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명은 본능적으로 먼저 품에 안긴 녀석을 꼭 끌어안고 뒤이어 눈을 번쩍 떴다.눈앞의 사람이 하예진인 것을 확인한 노동명은 그제야 활짝 웃으며 하예진에게 물었다.“일 끝났어? 집에 가도 돼? 우빈이가 졸린다고 하길래 안고 재우려고 했는데 나까지 깜빡 잠들었어.”하예진은 아들의 작은 얼굴을 만지던 손을 거두어들였다.노동명이 눈치채더니 무척 후회했다. 반응이 왜 이렇게 느린지, 하예진이 손을 내려놓을 때 재빨리 그녀의 손을 잡고 자신의 얼굴을 만지게 해야 했었는데.누가 들어가도 깨어나지 못할 정도로 잠을 깊이 자야 했었는데.어쩌면 하예진이 그가 잠들었을 때 몰래 뽀뽀했을 수도 있다.지금 자는 척해도 늦지 않을지...“끝났어요. 동명 씨, 수고하셨어요. 늦은 시간까지 우빈이를 돌봐주시고.”노동명이 한마디 했다.“너와 나 사이에 뭘 그렇게 예의를 갖춰. 우빈이도 날 잘 따라주니 너무 기쁘기만 한 걸.”예전에 노동명이 우빈이를 안고 싶어 했지만 우빈이는 자신을 다치게도 하지 못했다. 노동명의 얼굴에 칼자국이 있었기 때문이다.노동명은 지금까지도 얼굴의 칼자국을 제거하는 수술을 받지 않았다.하예진도 그의 얼굴에 난 칼자국에 대한 사연을 알고 있었기에 그 자국을 남기고 있는 이유에 대해서도 이해해 주었다.처음 노동명을 만났을 때 하예진도 그의 얼굴에 남은 자국을 무척 무서워했다.하지만 그 칼자국이 익숙해진 하예진은 무섭기는커녕 자꾸 마음이 아프기만 했다.당시 그 칼이 얼굴에 베었을 때 얼마나 아팠을까.“동명 씨 경호원은 아직도 밖에 있어요?”하예진이 살며시 물어보았다.노동명이 대답했다.“응. 우리 사람들은 날 떠나지 않을 거야.”밤이 아무리 깊어도 노동명이 아직 식당에 있는 한 경호원은 그를 기다려서 집에 데려다주어야 했다.하예진이 노동명을 배웅할 수 있지만 밤이 깊어졌기에 노동명은 허락하지 않았다. 노동명은 하예진이 그를 집으로 바래다준 다음 다시 그녀의 집으로 돌아간다면 안전하지 않다고 생각했기에 걱정할 것이 매우 뻔했다.하예진은
“예진이 넌 요리하기를 좋아하고 사람들에게 비싸지 않고 맛있는 요리를 맛보게 하고 싶어 하잖아. 내 생각엔 체인점을 많이 발전시키는 게 더 좋을 것 같아.”“관리방식에서도 좀 더 엄하고 자신만의 체계적인 방식으로 다스려야 해. 중심을 잡아주는 것이 무척 중요하거든. 중심이 무너져버리면 모든 것이 마치 모래처럼 금방 흩어질 테니까.”“난 네가 성공할 것이라고 믿어. 급해 하지 말고 천천히 한 걸음 한 걸음 올라가면 돼. 단숨에 하늘을 오를 순 없으니까. 그러다 보면 경험도 쌓을 수 있어서 좋을 거야.”하예진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이었다.“동명 씨 말에도 일리가 있어요. 서두르지 않고 천천히 해 볼게요. 불구덩이에 빠지지 않게끔 노력해야죠. 밑천까지 잃으면 안 되니까.”하예진은 아직 젊으니 앞으로 8년, 10년을 더 분투해서 그녀만의 특급호텔을 지을 수 있을 것이다.노동명을 밀고 가게 나선 하예진은 멈춰 서서 대문을 닫고 자물쇠를 채운 뒤 셔터를 내릴 준비 했다.“예진 씨, 제가 할게요.”노씨 가문의 경호원이 셔터를 내리려는 하예진의 모습을 보더니 재빨리 다가와 하예진을 도와 내려주었다.“고마워요.”“별말씀을요.”경호원은 셔터를 내린 후 노동명을 바라보았고 그의 품에 안긴 우빈을 한 번 보았다. 그러더니 노동명을 계속 하예진과 함께 있게 내버려 두어야 하는지, 집으로 모셔야 하는지 잠시 어찌할 바를 몰랐다.“동명 씨, 늦었어요. 오늘 너무 피곤하셨을 텐데 먼저 들어가서 쉬세요. 제가 우빈이 데리고 집으로 가면 돼요.”하예진은 다가가서 허리를 굽혀 노동명의 품에 안겨 깊이 잠든 아들을 안아 들었다.깊은 잠에 빠진 우빈은 엄마에게 안겨도 깨지 않았고 여전히 엄마의 어깨에 머리를 기대어 꿈나라에서 날아다니고 있었다.“내가 너무 걱정돼서 그래. 내가 먼저 데려다줄게.”노동명은 여전히 시름이 안 놓였다.사람들이 하예진 모자를 건드리지 못하고 있는 이유가 바로 하예진 배후에 있는 큰 가문들이 있었기 때문이다.하지만 노동명은 겁도 없이 덤벼드
오늘 나머지 경호원이 일이 생겨서 휴가를 냈기에 경호원 한 명만 노동명을 따라다녔고 하예진은 경호원 한 분이 노동명을 부축하지 못할까 봐 걱정했다.경호원은 거절하지 않았다.경호원과 하예진은 함께 노동명을 부축해 차에 오르게 했고 노동명이 차에 오르자 하예진이 안전벨트를 부드럽게 매주었다. 그리고 경호원은 바로 휠체어를 트렁크에 실었다.노동명은 하예진이 그에게 안전벨트를 매주면서 거리가 가까워지는 것을 보더니 하마터면 자신의 양손을 공제하지 못할 뻔했다. 그는 두 손으로 그녀를 안고 싶은 충동을 가까스로 억제하고 있었다.요즘 들어 하예진이 점점 가족처럼 느껴졌기에 일시적인 충동으로 인해 여태까지 공들여 쌓은 탑이 무너질까 봐 두려웠다.“사실 배웅해 줄 필요 없어요. 멀지 않은걸요.”노동명은 그윽한 눈빛으로 그녀를 뚫어지게 바라보았다.“너와 우빈이가 집에 들어가는 것을 직접 보지 못하면 마음이 안 놓여서 그래.”아무리 거리가 가깝다고 한들 여전히 걱정되었다.하예진은 노동명과 잠시 눈을 마주친 뒤 무언가 말을 하려는 듯했고 노동명은 말이 내뱉어지기를 기다렸다. 하지만 그녀는 결국 아무 말 없이 뒤로 물러서더니 노동명의 차 문을 닫아 주었다.노동명은 실망하지도 않았다. 그는 하예진에게 자신을 받아들이는 시간을 충분히 주어야 한다고 생각했다.전씨 할머니가 노동명에게 제안한 것처럼 그가 견지하기만 한다면 하예진은 분명 그를 받아들일 것이다.하예진이 노동명에 대한 태도는 예전과 완전히 달랐다.노동명이 하예진에게 고백한 뒤로 그녀는 노동명과 단독으로 지내는 공간을 될수록 피했다.하지만 지금, 하예진은 피하지 않았다. 정정당당하게 노동명과 함께 지냈고 남들이 뒤에서 뭐라고 하든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하예진은 정말로 변했다.전씨 할머니께서 말씀하셨듯 하예진이 실패한 결혼을 경험했기에 재혼에 관한 일은 더더욱 조심할 것이고 상대방이 아무리 좋은 남자라고 해도, 노동명이 특별히 일편단심인 남자라고 해도 너무 조급하게 다가가서는 안 된다고 했다.하예진
하예진은 전태윤 부부가 그녀에게 선물한 별장을 완곡하게 거절했기에 그 별장은 지금까지 소유권의 명의를 변경하지 않았고 하예진도 그 별장에 들어가 살 생각을 하지 않았다.하예진은 더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하예진이 아무 말이 없자 경호원은 더는 말을 잇지 않았다. 경호원은 하예진을 그녀의 집으로 데려다주었고 하예진이 문을 열고 들어가는 모습을 보며 말을 건넸다.“예진 씨, 문을 잘 잠그고 주무세요. 그럼 저는 이만 가보겠습니다.”“네, 고마워요. 운전 조심하세요.”하예진은 경호원에게 안전에 주의하라고 당부했다.경호원은 자리를 떠났다. 하예진은 먼저 아들을 소파 위에 눕힌 후 서둘러 걸어 나와 문을 잠갔고 그제야 아들을 안아 들어 방 안으로 들어갔다.“아기 돼지처럼 깊이 자네. 아직 샤워도 안 했는데.”하예진은 아들의 작은 얼굴을 살짝 꼬집었고 깊이 자도록 깨우지 않았다.내일 아침에 일어나서 따뜻한 물로 샤워시키려고 했다.“우빈아.”하예진은 허리를 숙여 아들의 작은 얼굴에 뽀뽀를 해주었다.“미안해. 엄마 따라 매일 늦게 집으로 돌아오게 해서.”우빈은 깊이 잠들었기에 엄마가 하는 말을 듣지 못했고 따라서 대답도 하지 않았다.하예진은 서둘러 일어나서 목욕하러 갔다.샤워하고 나오노 하예진은 핸드폰에 노동명이 보낸 많은 메시지를 보았다.노동명은 메시지로 하예진에게 하늘 리조트로 들어가 살라고 설득했다. 그곳은 보안 시스템 수준이 훨씬 높았고 노동명도 그곳에 별장이 하나 있었다. 소정남도 그곳에 별장 하나가 있다.전태윤이 가장 먼저 하늘 리조트에서 별장 하나를 샀다. 그 뒤로 노동명과 소정남도 그 리조트로 가서 각각 별장 한 채를 샀다. 세 사람은 특별히 친한 사이라 같은 리조트에서 살면서 편히 연락하면서 지내려고 했다.한밤중에 친구 집에 술 마시러 갈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전태윤이 방금 하예정과 혼인신고를 했을 때 부부 사이가 틀어질 때마다 그들은 한밤중에 두 친구를 불러 나가서 술을 마시곤 했고 술에 취하면 강일구가 그들을 집으로 데
하씨 집안의 부모가 돌아가셨을 때 하예정은 겨우 열 살 어린아이였기 때문에 하예진이 친동생을 키웠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하예진 자매는 서로에 대한 애정이 깊어 하예진은 하예정의 엄마이자 언니였다.하예정이 전씨 가문의 사모님으로 된 후 큰일이 생기지 않은 이상 하예진은 친동생 부부의 도움을 받지 않으려 했다.전태윤 부부도 그런 하예진을 보며 어쩔 수 없었다.누가 하예진을 설득해도 안 되는 일이었다.이경혜마저 그녀를 타이르기도 했다.“우리가 이곳에 이렇게 오래 살았는데 항상 아무 일도 없이 안전했어요. 오늘 밤에만 취객을 만났을 뿐이에요. 앞으로도 이렇게 늦게 집에 가지 않을 거예요. 오늘은 특수한 상황이니까.”“동생의 후원자가 되지 못할망정 어찌 동생의 발목을 잡을 수 있겠어요. 하늘 리조트에서 별장 한 채만 해도 100억 원 넘어요. 게다가 제부가 구매한 그 별장은 가장 큰 별장으로 아마도 200억 가까이 될걸요.”“이렇게 후한 선물을 받을 수 없어요.”하예진은 집 한 채에 2억 원 남짓 하는 집이라면 아들의 안전을 생각해서라도 뻔뻔하게 받을 수도 있었다.하지만 전태윤은 재력이 막강한 탓인지 그의 명의로 된 빌딩 중에서 가장 싼 집이 바로 발렌시아 아파트였다.전태윤은 발렌시아 아파트 중 한 채만 샀지만 나머지는 빌딩 하나를 통째로 사지 않는가 하면 별장 구역 전체를 모두 구매해 버리는 사람이다.하여 전태윤은 처형에게 하늘 리조트 중 가장 큰 별장으로 선물하려 했다.하지만 하예진의 성격으로는 그렇게 비싼 집을 받아들일 리가 없었다.노동명은 계속해서 설득했다.“그렇게 생각하지 마. 태윤의 집이 엄청나게 많거든. 또 예정 씨를 많이 사랑하기 때문에 너를 친누나처럼 생각하고 있을 거야. 태윤이는 단지 예정 씨와 함께 너에게 효도하고 싶은 마음뿐이야. 받아도 돼. 생각 많이 할 필요 없어.”“그리고 앞으로 너의 사업이 점점 커지면서 중요한 일들도 더 많아질 테니 밤늦게 집으로 갈 일도 많을 거 아니야. 예진 씨가 우빈이를 돌보아준다 해도 너
“동명 씨, 너무 늦었어요. 일찍 쉬세요.”“그래, 너도 얼른 쉬어. 난 할 일도 없어 좀 늦게 잘 거야. 늦게 일어나도 상관없으니까.”두 사람은 인사를 나누고 통화를 끊었다.노동명은 차에서 내리려고 했다.경호원은 먼저 휠체어를 땅에 내려놓은 후 노동명을 천천히 부축하여 차에서 내리게 했다.노동명이 휠체어에 앉은 뒤에야 경호원은 다시 그를 밀어 집으로 들어갔다.이 시간에 노씨 집안 사람들은 모두 잠들었다.노동명이 금방 집으로 들어올 때 경호원이 아직 불을 켜지 않았는데도 방 안의 불이 켜져 있었다. 윤미라가 켜놓은 것이다.윤미라가 위층에서 내려왔다.“사모님.”경호원은 공손하게 인사를 했다.“엄마, 이렇게 늦었는데 아직도 안 주무셨어요?”윤미라는 걸어오면서 경호원에게 퇴근해도 된다는 신호를 보냈고 아들이 앉은 휠체어를 밀고 안으로 들어갔다.“네가 계속 돌아오지 않아서 안심할 수 없었어. 잠도 안 오고. 밖에 인기척을 주의하고 있었는데 현관문이 열리는 소리를 들었어. 그래서 베란다에서 내다보니 네 차가 들어오길래 얼른 내려와서 마중 나왔지.”“왜 이렇게 늦게 돌아왔어?”하예진의 새 가게가 오픈하자 윤미라도 다른 며느리를 데리고 가서 축하해 주었다.노씨 가족은 하예진을 예비 며느리로 받아들였기 때문에 같은 가족의 일원이 가게를 오픈하면 마땅히 축하해 주러 가야 한다고 생각했다.하지만 그들은 식사를 마치고 잠시 머무르다가 이내 가게를 나섰다. 막 오픈한 날이라 해도 장사를 정상적으로 해야 했기 때문이다.하예진은 바삐 돌아쳤다.그들과 같은 귀부인들은 하예진의 일을 도울 수 없었기 때문에 하예진의 장사를 방해하지 않으려면 가게를 떠나는 방법밖에 없었다.“예진이가 가게 일을 마치고 예진의 집에 데려다주고 오느라 늦었어요.”노동명은 솔직히 대답했다.윤미라가 말을 이었다.“예진한테 너무 악착같이 장사하지 말고 밤 9시면 퇴근하라고 해. 사장님은 가게에서 문 닫는 순간까지 지킬 필요는 없어.”하예진도 점장님을 청해 직원들을 관리하게 했
하예진은 사장님으로 되였기에 옷차림도 많이 우아해 졌다.하예진은 매우 예쁜 여자였다. 예전에는 너무 뚱뚱하여 예쁜 얼굴이 가려졌던 것이다. 그 뒤로 다이어트에 성공해서 덮여졌던 예쁜 얼굴도 드러나게 되었고 딴 사람으로 태어난 듯했다.얼굴도 환해져서 어디로 가나 사람들의 주목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예쁜 여자가 워낙 시선을 끌기 쉬운 데다 하예진은 또 아들을 데리고 홀로 살고 있어 그녀가 이혼녀라는 사실을 다들 알고 있었다. 따라서 많은 남자도 그녀를 주시하고 있었다.악의 없는 사람이 없다고 누가 장담할 수 있겠는가!“제가 예진이 보고 태윤이가 선물한 하늘 리조트의 별장으로 이사하라고 설득했어요. 저도 그 리조트에 별장이 있기에 예진이가 이사하기만 하면 저도 저의 별장으로 들어가 생활하려고요.”“앞으로 서로 보살피기도 편하고. 평소에 저도 예진이 곁에 있거나 경호원을 예진이뒤에 따라다니게 하려고요.”“예진의 고집을 꺾을 사람이 없을 거야.”예전에 윤미라가 하예진을 찾아 그녀를 관성에서 떠나게 하려고 했지만 하예진의 반박에 윤미라는 말을 잇지 못했다.하예진은 원칙성이 매우 강한 여자였다.그녀는 실제 행동으로 자신을 증명했다.“맞아요.”노동명도 한마디 보탰다.그런데 노동명은 하필이면 그 고집 센 여자를 사랑하게 되었다.윤미라는 잠시 침묵하다가 말을 꺼냈다.“예진이 성격이 예진이 이모와 너무 비슷해. 예진이 이모가 그런 분이시거든. 그래서 하예진도 열다섯 살 되는 친동생을 데리고 X떡같은 고향을 떠나 홀로 예진이를 잘 키웠잖아. 동생이 얼마나 훌륭해.”하예정의 훌륭함은 하예정 자신의 노력도 있지만 친언니의 교육과도 관계를 뗄 수 없었다.하예진은 돈이 없어 자신이 무술, 피아노 등을 배우지 못했지만 친동생을 배우게 했다. 그녀들은 그녀들의 부모님 사망 보상금으로 겨우 대학을 졸업했다.하예정이 배우고 싶어 하는 수업도 아마 하예진이 아르바이트해서 번 돈으로 배우게 했을 것이다.하예진은 교육을 매우 중시했다.그 당시 하예진도 아직 미성년자
우빈이에 관한 말이 나오자 노동명의 얼굴에는 부드러운 미소가 맴돌기 시작했다. 그리고 윤미라를 보며 말했다.“제가 오늘 밤 우빈이를 안고 재웠거든요. 잠든 우빈이를 보면서 어찌나 예쁘던지. 꽉 깨물고 싶었다니까요.”“그 녀석 보면 볼수록 귀여워요. 점점 좋아져요.”“아빠라고 부르는 것은 바라지도 않아요. 저를 아저씨라고 부르는 것만으로도 저는 감사할 따름이에요.”주형인은 여전히 살아있다.우빈은 그의 아버지와 정이 깊지 않지만 주형인이 친아버지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옛날에 노동명이 우빈을 달래면서 우빈의 새아빠가 되고 싶다고 말했을 때 우빈이는 친아빠가 있으니 다른 아빠를 찾을 필요 없다고 했다. 욕심이 많지 않기 때문에 아빠 한 분이면 충분하다고 했다.우빈의 말을 들은 노동명도 그제야 우빈이가 그를 아버지라 부르지 않을 것을 알았다.그래서 하예진과 결혼해서 그녀와 함께 우빈을 키우고 우빈이가 아저씨라고 부르는 것만으로도 매우 만족했다.어쨌든 노동명이 우빈의 엄마를 빼앗지 않았는가!“우빈이는 너무 귀엽고 사랑스러워서 그를 좋아하지 않는 사람이 없을걸.”윤미라가 아들을 보며 말했다.“네가 예진이와 결혼한 뒤로도 우빈이가 널 아빠라고 부르지 않으면 강요하지는 마. 친아버지도 살아 계시고 양육비도 내주기에 친아버지의 존재를 지울 수는 없어.”“너와 예진이가 아이를 낳을 수만 있다면 이 어머니는 정말 죽어도 한이 없을 것 같아.”윤미라의 네 아들 중 막내아들을 제외한 모든 자식은 다 결혼했고 심지어 아이까지 낳았다. 유독 막내아들만 그녀를 걱정하게 했다.예전에 윤미라는 하예진이 마음에 들지 않았고 아들이 하예진과 함께 있는 것을 동의하지 않았다.그러나 지금 윤미라는 하예진을 받아들였지만, 아들이 휠체어에서 일어나지 못하고 있었기에 두 사람이 언제 함께 인생을 살아갈 건지 무척 걱정하고 있었다.두 사람 모두 서른 살이 넘었다.나중에 두 사람이 정말로 함께 미래를 약속하고 결혼하여 아이를 낳게 된다면 고령 산모에 속할 것이다.그러나 노동명
“제가 만약 아저씨와 결혼하게 되면 나가서 살 거예요. 시부모님과 거리를 두는 것도 좋아요.”윤미연은 잠자코 있다가 말을 꺼냈다.“만약 지훈 씨의 어머님이 널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시댁과 함께 살지 않는다고 해도 너의 결점을 들추어내고 너희 부부의 감정을 깨뜨리려고 할 거야. 시어머니는 지훈 씨의 친어머니기 때문에 지훈 씨가 친어머니와 인연을 끊을 수는 없잖아?”정윤하는 말을 잇지 못했다. 잠시 후 그녀는 한숨을 내쉬며 입을 열었다.“엄마, 아저씨의 마음을 아직 받아들이지 말라는 말씀이세요? 원래는 잘 정리해 놓았는데 지금은 어떻게 해야 할지 또 혼라스러워져요. 혼자 있는 것도 좋긴 해요. 그렇게 복잡한 관계를 처리하지 않아도 되니까요. 제 성격도 심술궂은 사람과는 어울리지 못해요. 다들 재벌 가문의 시어머니들과 어울리기 힘들다고 하던데. 예정 씨와 효진 씨네 시어머니처럼 사리에 밝은 사람은 많지 않더라고 하던데. 제가 듣기로는 전태윤 씨와 예정 씨가 금방 함께 있었을 때 시어머니는 사실 그녀를 받아들일 수 없었다고 하셨어요. 하지만 예정 씨 시어머니는 상처를 주거나 부부의 관계를 틀어놓는 일을 한 적이 없대요. 오히려 아들 부부의 일이 남의 입에 오르내릴 때마다 공개적으로 감싸주며 쓸데없는 말을 하는 사람들에게 욕설까지 퍼부으셨대요. 예정 씨 시어머니는 우아하고 고상하신 분이라고 들었는데 며느리를 위해 상대방을 욕하기까지 하셨대요. 예정 씨와 그녀의 시어머니가 함께 지내는 시간이 많지 않지만, 시부모님을 특히 존경하고 있거든요. 저는 현실 속에서 그런 시어머니는 드물다고 생각해요.”윤미연은 딸을 나무랐다.“넌 아직 지훈 씨의 부모님을 만나본 적도 없는데 널 좋아하지 않는다는 것을 어떻게 알아? 꼭 한번 만나 뵙고 그때 가서 다시 논의하자.”“그런데 아저씨랑 연애하고 정이 이미 깊어졌을 때 그분들이 우리 두 사람 사이를 갈라놓으려고 하면 저는 엄청 고통스러울 것 같아요. 이럴 바에야 처음부터 관계를 이루지 않고 현재 생활을 유지하면서 지금처럼 친구로
윤미연은 정윤하와 마음을 나누고 싶어 했다.“샤브샤브를 먹기 때문에 별로 준비할 것도 없어. 밥은 진작 했지. 너와 지훈 씨가 잘 지내는 것 같던데. 그분도 너에게 진심인 것 같으니 며칠 동안 잘 생각해 보고 답을 주렴.”정윤하가 말을 이었다.“엄마, 아저씨가 일시적인 호기심 때문에 갑자기 저에게 고백한 건 아닐까요? 아저씨 집에 돈도 많고 부잣집 도련님인데 만나본 미녀들도 수두룩할 거 아니에요. 저의 미모로 아저씨를 반하게 만들지는 못할 것 같은데. 그냥 놀고 싶은 건 아닐까요? 어쩌면 지금은 저에게도 진심일 수도 있겠지만 결혼 후에는 마음이 변해서 바람을 피울 수도 있는데 바람피우거나 밖에서 내연녀랑 가정을 이룬다면 저는 받아들일 수 없을 것 같아요. 그때 가서 제가 아저씨를 이길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멀리 있는 관성에서 엄마의 도움도 받지 못하면 어떡하죠?”윤미연은 곰곰이 생각하더니 대답해 주었다.“글쎄... 하지만 결혼 생활은 두 사람이 서로 잘 가꾸어야 하는 법이야. 너희 두 사람이 심혈을 기울여 잘 가꾸어 나가면 그런 일은 걱정하지 않아도 되지 않을까? 다만 그 집안 부모님이 널 마음에 들어 하실지 모르겠어.”정씨 가문은 연성에서도 이름이 있는 가문이다. 돈이 많아서가 아니라 정합 도장이 유명하기 때문이다. 수조 원의 재벌가는 아니지만 겨우 수백억 원을 넘는 자산 정도는 갖고 있다.소씨 가문과 비하면 너무 많이 차이가 나지만 말이다.만약 소지훈의 부모님이 정씨 가문을 마음에 들어 하지 않는다면...“관성에 갔을 때 지훈 씨 부모님을 본 적이 있어? 너에 대한 태도는 어땠어? 태도가 좋고 잘 웃으신다면 그래도 희망은 있을 텐데. 차갑거나 공손한 태도로 임한다면 네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의미이고. 만약 그의 부모님이 싫어하신다면 우리는 단념하자. 아빠 엄마가 널 평생 책임질 수 있으니까. 네가 그 가문으로 가서 괴롭힘당하는 꼴을 우린 못 봐.”윤미연은 평소에 딸을 욕할 때 몇 번이고 그녀의 친딸이 아니라고 하지만 누군가가 정윤하를 괴
정윤하의 얼굴은 노을처럼 빨개졌다.그녀는 작은 목소리로 대답했다.“방금 아저씨가 도장으로 바비큐를 가져왔거든요. 엄마, 제가 먹자고 한 것이 아니라 저희 학생들이 먹고 싶다고 했어요. 아저씨도 학생들을 사랑하는 마음에 바비큐를 사다 준 거예요. 제가 바비큐를 먹고 있는데 아저씨가 갑자기 저를 좋아한다고 고백한 거예요. 친구 사이가 아닌 남녀 간의 사랑이라면서 저를 사랑한다고 저와 결혼하고 싶다고 말한 거 있죠. 참, 그리고 저에게 꽃다발도 선물해줬어요. 그 꽃을 받으니 어떤 생각이 드냐고 묻길래 꽃 떡이 먹고 싶은 생각이 든다고 대답했어요.”윤미연은 그 말을 듣고 두 눈을 부릅뜨고 딸을 노려보았다.그 모습을 본 정윤하는 점점 작은 소리로 무고한 표정으로 계속 말을 이었다.“아저씨가 저에게 장미꽃을 선물했길래 그렇게 많은 장미꽃 앞에서는 장미꽃 떡만 생각났다니까요. 무슨 심정이냐며 묻길래 사실대로 대답한 것뿐이에요.”윤미연은 정윤하의 이마를 쿡쿡 찌르면서 퉁명스럽게 말했다.“왜 이렇게 멍청해? 종일 먹을 생각만 하다니. 네가 바비큐를 좋아하니까 지훈 씨가 그렇게 많은 바비큐를 포장해 간 거 아니야? 날씨가 춥다고 바비큐를 먹으면 소화가 잘될 줄 알았어? 내가 이따가 차 한 잔 끓여 줄게.”“엄마, 괜찮아요. 아저씨가 모두에게 보이차도 사줬어요. 보이차도 소화가 잘되는걸요. 학생들도 바비큐를 먹는 데 익숙해져서 소화도 잘될걸요.”윤미연은 그제야 시름 놓으며 말을 건넸다.“지훈 씨는 보이차를 사줄 줄도 알고 역시 자상하구나.”윤미연은 말을 마친 후 정윤하를 노려보더니 한참 뒤에야 정윤하에게 물었다.“지훈 씨가 갑자기 고백하는 바람에 이렇게 일찍 집으로 달려온 거야?”정윤하는 덤벙대며 줄곧 소지훈을 형제로 대했는데 갑자기 고백을 받고 놀란 것도 당연한 일이다..“거절한 건 아니지?”윤미연은 긴장하며 물었다.“당분간은 받아들이지 않을 수도 있어. 그런데 바로 거절하지는 마. 여지를 남겨두어야 해. 너도 이제 스물네다섯 살이나 되었는데, 너를
“지훈 씨가 회사 대표는 맞지만 신분이 단순하지 않을 거야. 분명 우리에게 숨기고 있는 일이 있을 거야. 우리에게 말하지 않을 뿐이지.”“누구나 자신만의 비밀을 가지고 있기 마련인걸요. 다른 사람에게 말할 수 없는 비밀 같은 거요.”정윤하가 소지훈의 편을 들어주었다.윤미연은 또 말을 꺼냈다.“잘 생각해 봐. 네가 지훈 씨를 처음 만났을 때 싸울 줄 모르는 것처럼 하지 않았어? 네가 도와준 뒤로 은인이라고 떠들면서 너에게 은혜를 갚겠다고 무척 잘해줬잖아. 엄마가 드라마를 너무 많이 봐서 그럴 수도 있는데 나는 지훈 씨가 처음부터 너를 겨냥하고 너에게 접근한 것 같아. 작전을 세워서 너를 지훈 씨의 은인으로 만들면 당당하게 너에게 접근하면서 잘해줘도 네가 의심하지 않잖아. 어쩌면 네가 지훈 씨를 구해주던 날의 일도 지훈 씨가 꾸민 일일지도 몰라. 지금 관성의 환경이 얼마나 안전한데 건달들이 오토바이를 타고 출몰하는 경우가 극히 드물거든. 관성의 경찰들이 그들을 나와서 행패 부리게 내버려둘 리가 있겠어?”정윤하는 설마 하는 생각에 다시 말을 이었다.“엄마, 드라마를 너무 많이 보셔서 생각이 많으신 거 아니에요? 아저씨가 저에게 접근해서 뭐 할 게 있다고. 우리 집은 엄청난 부자도 아니고 저도 우리 도장에서 일하는 일개 직원일 뿐인데. 저의 전 재산을 내놓는다고 해도 아저씨가 하루에 버는 돈보다도 적을 텐데. 저를 겨냥한 건 아닐 거예요. 게다가 아저씨를 도와준 그날 밤은 확실히 제가 아저씨를 처음 만난 날 맞아요. 서로 초면인데 이유 없이 저에게 접근해서 뭐 하게요? 아저씨는 아주 큰 사업을 하는 사람인데 어쩌다가 남의 미움을 사서 복수 당할 수도 있죠. 누군가가 건달들을 시켜 아저씨를 해치려고 할 수도 있는 거 아니에요?”정윤하는 소지훈이 그녀를 위해 이런 일들을 꾸밀 가치가 없다고 생각했다.만약 정윤하의 집이 수백억의 재산을 가지고 있으면 소지훈이 무언가 꾸며도 믿을 법도 하다.그러나 그녀는 겨우 200만 정도의 월급쟁이에 집에 재산이 많다고 해
결국, 정윤하는 설탕 생강차가 담긴 잔을 들고 방안의 소파로 돌아와 앉았다.“윤하야, 무슨 걱정이라도 있는 거야?”윤미연은 정윤하의 뒤를 따라가 그녀의 옆에 앉으며 관심 있게 물었다.“아니요.”정윤하는 윤미연에게 들킬까 봐 감히 눈을 마주치지 못했다.그녀는 생강차를 가볍게 한 모금 마시더니 너무 매워서 혀를 내둘렀다.“엄마, 집에 있는 생강을 다 넣었어요? 너무 매워요. 아! 너무 맵네요. 맛도 없고 마시고 싶지 않아요.”“네 생리통 주기가 이상해서 그래. 생강차 좀 마시고 추위를 좀 쫓아내.”정윤하는 그제야 사실대로 말했다.“엄마, 사실 제가 거짓말한 거에요. 저는 지금 생리 기간이 아녜요.”“거짓말이라고? 이 계집애! 건강 문제로 어떻게 엄마를 속일 수 있어? 엄마는 너에게 몸조리 좀 시키려고 한약까지 지어줘야 하나 하고 걱정했는데. 어린 나이에 아직 시집도 안 갔는데 생리 주기가 이상하면 반드시 병원에 가서 몸조리를 잘해야 앞으로 배 속에 아기가 잘 들어서지. 여자들은 생리 주기를 잘 유의해야 해. 부끄러워하지 말고 바로바로 의사 선생님을 찾아가야 한다니까.”정윤하가 말을 이었다.“엄마, 내가 부끄럼을 잘 타는 사람으로 보여요? 저는 정말 괜찮아요. 제가 일찍 돌아오면 엄마가 제가 게으르다고 혼낼까 봐, 아빠한테 제 월급을 깎으라고 할까 봐 걱정하는 마음에 거짓말로 엄마를 속인 거예요.”다행히 윤미연의 행동이 빠르지 않았다.만약 정말로 정윤하에게 이것저것 사주면서 몸조리를 시키고 심지어 병원으로 데려간 뒤에야 아까 한 말이 거짓말이라고 하면 윤미연은 아마 그녀에게 욕설을 퍼부을 수도 있었다.윤미연은 고개를 끄덕였다.“하긴 네가 뻔뻔한 사람이 아니지. 부끄러움 탈 애가 아니야. 그럼 뭔데? 걱정거리라도 있으면 엄마한테 말해봐. 괜찮아. 참, 오늘 지훈 씨는 아직 안 왔지? 평소 이 시간이면 집에 도착했을 텐데.”정윤하는 입을 오므리다가 말을 꺼냈다.“엄마, 아저씨는 회사 대표라서 바빠. 저녁에 약속 잡혔을지도 몰라. 자꾸 걱
소지훈을 처음 만났을 때, 정윤하는 소지훈을 보더니 심장이 두근거리면서 자기도 모르게 헛된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러다가 알고 지낸지 오래되면 도장의 코치 선배들과 다를 바 없다고 느꼈고 이내 두근거림도 사라졌고 헛된 생각도 하지 않았다.정윤하는 그녀와 소지훈이 사이도 친구와 같은 사이라고 생각했다.그러나 소지훈이 그녀를 사랑한다고 말할 줄은 전혀 몰랐다.정윤하는 얼굴이 뜨거워졌다.그녀는 자신의 얼굴을 만져보더니 스스로 가볍게 얼굴을 치며 혼잣말을 했다.“정윤하, 부끄러워하는 거야? 어떤 남자가 널 좋아한다고 해서 이렇게 기뻐한 거야? 좀 진정해. 진정하자고.”소지훈은 정윤하의 소개팅 상대들처럼 그녀가 나중에 가정폭력을 행사할까 봐 걱정하지 않을 것이다. 소지훈은 정혁주까지 이길 수 있을 정도로 무술 실력이 엄청나게 뛰어난 남자였다.정윤하조차도 정혁주를 이기지 못하는데.소지훈이 정혁주를 이길 수 있다는 것은, 소지훈의 무술 실력이 정윤하보다 더 높다는 것을 의미하는데, 소지훈이 걱정할 게 뭐가 있을까!오히려 앞으로 소지훈과 싸울 때 그에게 터져 맞아 땅에 짓눌리지 않게 정윤하가 걱정해야 할 것이다.정윤하는 침대에서 일어나 화장대 앞에 앉아 거울에 비친 자신의 얼굴을 바라보았다.거울 속에 비친 자기 모습을 보던 정윤하는 자신 있게 웃으며 중얼거렸다.“못생기지는 않았는데! 아저씨가 역시 보는 눈이 있네.”단 정윤하는 자신과 소지훈이 어울리는지 잘 몰랐다.소지훈은 대기업의 대표이고 집안도 재벌가이고 만나는 사람마다 재력이 강하거나 신분이 높은 사람일 것이다. 그러나 정씨 가문은 가난하지 않고 연성에서도 부자에 속했지만 소씨 가문과 비교하면 그래도 차이가 컸다.정윤하는 소지훈이 보통 여자들과 다른 자신을 가지고 놀다가 질려버리면 자신을 버리고 딴 여자를 좋아할까 봐 무척 걱정했다.남자는 돈이 있으면 나빠지고 여자가 나빠지면 돈이 많아지게 되는 법!소지훈은 부자인 데다 잘생겼기에 여자에게 심장까지 꺼내어 잘해주면 그 여자는 분명 그에게 퐁
“형, 그럼 제가 뭘 하면 될까요?”정혁주가 자신을 인정해 주는 것을 본 소지훈은 그를 자신의 편으로 생각하며 물었다.정혁주가 대답했다.“여기 남아서 지켜보든지, 아니면 돌아가서 우리 어머니를 도와 요리를 하든지 하세요. 어쨌든 정윤하가 뭘 하든 상관하지 마세요. 저녁에 돌아올 테니까요. 돌아오면 두 사람 다시 얘기해 봐요. 소 대표님이 하신 얘기가 농담이 아니라 진심이라는 것만 믿게 하면 돼요.”“네. 정말 감사해요. 그럼 저는 돌아가서 이모님을 도와 요리할게요.”윤미연에게 잘 보이면 정윤하의 마음을 훔치는 이 길은 훨씬 쉬워질 테니까.정윤하는 소지훈의 고백에 놀란 것이 아니라 별로 믿기지 않아서였다. 어떤 남자가 자신을 사랑한다고 말하는 것은 처음이었기 때문이다.그녀는 도장에서 나와 찬 바람을 쐬고 추워지니 머리가 맑아지는 것만 같았다.정윤하도 밖에서 오래 돌아다니지 않고 곧 집으로 돌아갔다.다행히 도장은 집에서 매우 가까웠다.윤미연은 오늘 밤 샤브샤브를 먹을 요리들을 준비하고 있었다.추운 날에는 역시 샤브샤브를 먹어야 속이 편안할 것이다.집이 난방이 안 되면 그녀도 이렇게 편하게 있지는 못한다.겨울이 되면 윤미연은 거의 외출하지 않았다. 장 보는 것도 자식들에게 맡기곤 한다.그녀는 따뜻한 도시에서 정씨 가문으로 시집온 사람이다. 그녀는 너무 추위를 타서 연성에 시집온 지 수십 년이 되었지만, 겨울만 되면 여전히 집에 틀어박혀 있는 것을 좋아했다.문 여는 소리를 듣고 문 앞으로 향하던 윤미연은 정윤하인 것을 확인하더니 바로 물었다.“이 시간이면 수업해야 할 시간 아니야? 왜 돌아왔어? 밖에 여전히 눈이 오지? 부엌에 뜨거운 생강차를 끓여놨는데 한 잔 마셔.”윤미연은 다시 주방으로 돌아갔다.“왜 혼자 왔어? 너희 오빠들은?”윤미연은 바쁘게 일하면서도 정윤하에게 물어보았다.정윤하가 대답했다.“저는 일이 있어서 먼저 돌아왔어요. 엄마, 아빠는요?”“네 아빠가 약속 있어서 나가셨어. 저녁에 밥 먹으러 돌아오지 않을 거라면서
소지훈이 일어나 정윤하를 쫓아가려 하였으나 정혁주가 가로막았다.그는 고개를 돌려 정혁주인 것을 확인하더니 성깔 좋게 말했다.“형, 제가 나가 볼게요.”“지금 가지 말고 윤하에게 혼자 생각하게 시간 좀 줘요. 윤하가 지금 소 대표님을 좋아하지 않기 때문에 지금 이 소식을 소화해야 할 거예요. 윤하는 지금 친구 감정이 아닌 이 남녀 간의 감정을 소화할 시간이 필요하다는 말이에요.”“밖이 추운데... 눈이 내리면 추워질까 걱정돼요.”그러나 정혁주는 친여동생의 모든 것을 너무 잘 알고 있다.“소 대표님은 추울지 몰라도 윤하는 연성 토박이라 어렸을 때부터 이런 추위에 익숙해요. 그러나 소 대표님은 아니죠. 당신은 관성에서 왔으니 관성 쪽에는 겨울이 없다고 볼 수 있죠. 윤하가 추워하지 않을 테니 걱정하지 말고 나가서 바람 좀 쐬게 내버려 둬요. 마음을 다잡고 잘 생각해 보게 내버려 둬요. 갑자기 고백하니, 윤하는 심리 준비도 하지 않아 혼란스러워졌을 거예요. 걱정하지 마세요. 소 대표님도 그래요. 때가 되면 고백하셔야지... 꽃다발 하나로 윤하가 소 대표님 마음을 알 거로 생각하세요?”소지훈은 입을 오므리다가 대답했다.“윤하 씨에게 꽃다발을 선물해도 제 마음을 이해하지 못할 것이 뻔하기에 그래서 직접 알려줘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말하지 않으면 영원히 모를 것 같아서요. 제가 한 트럭의 꽃을 선물한다고 해도 윤하 씨 성격으로는 이 꽃들로 얼마나 많은 꽃 떡을 만들 수 있을까 고민할 테니까요.”정혁주도 공감하며 입을 열었다.“그... 그럴 수도 있겠네요.”정윤하도 분명 감히 그런 생각을 하지도 못했을 것이다.그녀를 사랑한다면 확실히 말해야 했다. 그녀가 알도록 명확하게 알려줘야 할 것이다.“형, 윤하 씨가 이렇게 황급하게 나갔는데 정말 저를 피하는 거 아니에요? 윤하 씨는 제가 너무 늙었다고 싫어하지 않을까요? 저는 윤하 씨보다 10세 4개월이나 많은데.”그의 나이는 그녀보다 11살 많다고 말은 했지만 진지하게 계산하면 10년 4개월 연상이다.정
정윤하는 그렇게 하면 소지훈에게 폐를 끼친다고 생각하여 말을 내뱉으려다가 다시 생각을 바꾸어 말을 건넸다.“그럼 그때 가서 신세 좀 질게요.”소지훈이 연성에 있을 때 정윤하가 그에게 잘 접대했으니 그녀가 관성으로 가게 되면 소지훈이 잘 접대해 주면 서로에게 빚지지 않을 것으로 여겼다.“윤하 씨, 꽃 떡 말고도 또 다른 생각은 없었어요?”소지훈은 다시 본론으로 돌아갔다.정윤하가 소지훈을 쳐다보니 그도 그녀를 보고 있었다.두 사람이 잠시 눈을 마주치더니 정윤하가 입을 열었다.“제가 또 무슨 생각 해야 하죠? 아저씨가 저에게 꽃을 선물했으니 저를 좋아한다는 생각 해야 돼요? 아저씨가 저를 좋아하고 저도 아저씨가 좋아요. 우리가 서로 좋아하지 않으면 친구로 될 수도 없는걸요.”잠시 침묵이 흐르다가 소지훈이 그 정적을 깨뜨렸다.“윤하 씨는 제가 윤하 씨에 대해 좋아함이 우정이 아닌 남녀 간의 정이라고 생각해 본 적은 없어요?”“아저씨가 남자고, 저는 여자인데 아저씨가 저를 좋아하는 것은 남자가 여자를 좋아하는 것이 아닌가요? 뭐가 달라요?”“제 말은 윤하 씨, 저는 윤하 씨를 사랑하고 있어요. 윤하 씨에게 구애하고 싶단 의미에요. 형제 사이가 아닌 윤하 씨 남편이 되고 싶다는 뜻이에요.”소지훈은 단숨에 속마음을 털어놓았다.정윤하의 되묻는 물음에 화가 난 것이다.소지훈도 충동적으로 그 뜻을 똑똑히 해석해 준 것뿐인데...그녀가 이해하지 못할까 봐 걱정되었다.소지훈이 그녀에게 고백해야 정윤하가 그의 감정을 알 수 있다고 소정남이 알려주었다.그가 말하지 않는데 털털한 정윤하가 어찌 알 도리가 있겠는가?목소리가 좀 커진 소지훈은 그제야 분위기가 좀 이상하다는 걸 깨달았다.웅성거리던 도장은 순간 조용해졌고 다들 두 사람을 쳐다보았다.소지훈은 그들을 쳐다보고는 다시 멍하니 자신을 바라보기만 하는 정윤하를 바라보았다.그의 잘생긴 얼굴은 점점 붉은 구름이 떠 올랐다.그는 도장이 아닌 단둘이 있는 곳을 찾아 로맨틱하게 현장을 꾸민 다음 정윤하에게