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유

제115화

작가: 박윤미
last update 최신 업데이트: 2024-10-29 19:42:56
이 말을 듣자, 윤아는 머리를 들어 수현을 보았다.

그의 검고 짙은 눈동자와 눈이 마주치는 순간, 도둑이 제 발 저리다고 윤아는 수현에게 마음속 깊은 곳까지 다 간파당한 느낌이 들었다. 그녀는 재빨리 시선을 거두고 전혀 신경 쓰지 않는다는 말투로 대답했다.

“응.”

“그래?”

수현은 눈을 가늘게 뜨고는 윤아의 안경 아래에 숨겨진 눈을 바라보며 물었다.

“그런데 왜 다크서클 있어?”

이 말을 마치고 수현은 뭔가 떠올랐다는 듯 중얼거렸다.

“어쩐지. 그래서 안경 꼈던 거네.”

“...”

윤아는 손을 거두고 대수롭지 않다는 듯 말했다.

“다 닦았어. 그런데 수현 씨 입술에 난 상처는 약을 바르는 게 좋을 거야. 가자, 할머님 뵈러.”

말을 끝낸 윤아는 몸을 돌려 앞으로 걸어갔고, 수현도 잠시 뭔가를 생각하더니 그녀의 뒤를 따라갔다.

“네 눈에 핏발 섰더라.”

“피곤한 거 같은데. 어젯밤 잘 못 잤어?”

연거푸 두 마디에 윤아는 참다못해 고개를 돌리고는 수현을 쏘아보며 말했다.

“수현 씨, 그만해.”

말을 마친 윤아는 하이힐로 땅을 쾅쾅 밟으며 앞으로 걸어갔다.

의사는 선월이 너무 긴장하는 바람에 쓰러졌다고 했다. 그리고 현재 몸 상태는 정상이었고 다른 문제도 없다고 말했다. 이걸 들은 두 사람은 그제야 마음을 놓으면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참 다행이었다. 긴장해서 쓰러졌을 뿐 다른 문제가 없다고 하니.

“현재 환자분의 이런 심리 상태로선 수술을 진행하기엔 무리입니다.”

의사는 눈썹을 찌푸리고는 소리를 낮추면서 제안했다.

“심리도 아주 큰 문제입니다. 환자분의 신체적 조건은 부합되지만, 심리 상태가 안정적이지 못하기 때문에 여러 가지 문제를 일으킬 수 있어요.”

윤아는 의사의 말을 듣고 잔뜩 긴장한 채 물었다.

“그럼 어떡하면 되나요? 의사 선생님, 해결할 방법이 있어요?”

“네. 우선 약물치료 받으셔야 할 겁니다. 보호자분들도 환자분이 심리적 안정을 취하도록 대화도 나누면서 잘 협조해 주세요.”

윤아는 알 것 같았다. 역시 심리 문제였다.

그녀는 빨간 입술을 앙
잠긴 챕터
앱에서 이 책을 계속 읽으세요.

관련 챕터

  • 다시 돌아온 내 남편의 그녀   제116화

    ‘그래서 이혼했는지 물어보려고 전화 한 거야?’-병실 밖.수현은 특별히 병실에서 멀리 떨어진 곳까지 가서 전화를 받았다.“수현 씨?”소영의 목소리가 전화 저편에서 들려왔다.수현은 비록 기분이 좋진 않았지만 소영을 대할 때에는 최대한 감정을 추스르며 평소처럼 말했다.“응. 이렇게 일찍 무슨 일이야?”소영은 전화 저편에서 근심 가득 담긴 목소리로 답했다.“실은 깬 지 오래됐어. 어젯밤에 걱정돼서 잘 못 잤거든. 할머님은 어떠셔? 수술실 들어가셨어? 수현 씨, 지금 이런 부탁 하면 안 되는 거 잘 아는데 나도 할머님 뵈러 가면 안 될까? 너무 걱정돼서 그래. 절대 할머님 눈에 띄지 않고 그냥 밖에 있다가 할머님이 깨시자마자 갈게. 절대 들어가지 않을 거야.”한없이 자신을 낮추며 말하는 소영의 목소리를 들은 수현은 눈썹을 치켜올렸다.생명의 은인으로서 이런 대우를 받아서는 안 됐다. 그는 소영의 부탁을 들어주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았지만 결국 선월의 병세를 고려해 입을 닫기로 결심했다.“소영아, 할머니께서 아직 수술실 들어가지 않으셨어.”이 말을 듣자, 소영은 잠시 멈칫하더니 다시 물었다.“아, 그래? 수술이 지연된 거야? 아니면...”“응. 수술 지연됐어. 할머니께서 너무 긴장한 바람에 쓰러지셨거든.”이 말을 하면서 수현은 선월의 병실 쪽을 한눈 보고는 말을 이었다.“한동안 미루기로 했어.”“어? 미, 미루다니?”윤아는 깜짝 놀랐다. 그녀는 지금 앞에 준비해 둔 와인과 스테이크, 심지어 향초를 바라보았다.원래 소영은 선월이 수술을 마쳤고 또 수현이 윤아와 순조롭게 이혼도 했으니, 그와 함께 축하 파티나 하자고 말하고 싶었다.하지만 이렇게 중요한 시점에 이런 일이 벌어질 줄은 꿈에도 몰랐다.“응. 얼마나 미룰지는 모르겠어. 할머니께서 아직 혼수상태라서. 나중에 연락할게.”말을 마친 수현은 전화를 끊고 병실 쪽 방향으로 걸어갔다.뚜뚜-소영은 핸드폰에서 울리는 소리를 들으며 멍하니 서 있었다.친구 한 명이 옆방에서 걸어오면서

  • 다시 돌아온 내 남편의 그녀   제117화

    평소에 소영은 거의 화내지 않았다.사람들 앞에서 그녀는 늘 다정하고 상냥한 모습이었다.예쁘기도 한데 성격마저 좋으니, 소영은 늘 여신의 대접을 받았다.그런데 이렇게 갑자기 버럭 소리 지르며 화내니 친구들은 깜짝 놀라서 이상한 눈길로 그녀를 바라봤다.사방은 삽시에 쥐 죽은 듯 조용해졌다.친구들의 시선과 조용한 환경 속에서 소영은 정신이 번쩍 들었고 아까 자신이 뭘 했는지가 떠올랐다.“얘들아, 미안해. 내가 기분이 좀 안 좋아서 예민하게 굴었어. 미안해.”그녀는 선홍빛 입술을 달싹이다가 결국 이 한마디 말을 내뱉었다.여신의 이미지를 유지하기 위해 소영은 눈시울을 붉히며 계속 미안하다고 사과하면서 진주 같은 눈물을 뚝뚝 떨구었다.소영이 버럭 지른 소리에 어안이 벙벙해졌던 친구들도 소영이 울면서 사과하는 모습을 보자 금세 마음이 아팠다.“소영아, 도대체 무슨 일이야. 울지마.”“그래, 소영아. 아까 수현 씨에게 전화하지 않았어?”다들 한편으로는 소영을 위로하고 한편으로는 그녀에게 휴지를 건네면서 어렵게 달래고 있었다.소영은 원래 예쁘게 생겼는데 흐느끼면서 울기까지 하니 애처로움이 더해져 더 아름다워 보였다. 그녀는 새하얀 손끝으로 눈가를 살살 닦으며 슬픔에 겨운 말투로 말했다.“응. 전화했어. 그런데 당분간은 이혼하지 않을 거래.”선월이 쓰러지는 바람에 수술이 지연됐으니, 수현과 윤아의 이혼 날짜도 뒤로 미루게 생겼다.소영은 이 일이 조금 창피했으나 끝까지 숨길 수도 없는 일이라서 어쩔 수 없이 사실대로 말했다.“뭐? 당분간은 이혼 안 한다니! 왜?”“그러게. 전에 잘 말해뒀잖아. 어르신께서 수술만 마치시면 이혼하기로. 왜 이런 변수가 생겼대?”“난 알 것 같아. 분명 그 심윤아 나쁜 년이 수현 씨와 이혼하기 싫어서 수작 부리는 거지? 와, 진짜 얼굴 두껍다.”소영이 입술을 움직이며 뭐라고 해석하려고 할 때 다른 친구 한 명이 또 옆에서 말했다.“난 그 여자가 말 고분고분 듣지 않을 줄 알았어. 전에 우리가 찾아갔을 때 어땠는지

  • 다시 돌아온 내 남편의 그녀   제118화

    “소영아, 걱정하지 마. 이번 일은 우리가 꼭 네가 당한 만큼 다 갚아줄게.”“얘들아, 이러지마...”소영은 눈시울을 붉히며 앞에 있는 친구들을 바라보았다. 그리고는 작은 소리로 말했다.“너희들이 날 위해서 이러는 건 알겠는데 윤아 씨 요즘 요양원에서 할머님을 돌보고 있어. 정성이 지극해.”이 말을 듣자 친구들은 계속 말했다.“그래? 그러면 심윤아가 어르신을 다 돌본 다음에 혼쭐을 내주면 되지. 꼭 널 위해 복수해 줄게.”소영은 정말 난처하다는 듯 입을 열었다.“얘들아, 날 위해서 그런 창피한 일 하지 마. 나중에 내가 윤아 씨 만나서 얘기 나눠볼게.”“자, 지금은 저녁으로 준비했던 음식들을 해결해 볼까. 다행히도 넉넉하게 마련했어. 부족하면 더 시킬게.”“소영아...”“아까 일은 다시 꺼내지 말자. 우리 오늘 술도 마시면서 제대로 놀자. 슬픈 일은 잊는 거야.”소영은 와인 한 병을 따고 몸을 돌려 와인잔을 가져왔다.친구들은 이런 소영을 보고는 서로 시선을 맞추며 마음속으로 씨앗 하나를 묻어두었다.-윤아는 하루 동안 수현과 함께 요양원에서 선월의 곁을 지켰다.이 시간 동안 윤아는 입맛이 없어 옆의 병상에 반쯤 기대었는데 기운이 없어 보였다.모르는 사람이 보면 아픈 게 윤아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수현은 그런 윤아를 살짝 잡아당기며 말했다.“뭐라도 좀 먹어.”윤아는 눈썹을 찌푸렸다.“입맛 없어.”수현은 잠시 침묵하더니 입을 열었다.“신선 놀이 하는 거야?”하루 종일 입맛이 없다며 도통 먹지를 않으니.수현은 심지어 윤아가 요즘 들어 부쩍 말랐다는 생각이 들었다. 착각인지 모르겠지만 말이다.침묵을 유지하고 있는 윤아를 보며 수현은 그녀에게 죽 한 그릇을 담아 그녀에게 건네주었다.“조금이라도 먹어.”윤아는 눈앞의 죽을 보며 이상을 찌푸렸다. 거절하려는 말이 목구멍까지 올라왔지만 뭔가 떠오른 후 손을 뻗어 죽 그릇을 받아왔다, 그녀는 숟가락으로 죽을 떠서는 억지로 삼켰다.배고프지도 않았고 입맛도 없었다.하지만 지금의

  • 다시 돌아온 내 남편의 그녀   제119화

    수현이 그녀에 대한 보살핌은 아마 소꿉친구 사이의 우정을 보아서, 혹은 양가가 대대로 맺은 친분을 보아서 그녀를 동생으로 여기고 있을지도 모른다.그래서 결혼이라는 틀이 있든 말든 수현은 그녀에게 잘해줄 것이다.웃긴 건 이런 사이에 그녀가 수현에게 다른 마음을 품었다는 사실이다.윤아는 자소 섞인 웃음을 지으며 눈을 질끈 감고는 수현에게 닿았던 시선을 거두었다.선월은 저녁 여덟 시에 깼다.그녀가 깨자마자 윤아는 선월의 병상에 다가가 엎드리고는 그녀와 눈을 맞추었는데 잔뜩 긴장한 모양이었다.“할머님, 깨셨어요? 몸은 어떠세요? 불편한데는 없어요? 배고프지는 않으세요?”선월은 눈앞에 잔뜩 긴장한 얼굴을 하는 윤아를 보았다. 자신을 걱정한 나머지 눈마저 동그랗게 뜬 그녀를 보며 선월은 참지 못하고 입꼬리를 올린 채 머리를 가볍게 흔들었다.‘윤아 요것, 정말 마음에 든다니까.’선월이 머리를 흔들기만 하고 아무 말도 하지 않으니 더 긴장한 윤아는 입술을 핥으며 선월의 앞에서 손짓했다.“할머님, 저를 보세요. 이게 몇이에요?”선월은 자신의 앞에 놓인 손가락 두 개를 보면서 ‘이’ 라는 말이 목구멍까지 올라왔지만, 윤아를 놀리려는 생각에 결국 ‘일’ 이라고 했다.그러자 윤아는 겁먹은 표정을 지었다.“할머님...”그녀는 당장 몸을 일으켜서 의사를 찾으러 가려 했다. 이때 옆에 서 있던 수현이 그녀의 손목을 붙잡았다.윤아는 놀란 토끼 눈으로 그를 바라보며 말했다.“이거 놔. 의사 선생님 모셔 올 거야.”수현은 그녀를 가만히 바라보면서 끝까지 손을 놓지 않았다. 그는 못 말린다는 표정으로 그녀에게 말했다.“다시 물어보지 그래?”그러자 선월이 작은 웃음을 터뜨렸다.“됐다. 이 할미가 널 놀렸어. 난 괜찮단다.”윤아는 선월을 바라보았는데, 그제야 그녀의 입가에 웃음이 걸려있는 것을 발견했다.‘그러니까 방금 일부러 일이라고 하신 거야?’‘하... 멀쩡하시구나. 놀릴 기분도 있으시고.’이렇게 생각한 윤아는 드디어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할머님

  • 다시 돌아온 내 남편의 그녀   제120화

    ”돌아가. 윤아 데리고 가서 푹 쉬어. 여긴 간병인들이 있잖니.”윤아는 깨어나자마자 그들과 함께 있는 것을 거부하는 선월이 왜 이러는지 도통 몰랐다. 수현도 선월의 말을 들은 후 움직이지 않았다. 그는 그저 얇은 입술을 꼭 다물고는 굳은 표정으로 제자리에 앉아있었다.“수현아, 이젠 이 할미 말도 안 듣는 거니?”그러자 수현이 미간을 찌푸렸다. 윤아는 얼른 그의 앞을 막아서며 살랑살랑 말했다.“할머님, 무슨 염려가 있으세요? 저희에게 얘기해주시면 안 될까요?”쓰러진 후 이런 말을 한 선월이 윤아는 몹시 걱정되었다.“염려라니. 그냥 나이를 많이 먹었으니까, 생각도 바뀐 거야. 젊은이들이 나 때문에 바쁜 시간 쪼개며 왔다 갔다 하는 게 싫어서 그래.”선월은 한숨을 내쉬며 말했는데, 윤아를 대하는 태도는 그래도 아주 부드러웠다.“윤아야. 사실 이 할미에겐 수술하든 말든 상관없어. 그렇게 중요하지가 않단다.”이 말을 들은 윤아는 순간 안색이 변했다.“어떻게 안 중요해요. 할머님, 왜 상관없으세요. 할머님 지금 상태 되게 좋아지셨다고 했어요. 그래서 수술도 아주 성공적일 거라고 의사 선생님이 그러셨잖아요. 할머님 두려우신 거예요? 그러면 저 오늘부터 여기 있을래요. 할머님 수술 마치실 때까지 곁에 있을게요. 네?”수술이 중요하지 않다는 말을 들은 순간, 윤아는 거대한 두려움에 휩싸였다. 그녀는 재빨리 선월의 손을 꼭 잡고 병상 옆에 쭈그리고 앉았다.마치 수술을 해야 하는 사람이 그녀인 것마냥 더 신경 썼다.이런 윤아를 보며 선월은 마음이 아팠다.이렇게 오랫동안 함께 지냈는데 어떻게 모를 수가 있겠는가. 윤아는 어릴 때부터 어머니의 사랑이 부족했었다. 그래서 어쩌다가 선월같은 여성 어른을 만나니 더욱 기대고 의지했다. 선월이 나이가 많지만 않았어도 그녀는 윤아가 자신을 어머니로 여기고 있다고 생각했을 것이다.“할머님, 네?”선월이 대답하지 않자, 윤아는 작은 얼굴을 쳐든 채 웃음을 띠며 그녀를 바라보았다.“제가 요양원에서 할머님과 함께 있을게

  • 다시 돌아온 내 남편의 그녀   제121화

    병실을 나온 수현은 윤아의 손목을 잡고 병실과 멀리 떨어진 곳으로 성큼성큼 나아갔다. 윤아는 온 힘을 다해서 겨우 그의 손에서 벗어났다.“진수현. 무슨 짓이야?”수현은 수심 가득한 눈으로 윤아를 바라보며 말했다.“오늘은 이만 가지.”윤아는 그의 말에 미간을 찌푸렸다.“아까 할머님 모습 못 봤어? 할머님은 요양원을 떠나고 싶어 하셔. 여기 계시고 싶지 않아 하신다고.”윤아는 바로 전에 일로 할머님이 요양원을 떠나고 싶지만 가족들에게 폐를 끼칠까 봐 계속 계시는 거라 추측했다. 할머님은 집으로 돌아가고 싶어 하시지만 막상 돌아갈 엄두를 못 내는 것이다.윤아는 매주 주말마다 할머님을 뵈러 오면서도 그의 기분을 알아채지 못했다는 사실이 속상했다. 조금 일찍 알아챘다면 집으로 모시고 가서 보살폈을 것이다. 만약 그랬다면 수술 전날인 오늘 할머님이 쓰러지시는 일은 없었겠지.“알아.”수현이 낮게 말했다.“너도 봤잖아. 할머니는 지금 나에게 화를 내고 계시는 거야.”수현은 잠시 멈칫하더니 뭔가 떠오른 듯 말을 보탰다.“너에겐 아니고.”윤아는 멈칫했다.확실히 방금 할머님이 안 좋은 소리는 모두 수현에게 했었다. 윤아에게는 늘 그랬듯 친절하게 대하셨지.생각을 마친 윤아는 더 마음이 아팠다. 분명 기분이 안 좋으신데 자신에게까지 감정을 감추려 하신다니.“그니까 오늘은 할머니께 생각을 정리할 시간을 드리자. 우린 이만 돌아가서 방을 정리하고 내일 다시 모시러 오자.”윤아는 생각에 잠겼다. 수현의 말은 모두 맞다. 하지만 밤은 유독 길고 어둡다. 그녀는 기나긴 밤 동안 혼자 계실 할머님이 혹여 마음이 더 안 좋아지실까 염려되었다.고민 끝에 윤아가 입을 열었다.“오늘 밤에 모시고 가는 건 어때?”“오늘 밤?”“그래. 아직 시간은 이르잖아. 방 정리는 도우미분들한테 부탁하고 할머님께 두 시간 후에 집으로 모시겠다고 말하는 건 어때? 생각 정리하시는데 두 시간이면 충분하실 거야.”수현은 잠시 생각하더니 고개를 끄덕였다.“그래.”“그럼 지금 바로

  • 다시 돌아온 내 남편의 그녀   제122화

    덕분에 방 준비는 수월하게 진행될 수 있었다.윤아가 집사와의 통화를 마치자 때마침 수현의 핸드폰이 울렸다.유유히 울리는 핸드폰 벨 소리가 차 안에 가득 울려 퍼졌다. 갑작스러운 상황에 윤아는 잠시 멈칫하더니 이내 입가에 머금고 있던 미소가 점차 걷혔다. 그녀는 창문 쪽으로 고개를 휙 돌려버렸다.방금까지 활기가 넘치던 차 안이 삽시에 조용해지며 오직 핸드폰 벨 소리만이 외롭게 울려 퍼졌다.분위기가바뀐 걸 눈치챈 수현은 곁눈질로 윤아를 슬쩍 보고는 말했다.“심 공주. 전화 좀 받아줘.”그의 말에 윤아는 잠시 멈칫하더니 이내 거절했다.“직접 받아.”“나 운전하잖아.”“차 옆에 세우고 받아.”수현은 그녀의 말에 실소를 터뜨렸다.“전화 좀 대신 받아주는 게 그렇게 어려워?”“아니.”이렇게 된 마당에 윤아도 더는 신경 쓰지 않는다는 듯 말했다.“근데 내가 도와주기 싫어.”수현은 윤아의 막무가내인 모습이 그리 낯설지는 않았다. 마침 주변에 차를 세울만한 곳이 있어 그는 어쩔 수 없이 그곳으로 향했다. 차를 세운 수현은 검은 눈동자로 윤아를 바라보며 말했다.“내가 전생에 네 원수지.”수현은 투덜대며 핸드폰을 꺼내 들어 발신인을 확인했다.“어머니네.”수현의 말은 들은 체도 안 하던 윤아가 어머님이라는 말에 몸을 발딱 세우며 물었다.“그럴리가...”한참동안 받는 사람이 없는 탓에 전화벨 소리는 자동으로 끊겼다.수현의 시선은 윤아의 청초한 얼굴에 머무른 채 낮은 소리로 말했다.“그러면 누군 줄 알았어?”윤아는 얼굴을 돌리며 화제를 바꿨다.“어서 전화나 다시 걸어.”수현도 더 이상 캐묻지 않고 어머니께 다시 연락했다.신호음이 울린 지 얼마 되지 않아 바로 전화를 받는 이선희. 수현이 스피커모드로 해놓은 덕분에 그녀의 목소리가 차에 울려 퍼졌다.“현아. 나와 네 아빠 방금 비행기에서 내렸어. 지금 바로 요양원으로 갈 건데 네 할머니는 좀 어떠시니?”“수술 못 했어요.”수현은 오늘 있었던 일을 간단하게 설명해 드리고는 미간을 찌푸

  • 다시 돌아온 내 남편의 그녀   제123화

    아니나 다를까 수현도 선희의 부드러운 말투에 모든 화가 눈 녹듯 사르르 풀려버렸다.“됐어요. 오늘 밤 저와 윤아가 할머니 모시고 집으로 갈 거예요. 어머니 아버지도 요양원에 가실 필요 없으니 댁으로 돌아가세요.“집으로 모신다고?”이선희는 뜻밖의 소식에 조금 어리둥절해하더니 이윽고 말을 이었다.“윤아는 옆에 있니?”수현은 굳이 대답하지 않고 시선을 돌려 윤아에게 눈짓했다. 스피커모드로 해놓았으니 윤아도 다 듣고 있었다.자신을 찾는 선희의 말에 윤아가 입을 열었다.“어머님.”윤아의 목소리에 수화기 너머로 선희의 부드러운 웃음소리가 들려왔다.“윤아도 있었구나. 수현이 할머니 일은 네가 참 고생이 많았어.”“아니에요. 그렇게 말씀해 주시니 고마워요.”비록 김선월만큼 윤아에게 극진하지는 않지만 선희도 윤아를 대함에 있어서는 예를 갖췄다. 여태까지 윤아에게 쓴소리 한번을 안 했으니 말이다. 하지만 윤아와 수현이 결혼을 한다고 했을 땐 그녀도 조금 놀랐다.“이렇게 빨리 결혼할 줄은 몰랐네. 난 그놈이 자신의 마음을 알아차리기까지 조금 더 시간이 걸릴 줄 알았는데.”이선희는 당시 의미심장한 말과 함께 결혼을 동의했다. 그 말을 들었을 때 윤아는 그게 무슨 뜻인지 알아채지 못했다.자신의 마음을 알아차린다고? 윤아는 그저 어머님이 진수현이 자기를 좋아한다고 오해하고 하시는 말이라 생각했다. 게다가 어차피 가짜 결혼일 뿐이나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그래. 어머님은 너희가 잘 보살피니 나와 수현이 아빠도 안심이야. 시간도 늦었으니 오늘은 이만하고 내일 모여서 밥이나 먹자.”“네.”윤아는 흔쾌히 선희의 말에 동의했다.수현도 그녀와 잠깐 얘기를 나누다 전화를 끊었다.돌아가는 길에 수현과 윤아는 침묵을 유지했다. 집에 거의 다 와서야 고개를 돌려 수현을 바라보는 윤아.“실망이겠네.”수현:“?”갑작스러운 그녀의 쌀쌀맞은 말에 수현이 어리둥절해했다. 반면 윤아는 담담하게 말을 이었다.“할머님 수술이 미뤄졌으니 우리의 이혼도 미뤄졌잖아.”윤아의 말

최신 챕터

  • 다시 돌아온 내 남편의 그녀   제1206화

    -며칠 후. 현아는 해외로 떠났다. 떠나기 전 그녀는 윤아에게 내뱉은 말을 주워 담아야겠다고 했다. 현아는 남자친구가 너무 보고 싶었고 그래서 결국 남자친구와 함께 일하기로 결정을 내렸다고 했다. 그리고 이렇게 될 것이라는 걸 진작 알고 있었던 윤아는 그런 현아가 전혀 이상하다고 느껴지지 않았다. 현아가 출발하기 전 윤아는 조심히 가라는 인사를 전했다. 윤아는 생각했다. ‘주한 씨 추진력이라면 아마 얼마 지나지 않아 현아에게서 좋은 소식을 들을 수 있겠네.’역시나, 윤아의 예상대로 6월 1일쯤. 윤아가 곧 무대에 오를 두 아이 때문에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을 때 주한이 프러포즈에 성공했다는 소식을 들을 수 있었다. 두 사람의 결혼식은 8월로 정해졌다. 1월에 고백하고 4월부터 연인으로 발전, 6월엔 프러포즈, 8월엔 결혼식. 그 놀라운 진행 속도에 윤아는 입이 떡 벌어졌다. 특히나 현아는 처음엔 그렇게 거부감을 드러내더니 지금은 그때와는 전혀 다른 모습이었다. 하지만 두 사람이 이토록 빠른 속도로 결혼까지 골인할 수 있었던 것은 전부 주한이 적극적으로 현아에게 다가간 덕분이었다. 주한이 현아의 마음을 얻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한 일이었다. 어느 시기에 뭘 해야 하는지 그는 이미 충분한 준비를 마쳤고, 그 철저한 준비성을 당해낼 사람은 없었다. 다만 윤아가 놀란 것은 주한이 이렇게 적극적으로 공세를 퍼부으면서도 아직 잠자리도 가지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윤아에게 그 일을 털어놓는 현아의 얼굴은 새빨갛게 달아올라 있었다. “내가 프러포즈를 받아줬는데 아직도 예전처럼 자제한다는 건 혹시 날 아예 안 좋아했던 거 아냐?”윤아는 현아의 사유 방식에 웃음을 터뜨릴 수밖에 없었다. “너 대체 무슨 생각하는 거야? 주한 씨가 널 안 좋아하면 결혼하려고 했겠어? 주한 씨가 얻는 게 뭔데?”“그건 그래. 그럼 대체 왜?”“그거야 모르지. 그건 너희 연인 사이의 일이잖아. 난 끼고 싶지 않아. 궁금하면 네가 직접 알아봐.”‘알아보라고?

  • 다시 돌아온 내 남편의 그녀   제1205화

    설 연휴 후. 윤아는 우진에게서 온 전화 한 통을 받았다. 선우가 드디어 생각을 바꿔 더 이상 방에 갇혀 있고 싶지 않다고 이곳을 떠나 원래 있던 곳으로 돌아갈 것이라고 했다. 그 소식을 들은 윤아는 가슴 한편을 꽉 막고 있던 응어리가 쑥 내려가는 느낌이었다. “그래요? 정말 잘됐네요. 진 비서님은요? 제가 뭘...”윤아는 우진을 자기 곁에 두려 했다. 하지만 우진은 그 제안을 거절했다. 그는 이미 선우 곁에서 오랫동안 보좌했던 터라 그의 곁에 있는 것이 편하다며 계속 선우 옆에 남겠다고 했다. 모두 자기만의 귀속이 있는 법이었기에 윤아는 그에게 강요하지 않았다. 다만 그녀는 우진에게 만약 나중에 도움이 필요하면 연락하라고 당부했다. 그날 밤, 윤아는 이별을 고하는 메시지를 받았다. [내가 예전에 엄청 좋아했던 사람이 있었어. 하지만 난 그 애에게 많은 폐를 끼쳤지. 심지어 좋아한다는 이유로 그 애를 다치게 하기도 했어. 미안한 마음뿐이야. 그럼에도 난 여전히 걔를 사랑해. 그리고 앞으로 행복하기를 바라.][안녕.]내용은 간단했다. 하지만 그 문자를 작성하기까지 이선우는 그가 갖고 있던 모든 에너지를 쏟아부어야 했다. 메시지를 전송한 후 선우는 윤아의 답장을 기다리지도 않았다. 심지어 그에겐 그녀의 답장을 볼 용기도 없었다. 선우는 U-SIM을 뽑아 그대로 휴지통에 버렸다. 더는 뒤돌아보지 않을 것이다. 이젠 뒤돌아볼 기회조차도 없었지만. 윤아는 지금 그녀가 사랑하고 그녀를 사랑해 주는 사람 곁에서 앞으로도 행복한 나날을 보낼 것이었으니까. -4월 1일쯤, 현아와 주한은 연인으로 발전했다. 같은 시기, 현아가 투자한 과일 가게가 아파트 단지에 오픈했다. 오픈 날 윤아는 현아에게 선물을 보내기도 했다. “그래서 주한 씨 회사로 안 돌아가려고?”현아가 입술을 짓이겼다. “내가 없으면 주한 씨 회사가 안 돌아가는 것도 아니고 내가 왜 주한 씨 회사로 돌아가?’“주한 씨 회사로 돌아가라는 말이 아니라, 네가 만약 집에서 과일 가게를

  • 다시 돌아온 내 남편의 그녀   제1204화

    안 그래도 현아에게 좋은 사람을 소개해 주고 싶었는데 이렇게 훌륭한 남자를 만났으니 선희도 당연히 흐뭇한 마음이 들었다. 게다가 주한은 인품이 좋아 보였기에 선희는 가운데서 두 사람을 팍팍 밀어줄 의향이 있었다. 선희가 씩 미소 지으며 말했다. “주한아, 이 절에서 인연을 빌면 신통하게 들어주신대. 도착하면 성심을 들여 절을 올리렴.”말을 마친 선희는 일부러 현아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리고 현아 너도. 왔던 김에 같이 가서 기도드려.”잘 걱도 있다 갑자기 이름을 불린 현아는 순간 얼굴이 새빨갛게 달아올라 차마 말을 내뱉지 못했다. 주한은 시선을 내린 채 빨개진 현아의 볼과 귓불을 보며 웃음을 머금었다. 이번엔 전혀 헛된 걸음은 아닌 듯했다. 수현의 가족은 정말 따뜻한 분들이었다. 만약 나중에 결혼을 하게 되어 이런 가정을 꾸릴 수만 있다면 정말 더 바랄 것이 없을 것 같았다. “네. 제가 간절히 기도를 드려 볼게요. 알려주셔서 감사해요.”선희가 손을 내저으며 유쾌한 웃음을 지었다. 그들 일행은 10여 분 후 산꼬대기에 도착했다. 날씨가 퍽 좋았던 지라 높은 산꼭대기에 올라서니 구름도 더 가까이 느껴졌다. 발아래엔 산봉우리가 첩첩이 이어져 있었고 멀리 보이는 마을 풍경까지 더해져 마치 한 폭의 그림 같았다. 수많은 여행객들은 그곳에서 사진을 찍고 있었다. 어떤 사람은 풍경 사진을 찍었고 또 어떤 사람들은 풍경을 배경으로 셀카를 찍기도 했다. 윤아를 포함한 그들도 사진을 여러 장 찍고 나서야 기도를 드리러 절로 향했다.워낙 영험하다고 소문이 난 절이라 사람으로 붐비었고 기도를 드리는 것도 줄을 서야만 했다. 주한이 자리한 곳은 마침 현아의 맞은 편이었다. 주한이 그저 예의상 하는 얘기일 거라고 생각했던 현아는 그가 진지하게 기도를 드리러 눈까지 꼭 감고 절을 올릴 것이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 그 모습을 본 현아는 조금 놀라기도, 또 조금 감동적이기도 했다. 뒤에서 누군가 현아에게 말했다. “넌 안 가?”윤아의 목소리

  • 다시 돌아온 내 남편의 그녀   제1203화

    윤아는 사실 지금 현아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었다. 만약 두 사람이 사귀게 된다면 그건 신분 상승의 수준이었다. “하지만 내 개인적인 생각으론 주한 씨가 너에게 그런 얘기까지 했다는 건 그만큼 진심이라는 말일 거야. 주한 씨는 네가 그런 것들에 얽매여 두 사람 사이에 걸림돌이 되기를 바라지 않을 거야.”사실 주한 같은 남자를 만난다는 것은 흔한 일이 아니었다. 자수성가한 것은 물론 부모도, 친척도 없어 가족관계가 이보다 간단할 수 없었다. 이런 사람은 본인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확실하게 알고 있었다. 그가 걸어갈 미래는 전부 스스로 계획한 것이었다. 결혼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니 주한이 지금 현아에게 다가온다는 것은 그는 이미 자기가 뭘 하고 있는지 잘 알고 있다는 의미였다. “나도 알아.”현아가 시선을 내리며 말했다. “사실 전엔 난 믿지 않았어. 난 그저 주한 씨가 내가 갑자기 퇴사한 걸 받아들일 수 없어서 그러는 거라고 생각했어. 하지만 내가 윤이네 선물을 사러 갔을 때, 주한 씨가 내가 할인받아 사준 만년필을 몇 년 동안이나 쓰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됐어.”별일 아닌 것 같지만 사실 조 단위의 자산을 갖고 있는 주한에겐 소중한 물건이라는 얘기였다. 최소한 현아 본인은 그렇게 생각했다. 현아의 얘기를 조용히 듣고 있던 윤아의 입꼬리가 살짝 올라갔다. “사실 그렇게 많이 고민할 필요 없어. 만약 너도 주한 씨가 좋다면 용기 내서 한 번 만나봐. 어차피 사귄다고 해도 당장 결혼할 것도 아니잖아. 혹시 알아? 사귀고 나서 네 생각이 바뀔지?”“네 말도 맞아. 그럼 나 더 이상 고민 안 할래. 일단 연애만 해보면 되잖아. 어차피 그저 연애만 하는 것뿐이야.”깊은 고민에 빠졌던 현아는 윤아의 도움으로 마음의 평안을 찾았다. “그래. 인생 살다 보면 실수도 할 수 있고 그런 거지. 실수해도 괜찮아. 처음부터 선택한 모든 길이 정확하다고 장담할 수 있는 사람이 어디 있겠어?”“공주야, 넌 좋은 친구야. 넌 내 인생의 구원자라고.”고민이 해결

  • 다시 돌아온 내 남편의 그녀   제1202화

    그 말은 어느 정도 강압적으로 들리기도 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예의상 건넨 말이 아니라 진심으로 주한을 집으로 초대한 것임이 느껴졌다. 선희가 이렇게까지 얘기를 꺼냈으니 주한도 더 이상 거절할 수는 없었다. 그는 예의 바르게 고개를 끄덕이며 살짝 몸을 숙였다. “그럼 신세 좀 지겠습니다.”“신세는 무슨. 가요.”주한과 현아는 선희를 따라 차로 돌아갔다. 그들은 앞에 있는 차를 뒤따라가고 있었다. 운전하며 현아가 참지 못하고 주한에게 말했다. “거절할 거라고 생각했어요.”주한이 입꼬리를 씩 올렸다. “나중에도 오랫동안 봐야 할 사이 같아서요. 가면 얘기도 나눌 수 있고요.”현아는 순간 주한의 말 속에 담긴 말을 알아듣지 못하고 무의식적으로 질문을 던졌다. “진씨 그룹과 얘기 중인 프로젝트가 있어요?”“지금은 없어요.”“그럼 왜...”순간 현아는 뭔가를 인지한 듯 얼굴빛이 변하더니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또 저 희롱하는 거죠.”“제가 언제요? 그리고 그게 어떻게 제가 현아 씨를 희롱하는 거예요? 전 지금까지 현아 씨에게 아무 짓도 한 적 없잖아요.”“네, 저에게 그런 행동은 하지 않았지만 언어적인 희롱도 희롱이잖아요?”“그건 실제로 그런 게 아니니까 희롱이라고 할 수 없어요.”“쳇, 왜 아니에요.”현아가 나지막한 목소리로 투덜거렸다. 그 와중에 주한은 이미 화제를 전환했다. “두 분 모두 현아 씨를 친절하게 대해주시네요.”“네. 제가 어렸을 때부터 윤아와 같이 두 분 댁에 자주 갔었거든요. 그래도 절 잘 아세요.”현아가 무언가를 떠올린 듯 말했다. “주한 씨는 어렸을 때 어떻게 지냈어요?”질문을 던진 후 현아는 살며시 주한의 표정을 살폈다. 그의 얼굴에서 작은 표정이라도 캐치하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주한은 여전히 평온함을 유지했다. 자신의 불행했던 유년 시절의 얘기를 꺼내도 큰 감정의 기복을 보이지 않았다. “저 어렸을 때요? 거의 혼자 지냈죠.”비록 주한은 평온하게 얘기했지만 현아는 그가 사실은 비참했었던 과거

  • 다시 돌아온 내 남편의 그녀   제1201화

    윤아는 꽤 괜찮은 아이디어라고 생각했다. 아무래도 남자를 보는 눈은 여자보다는 남자가 더 정확한 법이었으니까. 서로 생각하는 것이 같을 테니 많은 행동들을 이해할 수도 있었다. “그래. 난 알 만날게. 수현 씨가 나 대신 봐줘. 하지만 진지하게 봐줘야 해. 대충하지 말고.”사랑하는 여자의 부탁을 수현은 거절할 수가 없었다. 그는 어쩔 수 없이 느긋하게 대답했다. “알겠어.”수현은 자기 인생에서 이렇게까지 한 남자를 관찰해야 하는 이유가 윤아 때문일 것이라고는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가까이 다가간 윤아와 현아는 서로를 꽉 껴안았다. 하지만 집안 어른들이 계신 관계로 짧은 포옹을 한 후 곧 서로에게서 떨어졌다. 전에 만난 적이 있던 지라 현아는 또 수현의 어머니와 인사를 나누고는 가지고 온 선물을 건넸다. “감사합니다, 현아 이모.”아무래도 몇 년간 함께 지냈던 터라 하윤과 서훈은 현아와 사이가 좋았다. 두 아이에게 현아는 곁에 있는 제일 가까운 가족을 제외하고 제일 친한 사람이었다. 그러니 두 아이는 전혀 거리낌 없이 현아가 건네는 선물을 받고는 감사하다는 인사와 함께 현아의 볼에 가볍게 뽀뽀했다. 그러더니 하윤은 고개를 들어 주현아 뒤에 있는 남자를 쳐다보더니 맑은 두 눈을 크게 뜨고 먼저 입을 열었다. “현아 이모, 저 삼촌은 누구예요?”하윤이 주한을 가리키자 하얗던 현아의 볼이 빨갛게 물들었다. “저분은... 이모 친구야. 주한 삼촌이라고 부르면 돼.”하윤은 무슨 생각인 건지 현아가 분명 설명해 줬음에 불구하고 또 갑자기 질문했다. “이모, 저 삼촌 이모 남자친구예요?”남자친구라는 말에 현아의 표정이 굳어졌다. 그녀가 막 부인하려는데 주한의 웃음 목소리가 들려왔다. “꼬마 아가씨, 아직 남자친구는 아니지만 삼촌이 여전히 노력하고 있어.”집안 어른들은 주한의 말을 듣고 그제야 상황을 이해할 수 있었다. 사실 수현의 부모님도 주한이 누군지 알고 있었다. 동족 업계에 종사하는 사람이니 설사 함께 협업한 적이 없다고 해도 일면

  • 다시 돌아온 내 남편의 그녀   제1200화

    “그건 아닌데...”현아가 고개를 저었다.“아니면 뭐가 그렇게 걱정돼요?”현아가 입술을 앙다물었다. 뭐 걱정할 게 없는 것 같기도 했다. 하지만 아직 정식으로 만나지도 않는데 다른 사람이 보는 건...이렇게 생각한 현아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됐어요. 아직 정식으로 만나기 전인데 이런 모습을 보여줄 수는 없어요.”현아가 이렇게 말하더니 물러나려 했다. 하지만 현아의 허리를 감싸고 있는 손에 힘이 들어갔다.“늦었어요. 이미 봤어요.”“네?”이 말에 현아는 경악을 금치 못했다. 한참 동안 지나서야 현아는 주한의 말이 무슨 뜻인지 알 수 있었다.현아는 주한의 시선을 따라 고개를 돌렸고 아니나 다를까 멀지 않은 곳에서 윤아가 수현을 데리고 도는 게 보였다. 그리고 아이들과 어른들도 뒤따라 걸어오고 있었다.윤아는 현아를 발견하고 그녀를 향해 손을 흔들었다.현아는 자기도 모르게 입술을 꽉 깨물더니 얼른 주한의 품에서 벗어났다.“왜 미리 알려주지 않고 지금 와서 말해주는 거예요?”주한이 덧붙였다.“나도 그럴 겨를이 없었어요. 현아 씨와 얘기하고 나서 고개를 들어보니 이쪽으로 걸어오고 있더라고요.”“거짓말, 일부러 그런 거잖아요.”주한이 입꼬리를 올리며 말했다.“나도 일부러 그러고 싶지만 어쩔 수 없었어요. 아까 현아 씨 안으면서 신경이 온통 현아 씨 몸에 쏠려 있다 보니 두 사람이 다가오는 걸 전혀 느끼지 못했어요. 하지만 결과는 뭐 별반 다를 거 없네요.”현아가 무슨 말을 더 하려는데 윤아가 지척까지 다가오자 입을 다무는 수밖에 없었다. 안 그랬다가 주한이 무슨 놀라운 말을 내뱉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주한이 그런 사람이 아니라는 걸 알고 있었지만 최근 주한이 친 돌직구가 너무 많았기에 현아는 걱정되기 마련이었다....윤아는 멀리서 친구인 현아가 남자 코트로 숨어드는 걸 볼 수 있었다.원래는 알아보기 힘들었다. 기억을 잃은 뒤로 주한이 어떻게 생겼는지 몰랐고 이미지도 현아가 말해준 게 전부였다.그러다 옆에 있던 수현이 주한을

  • 다시 돌아온 내 남편의 그녀   제1199화

    현아는 주한의 돌직구를 당해낼 자신이 없어 시선을 다른데로 돌릴 수밖에 없었다.“지금 몇 시예요? 올 때 되지 않았어요?”현아의 화제 전환이 매끄럽지는 않았지만 주한은 이를 캐묻지 않았다. 그저 팔에 찬 시계를 확인하더니 이렇게 말했다.“10분 남았어요.”“10분이요?”현아는 착잡한 표정으로 손으로 턱을 받쳤다. 이렇게 오래 잤을 줄은 몰랐다.이미 이렇게 된 이상 어쩔 수 현아는 외투를 벗어 주한에게 돌려줄 수밖에 없었다.“외투 돌려줄게요. 고마워요...”“괜찮아요.”주한이 덤덤한 표정으로 말했다.“걸치고 있어요.”“그럼 이따 내릴 때 추울 텐데.”“몸이 좋다고 했잖아요.”“나도 나쁘진 않아요. 그리고 나도 외투 챙겨 와서 더 입으면 안 예뻐요.”현아는 이렇게 말하며 외투를 주한에게 욱여넣었다.주한은 현아가 잠도 깨고 진심으로 외투를 돌려주는 걸 보자 외투를 받아 입었다.비행기가 착륙하기까지 10분이 필요했지만 내려서 짐도 찾아야 하니 주한과 현아는 차에서 15분을 더 기다리다가 내렸다.출구에서 기다리고 있는데 현아는 너무 추워 계속 부들부들 떨었다. 그 모습에 주한의 미간이 찌푸려졌다.“몸 좋다면서 이렇게 떨어요?”현아가 말했다.“내가 언제 떨었다 그래요?”현아가 고집을 부리며 반박하는데 주한이 다시 외투를 벗었고 현아가 얼른 이를 막았다.“벗지 마요. 더 벗으면 화낼 거예요.”이를 들은 주한의 동작이 멈칫하더니 그녀를 뚫어져라 쳐다봤다.현아가 얼굴을 굳히고 엄숙하게 말했다.“벗지 말라고요!”“춥다면서요?”“그래도 벗지 마요! 벗으면 정말 화낼 거예요.”주한은 그런 현아를 한참이나 바라보더니 갑자기 작은 소리로 웃으며 지퍼를 열었다.“그래요. 안 벗을게요. 대신 들어와서 몸 좀 녹일래요?”현아가 그 자리에 그대로 얼어붙었다. 아마 주한이 갑자기 이렇게 말할 줄은 상상도 못 한 것 같았다.“대표님...”주한이 덤덤하게 말했다.“들어와서 숨든지 아니면 내가 벗어서 주든지, 하나만 선택해요.”한참 생각하

  • 다시 돌아온 내 남편의 그녀   제1198화

    현아의 말에 주한이 그녀를 힐끔 쳐다봤다.“나 먼저 들어가고 현아 씨 여기 혼자 남겨두라고요?”그러더니 난감한 표정으로 이렇게 덧붙였다.“현아 씨, 나는 지금 현아 씨 좋다고 쫓아다니는 사람이에요. 잊은 거 아니죠?”현아가 입술을 앙다문 채 대꾸하지 않았다.“이럴 때일수록 상대가 어떻게 나오는지 보고 잘 판단해야 하는 거 아니에요?”“그렇긴 하지만... 그래도 한밤중에 여기까지 데려다줬는데 지금은 이렇게 기다리게 하고, 너무 대표님 시간 잡아먹는 것 같아서요.”“난 그렇게 생각 안 하는데.”주한은 이렇게 말하더니 외투를 벗어 현아에게 건네주었다. 현아가 손에 들린 외투를 들고 멍한 표정으로 주한을 물끄러미 쳐다봤다.“왜, 왜요?”“걸쳐요.”주한이 덤덤하게 입을 열었다.“아직 한 시간이나 더 있으니까 일단 눈 좀 붙여요.”“졸리지는 않는데...”“그럼 눈 감고 명상하든지.”주한은 마치 반장처럼 그녀를 챙겨줬다. 현아는 자기도 모르게 이런 생각이 들었다. 주한은 혼자 자랐으니 부모님의 사랑을 듬뿍 받으며 자란 애들과는 다르다고 말이다. 하지만 주한이 사람을 챙기는 방법은 어딘가 강압적이었다.현아는 더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얼굴을 붉힌 채 주한이 건네준 외투를 주섬주섬 몸에 걸치고는 자리에 기대 눈을 감았다.눈을 감은지 얼마 지나지 않아 현아는 뭔가 생각난 듯 다시 눈을 떴다.“옷을 이렇게 다 주면 대표님은 어떡해요? 안 추워요?”“나는 몸이 워낙 좋아서.”주한이 아무렇지 않다는 듯 이렇게 말했다.“아, 네.”현아는 다시 눈을 감았다. 나는 몸이 안 좋다는 건가? 그렇게 생각에 잠겼던 현아는 어느새 잠이 들고 말았다. 다시 깨어났을 때 창밖의 어둠은 더 짙어졌고 현아는 아직도 온몸을 웅크리고 있었다.깨어나 보니 아직도 조금 추웠고 현아는 자기도 모르게 주한의 외투 속으로 점점 숨어들었다. 외투를 받았으니 다행이지 아니면 정말 자다가 추워서 깼을 것이다.하지만 현아는 이내 뭔가 생각났다. 자기는 외투를 입고 있어서 따듯한

DMCA.com Protection Statu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