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태윤이 하찮은 표정을 지었다.“내가 표정 관리가 안 됐으면 좋겠어? 내가 왜 그래야 하는 건데? 예정이가 대놓고 날 나쁜 놈이라고 욕해도 그건 다 사랑해서 그런 거야. 나한테 아무 감정 없으면 쳐다보는 것조차 시간 낭비라고 느낄 텐데 뭣 하러 욕까지 하겠어. 우리 와이프가 처음 그려준 그림인데 찢긴 왜 찢어? 나 꼭 그림틀에 넣어서 소중히 간직할 거야. 나중에 나이 들어서 다시 꺼내 감상해야지. 그땐 또 감회가 새로울 거야.”소정남이 그의 말을 받아쳤다.“너 그림틀에 안 넣기만 해봐, 비겁한 놈이라고 놀려댈 거야!”전태윤이 목소리를 내리깔고 대답했다.“어디 틀에 넣기만 하겠어? 나랑 예정의 방에 걸어두고 아침저녁으로 두 번씩 볼 텐데.”소심하게 사소한 일로 툭하면 하예정과 사이가 틀어지지 말자고 본인을 일깨워줘야 한다.그녀를 화나게 해서도 안 되고, 속상하게 해서도 안 되며 눈물을 흘리게 해서는 더더욱 안 된다.소정남이 입을 삐죽거렸다.“너 그 그림 사무실 벽에 걸 수 있어?”“내가 왜 거기에 걸어야 하는데? 우리 와이프가 그려준 명화야. 우리 부부의 방에 걸어놓아야지 뭣 하러 딴사람들 보여줘? 너도 그 그림의 내용을 싹 다 잊는 게 좋을 거야. 됐어, 그만 얘기해. 나 눈 좀 붙여야겠어.”요즘 2, 3일을 꼬박 새우다 보니 제대로 쉬지도 못했다.“그래, 좀 자.”소정남이 전화를 끊었다.그는 전태윤이 그림의 깊은 뜻을 깨닫지 못한 줄 알고 일부러 전화해 한바탕 놀려주려고 했는데 전부 깨달았을 뿐만 아니라 사랑 타령까지 하며 부부의 감정이 얼마나 깊은지 자랑질만 해댔다.부부는 역시 부부인가보다. 사로가 남들과 다른 걸 보니...하예정은 전태윤이 그녀가 술 마신 것 때문에 밤새 날아왔다가 지금 다시 출장 가는 걸 아예 몰랐다.그녀는 휴대폰 벨 소리에 겨우 잠에서 깼다.깨나니 머리가 깨질 듯이 아팠지만 간신히 참으며 전화를 받았다.“예정 씨, 저예요. 깨셨으면 문 좀 열어주실래요?”“아주머니... 잠시만요, 지금 바로 열어드릴게
게다가 꿈에 그녀에게 말을 엄청 많이 했지만 무슨 얘기를 했는지 전혀 알아듣지 못했다.꿈에서 그녀는 전태윤에게 안 들린다고 좀 더 높게 말하라고 했지만 전태윤은 입 모양만 할 뿐 목소리가 전혀 들리지 않았다. 그녀는 안달이 나서 미칠 것만 같았다.숙희 아주머니는 고개 돌려 그녀를 힐긋 바라보다가 다시 몸을 돌리고 하던 일을 마저 했다.“저는 어제 오후에 예진 씨랑 우빈이 데리고 먼저 돌아갔고 밤에도 예진 씨 집에서 자서 태윤 씨가 왔는지 잘 몰라요.”하예정이 머리를 탁 치며 대답했다.“맞아요, 아주머니 집에 오지 않았어요. 아이고, 머리 아파. 해장탕 끓여주실 수 있어요? 안 되겠다, 나 진통제 먹고 와서 다시 얘기해요. 머리가 터질 것 같아요.”하예정은 곧바로 주방을 나갔다.그녀는 거실로 걸어가 약상자를 찾아내고는 진통제를 꺼내 분말을 입에 부으려 했다.“머리 아프지?”이때 언니의 목소리가 들려왔다.하예정은 놀라서 손이 떨린 바람에 분말이 반쯤 쏟아졌다.“제대로 못 자서 그래. 진통제 먹으면 괜찮아져.”언니에게 들켰으니 대놓고 먹어도 될 듯싶었다.“내가 몇 번을 얘기했어, 술을 먹지 말랬잖아. 주량이 약해서 몇 잔 마시면 바로 취한단 말이야. 내 말은 늘 귓등으로 흘리지. 왼쪽 귀로 들어가서 오른쪽 귀로 털어내는 거야? 태윤 씨가 집에 없어서 아무도 감시하지 않으니 제멋대로 술을 마셔대?”하예진은 속상하고도 화가 나서 동생의 귀를 가볍게 잡아당겼다.“태윤 씨 오면 얘기할 거야. 앞으론 출장 갈 때 가족도 데려갈 수 있으면 널 데리고 가게 해야겠어. 남편이 집에 없다고 술이나 마셔대지 못하게 말이야.”“언니, 태윤 씨는 일 때문에 출장 갔어. 내가 거길 왜 따라가? 술을 두 잔 마신 것뿐이야. 정말 많이 안 마셨다니까.”“누굴 속여? 내가 모를 줄 알아? 주량은 약하면서 술은 엄청 좋아하지. 옆에 지켜보는 사람이 없으면 네가 몇 병을 마실지 몰라.”하예진이 동생에게 핀잔을 늘여놓으며 주방으로 들어갔다.“아주머니께 해장탕 끓여달
하예진이 동생을 힐긋 쳐다봤다.“그럼 설마 제부 옷이 홀로 여기까지 달려왔을까 봐? 그것도 다 젖은 상태로? 이건 어젯밤이나 오늘 아침에 씻은 게 틀림없어.”하예정이 겨우 말을 이어갔다.“태윤 씨가... 어젯밤에 진짜 돌아온 거야?”“뭐라고?”“아니야, 아무것도. 내가 키운 꽃 예쁘지? 꽃 구경 하고 있어, 나 밥 좀 먹을게.”하예정은 밥그릇을 들고 주방에 돌아가 자리에 앉았다. 그녀는 재빨리 휴대폰을 꺼내 심효진에게 문자를 보냈다.「효진아, 나 어젯밤에 대략 언제쯤 취했어? 취하고 나서 너랑 서준이가 나 집까지 바래다준 거야?」「내가 밤새 꿈을 꿨거든. 꿈에 태윤 씨가 돌아온 거 있지? 난 전혀 안 보고 싶은데 말이야.」「우리 집 발코니에 태윤 씨 옷이 널려있다? 게다가 젖은 채로... 설마 나 꿈 꾼 거 아니고 태윤 씨가 진짜 돌아왔었나?」「문자로 해, 전화하지 말고. 언니가 집에 와있어. 나랑 태윤 씨가 싸운 걸 알면 또 엄청 걱정할 거야.」하예진은 이혼한 뒤 동생네 부부 사이가 틀어질까 봐 너무 걱정됐다.심효진이 재빨리 답장했다.「너 술 엄청 많이 마셨어. 그래서 만취한 거야. 널 알고 나서 나도 처음 봤다니까. 너 거의 최고기록이야. 태윤 씨도 어제 돌아왔었어. 네가 취한 뒤 내가 널 부축하고 술집을 나갔는데.」「입구에서 태윤 씨랑 마주쳤어. 보자마자 널 가로채 가더라고. 난 뭐 어쩔 새도 없었다니까.」「널 집까지 바래다준 건 당연히 태윤 씨고 너 그거 꿈 아니야. 태윤 씨가 네 옆에 있었어. 난 또 네가 만취해서 필름이 끊긴 줄 알았지.」하예정은 말을 잇지 못했다.그녀는 잠시 생각하다가 심효진에게 물었다.「태윤 씨가 정말 돌아왔다고? 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기억나지 않아. 꿈인 줄로만 알았어. 나한테 엄청 많은 얘기를 했는데 마치 늙은 영감처럼 쉴 새 없이 떠들어댔다니까.」심효진은 타자하기 귀찮아 음성 메시지를 보냈다.「너 방금 깼어? 태윤 씨는? 아 참, 어젯밤에 정남 씨한테 여쭤봤는데 태윤 씨 오늘 또 그 도
“띠리링...”이때 성소현한테서 전화가 걸려왔다.하예정은 심효진과의 채팅을 잠시 멈추고 성소현의 전화를 받았다.“예정이 너 어디 살아?”“발렌시아 아파트요.”“알았어, 지금 갈게. 가게 갔는데 문을 잠갔더라고.”하예정이 대답했다.“그래요, 위치 보내줄게요. 나랑 언니도 지금 막 나가려던 참이었어요.”성소현이 알겠다며 대답했다.하예정이 위치를 보낸 후 그녀는 내비게이션을 켜고 발렌시아 아파트로 출발했다.성소현은 늘 빠른 속도로 달리다 보니 길모퉁이를 돌아 큰길의 차량들과 합류하려 할 때 하마터면 마이바흐와 부딪칠 뻔했다. 양쪽 모두 급브레이크를 밟았다.성소현이 도어를 내리자 상대방 기사도 도어를 내렸다.성소현은 상대에게 뒤로 물러서라며 모퉁이를 돌아야 한다고 했건만 상대는 그녀에게 바로 대답한 게 아니라 고개 돌려 뒷좌석에 앉은 사람을 쳐다봤다.“무슨 일이야?”예준하가 중저음의 목소리로 물었다.“상대가 선뜻 비키지 않습니다. 저희더러 물러서라고 합니다.”예준하는 커튼을 걷고 상대를 확인한 후 다시 커튼을 내리고는 기사에게 말했다.“성씨 일가의 살벌한 따님이야. 횡포하기로 소문났으니 뒤로 물러서서 양보해.”예준하는 예진 그룹의 관성 지사를 관리하고 있어 평소 관성 상업계의 거물들을 상대하고 있다. 비록 성씨 그룹과 아무런 업무 왕래가 없지만 성씨 일가의 몇몇 핵심 인물은 거의 다 알고 있었다.예진 그룹은 전씨 그룹과 합작하고 있는데 전씨 그룹이 성씨 그룹과 안 맞다 보니 예준하도 자연스럽게 성씨 그룹과 업무상에 왕래하지 않았다. 그래도 성씨 일가의 중요 인물들은 얼추 알고 있었다.성씨 일가의 실세는 성기현인데 그는 또 팔불출로 유명하다. 성기현을 몰라도 유청하는 반드시 알아야 한다. 괜히 성씨 일가 안방마님의 심기를 건드렸다가 팔불출 성기현에게 복수 당하기 십상이니까.성씨 가문 사모님 이경혜 여사도 반드시 알아야 한다. 그녀는 비록 성씨 그룹의 오너 자리에 앉지는 못했지만 말단 직원부터 시작해서 차츰차츰 성장해나갔고 그녀의 남
파란불로 변한 뒤 예준하의 차가 먼저 출발했다.성소현은 그의 차 번호를 유심히 살펴보며 생각했다.‘차 주인이 누구지? 뒤에 따라가는 검은색 세단 몇 대는 경호 차량 같은데?’관성에서 외출할 때 경호원을 데리고 다니는 사람은 전태윤 한 명뿐이다!성소현은 전태윤 말곤 떠오르는 사람이 없었다.그녀의 오빠는 경호원을 데리고 다니기 싫어한다. 가끔 데리고 다녀도 두 명뿐이다. 전태윤처럼 경호팀을 두 팀으로 나눠 밤낮으로 데리고 다니진 않는다. 한팀에 경호원이 8명 좌우 있다 보니 매번 전태윤이 등장할 때마다 왕의 아우라가 느껴진다.하예정은 성소현이 오는 길에서 예준하를 마주친 걸 전혀 모른 채 위치를 보냈고 심효진에게도 이모네 댁으로 가야 할 것 같다고 문자를 보냈다.그녀는 잠시 고민하다가 전태윤에게도 문자를 보냈다.전태윤은 비행기 안인지 그녀에게 답장하지 않았다.하예정은 순간 기분이 또다시 가라앉았다.“답장 안 할 테면 하지 말라지 뭐. 나도 그다지 바라는 건 아니야.”그녀는 휴대폰을 외투 옷 주머니에 넣고 자리에서 일어나 그릇을 들고 설거지하러 주방으로 들어갔다.“언니 얼굴에 난 상처에 약 발랐어?”“응, 발랐는데 흉터 자국이 남을지 모르겠어.”“상처가 깊지 않아 자국이 남지 않을 거야.”하예진은 우빈을 안고 걸어와 주방 입구에서 동생이 설거지하는 모습을 지켜보았다.“예정아, 너도 내가 마음 약해졌다고 생각해?”“언니는 우빈이를 봐서 그 인간들 한번 용서해준 거야. 게다가 그 인간들도 이젠 우리에게 훌륭한 이모가 있다는 걸 아니까 앞으론 감히 언니한테 함부로 대하지 못할 거야. 단지... 언니 전 시어머니가 조금 후회하는 것 같아.”“진작 후회했어. 내가 떠날까 봐 후회한 게 아니라 제 아들이 재산을 나누는 게 아까웠겠지. 인제 이혼했으니 마음껏 생각하라고 해.”말하는 와중에 하예진에게 익숙하고도 낯선 번호로 전화가 걸려왔다.번호를 완벽하게 기억하지 못해서 낯설었고 전에 한번 이 번호로 전화를 받은 적이 있어서 익숙했다.“하예진
“아 맞다, 다음 달 밸런타인데이에 나랑 형인 씨 혼인 신고해. 너한테 미리 알려줄게.”하예진은 여전히 무덤덤하게 대답했다.“그래, 축하해.”‘주씨 집안이란 구덩이에 빠지게 된 걸 축하해, 서현주!’“오늘 주말이라 인제야 깨났는데 형인 씨가 아침을 다 차렸더라고. 듣기로 두 사람 결혼 생활 3년 동안 늘 네가 형인 씨에게 밥을 차려줬다면서? 아직 형인 씨 요리 솜씨도 맛보지 못했지?”하예진은 더는 서현주의 도발적인 말을 듣고 싶지 않아 전화를 꺼버렸다.“언니, 서현주 전화야?”“맞아, 정신이 이상한 것 같아. 난 주형인과 이혼하고 두 사람 함께하게 허락해줬는데 왜 굳이 전화 와서 뻔뻔스럽게 내 카톡까지 추가하겠대? 추가하고 종일 카카오스토리에 주형인과 함께 있는 모습을 자랑질할 건가? 그래서 날 약 올리려는 작정이겠지. 내가 왜 그런 거로 화내겠어? 이혼까지 한 마당에 주형인과 더는 아무 사이도 아니잖아! 전남편일 뿐이라고.”주형인이 서현주에게 아침을 차려줬단 말에 하예진은 실소를 터트렸다. 주형인이 음식을 해본 적이 없는 건 사실이다. 그런 그가 서현주에게 아침을 직접 차려줄 리가 있을까? 틀림없이 밖에 가서 포장해왔을 것이다.“밸런타인데이엔 혼인 신고할 거래. 제발 얼른 했으면 좋겠어. 함께 묶어놓아야 그 집안의 인간쓰레기들의 참맛을 체험할 수 있잖아.”하예정이 욕설을 퍼부었다.“진짜 파렴치한 년이네.”“파렴치하지 않고서 어떻게 주형인과 엮일 수 있겠어? 그래도 난 서현주한테 고마워. 걔가 설득하지 않았다면 주형인은 우빈의 양육권을 그리 쉽게 포기하지 않았을 거야.”하예진은 다시 주우빈을 꼭 끌어안았다.아들은 그녀의 목숨과도 같은 존재였다.주형인을 포기할 순 있어도 아들은 절대 놓아줄 수 없었다.다행히 이젠 모든 일을 원만하게 해결했다.“언니, 우리 먼저 마트 가서 뭐 좀 사자.”이모네 댁에 가는데 빈손으로 갈 순 없으니까.하예진이 알겠다며 대답했다.두 자매는 주우빈을 데리고 마트를 한 바퀴 돌더니 크고 작은 봉투를 들고
오는 길 내내 언니가 운전을 담당했다.하예진은 아들에게 어른을 부르는 호칭을 가르쳤다. 주우빈은 이경혜에게 안기려 하진 않았지만 이모할머니라고 부르긴 했다. 엄마가 가르치는 대로 곧장 잘 따라불렀다.“아이가 너무 귀여워요.”유청하가 입가에 미소를 머금었다.“내가 우빈이 안아봐도 될까?”그러자 이경혜가 말했다.“나한테도 안기지 않는데 너한테 안길까?”유청하가 두 손을 내밀었다. 그런데 예상 밖으로 주우빈이 고사리 같은 두 손을 뻗더니 유청하에게 안기려 했다.이경혜가 허탈하게 웃었다.“우빈이 사람 가리네?”“평소에는 가리지 않는데 지난번에 많이 놀라서 그래요. 다음번에는 우빈이도 이모한테 잘 안길 거예요.”유청하를 따르는 주우빈을 본 하예진도 놀라긴 마찬가지였다.“예진아, 예정아, 얘는 내 큰아들 성기현이야. 너희들 사촌오빠.”이경혜는 두 아들을 조카에서 소개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하예진네 자매가 오빠라고 부르며 인사를 건네자 성기현은 아무 말 없이 미소로 답했다.이경혜는 곧바로 둘째 아들 성주현을 가리켰다.“얘는 내 작은 아들 성주현이야. 예진이보다 두 살 어리고 예정이보다 세 살 많아.”하예진은 성주현의 이름을 불렀고 동생인 하예정은 오빠라고 불렀다.“이모, 안아줘요.”유청하에게 잠깐 안기던 주우빈이 다시 안아달라고 하자 하예정은 재빨리 두 팔을 벌려 조카를 안았다.그런데 그때 하예정의 왼쪽 약지에 낀 다이아몬드 반지가 성기현의 날카로운 눈에 들어왔다.‘어디서 봤더라? 며칠 전에 누가 똑같은 반지를 낀 걸 봤는데?’성기현은 남몰래 하예정이 낀 다이아몬드 반지를 한참이나 뚫어져라 쳐다보았다.“얼른 들어가자. 오늘 바람이 세서 날씨가 쌀쌀해.”성문철은 그들을 별장으로 안내하며 딸에게 말했다.“소현아, 차 여기 안에 세워.”성소현은 그의 말대로 차를 별장 안의 실외 주차장에 세웠고 하예진도 그녀의 뒤를 따라 동생의 차를 별장 안에 세웠다. 그들 일행은 하하호호 웃으며 화려한 별장으로 들어갔다.성씨 가문 도우미가 하예정
“여보, 나 방금 예정이가 낀 결혼반지를 봤어요.”유청하가 그를 보며 재미있다는 듯이 웃었다.“우린 뭐 다 눈이 먼 줄 알아요? 당신만 보게? 봤는데 왜요? 예정 아가씨의 결혼반지가 뭐 문제 있어요?”성기현은 어떻게 말을 꺼내야 할지 고민하며 잠시 침묵했다.“부부끼리 말 못 할 얘기가 뭐가 있다고. 할 얘기 있어서 위층으로 부른 거 아니었어요? 무슨 일인지 얘기해봐요.”“여보, 내가 전에 전태윤 씨가 카카오 스토리에 결혼반지 사진을 올렸었다고 얘기한 거 기억해요?”유청하가 고개를 끄덕였다.“당연히 기억하죠. 그날 아침 댓바람부터 소현 아가씨한테 얘기하라고 했었잖아요. 당신은 착한 사람이고 나만 빌런으로 만들었으면서. 아가씨가 속상해하는 모습을 보니까 내가 다 대신 울어주고 싶더라니까요. 그리고 관성 호텔에서 전태윤 씨를 우연히 만났을 때 전태윤 씨가 밥을 사줬다면서 집에 와서 온 저녁 나한테 얘기했었잖아요. 전태윤 씨가 사주는 밥을 먹을 줄은 꿈에도 생각지 못했다고.”“아직도 전태윤 씨가 당신한테 이상한 생각을 갖고 있는 것 같아요? 기현 씨도 결혼했고 전태윤 씨도 결혼했으니 전태윤 씨가 남자를 좋아할 걱정은 하지 않아도 돼요. 설령 전태윤 씨가 남자를 좋아한다고 해도 그 상대는 당신이 아니니까 쓸데없는 생각 하지 말아요.”성씨 그룹의 대표 자리에 앉은 성기현도 사실은 아주 대단한 사람이었다.유청하는 겉으로는 남편이 생각이 많다고 투덜거렸지만 속으로는 그를 무척이나 존경했다.성기현이 아내의 이마를 톡 쳤다.“이상한 생각을 한 건 당신이에요. 그날 관성 호텔에서 전태윤 씨를 만났을 때 결혼반지를 바꿔 꼈더라고요. 아내분이 금반지를 싫어해서 다이아몬드 반지로 바꿨다면서 직접 설명까지 했어요. 전태윤 씨랑 한 테이블에서 식사했으니까 식사하는 내내 그 결혼반지를 봐서 눈에 익어요. 아까 예정이가 낀 결혼반지를 보고 어디서 봤더라 생각해보니까 전태윤 씨가 낀 결혼반지랑 커플인 것 같더라고요.”유청하는 멍하니 남편을 바라보다가 성기현의 이마와 자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