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나 그냥 죽어버릴래! 흑흑흑…” 민정아는 울면서 자리를 뛰쳐나가 버렸다.등 뒤, 구서준은 그 모습을 보며 보안팀에게 전화를 걸었다. “조커 같은 얼굴로 뛰쳐나가는 여자 잘 지켜봐요. 그 여자가 회사에서 자살하지 못하게 막아요!”구씨 집안 남자는 마음에 없는 여자한테 항상 차갑고 심드렁한 태도를 취했었다.구서준은 민정아를 여자로 본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아니, 구서준은 민정아를 사람으로 생각한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모두 해산하시죠!” 구서준은 회의실에 모여있는 사람들을 보며 차갑게 말했다.“네, 구대표님!” 사람들은 이구동성으로 구서준의 말에 대답을 했고, 모두 일제히 자리를 떠났다.“신세희씨.” 구서준이 신세희의 발걸음을 멈추어 세우려는 그때, 구서준의 핸드폰이 울리기 시작했다. 그는 전화를 받아 들었다. “여보세요? 고모부, 무슨 일이야?”구서준이 고모부라고 부르는 사람은 서시언의 사촌 형, 서도영이었다.같은 시각, 아무도 서도영이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알 수가 없었다. 그저 구서준의 대답밖에 들을 수가 없었다. “응. 알겠어. 지금 바로 갈게.”전화를 끊은 그가 다시 신세희를 부르려고 했을 때, 신세희는 이미 사라지고 없었다. 구서준은 신세희가 일을 하고 있는 디자인팀으로 그녀를 찾아가려고 했다. 하지만 고모부가 시킨 일이 좀 급했던 그는 바로 회사를 떠났다.같은 시각, 신세희는 디자인 팀으로 돌아갔다.“죄송해요, 디렉터님. 디렉터님은 절 회사로 다시 부르지 말았어야 해요. 회사가 절 출근시키지 않는 것도 정상이죠. 저도 다시 올 생각 없었고요. 그런데 왜 절 속인 거예요?” 신세희는 조금 기분이 나빴는지 불쾌한 표정으로 디렉터에게 질문했다.디렉터는 무척이나 곤란한 표정을 지으며 대답했다. “신세희씨, 세희씨 억울한 거 알아요. 근데 당신, 하필이면 회사의 공주님인 민정아를 건드렸잖아요. 비록 오늘 구서준이 회사 밖으로 민정아를 쫓아내긴 했지만, 민정아에게는 뒤를 봐주는 사람이 있어요. 민정아씨 빽, 구대표님보다 약
신세희는 저번 주에 이미 세라의 설계 기획안에 문제가 있다는 사실을 알아챘다. 지금 세라는 핸드폰으로 사정을 하고 있었다. 이것도 신세희가 이미 예상했던 일 일까?신세희는 고개도 돌리지 않은 채로 계속해서 밖으로 걸어 나갔다. 갑자기 등 뒤에서 세라의 고함이 들려왔다. “신세희씨! 거기 서요!’신세희는 그녀의 말을 못 들은 척 무시해 버렸다.그녀는 이제 이 회사의 직원이 아니다. 내가 왜 세라 말을 들어야 하지?“신세희씨! 귀가 먹은 거예요?” 세라는 전화를 내려놓고는 노발대발하며 발을 동동 굴러댔다. 세라는 성큼성큼 걸어 신세희를 따라잡더니 그녀의 앞에 서서 분노가 가득 찬 눈빛으로 신세희를 쳐다보았다.신세희의 말투는 무척이나 싸늘했다. “비켜요.”그녀는 더 이상 다른 사람들과 말을 섞고 싶지 않았다. 그녀는 일자리를 찾으러 가야 했다. 원래 아침의 그 일자리는 이미 따놓은 당상이나 다름없었는데… 디렉터가 회사에 계속 출근할 수 있다고 거짓말하지 않았다면 그녀는 돌아오지 않았을 것이다!지금 그녀는 이 회사에서도 잘리게 되었고, 저쪽 회사의 일자리도 놓치게 될 판이었다. 신세희는 지금 마음이 너무 급했다.“세희씨! 이거 세희씨가 벌인 짓이죠!” 세라는 사실을 제대로 확인하지도 않고 신세희에게 따져 묻기 시작했다.“지금 무슨 말씀 하시는 거예요?”“당신, 처음부터 이 회사에서 제대로 일할 생각 없었죠! 당신은 개 망나니예요! 민정아 아가씨가 한 말 틀린 거 하나도 없어요! 당신은 첩년이에요. 남자한테 눈이 돌아가서는! 당신은 민정아의 형부를 꼬시는데 실패한 후에 다시 이 회사로 눈을 돌린 거예요. 그리고 결국 당신은 첫날 만에 구대표님의 눈길을 끄는 데 성공했죠. 세희씨, 난 당신이 시골 촌년인 줄 알았는데 선수였군요! 남자 꼬시는 선수!”당신, 내 기획안 검사해주는 척하면서 손댔죠? 만약 당신같이 건축의 건 자도 모르는 사람이 내 기획안에다 손댔다가 그대로 공사가 진행되기라도 하면 어떡할 거예요!”“그러니까요! 세희씨, 이거 당신이 벌인
굳이 말하지 않아도 깨끗한 자는 깨끗하다. 본인이 하지 않는 짓을 신세희가 굳이 책임지고 싶을 리가 없다. 그러려면 그들과 함께 공사장에 가보는 수밖에 없다. 대체 누구의 잘못인지 한번 확인해 보자고!디자인 팀 전체가 회사의 버스를 타고 직접 시공 현장으로 달려갔다.가는 길 내내, 동료들은 눈빛과 말들로 신세희를 공격했다.“첩이면 첩질이나 해요. 앞으로는 우리 회사에 와서 사람 곤란하게 만들지 말아요.”“듣기 싫은 말 좀 해도 되죠? 진짜 당신 잘못이라는 게 밝혀지면 세희씨 혼자 이 일 책임지세요. 세희씨는 건축이 애들 장난 같아요? 잘못하다가 인명사고라도 나면 감옥에 가야 해요! 당신 진짜 책임질 수 있어요?”“못 져도 져야죠! 도망칠 생각 하지 말아요!”“남자는 어디서든 꼬실 수 있잖아요! 왜 하필 건축회사에서 남자를 꼬시겠다고 설치고 다니는 건지. 세희씨는 건축 디자인 회사 사람들이 다 눈이 삔 줄 알았어요?”가는 길 내내, 사람들은 너나 할 거 없이 말을 보탰다. 그러다 신세희는 한 가지 사실을 발견했다. 원래 건축 디자인이라는 일에는 남자가 더 많이 종사하고 있었다. 그래서 디자인 팀에는 남자가 여자보다 더 많았다. 버스 안에는 여자가 고작 4, 5명 밖에 없었고, 신세희에게 뭐라고 하는 사람들은 전부 여자였다.오히려 남자 동료들은 아무 말이 없었고, 몇몇 남자들은 동정 어린 눈빛으로 신세희를 쳐다보기까지 했다.신세희는 알고 있었다. 이 여자들이 그동안 자신을 질투하고 있었다는 사실을.그녀가 회사에 들어오자마자 구대표의 눈길을 사로잡은 것에 질투했고, 그녀가 이에는 이, 눈에는 눈 전법으로 민정아를 상대하는 것에 질투를 했다. 오늘 아침 그녀가 구대표의 차를 타고 회사에 온 것에 더욱 큰 질투를 했다.여자들은 아마 속으로 이런 생각을 하고 있을 것이다. 만약 이번 공사장에 일어난 잘못을 신세희의 탓으로 돌린다면 분명 구대표가 신세희에게 책임을 지라고 할 것이다.이렇게 많은 사람들의 비난에도, 신세희는 그 누구와도 말대꾸를 하지 않
신세희의 말이 자리에 있는 사람들을 경악에 빠뜨렸다.촌스럽고 말수도 적은, 출근한 지 고작 이틀 만에 정직 처분을 받은 여자가 지금 만회할 방법이 있다고 말하는 거야?“세희씨, 세라씨가 공격적으로 말했다는 이유로 그런 거짓말을 하면 안 되죠. 건축 관련된 일은 마음대로 말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에요!” 평소에 꽤나 공정하던 디자인 디렉터도 신세희의 태도가 조금 불만인 듯 했다.신세희는 전혀 굽히지 않으면서 말을 이어 나갔다. “대신, 이 일을 해결하는 데에 조건이 있어요.”“…”신세희는 세라를 쳐다보며 말했다. “세라씨, 지금 저와 세라씨 컴퓨터에 있는 파일들이 이 기획안과 제가 아무런 관계가 없다는 사실을 증명해주고 있어요. 그러니 제가 지금 대신 이 일을 해결한다면, 그건 당신에게 아주 큰 도움을 주게 되는 거죠. 물어보고 싶은 게 있어요. 이 일 해결하면 회사에서 저한테 보수를 주는 거예요, 아님 당신이 저한테 보수를 주는 거예요? 한번 상의해보세요. 알겠죠?”세라는 더듬거리며 말했다. “당신… 당신 돈까지 받겠다 이거에요? 어… 얼마나 받을 건데요!”“2,000만 원이요!” 신세희는 시원시원하게 대답했다.“…”“입 밖으로 꺼낸다고 그게 다 말인 줄 알아요!” 그녀의 대답에 세라가 신세희에게 소리쳤다.“지금 이 일 만회 못하면 얼마나 큰 손실이 나는지 알아요?” 신세희가 세라에게 물었다.“…”그녀는 당연히 알고 있었다.이 문제를 만회하지 못하면 그녀는 모든 책임을 져야 할 뿐만 아니라 앞으로의 일자리도 잃게 될지도 모른다. 일자리만 잃는 게 아니다. 앞으로 다시는 건축 바닥에서 일하지 못 할 수도 있다.솔직히 말해서 이 일은 그녀의 잘못이 맞았다.예전에 세라는 혼자 자료들을 검사했었고 혼자서도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그런 이유로 그녀는 아주 당연하게 최근의 자료들을 신세희에게 검사하라고 건네주었다.신세희가 눈에 거슬렸던 문제 때문일까, 그녀는 자신이 아직 수정하지 않은 기획안 들을 신세희에게 검사하라고 건네주었다. 그러다 신세
"사실 이건 훨씬 더 심각한 문제예요!"다리에 힘이 풀린 세라는 주저앉아 울음을 터뜨렸다."디렉터님, 이... 이렇게 갑자기 2천만 원을 내놓으라 하시면 어떡해요. 남자친구랑 막 헤어져서 이젠 생활비도 없단 말이에요. 자동차 대출금, 주택 대출금도 다 제가 갚아야 해서 매달 400만 원으로도 빠듯하고요. 저한테 모아둔 돈이 어디있다고..."디자인 디렉터는 기가 막힌다는 표정으로 세라를 노려보았다.이 일이 해결되지 않으면 디자인 팀 전체에 영향을 미치게 된다. 디렉터는 한숨을 푹 내쉬며 다시 한번 세라를 노려보고는 신세희를 달랬다."세희 씨, 요즘 고생 많았어요. 일단은 이렇게 해요. 세라 씨가 지금은 2천만 원을 마련할 수 없으니 내가 회사 재무팀에 말해서 먼저 세희 씨에게 지불하게 할게요. 어때요?"신세희가 담담하게 말했다."좋아요."신세희는 정정당당하게 돈만 받으면 그만이었다.무보수로 도와줄 순 없었다. 더구나 상대는 세라가 아니던가.이 회사에 출근한 지 고작 이틀 만에 곳곳에서 따돌림을 당했다. 지금은 잘린 마당에 회사의 문제를 해결하려면 당연히 보수를 받아내야 했다."좋아요. 그럼... 어떻게 해결할 건데요?"디렉터가 물었다."내 말이. 이젠 얘기해 봐요. 설마 방법이 없다고는 하지 않겠죠?"세라가 날 선 목소리로 말했다. 모두의 시선이 신세희를 향했다.특히 디자인 팀은 그녀가 해결하지 못하면 당장이라도 잡아먹을 기세였다.신세희가 미소 지었다."간단해요. 일단 공동벽돌을 보통벽돌로 바꾸면 지지력이 배가 될 거예요. 그럼, 그쪽엔 부담이 덜 하겠죠. 이러면 절반은 해결된 셈이에요. 나머지는 문제가 발생한 측의 90도 각도에 각각 말뚝을 박으면 돼요."큰 공사장에서 자주 발생하지 않는 문제라 이들은 미처 좋은 수를 떠올리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나 문제가 생긴 이상 이런 식으로 보완할 수밖에 없었다. 작은 도시에서 6년을 머물렀던 신세희는 이런 상황에 익숙했다. 그곳에는 작은 건물이 셀 수 없이 많았다. 그런 건물을 짓는데 건
구서준을 마주한 신세희는 거부감이 들었다.이곳에 취직하자마자 관두게 된 건 사실 구서준 때문이었다. 그가 과할 정도로 친절하게 굴지 않았더라면 여직원들이 질투하지도 않았을 것이고 민정아가 망가진 의자를 바꿔치기하지도 않았을 것이다.구서준 때문에 성가셨던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신세희의 눈엔 구서준이나 6년 전의 조의찬이나 다를 게 없었다. 바람기가 다분해서 예쁜 여자들을 하도 많이 만나다 보니 어쩌다 무던하고 촌스러운 사람에게 끌리는 것이 분명했다.그러나 더는 6년 전의 신세희가 아니었다. 그녀는 구서준 같은 인간들에 익숙했다.구서준을 전혀 상대하고 싶지 않았던 신세희는 그를 냉담하게 바라보았다.그녀의 냉담함은 차에서 내린 디자인 디렉터마저 타이를 정도였다. "구 대표님이 세희 씨를 좋게 봐주시는 건 세희 씨에게도 기회예요. 구 대표님과 식사 한번 하고 싶어 하는 여자들이 얼마나 널렸는데요. 대표님이 세희 씨 편을 들어준다면 아무도 감히 세희 씨를 건드리지 못할 거예요. 나중에 민정아 씨가 다시 나타나더라도 대표님이 당신을 감싸는 이상 그 여자도 몸을 사리는 수밖에 없단 말이죠."신세희가 말했다."전 이미 해고당했어요. 전 단지 보수를 받기 위해 여기에 온 겁니다.""…..."디렉터가 신세희를 다시 설득하려고 할 때 버스에서 대여섯 명의 여성 디자이너들이 내렸다. 그들은 구서준을 발견하고 흥분하며 저마다 한마디씩 했다."어머, 구 대표님. 혹시 저희 팀의 세라 씨를 기다리신 건가요? 2주 전에 세라 씨에게 밥을 사주겠다고 약속했는데 아직도 안 사주셨잖아요.""구 대표님, 혹시 식사 자리에 저희도 껴도 되나요?""대표님…."구서준은 얼굴에 떡칠한 여자들을 경멸하듯 바라보았다. 싸구려 향수 냄새에 구역질이 날 것 같았다. 역시 신세희가 좋았다. 그녀에게선 말로는 형용할 수 없는 은은한 향기가 났다. 마음마저 편해지는 자연의 향기였다.사실 이건 부소경이 그녀를 위해 특별 제작한 향수라는 걸 구서준이 알 리 없었다. 고작 몇 밀리에
신세희를 발견한 엄선희는 바로 그녀를 향해 달려오며 흥분한 목소리로 말했다."세희 씨, 대체 이번 주에 어디로 출장 갔던 거예요? 나한테 말도 안 하고. 같이 밥 먹으려고 내려갔더니 출장을 갔더라고요. 어느 도시로 갔어요? 내 선물은 사 왔어요?"엄선희의 순수한 진심을 담은 미소에 신세희의 마음이 따뜻해졌다.신세희가 미안한 표정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미안해서 어쩌죠, 잊어버렸어요...""아니, 괜찮아요, 농담이에요! 방금 회사에 입사해서 월급도 안 줬는데 선물은 무슨!" 엄선희가 배시시 웃으며 말했다."세희 씨는 돈이 없지만 나한텐 있죠."갑자기 구서준이 끼어들었다. "세희 씨가 출장 가서 선물을 사 오는 걸 깜빡했다고요? 그럼 내가 대신 두 사람 밥 사줄게요. 어때요?""좋아요!" 엄선희는 별다른 고민 없이 바로 대답했다.구 대표가 밥을 사는 건 모든 여성들의 로망이 아니던가. 그러나 엄선희는 자기에게 이런 행운이 올 거라는 기대는 전혀 하지 않았었다. 구서준이 이렇게 먼저 초대할 줄은 생각도 못 했다.물론 구서준이 정말 초대하고 싶은 사람은 사실 신세희라는 것도 잘 알고 있었다.기대를 잔뜩 담은 맑은 눈빛이 신세희를 향했다.마침내 신세희의 입술이 열렸다. 거절은 가차 없었다."죄송해요, 바빠서요."엄선희와 구서준은 모두 할 말을 잃었다. 아직 옆에 있던 디자인팀 동료들도 마찬가지였다.매몰차게 거절한 신세희가 디자인 디렉터에게 말했다."디렉터님, 이젠 함께 올라가서 보수를 받아도 될까요? 돈만 받고 바로 떠나려고요." "아아, 알겠어요…." 디렉터는 신세희를 만류하고 싶었다. 그녀는 실무 경험이 많은 훌륭한 인재였으니 붙잡고 싶은 건 당연했다."보수라니요? 왜 돈 받고 떠나려는 건데요. 세희 씨, 이 회사에서 일하기로 했잖아요. 혹시 내가 보기 싫은 겁니까? 그럼 내가 세희 씨 앞에 나타나지 않으면 되잖아요. 왜 회사를 관두려고 하는 거예요?"구서준의 말을 들은 여자들은 부러워서 미칠 것 같았다.이런 말을 하면서까
"왜요?"멍해 있는 엄선희가 이해되지 않는다는 듯 신세희가 물었다.엄선희는 고개를 가로저었다."아니에요. 그거 알아요? 회사에서 민정아에게 되갚아 준 것도, 구 대표님을 거절한 것도 세희 씨가 처음이에요. 게다가 구 대표님도 처음으로 먼저 여직원에게 음식을 대접하려고 했죠. 그런데 이렇게 보기 좋게 실패할 줄이야. 세희 씨 얌전하게 생겼는데 이런 성격일 줄은 몰랐어요."엄선희는 사실 처음 봤을 때부터 신세희가 마음에 들었다. 깔끔하고 책임감 있고, 수다스럽지도 않았고 천박하지도 않았다.신세희도 엄선희가 무척 마음에 들었다.그녀에게는 친구가 없었다. 6년 전에 출소한 이후로 줄곧 암투 속에 휘말려 정신이 없었다. 그녀에게 이렇게 마음을 열고 다가와 준 사람은 엄선희가 처음이었다.하여 신세희도 엄선희에게 숨김없이 말했다."난 그저 일 열심히 해서 월급 제때 받고 싶은 마음뿐이에요. 만약 내가 민정아 씨 자리에 그 의자를 다시 돌려놓지 않았다면 다치는 건 나였을 거예요. 아무리 내가 고지식해도 이런 일까지 참지는 않아요."엄선희도 동의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잠시 머뭇거린 그녀가 다시 물었다."그나저나 정말 구 대표님과 식사하지 않을 거예요?"두 사람은 이야기를 나누며 나란히 엘리베이터를 나왔다.신세희가 담담하게 말했다."왜 먹어야 하는데요? 나는 그 사람과 친해지고 싶지도 않고, 잘해보고 싶은 마음도 전혀 없어요. 밥 한 끼 먹었다고 사람들 미움만 잔뜩 살 텐데 굳이 먹을 필요가 있나요?"신세희의 말에 엄선희가 웃음을 터뜨렸다."세희 씨 말이 맞아요. 그럼 나도 안 갈 거야. 우리는 우리답게 행동해요."이윽고 엄선희가 다시 작은 목소리로 속삭였다."하지만 이런 밀당이 구 대표님에게 먹혔으면 좋겠다는 바람은 있어요. 비록 남성의 제일 잘나신 그분과 비교할 순 없지만 구 대표님과 결혼하는 건 엄청 자랑스러운 일이라고요. 사실 마음속으로 그런 꿈을 꾼 적은 있어요.""풋..."엄선희의 말에 신세희도 즐거워졌다. 그녀가 작은 목소리로 응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