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문이 막힌 소정남은 머리가 지끈거렸다.“두 사람 대체 어떻게 된 거야? 사이도 점점 가까워지면서 애정행각도 서슴지 않더니 갑자기 싸웠다고? 어쩐지 형수님이 술집에 간다더라니, 다 너 때문이었구나.”전태윤이 말했다.“일단 두 사람 지금 어느 술집인지, 언제 갔는지, 취했는지부터 알아봐 줘. 알아내면 바로 나한테 연락하고.”“알았어. 지금 당장 알아볼게.”소정남은 전화를 끊자마자 두 사람이 어느 술집으로 갔는지 알아보라고 부하들에게 분부했다.소정남의 연락을 기다리는 동시에 전태윤은 전용기 스태프에게 연락하여 분부했다.“지금 당장 돌아갈 준비를 해요. 십여 분 후에 관성으로 돌아갈 겁니다.”출장 갈 때 공항까지 바래다주겠다는 하예정을 거절한 건 먼저 회사로 가봐야 하는 이유도 있었지만 또 하나는 티켓을 끊지 않아서였다. 왜냐하면 늘 전용기를 타고 출장을 다녔기 때문이다.전태윤의 연락을 받은 스태프들은 재빨리 준비에 돌입했다. 전태윤은 모든 준비를 마친 후 하예정에게 전화하기 시작했다.그 시각 하예정은 심효진, 그리고 심효진의 남동생 심서준과 함께 술집에서 한창 신나게 즐기고 있었다.술을 마실 수 없었던 심서준은 옆에 가만히 앉아 연거푸 술을 들이켜는 두 누나를 바라만 보았다. 특히 예정 누나는 물을 마시듯 술을 벌컥벌컥 마셨다.심서준이 참다못해 하예정을 말렸다.“예정 누나, 너무 많이 마시지 마. 얼굴이 빨갛게 된 것 좀 봐. 누나 주량이 별로지? 더 마셨다간 취해.”그러자 하예정이 히죽 웃었다.“술에 취하면 온갖 걱정을 잊을 수 있잖아. 오늘 밤 제대로 취해서 전태윤이 누군지조차 잊고 싶어.”심서준이 심효진을 쳐다보자 그녀는 동생의 어깨를 토닥였다.“예정이가 기분이 별로 안 좋아. 누나도 오늘 예정이랑 끝까지 달릴 거니까 넌 그냥 옆에서 보기만 해. 말릴 필요 없어. 내일 숙취 때문에 머리가 깨질 듯이 아파도 그건 얘 일이야. 아무도 얘한테 술로 기분 풀라고 한 사람 없어.”심서준은 말을 잇지 못했다. 하예정이 절친의 어깨에 손을
전태윤이 더는 걸지 않고 포기하려던 그때 다행히 소정남의 연락을 받았다.“정남아, 두 사람 지금 어느 술집이래?”전태윤이 전화를 받자마자 다급하게 물었다. 다급한 그의 목소리에 소정남이 기회를 놓칠세라 바로 장난쳤다.“아주 급해 죽겠지? 당장이라도 돌아오고 싶지?”“소정남!”지금 이 상황에 장난을 치다니.전태윤은 너무 조급한 나머지 당장 하늘을 날아서라도 관성에 돌아가고 싶은 심정이었다. 소정남이 헤벌쭉 웃으며 말했다.“아주 흔치 않은 일이잖아. 형수님 말고는 널 이토록 조급하게 할 사람이 없어.”전태윤은 늘 끄트머리에 가서야 조금이나마 표정 변화가 있었다. 그가 조급해하며 발을 동동 구르는 모습을 볼 수 있는 기회가 정말 거의 없다.“지금 지누 바에 있고 30분 전에 도착했어. 효진 씨 말고도 효진 씨 친남동생도 같이 있어.”그의 말에 전태윤의 얼굴이 일그러졌다.“효진 씨 동생 몇 살이야?”‘효진 씨한테 뭔 동생이 이렇게나 많아?’사촌 동생인 김진우는 심효진과 하예정이 절친인 바람에 하예정을 알게 되었고 사랑하기까지 했다. 전태윤은 연적이 또 한 명 나타날까 걱정되었다.“효진 씨보다 서너 살 정도 어릴걸? 아무튼 성인이야. 효진 씨 남동생이 몇 살인 건 알아서 뭐 하게? 그건 내가 알아야 하는 거 아니야? 미래 처남이 될지도 모르는 동생한테 잘해줘야 하니까. 아, 알았다. 김진우 때문에 그러는 거지? 그래서 효진 씨 동생이라면 이렇게 예민하게 구는 거지?”전태윤이 퉁명스럽게 말했다.“넌 연적이 없어서 내 기분 몰라.”소정남은 어이가 없었다.“무슨 말을 그렇게 해...”그는 어떻게 말을 이어야 할지 몰라 망설였다.“지누 바 사장이 소지훈 씨 아니야?”술집은 여러 사람들이 함께 섞여 있는 곳이라 복잡했지만 소식을 빨리 알아내기엔 그만한 데가 없었다.“응. 형 명의로 된 거라서 형수님이 거기서 술을 마시고 있다는 걸 더 빨리 알아냈어. 내가 대충 계산해봤는데 지금쯤 아마 대여섯 잔은 마셨을 거야. 형수님 주량은 어때? 많이
“아직은 너무 멀쩡해서 두 잔 더 마셔도 안 취해.”“그만 마셔. 그냥 두어 잔 정도 마시러 왔잖아. 많이 마시면 몸 상해.”하예정이 그녀를 그윽하게 쳐다보았다. 심효진은 잠깐 침묵하다가 자리에서 일어서며 동생에게 하예정을 잘 지켜보라고 했다.잠시 후 심효진은 펜과 종이 몇 장, 그리고 술 한잔을 들고 돌아왔다.“이 잔만 마시고 그만 마셔. 그림이나 그리게 종이 몇 장 가져왔어.”“누나, 예정이 누나 취했는데 그림 그릴 수 있어?”하예정은 자신이 멀쩡하다고 얘기했지만 사실은 이미 취한 상태였다.심효진은 남동생의 질문에 대답하지 않고 펜과 종이를 하예정에게 건넸다. 펜과 종이를 받아든 하예정은 술도 마시지 않고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그녀는 먼저 새알 하나를 그렸다.심서준은 아무 말 없이 멍하니 쳐다보았다.취하고 나서 새알을 그리는 것쯤은 쉬웠다. 그도 쉽게 그릴 수 있을 것 같았다.하예정은 새알 하나를 그린 후 계속하여 호수를 그렸다. 호수 면에 특별히 동그라미를 많이 그렸는데 호수 바닥까지 동그라미가 가득했다. 마지막에는 호수 앞의 빈자리에 사람과 개를 그렸다.그 모습에 심서준은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누나, 예정이 누나 술만 마시면 그림 그리기 좋아해?”심효진이 고개를 끄덕였다.“욕하고 싶지만 욕이 안 나올 때 펜과 종이를 주면 그림으로 풀거든. 한참 그리고 나면 기분이 풀려.”심서준은 말문이 막혀버렸다.‘정말 별난 사람이 다 있어.’심효진이 하예정을 이해하길래 망정이지, 그라면 절대 이해하지 못했을 것이다.하예정은 모든 정신을 집중하여 인물을 그렸다. 심효진은 굳이 가까이 가서 보지 않아도 전태윤을 그리고 있다는 걸 알았다. 심서준은 호기심 가득한 얼굴로 하예정의 그림을 빤히 들여다보았다.전태윤의 상반신을 그린 하예정은 빤히 살펴보다가 심장 쪽에 심장 하나를 그렸다. 하지만 너무도 작아 잘 보이지 않았다.그녀는 펜을 내려놓고 새 술잔을 들고 마시며 자신의 작품을 감상했다. 이번에 드디어 비슷하게 그린 것 같다. 전에는
“효진 씨 맞으시죠?”문득 누군가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심효진 남매는 나란히 소리가 나는 방향으로 고개를 돌렸다.하예정은 소정남을 못 본 듯이 덤덤하게 술을 마셨다.“정남 씨?”여기서 소정남을 마주치다니, 심효진은 매우 의외였다.소정남은 얼른 상황을 설명했다.“주말에 몇몇 친구들이랑 함께 놀러 나왔는데 여기서 효진 씨를 다 보네요. 여기 앉아도 되죠?”심효진이 웃으며 대답했다.“이미 앉으셨잖아요. 친구분들은 아직인가 봐요?”그녀의 눈앞엔 소정남 한 명뿐이었다.소정남은 자리에 앉아 하예정에게도 인사했지만 그녀는 머리만 살짝 끄덕였다.“친구들은 다 가고 없어요.”소정남은 그림을 보며 심효진에게 물었다.“이거 누가 그렸어요? 제가 한 번 봐도 돼요?”심효진이 하예정을 힐긋 바라보자 소정남은 그림의 주인공이 그녀란 걸 바로 알아챘다. 하예정은 계속 술을 마시며 아무 말도 없었고 이에 소정남은 그녀가 반대하는 줄 알고 그림을 가져오지 않았다. 하지만 곁눈질로도 그림을 똑똑히 볼 수 있었다.그림 속의 사람은 바로 전태윤이었다.‘사모님께서 그림 솜씨가 탁월하네. 태윤이랑 너무 똑같게 그렸잖아. 다만 심장을 왜 일부러... 저렇게 작게 그렸지? 너무 선명한데... 태윤이가 속 좁은 남자란 걸 티 내려고 그런 거야? 태윤의 뒤엔 호수야 아니면 강이야? 수면 위에 한가득한 동그라미는 또 뭐지? 그리고 알까지 하나 있어.’소정남은 그림과 하예정을 번갈아 가며 보았다. 그녀의 얼굴이 빨갛게 달아올랐고 눈빛도 흐려진 걸 보아 취한 게 분명했다.“예정 씨, 이 그림 예정 씨가 그렸죠? 진짜 너무 잘 그렸네요!”‘그러니까 이 그림의 의미는... 태윤이가 물에 떠 있는 알이란 말인가?! 아니, 아니야!’소정남은 다시 그림을 더 자세히 들여다보았다.‘태윤이는 호수에 떠 있는 알? 강에 떠 있는 알? 여러 개의 동그란 알?’소정남은 한참을 들여다보며 생각하다가 드디어 알게 됐다.전태윤의 마음이 저 알처럼 작아서 속이 좁고 널브러진 알들의 개수만큼
“예정아.”심효진이 얼른 그녀를 부축했다.“나 아직 더 마실 수 있어...”하예정은 그녀에게 기댄 채 계속 더 마실 수 있다고 중얼거렸다.소정남은 그런 하예정의 모습을 바라보며 생각했다.‘내가 휴대폰으로 영상 촬영하는 건 실례겠지. 뭐 그래도 이 가게 CCTV가 있으니 나중에 영상 복사해서 태윤이 보여주면 돼. 그러게 왜 모처럼 마음에 쏙 드는 아내를 얻었는데 잘 아껴주지는 못할망정 툭하면 부부싸움에 냉전까지 해대. 나까지 덩달아 고생하잖아.’“예정아, 너 취했어. 집에 데려다줄게.”심효진이 자리에서 일어서며 미안한 표정으로 소정남에게 말했다.“정남 씨, 예정이가 취해서 저 먼저 얘 집까지 바래다줄게요.”“효진 씨도 술 마셔서 운전 못 하잖아요. 내가 안 마셨으니 집까지 데려다줄게요.”소정남은 일부러 심효진을 위해 여기까지 온 거라 술을 입에 대지도 않았다. 그의 목적은 단 하나, 심효진을 집에 바래다줄 기회를 얻는 것이다.“고맙지만 마음만 받을게요. 제 동생이 운전할 줄 알아요. 우리 둘 집까지 데려다주려고 일부러 동생도 함께 나왔어요. 서준이 술 안 마셨어요. 알코올 알레르기가 있어서 술을 못 마시거든요.”소정남은 말문이 막혔다.심효진을 집까지 바래다주며 호감이라도 얻으려고 여기까지 왔는데 뜻밖에 심서준이란 캐릭터가 나올 줄이야. 술도 못 마실뿐더러 두 여자를 집까지 바래다주기 위해 함께 지누 바에 왔다고 한다.소정남은 시계를 들여다보며 생각했다.‘태윤이가 전용기 타고 오면 거의 다 도착했겠지?’“예정아, 우리 그만 가자.”심효진이 하예정을 부축했다.하예정은 계속 혼잣말로 구시렁댔다.“나 더 마실래... 아직 안 취했어... 이 술... 가짜지?”소정남은 어이가 없었다.‘우리 형이 운영하는 술집인데 가짜 술을 팔 리가 있겠어?’다행히 하예정이니까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해도 책임을 추궁하지 않았다. 만에 하나 딴사람이 지누 바에서 가짜 술을 판매한다고 입을 나불거렸다면 바에서 손님에게 끝까지 물고 늘어질 것이다.“너
전태윤은 그림을 꼭 쥔 채 아무 말도 없었지만 소정남의 흥미진진한 표정을 보아 그 그림이 본인과 연관이 있다고 대충 짐작이 갔다.전태윤은 전에 하예정의 그림을 본 적이 있다.그녀가 매일 공예품을 만들다 보니 샘플을 자주 그렸다. 그녀의 그림 솜씨는 아주 뛰어났다.“태윤 씨...”하예정은 전태윤의 품에 기대 계속 혼잣말을 중얼거렸다.전태윤은 그녀를 조심스럽게 차에 싣고 좌석에 걸터앉히고 나서야 옆에 나란히 앉았다. 그녀는 당장이라도 옆으로 기울 것 같았다. 전태윤은 얼른 그녀를 본인 쪽에 기대게 했다.“그래, 나야.”그는 하예정의 귓가에 나지막이 속삭였다.“예정아, 나 여기 있어.”하예정은 인사불성이었다.만취한 상태라 눈도 제대로 뜨지 못했고 전태윤의 품에 안긴 채 쿨쿨 자다가도 혼잣말을 구시렁댔다. 가끔은 정확한 발음으로 전태윤을 욕했고 또 가끔은 무슨 말을 하는지 알아들을 수 없었다.심효진 남매는 술집 문 앞에 서서 차가 멀어져가는 모습을 지켜봤다.“누나, 방금 그 남자 누구야? 너무 무서워 보이던데!”심서준이 누나에게 물었다.“너희 예정 누나의 남편이야.”심서준이 말을 이었다.“그러니까... 그 초고속 결혼한 분?”심효진은 한심하다는 눈길로 동생을 쳐다봤다. 하예정에게 초고속 결혼한 그 남자 말고 또 무슨 남자가 더 있단 말인가?심서준은 자신을 한심하게 여기는 누나의 마음은 전혀 눈치채지 못한 채 옆에서 누나를 뚫어지라 쳐다보는 소정남을 발견하곤 얼른 귓속말로 속삭였다.“누나, 내가 볼 때 소정남 씨가 예정 누나 남편분보다 훨씬 더 괜찮은 것 같아. 사람이 훈훈하잖아. 예정 누나 남편은 너무 무섭게 생겼어. 그 표정과 눈빛이 너무 살벌해. 그냥 왠지, 꼭 어디서 본 듯한 얼굴인데? 왜 이렇게 낯익지?”“예정이가 남편 그리는 거 봤잖아!”심서준이 코를 쓰다듬으며 헤벌쭉 웃었다.“그러네, 예정 누나가 그린 남자가 바로 남편분이었어. 어쩐지 눈에 익더라니.”심효진은 더는 남동생과 대화를 이어가고 싶지 않아 소정남에게 시선
심서준은 소정남에 대한 첫인상도 좋은데 사적으로 연락까지 해대면 친누나를 팔아버릴지도 모른다.휴대폰을 꺼내는 소정남의 잘생긴 얼굴에 미소가 번졌다.“역시 서준 씨가 생각이 깊어요. 우리 서로 카톡 추가해요. 서준 씨 처음 봤을 때부터 옛친구 만난 것처럼 친근하더라니, 나중에 시간 되면 제가 밥 한 끼 살게요.”심서준은 싱글벙글 웃으며 휴대폰을 꺼내 그와 카카오톡을 서로 추가했다.“정남 씨, 그럼 우린 이만 가볼게요.”“잘 가요, 나중에 제가 밥 한 끼 살게요.”“그럼 저야 영광이죠.”심서준은 헤벌쭉 웃다가 누나의 따끔한 시선에 다시 코를 어루만지며 황급히 차에 올라탔다.소정남은 제자리에 서서 두 남매가 떠나가는 모습을 지켜보았다.한참 운전해나간 후 심효진이 동생에게 말했다.“너 정남 씨가 무슨 신분인지 알아? 어디서 친한 척이야? 카톡을 왜 추가하냐고?”“무슨 신분인지 그게 뭐가 중요해? 누나랑 소개팅했고 누나한테 관심이 있어 보이니 난 그걸로 됐어.”심효진의 낯빛이 확 어두워졌다.“내가 하루빨리 집에서 나갔으면 좋겠니?”“누나, 난 그렇게 훌륭한 재력가가 아니야. 내 월급 150만 원으로 누나를 평생 길러줄 순 없어. 그러니까 누나도 여생을 책임져줄 반쪽을 찾길 바라. 그럼 나도 부담이 조금 덜해지잖아.”동생이 운전만 안 했어도 심효진은 그를 발로 힘껏 걷어찼을 것이다.“야 이 자식아, 네가 날 길러줘? 내 월급이 너보다 훨씬 높아.”“난 엄마랑 얘기했어. 만약 누나가 시집 못 가면 내가 평생 책임질 테니까 엄마랑 고모더러 누나 그만 다그치라고 했단 말이야. 나도 부담이 너무 커.”심효진은 감격스럽기도 하고 우습기도 했다.“우리 집에서 세를 준 집과 가게가 얼만데 나 하나 못 키울까 봐?”“그건 엄마, 아빠의 자산이지 내 게 아니잖아. 다만 이제 재산 나눌 때 엄마, 아빠더러 누나를 좀 더 많이 나눠주라고 할게. 늙어빠진 시누이가 돼도 가장 돈 많은 시누이가 될 수 있도록 해줄게.”심효진은 말을 잇지 못했다.“누나, 정
발렌시아 아파트에 도착한 후 전태윤은 또다시 부드럽게 하예정을 안아서 차에서 내렸다.“도련님, 숙희 아주머니는 예진 씨 집에 계십니다.”강일구가 말했다.전태윤은 그에게 나지막이 대답했다.“아주머니 필요 없어. 내가 직접 보살필 거야.”그는 하예정을 안고 안으로 들어갔다.강일구는 도련님의 모습이 사라진 후에야 차를 타고 떠나갔다.집에 도착한 전태윤은 입구에 놓인 그의 슬리퍼를 보더니 그윽한 눈빛으로 옛 생각에 잠겼다. 전에 금방 혼인 신고했을 때도 하예정은 이런 식이었다. 남들에게 이 집에 남자 주인이 있다는 걸 알리면 상대적으로 안전할 거라며 그의 신을 내려놓았었다.그녀의 실력으로 웬만한 건달들은 쉽게 제칠 수 있지만 조심해서 나쁠 건 없으니까.“예정아, 먼저 서 있어. 나 집 키 꺼낼게.”전태윤이 그녀를 내려놓자 만취 상태로 제대로 서지 못하던 그녀는 바닥에 쓰러질 것만 같았다. 전태윤은 황급히 그녀의 허리를 감싸 안았다.그녀를 제 어깨에 기대게 한 채로 주머니를 뒤지며 집 키를 찾았지만 양쪽 주머니 모두 키가 없었다.너무 성급하게 돌아오다 보니 집 키를 까먹고 못 챙겨온 걸까?전태윤은 다시 하예정의 바지 주머니도 만져보았지만 집 키가 없었다.하예정은 외출할 때 꼭 집 키를 챙기기에 술집에 두고 왔거나 심효진의 차에 떨어트렸거나 둘 중 하나였다.전태윤은 재빨리 소정남에게 전화를 걸었다.“정남아, 효진 씨한테 여쭤봐 줘. 우리 예정이가 집 키를 효진 씨 차에 떨어트렸는지 말이야!”“알았어, 지금 바로 물어볼게. 아니, 지금 바로 효진 씨 집에 가서 너희 집 키를 가져올게.”소정남은 통쾌하게 대답하며 상사의 심부름에 한달음으로 나섰다.비록 밤 11시가 다 넘었지만 그들과 같은 올빼미족에겐 아직 한창 이른 시간이었다.소정남은 엉덩이를 씰룩거리며 심효진의 집으로 향했다.그는 심효진의 집에 가본 적이 없지만 주소는 알고 있었다.전태윤의 정보통으로서 그는 진작 심효진의 조상 3대까지 모조리 조사를 마쳤다.그가 심효진의 집에 도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