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무슨 용건이 더 남았어요?”주서인이 쏘아붙였다.그녀는 하예정 일행을 문밖에 세워두려 했지만 홀로 힘에 부쳐 막으려야 막을 수 없었다.그녀의 남편은 도리어 깍듯하게 하예정 일행을 안으로 모셨다.임요한은 분노에 찬 눈빛으로 하예정 일행을 째려봤다.임수찬은 그런 아들을 보자마자 가차 없이 살을 꼬집었다.“이따가 정중하게 사과드려.”임수찬이 나지막이 아들에게 말했다.“이 사람들 절대 호락호락하지 않아.”임수찬의 집을 풍비박산 냈는데도 전혀 아무렇지 않았고 어제 경찰서 사람들도 임수찬 가족을 편들지 않았다.임수찬은 전씨 일가가 대단한 집안이란 걸 바로 알아채고 흔쾌히 고개를 숙였다. 그리고 아들에게도 진심으로 사과하라고 말해주었다.다만 실은 임수찬이 생각이 너무 많은 탓이었다. 경찰서 사람들은 CCTV를 확인한 후 임요한의 행동이 너무 악랄하다고 생각되어 임씨 일가를 짓부순 일을 무시했을 뿐이다.아이를 병원에 실려 갈 정도로 때려놓았는데 집을 박살 낸 것쯤이야 뭐가 대수겠는가?자식이 없으면 덜 공감하겠지만 아이가 있는 부모라면 이런 일을 지켜봤을 때 분노가 저절로 차오를 것이다.임요한은 입을 삐죽거리며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그는 끝까지 잘못을 인정하지 않았다. 정한이가 말하기를 주우빈이 먼저 손을 댔다고 했으니 정한의 형으로서 반드시 동생을 위해 앞장서야 했다.‘그러게 누가 우빈이더러 우리 정한이 때리라고 했어?! 내가 우빈이 때려죽인 것도 아닌데 왜 어른들은 날 대역죄인 취급하는 거야?’임요한의 막무가내는 그의 엄마 주서인을 쏙 빼닮았다.“예정 씨.”주경진이 온화한 표정을 지으며 하예정에게 물었다.“우빈이는 좀 어때요?”“아빠, 요한이도 이젠 다 나았으니 우빈이도 틀림없이 회복됐을 거야.”주서인이 선뜻 말을 가로챘다.하예정은 싸늘한 눈길로 주서인을 째려봤다.주서인이 아니꼬운 듯 그녀에게 쏘아 붙였다.“뭘 째려봐요? 예정 씨, 어제 우리 집을 풍비박산 냈으니 이 금액은...”아빠의 싸늘한 눈빛과 남편의 극구 말림에
김은희가 버럭 고함을 지르더니 눈을 비비며 다시 임요한을 꾸짖었다.“요한아, 우빈이는 네 친사촌 동생이야. 어떻게 애를 그 지경으로 팰 수 있어?”“엄마, 요한이도 잘못한 거 알아. 아직 애라서 그래!”주서인이 아들을 대신해 변명을 늘어놓더니 또다시 하예정에게 쏘아붙였다.“예정 씨, 요한이가 우빈이 때린 건 정말 잘못했어요. 애 아빠도 어제 따끔하게 혼냈고요. 이따가 요한이 데리고 과일 좀 사서 우빈이 보러 갈게요. 가서 제대로 사과하면 될 거 아니에요. 어찌 됐든 친척이니 당신들이 우리 집을 짓부순 일은 더 따지지 않을게요. 그러니까 요한이도 인제 그만 다그쳐요. 애들이 장난치며 노는 건 너무 당연한 일이에요. 우리 어른들이 끼어들면 그때부터 변질되는 거죠. 게다가 정한이가 분명 주우빈이 먼저 손댔다고 했어요. 요한이는 형으로서 당연히 제 동생을 지키고 싶었겠죠. 예정 씨가 지금 언니 예진이를 지켜주는 것처럼 말이에요.”하예정이 쓴웃음을 지었다.“주서인 씨, 입이 삐뚤어도 말은 바른대로 해야죠. 대체 누가 먼저 손을 댔는지 이 댁 카메라에 똑똑히 찍혔어요. 눈 똑바로 뜨고 확인해보던가요!”주서인은 말문이 턱 막혔다.그녀는 또다시 속으로 남편의 무능함을 원망했다.‘진작 CCTV 영상을 지웠어야지 어떻게 경찰한테 넘어갈 때까지 내버려 두고 있어?’영상이 증거로 남아있는 한 그녀도 더는 뻔뻔스럽게 거짓말을 이어갈 수 없다.“말해봐요, 오늘 온 용건이 무엇인지!”주우빈에게 죄를 뒤집어씌울 수 없게 되자 주서인은 화제를 돌려 하예정 일행에게 오늘 찾아온 의도를 물었다.그녀는 전씨 일가의 사람들을 쭉 둘러보았다. 그들은 딱히 무언가를 하지 않아도, 그저 이렇게 앉아있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위압감을 주었다.주서인의 시댁 식구들은 하나같이 기가 죽어 입도 뻥긋하지 못했다!‘온 집안에 쓸만한 인간이 없어!’주서인은 속으로 시댁 식구들을 욕했다.어르신과 눈이 마주친 주서인은 참지 못하고 퉁명스럽게 쏘아붙였다.“보긴 뭘 봐요? 왜 어딜 가나 당신이
주경진이 날카롭게 째려보자 주서인은 더는 아무 말도 못 한 채 동생 주형인한테만 미친 듯이 곁눈질을 했다.주형인은 누나의 눈빛을 보더니 냉큼 목을 축이며 하예정에게 말했다.“처제, 그냥 우리 누나가 요한이 데리고 가서 사과하면 되지? 나도 우빈이 아빠라 보호자 중 한 명이니까 결정권이 있는 것 같은데.”하예정이 한심하다는 듯이 쏘아붙였다.“우빈이 아빠란 걸 알고는 있었네요? 다른 아빠들은 제 아들이 괴롭힘을 당하면 칼을 들고 가서라도 상대방을 때려죽일 기세던데 형부는 어쩜 이렇게 무덤덤할 수 있죠? 조카가 아들보다 더 소중하나 봐요?”이어서 그녀는 임수찬에게 말했다.“우빈이는 응급실에 실려 가서 겨우 살려냈어요. 전면 검진도 받았고요. 병원비용은 몇십만 원 정도 들었어요. 영수증 전부 가져왔으니 내가 막무가내로 돈을 요구한다고 뭐라 하지 말았으면 좋겠네요. 오늘은 일단 당신들이 요한이를 데리고 직접 우빈이한테 찾아가 정중하게 사과하고, 앞으론 두 번 다시 우빈이를 가까이하지 않겠다고 맹세하세요. 두 번째는 배상에 관한 문제인데 우빈이가 받은 정신적 충격은 앞으로 얼마나 더 많은 돈을 써야 치유가 되겠는지 모르겠네요.”“그 금액은 아직 가늠할 수 없어 지금 일단 병원비부터 배상하세요. 추후에 우빈이가 또다시 치료를 받는다면 그때도 모든 비용을 당신들이 부담해야 할 거예요. 영양제며 정신적인 손해배상이며 전부 다요. 우리도 너무 많이 요구하진 않아요. 어제 병원비까지 다해서 일단 천만 원만 배상하세요.”주서인이 자리에서 펄쩍 뛰어올랐다.“예정 씨, 아예 은행을 털지 그래요? 우빈이가 고작 몇 살인데 영양제, 정신적 손해배상이 웬 말이냐고요? 그럼 우리 요한이도 맞았는데 당신들이 배상해줄래요?”하예정이 되물었다.“당신 아들이 누구한테 맞았죠?”주서인은 말을 잇지 못했다.한참 후 그녀는 분노에 찬 표정으로 말했다.“형인이랑 예정 씨 언니가 곧 이혼하게 되니 일부러 이러는 거죠? 그 돈이면 예진이한테도 어마어마한 액수일 텐데요. 두 살짜리 애가
하예정이 곧바로 돈을 하예진에게 이체하자 주경진은 그제야 한숨을 돌렸다.외부인이 아닌 며느리에게 돈이 들어갔으니 이 돈은 무조건 손자가 쓰게 될 것이다.만약 아들에게 돈이 넘어가면 곧바로 딸의 주머니로 돌아가게 된다.임씨 일가에서 나온 후 아홉째가 기어코 큰형의 차에 타겠다고 고집을 피웠다.승차한 후 그는 하예정에게 말했다.“형수님, 어제 한바탕 싸우러 왔을 때 왜 저를 안 불렀어요? 아홉 형제 중에 유독 저만 빼놓았잖아요.”하예정은 고개 돌려 가장 어린 도련님을 쳐다보며 말했다.“도련님은 아직 미성년자라 우리가 지켜줘야 해요.”“사실 저랑 임요한 둘 다 미성년자라서 우리가 싸우면 두 미성년자의 다툼이 되잖아요.”“우리가 손 쓸 필요 없이 그 애 아빠가 이미 따끔하게 혼냈어요. 임요한의 엄마가 하는 말 같지도 않은 말 못 들었어요? 우리더러 배상금을 물어내라고 하잖아요. 제 아빠한테 맞았는데 무슨 수로 우리한테 배상금을 요구하겠어요?”“할머니가 나한테 머릿수 챙기라고 하더니.”전지율이 입을 삐죽거렸다.“정말 머릿수만 챙겼네요.”전태윤이 목소리를 내리깔았다.“그럼 뭘 더 어쩌려고?”전지율은 금세 입을 꾹 다물었다.사실 그들은 오늘 큰형수님을 뒷받침해주기 위해 함께 왔다.상의를 하는 일도 전부 형수님이 직접 알아서 했다. 큰형조차 한마디도 끼어들지 않았다.형수님은 주우빈의 이모라 그들 누구보다 우빈을 지켜줄 자격이 있었다.하예정은 전지율이 남편의 말에 주눅 들자 얼른 편들어줬다.“태윤 씨, 도련님 놀라겠어요. 도련님도 좋은 뜻으로 하는 말이잖아요.”“맞아요. 형은 나만 겁줘요. 형수님은 모르실 거예요. 우리 형은 아빠보다 더 엄해서 매번 집에 돌아올 때마다 나한테 연습지를 한 박스나 전해줘요. 쉴 새 없이 문제만 풀라는 거죠. 내가 한가한 꼴을 못 본다니까요.”전지율은 오늘 처음 하예정을 만났지만 덥석 그녀에게 기대며 말했다. 큰형이 앞으로 주도권을 형수님께 완전히 뺏겨버린다는 것을 그는 곧바로 알아챘으니까.사실 전지율의
하예정은 문득 좌절감에 빠졌다. 그녀는 고등학교에 다닐 때 악착같이 공부하여 겨우 좋은 대학에 붙었다.그런데 전태윤의 형제들은 하나같이 홀가분하게 좋은 대학에 붙었고 심지어 레벨까지 건너뛰었다니.“형수님, 그렇게 타격받은 표정 짓지 말아요. 진짜 타격받은 건 저잖아요.”하예정도 생각해보니 맞는 것 같았다. 전지율이야말로 가장 불쌍한 사람이었다. 그녀는 가볍게 웃으며 말했다.“도련님도 너무 낙심하지 말아요. 꼭 좋은 대학 갈 수 있을 거예요. 화이팅!”“난 꼭 형들이 다녔던 대학 갈래요. 못 붙으면... 재수하면 되죠.”원래는 못 붙으면 제 뺨을 두어 대 치겠다고 생각했지만 그런 행동은 썩 탐탁지 않아 말을 바꿨다.전태윤은 고개 돌려 동생을 힐긋 바라보더니 다시 운전에 집중했다.“너 못 붙으면 어디 가서 내 동생이란 말 하고 다니지 마.”전지율이 침묵했다.“태윤 씨도 도련님한테 스트레스 너무 주지 말아요.”“이 녀석은 종일 게임만 하고 공부에 대한 긴장감이 없어. 스트레스 팍팍 줘야 해.”전지율이 조심스럽게 말했다.“누구나 다 형처럼 자율적인 줄 알아...”‘자율적이다 못해 할머니가 신경 쓰지 않았으면 평생 형수님을 부를 기회도 없을 뻔했잖아.’전태윤이 코웃음 치자 전지율은 감히 말을 잇지 못했다.“뚜뚜...”이때 전태윤의 휴대폰이 울렸다.운전 속도를 조금 늦추고 확인해보니 숙희 아주머니한테서 온 문자였다.「도련님, 성소현 씨가 어머님과 함께 이리로 왔어요. 사모님 모시고 돌아오실 때 집에 올라오지 말아요.」전태윤은 문자를 확인한 후 바로 삭제했다.‘성소현 모녀 행동 참 빨라. 이렇게 빨리 오다니.’그는 계속 아무렇지 않은 듯 운전했다.잠시 후 그는 소정남에게 문자를 보냈다.「10분 뒤에 나한테 전화해.」문자를 받은 소정남은 살짝 의아해하다가 잠시 고민한 후 바로 알아챘다.일행이 고속도로에서 내려온 후 전이진이 차를 세우고 전태윤 부부에게 말했다.“형, 형수님, 우린 이만 따로 갈게요.”“그래.”“그래요, 이진
어르신은 이 상황을 즐기고 있다는 걸 결코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하예정은 밤잠을 설쳤고 아침에 커피를 한 잔 마시긴 했지만 지금 여전히 졸음이 쏟아졌다.“언니한테 전화해서 우빈이가 어떤지 물어봐야겠어요.”이 전화 한 통에 성소현 모녀가 선물을 들고 우빈이 보러 온 사실을 바로 알게 됐다. 그녀들이 찾아온 목적을 하예정은 누구보다 잘 알았다.“언니, 소현 씨 어머님께서 무슨 얘기 하셨어?”하예정은 아직 예진에게 미처 말하지 못했다.“별말 없었어. 우빈이가 겪은 일을 가슴 아파하셨어. 소현 씨는 임씨 일가 사람들을 족히 30여 분 욕했어.”여동생의 친구, 여동생의 시댁 식구들, 모두가 하예진의 남편과 시댁보다 나았다. 하예진은 문득 마음이 차갑게 식고 한기가 감돌았다.애초에 얼마나 눈이 멀었길래 주형인 같은 인간쓰레기한테 시집간 걸까?꼴에 아빠라고 뻔뻔스럽게 주우빈의 양육권을 뺏으려 하다니?나중에 이혼소송으로 법정에 설 때 하예진은 아들이 학대당한 사진을 전부 판사에게 제공하기로 했다. 판사는 꼭 우빈이를 위해 양육권을 그녀에게 줄 거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소현 씨 어머님이... 몸이 많이 편찮으신 것 같아. 낯빛도 창백해서 깜짝 놀랐어. 두 분 얼마 있지도 않고 소현 씨가 먼저 어머님을 부축하여 나가셨어.”하예정은 이경혜가 낯빛이 창백해졌다는 말만 유의 깊게 들었다.사색이 된 엄마의 모습에 성소현도 깜짝 놀라 얼른 부축하여 집을 나섰다.하예정은 언니의 말을 듣고 한참 침묵하다가 말을 이었다.“언니, 우리 엄마가 어쩌면 소현 씨 어머님이 수십 년 찾아 헤매시던 여동생일지 몰라.”“콜록콜록...”차 뒤에 있던 어르신이 하예정의 말을 듣고 사레가 들렸다.하예정이 고개 돌려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물었다.“할머니, 괜찮으세요? 에어컨 바람이 너무 셌죠?”“그래, 에어컨 바람이 너무 건조해서 기침이 나는구나.”어르신은 자신이 충격을 받았다는 말을 감히 털어놓지 못했다.전태윤은 침착하게 운전하며 에어컨을 껐다.한 번도 본 적 없는
전태윤은 하예정을 안고 그들의 아담한 집으로 돌아갔다.문을 열자마자 강아지가 마구 달려왔다.“저리 비켜!”전태윤이 낮은 목소리로 으름장을 놓자 강아지는 얌전히 바닥에 엎드린 채 더는 감히 다가오지 못했다.이 집의 남자 주인공이 저를 안 좋아한다는 걸 강아지는 너무 잘 알고 있었다.그래도 학대하지 않고 마음껏 먹을 수 있게 해주니 참 다행이었다.“띠리링...”전태윤의 휴대폰 벨 소리가 울렸다.그는 하예정을 안고 있어 휴대폰을 꺼내 전화를 받을 수 없었다.상대가 곧바로 전화를 끊었다.아마도 소정남이 그의 분부대로 10분에 한 번씩 전화를 걸어 핑곗거리를 둘러대고 자리를 떠나게 하려는 듯싶었다.다만 이젠 그럴 필요가 없어졌다.성소현 모녀가 이미 하예진의 집을 떠났으니 말이다.전태윤은 하예정을 방에 데려가 눕히고 이불까지 덮어준 후에야 휴대폰을 꺼내 소정남에게 전화를 걸었다.“정남아, 전화할 필요 없어.”“그래? 안 그래도 지금 막 너한테 폭풍 전화를 하려던 참이었는데.”전태윤의 입꼬리가 살짝 떨렸다.“밥 먹었어? 함께 먹을래?”“아니, 괜찮아. 너 효진 씨랑 데이트 안 해?”소정남이 대답했다.“데이트 신청 거절당하면 창피하잖아! 저번에 만나고 각자 연락처를 남겼는데 아직 아무 연락이 없어. 그래서 나도 지금 효진 씨가 어떤 마음인지 잘 모르겠어.”전태윤이 잠시 머뭇거리다가 말을 이어갔다.“나 이제야 알 것 같아. 우리 할머니가 우물쭈물하는 날 얼마나 한심하게 생각하셨는지 말이야...”소정남은 말문이 턱 막혔다.“그럼, 지금 같이 밥 먹으러 가자고 데이트 신청할까?”“네가 알아서 해. 어차피 아내를 만들려면 뻔뻔스러워져야 하는 법이야.”“보아하니 넌 엄청 뻔뻔스러워진 모양이야.”전태윤이 머쓱하게 대답했다.“잘 모르겠지만 뭐 아무튼 그런 것 같아.”소정남이 호탕하게 웃었다.“예정 씨는 내가 평생 본 여자 중에 가장 대단한 사람이야. 아무도 따라올 자가 없다니까!”“꺼져!”전태윤은 욕설을 퍼부은 후 바로 전화를 끊
전태윤이 한사코 잡아뗐다.“아니거든!”“정말 아니에요?”“아니야!”하예정은 허리를 곧게 펴고 아쉬움 가득한 얼굴로 말했다.“아쉽다고 했으면 숙희 아주머니더러 언니 집에 남아있어달라고 할 참이었는데, 난 그냥 집에 돌아와 태윤 씨랑 있어 주려 했더니 괜찮다고요? 알았어요, 그럼 난 언니한테 갈게요. 날씨가 점점 쌀쌀해지는 게 인제 좀 겨울 느낌이 나네요. 혼자 자면 으슬으슬 춥고 막 그래요.”전태윤은 묵묵부답이었다.그녀는 대놓고 암시하는 거나 다름없었다. 아쉽다고 한마디만 해주면 당장 베개를 안고 와 그의 침대에 누워 자겠다는 뜻이었다!하예정은 아쉬운 표정으로 전태윤의 얼굴을 쓰다듬더니 계속 아래로 내려와 그의 목과 가슴까지 어루만졌다. 전태윤이 싸늘한 눈빛으로 노려보고 나서야 그녀는 제멋대로인 손을 거둬들였다.“나 배고파요. 밥을 먹어야겠어요. 우리 남편 차린 밥상 맛있을 런지나.”하예정은 곧바로 걸어 나가려 했다.전태윤의 옆을 스쳐 지나갈 때 그가 불쑥 뒤에서 그녀의 허리를 감싸 안았다.“이렇게 유혹해놓고 그냥 가려고?”전태윤이 중저음의 목소리로 속삭이며 그녀의 허리를 더 세게 끌어안았다. 산타를 배운 그녀도 전태윤의 팔에서 벗어나질 못했다.“힘 좀 풀어요.”그의 손아귀에서 벗어나지 못하자 하예정은 힘이라도 줄여달라고 애원할 뿐이었다.전태윤은 그녀의 볼에 몰래 살짝 입맞춤하고 나서야 힘을 풀었다. 하예정은 그의 품에서 몸을 홱 돌려 반짝이는 눈동자로 빤히 쳐다보았다. 눈부신 그녀의 미모에 전태윤은 감탄을 금치 못했다.‘어떻게 이렇게 아름다울 수 있지?’“하예정.”“예정이라고 불러요.”“넌 날 태윤 씨라고 부르면서.”전태윤이 살짝 서운한 듯 대꾸했다.그녀는 별다른 애칭 없이 딱딱하게 남편 이름을 불렀다.“그럼 뭐 태윤아 이렇게 불러줄까요?”전태윤이 겨우 말을 이었다.“그냥 태윤 씨라고 해.”‘태윤아’ 라고 부르는 건 도저히 감당할 수 없었다. 전태윤은 순간 온몸에 소름이 쫙 끼쳤다.“하하.”하예정은 미리 짐작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