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소민도 생각했다. 대부분 사람들에게 일생에 한 번뿐인 결혼인데 하예정은 그녀의 아들에게 시집올 때 확실히 아무것도 얻지 못했다. 그 아이는 얼마나 서러웠을까.“예물과 결혼식은 후에 얼마든지 보충할 수 있어.”전태윤도 후에 다 해줄 수 있다는 걸 알지만 그는 항상 그녀를 속상하게 한다.전태윤이 자리에서 일어서며 말했다.“엄마, 난 가서 할머니랑 얘기 나눌 테니까 엄마도 그만 할머니를 원망해요. 이건 어쩌면 내 인생에 반드시 겪을 고초인 것 같아요. 사랑에 관한 고초 말이에요.”그는 태어나서부터 지금까지 인생이 너무 잘 풀렸다. 단 한 번도 좌절을 겪어본 적이 없다.하늘이 그런 그가 눈에 거슬려 사랑의 좌절을 느껴보라고 한 듯싶다.“태윤아, 엄마는 그래도 널 일깨워줘야겠어. 네 신분은 이미 예정의 주위 사람들에게 들통났을 거야. 고향의 인간쓰레기 같은 친척들과 걔네 언니네 전남편 한 가족 모두 끈질기게 집착할지도 몰라. 너 절대 예정이를 봐서 그 사람들 도와주면 안 돼. 그 인간들은 흡혈귀라 한번 주면 분명 또 더 달라고 찾아와. 앞으로 네게 빨대 꽂고 등골을 빼먹을 인간들이야. 그들이 예정이한테 조금이라도 잘해줬다면 네가 도움을 줘도 그러려니 하겠지만 다들 예정이 자매한테 너무 못되게 굴었어. 엄마는 못 봐주겠어. 대체 그게 무슨 친척이야, 이웃보다도 못하면서. 그런 인간들을 도울 걸 생각하면 속 터질 것 같아.”전태윤이 침울한 얼굴로 대답했다.“엄마, 난 예정의 태도를 보면서 처사해요. 예정이도 그들과 화해하지 않겠다는데 내가 왜 도와줘야 하죠? 다들 지금 매사가 안 풀리는 것도 내가 그렇게 만들었어요. 처형의 전남편 가족은 말 그대로 전남편인데 무슨 연관이 더 있겠어요? 설마 주형인이 뻔뻔스럽게 달려와서 본인이 내 형부라고 할까 봐요?!”장소민이 말했다.“네가 다 생각이 있으면 됐어. 예정이는 그래도 딱 하나 마음에 드는 게 있는데 바로 애증이 분명해.”하예정은 동정심이 차 넘치는 사람이 아니다.일부 네티즌들이 윤리, 도덕의 틀을 차
전태윤은 한참 동안 침묵을 지키다 말했다.“진정하게 혼자 놔두는 게 좋을 것 같아요. 적어도 지금은 방해하지 않는 게 좋겠어요.”할머니는 고개를 끄덕였다.“태윤아, 네가 예정이를 친정에 가 머물 수 있도록 손을 놓아준 게 할미는 매우 기쁘구나. 예전처럼 예정이를 강제로 붙잡아 두지 않고 자유를 줄줄 안다는 것은 좋은 일이야.”전태윤의 안색은 여전히 침울했다.“할미는 이틀 후에 다시 예정이를 찾아가련다. 널 위해 사정하는 것이 아니라, 할머니도 예정에게 사과해야겠어, 그 애를 가장 먼저 속인 사람이 이 할미잖아.”전태윤은 차갑게 콧방귀를 뀌었다.윗물이 맑아야 아랫물도 맑다고 두 사람은 마찬가지인 셈이다.“너 앞으로 어떻게 할 거냐?”“할머니 생각엔 제가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전태윤이 되물었다.할머니는 웃으며 손을 뻗어 전태윤의 얼굴을 어루만지다 그만 참지 못하고 그의 머리를 쿡쿡 찔렀다.“네 머리로 한번 천천히 생각하고 깨달아봐.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것은 단순히 사랑하기만 하면 되는 것이 아니라 그녀를 이해하고, 신뢰하고, 그녀의 모든 것을 포용하여야 하는 거야. 네 엄마는 나와 네 할아버지에 대해 불평하였다. 모든 걸 가르쳐줬으면서 사랑하는 법을 가르쳐주지 않았다고. 우리가 그걸 깨달았을 때, 넌 이미 어른이 되었지... 네 할아버지는 저세상으로 떠나갈 때까지도 널 걱정했다.”“...”“네 혼사가 걱정되었던 거지. 넌 성격이 냉담하고 차가워 소년 시절에 널 사모하는 여자애가 그렇게 많았어도 말 걸기도 싫어했지. 어른이 된 후엔, 매일 경호원들을 데리고 다니며 3미터 이내에 가족 이외의 젊은 여성들이 접근하지 못하게 하였고... 네 할아버지는 걱정이 가득했지만, 그땐 이미 병으로 더 이상 너를 돌볼 힘이 없어 떠나기 전에 이 할미한테 부탁한거야.”“...”“사실 할미도 그때 예정이를 알게 된 후 너희 둘 몰래 사주팔자를 가지고 가 부부의 인연이 있는지 물어봤다. 그러다 인연이 있다는 말을 듣고 어떻게든 너와 예정이를 결혼시킨 거야.
할머니는 그의 어깨를 토닥였다.“힘내! 할미는 마음속으로 너를 지지하마!”“할머니, 진심으로 지지하시는 거 맞아요?”할머니는 눈빛을 반짝이며 되물었다.“당연하지, 내가 언제 진심이 아닐 때가 있었냐?”“제가 예전에 절대 예정이를 먼저 찾는 일이 없을 거라고 말한적이...”“그 말은 네가 다시 꺼내지 않았으면 할미는 진작 잊었어. 그나저나, 네가 입 밖에 낸 말을 번복한 지가 한두 번이냐? 그러니 또 한 번 번복하는 일을 하여도 괜찮을 거야! 신경 쓸 필요 없어!”“...”‘정말 내 친할머니 맞아...’할머니와 얘기를 나누며, 할머니께서 자신이 몰랐던 예전의 일들을 꺼내시는 걸 들으며 그는 할머니가 왜 계속 자신과 하예정을 결혼시키려 했는지 이해가 되었다.첫째는 할아버지의 임종 전의 부탁 때문이고, 두 번째는 그 이름도 모르는 무당 때문이었다.물론 지금의 전태윤은 그 무당이 고마울 따름이었다.만약 그가 하예정과 사랑에 빠지지 않았더라면 그 무당을 가만두지 않았을 것이다.다른 한편.언니를 따라 전태윤의 별장을 떠난 하예정은 먼저 발렌시아 아파트로 돌아갔다. 그녀는 자신의 물건들을 모두 정리하여 가져갈지 생각하다가, 결국 갈아 입을 옷 몇 벌만 챙겨 언니의 월세방으로 갔다.집에 있는 애완동물들은 데려가지 않고 숙희 아주머니한테 전화하여 전태윤이 선물한 것이니 그에게 도로 돌려주라고 부탁했다.숙희 아주머니가 애완동물들을 안고 전태윤을 찾아가자, 그는 잘 먹어 포동포동한 애완동물들을 보며 잠시 침묵에 잠겼다.“...예정이가 잠시 돌볼 시간이 없다고 하니 아주머니가 대신 돌봐줘요. 아주머니는 얘네들과 함께 있은 시간이 오래되니, 예정이가 돌아오기 전까지 쭉 돌봐주세요. 그리고 베란다에 있는 화초들도 대신 잘 보살펴 줘요. 예정이가 가장 좋아하던 거예요.”숙희 아주머니는 공손하게 답했다.아주머니가 애완동물들을 데리고 떠나는 모습을 보며 전태윤이 참지 못하고 한마디 덧붙였다.“그리고 봄이 너무 많이 먹이지 말아요, 지금은 살이 쪄 찐빵 같
“아빠.”주우빈의 부른 소리에 주형인은 두어 걸음 다가가 아들을 안아 들고 놀아주다가 하예진이 스쿠터를 세워놓은 걸 보고 다시 말을 이었다.“당신 할아버지가 당신의 사촌 몇 명을 데리고 회사에 나를 찾아왔어.”하예진은 눈살을 찌푸렸다.“당신은 왜 찾아갔대?”그녀는 이미 주형인과 이혼했고, 듣자 하니 이혼할 때, 할아버지는 전 시어머니에게서 몇백만을 뜯어냈다고 한다.전 시어머니가 나중에 그 돈을 돌려받았을지...아마 돌려받지 못했을 것이다.돈이 이미 할아버지의 호주머니에 들어간 이상 다시 돌려받기 어려울 것이다.할아버지도 시어머니도 모두 뻔뻔한 사람인지라 둘이 붙으면 아주 가관일 텐데, 그걸 보지 못한 것이 하예진은 못내 아쉬웠다.“예정 씨가 전씨 가문의 큰 도련님의 와이프라는 소식을 듣고 찾아온 거야. 그러다 예정 씨가 보이지 않자, 가게로 찾아갔다가 가게 문도 닫혀있자 곧장 발렌시아 아파트로 찾아갔는데 아파트엔 들어갈 수 없어 전화를 걸었고, 전화도 받지 않아 나를 찾아온 거지. 원래는 당신을 찾아가려다 당신이 어디 사는지 몰라 결국 우리 회사로 찾아온 거래.”이 일로 주형인은 하마터면 서현주에게 오해받을 뻔했고 안간힘을 다 써 겨우 그녀를 달랬다.서현주는 주형인이 하예진과 연락하는 걸 제일 싫어했다.“그래서 내가 여기 산다고 말한 거야?”주형인은 하예진의 살뜰한 보살핌에 아주 건강하게 자라고 있는 아들의 얼굴을 보며 담담하게 말했다.“아니, 알려주지 않았어. 그저 이혼 후에 연락이 끊겨 당신이 어디에 세 들어 사는지 모른다고만 했어.”그 사람들이 찾아오면 분명 좋은 일이 없을 것이다. 주형인은 하예진이 그 사람들의 시달림을 받는 것은 상관없었지만, 그들이 아들의 삶에 영향을 미칠까 봐 두려웠다.“당신의 두 사촌 오빠를 조심해, 그들은 아는 사람이 많아 조만간 당신의 주소를 알게 될 거야. 만약 그들이 찾아와 소란을 피우면 우빈이가 놀라지 않게 우리 집에 잠시 보내.”주형인과 서현주는 함께 있은 지도 꽤 오랜 시간이 지났는데,
서현주가 아직 임신하지 않자, 주형인은 자신과 주우빈의 부자 관계가 점점 멀어질까 봐 걱정됐다.특히 하예진과 노동명이 함께 있는 모습을 보고 마음속으론 노동명이 하예진을 좋아할 리가 없다고 생각하면서도 아들이 나중에 다른 남자를 아빠라고 부를까 봐 걱정됐다.그래서 기회를 찾아 주우빈을 곁에 두고 한동안 같이 지내며 부자간의 정을 키우고 싶었다.그리고 주우빈과 서현주가 함께 지내며 정을 쌓길 바랐다. 만약 서현주가 정말 아이를 낳지 못하고, 하예진이 다시 시집가게 된다면, 주우빈의 양육권을 쟁취해서 집으로 데려올 생각도 했다.어쨌든 주우빈은 주씨 가문의 핏줄이고 절대 다른 사람을 아빠로 불러서는 안 된다.“내가 이미 이혼한 걸 알고 있는데 나한테 매달리기나 하겠어? 설사 날 찾아온대도 두렵지 않아. 그리고 우빈이는 당신들과 친하지도 않고, 당신은 신혼인데, 지금 우빈이를 집에 데려가면 서현주가 어떻게 생각하겠어?”“...”“난 당신이 우빈이를 집으로 데려가는 게 마음이 놓이지 않아. 그리고 당신 부모님과 서현주는 갈등이 심하다고 들었는데, 혹시라도 우빈이가 당신 집에 간다면 당신 부모님은 우빈이만 예뻐하겠지! 난 서현주가 자극받아 우빈이를 해할까 봐 두려워. 우리 이혼할 때 약속한 것들, 당신이 지켜줬으면 좋겠어.”“내 앞에서 이혼할 때 약속했던 것들 언급하지도 마.”주형인은 이혼 후 일이 순조롭게 풀리지 않아 보너스를 잃었을 뿐만 아니라 쥐꼬리만한 월급만 받으며 살고 있다. 제휴거래처에서 유진 테크와 협력하지 않으려 하여 부수입도 끊긴 상황이다. 다행히 예전에 돈을 많이 벌어 개인 예금을 2억 넘게 보유하고 있어 직장을 잃더라도 당분간은 그의 삶에 영향을 미치지 않을 것이다.하지만 주형인은 자신을 이렇게 만든 사람이 미치도록 미웠다.돈줄을 끊는 것은 부모를 죽이는 것과 같다고 하는데, 이 일은 하예정이 전태윤을 시켜 한 것이 틀림없다고 그는 믿었다.그 목적은 하예진을 위해 화풀이를 하는 것일 테니 하예진이 한 것과 다름없고, 주형인이 하예
“보고 싶었어요.”주우빈은 하예정의 목을 껴안고 얼굴에 여러 번 뽀뽀했는데, 하예정은 우빈이가 귀여워 미칠 지경이었다.“언니, 왜 이렇게 늦게 왔어? 나는 진작에 저녁 다 차렸는데.”하예정은 조카를 껴안고 언니에게 물었다.“인테리어 기사님이 일을 늦게 끝내 이제야 돌아온 거야. 언니가 돌아와서 너한테 밥을 해주려고 했는데, 네가 이미 밥을 다 차려놓았을 줄이야.”“언니, 난 그냥 마음에 상처만 입었을 뿐이지 병에 걸린 것도 아닌데 언니가 밥해주는 게 어딨어?”하예진은 다가와 동생이 그린 그림을 보았는데, 그것은 비녀였다.“네가 기분 나빠서 그런지 그림도 잘 안됐네, 일단 그리지 마.”하예정은 동생을 도와 화판을 치웠다.“나가서 신선한 공기라도 마시지 그랬어?”“움직이기 싫어서 하루 종일 잤어.”“내일은 밖에 나가서 산책이라도 해봐. 매일 집에만 있으면 기분만 더 나빠져.”“내일은 가게에 갈 거야. 설 전에 들어온 주문을 처리해야겠어...”학생들은 다음 주 월요일에야 개학한다.오늘은 금요일이니 그녀는 주말 이틀을 틈타서 가게에서 밀린 일들을 처리할 행각이었다.뭔가 할 일이 있어 주의를 분산시키면 전태윤이 그녀를 속인 일이 생각나지 않을 수도 있다.생각하지 않으면 화도 나지 않을 것이고, 화가 안 나면 기분이 좋아질 것이다.“그래, 알았어.”하예정은 동생이 가게로 나가는 것을 막을 생각이 없었다.“방금 아래층에서 주형인을 만났는데, 일부러 나를 찾으와 할아버지가 가족들을 데리고 시내로 들어왔다고 알려줬어.”그러자 하예정은 눈살을 찌푸렸다.“여기 와서 뭐 하려고? 태윤 씨 신분을 알고 돈을 떼먹을 수 있겠다고 생각한 건 아니겠지?”“그들처럼 뻔뻔한 사람들은 당연히 그렇게 생각하고도 남지.”그 사람들은 얼굴이 두껍고 뻔뻔하기 짝이 없어, 아무리 어이없는 일이라도 하고 남을 것이다.“그들이 생각한다고 될 일이야? 능력이 있으면 태윤 씨를 직접 찾아가라고 해!”하예정은 고향 친척들과 관계가 몹시 나쁘다.“정말 제부를 찾아갈지
하예정이 문을 열자마자 한 손이 그녀의 얼굴을 향해 날아왔다.그녀는 재빠르게 그 손을 잡았다.‘서현주?'서현주는 문을 열러 온 사람이 하예진인 줄 알고 문을 열자마자 뺨을 때릴 생각이었는데 하예정일 줄은 미처 몰랐다. 하예정은 몸싸움에 능하다고 할 수 있어 주먹질도 할 줄 알고 반응도 빨라 피할 수 있었다.“어...?”“무슨 일로 온 거야?”서현주는 하예정을 빤히 바라봤다.하예정은 힘껏 그녀의 손을 뿌리치고는 바로 그녀를 뒤로 밀어서 몇 걸음 물러서게 했다.“하예진은? 하예진보고 나오라 해. 감이 내 남편한테 꼬리 쳐?”퇴근 후 주형인은 그녀를 내버려두고 서둘러 회사를 떠났다.서현주는 하씨 집안 사람들이 회사에 주형인을 찾아왔을 때 그를 보고 손녀사위, 제부라고 부르는 것이 화가 났다.‘오빠와 하예진은 이미 이혼했는데도 그쪽에선 오빠를 제부라고 부르다니, 설마 재혼을 원하는 건 아니겠지? 시댁 사람들도, 하씨 집안의 사람들도 다 그러길 원하는 거야? 날 뭐로 보고!'그녀는 몰래 주형인을 미행하다가 그가 하예진을 찾아간 것을 발견했고, 그가 멀리 떠나간 후에야 모습을 드러냈다.하예정은 비꼬며 말했다.“당신 남편은 우리 언니가 버린 남자야. 우리 언니가 눈이 먼 것도 아니고 다시 버린 남자한테 꼬리를 치겠어? 혹시 우리 언니한테서 빼앗아 간 인간쓰레기가 너에게 안정감을 주지 못하는 거야?”“네 언니는 오빠랑 이미 이혼했잖아. 나와 오빠는 어제 혼인신고를 했고, 이제 우리는 부부야. 네 언니는 이젠 오빠와 아무런 관계도 없는데, 멀리 떨어져 있어야 하는 거 아니야? 나 몰래 만나는 건 무슨 뜻이야? 네 언니, 나한테 복수하려고 일부러 다이어트하여 오빠를 다시 유혹하려는 건 아니겠지?”“어머, 넌 네가 뭐라도 되는 줄 알아? 우리 언니가 그렇게 할만 한 가치는 조금도 없어. 너는 모든 사람이 너처럼 남이 버린 남자를 보물처럼 여기는 줄 알아? 주형인이 먼저 바람을 피운 건 따로 치고, 설사 그 인간쓰레기가 아무런 잘못이 없다고 해도 이혼한
서현주도 자기가 한 말이 터무니없는 소리라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너무 화가 나서 참을 수가 없었다.예전에 주형인은 늘 집에 돌아가 하예진의 살찐 모습을 보기만 해도 역겹다고 말하곤 했다.이혼 후 주형인은 되려 계속 하예진을 찾아가고 있고 하예진도 계속 다이어트를 하고 있다.이혼 당시와 비교하면 하예진은 불과 두 달 만에 십여 킬로의 살을 빼버렸다. 지금의 하예진은 모델에 비하면 당연히 뚱뚱한 편이지만 일반인과 비교하면 단지 살이 좀 더 풍만하게 찐 정도이다.서현주는 주형인이 하예진을 찾아가는 이유가 하예진이 살이 빠져 이혼할 때보다 훨씬 더 예뻐졌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이때 하예진이 다가왔다.서현주는 하예진을 보고 화난 표정으로 그녀를 노려보며 소리쳤다.“하예진, 난 네가 돈 많은 이모가 있든, 전씨 집안의 큰 도련님을 제부로 두었든 두렵지 않아. 네가 감히 내 남편에게 꼬리 친다면 난 널 어떻게든 찢어버릴 거야.”하예진은 서현주가 한 말에 웃음이 나왔다.“너 혹시 다른 사람의 남편을 빼앗고 나니 의심병이 생긴 거 아니야? 다른 사람이 네 남편을 빼앗아 갈까 봐 불안해? 너처럼 눈먼 사람이나 그런 인간쓰레기를 좋아하는 거지, 난 아니야. 난 감정에 결벽증이 있어서 말이야. 내가 버린 남자를 다른 사람이 주워 사용하면 난 그게 더러워서 더 이상 원하지 않거든. 뭐 어쨌든, 주형인을 주워간 너에게 감사할 따름이야. 그 덕에 순조롭게 이혼해서 내가 원하는 재산을 얻을 수 있었어. 설사 그 자식이 나랑 재혼하길 원한대도, 내가 너에게 보답하기 위해서라도 꼭 거절할 거라고 약속할게.”서현주는 분노에 차서 말했다.“절대 그럴 일이 없을 거야, 오빠가 날 얼마나 사랑하는데.”“네 말대로라면 넌 뭘 그렇게 두려워하는 거야?”하예진의 한마디에 서현주는 말문이 막혔다.그녀는 그와 진짜 부부가 되고 나서야 결혼은 두 사람만의 일이 아니라 아무 관계 없었던 두 집안의 일이라는 것을 점차 깨닫게 되었다.주형인은 그녀를 위해 요리를 배웠고, 시어머니가 그녀
고현이 입을 열었다.“호영 씨는 너무 뻔뻔스럽네요.”전호영은 히죽히죽 웃으며 말했다.“제가 뻔뻔스럽지 않았다면 고현 씨의 마음을 훔치지 못했을걸요. 우리 큰형을 따라 배웠거든요. 우리 형이 형수님에게 구애한 적 없지만 뻔뻔스럽게 자신의 미래 아내를 쫓아다녀야 한다고 저에게 말했거든요. 우리 큰형도 옛날에 체면을 중요시하게 여겼지만, 우리 형수님과 지내면서 점점 뻔뻔스럽게 되었어요.”전태윤 부부가 금방 결혼했을 때 많은 갈등이 있었고 냉전도 자주 했었다.전호영은 그 사실을 알고 있었지만, 감히 더 깊이 알아보지 못했을 뿐이다.때로는 전태윤 부부가 싸움이 심해질 때면 전씨 할머니까지 나서야 했다.고현은 피식 웃으며 말을 이었다.“전 대표님께서 호영 씨가 자신을 뻔뻔하다고 말하는 것을 들으면 아마 호영 씨는 이 세상에서 없어질지도 몰라요.”고현은 전씨 가문의 형제들이 맏형 전태윤을 유난히 존중했고 또 가장 두려워한다고 전해 들었다.전태윤은 다른 사람들 앞에서는 여전히 차갑고 도도한 모습이지만 하예정 앞에서는 다른 사람으로 변했다.전씨 가문은 형제들은 서원 리조트에서 함께 산 덕분에 사촌 형제지간일지라도 정이 아주 깊었다.따라서 맏형 전태윤의 지위도 높았고 그의 형제들도 그를 잘 따랐다.“큰형이 지금 여기에 없는데요 뭐. 그리고 제가 한 말도 사실인걸요. 우리 형도 형수님이 생긴 뒤로 뻔뻔해졌거든요. 우리도 따라 한 것뿐이에요.”고현은 여전히 웃으며 말을 건넸다.“호영 씨가 뻔뻔한 사실을 남에게 밀지 마세요. 그만하고 우리 얼른 가요. 호영 씨, 네가 오늘 제가 드레스 입고 하이힐을 신는다면 남들의 웃음거리가 되지 않을까요? 제가 비웃음을 당해도 괜찮겠어요?”전호영은 그녀가 벗은 하이힐을 내려다보며 말했다.“제가 뭘 더 신경 쓰겠어요? 제가 언제 다른 사람이 비웃을까 봐 두려워했었나요? 저는 남들 시선이 두렵지 않고 제가 하고 싶은 대로 사는 사람이에요. 남들이 시선이 신경 쓰였다면 오늘 같은 달콤함도 없었을 거예요.”전호영은 다른 사
사실 전호영은 차를 세울 때 고현이 평소에 자주 타는 그 마이바흐 차를 보았다.“집 안에 있어. 들어가 봐.”진미리는 물건을 들여 집 안으로 들어가려다 다시 전호영의 손에 물건을 전호영 손에 쥐여주었다.“난 꽃에 물을 좀 주고 들어갈게. 날도 어두워질 것 같으니 먼저 들어가 봐.”전호영은 자주 고씨 가문의 저택으로 왔고 진작에 고씨 가문을 그의 두 번째 집으로 생각했다.전호영은 혼자 집 안으로 들어갔다.집에 들어서자 그는 한 여자가 소파에 앉아 휴대전화를 들고 메시지를 보내는 모습을 보았다.그 여자는 고현과 정말 똑같이 생겼다.만약 고현이 치마를 입고 가발을 쓴다면 저렇게 예쁠 것이다.고현은 원래 긴 가발을 쓰고 싶지 않았지만, 전호영이 말하는 소리를 듣더니 재빨리 가발을 쓰고 앉아 있었다.전호영이 어떤 반응을 보이는지 알고 싶었다.그녀는 전호영 앞에서 치마를 입은 적 있었다.당시 고현은 그날이 전호영 앞에서 치마를 입는 유일한 날이라고 생각했었다.그러나 고현은 지금 또 치마를 입고 있다.그녀는 전호영을 위해 한 번이고 두 번이고 늘 그녀의 원칙을 깨뜨렸다.아니, 눈앞의 여자가 바로 그의 고현이었다.전호영은 씩 웃었다.그는 다가가더니 먼저 손에 들고 있던 가방들을 내려놓고 꽃다발을 고현에게 건네주며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여신님, 이 꽃다발을 당신에게 드릴게요.”고현의 시선은 꽃다발에 가려져 더는 휴대전화를 쳐다보지 못했다. 그녀는 휴대전화를 탁자 위에 올려놓고 전호영을 올려다보며 빙그레 웃는 그의 얼굴을 보며 웃으면서 말을 이었다.“서프라이즈도 해주고 싶었는데, 호영 씨 표정을 보니 놀라지 않은 것 같네요.”“현이 씨가 저를 위해 치마를 한 번 갈아입었을 때 제가 재빨리 현이 씨 도도한 모습을 기억해 버렸죠. 평생 잊지 못할 거예요.”전호영은 고현이 꽃다발을 받기를 기다렸다가 뒤로 몇 걸음 물러서서 그녀를 진지하게 바라보며 물었다.“준비되었다고 했는데 정말 이렇게 나가려고요? ”고현은 지금 드레스를 입고 가발을 착용
잠시 후, 진미리가 말했다.“됐어. 나도 상관 안 할래. 너 하고 싶은 대로 해. 엄마는 몇 년 더 살고 싶어.”“엄마, 저는 효녀거든요.”진미리가 입을 열었다.“난 네가 불효녀라고 말 한 적 없어. 네가 여자 신분을 회복하는 일에 엄마가 더는 신경 쓰지 않겠다는 말이야. 더 관여하면 내가 열 받아서 죽을 것 같아. 내가 몇 년을 더 살아서 네가 결혼하고 자식까지 낳는 것을 보려면 너의 일에 관여하지 않는 게 좋겠어. 네가 여자로 살든 남자로 살든 네가 개의치 않는데 나도 더는 상관하지 않을래. 내가 진작에 상관하지 말았어야 했어.”말을 마친 진미리는 몸을 일으켜 밖으로 나갔다.“엄마, 어디 가세요?”“엄마 바람 좀 쐬면서 기분 전환 좀 할게. 네 아빠한테 잔소리 좀 해야겠어.”고진호는 밖에서 꽃들에 물을 주고 있었다.그러자 고현이 말을 건넸다.“그럼 나가서 아빠에게 몇 마디 잔소리하고 오세요. 잔소리하시고 나면 그래도 제가 가장 좋다고 생각하실걸요.”진미리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바로 밖으로 나갔다.꽃에 물을 주던 고진호는 진미리가 나오는 것을 보더니 물었다.“현이가 연습 잘하고 있어요?”“휴, 말도 마세요. 지금에야 와서 가르치려고 하니 너무 어려워요. 오후 몇 시간 만에 20년이 넘는 습관을 고치려고 하니 너무 어려워요.”고진호가 웃으면서 말을 건넸다.“그럴 줄 알았어요. 됐어요. 내버려 둬요. 현이가 행복하기만 하면 현이가 어떤 신분으로 살아가든 상관없잖아요.”갑자기 고현이 여자라는 일이 드러나게 되면 아마 강성 전체가 뒤흔들릴지도 모른다.전화 폭격을 당할 장면을 미리 생각한 고진호도 미리 전원을 끄려고 계획했다.“현이가 드레스는 입고 싶지만, 하이힐 대신 구두를 신겠대요. 휴... 진작 알았다면 애당초 현이가 소란 피울 때 반대했야 했는데. 벌써 20년이 흘러 멀쩡한 딸이 아들로 변하게 되다니...”“현이가 입고 싶은 대로 입게 놔둬요. 다른 사람들이 손가락질하는 대상은 현이지, 우리가 아니잖아요.”고진호는 고현이
“걱정하지 마세요. 준비하고 계세요. 저랑 함께 연회에 가요.”고현이 말을 이었다.“그럼 집에서 기다릴게요.”“좀 이따가 봐요.”그는 고현이 왜 반나절 휴가를 냈는지 전호영은 더는 묻지 않았다.전호영은 먼저 서둘러 고씨 가문의 저택으로 간 다음 다시 얘기하려고 했다.전호영과의 통화를 마친 고현은 휴대전화를 내려놓으려다가 맞은편에 앉아 있는 진미리를 보더니 다시 휴대전화를 집어 들어 전호영에게 메시지를 보내는 척했다.“메시지 보내는 척 하지 마.”진미리는 일어나서 걸어가더니 손을 뻗어 고현의 휴대전화를 가져다가 탁자 위에 올려놓았다.“엄마, 저는 핸드폰에서 벗어날 수 없어요. 회사에 무슨 일이 있을 때마다 저를 찾아야 하거든요.”고현은 다시 휴대전화를 방패막이로 삼고 싶어 했다.“회사 일 전부 고빈에게 맡겼잖아. 고빈이가 처리하게 놔둬. 빈이가 오늘 저녁 연회에 참석하지 않아도 되니까. 그리고 빈이는 너보다 어리지 않아. 너보다 겨우 10분 정도 어릴 뿐이야. 게다가 남자로서 빈이는 당연히 그 무거운 짐을 짊어져야 해. 남존여비라고 당연히 남자가 무거운 짐을 지게 해야지.”고현은 웃으며 말을 이었다.“엄마, 그 생각은 너무 보수적이에요.”“남들에게는 보수적인 사상일지 모르지만, 우리 집에서는 남자가 무거운 짐을 지게 하고 딸이 가볍게 행복하게 살게 하는 것이 우리 집안의 규칙이야.”진미리는 고현 옆에 앉았다.고현은 진미리와 논쟁하려 하지 않고 바로 머리를 수그렸다.“네네, 우리 엄마는 가장 예뻐요. 우리 엄마가 하신 모든 말은 다 정확해요.”진미리는 고현을 노려보고 있었다.“엄마, 또 왜요? 오후 내내 저를 노려보신 횟수가 지난 20여 년을 합친 것보다 더 많아요.”진미리는 딸의 허벅지를 툭툭 치며 꾸지람했다.“똑바로 앉아! 사나이처럼 앉지 마. 넌 지금 우리 가문의 딸이야. 고씨 가문의 아들이 아닌 딸이라고! 그리고 앉자마자 하이힐을 벗지 마. 어느 집 딸이 자리에 앉자마자 하이힐을 벗는 것을 봤어?”고현은 투덜댔다.“
전호영의 전화를 받은 고현은 잠시 멈추고 쉴 수 있는 핑계를 주었다.고현은 자신의 하이힐을 신고 걸어 다니는 자태를 감시하고 있는 진미리에게 말했다.“엄마, 호영 씨 전화예요.”“그래.”고현은 소파 앞으로 성큼성큼 걸어와 앉았고 그녀의 걸음걸이 자태를 보던 진미리는 눈살을 찌푸리며 어쩔 수 없다는 표정으로 따라왔다.남자의 분장에 익숙해진 고현이 치마로 갈아입고 하이힐을 신으면 진미리의 요구대로 잘 걸을 수 없었다. 재벌가 딸들의 우아한 자태로 걷는다는 것은 하늘을 오르는 것보다 더 어려웠다.고현은 하이힐을 신고 삐뚤삐뚤 걸어 다녔다.어쨌든 진미리는 고현이 하이힐을 신고 걷는 모습이 매우 못마땅했다.고현은 소파에 앉자마자 바로 하이힐을 벗어 던졌다.진미리는 고현의 상황을 살피지도 않은 채 하늘을 찌르는 듯한 굽 높은 신발을 신고 걷는 연습을 시켰다. 비록 연회에 참석할 때 신을 하이힐은 그렇게 높지 않지만 말이다.고현은 내심 불만이었다.하지만 진미리는 굽 높은 신발로 연습을 해야 연회 때 신어야 할 하이힐을 쉽게 신을 수 있다고 했다.“호영 씨.”고현은 부드럽게 전호영을 불렀다. 그녀는 지금처럼 전호영의 전화를 기다린 적이 없었고 또한 이렇게 부드러운 말투로 전호영의 이름을 부른 적도 없었다.그녀는 성격이 차가운 편이라 전호영을 사랑하게 되더라도 그에게 부드럽게 대하지 않을뿐더러 다른 여자들처럼 애교도 부리지 않았다.가끔 고현이 전호영과 이야기할 때 약간의 웃음을 띠면서 말을 건네기만 해도 전호영은 며칠 동안 행복하게 지낼 수 있었다.“오후에 회사에 돌아가지 않았어요. 반나절을 쉬려고 우리 부모님 집으로 왔어요.”고현의 부드러움은 전호영이라는 이름을 부를 때만 사용됐고 다시 입을 열어 말했을 때는 말투가 정상으로 돌아갔다.전호영이 물었다.“괜찮으세요? 어디 아픈 건 아니죠?”그녀는 워커홀릭이라 결혼하기 전의 전태윤처럼 평일에 쉬는 일이 거의 없었다. 주말이 되어 집에서 쉰다 해도 사실 업무를 처리하기 위함이었다.고현은 가끔
임원들은 고빈의 주위에는 적어도 여성 지인들이 많아 그녀들과 만나면서 먹고 놀 수 있다지만, 고현은 그야말로 전호영에 의해 망가졌다고 생각했다.전호영이 아주 훌륭하고 관성의 제일 갑부인 전씨 가문 출신이라고 해도 뭐가 소용 있겠는가!동성연애는 국내 사람들이 여전히 받아들이지 못하는데...“상상력이 풍부하시네요. 고빈 씨에게 드리는 꽃이 아니거든요. 고현 씨는 회사에 없어요? 나가셨어요?”전호영이 물었다.고빈은 손이 전호영에 의해 뿌리쳐졌지만, 화도 내지 않고 일부러 전호영에게 말했다.“우리 형에게 매달리더니 너무 심하게 매달린 건 아닌가 봐요? 우리 형이 어디로 갔는지도 모르다니. 우리 형이 오후에 회사에 돌아오지도 않았어요. 모르셨어요?”전호영은 정말 몰랐다.그는 고현이 오늘 저녁에 그녀와 함께 연회에 참석해야 한다는 사실밖에 몰랐다.오늘 밤 두 사람이 참석하는 연회는 강성에 있는 한 재벌가의 저택에서 열리기 때문에 전호영은 일을 마치자마자 서둘러 달려왔다.그는 옷도 갈아입지 못하고 바로 왔다.전호영은 매일 양복을 입고 다녔기 때문에 갈아입을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다.그는 선천적으로 잘생긴 외모로 옷을 대충 입어도 쉽게 사람들 사이에서 화제가 되곤 했다.“호영 씨 표정을 보니 우리 형이 아무것도 알려주지 않은 모양이네요. 하하! 우리 형을 반년 넘게 귀찮게 하여 동성애자로 만들더니 결국 우리 형의 마음을 완전히 움직이지는 못했네요.”고빈은 동정 어린 표정으로 전호영의 어깨를 툭툭 치며 말했다.“시간이 없어서 잔소리 그만할게요. 하고 싶은 대로 하세요. 그럼 저는 이만.”고빈은 전호영을 뒤로 한 채 임원들과 계속해서 이야기를 나누면서 자리를 떠났다.전호영은 아랑곳하지 않고 꿋꿋하게 프런트 데스크로 돌아와 아직 퇴근하지 않은 직원에게 물었다.“고 대표님께서 오늘 오후 정말로 회사로 돌아오지 않았어요?”“네, 오후에 돌아오지 않으셨어요.”전호영이 다시 물었다.“어디로 가신다는 말은 안 하셨어요? 사업 때문에 나가신 거예요?”전
하예진은 말을 잇지 못하고 살며시 노동명을 안아주었다.잠시 후 노동명은 그녀를 가볍게 밀어내며 부드럽게 말했다.“돌아가서 쉬어.”“잘 자요. 동명 씨도 내일 관성으로 돌아가야 하잖아요.”두 사람은 서로 인사한 뒤 하예진은 노동명의 방을 나섰다. 노동명은 휠체어를 타고 그녀를 현관문 밖으로 나와 그녀가 옆방으로 들어가는 것을 확인한 뒤에야 문을 닫았다.밤새 두 사람 사이에는 아무 말도 오고 가지 않았다.다음 날 노동명은 아침 식사를 마친 후 하예진의 배웅을 받으며 차를 타고 하루 호텔을 떠났다.하예진은 공항까지 따라가지 않고 노동명을 차에 태우고 호텔 입구에 서서 그를 배웅했다.공항까지 배웅하면 더 아쉬울 것 같았다.노동명이 타고 있던 차가 보이지 않게 되자 하예진은 그제야 경호원들과 함께 전호영이 안배해 준 차를 향해 걸어갔다.노동명이 관성으로 돌아갔으니 그녀도 계속 일을 해야 했다.바쁠 때는 시간이 유난히 빨리 지난다.날이 조금 전에 밝은 것 같았는데 눈 깜짝할 사이에 또 저녁이 되었다.전호영은 고현이 오후에 회사로 돌아가지 않는다는 것을 전혀 몰랐다.그는 평소처럼 저녁 무렵 차를 몰고 고씨 그룹으로 가서 고현이 퇴근할 때까지 기다렸다.그리고 같이 밥 먹으러 가려고 했다.고현은 사업이 무척 바빠서 전호영에게 줄 수 있는 시간이 많지 않았다.매일 식사 시간이 바로 그와 고현이 정을 쌓을 수 있는 가장 좋은 시간이다.그의 차는 고씨 그룹에 들어가서 늘 주차하던 곳에 멈춰 섰고 전호영은 조수석에서 꽃다발을 안아 들고 차에서 내렸다.전호영은 사무실 건물 입구에서 밖으로 나가는 고빈을 만났다. 고빈은 회사 임원 몇 명과 함께 걸으면서 얘기를 나누었다.전호영을 본 고현 일행은 멈추어 섰다.“회사엔 왜 왔어요?”고빈이 입을 열자마자 물었다.전호영은 그 물음에 의아한 표정으로 되물었다.“제가 왜 당신 회사에 올 수 없어요?”전호영은 매일 고씨 그룹으로 왔다.그럼 전호영을 쫓아내기라도 하겠다는 의미인가!고빈이 감히 그를 쫓아낸
“응, 내일 돌아가려고. 예진이도 너무 바빠서 영향 줄까 봐 그래. 관성으로 돌아가서 우빈이도 돌봐야 예진이가 걱정하지 않지. 내가 강성으로 돌아가서 나와 우빈을 위해 강산을 다스려야 되거든. 하하!”노동명은 저도 모르게 웃었다.옆에서 듣고 있던 하예진이 말했다.“나중에 빚이 쌓일까 봐 두렵네요.”노동명이 되물었다.“뭐가 두려워? 수십 조의 빚만 아니라면 다 갚아줄 수 있어. 넌 마음 놓고 가서 일해. 하늘이 무너져도 내가 버텨줄 테니까. 파산될 걱정은 하지 마.”수십 조의 빚이라고?하예진은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현재 하예진의 상황으로 놓고 보면 수억 원의 빚만 져도 그녀는 너무 걱정되어 흰머리가 나올 것 같았다.전태윤은 또 음성메시지를 보내왔다.“우리 처형에게 너 같은 후원자가 있으니 반드시 강성에서 성공할 거야.”노동명은 하예진에게 전태윤의 음성메시지를 들려주며 말했다.“들어봐, 태윤이가 너를 엄청나게 믿고 있어.”“항상 저를 이렇게 믿어주시는데 제가 더 열심히 해야 기대에 부응할 수 있겠네요.”“너도 혼자 견디지 말고 어려운 일이 생기면 가장 먼저 나에게 도움을 청해. 내가 다리를 다쳤지만 머리가 다친 건 아니거든. 나도 너 대신 문제를 해결해 줄 수 있어.”하예진은 노동명이 다리를 다쳤다는 둥 머리를 다쳤다는 둥 그런 말을 하는 것을 싫어했다.“동명 씨의 다리는 좋아질 거예요. 저는 그런 말 듣기 싫어요. 앞으로 절대로 그런 말 하지 마세요. 동명 씨가 다리 나아지면 저랑 결혼도 하셔야죠.”노동명은 싱글벙글 웃으며 말을 이었다.“네가 그런 말을 해 주니 내 다리도 분명 나아질 거야.”하예진은 얼굴이 붉어지더니 부끄러워하며 대답했다.“너무 오래 얘기하지 마세요. 일찍 쉬어요. 저도 방에 가서 쉴게요. 내일 또 회사 일로 많이 뛰어다녀야 하거든요.”“응, 가. 잘 자.”노동명은 자신의 얼굴을 가리키며 그녀에게 굿나잇 키스를 해달라고 암시했다.하예진은 다가가서 허리를 굽히더니 노동명의 칼자국이 있는 얼굴에 입을 맞추
“형인 씨 마음속엔 아직 네가 있을지도 몰라.”노동명이 말했다.그는 오히려 주형인이 우빈 앞에서 그의 험담을 하는 것을 개의치 않았다.주형인이 험담하면 할수록 우빈은 그를 싫어할 것이고 오히려 노동명과 우빈의 정이 더 깊어져만 갈 테니까.노동명은 마침내 우빈이 주씨 집에서 돌아올 때마다 그에게 무척 잘해준 이유를 알게 되었다.우빈도 미안했던 모양이다.주형인이 그의 험담을 했기 때문이다.“형인 씨는 저에 대한 사랑이 사라진 지 오래되었을 거예요. 저를 사랑했다면 저를 배신하고 상처를 주는 일을 하지 않았을 것이고 주씨 집안 가족들이 저를 괴롭히도록 내버려 두지도 않았을 거예요. 남자가 여자를 진심으로 사랑한다면 어떻게 괴롭힘을 당하는 것을 보고만 있을 수 있겠어요? 시어머니와 갈등이 생긴다 해도 어떻게든 해결하려고 노력했을 텐데. 어떻게 시어머니와 그의 누나가 저를 비난하도록 내버려 둘 수 있었겠어요?”“그 사람은 마음이 편치 않았을 뿐이에요. 제가 처음에 말했던 것처럼 만약 형인 씨와 서현주 씨가 아주 행복하게 잘 지내고 그렇게 많은 일이 일어나지 않았다면 지금쯤은 행복하게 살면서 새로운 생명이 태어나기를 기다렸을 텐데. 제가 죽든 살든 상관했겠어요? 우빈에 대한 감정조차 옅어졌을걸요. 그들만의 아기가 생기면 우빈에 대한 감정이 워낙 깊지 않은데다 감정이 있으면 얼마나 있다고...”노동명은 아무 말도 하지 않더니 문득 화제를 돌렸다.“맞아. 그런 기분 나쁘게 하는 사람과 일들을 생각하지 말자. 나 내일 관성으로 돌아갈 거야. 예진아, 나랑 같이 가서 새 옷 몇 벌 사 오자. 우빈에게 줄 장난감도 좀 골라줘. 내가 매번 선물한 장난감을 녀석이 좋아하지 않는 것 같더라고.”하예진도 전남편 얘기를 꺼내고 싶지 않았다. 그녀도 진작에 태연하게 모든 것을 받아들였지만 노동명 앞에서 전남편 얘기를 꺼내면 노동명이 질투할까 봐 걱정했다.교통사고를 당한 후 노동명도 많이 연약해졌다.주로 다리 장애로 자신감을 잃은 노동명은 마음이 매우 약해졌다.노동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