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예정에게 ‘삐돌이’라는 별명이 붙여진 전태윤은 사무실에서 몇 시간이나 자고 나서야 깨어났다. 눈을 떠보니 두꺼운 외투를 덮고 있었는데 누군가 덮어준 모양이다. 그는 외투를 옆으로 밀어내고는 시간을 확인했다.“벌써 밤 9시네.”전태윤이 나지막이 중얼거렸다. 이렇게나 오래 잘 줄은 생각지 못했다.테이블 위에 보온 도시락이 놓여있었는데 계열사 대표가 사 온 저녁이었다. 아무래도 그가 너무 곤히 자서 깨우지 않고 그냥 놓고 간 모양이다. 그가 덮고 있었던 두꺼운 외투도 계열사 대표가 덮어준 듯싶다.전태윤은 자세를 고쳐잡고 몇 분 동안 멍하니 앉아있다가 몸을 일으켰다. 정신을 차리려고 먼저 화장실에 가서 찬물로 세수했다. 그러고는 몇 분이 지나서야 화장실에서 나왔다.테이블 앞에 다시 앉은 그는 보온 도시락 뚜껑을 열었다. 밥과 반찬에 아직도 따뜻한 온기가 남아있었다.그는 식사하며 휴대 전화를 꺼내 카카오톡을 확인했다. 임원들이 보낸 일에 관한 문자 말고도 남동생들이 보낸 문자도 있었다.모든 문자를 확인한 전태윤의 눈빛이 어두웠다. 하예정의 문자가 단 한 통도 없었기 때문이다. 숙희 아주머니는 분명 하예정의 화가 풀렸다고 했었는데.지금 이 시각 가게에서 공예품을 만들 거나 언니네 집에서 이야기꽃을 피우고 있을 거로 생각했다.‘내가 누군지도 기억 못 하는 건 아니겠지...’전태윤은 가슴이 답답하기만 했다.카카오톡을 나오자 다른 메시지가 와 있어 무심결에 클릭했는데 숙희 아주머니가 보낸 문자였다. 숙희 아주머니가 오후에 보냈지만 너무 깊이 자는 바람에 알림 소리를 듣지 못했다.「도련님, 사모님이랑 효진 씨 저녁에 술 마시러 술집 간대요.」짧은 문자 한 줄이었지만 전태윤의 낯빛이 확 굳어졌다. 그는 식사도 채 하지 않고 바로 숙희 아주머니에게 전화를 걸었다. 통화연결음이 한참 울리고 나서야 숙희 아주머니가 전화를 받았다.“도련님, 밖에 쓰레기를 버리고 오겠다고 핑계 대고 나와서 도련님 전화를 받았어요.”숙희 아주머니가 말을 이었다.“도련님, 왜
말문이 막힌 소정남은 머리가 지끈거렸다.“두 사람 대체 어떻게 된 거야? 사이도 점점 가까워지면서 애정행각도 서슴지 않더니 갑자기 싸웠다고? 어쩐지 형수님이 술집에 간다더라니, 다 너 때문이었구나.”전태윤이 말했다.“일단 두 사람 지금 어느 술집인지, 언제 갔는지, 취했는지부터 알아봐 줘. 알아내면 바로 나한테 연락하고.”“알았어. 지금 당장 알아볼게.”소정남은 전화를 끊자마자 두 사람이 어느 술집으로 갔는지 알아보라고 부하들에게 분부했다.소정남의 연락을 기다리는 동시에 전태윤은 전용기 스태프에게 연락하여 분부했다.“지금 당장 돌아갈 준비를 해요. 십여 분 후에 관성으로 돌아갈 겁니다.”출장 갈 때 공항까지 바래다주겠다는 하예정을 거절한 건 먼저 회사로 가봐야 하는 이유도 있었지만 또 하나는 티켓을 끊지 않아서였다. 왜냐하면 늘 전용기를 타고 출장을 다녔기 때문이다.전태윤의 연락을 받은 스태프들은 재빨리 준비에 돌입했다. 전태윤은 모든 준비를 마친 후 하예정에게 전화하기 시작했다.그 시각 하예정은 심효진, 그리고 심효진의 남동생 심서준과 함께 술집에서 한창 신나게 즐기고 있었다.술을 마실 수 없었던 심서준은 옆에 가만히 앉아 연거푸 술을 들이켜는 두 누나를 바라만 보았다. 특히 예정 누나는 물을 마시듯 술을 벌컥벌컥 마셨다.심서준이 참다못해 하예정을 말렸다.“예정 누나, 너무 많이 마시지 마. 얼굴이 빨갛게 된 것 좀 봐. 누나 주량이 별로지? 더 마셨다간 취해.”그러자 하예정이 히죽 웃었다.“술에 취하면 온갖 걱정을 잊을 수 있잖아. 오늘 밤 제대로 취해서 전태윤이 누군지조차 잊고 싶어.”심서준이 심효진을 쳐다보자 그녀는 동생의 어깨를 토닥였다.“예정이가 기분이 별로 안 좋아. 누나도 오늘 예정이랑 끝까지 달릴 거니까 넌 그냥 옆에서 보기만 해. 말릴 필요 없어. 내일 숙취 때문에 머리가 깨질 듯이 아파도 그건 얘 일이야. 아무도 얘한테 술로 기분 풀라고 한 사람 없어.”심서준은 말을 잇지 못했다. 하예정이 절친의 어깨에 손을
전태윤이 더는 걸지 않고 포기하려던 그때 다행히 소정남의 연락을 받았다.“정남아, 두 사람 지금 어느 술집이래?”전태윤이 전화를 받자마자 다급하게 물었다. 다급한 그의 목소리에 소정남이 기회를 놓칠세라 바로 장난쳤다.“아주 급해 죽겠지? 당장이라도 돌아오고 싶지?”“소정남!”지금 이 상황에 장난을 치다니.전태윤은 너무 조급한 나머지 당장 하늘을 날아서라도 관성에 돌아가고 싶은 심정이었다. 소정남이 헤벌쭉 웃으며 말했다.“아주 흔치 않은 일이잖아. 형수님 말고는 널 이토록 조급하게 할 사람이 없어.”전태윤은 늘 끄트머리에 가서야 조금이나마 표정 변화가 있었다. 그가 조급해하며 발을 동동 구르는 모습을 볼 수 있는 기회가 정말 거의 없다.“지금 지누 바에 있고 30분 전에 도착했어. 효진 씨 말고도 효진 씨 친남동생도 같이 있어.”그의 말에 전태윤의 얼굴이 일그러졌다.“효진 씨 동생 몇 살이야?”‘효진 씨한테 뭔 동생이 이렇게나 많아?’사촌 동생인 김진우는 심효진과 하예정이 절친인 바람에 하예정을 알게 되었고 사랑하기까지 했다. 전태윤은 연적이 또 한 명 나타날까 걱정되었다.“효진 씨보다 서너 살 정도 어릴걸? 아무튼 성인이야. 효진 씨 남동생이 몇 살인 건 알아서 뭐 하게? 그건 내가 알아야 하는 거 아니야? 미래 처남이 될지도 모르는 동생한테 잘해줘야 하니까. 아, 알았다. 김진우 때문에 그러는 거지? 그래서 효진 씨 동생이라면 이렇게 예민하게 구는 거지?”전태윤이 퉁명스럽게 말했다.“넌 연적이 없어서 내 기분 몰라.”소정남은 어이가 없었다.“무슨 말을 그렇게 해...”그는 어떻게 말을 이어야 할지 몰라 망설였다.“지누 바 사장이 소지훈 씨 아니야?”술집은 여러 사람들이 함께 섞여 있는 곳이라 복잡했지만 소식을 빨리 알아내기엔 그만한 데가 없었다.“응. 형 명의로 된 거라서 형수님이 거기서 술을 마시고 있다는 걸 더 빨리 알아냈어. 내가 대충 계산해봤는데 지금쯤 아마 대여섯 잔은 마셨을 거야. 형수님 주량은 어때? 많이
“아직은 너무 멀쩡해서 두 잔 더 마셔도 안 취해.”“그만 마셔. 그냥 두어 잔 정도 마시러 왔잖아. 많이 마시면 몸 상해.”하예정이 그녀를 그윽하게 쳐다보았다. 심효진은 잠깐 침묵하다가 자리에서 일어서며 동생에게 하예정을 잘 지켜보라고 했다.잠시 후 심효진은 펜과 종이 몇 장, 그리고 술 한잔을 들고 돌아왔다.“이 잔만 마시고 그만 마셔. 그림이나 그리게 종이 몇 장 가져왔어.”“누나, 예정이 누나 취했는데 그림 그릴 수 있어?”하예정은 자신이 멀쩡하다고 얘기했지만 사실은 이미 취한 상태였다.심효진은 남동생의 질문에 대답하지 않고 펜과 종이를 하예정에게 건넸다. 펜과 종이를 받아든 하예정은 술도 마시지 않고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그녀는 먼저 새알 하나를 그렸다.심서준은 아무 말 없이 멍하니 쳐다보았다.취하고 나서 새알을 그리는 것쯤은 쉬웠다. 그도 쉽게 그릴 수 있을 것 같았다.하예정은 새알 하나를 그린 후 계속하여 호수를 그렸다. 호수 면에 특별히 동그라미를 많이 그렸는데 호수 바닥까지 동그라미가 가득했다. 마지막에는 호수 앞의 빈자리에 사람과 개를 그렸다.그 모습에 심서준은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누나, 예정이 누나 술만 마시면 그림 그리기 좋아해?”심효진이 고개를 끄덕였다.“욕하고 싶지만 욕이 안 나올 때 펜과 종이를 주면 그림으로 풀거든. 한참 그리고 나면 기분이 풀려.”심서준은 말문이 막혀버렸다.‘정말 별난 사람이 다 있어.’심효진이 하예정을 이해하길래 망정이지, 그라면 절대 이해하지 못했을 것이다.하예정은 모든 정신을 집중하여 인물을 그렸다. 심효진은 굳이 가까이 가서 보지 않아도 전태윤을 그리고 있다는 걸 알았다. 심서준은 호기심 가득한 얼굴로 하예정의 그림을 빤히 들여다보았다.전태윤의 상반신을 그린 하예정은 빤히 살펴보다가 심장 쪽에 심장 하나를 그렸다. 하지만 너무도 작아 잘 보이지 않았다.그녀는 펜을 내려놓고 새 술잔을 들고 마시며 자신의 작품을 감상했다. 이번에 드디어 비슷하게 그린 것 같다. 전에는
“효진 씨 맞으시죠?”문득 누군가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심효진 남매는 나란히 소리가 나는 방향으로 고개를 돌렸다.하예정은 소정남을 못 본 듯이 덤덤하게 술을 마셨다.“정남 씨?”여기서 소정남을 마주치다니, 심효진은 매우 의외였다.소정남은 얼른 상황을 설명했다.“주말에 몇몇 친구들이랑 함께 놀러 나왔는데 여기서 효진 씨를 다 보네요. 여기 앉아도 되죠?”심효진이 웃으며 대답했다.“이미 앉으셨잖아요. 친구분들은 아직인가 봐요?”그녀의 눈앞엔 소정남 한 명뿐이었다.소정남은 자리에 앉아 하예정에게도 인사했지만 그녀는 머리만 살짝 끄덕였다.“친구들은 다 가고 없어요.”소정남은 그림을 보며 심효진에게 물었다.“이거 누가 그렸어요? 제가 한 번 봐도 돼요?”심효진이 하예정을 힐긋 바라보자 소정남은 그림의 주인공이 그녀란 걸 바로 알아챘다. 하예정은 계속 술을 마시며 아무 말도 없었고 이에 소정남은 그녀가 반대하는 줄 알고 그림을 가져오지 않았다. 하지만 곁눈질로도 그림을 똑똑히 볼 수 있었다.그림 속의 사람은 바로 전태윤이었다.‘사모님께서 그림 솜씨가 탁월하네. 태윤이랑 너무 똑같게 그렸잖아. 다만 심장을 왜 일부러... 저렇게 작게 그렸지? 너무 선명한데... 태윤이가 속 좁은 남자란 걸 티 내려고 그런 거야? 태윤의 뒤엔 호수야 아니면 강이야? 수면 위에 한가득한 동그라미는 또 뭐지? 그리고 알까지 하나 있어.’소정남은 그림과 하예정을 번갈아 가며 보았다. 그녀의 얼굴이 빨갛게 달아올랐고 눈빛도 흐려진 걸 보아 취한 게 분명했다.“예정 씨, 이 그림 예정 씨가 그렸죠? 진짜 너무 잘 그렸네요!”‘그러니까 이 그림의 의미는... 태윤이가 물에 떠 있는 알이란 말인가?! 아니, 아니야!’소정남은 다시 그림을 더 자세히 들여다보았다.‘태윤이는 호수에 떠 있는 알? 강에 떠 있는 알? 여러 개의 동그란 알?’소정남은 한참을 들여다보며 생각하다가 드디어 알게 됐다.전태윤의 마음이 저 알처럼 작아서 속이 좁고 널브러진 알들의 개수만큼
“예정아.”심효진이 얼른 그녀를 부축했다.“나 아직 더 마실 수 있어...”하예정은 그녀에게 기댄 채 계속 더 마실 수 있다고 중얼거렸다.소정남은 그런 하예정의 모습을 바라보며 생각했다.‘내가 휴대폰으로 영상 촬영하는 건 실례겠지. 뭐 그래도 이 가게 CCTV가 있으니 나중에 영상 복사해서 태윤이 보여주면 돼. 그러게 왜 모처럼 마음에 쏙 드는 아내를 얻었는데 잘 아껴주지는 못할망정 툭하면 부부싸움에 냉전까지 해대. 나까지 덩달아 고생하잖아.’“예정아, 너 취했어. 집에 데려다줄게.”심효진이 자리에서 일어서며 미안한 표정으로 소정남에게 말했다.“정남 씨, 예정이가 취해서 저 먼저 얘 집까지 바래다줄게요.”“효진 씨도 술 마셔서 운전 못 하잖아요. 내가 안 마셨으니 집까지 데려다줄게요.”소정남은 일부러 심효진을 위해 여기까지 온 거라 술을 입에 대지도 않았다. 그의 목적은 단 하나, 심효진을 집에 바래다줄 기회를 얻는 것이다.“고맙지만 마음만 받을게요. 제 동생이 운전할 줄 알아요. 우리 둘 집까지 데려다주려고 일부러 동생도 함께 나왔어요. 서준이 술 안 마셨어요. 알코올 알레르기가 있어서 술을 못 마시거든요.”소정남은 말문이 막혔다.심효진을 집까지 바래다주며 호감이라도 얻으려고 여기까지 왔는데 뜻밖에 심서준이란 캐릭터가 나올 줄이야. 술도 못 마실뿐더러 두 여자를 집까지 바래다주기 위해 함께 지누 바에 왔다고 한다.소정남은 시계를 들여다보며 생각했다.‘태윤이가 전용기 타고 오면 거의 다 도착했겠지?’“예정아, 우리 그만 가자.”심효진이 하예정을 부축했다.하예정은 계속 혼잣말로 구시렁댔다.“나 더 마실래... 아직 안 취했어... 이 술... 가짜지?”소정남은 어이가 없었다.‘우리 형이 운영하는 술집인데 가짜 술을 팔 리가 있겠어?’다행히 하예정이니까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해도 책임을 추궁하지 않았다. 만에 하나 딴사람이 지누 바에서 가짜 술을 판매한다고 입을 나불거렸다면 바에서 손님에게 끝까지 물고 늘어질 것이다.“너
전태윤은 그림을 꼭 쥔 채 아무 말도 없었지만 소정남의 흥미진진한 표정을 보아 그 그림이 본인과 연관이 있다고 대충 짐작이 갔다.전태윤은 전에 하예정의 그림을 본 적이 있다.그녀가 매일 공예품을 만들다 보니 샘플을 자주 그렸다. 그녀의 그림 솜씨는 아주 뛰어났다.“태윤 씨...”하예정은 전태윤의 품에 기대 계속 혼잣말을 중얼거렸다.전태윤은 그녀를 조심스럽게 차에 싣고 좌석에 걸터앉히고 나서야 옆에 나란히 앉았다. 그녀는 당장이라도 옆으로 기울 것 같았다. 전태윤은 얼른 그녀를 본인 쪽에 기대게 했다.“그래, 나야.”그는 하예정의 귓가에 나지막이 속삭였다.“예정아, 나 여기 있어.”하예정은 인사불성이었다.만취한 상태라 눈도 제대로 뜨지 못했고 전태윤의 품에 안긴 채 쿨쿨 자다가도 혼잣말을 구시렁댔다. 가끔은 정확한 발음으로 전태윤을 욕했고 또 가끔은 무슨 말을 하는지 알아들을 수 없었다.심효진 남매는 술집 문 앞에 서서 차가 멀어져가는 모습을 지켜봤다.“누나, 방금 그 남자 누구야? 너무 무서워 보이던데!”심서준이 누나에게 물었다.“너희 예정 누나의 남편이야.”심서준이 말을 이었다.“그러니까... 그 초고속 결혼한 분?”심효진은 한심하다는 눈길로 동생을 쳐다봤다. 하예정에게 초고속 결혼한 그 남자 말고 또 무슨 남자가 더 있단 말인가?심서준은 자신을 한심하게 여기는 누나의 마음은 전혀 눈치채지 못한 채 옆에서 누나를 뚫어지라 쳐다보는 소정남을 발견하곤 얼른 귓속말로 속삭였다.“누나, 내가 볼 때 소정남 씨가 예정 누나 남편분보다 훨씬 더 괜찮은 것 같아. 사람이 훈훈하잖아. 예정 누나 남편은 너무 무섭게 생겼어. 그 표정과 눈빛이 너무 살벌해. 그냥 왠지, 꼭 어디서 본 듯한 얼굴인데? 왜 이렇게 낯익지?”“예정이가 남편 그리는 거 봤잖아!”심서준이 코를 쓰다듬으며 헤벌쭉 웃었다.“그러네, 예정 누나가 그린 남자가 바로 남편분이었어. 어쩐지 눈에 익더라니.”심효진은 더는 남동생과 대화를 이어가고 싶지 않아 소정남에게 시선
심서준은 소정남에 대한 첫인상도 좋은데 사적으로 연락까지 해대면 친누나를 팔아버릴지도 모른다.휴대폰을 꺼내는 소정남의 잘생긴 얼굴에 미소가 번졌다.“역시 서준 씨가 생각이 깊어요. 우리 서로 카톡 추가해요. 서준 씨 처음 봤을 때부터 옛친구 만난 것처럼 친근하더라니, 나중에 시간 되면 제가 밥 한 끼 살게요.”심서준은 싱글벙글 웃으며 휴대폰을 꺼내 그와 카카오톡을 서로 추가했다.“정남 씨, 그럼 우린 이만 가볼게요.”“잘 가요, 나중에 제가 밥 한 끼 살게요.”“그럼 저야 영광이죠.”심서준은 헤벌쭉 웃다가 누나의 따끔한 시선에 다시 코를 어루만지며 황급히 차에 올라탔다.소정남은 제자리에 서서 두 남매가 떠나가는 모습을 지켜보았다.한참 운전해나간 후 심효진이 동생에게 말했다.“너 정남 씨가 무슨 신분인지 알아? 어디서 친한 척이야? 카톡을 왜 추가하냐고?”“무슨 신분인지 그게 뭐가 중요해? 누나랑 소개팅했고 누나한테 관심이 있어 보이니 난 그걸로 됐어.”심효진의 낯빛이 확 어두워졌다.“내가 하루빨리 집에서 나갔으면 좋겠니?”“누나, 난 그렇게 훌륭한 재력가가 아니야. 내 월급 150만 원으로 누나를 평생 길러줄 순 없어. 그러니까 누나도 여생을 책임져줄 반쪽을 찾길 바라. 그럼 나도 부담이 조금 덜해지잖아.”동생이 운전만 안 했어도 심효진은 그를 발로 힘껏 걷어찼을 것이다.“야 이 자식아, 네가 날 길러줘? 내 월급이 너보다 훨씬 높아.”“난 엄마랑 얘기했어. 만약 누나가 시집 못 가면 내가 평생 책임질 테니까 엄마랑 고모더러 누나 그만 다그치라고 했단 말이야. 나도 부담이 너무 커.”심효진은 감격스럽기도 하고 우습기도 했다.“우리 집에서 세를 준 집과 가게가 얼만데 나 하나 못 키울까 봐?”“그건 엄마, 아빠의 자산이지 내 게 아니잖아. 다만 이제 재산 나눌 때 엄마, 아빠더러 누나를 좀 더 많이 나눠주라고 할게. 늙어빠진 시누이가 돼도 가장 돈 많은 시누이가 될 수 있도록 해줄게.”심효진은 말을 잇지 못했다.“누나, 정
정윤하는 흔쾌히 대답했다.“좋아요. 우리 엄마한테 저녁에 밥 좀 더 하시라고 부탁할게요. 아저씨가 우리 엄마가 하신 요리를 좋아하신다는 소식을 들으면 우리 엄마가 매우 기뻐하실 거예요.”소지훈이 웃으며 말했다.“아주머니가 만든 요리들이 정말 맛있어요.”“오늘 저녁에 많이 드세요. 아저씨, 저 먼저 운동 좀 하고 이따가 공항으로 마중하러 갈게요. 저녁에 봐요.”“그래요. 저도 이제 비행 모드로 전환해야 해요. 저녁에 봐요.”소지훈은 작별 인사를 하면서도 통화를 끊는 것을 매우 아쉬워했다. 그는 정윤하 쪽에서 전화를 끊은 후에야 휴대전화를 귓가에서 뗐다.소지훈의 휴대전화 배경 화면 사진은 정윤하의 사진 이였다. 정윤하가 전태윤 부부의 결혼식에 참석했을 때 소지훈은 정윤하의 사진을 몇 장 찍어 그녀에게 보내주면서 자신의 휴대전화에도 보관해 두었다. 그리고 정윤하의 사진을 그의 휴대전화 배경 화면 사진으로 설정했다.휴대전화를 켜면 정윤하를 바로 볼 수 있었다.정윤하의 안색은 환했고 미소가 밝고 청춘의 활력이 넘쳐 소지훈은 그녀를 보면 볼수록 더 좋아졌다.비행기가 관성을 떠나 연성 공항에 착륙하기까지 이미 몇 시간이나 흘렀다.비행기가 안전하게 착륙하자 소지훈은 이내 휴대전화의 비행모드를 정상상태로 돌려놓았다.그러자 그의 휴대전화에는 끊임없이 메시지가 들어오고 있었다. 정윤하가 소지훈에게 자신이 공항 출입구에서 기다리고 있다고 메시지를 보냈던 것이다.소지훈은 정윤하에게 전화를 걸었다.정윤하가 바로 받았다.“아저씨, 도착했죠? 저도 방금 도착해서 공항 출구에서 기다리고 있어요. 제가 큰 종이에 글씨로 이름을 적어놓았어요. 아저씨가 나오시면 아저씨 성함이 한눈에 보이실 거예요.”소지훈이 웃으면서 대답했다.“알았어요. 지금 비행기에서 내릴 준비를 하고 있어요. 캐리어를 가지러 갔다가 금방 나갈게요.”“괜찮아요. 기다릴게요. 뭐라도 좀 드셨어요? 집에 가는 길에 드실 간식 좀 사드릴게요. 집으로 가는 길에 좀 드세요. 공항은 우리 집에서 좀 멀거
전태윤은 피식 웃었다.“우리 소 대표님도 이렇게 친근하게 느껴질 줄은 몰랐네요.”“제가 대단한 사람도 아닌데요. 뭘.”전태윤은 크게 웃으며 말을 이었다.“네네, 소 대표님은 높은 분이 아니십니다. 제 신분으로도 소 대표님을 만나고 싶어도 줄을 서야 하는데. 저와 정남이가 절친이 아니었다면 아마 돈을 많이 내놓는다고 해도 소 대표님을 만나지 못할걸요.”소지훈이 말했다.“제가 너무 바빠서 그래요. 전 대표님도 아시다시피 우리와 같은 지위에 있는 사람들은 바쁘잖아요.”“제가 간단하게 말씀드릴 수 있는 일이 아니라서 그래요. 그럼 일단 연성에 가셔서 윤하 씨를 만나세요. 제가 먼저 정남에게 연락할게요.”소지훈이 대답했다.“무슨 일이 있으시면 정남이한테 말씀하세요. 두 분이 친구라서 말하기 더 편할 거에요. 그리고 하늘이 무너지지 않는 한 저한테 연락하지 마세요.”처음 사랑을 맛본 소지훈은 한창 뜨거운 열정으로 정윤하를 따르고 있었다.게다가 소지훈 부모님도 매일 그에게 결혼 재촉을 했다. 정윤하가 다른 남자들이 가로채 갈까 봐 늘 소지훈더러 연성으로 가서 정윤하에게 구애하라고 재촉하셨다.정윤하는 소지훈의 운명적인 여신이었다. 그가 정상적인 남자가 될 수 있을지는 모두 정윤하에게 달려 있었기에 정윤하를 가볍게 여겨서는 안 되었다.소지훈의 부모는 너무 급한 나머지 소지훈이 정윤하에게 고백하지 않았다고 투덜거리며 아들 대신 정윤하에게 구애하고 싶었다.그 무엇도 두려워하지 않던 소지훈은 정윤하를 만난 뒤로 급하게 고백하면 그녀가 놀라게 할까 봐 두려웠다. 그러나 두 사람이 알게 된 시간이 아직 짧기에 좀 더 익숙해진 뒤로 고백하려고 했다.정이 깊어지면 모든 일이 쉽게 풀리기 마련이다.소지훈은 이번에 연성에 가서 기회를 보면서 정윤하에게 고백하려 했고 또 정씨 가족들 앞에서 잘 보이고 싶었다.소지훈이 가장 걱정하는 것은 자신이 정윤하보다 10살 많은 나이가 많다는 점이다. 만약 세는 나이로 계산하면 11살이나 더 많았다.“알겠어요. 알겠어요. 하
전태윤이 말했다.“모든 이 대표님은 실력이 훌륭하고 충실한 특별 비서를 두었기 때문에 분명히 많은 것을 알고 있을 거야. 만약 그 특별 비서가 살아있다면 찾아서 현임 이 대표님의 죄를 밝힐 수 있을 텐데. 만약 그 틀별 비서도 죽었다면 이 일은 정말 조사하기 어려울 거야. 40~50년이나 지났으니까. 이따가 소 대표님께 전화해서 전임 이 대표님의 비서가 누구인지, 그 사람이 아직 살아있는지, 살아있다면 어디에 있는지 알아봐 달라고 부탁해볼게.”소씨 가문도 증거를 수집하기 어려울 것이다.전호영이 말을 이었다.“그건 내가 알아볼 수 있어. 내가 고진호 씨를 조사해 보는 게 더 편리할 거야.”사실 이씨 가문의 어르신들을 찾아가서 물어보면 금방 알 수 있었겠지만, 그들을 찾아가면 이은화가 눈치채기 쉬웠다.어쩌면 전임 이 대표의 비서가 죽지 않았을 수도 있었고, 현재 이은화도 그 비서를 찾고 있을 수도 있었다.“그래. 그럼 소식이 있으면 나한테 알려줘.”“알았어. 둘째 형이 혼인 신고를 했다니, 부러워 죽겠어. 나와 이진 형이 동시에 할머니께서 주신 사진을 받았는데 이진이 형은 혼인 신고까지 했는데 난 아직도 고현 씨 뒤를 쫓아다니고 있다니. 휴.”진지한 이야기를 마친 전호영은 전태윤과 잡담을 나누기 시작했다. 어쨌든 전호영과 전태윤 모두 할일도 없이 한가하기 때문에 두 사람은 수다를 떨었다.전태윤이 말을 이었다.“누가 반년 동안이나 아무 짓도 하지 말라고 했어? 그러니까 이진이 보다 늦지. 내가 보기엔 고현 씨도 너에게 마음이 있는 것 같던데, 너도 얼른 더 노력해서 내년에 결혼해야지. 이런 일은 나한테 말하지 말고 네 일은 네가 알아서 해. 난 좀 쉬어야겠어.”전태윤은 전호영의 하소연이 듣기 싫었는지 이내 통화를 끊었다.애초에 전호영은 고현이 남자같이 생겼다고 무척 싫어했기 때문에 일부러 움직이지 않았다. 그러다가 강성으로 가서 고현의 여자 신분을 폭로하려고 했다.전태윤이 전화를 끊어도 전호영은 화를 내지 않고 혼자 중얼거렸다.“자기만 행
“형, 통화하기 편해?”전호영은 고현을 호텔 밖으로 배웅하고 그의 사무실로 돌아온 뒤로 전태윤에게 전화를 걸었다.전태윤이 말을 이었다.“얼른 말해. 무슨 일인지.”전호영이 웃으며 대답했다.“내가 형한테 보낸 사진과 동영상은 이 대표님 남편이 바람을 피운 증거들이야.”전태윤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전호영이 계속해서 말하기를 기다리고 있었다.“이 대표님의 남편 정군호 씨인데 젊었을 때는 멋있었는데 재주가 없어서 이 대표님 남편으로 되었거든. 이씨 가문에서는 사장님이라고 불리웠지만 사실 존중 받지 못하고 아내에게 의지해 살아야 했어. 이 대표님도 남편을 엄격하게 관리했기에 매달 생활비를 주지 않고 매일 용돈 10만 정도만 주었어.”“이전에 바람을 피우려다가 이은화에게 혼이 난 뒤로 감히 바람을 피우고 싶어도 피우지 못했어. 이번에 이 대표님이 관성에 가서 형 결혼식에 참석한 뒤로 관성에 보름이나 머물게 되었는데 정군호 씨가 그 틈을 타 바람을 피울 기회를 얻었던 거야. 이 대표님이 아신다면 분명 한바탕 소란을 피울 거야.”“요즘 이씨 가문도 난장판이야. 이씨 가문의 아들들이 밖에서 내연녀를 두었는데 윤미 씨가 그 사실들을 폭로하는 바람에 지금 아들과 며느리들이 한창 떠들썩하게 지내고 있거든. 만약 이 대표님과 정군호 씨 일까지 폭로된다면 더욱 혼란스러워질 거야. 형, 형수님께 말씀드려봐. 무슨 계획 있으신지. 지금 이 틈을 타서 폭로할 수도 있으니까.”전태윤이 나지막이 물었다.“정군호 씨가 이 대표님의 남편이란 말이지?”“그럼, 고현 씨가 알려줬거든. 난 정군호 씨가 누군지도 몰랐어. 고현 씨가 강성의 토박이라 이씨 가문과 접촉할 기회가 많아서 정군호 씨를 알아봤거든. 고현 씨가 연회에 참석할 때 정군호 씨와 이 대표님이 함께 온 것을 봤대. 틀림없을 거야.”“이씨 가문의 그 이윤미 씨도 좀 재미있는 사람 같아. 이윤미 씨도 어느정도 수단은 있지만 그래도 도덕은 있는 편이네. 아쉽게도 이 대표님과 같은 사람을 어머니로 두었지.”이윤미가 이씨
이윤미는 제법 잘 꾸민 정군호가 젊어 보이면서도 멋져 보인다고 생각했다. 이윤미는 정군호가 이은화보다 십여 세 어린 여자를 껴안은 여자 사진을 보더니 혼자 중얼거렸다.“영감님이 젊었을 때는 보기 드문 미남이었겠네. 지금도 나이가 들었지만 잘 차려입으니 너무 잘생겼군.”어쩐지 이은화가 매우 엄격하게 다스리더라니.밖에서 아들이 준 돈으로 여자와 바람을 핀 사실을 이은화가 알아버린다면 이은화는 어떤 느낌일까?같은 시간, 관성.관성 호텔에서 서원 리조트로 돌아온 하예정은 방으로 돌아가 잠을 잤다.하예정은 여전히 너무 졸렸다.전태윤은 그녀와 함께 방으로 돌아갔다.하예정이 방에 들어가 바로 침대에 올라가서 자려는 모습을 본 전태윤은 침대에 다가가 앉더니 웃으면서 말했다.“졸리면 차에서 자도 되는데. 집에 도착하면 내가 안아서 침대에 눕혀줄 텐데.”“겨우 버티며 왔어요. 여보, 나 좀 잘게. 당신도 잘래요? 안 자면 서재에 가서 책 좀 보시겠어요?”전태윤은 그녀를 부드럽게 바라보며 말했다.“얼른 자. 난 안 졸려.”하예정은 눈을 감더니 이내 잠이 들었다.하예정이 몇 분 만에 달콤하게 잠든 것을 보고 전태윤은 몸을 숙여 그녀의 이마에 뽀뽀해 주었다. 그리고 손을 하예정의 평평한 아랫배에 올려놓으며 그녀의 귓가에 부드럽게 속삭였다.“예정아, 수고했어.”전태윤은 그 자리에서 잠시 앉아 있다가 다시 몸을 일으켜 침에서 나와 작은 서재로 들어갔다. 책상 위에 책들이 놓여 있었다. 그 책들은 임신에 관한 지식 책이었다. 전태윤은 이미 다 읽었지만 여러 번 반복해서 읽었다.전태윤은 책 한 권의 내용을 모두 기억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하예정이 임신하기 전에 전태윤은 임신에 관한 지식에 관해 아무것도 몰랐다. 그러나 하예정이 임신한 후에는 비록 많은 사람이 전태윤을 도와 함께 하예정을 돌봤지만, 그는 여전히 직접 아내를 돌보고 싶었다.그리고 서점으로 달려가 임신과 관련된 책들을 많이 사고는 소정남을 찾아가 소정남이 산 책들이 자신이 산 책과 비슷한 것을
이윤정은 전호영을 언급할 때 마다 이를 악물면서 전호영이 그녀가 가장 좋아하는 고현을 빼앗아 갔다면서 욕설을 퍼부었다.“윤미 씨 아버지께서 바람난 일을 전호영 도련님께 맡겨보는 건 어떠세요? 전호영 도련님은 안팎으로 이씨 가문을 괴롭히거든요.”이씨 가문 사람들에게는 전호영이 적수나 다름없다.이씨 가문과 이경혜 자매의 관계, 그리고 이윤미가 관성 쪽에 대한 태도를 생각하던 방윤림은 속으로 한숨을 쉬었다. 방윤림은 아마도 이윤미가 관성 쪽의 사람들과 적수가 되지는 않을 것 같다고 여겼다.이윤미는 이씨 가문의 전임 가주의 죽음에 대한 진실을 조사하려고 했다.방윤림은 만약 전임 가주가 이은화의 손에 죽었다는 증거가 나오기만 하면 이윤미가 더는 이씨 가문의 후계자가 되지 않을 것이며 또한 이씨 가문을 떠나 그녀의 작은 세계로 돌아가리라 추측했다.아니, 그녀가 반드시 원래 생활로 돌아갈 것이라고 확신했다.이윤미는 겉으로 보이는 것처럼 그렇게 연약한 사람이 아니다.사실, 이씨 가문에 돌아가기 전에 이윤미는 이미 사업에 성공한 젊은 여자였다. 이윤미의 양부모가 늘 그녀의 피를 빨아들이려는 생각을 알고 있기 때문에 자신이 회사의 대표라는 사실을 계속 숨기고 있었다.이윤미는 사람들이 그녀를 연약하고 무능한 사람인 줄로 알게 하여 이씨 가문의 후계자가 이윤정일 수도 있으리라 추측하게 했다.그러나 이씨 가문의 철칙은 누구도 바꿀 수 없는 일이다.이윤정은 이씨 가문의 친딸이 아니기도 했고 또한 이윤정의 능력도 훌륭하지 못했다. 그러나 이윤정이 아무리 능력이 뛰어나더라도, 그녀가 이씨 가문의 친딸이 아닌 것이 밝혀진 이상 이씨 가문을 이어받을 자격을 잃게 될 것이다.이윤미가 말했다.“그럴 필요 없어요. 호영 씨도 이 사실을 알아 버린 이상 모른 체 하지 않을 거예요. 호영 씨는 원래 이씨 가문이 잘 되기를 원하지 않기 때문에 우리가 끼어들지 않아도 스스로 그 사실을 터뜨릴 겁니다.”“우리가 아무런 수를 쓰지 않아도 증거가 호영 씨의 손에 있는 이상 가만히 있지
아무튼, 그 여자가 어느 우두머리의 내연녀라는 것을 아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았다.정군호도 몰랐을 것이다. 아니면 그런 사람의 내연녀를 건드리지는 않았을 것이다.영상과 사진을 본 이윤미는 방윤림에게 메시지를 보냈다.[그냥 놔둬요. 제 카카오톡 기록도 삭제할 거예요. 제가 만약 저장해 두면 우리 어머니께서 돌아와서 저를 의심하게 되면서 제 휴대전화를 볼 수도 있으니까요.]방윤림이 회답했다.[제가 이미 저장했습니다. 윤미 씨는 식사하셨어요?”[먹고 있어요. 배달시켰거든요.]방윤림은 눈살을 찌푸렸다.[자꾸 배달 음식을 시키지 마세요. 회사에 식당도 있는데... 정 시간이 안 되면 미리 말씀해 주세요. 앞으로 제가 매일 요리를 해서 가져다드리겠습니다.]이윤미는 방윤림이 보낸 메시지를 보며 마음이 따뜻해졌다.이씨 가문에 돌아온 뒤로 이윤미는 고군분투했다. 아무도 그녀를 관심해 주지 않았다.이은화조차도 진정으로 이윤미와 한마음이 아니었다.이은화는 이윤미 혼자만의 어머니가 아니었고 오빠와 이윤정이 어머니이기도 했다.이윤정은 이은화의 앞에서 자연스럽게 애교를 부릴 수 있었지만, 이윤미는 그런 애교를 부릴 수 없었다.다행히도 방윤림이 이윤미의 곁으로 와주었다.이윤미는 방윤림이 그녀의 곁에 있는 의미를 깨달은 뒤로 그에 대한 믿음이 가족보다 더 깊어졌고 방윤림 또한 그녀를 많이 도와줬다.방윤림이 처음 이윤미의 곁에 왔을 때 이윤미에게 앞으로 누구든 이윤미의 곁은 떠날 수 있겠지만, 방윤림만은 이윤미를 떠나지 않겠다고 말을 한 적이 있었다. 방윤림이 이윤미 곁으로 파견된 그 순간부터 그는 죽지 않는 한 이윤미에게 충성하면서 떠나지 않겠다고 맹세했다.만약 방윤림이 죽는다고 해도 누군가가 재빨리 그를 대신할 것이기 때문에 이윤미의 곁에는 늘 충성을 다 하는 심복이 따라다닐 것이다.방윤림은 모든 것을 할 줄 아는 진정한 능력자였다.물론 요리 실력도 훌륭하기 때문에 그가 한 요리는 매우 맛있었다.이윤미는 타자속도가 너무 늦다고 느껴 음성통화를 걸었다.
고현은 전호영의 옷을 잡아당겼다.전호영은 그녀를 따라 걸으며 말을 했다.“이 대표님도 언제쯤이면 돌아오실지... 정말 이씨 가문의 이 재미있는 연극을 보고 싶네요.”고현은 전호영을 힐끗 쳐다보더니 말을 이었다.“설령 이 대표님이 남편이 밖에서 바람피우는 장면을 목격하게 되더라고 밖에서 소란을 피우지 않고 정군호 씨를 데리고 가서 문을 닫고 난리 칠 거예요. 호영 씨가 보고 싶어도 볼 수 없을 거예요.”전호영이 한참을 생각해 보더니 말을 건넸다.“이윤미 씨가 있잖아요. 이윤미 씨가 이씨 가문 겉면의 평화를 깨뜨렸는데 윤미 씨의 아버지 스캔들을 숨길 수 있겠어요? 저는 믿지 못하겠어요. 윤미 씨도 쉽지 않은 사람이에요. 이씨 가문을 난장판으로 만들어 기회를 보면서 이씨 가문의 도련님들을 한꺼번에 정리할 생각일 거예요.”“그 문제 덩이 사람들만 없다면 이씨 그룹에서 윤미 씨의 지위는 더 확고해질 수 있잖아요. 역시 이 대표님 친딸답네요. 자신의 가족들을 이토록 모질게 다루다니.”고현은 한참 말을 하지 않았다.그리고는 이윤미를 대신해 몇 마디 했다.“윤미 씨는 이씨 가문 여자들의 독기를 가지고 있지만 그래도 이 대표님과는 조금 달라요. 제가 장담하건대 윤미 씨는 윤미 씨의 오빠들을 최대한 이씨 그룹에서 쫓아내지 않을 거예요. 그들이 이씨 그룹에서 파벌을 만드는 것을 방지하고 사적으로 이득을 챙기는 것을 방지할 뿐이죠. 이 대표님처럼 가족들을 해치지는 않을 거예요.”전호영은 고현이 이윤미를 마음에 들어 하는 것을 보더니 더는 이윤미에 관한 나쁜 얘기를 이어가지 않고 화제를 바꾸었다.전호영 일행은 호텔에 들어간 뒤 전호영의 전용 엘리베이터를 타고 꼭대기 층으로 올라가 프레지던트 스위트룸으로 갔다. 그 안에는 뷔페가 있었기 때문에 고현은 그녀가 먹고 싶은 음식들을 다 먹을 수 있었다.전호영은 정군호가 내연녀와 무슨 짓을 하고 있는지 알고 싶어 몰래 사람을 시켜 정군호의 일거수일투족을 지켜보게 했다.그리고 정군호가 내연녀를 데리고 룸에 들어가면 그들
그 뒤로 이윤미가 그녀의 오빠들과 내연녀들이 함께 있는 것을 보고는 차마 몇 명의 형수님들이 속고 있는 모습을 보다 못해 형수님들에게 알려준 것이다. 그 후로 이윤미의 오빠들과 형수님들이 말다툼하기 시작했다.여자의 입장에서 보면 고현은 이윤미가 잘했다고 생각했다.바람을 피운 사람이 자기 오빠라고 감싸면서 오빠들을 도와 형수님들을 속이면 안 된다고 생각했다.입장을 바꾸어 놓고 생각해 보면 자기 남편이 바람피운 사실을 모든 사람이 다 알지만, 본인만 모른다면 얼마나 괴롭겠는가!이때 전호영이 검은 눈동자를 반짝이며 낮은 소리로 말했다.“정군호 씨가 그렇게 멍청하지 않을걸요. 이 대표님께서 돌아오신다면 정군호 씨는 틀림없이 나가서 바람피우지 않을 거란 말이에요. 하지만 우리가 이 대표님을 도와야 한다고 봐요. 못 봤으면 그만이지만 우리가 현장을 목격했잖아요. 이 대표님을 만나면 알려줘야 해요. 어쨌든 우리 형수님의 이모시기 때문에 우리 형수님의 친척이나 다름없죠. 안 그래요?”고현은 전호영을 꾸지람했다.“호영 씨도 정말 나쁘네요. 이씨 가문에서 난리가 났으면 좋겠죠? 그런데 저도 호영 씨를 지지할 거에요. 이러고 보니 저도 좋은 사람은 아닌가 봐요.”“아니에요. 우리는 모두 좋은 사람들이죠. 정군호 씨가 무슨 짓을 벌였는지 보세요. 정군호 씨가 잘못한 것을 우리가 바로잡아준 거죠. 이 대표님을 위한 것이지 모함하거나 억울하게 만든 것은 아니잖아요.”“저처럼 일편단심인 남자는 정군호 씨의 이런 행동이 너무 부끄러워요. 만약 집안의 아내가 싫으면 이혼할 것이지... 이혼하기는 싫고 또 밖에서 예쁜 여자들이랑 놀고는 싶고... 두 마리 토끼는 다 잡을 수 없는 법이죠. 하늘 아래 어떻게 그런 좋은 일이 있겠어요?”전호영은 정군호가 젊은 여자와 바람을 피우는 영상을 찍었다. 그리고 하루 호텔도 카메라가 있었기에 정군호가 내연녀를 껴안고 호텔로 들어가는 장면이 꼭 찍혔을 것이다.전호영이 정군호에게 누명을 씌운 것이 아니었다.“이 대표님이 그토록 기가 센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