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간, 머릿속이 어지러워졌다.어릴 때부터 선우가 이상하다고는 생각했다. 윤아랑 가깝게 지냈고 또 그녀의 머리를 만지기 좋아하면서 땅꼬맹이라고 불렀다.하지만 선우는 늘 윤아가 아직 어린애 같다고 했다.그래서 그는 선우가 윤아를 동생으로만 여긴다고 생각했다.비록 이렇게 생각하고는 있으나 마음속 깊은 곳은 조금 수상하다 느꼈다.이런 수상함은 선우가 출국하면서 연락을 끊었을 때 사라졌다.하지만 오늘...선우가 인정할 줄은 몰랐다. 그것도 이렇게 빠르게 말이다.“어, 그렇게 놀라운 일이야?”선우는 작게 웃음을 터뜨렸다.“내가 윤아 좋아하는 거 어릴 때부터 티 나지 않았어? 난 네가 알고 있을 거라고 생각했지.”수현은 입술을 꾹 다물고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금방 알았나 보네. 괜찮아, 늦지 않았으니까.”뭘 떠올린 듯 선우는 말을 이었다.“강소영 쪽은 어떻게 처리할 셈이야?”“뭐?”수현의 머릿속엔 온통 선우가 윤아를 좋아한다는 것뿐이었다. 다른 일은 지금 생각할 기분이 아니었다.선우는 완곡하게 말했다.“내가 들은데 의하면 누가 너에게 소영이가 사라졌다고 메시지를 보냈다며? 그래서 네가 중도에 병원을 떠났던 거고.”둘은 머리가 좋았다. 선우가 이렇게 말하자 수현은 순간 그 뜻을 알아챘다.의심스러울 정도로 지나치게 우연이라는 생각은 들지만, 목숨을 걸고 강에 뛰어들어 자신을 구한 소영을 떠올리면 이번 일이 그녀가 사주한 거라고 믿기지 않았다.침묵한 수현을 보자 선우는 답을 알 것 같았다.“우리 생각은 좀 다른가 봐. 그렇다면 친구로서 미리 말해둘게. 난 땅꼬맹이를 괴롭힌 거 절대 용납 못해. 만약 이번 일이 소영과 연관이 있다면 난 절대 물러나지 않을 거야.”수현은 눈썹을 추켜세웠다.“무슨 소리야? 소영이가 사주한 거라고 벌써 확신했냐?”“결과를 기다릴 뿐이야. 넌 알고 싶지 않아? 네가 소영이에게 이만저만한 검정이 아니니 먼저 생각해 두는 게 좋을 거야. 만약 정말 걔와 연관이 있다면 어떻게 할지.”-윤아가 입원한 병원을
“내버려두라는 게 아니에요. 하지만 이미 벌어진 일을 화낸다고 바뀌는 건 없어요. 그러니까 우리 천천히 해요.”“천천히 해라고요? 이 지경이 됐는데 어떻게 천천히 해요? 당신 아들은 당신이 직접 말리면 되겠네요. 난 앞으로 관여하지 않을게요.”태범은 못 말린다는 듯 한숨을 내쉬었다.“여보, 알잖아요. 난 당신 말만 따른다는 거. 그리고 수현이 문제는... 만약 당신이 수현이라면 어쩌겠어요. 생명의 은인이 사라졌다는 소식을 듣고 수술실에서 가만히 기다릴 수 있어요?”선희는 침묵했다.“이렇게 어려운 일을 수현이더러 어떻게 선택하라겠어요.”“찾으러 가지 말라는 건 아니에요. 그런데 이렇게 오랫동안 가야겠어요? 윤아도... 선우가 발견해서 다행이에요. 아니면 윤아 정말 어떻게 됐을지도 몰라요. 아무리 선택하기 어렵다 해도 뭐 어쩌겠어요.”“그러게요. 선우가 있어서 다행이네요. 당신도 수현이를 그만 나무라요. 저 녀석도 속으론 힘들 거예요.”“힘들어야죠. 진짜 무슨 일이라도 벌어지기 전에 자신에게 가장 중요한 걸 알아차려야 해요.”말은 이렇게 했지만 아까 뺨을 맞은 후 아무 말도 하지 않소 가버린 아들을 생각하니 그래도 마음이 조금 아팠다.저 녀석도 괴로울 것이다.하지만 방법이 없었다. 누굴 택하든 그에겐 고통일 것이다.어휴... 부모인 그들도 소영을 함부러 뭐라 하지 못했다. 자칫하면 은혜도 모르는 파렴치한 인간으로 될 테니까.인간으로 된 자로서 은혜는 꼭 명기해야 했다.많은 일은 동시에 두 가지 조건을 만족시킬 수 없으니, 윤아만 불쌍했다.이렇게 생각한 선희는 윤아가 너무 안쓰러워졌다. 오늘 일이 자신에게 벌어졌다고 생각하면 정말 용납하기 어려웠다.그녀는 윤아가 어떻게 참았을지 생각하기 끔찍했다.수현은 병원 관찰실 밖에서 한 시간 정도 있다가 몸을 일으켰다.“저 나갔다 올게요.”아까 선희에게 뺨을 맞기는 했지만 그래도 나가기 전에 그들에게 알렸다.선희는 이 말을 듣자마자 눈썹을 찌푸렸다.“이 시간에 나가는 거니?”“네. 처리해
그를 보자마자 소영은 조금 놀란 표정을 짓다가 기쁨으로 가득찬 웃음을 지으며 병실 침대에서 내려가 수현을 향해 걸어갔다.“수현 씨, 왜 갑자기 찾아왔어? 할머님 병세는 어떻게 되셨어? 수술은 잘 됐지?”하지만 수현과 가까워질수록 그의 굳은 얼굴과 서늘한 시선이 눈에 들어왔다.주연과 준태 일을 떠올리자, 소영은 심장이 후들후들 떨렸지만, 아무런 내색도 하지 않았다.이럴 때일수록 절대 당황하면 안 된다. 더 침착해져야만 빈틈없어 보일 것이다.절대 수현이 그 어떤 것도 눈치채게 해서는 안 된다.“할머니는 괜찮으셔. 너는?”그의 목소리는 매우 차가웠다.“뭐?”잘못 들은 줄 알고 심장이 쿵쾅쿵쾅 뛰었다.‘날 물어본 거야?’“네 친구는?”수현은 병실을 한 바퀴 훑어보고는 말을 이었다.“어디 갔는지 알아?”“모르겠어.”소영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아랫입술을 꼭 깨물었다.“내가 아까 나간 바람에 날 찾으러 갔나 봐.”“그래?”소영은 수현이 도대체 뭘 말하려는지 잘 몰랐다. 폭로된 줄 알았지만, 수현은 아까 그 두 글자를 말한 후 계속 침묵하고 있었다.하지만 그의 시선은 소영의 정신을 아찔하게 만들었다. 처음이었다. 전에 알던 그가 아닌 것 같은 적은.이렇게 의심이 가득한 시선으로 자신을 바라볼 줄 몰랐다.안돼...어떻게 이럴 수가...심장이 찌르는 듯 아파 났다.수현이 이런 시선으로 자신을 보는 게 너무 괴로웠던 소영은 어쩔 수 없이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수현 씨, 왜 그래? 무슨 일 있어? 미안해. 내가 몰래 할머님 뵈러 가서 화났어?”말을 마친 뒤, 그녀는 손을 뻗어 수현의 옷자락을 가볍게 끌어당기면서 나긋나긋하게 말을 이었다.“수현 씨, 화내지 마. 응?”수현은 고개를 숙이고는 자신의 옷자락에 닿은 손을 보고는 천천히 그녀의 손을 밀어냈다.손이 허전해진 것이 느껴지자, 소영은 비틀거리며 하마터면 제대로 서 있지 못 할 뻔했다.“다시 물을게. 너 정말 네 친구들이 어디 갔는지 몰라?”“정말 몰라.”소영은 고개
그래서 소영은 주연의 이런 점을 보아 계속 곁에 둔 것이다.하지만 정말 유용하게 쓰일 날이 올 줄은 몰랐다.그리고 최준태는 그녀를 그렇게 좋아했으니, 그녀를 대신해 이 정도 고생쯤 하는 건 아주 달가워할 것이라 여겼다.“모르겠어?”수현은 눈을 가늘게 뜨며 차가운 손으로 소영의 턱을 잡았다.“소영아, 넌 내 생명의 은인이야. 그래서 지금까지 난 늘 너를 믿었고 아주 소중한 사람으로 여기고 있어.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나한테 함부로 거짓말할 수 있는 건 아니야.”그의 손에는 점점 힘이 들어갔고 소영도 선명한 아픔이 느껴졌다.이 순간, 턱에 닿은 차가운 그의 손 외에 그녀는 수현의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포악한 기운을 느꼈다.예전에 한 번도 없었던 거다.그가 자신에게 이런 짓을 하다니, 믿을 수가 없었다.‘아니야, 그럴 리가 없어. 날 제일 믿었잖아. 어떻게 나한테 이래? 왜 이렇게 된 건데...’가슴이 찌릿 아파 나면서 뜨거운 눈물이 소영의 눈에서 흘러넘쳤다.오 초도 되지 않는 시간에 그녀는 이미 펑펑 울음을 터뜨렸다. 마치 큰 억울함을 당한 듯, 세상이 그녀를 버린 듯 말이다.“수현 씨, 도대체 무슨 소리를 하는지 모르겠어. 흑, 내가 언제 거짓말 했다는 거야? 또 어떤 거짓말했다는 건데. 수현 씨 허락 없이 몰래 할머님 뵈러 간 거 말하는 거라면 이미 사과했잖아. 그리고 그땐 다른 사람들에게 알리고 싶은 생각도 없었어. 그래서 나갈 때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았던 거야. 몰래 뵙고 돌아온 것도 안 돼? 수현 씨, 내가 도대체 뭘 잘못했는데...제발 알려줘...흑흑.”소영은 입술을 깨물며 비오듯 눈물을 흘렸다.그녀의 이런 모습을 보자 수현은 눈썹을 살짝 추켜세웠다.설마 오해했나?이렇게 생각한 수현은 소영의 턱을 잡고 있던 손을 내려놓고는 주연과 준태가 저지른 일을 담담하게 말했다.소영은 원래 그가 자신에게 거짓말했다고 질책해 괴로워하던 중, 그가 한 말을 들은 후 제자리에 멍해 있었다.한참이 지나서야 그녀는 놀라서 눈을 동그랗게 뜨고
그게 무슨 소리야?아직 검사받지 않았다니?그렇다는 건 멀쩡하다는 소리잖아! 아무 이상이 없으니, 검사를 받지 않았을 것이다. 아이를 유산하면 분명 피를 흘렸을 거고 상황이 위태로웠을 테니까.“검사받았어.”수현의 목소리는 그녀를 현실로 끌어당겼다.등골이 오싹해 났다. 검사를 받았는데 아무 이상이 없다면 그건 수현이 윤아가 임신한 사실을 알았다는 것을 뜻한다.그럼 그녀가 몰래 메시지를 삭제하고 윤아와 사적으로 합의한 일도 알지 않았을까?정말 그렇다면 그는 분명 자신에게...모든 열기를 뺏긴 듯 몸이 차가워지면서 얼음덩이로 된 것 같았다.수현은 소영의 표정 속에 담긴 감정을 하나도 놓치지 않았다. 검사받았다는 소리에 그녀는 분명 이상하게 반응했다.그는 눈을 가늘게 뜨며 물었는데, 마치 뱀이 먹잇감을 노리는 것 같았다.“왜? 검사 안 받았다니까 걱정돼?”이 말을 듣자, 소영은 정신을 차리고는 간신히 입꼬리를 올렸다.“당연하지. 어쨌든 이번 일은 주연이와 준태가 짜고 벌인 거잖아. 평소에 나랑 가깝게 지내는 친군데 나도 책임 있어.”안된다. 상황을 제대로 파악하기 전에 당황스러운 모습을 보여서는 안 된다.비록 검사받긴 했지만 임신 사실이 밝혀지지 않았을 수 있다.적어도 수현이 그녀에게 사형 신고를 내리기 전까지 차분해져야 했다.“그래. 너도 책임 있어. 내가 저번에 황주연보고 다시는 네 앞에 나타나지 말라고 경고했잖아.”강소영: “...”“잊었어?”젠장.이건 생각지도 못했던 전개였다.주연이 수현에게 밉보인 건 알고 있었다. 그래서 수현이 올 때 최대한 나타나지 말게끔 했다.하지만 최근 며칠 동안 수현이 아예 병원에 오질 않으니, 소영은 주연을 오고 싶을 때 오게 했다. 이용할 가치가 있으니 말이다.“수현 씨, 미안해...잊은 건 아닌데 그냥 주연이를 거절할 수 없었어. 이렇게 오랫동안 함께 한 정도 있고 또 내가 다쳤다니까 병문안 오겠다는데 어떻게 막아.”“그리고 주연이가 성격이 조금 급하잖아. 난 그저 그날 윤아 씨와 다
“그래.”수현은 차분하게 대답했다.“할머니께서 수술실 들어가신 시간이지. 그리고 넌 충분히 이 시간을 이용해 네가 하려던 일을 숨길 수 있었어.”여기까지 듣자, 소영의 안색은 순간 창백해졌다. 연약한 몸은 제자리에서 비틀거렸는데 마치 바람에 흩날리는 버들가지 같았다.“수현 씨는 역시 마음속으로 내가 했다고 생각했구나. 날 하나도 믿지 않았어. 진수현, 어떻게 날 믿지 못할 수 있어? 지난번에 체면을 지키려고 일부러 다친 것 때문에 그래? 내가 그렇게 나쁜 여자로 보여?”수현은 눈을 가늘게 떴다.“그러니까, 드디어 인정했구나. 일부러 다쳤다는 거.”소영은 몸을 흠칫 떨었다.“처음부터 인정했어. 아니야? 내가 한 일은 인정해. 하지만 하지도 않은 일을 내가 왜 인정해야 해? 우리 지금까지 몇 년 동안 알고 지내왔어? 난 다른 사람을 모함하는 대신 직접 다치는 거로 체면을 지켰어. 심지어 널 구하려고 목숨까지 버릴 수 있었다고. 너랑 가짜 결혼까지 하면서 할머님 마음 편히 수술받으실 수 있게 한 네 소중한 친구 심윤아에게 난 고마운 마음뿐이었어. 그런 내가 어떻게 윤아를 해칠 생각을 하겠어?”소영의 이 말은 확실히 수현의 마음을 움직였다.목숨을 바쳐 그를 구한 것은 사실이었으니까. 운이 안 좋았다면 자칫 강에 빠져 죽을 수도 있었다.만약 정말 그렇게 악랄하고 이기적인 사람이었다면 강에 뛰어들어 그를 구하지도 않았을 것이다.생사의 갈림길에서 자신의 목숨은 뒤로한 채, 그를 선택한 일은 늘 수현을 미안하게 만들었다. 그러니 더 밀고 몰아붙일 수 없었다.이렇게 생각한 수현은 어쩔 수 없이 손수건을 그녀에게 건넸다.“미안해. 아까 너무 흥분했어.”소영은 원래 자리에 서서 움직이지 않고 하염없이 눈물만 흘렸다.평소라면 이렇게 울었을 때 수현이 조금이라도 미안한 마음이 든다면 앞으로 다가와 그녀의 눈물을 닦아주어야 했다.하지만 지금은...이 정도 인내심도 없는 거야? 눈물을 닦아주는 사소한 행동도 하기 싫어서 손수건만 내어주다니...결국 그녀
같은 시각 경찰서.“날 내보내 줘요. 난 저 인간과 공범이 아니라고요! 모든 건 다 저 사람 혼자 기획하고 저지른 거예요. 그러니까 제발 좋은 사람 모함하지 말란 말이에요!”주연은 끊임없이 몸부림치며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잡혀 온 몇 시간 동안 그녀는 조사가 끝나면 자신을 풀어줄 거라고 생각했다.하지만 현실은 그녀의 예상과 빗나갔다. 갇힌 후로부터 지금까지 그녀를 풀어줄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곁에 있는 준태는 이미 현실을 받아들였는지 조금도 반항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자기가 저지른 일이라고 인정하기까지 했다."다시 묻겠습니다. 지금 곁에 있는 황주연 씨와 함께 이번 납치 사건을 계획했습니까?"준태는 고개를 끄덕였다."네.""그럼 황주연 씨 외에는요? 다른 사람도 함께 참여했습니까?"이 물음을 듣자마자, 주연의 머릿속엔 소영의 이름이 스쳐 지나갔다.하지만 그녀가 정신을 차리기도 전에 곁에 있던 준태가 먼저 부정했다."아니요. 저희 둘밖에 없습니다."이 말을 듣자, 주연은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돌려 준태를 보았는데, 그 시선 속엔 극도의 놀라움이 담겨 있었다."황주연 씨, 최준태 씨가 한 말이 사실입니까?두 분이 이번 납치 사건 계획한 것, 맞습니까?""아니요, 저 인간 지금 거짓말하고 있어요. 최준태 혼자 저지른 일이에요. 저랑은 아무 연관 없어요."지금의 주연은 정서 기복이 매우 심했다. 게다가 두 사람에게 제대로 된 답을 듣지 못한 까닭에 경찰 측에선 어쩔 수 없이 그들을 따로 수감하고 나중에 따로 심문하기로 했다.두 사람은 곧 끌려갔다.가기 전, 주연은 계속 소리쳤다."소영이를 봐야겠어요. 강소영은 제 친구예요. 그 애가 증언할 수 있어요. 이 일이 최준태 혼자 벌인 거라고 말이에요. 저 인간이 심윤아에게 복수하겠다고 말했을 때 우린 똑똑히 들었다고요!"새로운 정보를 얻은 경찰은 곧 수사에 들어갔다.-한편 윤아는 병실 침대에 누워 잠들었다.약을 쓰긴 했지만 하루 종일 너무 긴장한 탓에 마음이 안정된
이렇게 설레는 말에 간호사는 순간 윤아가 부러워졌다.‘여자 친구도 아닌데 이렇게 잘해주는구나. 까야, 진짜 너무 부드러워. 말할 때 목소리도 너무 상냥하고 축하해준 거 고맙대. 세상에 어떻게 이 정도로 다정한 남자가 있지?’선우에게 정신이 팔려 멍하니 이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병실 문이 열렸다.훤칠한 수현이 걸어들어왔다. 그의 주변엔 밖의 차가운 공기가 맴돌고 있었고 잘생긴 얼굴엔 거의 얼어붙을 정도로 차가운 표정을 짓고 있었다.병실에 들어서자마자 그의 시선은 병상의 여자에게로 쏠렸다.한 바퀴 둘러본 후, 그는 선우를 보며 차갑게 말했다.“집으로 데려갈게.”집?이 단어를 들었을 때 간호사는 놀랐다.집이라고 하는 걸 보면 이 두 사람이 부부란 소리야?수현의 직설적인 말에 선우는 화내는 대신 여전히 부드럽게 말했다.“데려가는 건 괜찮은데 윤아가 깰 때까지 기다려야 하잖아?”안색이 어두워진 수현.병실에 들어오기 전, 그는 선우가 간호사와 하는 소리를 들었다.지금 당장 윤아를 안고 집에 데려가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지만 이렇게 한다면 윤아의 휴식을 방해할 거라는 이성이 그를 말렸다.하지만 선우 곁에 계속 두기엔 마음이 놓이지 않았다.만약 이렇게 조용히 잠만 잔다면 깨어난 후 데리러 와도 되지만 중도에 깨어나서 선우가 한 헛소리를 들으면 어쩌나 걱정 되었다.이렇게 생각한 수현은 더는 주저하지 않고 의자를 끌어당겨 병상의 반대편으로 가서 선우와 마주 앉았다.돌아가는 건 불가능했다. 눈앞의 이 남자가 윤아를 노리고 있는 게 분명했으므로.결국, 외모가 훤칠한 남자 둘은 이렇게 작은 병상에 둘러 앉아 있었다. 간호사는 링거 바늘을 빼주러 왔다가 이런 장면까지 보게 되어 은근히 짜릿했다.일 때문만 아니라면 이 병실에 계속 남아 어떤 전개가 이어질지 보고 싶었다.안타깝게도 근무 중이라서 얼른 일해야 했다. 그래서 간단하게 인사한 후 간호사는 병실을 떠났다.지금 병실엔 세 사람만 남아있었다.조용한 병실 안, 두 남자의 시선은 허공에서 얽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