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맞다, 다음 달 밸런타인데이에 나랑 형인 씨 혼인 신고해. 너한테 미리 알려줄게.”하예진은 여전히 무덤덤하게 대답했다.“그래, 축하해.”‘주씨 집안이란 구덩이에 빠지게 된 걸 축하해, 서현주!’“오늘 주말이라 인제야 깨났는데 형인 씨가 아침을 다 차렸더라고. 듣기로 두 사람 결혼 생활 3년 동안 늘 네가 형인 씨에게 밥을 차려줬다면서? 아직 형인 씨 요리 솜씨도 맛보지 못했지?”하예진은 더는 서현주의 도발적인 말을 듣고 싶지 않아 전화를 꺼버렸다.“언니, 서현주 전화야?”“맞아, 정신이 이상한 것 같아. 난 주형인과 이혼하고 두 사람 함께하게 허락해줬는데 왜 굳이 전화 와서 뻔뻔스럽게 내 카톡까지 추가하겠대? 추가하고 종일 카카오스토리에 주형인과 함께 있는 모습을 자랑질할 건가? 그래서 날 약 올리려는 작정이겠지. 내가 왜 그런 거로 화내겠어? 이혼까지 한 마당에 주형인과 더는 아무 사이도 아니잖아! 전남편일 뿐이라고.”주형인이 서현주에게 아침을 차려줬단 말에 하예진은 실소를 터트렸다. 주형인이 음식을 해본 적이 없는 건 사실이다. 그런 그가 서현주에게 아침을 직접 차려줄 리가 있을까? 틀림없이 밖에 가서 포장해왔을 것이다.“밸런타인데이엔 혼인 신고할 거래. 제발 얼른 했으면 좋겠어. 함께 묶어놓아야 그 집안의 인간쓰레기들의 참맛을 체험할 수 있잖아.”하예정이 욕설을 퍼부었다.“진짜 파렴치한 년이네.”“파렴치하지 않고서 어떻게 주형인과 엮일 수 있겠어? 그래도 난 서현주한테 고마워. 걔가 설득하지 않았다면 주형인은 우빈의 양육권을 그리 쉽게 포기하지 않았을 거야.”하예진은 다시 주우빈을 꼭 끌어안았다.아들은 그녀의 목숨과도 같은 존재였다.주형인을 포기할 순 있어도 아들은 절대 놓아줄 수 없었다.다행히 이젠 모든 일을 원만하게 해결했다.“언니, 우리 먼저 마트 가서 뭐 좀 사자.”이모네 댁에 가는데 빈손으로 갈 순 없으니까.하예진이 알겠다며 대답했다.두 자매는 주우빈을 데리고 마트를 한 바퀴 돌더니 크고 작은 봉투를 들고
오는 길 내내 언니가 운전을 담당했다.하예진은 아들에게 어른을 부르는 호칭을 가르쳤다. 주우빈은 이경혜에게 안기려 하진 않았지만 이모할머니라고 부르긴 했다. 엄마가 가르치는 대로 곧장 잘 따라불렀다.“아이가 너무 귀여워요.”유청하가 입가에 미소를 머금었다.“내가 우빈이 안아봐도 될까?”그러자 이경혜가 말했다.“나한테도 안기지 않는데 너한테 안길까?”유청하가 두 손을 내밀었다. 그런데 예상 밖으로 주우빈이 고사리 같은 두 손을 뻗더니 유청하에게 안기려 했다.이경혜가 허탈하게 웃었다.“우빈이 사람 가리네?”“평소에는 가리지 않는데 지난번에 많이 놀라서 그래요. 다음번에는 우빈이도 이모한테 잘 안길 거예요.”유청하를 따르는 주우빈을 본 하예진도 놀라긴 마찬가지였다.“예진아, 예정아, 얘는 내 큰아들 성기현이야. 너희들 사촌오빠.”이경혜는 두 아들을 조카에서 소개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하예진네 자매가 오빠라고 부르며 인사를 건네자 성기현은 아무 말 없이 미소로 답했다.이경혜는 곧바로 둘째 아들 성주현을 가리켰다.“얘는 내 작은 아들 성주현이야. 예진이보다 두 살 어리고 예정이보다 세 살 많아.”하예진은 성주현의 이름을 불렀고 동생인 하예정은 오빠라고 불렀다.“이모, 안아줘요.”유청하에게 잠깐 안기던 주우빈이 다시 안아달라고 하자 하예정은 재빨리 두 팔을 벌려 조카를 안았다.그런데 그때 하예정의 왼쪽 약지에 낀 다이아몬드 반지가 성기현의 날카로운 눈에 들어왔다.‘어디서 봤더라? 며칠 전에 누가 똑같은 반지를 낀 걸 봤는데?’성기현은 남몰래 하예정이 낀 다이아몬드 반지를 한참이나 뚫어져라 쳐다보았다.“얼른 들어가자. 오늘 바람이 세서 날씨가 쌀쌀해.”성문철은 그들을 별장으로 안내하며 딸에게 말했다.“소현아, 차 여기 안에 세워.”성소현은 그의 말대로 차를 별장 안의 실외 주차장에 세웠고 하예진도 그녀의 뒤를 따라 동생의 차를 별장 안에 세웠다. 그들 일행은 하하호호 웃으며 화려한 별장으로 들어갔다.성씨 가문 도우미가 하예정
“여보, 나 방금 예정이가 낀 결혼반지를 봤어요.”유청하가 그를 보며 재미있다는 듯이 웃었다.“우린 뭐 다 눈이 먼 줄 알아요? 당신만 보게? 봤는데 왜요? 예정 아가씨의 결혼반지가 뭐 문제 있어요?”성기현은 어떻게 말을 꺼내야 할지 고민하며 잠시 침묵했다.“부부끼리 말 못 할 얘기가 뭐가 있다고. 할 얘기 있어서 위층으로 부른 거 아니었어요? 무슨 일인지 얘기해봐요.”“여보, 내가 전에 전태윤 씨가 카카오 스토리에 결혼반지 사진을 올렸었다고 얘기한 거 기억해요?”유청하가 고개를 끄덕였다.“당연히 기억하죠. 그날 아침 댓바람부터 소현 아가씨한테 얘기하라고 했었잖아요. 당신은 착한 사람이고 나만 빌런으로 만들었으면서. 아가씨가 속상해하는 모습을 보니까 내가 다 대신 울어주고 싶더라니까요. 그리고 관성 호텔에서 전태윤 씨를 우연히 만났을 때 전태윤 씨가 밥을 사줬다면서 집에 와서 온 저녁 나한테 얘기했었잖아요. 전태윤 씨가 사주는 밥을 먹을 줄은 꿈에도 생각지 못했다고.”“아직도 전태윤 씨가 당신한테 이상한 생각을 갖고 있는 것 같아요? 기현 씨도 결혼했고 전태윤 씨도 결혼했으니 전태윤 씨가 남자를 좋아할 걱정은 하지 않아도 돼요. 설령 전태윤 씨가 남자를 좋아한다고 해도 그 상대는 당신이 아니니까 쓸데없는 생각 하지 말아요.”성씨 그룹의 대표 자리에 앉은 성기현도 사실은 아주 대단한 사람이었다.유청하는 겉으로는 남편이 생각이 많다고 투덜거렸지만 속으로는 그를 무척이나 존경했다.성기현이 아내의 이마를 톡 쳤다.“이상한 생각을 한 건 당신이에요. 그날 관성 호텔에서 전태윤 씨를 만났을 때 결혼반지를 바꿔 꼈더라고요. 아내분이 금반지를 싫어해서 다이아몬드 반지로 바꿨다면서 직접 설명까지 했어요. 전태윤 씨랑 한 테이블에서 식사했으니까 식사하는 내내 그 결혼반지를 봐서 눈에 익어요. 아까 예정이가 낀 결혼반지를 보고 어디서 봤더라 생각해보니까 전태윤 씨가 낀 결혼반지랑 커플인 것 같더라고요.”유청하는 멍하니 남편을 바라보다가 성기현의 이마와 자신
성기현도 그럴 가능성은 생각했었다. 하여 성소현이 하예정의 남편이 성이 전씨라고 얘기했을 때 전태윤일 거라고 전혀 생각지 않았다.전씨 가문의 역사가 깊다고는 하지만 위로 몇 세대 거슬러 올라가 보면 시골 출신이었다. 듣건대 조상들이 지내던 그 시골의 사람들이 전부 성이 전씨라고 한다.전태윤의 조상이 집안을 일으킨 후 마을 사람들 전체가 함께 부유해졌는지는 성기현도 알지 못했다.하지만 전씨 그룹의 본부와 계열사에 전씨 성을 가진 직원이 수두룩하다는 건 알고 있었다. 그들 대부분은 현재 갑부인 전씨 가문과 아무런 관계가 없고 그저 성만 같을 뿐이었다.“그래서 이따가 기회 봐서 예정이한테 남편 이름이 뭔지 몰래 물어보라고 부른 거예요. 엄마랑 소현이한테는 일단 얘기하지 말아요. 소현이가 아직 전태윤 씨에 대한 마음을 완전히 접지 못했잖아요. 그리고 엄마도 예정이네 자매를 금방 찾았으니까 얘기하지 않는 게 좋을 것 같아요. 만약 예정의 남편이 진짜 전태윤 씨라면 엄마가 어떤 반응을 할지 전혀 감도 잡히지 않아요. 엄마가 지금 두 조카를 도와주고 싶은 마음은 굴뚝 같겠지만 그래도 친딸인 소현이를 더 아낄 거예요.”“우리도 아무리 평등하게 대한다고 해도 정작 일이 닥치면 소현이 편을 들 거예요. 어쨌거나 소현이는 내 친여동생이고 예정이는 사촌 동생이니까. 게다가 가족이 된 지도 얼마 되지 않아 남매간의 감정도 깊지 않잖아요.”성기현이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소현이가 나한테 얘기했었는데 예정이가 남편 얘기를 꺼낼 때마다 이름을 얘기하지 않고 그냥 남편이라고만 부른대요. 그런데 마침 소현이도 다른 여자들 앞에서 전태윤 씨를 전 대표라고 부르지, 이름을 부르지 않아요. 그래서 내 생각은 둘이 서로 얘기하는 남자가 사실은 한 사람인데 정작 본인들은 모르고 있다는 거죠.”유청하는 어이가 없었다.“기현 씨, 왜 기현 씨가 예정 아가씨 남편분이 바로 전태윤 씨라고 확신하는 것 같죠? 예정 아가씨 절친이 김씨 가문 사모님의 조카예요. 김씨 가문의 상속자도 예정
“소현이가 겨우 전태윤 씨한테 대한 마음을 접으려고 하잖아요. 마음을 완전히 접고 전태윤 씨가 결혼했다는 사실을 담담하게 받아들일 때 그때 다시 얘기해요.”성기현이 한숨을 푹 내쉬었다.“만약 예정의 남편이 걔가 죽도록 사랑했던 남자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면 상황이 어떻게 번질지 생각조차 하기 싫어요. 우린 예정이랑 가깝지 않지만 소현이는 예정이랑 잘 어울리더라고요. 난 그래도 소현이 생각을 더 많이 해야죠.”“하지만 예정 아가씨가 기현 씨 사촌 동생이 됐으니 초고속 결혼한 남편은 기현 씨 매제예요. 만약 정말 전태윤 씨라면 언젠가는 예정 아가씨랑 우리 집에 인사하러 올 텐데... 설마 어머님을 계속 피해 다닐까요?”성기현과 그녀를 만나지 않는 건 그렇다 쳐도 웃어른인 이모님은 언젠가는 만나야 한다.“내가 저녁에 전태윤 씨를 만나서 어떻게 된 건지, 예정이한테 계속 숨길 생각인지 한번 물어볼게요. 예정이는 아마 전태윤 씨의 정체를 모를 거예요. 만약 알았더라면 절대 초고속 결혼을 하지 않았겠죠.”유청하가 귀띔했다.“예정 아가씨가 그러는데 남편이 출장 가서 며칠 있어야 돌아온다고 했어요. 기현 씨, 아니면 지금 전태윤 씨한테 전화해서 어디 있는지 물어볼까요? 만약 관성에 있다면 기현 씨가 괜한 생각한 거고 정말 출장 갔다면 예정 아가씨 남편이 맞을 가능성이 커요. 그나저나 예정 아가씨는 어떻게 초고속 결혼을 하게 됐대요? 소현 아가씨도 안 물어본 것 같더라고요.”성기현이 잠깐 생각하다가 말했다.“예정의 남편이 바로 전씨 가문 도련님 전태윤 씨라는 예감이 들어요. 전태윤 씨를 만난 그날 갑자기 통쾌하게 밥을 사줬잖아요. 그날 기분이 좋은 일도 있었겠지만 어쩌면 예정이가 내 사촌 동생이라는 걸 진작 알고 그랬을지도 몰라요. 사촌 오빠인 나한테 잘 보이려고 말이죠.”유청하가 말했다.“그럴 가능성 있어요. 지금 당장 내려가서 기회 봐서 예정 아가씨한테 몰래 물어볼게요.”“엄마랑 소현이한테 들키지 않게 조심해요. 사실이 확인됐다 하더라도 일단은 계속 숨
입이 가벼운 유청하가 물었다.“어머님, 전씨 가문도 우리랑 친분이 있는데 초대할까요?”그녀는 질문을 건네자마자 아차 싶어 시누이의 눈치를 힐끗 살피고는 자기 입을 톡 쳤다.“요 입이 방정이야 아주.”그러고는 하예정을 힐끗거렸다. 전씨 가문 얘기에도 하예정은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유청하가 속으로 중얼거렸다.‘예정 아가씨네 시댁이 정말 최고 재벌인 전씨 가문일까?’이경혜는 며느리에게 화를 내진 않았다.“우리가 초대장을 보내도 참석하지 않을 테니까 스스로 망신당할 일은 하지 않는 게 좋겠지?”전씨 가문의 어르신들은 그녀의 딸을 마음에 들어 하지 않았다.성소현이 전태윤을 수년간 짝사랑하고 공개적으로 대시까지 했지만 전씨 가문의 어르신들은 그 어떤 입장도 밝히지 않았다. 그 말인즉슨 전씨 가문이 성씨 가문과 사돈을 맺고 싶지 않아 한다는 뜻이다.이경혜는 전씨 가문의 태도로 인하여 조카를 찾은 기쁜 마음을 어지럽히고 싶지 않았다.성소현은 마음이 쓰라렸지만 겉으로는 티 내지 않았다.“저의 눈치를 볼 필요 없어요, 언니. 엄마가 정확히 얘기하지 않은 거예요. 우리랑 친분이 있는 자들을 전부 초대하라고 했잖아요. 전씨 가문도 우리랑 친분이 있긴 있죠.”“소현아, 엄마는 그 사람들을 초대할 생각이 없어.”이경혜가 딸의 손등을 토닥였다. 전씨 가문의 도련님들이 아무리 괜찮은 사람이라고 해도 두 가문의 불화가 생긴 지 꽤 오래되었다. 딸의 마음을 헤아리지 않는다고 해도, 딸이 전태윤을 사랑하지 않는다고 해도 두 집안은 서로 파티에 초대할 만큼 친한 사이가 아니었다.그녀가 살아 있는 동안에는 두 가문의 어색한 관계가 나아지진 않을 것 같다. 성기현과 전태윤도 화해할 기미가 없으니 다음 세대에서나 지켜봐야지.“사모님, 식사하세요.”한 도우미가 이경혜 뒤로 다가와 깍듯하게 말했다. 이경혜는 곧바로 하예정 자매에게 말했다.“예진 예정아, 일단 밥부터 먹자. 밥 다 먹고 좀 쉬다가 이모랑 쇼핑 가서 사고 싶은 거 다 사.”“이모, 저희는 살 거 없어요.”
하예정이 웃으며 대답했다.“시간 날 때마다 문자 보내긴 하는데 매일 연락하는 건 맞아요. 우리 사이가 음... 전보다는 많이 좋아졌어요.”전태윤과 싸운 사실을 언니에게도 숨겼는데 이모네 가족에게 얘기할 수는 없었다. 혹시라도 이모가 걱정하면 안 되니까.“감정은 키우는 거야. 이젠 혼인 신고한 지도 두석 달이 돼가니까 감정이 점점 깊어지는 것도 당연해.”성소현이 바짝 가까이 다가와 나지막이 물었다.“소정남 씨랑 효진 씨는 잘 돼가? 요즘 가장 궁금한 게 두 사람의 소식이야.”소정남은 전태윤이 가장 믿는 사람인데다가 정보 집안 출신이다. 그런 그가 심효진과 소개팅을 하다니.성소현은 이 소식을 연예부 기자에게 팔면 꽤 많은 돈을 벌 수 있을 거로 생각했다. 물론 그녀가 돈이 부족한 것도 아니고 심효진과 친구가 되었으니 절대 친구를 배신하는 일 따위는 없을 것이다.소정남이 공개적으로 열애를 밝히기 전까지는 성소현도 끝까지 비밀을 지킬 것이다. 혹시라도 기자들이 두 사람의 관계를 알게 되어 심효진을 졸졸 따라다닌다면 피해를 보는 건 심효진이니까.하예정은 전태윤에게 답장을 보낸 후 가볍게 웃었다.“이모가 내일 파티하겠다고 하시잖아요. 새언니더러 효진이한테 초대장을 보내라고 하고 기현 오빠더러 소정남 씨한테 초대장을 보내라고 해요. 두 사람 모두 파티에 오게 하면 되잖아요.”성소현의 두 눈이 빛이 날 정도로 반짝였다.“역시 네가 꼼꼼해. 안 그래도 효진 씨를 초대할 생각이었어. 효진 씨는 너의 가장 친한 친구이자 내가 새로 사귄 친구니까 초대하지 않으면 너무 미안할 것 같더라고. 문제는 소정남 씨가 올지 모르겠어.”어쨌거나 그는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전씨 그룹의 이사이니까.하예정이 입가에 미소를 지었다.“일단 기현 오빠더러 소정남 씨한테 얘기해보라고 해요. 효진이가 오면 소정남 씨도 올 거예요. 내일 파티는 저랑 언니를 사람들한테 소개해주는 자리라서 일 얘기는 안 할 거 아니에요. 그럼 소정남 씨도 소씨 가문 도련님의 신분으로 오면 되죠.”성
유청하가 궁금증 가득한 얼굴로 하예정에게 물었다. 하예정은 고개를 돌려 주변을 살핀 후 대답했다.“언니가 안 나오길 다행이네요. 그런데 뭐 이젠 주형인이랑 이혼했으니까 얘기해도 괜찮겠네요. 그때 주형인이랑 언니가 자주 싸웠었는데 그게 저 때문인 걸 알고 있었거든요. 그래서 초고속 결혼을 했어요.”하예정이 초고속 결혼을 택한 이유를 유청하에게 말하자 유청하가 고개를 끄덕였다.“그런 거였군요. 남편분의 할머니를 구해줬었다고 했죠? 할머니도 아가씨한테 보답할 겸 아가씨도 마음에 드니까 두 사람을 서로 소개해줬겠네요.”유청하는 전씨 어르신을 만날 기회가 거의 없었다. 그런데 남편에게 듣기로 어르신은 온화하고 다정한 분이라 다가가기 쉽다고 했다. 그리고 신분을 숨기고 여기저기 다니는 걸 가장 좋아한다고 한다.하지만 유청하는 단 한 가지 이해되지 않는 점이 있었다. 전씨 어르신 같은 엄청난 분이 하예정의 도움을 받다니... 뭔가 더 숨겨진 사실이 있는 듯싶다.전씨 어르신이 먼저 하예정을 찍은 후 일부러 함정까지 파서 전태윤의 아내로 만든 게 아닐까?“남편분이 전씨 그룹에 다닌다고 했죠?”“네.”“남편분도 성이 전씨예요?”하예정은 고개를 돌려 유청하를 힐끗 보고는 피식 웃었다.“언니, 설마 저의 남편이 최고 재벌가인 전씨 가문의 도련님이라고 생각하는 건 아니죠? 저의 남편은 그저 일반 직장인이에요. 하지만 능력이 뛰어나서 전씨 그룹의 대표 자리까지 앉은 거예요. 사실 전씨 그룹에 대표들이 참 많대요. 저의 남편은 회사에서 전씨 도련님의 얼굴도 보기 어렵다고 했어요. 일을 순조롭게 할 수 있었던 건... 음, 아무튼 머리가 아주 비상해요.”사실은 소정남의 덕이 컸다고 얘기하고 싶었다. 전태윤과 소정남이 이 얘기를 들었더라면 참으로 어이가 없었을 것이다.대체 누가 누구의 덕을 보는데.“남편분이 마침 전씨 그룹에 다닌다고 하니까 저도 모르게 그런 생각이 들더라고요.”유청하가 물었다.“남편분 성함이 어떻게 돼요?”“전태윤요.”“전태윤?”“네. 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