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렌시아 아파트에 도착한 후 전태윤은 또다시 부드럽게 하예정을 안아서 차에서 내렸다.“도련님, 숙희 아주머니는 예진 씨 집에 계십니다.”강일구가 말했다.전태윤은 그에게 나지막이 대답했다.“아주머니 필요 없어. 내가 직접 보살필 거야.”그는 하예정을 안고 안으로 들어갔다.강일구는 도련님의 모습이 사라진 후에야 차를 타고 떠나갔다.집에 도착한 전태윤은 입구에 놓인 그의 슬리퍼를 보더니 그윽한 눈빛으로 옛 생각에 잠겼다. 전에 금방 혼인 신고했을 때도 하예정은 이런 식이었다. 남들에게 이 집에 남자 주인이 있다는 걸 알리면 상대적으로 안전할 거라며 그의 신을 내려놓았었다.그녀의 실력으로 웬만한 건달들은 쉽게 제칠 수 있지만 조심해서 나쁠 건 없으니까.“예정아, 먼저 서 있어. 나 집 키 꺼낼게.”전태윤이 그녀를 내려놓자 만취 상태로 제대로 서지 못하던 그녀는 바닥에 쓰러질 것만 같았다. 전태윤은 황급히 그녀의 허리를 감싸 안았다.그녀를 제 어깨에 기대게 한 채로 주머니를 뒤지며 집 키를 찾았지만 양쪽 주머니 모두 키가 없었다.너무 성급하게 돌아오다 보니 집 키를 까먹고 못 챙겨온 걸까?전태윤은 다시 하예정의 바지 주머니도 만져보았지만 집 키가 없었다.하예정은 외출할 때 꼭 집 키를 챙기기에 술집에 두고 왔거나 심효진의 차에 떨어트렸거나 둘 중 하나였다.전태윤은 재빨리 소정남에게 전화를 걸었다.“정남아, 효진 씨한테 여쭤봐 줘. 우리 예정이가 집 키를 효진 씨 차에 떨어트렸는지 말이야!”“알았어, 지금 바로 물어볼게. 아니, 지금 바로 효진 씨 집에 가서 너희 집 키를 가져올게.”소정남은 통쾌하게 대답하며 상사의 심부름에 한달음으로 나섰다.비록 밤 11시가 다 넘었지만 그들과 같은 올빼미족에겐 아직 한창 이른 시간이었다.소정남은 엉덩이를 씰룩거리며 심효진의 집으로 향했다.그는 심효진의 집에 가본 적이 없지만 주소는 알고 있었다.전태윤의 정보통으로서 그는 진작 심효진의 조상 3대까지 모조리 조사를 마쳤다.그가 심효진의 집에 도착
그녀는 줄곧 재벌가에 시집가고 싶지 않다더니 정작 본인이야말로 재벌가 출신이었다.단지 심씨 일가 사람들이 겸손하고 삶에 충실하다 보니 부자가 되었어도 일반인처럼 지냈을 뿐이다.“저희 부모님이 다 주무셔서 정남 씨를 집안에 초대하진 않을게요.”소정남이 미소를 지었다.“이렇게 늦은 시간에 선물도 없이 두 분 귀찮게 해드리고 싶지 않아요. 나중에 푸짐한 선물로 준비해서 제대로 효진 씨 부모님 뵐게요.”심효진이 속으로 구시렁댔다.‘인제 겨우 꽃다발을 선물하며 대시하더니 부모님 볼 생각을 하고 있어?!’“태윤 씨가 급하게 돌아왔는데 내일 또 출장 가나요?”심효진이 불쑥 물었다.소정남은 잠시 생각하다가 대답했다.“아마도 내일 또 부랴부랴 떠날 거예요. 그쪽 일을 전적으로 책임지다 보니 문제가 생기면 태윤이가 가서 처리해야 하거든요.”“그럼 엄청 피곤하시겠어요.”“그렇긴 하지만 제 와이프를 위해서라면 이까짓 피로쯤은 흔쾌히 받아들일 거예요.”심효진이 입을 삐죽거렸다.“그래도 다 태윤 씨 잘못이에요. 고작 그런 일로 예정이랑 싸우다니. 애가 종일 기분 나쁜 것도 꾹 참다가 저녁이 돼서야 내게 다 털어놓는 거 있죠.”심효진은 난생처음 남자의 소심함이 이토록 치명적이란 걸 알게 됐다.“정남 씨도 남들보다 소심한가요?”“아니요, 난 보통 사람들처럼 마음이 너그러워요.”소정남은 자신이 속 좁은 남자가 아니라고 바로 얘기했다.심효진은 더 캐묻지 않고 화제를 돌렸다.“시간이 너무 늦었어요, 나도 이만 가서 잘래요. 예정이 물건도 집 키 줄 때 함께 주세요.”“그래요, 잘 자요.”소정남은 오늘 밤 수확이 꽤 크다고 느껴 더 집착하지 않고 그녀를 보내줬다. 괜히 그녀에게 반감만 쌓이면 안 되니까.작별 인사를 마친 후 그는 하예정의 물건을 챙겨 차에 올라탔다.곧이어 그는 전태윤 부부에게 집 키를 보내주러 갔다.발렌시아 아파트에 도착했을 땐 이미 열두 시가 넘은 시각이었다.태윤의 말대로 8층에 올라가 전태윤의 집을 찾고 보니 그가 한창 하예정을
집에서 나온 후 소정남이 혼잣말로 중얼댔다.“자식, 결벽증이 있으면서 토사물이 옷에 묻었는데 예정 씨를 밀치지도 않네? 진짜 진심으로 사랑하나 봐, 이걸 다 참다니.”소정남은 여전히 하예정의 열렬한 팬으로서 그녀를 존경할 따름이다.한편 집안에서 전태윤은 외투를 벗어 바닥에 내던지고는 하예정의 외투도 벗겨서 바닥에 던졌다.그는 나중에 깨끗이 치울 예정이었다.우선 만취한 그녀부터 안방에 들여보내야 한다.“태윤 씨...”구토한 하예정은 정신이 맑아졌는지 아니면 속이 후련해서인지 또다시 중얼거리기 시작했다.전태윤이 안자마자 그녀는 불쑥 큰 소리로 그의 이름을 불렀다.“그래, 나 여기 있어.”전태윤은 다정한 말투로 대답하며 그녀를 안고 제 방으로 들어갔다. 방에 들어서자마자 뭔가 달라졌다는 걸 발견했다.그녀의 물건이 싹 다 없어졌다!이건... 홧김에 본인 방으로 짐을 옮겼다는 말인가?전태윤은 문 앞에 서서 몇 분 동안 침묵하다가 결국 하예정을 안고 그녀의 방으로 돌아갔다.“태윤 씨... 나빠... 나 태윤 씨 안 좋아할래요... 태윤 씨 미워할래...”전태윤이 그녀를 침대에 내려놓자 그녀는 또다시 남편이 싫고 안 좋아할 거라며 구시렁댔다.“삐돌이...”전태윤은 그녀를 한참 바라보다가 허리 숙여 귓가에 나지막이 속삭였다.“미안해, 예정아, 내가 잘못했어.”하예정은 아무런 대답도 없었다.전태윤은 몰래 한숨을 내쉬고 자리를 떠났다.그는 하예정의 깨끗한 옷을 찾아 침대 위에 내려놓고 그녀를 한참 동안 내려다보다가 그제야 자리에 앉아 옷을 벗겨주기 시작했다.그는 불타오르는 마음을 달래며 겨우 하예정에게 깨끗한 옷을 갈아입혔다.그리고 방에 돌아가 황급히 찬물에 샤워했다.추운 날에 자꾸만 찬물로 샤워를 해야 했다. 그가 컨디션이 좋았으니 망정이지 진작 추위에 떨어 감기 걸렸을 것이다.30분 후 그는 다시 하예정의 침대 머리맡에 자리 잡고 앉았다.하예정은 더는 뒤척이지 않고 깊이 잠들었다.하지만 눈가에 눈물이 고였고 얼굴의 눈물 자국도
“결혼 뒤에도 난 줄곧 널 경계하고 의심해서 6개월짜리 계약서도 작성했지. 대부분 너에 대한 많은 제약으로 구성됐어... 맞아, 나 나쁜 놈이야, 내 이익만 따지고 널 고려한 적이 없었어. 날 망할 자식이라고 욕해, 난 진짜 망할 놈이야. 미안해, 예정아!”전태윤은 그녀의 입술에 가볍게 키스하며 속상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맹세할게, 두 번 다시 이런 일은 없어. 널 이해하고 대화로 풀어보도록 노력할게. 널 믿도록 노력할게. 너도 아내가 처음이고 나도 남편이 처음이야. 우린 모두 경험이 없어. 그러니까 인제부터 함께 배워나가고 함께 노력하며 오래오래 같이 살자, 응?”전태윤은 그녀의 귓가에 대고 한참을 속삭이다가 결국 그녀 옆에 누운 채로 잠들어버렸다.이번 일로 부부는 서로 너무 힘들었다.하예정은 술집에 가서 술로 아픈 마음을 달랬고 전태윤은 밤새 업무에 몰입하며 제대로 먹지도, 쉬지도 못하다가 아내가 술 마시러 갔다는 소식을 듣고는 수중의 업무를 전부 내려놓고 곧바로 돌아왔다. 그는 배도 고프고 졸음이 쏟아지고 피곤이 마구 몰려왔다.숙희 아주머니가 타일렀듯이 부부는 서로 믿어주고 배려해야 오래간다고 했다.전태윤은 그녀보다 일찍 깨났다.그가 깨났을 땐 이미 아침 7시가 넘은 시각이었다.거실을 미처 청소하지 못했다는 생각에 그는 하예정의 볼에 가볍게 입 맞추고는 서둘러 청소하러 나갔다.토사물을 깨끗이 치우고 바닥을 여러 번 닦은 후 그의 외투를 휴지통에 버리고 하예정의 옷은 직접 손빨래했다.토사물이 너무 많이 묻어 세탁기까지 더러워질까 봐...모든 일을 마친 후에야 전태윤은 배가 고파 났다.어젯밤에 저녁을 먹지 않았고 오늘 아침엔 일어나자마자 이렇게 많은 일을 했으니 배가 더 고팠다.너무 고픈 나머지 손까지 벌벌 떨렸다.그는 얼른 주방에 들어가 라면을 끓여 먹었다. 허기진 배를 채우니 그제야 손이 안 떨렸다.“띠리링...”이때 휴대폰이 울렸다.그는 전화를 받은 후 중저음의 목소리로 대답했다.“3시간 뒤에 도착할게.”그는 전화를
그림을 유심히 살펴보던 그의 눈빛이 점점 더 어두워졌다.하예정은 그를 나름 잘 그렸는데... 심장 부위를 아주 돋보이게, 그리고 아주 아주 작게 그렸다...그가 속 좁다는 걸 표현하고 싶은 걸까? 삐돌이에 소심한 남편이란 뜻일까?!그의 자화상 뒤엔 호수인지 연못인지 하는 물이 그려져 있었고 수면 위엔 동그란 사물이 잔뜩 널브러져 있었다. 물속엔 물고기가 없어 물고기의 입에서 나온 거품이라고 단정 지을 수도 없었다.연못 뒤엔 알이 하나 덩그러니 그려져 있었다.전태윤은 그림을 들고 걸어가며 생각했다.하예정의 그림은 대체 무엇을 의미하는 걸까?자화상은 전태윤이 틀림없는데 물과 동그라미는 또 무슨 뜻일까?강일구가 아래층에서 그를 기다렸다.“도련님.”“그래.”전태윤이 대답하고는 강일구에게 그림을 보여주며 차에 탔다.“너희 사모님께서 날 위해 그린 그림이야.”강일구는 그림의 내용을 제대로 보지 못했지만 사모님의 그림 솜씨가 뛰어나다는 걸 굳게 믿으며 칭찬을 남발했다.“사모님의 그림은 명화에 가깝죠.”“그래, 날 아주 사진처럼 생동하게 그렸어.”전태윤이 의자에 기대며 수면 위의 동그라미들을 빤히 쳐다봤다.‘이 동그라미들은 대체 뭘 의미하는 거지?’“물이 혼탁해졌어. 그러니까... 내 마음이 저 동그라미처럼 작고 동그라미의 개수만큼 자주 삐진다는 거네!”강일구가 의아한 듯 고개 돌려 전태윤에게 물었다.“도련님, 뭐라고 말씀하셨어요?”그는 얼핏 도련님이 스스로 자주 삐진다는 말을 들은 것 같았다!그가 잘못 들은 걸까?“아니야, 아무것도. 운전해, 시간이 빠듯해.”전태윤은 그녀의 그림 속에 담긴 깊은 뜻을 알아내고 한숨을 길게 내쉬며 조심스럽게 그림을 접었다. 비록 하예정이 그를 원망하는 내용이지만 이는 그에게 그려준 첫 그림이었다.의미가 남다르니 정성껏 소장해야 한다.“띠리링...”휴대폰이 또 울렸다.소정남에게 걸려온 전화였다.“태윤아, 너 지금 집이야 아니면 또 출장 갔어?”“출장 가는 길이야.”“너 엄청 고생하네. 주
전태윤이 하찮은 표정을 지었다.“내가 표정 관리가 안 됐으면 좋겠어? 내가 왜 그래야 하는 건데? 예정이가 대놓고 날 나쁜 놈이라고 욕해도 그건 다 사랑해서 그런 거야. 나한테 아무 감정 없으면 쳐다보는 것조차 시간 낭비라고 느낄 텐데 뭣 하러 욕까지 하겠어. 우리 와이프가 처음 그려준 그림인데 찢긴 왜 찢어? 나 꼭 그림틀에 넣어서 소중히 간직할 거야. 나중에 나이 들어서 다시 꺼내 감상해야지. 그땐 또 감회가 새로울 거야.”소정남이 그의 말을 받아쳤다.“너 그림틀에 안 넣기만 해봐, 비겁한 놈이라고 놀려댈 거야!”전태윤이 목소리를 내리깔고 대답했다.“어디 틀에 넣기만 하겠어? 나랑 예정의 방에 걸어두고 아침저녁으로 두 번씩 볼 텐데.”소심하게 사소한 일로 툭하면 하예정과 사이가 틀어지지 말자고 본인을 일깨워줘야 한다.그녀를 화나게 해서도 안 되고, 속상하게 해서도 안 되며 눈물을 흘리게 해서는 더더욱 안 된다.소정남이 입을 삐죽거렸다.“너 그 그림 사무실 벽에 걸 수 있어?”“내가 왜 거기에 걸어야 하는데? 우리 와이프가 그려준 명화야. 우리 부부의 방에 걸어놓아야지 뭣 하러 딴사람들 보여줘? 너도 그 그림의 내용을 싹 다 잊는 게 좋을 거야. 됐어, 그만 얘기해. 나 눈 좀 붙여야겠어.”요즘 2, 3일을 꼬박 새우다 보니 제대로 쉬지도 못했다.“그래, 좀 자.”소정남이 전화를 끊었다.그는 전태윤이 그림의 깊은 뜻을 깨닫지 못한 줄 알고 일부러 전화해 한바탕 놀려주려고 했는데 전부 깨달았을 뿐만 아니라 사랑 타령까지 하며 부부의 감정이 얼마나 깊은지 자랑질만 해댔다.부부는 역시 부부인가보다. 사로가 남들과 다른 걸 보니...하예정은 전태윤이 그녀가 술 마신 것 때문에 밤새 날아왔다가 지금 다시 출장 가는 걸 아예 몰랐다.그녀는 휴대폰 벨 소리에 겨우 잠에서 깼다.깨나니 머리가 깨질 듯이 아팠지만 간신히 참으며 전화를 받았다.“예정 씨, 저예요. 깨셨으면 문 좀 열어주실래요?”“아주머니... 잠시만요, 지금 바로 열어드릴게
게다가 꿈에 그녀에게 말을 엄청 많이 했지만 무슨 얘기를 했는지 전혀 알아듣지 못했다.꿈에서 그녀는 전태윤에게 안 들린다고 좀 더 높게 말하라고 했지만 전태윤은 입 모양만 할 뿐 목소리가 전혀 들리지 않았다. 그녀는 안달이 나서 미칠 것만 같았다.숙희 아주머니는 고개 돌려 그녀를 힐긋 바라보다가 다시 몸을 돌리고 하던 일을 마저 했다.“저는 어제 오후에 예진 씨랑 우빈이 데리고 먼저 돌아갔고 밤에도 예진 씨 집에서 자서 태윤 씨가 왔는지 잘 몰라요.”하예정이 머리를 탁 치며 대답했다.“맞아요, 아주머니 집에 오지 않았어요. 아이고, 머리 아파. 해장탕 끓여주실 수 있어요? 안 되겠다, 나 진통제 먹고 와서 다시 얘기해요. 머리가 터질 것 같아요.”하예정은 곧바로 주방을 나갔다.그녀는 거실로 걸어가 약상자를 찾아내고는 진통제를 꺼내 분말을 입에 부으려 했다.“머리 아프지?”이때 언니의 목소리가 들려왔다.하예정은 놀라서 손이 떨린 바람에 분말이 반쯤 쏟아졌다.“제대로 못 자서 그래. 진통제 먹으면 괜찮아져.”언니에게 들켰으니 대놓고 먹어도 될 듯싶었다.“내가 몇 번을 얘기했어, 술을 먹지 말랬잖아. 주량이 약해서 몇 잔 마시면 바로 취한단 말이야. 내 말은 늘 귓등으로 흘리지. 왼쪽 귀로 들어가서 오른쪽 귀로 털어내는 거야? 태윤 씨가 집에 없어서 아무도 감시하지 않으니 제멋대로 술을 마셔대?”하예진은 속상하고도 화가 나서 동생의 귀를 가볍게 잡아당겼다.“태윤 씨 오면 얘기할 거야. 앞으론 출장 갈 때 가족도 데려갈 수 있으면 널 데리고 가게 해야겠어. 남편이 집에 없다고 술이나 마셔대지 못하게 말이야.”“언니, 태윤 씨는 일 때문에 출장 갔어. 내가 거길 왜 따라가? 술을 두 잔 마신 것뿐이야. 정말 많이 안 마셨다니까.”“누굴 속여? 내가 모를 줄 알아? 주량은 약하면서 술은 엄청 좋아하지. 옆에 지켜보는 사람이 없으면 네가 몇 병을 마실지 몰라.”하예진이 동생에게 핀잔을 늘여놓으며 주방으로 들어갔다.“아주머니께 해장탕 끓여달
하예진이 동생을 힐긋 쳐다봤다.“그럼 설마 제부 옷이 홀로 여기까지 달려왔을까 봐? 그것도 다 젖은 상태로? 이건 어젯밤이나 오늘 아침에 씻은 게 틀림없어.”하예정이 겨우 말을 이어갔다.“태윤 씨가... 어젯밤에 진짜 돌아온 거야?”“뭐라고?”“아니야, 아무것도. 내가 키운 꽃 예쁘지? 꽃 구경 하고 있어, 나 밥 좀 먹을게.”하예정은 밥그릇을 들고 주방에 돌아가 자리에 앉았다. 그녀는 재빨리 휴대폰을 꺼내 심효진에게 문자를 보냈다.「효진아, 나 어젯밤에 대략 언제쯤 취했어? 취하고 나서 너랑 서준이가 나 집까지 바래다준 거야?」「내가 밤새 꿈을 꿨거든. 꿈에 태윤 씨가 돌아온 거 있지? 난 전혀 안 보고 싶은데 말이야.」「우리 집 발코니에 태윤 씨 옷이 널려있다? 게다가 젖은 채로... 설마 나 꿈 꾼 거 아니고 태윤 씨가 진짜 돌아왔었나?」「문자로 해, 전화하지 말고. 언니가 집에 와있어. 나랑 태윤 씨가 싸운 걸 알면 또 엄청 걱정할 거야.」하예진은 이혼한 뒤 동생네 부부 사이가 틀어질까 봐 너무 걱정됐다.심효진이 재빨리 답장했다.「너 술 엄청 많이 마셨어. 그래서 만취한 거야. 널 알고 나서 나도 처음 봤다니까. 너 거의 최고기록이야. 태윤 씨도 어제 돌아왔었어. 네가 취한 뒤 내가 널 부축하고 술집을 나갔는데.」「입구에서 태윤 씨랑 마주쳤어. 보자마자 널 가로채 가더라고. 난 뭐 어쩔 새도 없었다니까.」「널 집까지 바래다준 건 당연히 태윤 씨고 너 그거 꿈 아니야. 태윤 씨가 네 옆에 있었어. 난 또 네가 만취해서 필름이 끊긴 줄 알았지.」하예정은 말을 잇지 못했다.그녀는 잠시 생각하다가 심효진에게 물었다.「태윤 씨가 정말 돌아왔다고? 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기억나지 않아. 꿈인 줄로만 알았어. 나한테 엄청 많은 얘기를 했는데 마치 늙은 영감처럼 쉴 새 없이 떠들어댔다니까.」심효진은 타자하기 귀찮아 음성 메시지를 보냈다.「너 방금 깼어? 태윤 씨는? 아 참, 어젯밤에 정남 씨한테 여쭤봤는데 태윤 씨 오늘 또 그 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