최근 들어 그도 자신이 조금 이상해졌다는 것을 알아챘다. 쉽게 화나고 윤아가 보고 싶다가도 또 보기 싫어졌다. 그녀가 자신에게 다가오기를 원했다가 또 정말 다가오기라도 하면 저도 모르게 날카로운 말로 그녀의 가슴에 비수를 꽂으려 한다. “수현 씨, 이러지 마. 우리 어젯밤에 잘 얘기 해뒀잖아. 보름 동안 우리 제대로 협조하자. 응?”그 말을 듣자, 수현은 눈썹을 치켜올리며 한 발 뒤로 물러섰다. 그는 입술을 꽉 다물다가 입을 열었다.“됐어. 앞으론 도
그날, 수현은 불쾌하다는 기색이 역력한 얼굴로 아침 식사를 끝마쳤다.도우미들을 등지고 있었기 때문에 수현의 표정을 알 리가 없었다. 그래서 나란히 앉아 아침 식사를 하는 수현과 윤아의 뒷모습과 그들의 친밀한 언행으로부터 이미 화해했다 여긴 것이다.그 후 며칠간, 연차를 쓴 윤아는 서둘러 회사에 복귀하는 대신 요양원에 있는 수현의 할머니, 김선월을 보러 다녔다. 그래서인지 최근 들어 김선월의 상태가 더 좋아진 듯했다.윤아도 요즘 마음이 편했다. 모든 것은 그녀가 예상했던 대로 흘러가는 듯했다. 그렇게 보름이라는 시간은 벌써 사나흘이나 지났다.가끔 그녀는 혼자 조용히 있을 때 아랫배를 살살 어루만지기도 했다.사실 그녀의 마음가짐도 서서히 변하고 있었다.제일 처음 임신했다는 소식을 접했을 때, 그녀는 이 아이에 대한 확신이 서지 않으면서 앞날이 막막하게 다가왔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윤아는 자신과 배 속의 아이가 몸 뿐만이 아니라 마음마저 하나로 되었음을 느끼게 되었다. 아이에 대한 사랑과 애착이 가슴 속에 살며시 자리 잡기 시작한 것이다. 심지어 많은 시간 동안 다른 사람들에게 하기 어려운 말들을 배 속 아이에게 속삭이기도 했다. 이는 윤아와 아이의 연결이 더 끈끈해지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이렇게 모든 일들은 차근차근 별 탈 없이 진행되고 있었다. 윤아도 할머니가 수술을 마칠 때까지 무탈하게 보낼 거라 여겼다. 하지만 그녀가 연차 휴가를 마치고 회사에 복귀하려 했을 때, 소영이 다시 한번 그녀에게 전화를 걸어 밖에서 얘기를 나누고 싶다고 했다.저번 사건 뒤, 윤아는 소영과 별로 만나고 싶지 않았다. 소영의 목적을 너무 잘 알고 있으니까.여기까지 고려한 윤아는 주저하지 않고 거절했다.“강소영 씨, 날 왜 만나려는지 알고 있어요. 근데 아쉽게 됐네요. 난 이미 결심했거든요. 그 어떤 경우에도 바꾸지 않을 거예요. 그러니 더는 만날 필요가 없어요.”그녀가 너무 직설적으로 말한 까닭이었을까, 소영은 한참 동안 침묵을 유지했다. 그렇게 시간이 조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