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집안이 대가족이에요. 소현 씨, 마음만 받을게요. 너무 고마워요.”성소현은 하예정의 남편 쪽에서 사람들을 불러와 도와준다는 말에 마음이 놓였다.“예정 씨, 남편분이랑 초고속 결혼이라고 했죠? 인제 보니 꽤 괜찮은 분 같네요. 이런 일 생겼을 때 적어도 선뜻 나서서 도와주잖아요.”하예진의 남편은 12년이나 알고 지냈지만 초고속 결혼한 하예정의 남편과 비할 바가 못 된다!“그래요, 그럼 난 이번엔 안 갈게요. 하지만 다음에 또 이런 일 생기면 꼭 나한테 얘기해야 해요. 안 그러면 날 친구로 안 여기는 거라고 삐질 거예요. 예정 씨 언니네 집 주소 보내줘요. 가서 우빈이 좀 봐야겠어요.”하예정은 이번 요구엔 거절하지 않았다.통화를 마친 후 그녀는 곧바로 성소현에게 예진의 집 주소를 보내주었다.전태윤은 둘의 통화 내용을 유의 깊게 엿들었다.성소현이 사람을 불러오겠다고 할 때 그는 핸들을 쥔 손에 힘을 꽉 주었다.성소현이 오면 그의 신분은 바로 들통나 버린다.이렇게 갑자기 들통나서는 안 된다. 하예정이 아무런 마음의 준비가 안 되었는데, 게다가 부부의 감정이 아직 견고해지지도 않았는데 갑자기 들켜버리면 하예정은 절대 받아들이지 못할 것이다.다행히 아내가 성소현의 호의를 거절했다.전태윤은 성소현에 대한 인상이 좋지 않지만 그녀가 하예정을 향한 마음만은 진심이란 걸 충분히 느낄 수 있었다.성소현의 성격과 지위로 그녀는 무슨 일이든 참지 않고 제멋대로 굴 수 있다.전태윤은 일부러 무심한 척 질문을 건넸다.“성소현 씨야?”“네, 소현 씨 어머님이랑 이모님의 어릴 때 사진을 보내줬는데 처음엔 얼핏 봐서 아무 느낌도 없었어요. 하지만 나중에 자세히 들여다보니 문득 이모님과 우빈이가 많이 닮은 것 같더라고요.”전태윤은 그녀의 말에 식겁하여 하마터면 앞차를 들이받을 뻔했다.그가 갑자기 브레이크를 밟자 하예정의 몸도 앞으로 쏠렸다.“운전 천천히 해요. 내가 할까요?”하예정이 말했다.“운전은 꼭 천천히 해야 해요. 침착해서 나쁠 것 하나 없어
또 어쩌면 성소현이 이모가 어른이 된 모습을 상상하지 못했을 수도 있다.하예정은 임씨 일가에 다녀온 이후에 곧장 이모님의 어른이 된 모습을 그려보기로 했다. 정말 언니랑 닮았을지 그녀도 몹시 궁금했으니까!“그러니까 지금 우리 장모님이 소현 씨 이모님이란 말이야?”전태윤은 어이가 없었다.‘이럴 수가! 말도 안 돼!’이렇게 기막힌 일이 그의 아내한테 벌어지다니!심지어 성소현은 한때 그에게 공개적으로 고백하며 적극 구애했고 하예정도 그녈 위해 전태윤을 사로잡을 수 있도록 아이디어를 내줬다.만약 전태윤이 결혼반지를 낀 모습을 성소현에게 보여주지 않았더라면 그녀는 아마 지금도 매일 같이 집착하며 귀찮게 굴 것이다.성소현을 따끔하게 혼내주려 했는데 뜻밖에도 그녀와 하예정이 절친한 사이가 돼버려 이젠 더는 어쩔 수 없었다.진심으로 하예정을 챙겨주는 사람이니 전태윤도 더욱 각별히 대할 수밖에 없다.하씨 일가의 인간쓰레기들은 요즘 들어 매우 잠잠해졌다. 더는 하예정을 찾아와 귀찮게 굴지 않았다. 만약 그랬더라면 전태윤과 성소현, 두 사람 모두 선뜻 도와 나섰을 것이다.하씨 일가의 사람들은 하예정의 배후에 있는 조력자가 전태윤이란 사실을 전혀 모르고 있다. 다들 성소현인 줄 알고 그녀의 신분에 지레 겁을 먹어 잠시 잠잠해졌을 뿐이다.“나도 확신할 순 없어요. 엄마가 돌아가신 지 15년이 다 돼가는데 만약 정말 그렇다면...”하예정은 성소현의 엄마가 수십 년 동안 여동생을 찾아 헤매다가 결국 진작 사망했다는 걸 알게 되면 타격이 얼마나 클지 내심 걱정됐다.그리고 본인 엄마도 떠올리니 너무 가슴 아팠다.“설마 진짜겠어요?”하예정은 기분이 확 가라앉았다.“소현 씨 어머님은 줄곧 여동생을 찾았어요. 우리 엄마는 살아계실 때 가족에 관한 얘기를 한 적이 없지만 지금까지 살아있다면 아마도 가족을 찾고 싶어 했을 거예요. 전에 우리한테 말했거든요. 대체 친부모한테 버림받은 것인지 아니면 누군가에게 납치당해 팔려간 것인지 말이에요!”전태윤이 침묵했다.만약 돌
지금은 일단 우빈이를 위해 임씨 일가에 찾아가 죄를 물어야 한다.정체를 숨긴 일은 아직 좀 더 시간을 끌 수 있다. 그는 이제 곧 A시에 가서 예준성과 모연정의 결혼식에 참석한다.하루라도 미룰 수만 있다면 계속 더 미뤄야 한다.다만 성소현의 엄마와 마주치기 전에는 꼭 하예정에게 이실직고해야 한다.부디... 그녀가 너무 흥분하지 말기를.전태윤은 애초에 그녀에게 아무런 감정도 없었고 잘 알지도 못해 신분을 숨기고 일단 성품을 관찰해보기로 했다. 이는 지극히 정상적인 일이라고 생각했다.그의 신분이 신분인지라 가까이 다가오는 여자들이 돈을 넘본 것인지 진짜 그를 알기 위해서인지 구분할 수 없었으니까!어느덧 하예정의 성품과 처사 능력, 자신감 넘치는 모습과 독립적인 모습까지 모든 게 마음에 들었다. 전태윤은 언제부터인가 그녀에게 끌리기 시작했다.한편 성소현은 하예정과 통화를 마친 후 바로 가정부에게 분부했다.“아줌마, 영양제 좀 준비해주세요. 아이들이 먹을 수 있는 거로요. 누구 선물해줘야 해요.”보영 아줌마가 물었다.“네, 아가씨. 실례지만 그 아이 몇 살쯤 되나요?”“두 살 좀 넘을 거예요.”“두 살짜리 아기는 별일 없으면 영양제 안 먹는 게 좋아요.”보영 아줌마가 그녀를 일깨워주었다.성소현은 아직 미혼이라 당연히 이 방면에 대해 잘 알지 못한다. 하여 미리 일깨워주는 것도 가정부의 직책이라고 여겼다.아가씨가 괜히 선물을 잘못 건넸다가 돌아와서 원망을 늘여놓으면 안 되니까.“전혀 먹으면 안 되나요?”그도 그럴 것이 주우빈은 워낙 건강하여 영양제가 딱히 필요해 보이진 않았다.“굳이 먹어야 한다면 칼슘 보충제 종류가 괜찮을 것 같아요. 다만 이 댁엔 없어요.”큰 도련님은 결혼식을 올리긴 했지만 와이프를 너무 사랑하다 보니 아직 신혼생활을 즐기느라 아이를 갖지 않았다. 둘째 도련님과 아가씨도 아직 싱글이다 보니 이 집안엔 영유아용 영양제가 없다.“됐어요, 그럼 아이들 영양제 말고 보양식으로 아무거나 준비해주세요. 예진 언니네 댁으로
이경혜는 어안이 벙벙해졌다.“전태윤한테 여자가 있었다고?”“이미 결혼했어요. 와이프한테 엄청 잘해주는 것 같아요. 어찌나 아끼고 지켜주는지 오빠도 그 와이프의 정체를 모르더라니까요.”“그래... 그럼 넌 이만 마음 접어야겠다. 처음부터 네 사람이 아니었어. 줄곧 네가 쫓아다녔을 뿐이지.”이경혜는 전태윤이 무척 마음에 들었지만 아쉽게도 그가 성소현에게 전혀 호감이 없었다.그저 소현이가 일방적으로 좋아한 것뿐이었다.이젠 유부남이란 걸 알게 됐으니 마음을 접는 것도 당연한 일이었다.“엄마, 나 할 얘기 있어요.”성소현은 더는 엄마한테 전태윤의 말을 꺼내고 싶지 않았다. 언급할 때마다 가슴이 미어지게 아팠으니까.수년간 사랑했던 남자가 유부남이란 사실을 갑자기 알게 됐고 그녀는 하마터면 제삼자가 될 뻔했다. 하루아침에 마음을 내려놓으려니 아프지 않을 수가 없었다.성소현은 최대한 전태윤의 얘기를 피해 가며 마음을 달랬다.“무슨 일인데? 엄마 곧 집 도착해. 집에 가서 얘기하면 안 될까?”“아마 지금 들으면 기뻐하실 거예요. 이모에 관한 새로운 단서가 나타났거든요.”아니나 다를까 이경혜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진짜야? 새 단서가 나타났어? 그래서 네 이모 지금 어디 있는데?”“내 친구 예정 씨 알죠? 왜 있잖아요, 저번에 실검에 올랐던 ‘불효 손녀’ 말이에요. 내가 예정 씨한테 엄마랑 이모가 어릴 때 찍은 사진을 보내줬는데 아까 전화 와서 조카 우빈이가 우리 이모랑 조금 닮은 것 같대요.”순간 이경혜가 사색이 되었다.지난번 실검 사건으로 꽤 큰 소동이 벌어졌다. 이경혜는 하씨 일가에서 삭제한 사진을 미처 보진 못했지만 딸에게 대략적인 얘기를 전해 들었다.하씨 일가의 두 자매는 부모님을 전부 여의었다.만약 하예정의 조카가 이경혜의 동생을 닮았다면 하예정의 엄마가 이경혜의 동생이란 얘기인데 상대는 이미 15년 전에 사망했다.이경혜는 믿을 수도 없고 받아들일 수도 없었다. 수십 년을 찾아 헤맨 여동생이 15년 전에 사망했다는 말인가?그녀는
만약 하예진 자매가 정말 이경혜의 외조카라면...그녀는 두 조카가 겪은 모든 상황을 되새기더니 심장이 갈기갈기 찢어질 것 같았다.“엄마 곧 도착하니까 기다리고 있어. 우리 함께 우빈이 보러 가자.”이는 가장 희망적인 단서니까 그녀는 꼭 한번 동생을 닮은 아기를 만나보리라 다짐했다....임씨 일가.“아빠, 엄마, 이사하지 마. 나 예정이한테 손해배상 요구하지 않을게. 그럼 되잖아?”주서인은 아직도 부모님이 임씨 일가에서 나가는 걸 막고 있었다.어제 부모님이 돌아오시자마자 짐을 싸기 시작했는데 그녀가 울며불며 맹세한 덕에 하룻밤 묵게 되었다.다음 날이면 부모님의 화가 다 가라앉을 줄 알았는데 또다시 집을 나가려 하다니, 그녀는 미처 예상치 못했다.아빠가 유난히 화가 많이 나셨고 임수찬도 설득에 나섰다.“장인어른, 장모님, 서인이 말이 맞아요. 이사하시거든 아무도 두 분을 챙겨드릴 수 없는데 우리가 어떻게 마음 놓겠어요? 그냥 여기서 지내세요. 한 가족이 오붓하게 지내면 좋잖아요. 장인어른, 요한이도 잘못한 걸 깨달았어요. 이따가 저랑 서인이가 요한이 데리고 우빈이한테 가서 사과할게요. 어제도 이미 요한이 따끔하게 혼냈어요.”주경진은 소파에 앉아 담배만 피울 뿐 아무 말이 없었다.그의 옆에는 이미 다 정리한 캐리어가 놓여 있었다.김은희는 남편을 쳐다보더니 하려던 말을 꾹 참았다.주형인은 감히 입도 뻥긋하지 못했다.어제 누나의 집으로 와서 큰조카가 매형에게 심하게 혼나는 걸 보고 나서야 그도 화가 조금 풀렸다.“아빠.”“시끄러워.”주경진이 으름장을 놓으며 고개 들어 딸을 힐긋 째려봤다. 아들 녀석이 아무 말도 못 한 채 옆에 서 있기만 하는 모습에 그는 더욱 화가 났다. 임요한이 임수찬에게 혼난 것은 사실이지만 얼굴을 얼음찜질한 후에 부기가 싹 가라앉았다. 멍 자국이 아주 살짝 났지만 자세히 들여다보지 않으면 전혀 발견할 수 없다.벨트에 맞은 흉터 자국도 연고를 바르니 금세 나아졌다.그런데 정작 우빈이는 어떤가?주경진은 창피함도
“또 무슨 용건이 더 남았어요?”주서인이 쏘아붙였다.그녀는 하예정 일행을 문밖에 세워두려 했지만 홀로 힘에 부쳐 막으려야 막을 수 없었다.그녀의 남편은 도리어 깍듯하게 하예정 일행을 안으로 모셨다.임요한은 분노에 찬 눈빛으로 하예정 일행을 째려봤다.임수찬은 그런 아들을 보자마자 가차 없이 살을 꼬집었다.“이따가 정중하게 사과드려.”임수찬이 나지막이 아들에게 말했다.“이 사람들 절대 호락호락하지 않아.”임수찬의 집을 풍비박산 냈는데도 전혀 아무렇지 않았고 어제 경찰서 사람들도 임수찬 가족을 편들지 않았다.임수찬은 전씨 일가가 대단한 집안이란 걸 바로 알아채고 흔쾌히 고개를 숙였다. 그리고 아들에게도 진심으로 사과하라고 말해주었다.다만 실은 임수찬이 생각이 너무 많은 탓이었다. 경찰서 사람들은 CCTV를 확인한 후 임요한의 행동이 너무 악랄하다고 생각되어 임씨 일가를 짓부순 일을 무시했을 뿐이다.아이를 병원에 실려 갈 정도로 때려놓았는데 집을 박살 낸 것쯤이야 뭐가 대수겠는가?자식이 없으면 덜 공감하겠지만 아이가 있는 부모라면 이런 일을 지켜봤을 때 분노가 저절로 차오를 것이다.임요한은 입을 삐죽거리며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그는 끝까지 잘못을 인정하지 않았다. 정한이가 말하기를 주우빈이 먼저 손을 댔다고 했으니 정한의 형으로서 반드시 동생을 위해 앞장서야 했다.‘그러게 누가 우빈이더러 우리 정한이 때리라고 했어?! 내가 우빈이 때려죽인 것도 아닌데 왜 어른들은 날 대역죄인 취급하는 거야?’임요한의 막무가내는 그의 엄마 주서인을 쏙 빼닮았다.“예정 씨.”주경진이 온화한 표정을 지으며 하예정에게 물었다.“우빈이는 좀 어때요?”“아빠, 요한이도 이젠 다 나았으니 우빈이도 틀림없이 회복됐을 거야.”주서인이 선뜻 말을 가로챘다.하예정은 싸늘한 눈길로 주서인을 째려봤다.주서인이 아니꼬운 듯 그녀에게 쏘아 붙였다.“뭘 째려봐요? 예정 씨, 어제 우리 집을 풍비박산 냈으니 이 금액은...”아빠의 싸늘한 눈빛과 남편의 극구 말림에
김은희가 버럭 고함을 지르더니 눈을 비비며 다시 임요한을 꾸짖었다.“요한아, 우빈이는 네 친사촌 동생이야. 어떻게 애를 그 지경으로 팰 수 있어?”“엄마, 요한이도 잘못한 거 알아. 아직 애라서 그래!”주서인이 아들을 대신해 변명을 늘어놓더니 또다시 하예정에게 쏘아붙였다.“예정 씨, 요한이가 우빈이 때린 건 정말 잘못했어요. 애 아빠도 어제 따끔하게 혼냈고요. 이따가 요한이 데리고 과일 좀 사서 우빈이 보러 갈게요. 가서 제대로 사과하면 될 거 아니에요. 어찌 됐든 친척이니 당신들이 우리 집을 짓부순 일은 더 따지지 않을게요. 그러니까 요한이도 인제 그만 다그쳐요. 애들이 장난치며 노는 건 너무 당연한 일이에요. 우리 어른들이 끼어들면 그때부터 변질되는 거죠. 게다가 정한이가 분명 주우빈이 먼저 손댔다고 했어요. 요한이는 형으로서 당연히 제 동생을 지키고 싶었겠죠. 예정 씨가 지금 언니 예진이를 지켜주는 것처럼 말이에요.”하예정이 쓴웃음을 지었다.“주서인 씨, 입이 삐뚤어도 말은 바른대로 해야죠. 대체 누가 먼저 손을 댔는지 이 댁 카메라에 똑똑히 찍혔어요. 눈 똑바로 뜨고 확인해보던가요!”주서인은 말문이 턱 막혔다.그녀는 또다시 속으로 남편의 무능함을 원망했다.‘진작 CCTV 영상을 지웠어야지 어떻게 경찰한테 넘어갈 때까지 내버려 두고 있어?’영상이 증거로 남아있는 한 그녀도 더는 뻔뻔스럽게 거짓말을 이어갈 수 없다.“말해봐요, 오늘 온 용건이 무엇인지!”주우빈에게 죄를 뒤집어씌울 수 없게 되자 주서인은 화제를 돌려 하예정 일행에게 오늘 찾아온 의도를 물었다.그녀는 전씨 일가의 사람들을 쭉 둘러보았다. 그들은 딱히 무언가를 하지 않아도, 그저 이렇게 앉아있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위압감을 주었다.주서인의 시댁 식구들은 하나같이 기가 죽어 입도 뻥긋하지 못했다!‘온 집안에 쓸만한 인간이 없어!’주서인은 속으로 시댁 식구들을 욕했다.어르신과 눈이 마주친 주서인은 참지 못하고 퉁명스럽게 쏘아붙였다.“보긴 뭘 봐요? 왜 어딜 가나 당신이
주경진이 날카롭게 째려보자 주서인은 더는 아무 말도 못 한 채 동생 주형인한테만 미친 듯이 곁눈질을 했다.주형인은 누나의 눈빛을 보더니 냉큼 목을 축이며 하예정에게 말했다.“처제, 그냥 우리 누나가 요한이 데리고 가서 사과하면 되지? 나도 우빈이 아빠라 보호자 중 한 명이니까 결정권이 있는 것 같은데.”하예정이 한심하다는 듯이 쏘아붙였다.“우빈이 아빠란 걸 알고는 있었네요? 다른 아빠들은 제 아들이 괴롭힘을 당하면 칼을 들고 가서라도 상대방을 때려죽일 기세던데 형부는 어쩜 이렇게 무덤덤할 수 있죠? 조카가 아들보다 더 소중하나 봐요?”이어서 그녀는 임수찬에게 말했다.“우빈이는 응급실에 실려 가서 겨우 살려냈어요. 전면 검진도 받았고요. 병원비용은 몇십만 원 정도 들었어요. 영수증 전부 가져왔으니 내가 막무가내로 돈을 요구한다고 뭐라 하지 말았으면 좋겠네요. 오늘은 일단 당신들이 요한이를 데리고 직접 우빈이한테 찾아가 정중하게 사과하고, 앞으론 두 번 다시 우빈이를 가까이하지 않겠다고 맹세하세요. 두 번째는 배상에 관한 문제인데 우빈이가 받은 정신적 충격은 앞으로 얼마나 더 많은 돈을 써야 치유가 되겠는지 모르겠네요.”“그 금액은 아직 가늠할 수 없어 지금 일단 병원비부터 배상하세요. 추후에 우빈이가 또다시 치료를 받는다면 그때도 모든 비용을 당신들이 부담해야 할 거예요. 영양제며 정신적인 손해배상이며 전부 다요. 우리도 너무 많이 요구하진 않아요. 어제 병원비까지 다해서 일단 천만 원만 배상하세요.”주서인이 자리에서 펄쩍 뛰어올랐다.“예정 씨, 아예 은행을 털지 그래요? 우빈이가 고작 몇 살인데 영양제, 정신적 손해배상이 웬 말이냐고요? 그럼 우리 요한이도 맞았는데 당신들이 배상해줄래요?”하예정이 되물었다.“당신 아들이 누구한테 맞았죠?”주서인은 말을 잇지 못했다.한참 후 그녀는 분노에 찬 표정으로 말했다.“형인이랑 예정 씨 언니가 곧 이혼하게 되니 일부러 이러는 거죠? 그 돈이면 예진이한테도 어마어마한 액수일 텐데요. 두 살짜리 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