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아는 기억을 잃기 전 자신이 어떤 성격인지, 이런 일을 부딪치면 어떻게 처리했는지 기억나지 않았지만 지금은 자기도 모르게 자꾸만 수현에게 잔소리하고 싶었다.지금은 다행히 괜찮아서 다들 웃고 넘어가지만 만약이라는게 얼마나 무서운데? 정말 잘못하면 어쩐단 말인가.수현은 문제의 심각성을 인지했다. 윤아도 깨어난 지 얼마 되지 않았으니 감정 기복이 너무 심하면 자극을 받을 수도 있어 수현도 더는 입씨름을 하지 않고 사과했다.“내 잘못이야. 고칠게. 다음이 없다고 약속해. 그러니 화내지 마. 응?”윤아는 원래 더 따지려 했지만 수현이 이렇게 빨리 사과할 줄은 몰랐다.의심의 끈을 놓지 못한 윤아가 수현을 뚫어져라 쳐다보며 물었다.“이렇게 빨리 인정한다고? 진심이야, 아니면 내가 화낼까 봐 그러는 거야? 다음에 또 이러는 거 아니지?”“내가 약속할게. 절대 다음은 없어.”다시는 그녀를 뺏기지 않을 것이니 자연스럽게 이런 상황이 다시 일어나지 않을 거라고 약속할 수 있었다. 이러면 그녀를 속였다고 할 수도 없다.수현이 잘못을 인정하고 사과하면서 약속까지 했는데 더 물고 늘어지면 그녀가 오히려 막무가내 같아 보였다.윤아도 더는 뭐라 할 수 없었다.“깬 지 좀 지났는데 불편한 데는 없어?”그녀가 안정을 되찾자 수현이 먼저 물었다.윤아가 고개를 저었다.“없어.”선우에 관해 묻고 싶었지만 아까 얘기를 꺼냈을 때 수현의 안색이 바로 굳었던 게 떠올라 하는 수 없이 충동을 꾹꾹 누르고 다른 일을 물었다.“아참, 묻고 싶은 일이 있어.”아니나 다를까 윤아의 의미심장한 말에 수현이 웃음이 옅어지더니 말투도 덩달아 차분해졌다.“묻고 싶은 게 뭔데?”그런 수현의 모습에 윤아는 수현이 또 그쪽으로 생각했다는 걸 눈치채고 난감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무슨 생각하는 거야? 전에 진 비서님이 나한테 애가 두 명이 있다고 했는데 지금 어디 있어?”기억을 잃었다기에 이 일을 모르고 있는 줄 알았는데 예상 밖으로 윤아가 먼저 말을 꺼냈다.윤아의 질문을 들은 수현
“내 상처는 별거 아니야. 제때 약 바꿔주고 잘 휴식하면 돼. 어디 가는 데는 문제 없어. 게다가 이번에는 너 안고 달릴 필요도 없잖아.”마지막 한마디는 윤아를 놀리는 게 틀림없었다. 윤아는 자기도 모르게 수현을 힐끔 노려보더니 이렇게 말했다.“그런 말 하면 낯 간지럽지 않아?”“됐어 어디 불편한 데 없지? 그럼 일단 뭐 좀 먹고 이따가 보고서 볼래?”“그래.”윤아도 사실 조금 배고팠다.수현은 얼른 주방에 음식을 준비하라고 했다. 윤아가 요즘 식욕이 확 떨어졌다는 사실을 수현은 아직 모르고 있었지만 금방 깬 윤아를 배려해 전부 소화하기 쉬운 음식으로 준비했다.윤아도 수현에게 들키기 싫었다. 이제 삶의 의미를 되찾았으니 음식을 먹고 싶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고 완전히 회복할 일만 남았기에 수현에게 말해 걱정시키고 싶지 않았다.윤아는 조심스럽게 꼭꼭 씹어서 먹었다. 혹시나 급하게 먹거나 많이 먹었다가 체하기라도 할 것 같아서였다.윤아는 포만감이 들자 자제하며 숟가락을 내려놓았다.수현이 얼른 손을 내밀어 사발을 받았다.“다 먹었어?”윤아가 고개를 끄덕였다.“응, 금방 깨서 그런지 입맛이 별로 없네. 다음에 더 먹을게.”이에 수현도 수상한 낌새를 눈치채지 못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더니 도우미에게 남은 음식들을 치워달라고 했다.검사 결과가 나왔고 의사는 윤아에게 별문제가 없다고 말했다. 잃어버린 기억은 치료할 방법이 없으니 자연스럽게 돌아올 때까지 기다리는 수밖에 없다고 했다.그러면서 수현에게 윤아가 아직 영양실조 상태라고 말해줬다.결과를 들은 수현은 보고서를 쥐고 있는 손에 힘이 들어갔다. 원래도 가늘었던 윤아의 손목이 이번에 더 가늘어진 걸 발견했다.게다가 영양실조라고?시간이 고작 얼마나 지났다고 영양실조란 말인가? 수현은 윤아가 최근에 어떤 고통을 겪었는지 상상이 가지 않았다. 어떻게 기억을 잃고 영양실조까지 걸린 것일까?이렇게 생각한 수현은 주먹을 불끈 쥐며 어금니를 꽉 깨물었다.선우 이 빌어먹을 놈, 윤아를 좋아한다고
하지만 수현과 자신이 당했던 일을 생각하면 수현이 화내는 것도 이해가 갔다.“이 일은 더는 물어보지 마. 지금은 기억을 잃었으니 일단 몸조리부터 잘하자.”“하지만...”윤아는 그래도 조금 망설여졌다.“내가 잘 처리하지 못할 것 같아서 그래?”“그건 아닌데...”윤아는 수현의 잘생긴 얼굴을 보며 원래는 뭔가 더 말하고 싶었지만 수현의 눈빛에 목구멍까지 올라왔던 말을 다시 삼켰다.상관하지 않기로 마음먹었다. 비록 기억을 잃긴 했지만 자신이 선택한 남자니 그가 처리하는 대로 따르기로 했다.윤아는 더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좌석에 몸을 기대고 쉬려고 했지만 수현이 이를 보더니 바로 윤아를 자신의 품속에 꼭 끌어안았다.윤아는 어쩔 수 없이 수현의 품에 기댔다.“잠깐 쉬어.”수현의 품에서 느껴지는 향기가 윤아의 심신을 안정되게 해주었다. 윤아도 수현을 밀어내지는 않았고 오히려 손을 내밀어 수현의 튼실한 어깨를 휘감고 완전히 수현의 품속에 기댔다.수현은 멈칫하더니 자기도 모르게 윤아를 더 꽉 껴안았다. 그래야만 그녀를 잃었다 다시 얻었다는 느낌이 확실해지는 것만 같았다.처음엔 가는 길이 꽤 순탄했는데 점점 더 깊은 시골로 내려갈수록 길은 울퉁불퉁해졌고 덕분에 차가 심하게 흔들렸다. 그리고 산과 가까운 도로라 카메라가 없는 건 둘째 치고 낙석의 위험도 있었다.다행히 차를 운전한 기사님이 운전 경험이 풍부했기에 그 길을 빨리 벗어날 수 있었다.그 길을 완전히 떠나고 나서야 윤아는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아까 그 길 진짜 무섭긴 하다.”수현은 품속에 윤아를 꼭 끌어안은 채 숨을 고르고 있었다.아까 길이 흔들릴 때 윤아는 수현의 품에서 이리저리 부딪혔다. 처음엔 그녀를 보호하느라 다른 생각을 할 겨를이 없었지만 그녀가 부딪히면 부딪힐수록 수현의 숨결이 점점 흐트러졌다.한참을 진정하고 나서야 수현이 갈라진 목소리로 말했다.“내일 이쪽에 사람 보내서 길 좀 고치라고 할게.”길을 고치는 건 작은 비용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수현은 전혀 신경
기사님이 고개를 끄덕였다.“네, 알겠습니다.”차는 도로와 연결되지 않은 위치에 멈춰 섰다. 행인들의 시선이 그 차에 쏠렸다. 가끔 걸음을 멈추고 들여다보는 사람도 있었다. 이런 차가 시골에 나타난 게 신기한 듯 보였다.“이 시골에 요즘 고급 세단이 자주 보이네?”“명인 댁 사람들이라던데. 저번에 온 건 딸이래. 딸이 손자를 데리고 놀러 왔나 보더라고. 아이고, 애들이 얼마나 뽀얗고 말캉한지, 시내에서 자란 애들은 달라도 뭐가 다르다니까.”“그러게. 그날 그 명인 댁 마당 지나가다가 봤어. 애들 좋으라고 나무에 그네까지 만들었더라고.”행인들이 지나가며 토론했다.명인 댁의 팔자가 좋다느니, 복이 많다느니, 딸을 잘 낳았다느니, 손자도 대단해서 유명인이라느니, 정말 이것저것 끝도 없이 말했다.그러다 또 명인 댁도 대단한 사람인데 나이가 많아서 산 좋고 물 좋은 이곳에서 노년 생활을 즐기러 왔다고도 했다.자신이 사는 동네가 산 좋고 물 좋다는 말에 동네 주민들이 우쭐대며 동네 자랑을 하기 시작했다.수현은 창문을 조금 내리고 그 토론을 조용히 들었다. 할아버지가 아이들을 위해 그네를 만들어줬다는 말에 수현의 입꼬리가 올라갔다.두 아이가 조부모의 사랑을 많이 받는다는 생각에 기뻤다.하긴 총명하고 똘똘한 아이들이었기에 직계 가족이 아니라 친척들, 외부인도 보자마자 마음에 쏙 들어 했다.사람은 결국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동물이다.사색에 잠겨 있는데 품속에서 자고 있던 윤아가 살짝 움직였다. 고개를 숙여보니 윤아가 서서히 잠에서 깨어났다.수현의 품에서 눈을 뜬 윤아는 한 몇초 있다가 고개를 들어 수현을 올려다봤다.“나 잠들었어?”“응.”수현이 고개를 끄덕이더니 윤아의 볼을 어루만지며 살짝 헝클어진 윤아의 머리를 정리해 주었다.윤아도 그제야 차가 멈춰 섰음을 알아채고는 얼른 창밖을 바라봤고 시야에 들어온 풍경에 눈이 번쩍 뜨였다.“도착한 거야?”그런 윤아의 모습에 수현은 입꼬리를 올리며 부드럽게 고개를 끄덕였다.“응, 도착했어.”“왜 깨우
잃어버린 기억을 찾는다고?수현이 갑자기 던진 질문에 윤아는 순간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몰라 생각에 잠겼다.찾고 싶긴 했다. 잃어버린 물건이니 누구든 찾고 싶었을 것이다.하지만 여러 일을 겪고 나니 기억을 찾든 찾지 않든 별로 중요하지 않은 것 같았다. 찾지 못한다 해도 그녀를 신경 쓰는 사람은 여전히 신경 쓰고 있다. 수현만 봐도 알 수 있다. 그렇게 심한 부상을 당했음에도 깨어나자마자 바로 그녀를 구하러 왔다.기억은 그녀에게도 중요했지만 그렇게 중요한 건 아닌 것 같았다.이렇게 생각한 윤아는 입을 열었다.“기억을 찾는 건 그냥 하늘에 맡기자. 억지로 찾으려다 오히려 역효과가 날 수도 있잖아.”이를 들은 수현이 멈칫했다. 아마 윤아가 이런 생각을 갖고 있으리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던 것 같았다. 그냥 찾고 싶다 아니다로만 대답할 줄 알았다.한참 고민하던 수현이 입꼬리를 올리며 말했다.“우리 심공주는 여전히 심공주야. 그렇게 생각하는 것도 좋지. 절대 부담 갖지 마.”수현의 말에 윤아가 웃음을 터트렸다.“내가 부담을 왜 가져? 힘들게.”이미 그곳에서 벗어났고 사랑하는 사람도 곁에 있고 곧 귀여운 두 녀석도 만나러 가는데 부담 가질만한 게 없었다.그리고 기억이라는 건 윤아가 찾고 싶다고 해서 바로 찾아지는 게 아니니 조급해해도 소용이 없다.그냥 현 상태에 만족하다 보면 언젠가 자연스럽게 돌아오겠지.수현은 윤아의 뒤통수를 만지작거리더니 웃으며 말했다.“그래, 그게 맞아.”두 사람은 이내 정원 앞에 도착했다.대문은 굳게 잠겨 있었다. 수현은 기억을 더듬어 벨을 누르려 했지만 윤아가 이를 말렸다.“잠, 잠깐만.”수현이 윤아를 바라봤다.“왜?”말이 끝나기 바쁘게 수현은 자기 팔을 잡고 있는 윤아의 손이 바들바들 떨리고 있음을 발견했다. 수현이 멈칫하더니 물었다.“무서워?”“...”윤아는 입을 앙다물고 있더니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무, 무서운 게 아니라, 조금 떨려서 그래요.”만약 누군가 윤아에게 알려주지 않았다면 윤아는 자신
더 긴장한다 해도 아무 소용이 없을 것이다. 가만히 있으면 점점 더 긴장하게 된다.수현이 물었다.“진짜? 그럼 벨 누른다?”“응, 그래... 눌러.”이렇게 말하면서도 윤아는 조금씩 물러났다. 그러다 수현의 뒤로 완전히 숨어버렸다.이런 윤아의 행동에 수현의 웃음이 짙어졌다.“준비됐다면서 왜 아직도 내 뒤에 숨어 있어?”수현의 말투에서 장난기를 느낀 윤아가 짜증을 냈다.“내가 이러는 게 너는 웃기지?”수현의 웃음은 점점 짙어졌지만 인정은 하지 않았다.“아니야.”“나 다 들었는데.”“뭘 들었다는 거야?”“나 놀리는 거.”“그래? 내가 아까 웃었어?”“마음속으로.”“마음속으로 웃는 것까지 들려?”“...”“진수현!”“응, 왜 불러 자기야?”뻔히 알면서 묻는 모습에 윤아는 수현의 허리를 힘껏 꼬집었다. 윤아는 수현을 혼내주려고 한 행동이었지만 꼬집고 나니 수현의 몸이 순간 딱딱하게 굳었다.이를 발견하지 못한 윤아는 꼬집고 나서 바로 손을 뺐다.수현은 어두워진 눈빛으로 그 자리에 서서 입을 앙다문 채 혼자 감내했다. 도끼로 자기 발등을 찍는다는 게 이런 느낌인 것 같았다.그리고 오랫동안 떨어져 있어서 그런지 수현은 윤아의 작은 행동으로도 쉽게 설레고 후끈 달아올랐다.다행히 지금 겨울이라 수현은 입고 있는 옷이 꽤 두꺼웠다.수현은 마른기침으로 난처함을 가리고는 뭔가 말하려는데 뒤에서 누군가의 흥분한 목소리가 들려왔다.“엄마!”“엄마!”그냥 들어도 기쁨에 차 있는 아이들의 목소리였다. 수현은 단번에 하윤과 서훈의 목소리임을 알아챘다.하지만 수현은 일단 먼저 윤아의 반응을 살폈다.아니나 다를까 윤아는 엄마라고 부르는 소리를 듣고 마치 그 자리에 얼어붙은 듯 조금도 움직이지 못하고 있었다.수현이 소리가 나는 쪽으로 시선을 돌려보니 두 아이는 마치 로켓처럼 윤아에게로 달려오더니 윤아의 다리에 매달렸다.“엄마!”두 녀석은 마치 까치처럼 윤아 옆에서 쉬지 않고 재잘거렸다.수현은 윤아가 아까보다 더 굳어있음을 발견했다.한참
오랜만에 윤아를 보는 두 녀석은 할머니와 증조할머니, 증조할아버지와 같이 있으면서 맛있는 것도 많이 먹고 마음에 맞는 친구도 찾았지만 그들에게는 엄마가 제일 중요했다.윤아를 많이 보고 싶어 하던 녀석들은 그녀를 보자마자 품속에 뛰어들어 비비적거리며 떨어지기 싫어했다.뒤따라오던 이선희와 이명인도 윤아와 수현이 갑자기 여기에 나타날 줄은 몰랐기에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윤아야, 수현아, 너희들이 어쩐 일이야, 말도 없이?”소리를 들은 윤아는 고개를 들었다. 그중 한 분은 머리가 이미 희끗희끗했지만 몸매 관리가 잘 되어 있었다. 개량 한복에 하얀 카디건을 걸친 모습이 영락없는 돈 있는 할머니였다.옆에 서 있는 분은 훨씬 젊었다. 나이가 중년이었고 옷차림이 트렌디했다. 같이 선 두 사람은 스타일이 매우 달랐지만 생김새는 비슷했다.오기 전 윤아가 기억을 잃은 탓에 수현은 간단하게 관계를 설명해 주었다. 그리고 지금 아이들과 같이 있으니 그들이 누군지 대략 알 수 이을 것 같았다.“어머님, 할머님.”몸은 굳어 있었지만 윤아는 그들의 신분에 맞게 인사를 건넸다.할머님이라고 불린 이명인은 아이고 하는 탄식과 함께 얼른 윤아를 맞으러 나왔다.“몇 년 전에 한번 보고 지금 다시 보는데 벌써 엄마가 되었네. 이렇게 떡두꺼비 같은 귀여운 아이들도 낳고. 어여 일어나.”이명인은 윤아를 부축해 일어났다. 아직 몸이 허한 윤아는 일어나면서 휘청거렸고 옆에 섰던 수현이 잽싸게 윤아의 허리를 감싸며 넘어지지 않게 잡아줬다.옆에 있던 이선희가 이 모습을 보더니 눈살을 찌푸렸다.“어떻게 된 거야? 왜 이렇게 말랐어?”윤아의 팔목을 잡은 이명인은 그제야 윤아의 팔목에 거의 살이 없다는 걸 발견했다.자신을 관심하는 할머님의 선의를 느낀 윤아는 마음이 따듯해졌다.“할머님, 요즘 다이어트한다고 설쳤더니 이렇게 살이 빠졌네요.”“다이어트?”이명인이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너는 이렇게 말라서 무슨 다이어트야? 여기까지 내려왔으니 다이어트할 생각은 말렴. 이따가 삼계탕 좀
하지만 지금 두 사람을 보니 깨달았다. 상황이 생각했던 것보다 더 심각하다는 걸 말이다.이선희의 질문에 수현이 잠깐 침묵하더니 결국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했다.“엄마, 이 일은 이미 다 해결됐어요. 경과는 묻지 마세요.”이선희는 그 말에 동의할 수 없었다.“묻지 말라는 게 무슨 말이야. 다 해결됐다면 더 걱정할 것도 없겠네. 무슨 문제가 남아 있는지 말해 봐.”“아는 게 많을수록 근심도 많아져요.”수현이 말했다.“지금은 괜찮아졌다며?”이선희가 물었다.하지만 수현은 입을 앙다문 채 이 질문에 대답하지 않았다.이에 이선희는 뭔가 생각 난 듯 미간을 찌푸리며 물었다.“네 아빠는?”“처리할 일이 남아 있어서 같이 오지는 않았어요.”아버지가 이수철에게 연락하는 바람에 지금 사태가 커지고 있다.이를 들은 이선희의 표정이 살짝 변하더니 물었다.“네 아빠는 괜찮은 거니?”“엄마는 아빠와 그렇게 오래 지냈으면서 아빠가 어떤 성격인지 몰라요?”“하긴, 그럼 네 아빠가 계속 처리하게 놔두면 되는 거지? 근데 너는 왜 그렇게 안색이 안 좋아? 다쳤어?”수현은 대꾸하지 않고 묵인했다.“그럼 윤아는? 윤아는 어떻게 된 거야? 왜 저렇게 야위었어?”나간 지 얼마나 됐다고 저렇게 살이 빠졌는지, 참 못된 짓이라고 이선희는 생각했다.수현은 여전히 말이 없었다. 윤아는 아침에 밥을 먹을 때 한 번에 조금씩 많이 씹어서 넘기긴 했지만 먹는 양이 적었다.그때 수현은 갑자기 뭔가 생각난 듯 이선희에게 말했다.“이따 할머니가 삼계탕 끓인다고 할 때 엄마가 간섭할 수 있으면 일단 끓이지 말라고 하세요.”“음...”이선희는 왜 그러는지 너무 물어보고 싶지만 아들의 굳건한 옆모습을 보며 도로 삼킬 수밖에 없었다.하지만 이선희는 그냥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다들 무사히 여기 있으니 무슨 일이 있었다 해도 다 지나간 일이다. 나머지는 진태범이 해결하면 된다. 아들이 얘기하지 않는다면 아마도 노인네들이 걱정하는 게 싫어서일 것이다.그런 노력을 안다면 더 꼬치꼬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