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렌시아 아파트에 도착한 후 전태윤은 또다시 부드럽게 하예정을 안아서 차에서 내렸다.“도련님, 숙희 아주머니는 예진 씨 집에 계십니다.”강일구가 말했다.전태윤은 그에게 나지막이 대답했다.“아주머니 필요 없어. 내가 직접 보살필 거야.”그는 하예정을 안고 안으로 들어갔다.강일구는 도련님의 모습이 사라진 후에야 차를 타고 떠나갔다.집에 도착한 전태윤은 입구에 놓인 그의 슬리퍼를 보더니 그윽한 눈빛으로 옛 생각에 잠겼다. 전에 금방 혼인 신고했을 때도 하예정은 이런 식이었다. 남들에게 이 집에 남자 주인이 있다는 걸 알리면 상대적으로 안전할 거라며 그의 신을 내려놓았었다.그녀의 실력으로 웬만한 건달들은 쉽게 제칠 수 있지만 조심해서 나쁠 건 없으니까.“예정아, 먼저 서 있어. 나 집 키 꺼낼게.”전태윤이 그녀를 내려놓자 만취 상태로 제대로 서지 못하던 그녀는 바닥에 쓰러질 것만 같았다. 전태윤은 황급히 그녀의 허리를 감싸 안았다.그녀를 제 어깨에 기대게 한 채로 주머니를 뒤지며 집 키를 찾았지만 양쪽 주머니 모두 키가 없었다.너무 성급하게 돌아오다 보니 집 키를 까먹고 못 챙겨온 걸까?전태윤은 다시 하예정의 바지 주머니도 만져보았지만 집 키가 없었다.하예정은 외출할 때 꼭 집 키를 챙기기에 술집에 두고 왔거나 심효진의 차에 떨어트렸거나 둘 중 하나였다.전태윤은 재빨리 소정남에게 전화를 걸었다.“정남아, 효진 씨한테 여쭤봐 줘. 우리 예정이가 집 키를 효진 씨 차에 떨어트렸는지 말이야!”“알았어, 지금 바로 물어볼게. 아니, 지금 바로 효진 씨 집에 가서 너희 집 키를 가져올게.”소정남은 통쾌하게 대답하며 상사의 심부름에 한달음으로 나섰다.비록 밤 11시가 다 넘었지만 그들과 같은 올빼미족에겐 아직 한창 이른 시간이었다.소정남은 엉덩이를 씰룩거리며 심효진의 집으로 향했다.그는 심효진의 집에 가본 적이 없지만 주소는 알고 있었다.전태윤의 정보통으로서 그는 진작 심효진의 조상 3대까지 모조리 조사를 마쳤다.그가 심효진의 집에 도착
그녀는 줄곧 재벌가에 시집가고 싶지 않다더니 정작 본인이야말로 재벌가 출신이었다.단지 심씨 일가 사람들이 겸손하고 삶에 충실하다 보니 부자가 되었어도 일반인처럼 지냈을 뿐이다.“저희 부모님이 다 주무셔서 정남 씨를 집안에 초대하진 않을게요.”소정남이 미소를 지었다.“이렇게 늦은 시간에 선물도 없이 두 분 귀찮게 해드리고 싶지 않아요. 나중에 푸짐한 선물로 준비해서 제대로 효진 씨 부모님 뵐게요.”심효진이 속으로 구시렁댔다.‘인제 겨우 꽃다발을 선물하며 대시하더니 부모님 볼 생각을 하고 있어?!’“태윤 씨가 급하게 돌아왔는데 내일 또 출장 가나요?”심효진이 불쑥 물었다.소정남은 잠시 생각하다가 대답했다.“아마도 내일 또 부랴부랴 떠날 거예요. 그쪽 일을 전적으로 책임지다 보니 문제가 생기면 태윤이가 가서 처리해야 하거든요.”“그럼 엄청 피곤하시겠어요.”“그렇긴 하지만 제 와이프를 위해서라면 이까짓 피로쯤은 흔쾌히 받아들일 거예요.”심효진이 입을 삐죽거렸다.“그래도 다 태윤 씨 잘못이에요. 고작 그런 일로 예정이랑 싸우다니. 애가 종일 기분 나쁜 것도 꾹 참다가 저녁이 돼서야 내게 다 털어놓는 거 있죠.”심효진은 난생처음 남자의 소심함이 이토록 치명적이란 걸 알게 됐다.“정남 씨도 남들보다 소심한가요?”“아니요, 난 보통 사람들처럼 마음이 너그러워요.”소정남은 자신이 속 좁은 남자가 아니라고 바로 얘기했다.심효진은 더 캐묻지 않고 화제를 돌렸다.“시간이 너무 늦었어요, 나도 이만 가서 잘래요. 예정이 물건도 집 키 줄 때 함께 주세요.”“그래요, 잘 자요.”소정남은 오늘 밤 수확이 꽤 크다고 느껴 더 집착하지 않고 그녀를 보내줬다. 괜히 그녀에게 반감만 쌓이면 안 되니까.작별 인사를 마친 후 그는 하예정의 물건을 챙겨 차에 올라탔다.곧이어 그는 전태윤 부부에게 집 키를 보내주러 갔다.발렌시아 아파트에 도착했을 땐 이미 열두 시가 넘은 시각이었다.태윤의 말대로 8층에 올라가 전태윤의 집을 찾고 보니 그가 한창 하예정을
집에서 나온 후 소정남이 혼잣말로 중얼댔다.“자식, 결벽증이 있으면서 토사물이 옷에 묻었는데 예정 씨를 밀치지도 않네? 진짜 진심으로 사랑하나 봐, 이걸 다 참다니.”소정남은 여전히 하예정의 열렬한 팬으로서 그녀를 존경할 따름이다.한편 집안에서 전태윤은 외투를 벗어 바닥에 내던지고는 하예정의 외투도 벗겨서 바닥에 던졌다.그는 나중에 깨끗이 치울 예정이었다.우선 만취한 그녀부터 안방에 들여보내야 한다.“태윤 씨...”구토한 하예정은 정신이 맑아졌는지 아니면 속이 후련해서인지 또다시 중얼거리기 시작했다.전태윤이 안자마자 그녀는 불쑥 큰 소리로 그의 이름을 불렀다.“그래, 나 여기 있어.”전태윤은 다정한 말투로 대답하며 그녀를 안고 제 방으로 들어갔다. 방에 들어서자마자 뭔가 달라졌다는 걸 발견했다.그녀의 물건이 싹 다 없어졌다!이건... 홧김에 본인 방으로 짐을 옮겼다는 말인가?전태윤은 문 앞에 서서 몇 분 동안 침묵하다가 결국 하예정을 안고 그녀의 방으로 돌아갔다.“태윤 씨... 나빠... 나 태윤 씨 안 좋아할래요... 태윤 씨 미워할래...”전태윤이 그녀를 침대에 내려놓자 그녀는 또다시 남편이 싫고 안 좋아할 거라며 구시렁댔다.“삐돌이...”전태윤은 그녀를 한참 바라보다가 허리 숙여 귓가에 나지막이 속삭였다.“미안해, 예정아, 내가 잘못했어.”하예정은 아무런 대답도 없었다.전태윤은 몰래 한숨을 내쉬고 자리를 떠났다.그는 하예정의 깨끗한 옷을 찾아 침대 위에 내려놓고 그녀를 한참 동안 내려다보다가 그제야 자리에 앉아 옷을 벗겨주기 시작했다.그는 불타오르는 마음을 달래며 겨우 하예정에게 깨끗한 옷을 갈아입혔다.그리고 방에 돌아가 황급히 찬물에 샤워했다.추운 날에 자꾸만 찬물로 샤워를 해야 했다. 그가 컨디션이 좋았으니 망정이지 진작 추위에 떨어 감기 걸렸을 것이다.30분 후 그는 다시 하예정의 침대 머리맡에 자리 잡고 앉았다.하예정은 더는 뒤척이지 않고 깊이 잠들었다.하지만 눈가에 눈물이 고였고 얼굴의 눈물 자국도
“결혼 뒤에도 난 줄곧 널 경계하고 의심해서 6개월짜리 계약서도 작성했지. 대부분 너에 대한 많은 제약으로 구성됐어... 맞아, 나 나쁜 놈이야, 내 이익만 따지고 널 고려한 적이 없었어. 날 망할 자식이라고 욕해, 난 진짜 망할 놈이야. 미안해, 예정아!”전태윤은 그녀의 입술에 가볍게 키스하며 속상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맹세할게, 두 번 다시 이런 일은 없어. 널 이해하고 대화로 풀어보도록 노력할게. 널 믿도록 노력할게. 너도 아내가 처음이고 나도 남편이 처음이야. 우린 모두 경험이 없어. 그러니까 인제부터 함께 배워나가고 함께 노력하며 오래오래 같이 살자, 응?”전태윤은 그녀의 귓가에 대고 한참을 속삭이다가 결국 그녀 옆에 누운 채로 잠들어버렸다.이번 일로 부부는 서로 너무 힘들었다.하예정은 술집에 가서 술로 아픈 마음을 달랬고 전태윤은 밤새 업무에 몰입하며 제대로 먹지도, 쉬지도 못하다가 아내가 술 마시러 갔다는 소식을 듣고는 수중의 업무를 전부 내려놓고 곧바로 돌아왔다. 그는 배도 고프고 졸음이 쏟아지고 피곤이 마구 몰려왔다.숙희 아주머니가 타일렀듯이 부부는 서로 믿어주고 배려해야 오래간다고 했다.전태윤은 그녀보다 일찍 깨났다.그가 깨났을 땐 이미 아침 7시가 넘은 시각이었다.거실을 미처 청소하지 못했다는 생각에 그는 하예정의 볼에 가볍게 입 맞추고는 서둘러 청소하러 나갔다.토사물을 깨끗이 치우고 바닥을 여러 번 닦은 후 그의 외투를 휴지통에 버리고 하예정의 옷은 직접 손빨래했다.토사물이 너무 많이 묻어 세탁기까지 더러워질까 봐...모든 일을 마친 후에야 전태윤은 배가 고파 났다.어젯밤에 저녁을 먹지 않았고 오늘 아침엔 일어나자마자 이렇게 많은 일을 했으니 배가 더 고팠다.너무 고픈 나머지 손까지 벌벌 떨렸다.그는 얼른 주방에 들어가 라면을 끓여 먹었다. 허기진 배를 채우니 그제야 손이 안 떨렸다.“띠리링...”이때 휴대폰이 울렸다.그는 전화를 받은 후 중저음의 목소리로 대답했다.“3시간 뒤에 도착할게.”그는 전화를
그림을 유심히 살펴보던 그의 눈빛이 점점 더 어두워졌다.하예정은 그를 나름 잘 그렸는데... 심장 부위를 아주 돋보이게, 그리고 아주 아주 작게 그렸다...그가 속 좁다는 걸 표현하고 싶은 걸까? 삐돌이에 소심한 남편이란 뜻일까?!그의 자화상 뒤엔 호수인지 연못인지 하는 물이 그려져 있었고 수면 위엔 동그란 사물이 잔뜩 널브러져 있었다. 물속엔 물고기가 없어 물고기의 입에서 나온 거품이라고 단정 지을 수도 없었다.연못 뒤엔 알이 하나 덩그러니 그려져 있었다.전태윤은 그림을 들고 걸어가며 생각했다.하예정의 그림은 대체 무엇을 의미하는 걸까?자화상은 전태윤이 틀림없는데 물과 동그라미는 또 무슨 뜻일까?강일구가 아래층에서 그를 기다렸다.“도련님.”“그래.”전태윤이 대답하고는 강일구에게 그림을 보여주며 차에 탔다.“너희 사모님께서 날 위해 그린 그림이야.”강일구는 그림의 내용을 제대로 보지 못했지만 사모님의 그림 솜씨가 뛰어나다는 걸 굳게 믿으며 칭찬을 남발했다.“사모님의 그림은 명화에 가깝죠.”“그래, 날 아주 사진처럼 생동하게 그렸어.”전태윤이 의자에 기대며 수면 위의 동그라미들을 빤히 쳐다봤다.‘이 동그라미들은 대체 뭘 의미하는 거지?’“물이 혼탁해졌어. 그러니까... 내 마음이 저 동그라미처럼 작고 동그라미의 개수만큼 자주 삐진다는 거네!”강일구가 의아한 듯 고개 돌려 전태윤에게 물었다.“도련님, 뭐라고 말씀하셨어요?”그는 얼핏 도련님이 스스로 자주 삐진다는 말을 들은 것 같았다!그가 잘못 들은 걸까?“아니야, 아무것도. 운전해, 시간이 빠듯해.”전태윤은 그녀의 그림 속에 담긴 깊은 뜻을 알아내고 한숨을 길게 내쉬며 조심스럽게 그림을 접었다. 비록 하예정이 그를 원망하는 내용이지만 이는 그에게 그려준 첫 그림이었다.의미가 남다르니 정성껏 소장해야 한다.“띠리링...”휴대폰이 또 울렸다.소정남에게 걸려온 전화였다.“태윤아, 너 지금 집이야 아니면 또 출장 갔어?”“출장 가는 길이야.”“너 엄청 고생하네. 주
전태윤이 하찮은 표정을 지었다.“내가 표정 관리가 안 됐으면 좋겠어? 내가 왜 그래야 하는 건데? 예정이가 대놓고 날 나쁜 놈이라고 욕해도 그건 다 사랑해서 그런 거야. 나한테 아무 감정 없으면 쳐다보는 것조차 시간 낭비라고 느낄 텐데 뭣 하러 욕까지 하겠어. 우리 와이프가 처음 그려준 그림인데 찢긴 왜 찢어? 나 꼭 그림틀에 넣어서 소중히 간직할 거야. 나중에 나이 들어서 다시 꺼내 감상해야지. 그땐 또 감회가 새로울 거야.”소정남이 그의 말을 받아쳤다.“너 그림틀에 안 넣기만 해봐, 비겁한 놈이라고 놀려댈 거야!”전태윤이 목소리를 내리깔고 대답했다.“어디 틀에 넣기만 하겠어? 나랑 예정의 방에 걸어두고 아침저녁으로 두 번씩 볼 텐데.”소심하게 사소한 일로 툭하면 하예정과 사이가 틀어지지 말자고 본인을 일깨워줘야 한다.그녀를 화나게 해서도 안 되고, 속상하게 해서도 안 되며 눈물을 흘리게 해서는 더더욱 안 된다.소정남이 입을 삐죽거렸다.“너 그 그림 사무실 벽에 걸 수 있어?”“내가 왜 거기에 걸어야 하는데? 우리 와이프가 그려준 명화야. 우리 부부의 방에 걸어놓아야지 뭣 하러 딴사람들 보여줘? 너도 그 그림의 내용을 싹 다 잊는 게 좋을 거야. 됐어, 그만 얘기해. 나 눈 좀 붙여야겠어.”요즘 2, 3일을 꼬박 새우다 보니 제대로 쉬지도 못했다.“그래, 좀 자.”소정남이 전화를 끊었다.그는 전태윤이 그림의 깊은 뜻을 깨닫지 못한 줄 알고 일부러 전화해 한바탕 놀려주려고 했는데 전부 깨달았을 뿐만 아니라 사랑 타령까지 하며 부부의 감정이 얼마나 깊은지 자랑질만 해댔다.부부는 역시 부부인가보다. 사로가 남들과 다른 걸 보니...하예정은 전태윤이 그녀가 술 마신 것 때문에 밤새 날아왔다가 지금 다시 출장 가는 걸 아예 몰랐다.그녀는 휴대폰 벨 소리에 겨우 잠에서 깼다.깨나니 머리가 깨질 듯이 아팠지만 간신히 참으며 전화를 받았다.“예정 씨, 저예요. 깨셨으면 문 좀 열어주실래요?”“아주머니... 잠시만요, 지금 바로 열어드릴게
게다가 꿈에 그녀에게 말을 엄청 많이 했지만 무슨 얘기를 했는지 전혀 알아듣지 못했다.꿈에서 그녀는 전태윤에게 안 들린다고 좀 더 높게 말하라고 했지만 전태윤은 입 모양만 할 뿐 목소리가 전혀 들리지 않았다. 그녀는 안달이 나서 미칠 것만 같았다.숙희 아주머니는 고개 돌려 그녀를 힐긋 바라보다가 다시 몸을 돌리고 하던 일을 마저 했다.“저는 어제 오후에 예진 씨랑 우빈이 데리고 먼저 돌아갔고 밤에도 예진 씨 집에서 자서 태윤 씨가 왔는지 잘 몰라요.”하예정이 머리를 탁 치며 대답했다.“맞아요, 아주머니 집에 오지 않았어요. 아이고, 머리 아파. 해장탕 끓여주실 수 있어요? 안 되겠다, 나 진통제 먹고 와서 다시 얘기해요. 머리가 터질 것 같아요.”하예정은 곧바로 주방을 나갔다.그녀는 거실로 걸어가 약상자를 찾아내고는 진통제를 꺼내 분말을 입에 부으려 했다.“머리 아프지?”이때 언니의 목소리가 들려왔다.하예정은 놀라서 손이 떨린 바람에 분말이 반쯤 쏟아졌다.“제대로 못 자서 그래. 진통제 먹으면 괜찮아져.”언니에게 들켰으니 대놓고 먹어도 될 듯싶었다.“내가 몇 번을 얘기했어, 술을 먹지 말랬잖아. 주량이 약해서 몇 잔 마시면 바로 취한단 말이야. 내 말은 늘 귓등으로 흘리지. 왼쪽 귀로 들어가서 오른쪽 귀로 털어내는 거야? 태윤 씨가 집에 없어서 아무도 감시하지 않으니 제멋대로 술을 마셔대?”하예진은 속상하고도 화가 나서 동생의 귀를 가볍게 잡아당겼다.“태윤 씨 오면 얘기할 거야. 앞으론 출장 갈 때 가족도 데려갈 수 있으면 널 데리고 가게 해야겠어. 남편이 집에 없다고 술이나 마셔대지 못하게 말이야.”“언니, 태윤 씨는 일 때문에 출장 갔어. 내가 거길 왜 따라가? 술을 두 잔 마신 것뿐이야. 정말 많이 안 마셨다니까.”“누굴 속여? 내가 모를 줄 알아? 주량은 약하면서 술은 엄청 좋아하지. 옆에 지켜보는 사람이 없으면 네가 몇 병을 마실지 몰라.”하예진이 동생에게 핀잔을 늘여놓으며 주방으로 들어갔다.“아주머니께 해장탕 끓여달
하예진이 동생을 힐긋 쳐다봤다.“그럼 설마 제부 옷이 홀로 여기까지 달려왔을까 봐? 그것도 다 젖은 상태로? 이건 어젯밤이나 오늘 아침에 씻은 게 틀림없어.”하예정이 겨우 말을 이어갔다.“태윤 씨가... 어젯밤에 진짜 돌아온 거야?”“뭐라고?”“아니야, 아무것도. 내가 키운 꽃 예쁘지? 꽃 구경 하고 있어, 나 밥 좀 먹을게.”하예정은 밥그릇을 들고 주방에 돌아가 자리에 앉았다. 그녀는 재빨리 휴대폰을 꺼내 심효진에게 문자를 보냈다.「효진아, 나 어젯밤에 대략 언제쯤 취했어? 취하고 나서 너랑 서준이가 나 집까지 바래다준 거야?」「내가 밤새 꿈을 꿨거든. 꿈에 태윤 씨가 돌아온 거 있지? 난 전혀 안 보고 싶은데 말이야.」「우리 집 발코니에 태윤 씨 옷이 널려있다? 게다가 젖은 채로... 설마 나 꿈 꾼 거 아니고 태윤 씨가 진짜 돌아왔었나?」「문자로 해, 전화하지 말고. 언니가 집에 와있어. 나랑 태윤 씨가 싸운 걸 알면 또 엄청 걱정할 거야.」하예진은 이혼한 뒤 동생네 부부 사이가 틀어질까 봐 너무 걱정됐다.심효진이 재빨리 답장했다.「너 술 엄청 많이 마셨어. 그래서 만취한 거야. 널 알고 나서 나도 처음 봤다니까. 너 거의 최고기록이야. 태윤 씨도 어제 돌아왔었어. 네가 취한 뒤 내가 널 부축하고 술집을 나갔는데.」「입구에서 태윤 씨랑 마주쳤어. 보자마자 널 가로채 가더라고. 난 뭐 어쩔 새도 없었다니까.」「널 집까지 바래다준 건 당연히 태윤 씨고 너 그거 꿈 아니야. 태윤 씨가 네 옆에 있었어. 난 또 네가 만취해서 필름이 끊긴 줄 알았지.」하예정은 말을 잇지 못했다.그녀는 잠시 생각하다가 심효진에게 물었다.「태윤 씨가 정말 돌아왔다고? 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기억나지 않아. 꿈인 줄로만 알았어. 나한테 엄청 많은 얘기를 했는데 마치 늙은 영감처럼 쉴 새 없이 떠들어댔다니까.」심효진은 타자하기 귀찮아 음성 메시지를 보냈다.「너 방금 깼어? 태윤 씨는? 아 참, 어젯밤에 정남 씨한테 여쭤봤는데 태윤 씨 오늘 또 그 도
정윤하는 흔쾌히 대답했다.“좋아요. 우리 엄마한테 저녁에 밥 좀 더 하시라고 부탁할게요. 아저씨가 우리 엄마가 하신 요리를 좋아하신다는 소식을 들으면 우리 엄마가 매우 기뻐하실 거예요.”소지훈이 웃으며 말했다.“아주머니가 만든 요리들이 정말 맛있어요.”“오늘 저녁에 많이 드세요. 아저씨, 저 먼저 운동 좀 하고 이따가 공항으로 마중하러 갈게요. 저녁에 봐요.”“그래요. 저도 이제 비행 모드로 전환해야 해요. 저녁에 봐요.”소지훈은 작별 인사를 하면서도 통화를 끊는 것을 매우 아쉬워했다. 그는 정윤하 쪽에서 전화를 끊은 후에야 휴대전화를 귓가에서 뗐다.소지훈의 휴대전화 배경 화면 사진은 정윤하의 사진 이였다. 정윤하가 전태윤 부부의 결혼식에 참석했을 때 소지훈은 정윤하의 사진을 몇 장 찍어 그녀에게 보내주면서 자신의 휴대전화에도 보관해 두었다. 그리고 정윤하의 사진을 그의 휴대전화 배경 화면 사진으로 설정했다.휴대전화를 켜면 정윤하를 바로 볼 수 있었다.정윤하의 안색은 환했고 미소가 밝고 청춘의 활력이 넘쳐 소지훈은 그녀를 보면 볼수록 더 좋아졌다.비행기가 관성을 떠나 연성 공항에 착륙하기까지 이미 몇 시간이나 흘렀다.비행기가 안전하게 착륙하자 소지훈은 이내 휴대전화의 비행모드를 정상상태로 돌려놓았다.그러자 그의 휴대전화에는 끊임없이 메시지가 들어오고 있었다. 정윤하가 소지훈에게 자신이 공항 출입구에서 기다리고 있다고 메시지를 보냈던 것이다.소지훈은 정윤하에게 전화를 걸었다.정윤하가 바로 받았다.“아저씨, 도착했죠? 저도 방금 도착해서 공항 출구에서 기다리고 있어요. 제가 큰 종이에 글씨로 이름을 적어놓았어요. 아저씨가 나오시면 아저씨 성함이 한눈에 보이실 거예요.”소지훈이 웃으면서 대답했다.“알았어요. 지금 비행기에서 내릴 준비를 하고 있어요. 캐리어를 가지러 갔다가 금방 나갈게요.”“괜찮아요. 기다릴게요. 뭐라도 좀 드셨어요? 집에 가는 길에 드실 간식 좀 사드릴게요. 집으로 가는 길에 좀 드세요. 공항은 우리 집에서 좀 멀거
전태윤은 피식 웃었다.“우리 소 대표님도 이렇게 친근하게 느껴질 줄은 몰랐네요.”“제가 대단한 사람도 아닌데요. 뭘.”전태윤은 크게 웃으며 말을 이었다.“네네, 소 대표님은 높은 분이 아니십니다. 제 신분으로도 소 대표님을 만나고 싶어도 줄을 서야 하는데. 저와 정남이가 절친이 아니었다면 아마 돈을 많이 내놓는다고 해도 소 대표님을 만나지 못할걸요.”소지훈이 말했다.“제가 너무 바빠서 그래요. 전 대표님도 아시다시피 우리와 같은 지위에 있는 사람들은 바쁘잖아요.”“제가 간단하게 말씀드릴 수 있는 일이 아니라서 그래요. 그럼 일단 연성에 가셔서 윤하 씨를 만나세요. 제가 먼저 정남에게 연락할게요.”소지훈이 대답했다.“무슨 일이 있으시면 정남이한테 말씀하세요. 두 분이 친구라서 말하기 더 편할 거에요. 그리고 하늘이 무너지지 않는 한 저한테 연락하지 마세요.”처음 사랑을 맛본 소지훈은 한창 뜨거운 열정으로 정윤하를 따르고 있었다.게다가 소지훈 부모님도 매일 그에게 결혼 재촉을 했다. 정윤하가 다른 남자들이 가로채 갈까 봐 늘 소지훈더러 연성으로 가서 정윤하에게 구애하라고 재촉하셨다.정윤하는 소지훈의 운명적인 여신이었다. 그가 정상적인 남자가 될 수 있을지는 모두 정윤하에게 달려 있었기에 정윤하를 가볍게 여겨서는 안 되었다.소지훈의 부모는 너무 급한 나머지 소지훈이 정윤하에게 고백하지 않았다고 투덜거리며 아들 대신 정윤하에게 구애하고 싶었다.그 무엇도 두려워하지 않던 소지훈은 정윤하를 만난 뒤로 급하게 고백하면 그녀가 놀라게 할까 봐 두려웠다. 그러나 두 사람이 알게 된 시간이 아직 짧기에 좀 더 익숙해진 뒤로 고백하려고 했다.정이 깊어지면 모든 일이 쉽게 풀리기 마련이다.소지훈은 이번에 연성에 가서 기회를 보면서 정윤하에게 고백하려 했고 또 정씨 가족들 앞에서 잘 보이고 싶었다.소지훈이 가장 걱정하는 것은 자신이 정윤하보다 10살 많은 나이가 많다는 점이다. 만약 세는 나이로 계산하면 11살이나 더 많았다.“알겠어요. 알겠어요. 하
전태윤이 말했다.“모든 이 대표님은 실력이 훌륭하고 충실한 특별 비서를 두었기 때문에 분명히 많은 것을 알고 있을 거야. 만약 그 특별 비서가 살아있다면 찾아서 현임 이 대표님의 죄를 밝힐 수 있을 텐데. 만약 그 틀별 비서도 죽었다면 이 일은 정말 조사하기 어려울 거야. 40~50년이나 지났으니까. 이따가 소 대표님께 전화해서 전임 이 대표님의 비서가 누구인지, 그 사람이 아직 살아있는지, 살아있다면 어디에 있는지 알아봐 달라고 부탁해볼게.”소씨 가문도 증거를 수집하기 어려울 것이다.전호영이 말을 이었다.“그건 내가 알아볼 수 있어. 내가 고진호 씨를 조사해 보는 게 더 편리할 거야.”사실 이씨 가문의 어르신들을 찾아가서 물어보면 금방 알 수 있었겠지만, 그들을 찾아가면 이은화가 눈치채기 쉬웠다.어쩌면 전임 이 대표의 비서가 죽지 않았을 수도 있었고, 현재 이은화도 그 비서를 찾고 있을 수도 있었다.“그래. 그럼 소식이 있으면 나한테 알려줘.”“알았어. 둘째 형이 혼인 신고를 했다니, 부러워 죽겠어. 나와 이진 형이 동시에 할머니께서 주신 사진을 받았는데 이진이 형은 혼인 신고까지 했는데 난 아직도 고현 씨 뒤를 쫓아다니고 있다니. 휴.”진지한 이야기를 마친 전호영은 전태윤과 잡담을 나누기 시작했다. 어쨌든 전호영과 전태윤 모두 할일도 없이 한가하기 때문에 두 사람은 수다를 떨었다.전태윤이 말을 이었다.“누가 반년 동안이나 아무 짓도 하지 말라고 했어? 그러니까 이진이 보다 늦지. 내가 보기엔 고현 씨도 너에게 마음이 있는 것 같던데, 너도 얼른 더 노력해서 내년에 결혼해야지. 이런 일은 나한테 말하지 말고 네 일은 네가 알아서 해. 난 좀 쉬어야겠어.”전태윤은 전호영의 하소연이 듣기 싫었는지 이내 통화를 끊었다.애초에 전호영은 고현이 남자같이 생겼다고 무척 싫어했기 때문에 일부러 움직이지 않았다. 그러다가 강성으로 가서 고현의 여자 신분을 폭로하려고 했다.전태윤이 전화를 끊어도 전호영은 화를 내지 않고 혼자 중얼거렸다.“자기만 행
“형, 통화하기 편해?”전호영은 고현을 호텔 밖으로 배웅하고 그의 사무실로 돌아온 뒤로 전태윤에게 전화를 걸었다.전태윤이 말을 이었다.“얼른 말해. 무슨 일인지.”전호영이 웃으며 대답했다.“내가 형한테 보낸 사진과 동영상은 이 대표님 남편이 바람을 피운 증거들이야.”전태윤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전호영이 계속해서 말하기를 기다리고 있었다.“이 대표님의 남편 정군호 씨인데 젊었을 때는 멋있었는데 재주가 없어서 이 대표님 남편으로 되었거든. 이씨 가문에서는 사장님이라고 불리웠지만 사실 존중 받지 못하고 아내에게 의지해 살아야 했어. 이 대표님도 남편을 엄격하게 관리했기에 매달 생활비를 주지 않고 매일 용돈 10만 정도만 주었어.”“이전에 바람을 피우려다가 이은화에게 혼이 난 뒤로 감히 바람을 피우고 싶어도 피우지 못했어. 이번에 이 대표님이 관성에 가서 형 결혼식에 참석한 뒤로 관성에 보름이나 머물게 되었는데 정군호 씨가 그 틈을 타 바람을 피울 기회를 얻었던 거야. 이 대표님이 아신다면 분명 한바탕 소란을 피울 거야.”“요즘 이씨 가문도 난장판이야. 이씨 가문의 아들들이 밖에서 내연녀를 두었는데 윤미 씨가 그 사실들을 폭로하는 바람에 지금 아들과 며느리들이 한창 떠들썩하게 지내고 있거든. 만약 이 대표님과 정군호 씨 일까지 폭로된다면 더욱 혼란스러워질 거야. 형, 형수님께 말씀드려봐. 무슨 계획 있으신지. 지금 이 틈을 타서 폭로할 수도 있으니까.”전태윤이 나지막이 물었다.“정군호 씨가 이 대표님의 남편이란 말이지?”“그럼, 고현 씨가 알려줬거든. 난 정군호 씨가 누군지도 몰랐어. 고현 씨가 강성의 토박이라 이씨 가문과 접촉할 기회가 많아서 정군호 씨를 알아봤거든. 고현 씨가 연회에 참석할 때 정군호 씨와 이 대표님이 함께 온 것을 봤대. 틀림없을 거야.”“이씨 가문의 그 이윤미 씨도 좀 재미있는 사람 같아. 이윤미 씨도 어느정도 수단은 있지만 그래도 도덕은 있는 편이네. 아쉽게도 이 대표님과 같은 사람을 어머니로 두었지.”이윤미가 이씨
이윤미는 제법 잘 꾸민 정군호가 젊어 보이면서도 멋져 보인다고 생각했다. 이윤미는 정군호가 이은화보다 십여 세 어린 여자를 껴안은 여자 사진을 보더니 혼자 중얼거렸다.“영감님이 젊었을 때는 보기 드문 미남이었겠네. 지금도 나이가 들었지만 잘 차려입으니 너무 잘생겼군.”어쩐지 이은화가 매우 엄격하게 다스리더라니.밖에서 아들이 준 돈으로 여자와 바람을 핀 사실을 이은화가 알아버린다면 이은화는 어떤 느낌일까?같은 시간, 관성.관성 호텔에서 서원 리조트로 돌아온 하예정은 방으로 돌아가 잠을 잤다.하예정은 여전히 너무 졸렸다.전태윤은 그녀와 함께 방으로 돌아갔다.하예정이 방에 들어가 바로 침대에 올라가서 자려는 모습을 본 전태윤은 침대에 다가가 앉더니 웃으면서 말했다.“졸리면 차에서 자도 되는데. 집에 도착하면 내가 안아서 침대에 눕혀줄 텐데.”“겨우 버티며 왔어요. 여보, 나 좀 잘게. 당신도 잘래요? 안 자면 서재에 가서 책 좀 보시겠어요?”전태윤은 그녀를 부드럽게 바라보며 말했다.“얼른 자. 난 안 졸려.”하예정은 눈을 감더니 이내 잠이 들었다.하예정이 몇 분 만에 달콤하게 잠든 것을 보고 전태윤은 몸을 숙여 그녀의 이마에 뽀뽀해 주었다. 그리고 손을 하예정의 평평한 아랫배에 올려놓으며 그녀의 귓가에 부드럽게 속삭였다.“예정아, 수고했어.”전태윤은 그 자리에서 잠시 앉아 있다가 다시 몸을 일으켜 침에서 나와 작은 서재로 들어갔다. 책상 위에 책들이 놓여 있었다. 그 책들은 임신에 관한 지식 책이었다. 전태윤은 이미 다 읽었지만 여러 번 반복해서 읽었다.전태윤은 책 한 권의 내용을 모두 기억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하예정이 임신하기 전에 전태윤은 임신에 관한 지식에 관해 아무것도 몰랐다. 그러나 하예정이 임신한 후에는 비록 많은 사람이 전태윤을 도와 함께 하예정을 돌봤지만, 그는 여전히 직접 아내를 돌보고 싶었다.그리고 서점으로 달려가 임신과 관련된 책들을 많이 사고는 소정남을 찾아가 소정남이 산 책들이 자신이 산 책과 비슷한 것을
이윤정은 전호영을 언급할 때 마다 이를 악물면서 전호영이 그녀가 가장 좋아하는 고현을 빼앗아 갔다면서 욕설을 퍼부었다.“윤미 씨 아버지께서 바람난 일을 전호영 도련님께 맡겨보는 건 어떠세요? 전호영 도련님은 안팎으로 이씨 가문을 괴롭히거든요.”이씨 가문 사람들에게는 전호영이 적수나 다름없다.이씨 가문과 이경혜 자매의 관계, 그리고 이윤미가 관성 쪽에 대한 태도를 생각하던 방윤림은 속으로 한숨을 쉬었다. 방윤림은 아마도 이윤미가 관성 쪽의 사람들과 적수가 되지는 않을 것 같다고 여겼다.이윤미는 이씨 가문의 전임 가주의 죽음에 대한 진실을 조사하려고 했다.방윤림은 만약 전임 가주가 이은화의 손에 죽었다는 증거가 나오기만 하면 이윤미가 더는 이씨 가문의 후계자가 되지 않을 것이며 또한 이씨 가문을 떠나 그녀의 작은 세계로 돌아가리라 추측했다.아니, 그녀가 반드시 원래 생활로 돌아갈 것이라고 확신했다.이윤미는 겉으로 보이는 것처럼 그렇게 연약한 사람이 아니다.사실, 이씨 가문에 돌아가기 전에 이윤미는 이미 사업에 성공한 젊은 여자였다. 이윤미의 양부모가 늘 그녀의 피를 빨아들이려는 생각을 알고 있기 때문에 자신이 회사의 대표라는 사실을 계속 숨기고 있었다.이윤미는 사람들이 그녀를 연약하고 무능한 사람인 줄로 알게 하여 이씨 가문의 후계자가 이윤정일 수도 있으리라 추측하게 했다.그러나 이씨 가문의 철칙은 누구도 바꿀 수 없는 일이다.이윤정은 이씨 가문의 친딸이 아니기도 했고 또한 이윤정의 능력도 훌륭하지 못했다. 그러나 이윤정이 아무리 능력이 뛰어나더라도, 그녀가 이씨 가문의 친딸이 아닌 것이 밝혀진 이상 이씨 가문을 이어받을 자격을 잃게 될 것이다.이윤미가 말했다.“그럴 필요 없어요. 호영 씨도 이 사실을 알아 버린 이상 모른 체 하지 않을 거예요. 호영 씨는 원래 이씨 가문이 잘 되기를 원하지 않기 때문에 우리가 끼어들지 않아도 스스로 그 사실을 터뜨릴 겁니다.”“우리가 아무런 수를 쓰지 않아도 증거가 호영 씨의 손에 있는 이상 가만히 있지
아무튼, 그 여자가 어느 우두머리의 내연녀라는 것을 아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았다.정군호도 몰랐을 것이다. 아니면 그런 사람의 내연녀를 건드리지는 않았을 것이다.영상과 사진을 본 이윤미는 방윤림에게 메시지를 보냈다.[그냥 놔둬요. 제 카카오톡 기록도 삭제할 거예요. 제가 만약 저장해 두면 우리 어머니께서 돌아와서 저를 의심하게 되면서 제 휴대전화를 볼 수도 있으니까요.]방윤림이 회답했다.[제가 이미 저장했습니다. 윤미 씨는 식사하셨어요?”[먹고 있어요. 배달시켰거든요.]방윤림은 눈살을 찌푸렸다.[자꾸 배달 음식을 시키지 마세요. 회사에 식당도 있는데... 정 시간이 안 되면 미리 말씀해 주세요. 앞으로 제가 매일 요리를 해서 가져다드리겠습니다.]이윤미는 방윤림이 보낸 메시지를 보며 마음이 따뜻해졌다.이씨 가문에 돌아온 뒤로 이윤미는 고군분투했다. 아무도 그녀를 관심해 주지 않았다.이은화조차도 진정으로 이윤미와 한마음이 아니었다.이은화는 이윤미 혼자만의 어머니가 아니었고 오빠와 이윤정이 어머니이기도 했다.이윤정은 이은화의 앞에서 자연스럽게 애교를 부릴 수 있었지만, 이윤미는 그런 애교를 부릴 수 없었다.다행히도 방윤림이 이윤미의 곁으로 와주었다.이윤미는 방윤림이 그녀의 곁에 있는 의미를 깨달은 뒤로 그에 대한 믿음이 가족보다 더 깊어졌고 방윤림 또한 그녀를 많이 도와줬다.방윤림이 처음 이윤미의 곁에 왔을 때 이윤미에게 앞으로 누구든 이윤미의 곁은 떠날 수 있겠지만, 방윤림만은 이윤미를 떠나지 않겠다고 말을 한 적이 있었다. 방윤림이 이윤미 곁으로 파견된 그 순간부터 그는 죽지 않는 한 이윤미에게 충성하면서 떠나지 않겠다고 맹세했다.만약 방윤림이 죽는다고 해도 누군가가 재빨리 그를 대신할 것이기 때문에 이윤미의 곁에는 늘 충성을 다 하는 심복이 따라다닐 것이다.방윤림은 모든 것을 할 줄 아는 진정한 능력자였다.물론 요리 실력도 훌륭하기 때문에 그가 한 요리는 매우 맛있었다.이윤미는 타자속도가 너무 늦다고 느껴 음성통화를 걸었다.
고현은 전호영의 옷을 잡아당겼다.전호영은 그녀를 따라 걸으며 말을 했다.“이 대표님도 언제쯤이면 돌아오실지... 정말 이씨 가문의 이 재미있는 연극을 보고 싶네요.”고현은 전호영을 힐끗 쳐다보더니 말을 이었다.“설령 이 대표님이 남편이 밖에서 바람피우는 장면을 목격하게 되더라고 밖에서 소란을 피우지 않고 정군호 씨를 데리고 가서 문을 닫고 난리 칠 거예요. 호영 씨가 보고 싶어도 볼 수 없을 거예요.”전호영이 한참을 생각해 보더니 말을 건넸다.“이윤미 씨가 있잖아요. 이윤미 씨가 이씨 가문 겉면의 평화를 깨뜨렸는데 윤미 씨의 아버지 스캔들을 숨길 수 있겠어요? 저는 믿지 못하겠어요. 윤미 씨도 쉽지 않은 사람이에요. 이씨 가문을 난장판으로 만들어 기회를 보면서 이씨 가문의 도련님들을 한꺼번에 정리할 생각일 거예요.”“그 문제 덩이 사람들만 없다면 이씨 그룹에서 윤미 씨의 지위는 더 확고해질 수 있잖아요. 역시 이 대표님 친딸답네요. 자신의 가족들을 이토록 모질게 다루다니.”고현은 한참 말을 하지 않았다.그리고는 이윤미를 대신해 몇 마디 했다.“윤미 씨는 이씨 가문 여자들의 독기를 가지고 있지만 그래도 이 대표님과는 조금 달라요. 제가 장담하건대 윤미 씨는 윤미 씨의 오빠들을 최대한 이씨 그룹에서 쫓아내지 않을 거예요. 그들이 이씨 그룹에서 파벌을 만드는 것을 방지하고 사적으로 이득을 챙기는 것을 방지할 뿐이죠. 이 대표님처럼 가족들을 해치지는 않을 거예요.”전호영은 고현이 이윤미를 마음에 들어 하는 것을 보더니 더는 이윤미에 관한 나쁜 얘기를 이어가지 않고 화제를 바꾸었다.전호영 일행은 호텔에 들어간 뒤 전호영의 전용 엘리베이터를 타고 꼭대기 층으로 올라가 프레지던트 스위트룸으로 갔다. 그 안에는 뷔페가 있었기 때문에 고현은 그녀가 먹고 싶은 음식들을 다 먹을 수 있었다.전호영은 정군호가 내연녀와 무슨 짓을 하고 있는지 알고 싶어 몰래 사람을 시켜 정군호의 일거수일투족을 지켜보게 했다.그리고 정군호가 내연녀를 데리고 룸에 들어가면 그들
그 뒤로 이윤미가 그녀의 오빠들과 내연녀들이 함께 있는 것을 보고는 차마 몇 명의 형수님들이 속고 있는 모습을 보다 못해 형수님들에게 알려준 것이다. 그 후로 이윤미의 오빠들과 형수님들이 말다툼하기 시작했다.여자의 입장에서 보면 고현은 이윤미가 잘했다고 생각했다.바람을 피운 사람이 자기 오빠라고 감싸면서 오빠들을 도와 형수님들을 속이면 안 된다고 생각했다.입장을 바꾸어 놓고 생각해 보면 자기 남편이 바람피운 사실을 모든 사람이 다 알지만, 본인만 모른다면 얼마나 괴롭겠는가!이때 전호영이 검은 눈동자를 반짝이며 낮은 소리로 말했다.“정군호 씨가 그렇게 멍청하지 않을걸요. 이 대표님께서 돌아오신다면 정군호 씨는 틀림없이 나가서 바람피우지 않을 거란 말이에요. 하지만 우리가 이 대표님을 도와야 한다고 봐요. 못 봤으면 그만이지만 우리가 현장을 목격했잖아요. 이 대표님을 만나면 알려줘야 해요. 어쨌든 우리 형수님의 이모시기 때문에 우리 형수님의 친척이나 다름없죠. 안 그래요?”고현은 전호영을 꾸지람했다.“호영 씨도 정말 나쁘네요. 이씨 가문에서 난리가 났으면 좋겠죠? 그런데 저도 호영 씨를 지지할 거에요. 이러고 보니 저도 좋은 사람은 아닌가 봐요.”“아니에요. 우리는 모두 좋은 사람들이죠. 정군호 씨가 무슨 짓을 벌였는지 보세요. 정군호 씨가 잘못한 것을 우리가 바로잡아준 거죠. 이 대표님을 위한 것이지 모함하거나 억울하게 만든 것은 아니잖아요.”“저처럼 일편단심인 남자는 정군호 씨의 이런 행동이 너무 부끄러워요. 만약 집안의 아내가 싫으면 이혼할 것이지... 이혼하기는 싫고 또 밖에서 예쁜 여자들이랑 놀고는 싶고... 두 마리 토끼는 다 잡을 수 없는 법이죠. 하늘 아래 어떻게 그런 좋은 일이 있겠어요?”전호영은 정군호가 젊은 여자와 바람을 피우는 영상을 찍었다. 그리고 하루 호텔도 카메라가 있었기에 정군호가 내연녀를 껴안고 호텔로 들어가는 장면이 꼭 찍혔을 것이다.전호영이 정군호에게 누명을 씌운 것이 아니었다.“이 대표님이 그토록 기가 센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